넬슨 록펠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넬슨 올드리치 록펠러
Nelson Aldrich Rockfeller
넬슨 록펠러
넬슨 록펠러
미국 미국제41대 부통령
임기 1974년 12월 19일~1977년 1월 20일
대통령 제럴드 포드
전임: 제럴드 포드(제40대)
후임: 월터 먼데일(제42대)

출생일 1908년 7월 8일
출생지 미국 미국 메인 주 바하버
사망일 1979년 1월 26일 (70세)
사망지 미국 미국 뉴욕 주 뉴욕
정당 공화당
학력 다트머스 대학교
종교 침례교
배우자 메리 토드헌터 클라크
(1930년 결혼, 1962년 이혼)
마가레타 피틀러 머피(해피)
(1963년 결혼)
서명 Nelson A Rockefeller Signature.svg

넬슨 올드리치 록펠러(Nelson Aldrich Rockefeller, 1908년 7월 8일 ~ 1979년 1월 26일)는 미국의 기업인 출신 정치인이다. 1974년 ~ 1977년 부통령을 지냈다.

미국의 대부호 록펠러 가문 출신이다. 그의 조부 존 D. 록펠러스탠더드 오일의 창업주로 역대 최고의 부자로 알려진 인물이며, 외조부 넬슨 올드리치는 연방 상원의원을 지낸 유명 정치인이다. 넬슨 록펠러는 존 D. 록펠러 2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다트머스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록펠러 가문 소유의 석유회사와 은행의 경영에 참여했다. 1930년대 중반 베네수엘라석유 개발 사업에 참여하게 되어 스페인어를 배우고 라틴아메리카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이에 따라 그의 집안이 공화당과 관계를 맺었는데도 그는 민주당프랭클린 루스벨트 정권에서 국무부의 라틴아메리카 담당 차관보로 임명되었다. 해리 트루먼 정권에서는 국제개발 자문위원회에서 일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에도 여러 부처에서 고위 공직자로 일하다가 1958년 뉴욕 주에서 주지사 선거에 공화당 소속으로 출마했다.

주지사 선거에서 현직 주지사였던 에이버럴 해리먼을 큰 차이로 제치고 당선되었다. 당시 선거는 전국적으로 민주당이 우세했기 때문에 그의 승리는 더욱 눈길을 끌었다. 장차 록펠러 가문에서도 대통령이 배출되어야 한다는 야망 속에 그는 1958년 선거 승리를 바탕으로 1960년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으나 리처드 닉슨에 밀려 후보직에서 사퇴했다.

1962년, 1966년, 1970년 주지사 선거에 연달아 당선되면서 그는 뉴욕 주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이루어냈다. 뉴욕 주립 대학교는 미국 최대의 공립 대학 조직이 되었고, 공무원과 예산 규모를 늘렸다. 교통 문제에도 큰 변화를 이루어 내어, 대규모 고속도로 건설 사업을 추진했고, 뉴욕 시의 교통 문제 해결을 위하여 주와 시의 교통 조직을 개편했다.

주지사로 재임하면서 공화당의 온건 자유파를 대변하며 계속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여, 1964년1968년에도 대통령 선거전에 출마했으나, 두 번 모두 공화당에서 2위에 그쳐 후보로 선출되지는 못했다. 1973년 주지사 임기 종료 전에 사퇴하고, 중대 결단을 위한 위원회를 설립하여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다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계획을 세웠다. 1974년 제럴드 포드 부통령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사임으로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었고, 수정헌법에 따라 부통령을 지명할 수 있게 되자 포드 대통령은 록펠러를 부통령으로 지명했다. 이로써 록펠러의 백악관 진입에 대한 꿈은 더욱 가까워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에 따라 그의 집안의 재산에 대한 비리와 그 자신의 스캔들이 더욱 부각되면서 오히려 그의 정치적 입지는 약화되었다. 그는 1976년 대통령 선거에서 부통령 후보로 나서지 않았고, 1977년 임기 종료와 함께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은퇴 후 종전부터 관여했던 예술 지원 활동에 주력했으나, 1979년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