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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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돌

밥 돌(Robert Joseph "Bob" Dole, 1923년 7월 22일 ~ )은 미국의 정치인이다.

캔자스 주 출신이다. 캔자스 대학교 재학 중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며, 전쟁 중 오른쪽 어깨에 심한 부상을 입었고 이후 오른쪽 팔 사용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전쟁 후 토피카워슈번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1950년 캔자스 주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 들어갔고, 1952년부터 고향에서 판사로 일하다가 공화당 소속으로 1960년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1961년부터 1969년까지 재직했다. 1968년 캔자스 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당선되어 1969년부터 상원의원으로 재직했으며, 상원에서 재정과 농업 분야에서 주로 활동했다. 1976년 대통령 선거에서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지명되어 선거전에 나섰으나, 민주당카터-월터 F. 먼데일 조에 패했다. 상원의원 선거에 1974년, 1980년, 1986년, 1992년 연속으로 당선되며 상원의 대표적인 거물이 되었고, 1985년부터 상원의 당시 집권당인 공화당 대표 겸 상원 다수당 대표로 큰 권한을 행사했다. 1986년 선거에서 다수당 지위를 민주당에 빼았겨, 다수당 대표 자리에서는 물러났으나, 계속 공화당 대표로 활동했으며, 1994년 선거에서 전보다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며 다수당 지위를 되찾아 다시 다수당 대표가 되어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과 대립하였다. 공화당에서는 온건파에 속하여 당시 하원의 대표가 된 뉴트 깅그리치에 비하면 심한 대립을 조장하지는 않았다.

대통령 선거에 여러 차례 도전하여, 1980년 공화당 예비선거에 나섰으나, 저조한 득표율을 얻는 데 그쳤고, 1988년에는 유력한 후보로 예비선거에서 중북부 몇몇 주에서 승리했으나, 조지 H. W. 부시에 밀려 후보로 선출되지 못했다. 1996년 선거에서는 상원 다수당 대표로 공화당 온건파의 지지를 얻어 예비선거에서 전국적으로 고른 득표를 하며 마침내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게 되었다. 그는 그 해 6월 11일, 자신의 상원의원직까지 사퇴하면서 대통령 선거에 집중하며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을 공격했다. 당시 만 73세로 미국의 역대 양대 정당 대통령 후보 중 가장 나이가 많았으며, 지금까지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73세의 고령의 그는 23세나 젊은 빌 클린턴 (당시 만 50세) 대통령의 패기를 꺾지 못하고 379 대 159로 낙선했다. 여기에 더해 그는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 주인 켄터키 주, 테네시 주, 웨스트버지니아 주, 아칸소 주, 루이지애나 주, 미주리 주, 애리조나 주에서도 패배하였다. 대통령 선거 후 바로 정계에서 은퇴했으며, 빌 클린턴 대통령은 이듬해 초 그에게 2차 세계 대전에서의 공적과 그동안의 정치 활동을 기려 미국 최고의 훈장인 대통령 자유 메달을 수여했다.

그는 첫 번째 부인과 이혼한 후, 1975년 엘리자베스 핸퍼드와 재혼했다. 두 번째 부인 엘리자베스는 1980년대에 연방 교통부와 노동부 장관을 지냈고, 2002년 연방 상원의원에 선출되어 밥과 엘리자베스 돌 부부는 미국에서 정치인 부부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