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럴드 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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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드 R. 포드
제럴드 루돌프 포드 2세
Gerald Rudolph Ford, Jr
Ford portret2.jpg
미국 미국제47대 대통령
(38번째 대통령)
임기 1974년 8월 9일 (승계) ~ 1977년 1월 20일
부통령 넬슨 A. 록펠러
전임: 리처드 닉슨(제47대)
후임: 지미 카터(제48대)

미국 미국의 제47대 부통령
임기 1973년 12월 6일 ~ 1974년 8월 9일
대통령 리처드 M. 닉슨
전임: 스피로 T. 애그뉴(제46대)
후임: 넬슨 A. 록펠러(제47대)

출생일 1913년 7월 14일
출생지 미국 미국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
사망일 2006년 12월 26일 (93세)
사망지 미국 미국 캘리포니아 주 란코 미러지
정당 공화당
학력 미시간 대학교
예일 법학대학원
종교 성공회
배우자 엘리자베스 블루머 워런 포드
서명 Gerald R. Ford signature.png

제럴드 루돌프 포드 주니어(영어: Gerald Rudolph Ford, Jr., 1913년 7월 14일 ~ 2006년 12월 26일)는 미국의 38번째 대통령이다. 그는 선거에 의해 대통령이나 부통령으로 선출된 적이 없이 대통령직을 수행한 유일한 대통령이다. 1973년 스피로 애그뉴가 부통령을 사임함에 따라 리처드 닉슨에 의해 지명되었고 미국 하원에 의해 승인되었다. 그리고 리처드 닉슨이 1974년 8월 9일 사임함에 따라서 대통령직을 승계하였으며, 밀러드 필모어, 앤드루 존슨, 체스터 A. 아서에 이어 4번째로 선거를 통하지 않고 승계한 대통령이 되었다. 2006년 11월을 기점으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93세 120일이라는 나이기록을 갱신하고 현존 가장 장수하는 대통령이 되었으며, 다음 달인 12월에 사망했다.

생애[편집]

젊은 시절[편집]

1914년 1살의 포드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에서 태어났다. 그의 출생 시 성명은 레즐리 린치 킹 주니어(Leslie Lynch King, Jr.)였다. 그의 부모는 그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별거하였고, 모친은 그를 데리고 미시간 주 그랜드래피즈로 옮긴 후 남편과 이혼하였다. 그 후 모친은 제럴드 루돌프 포드(Gerald Rudolff Ford)와 재혼하였다. 생부는 그의 친권을 포기하였고, 그는 계부의 가문에 입적되어 계부의 이름과 비슷한 제럴드 루돌프 포드(Gerald Rudolph Ford, Jr.)라는 이름을 얻었다. 모친이 재혼한 것은 그가 너무 어릴 때였고, 새아버지는 그를 친아들처럼 잘 대해주었기 때문에, 그는 17세가 될 때까지 계부를 친부로 알고 자랐다. 그랜드래피즈에서 성장한 그는 미시간 대학교에 진학하였고, 재학 중에는 미식축구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1933년 미시간 축구 선수 시절의 포드

미시간대를 졸업한 뒤 권투 코치, 미식축구 코치로 아르바이트하며 예일대 법대를 상위 25%로 졸업했다. 그리고 미식축구 선수로서의 자질도 상당하여 프로구단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 적도 있었지만 포드는 이를 거절하고 잠시 변호사생활을 하다가 제2차 세계 대전존 F. 케네디리처드 M. 닉슨처럼 해군으로 참전했고, 1948년에 하원의원에 당선되는 것으로 포드의 정치인생은 시작되었다.

1945년 미 해군복장을 입은 포드

정치 생활[편집]

성실하고 정직하다는 평판 외에는 별 특징 없는 의원이라는 평도 들었으나, 하원의원에 여러 차례 재선되면서 자신의 정치적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1965년에는 하원의 공화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러다가 1973년 부통령 스피로 T. 애그뉴가 뇌물 사건에 연루되어 사임하게 되자 리처드 M. 닉슨 대통령은 하원의 공화당 대표인 그를 부통령으로 지명하여, 부통령자리에 올랐다. 그러다가 1974년 8월 9일,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당하기 직전에 사임하여, 그날 포드는 닉슨부부를 헬리콥터에 태워 떠나보낸 뒤 백악관에 돌아와 선서를 하고 대통령 선거에는 나선 적은 없었지만, 미국의 제38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되었다.

대통령 재임 기간[편집]

취임선서를 하는 포드와 옆에 서 있는 그의 부인 베티 포드

그로부터 꼭 30일 뒤, 포드는 닉슨을 사면하며 국민에게 호소했지만, 그의 말은 모든 미국민이 듣고 싶어하던 것이었지만 아직 닉슨을 용서하기에는 너무 이른 때여서 결국 재선이 막히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그는 취임 직후인 1974년 9월 12일, 흑백차별문제에 대한 조처로 통학버스흑인백인 차별을 금지시켰다. 그렇지만, 이에 불만을 품은 백인 부모들이 등교를 거부하고 폭동까지 일으키자 포드는 군대를 동원하여 통학버스에서 흑인 학생들을 보호하도록 조치하였다. 그런 만큼 백인들 사이에서는 포드의 흑백정책에 불만을 품은 자들도 많아 1975년 9월 5일에는 캘리포니아 주 새크라멘토에서, 그리고 그 해 9월 22일에는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그에 대한 저격미수사건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닉슨에 대한 사면과 부진한 경제 상황, 매끄럽지 못한 사회 갈등 처리 등으로 인하여 선거전 전에 그의 대한 불만을 품고 있던 다수의 미국민들이 포드를 버리고 땅콩농장을 운영하던 지미 카터를 뽑아 그는 케네디 임기(2년 10개월)보다도 짧은 2년 반동안만 재임하게 하였다. 결국 그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적 없이 대통령에 재임한 후 물러나게 된 것이었다.

1976년 9월 23일, 포드(오른쪽)와 지미 카터

성추행 논란[편집]

미국 내에서 고위공무원들의 추악한 행동을 파헤친 책에 포드 대통령이 포함되어 충격을 주었다. 이 책은 포드 외에 정계의 많은 실력자들이 이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재임 기간의 문제[편집]

포드 정부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역시 경제였고, 1975년 4월, 베트남 전쟁의 총성은 멎었지만, 베트남 전쟁에 마구 퍼부은 전쟁비용으로 경제는 거의 파탄 상황에 이르러 미국 역사상 전쟁이 아닌 때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기록하였으며, 물가는 상승하고, 소비는 침체되고, 실업률은 높아만 가는 악성 스태그플레이션이 계속되어 미국은 1930년 이래 최악의 불경기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포드는 다른 모든 대통령들처럼 경제난을 인정하려 들지는 않아 전에 없이 좋았던 포드와 의회, 언론과의 관계도 계속되는 경제난과 포드의 고집으로 크게 악화되어갔고, 따가운 여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포드는 경제정책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인플레를 잡기 위해서는 세금을 감면해야 한다는 게 그의 정책이었지만, 1975년 산더미처럼 쌓인 빚으로 뉴욕 시가 파산지경에 이르자 포드는 어쩔 수 없이 뉴욕 시의 빚을 갚기 위해 세금인상을 허용했고, 포드가 정책을 바꾼 것이냐는 언론의 질문에 비서관 론 네이슨은 재치있게 비껴가기도 하여 고집스러운 포드의 태도는 의회와도 충돌을 빚었다.

2003년 90세 생일을 맞은 포드

1973년, 1974년에 일어난 제1차 유류 파동으로 원유가격이 폭등하자 포드는 석유가격을 올려 소비를 억제하려고 했지만 의회는 오히려 가격을 내려 포드의 정책을 반대하는 등 충돌이 거듭되어 닉슨이 5년 반 동안 42개의 예산안을 거부한 데 비해 포드는 2년 반 동안 무려 66개를 거부했을 정도였다.

수렁에 빠져 허덕이는 경제와 포드의 융통성 없는 정책, 그리고 닉슨 사면에 대한 따가운 시선의 불리한 조건에서 포드는 1976년 선거에 뛰어들었다. 불리한 조건으로 인하여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놓고 로널드 레이건과 경쟁한 결과 1,187대 1,070으로 간신히 후보로 지명되었으나, 변화와 쇄신을 원했던 미국민들은 민주당 후보 지미 카터를 선택하였다.

퇴임 후[편집]

2006년 4월 23일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그의 부인 베티 포드와 찍은 사진

비록 2년 반의 짧은 대통령 임기였지만 포드는 해리 S. 트루먼과 같이 정직하고 친절한 보통사람 대통령 시대를 열었고, 그의 부인 베티 포드 여사는 미국민의 큰 사랑을 받은 퍼스트 레이디로 낙태문제와 여성의 권리증직 등을 위해 노력해왔고, 1974년 자신이 유방암에 걸린 사실을 공개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고, 1982년에 설립된 베티포드센터는 마약, 알콜중독자 구제활동을 벌이는 사회사업단체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 랜초미라지에 정착하여 여생을 보내다가 그곳에서 93세 165일을 일기로 2006년 12월 16일 사망했다. 워싱턴에서 국장이 치러진 후 그가 성장한 미시간 주 그랜드래피즈에 묻혔다.

평가[편집]

2006년 12월 30일, 포드의 장례식

포드의 인생철학은 단순하였고, 그런 만큼 융퉁성도, 잔꾀도 없는 성실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평은 "마음은 따뜻하지만 머리는 별로 좋지 않았던 대통령"이라고 평했던 어느 신문 편집장의 평과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껌 씹는 것과 방귀를 뀌는 것을 동시에 못하는 유일한 사람이다"라는 평을 한 린든 B. 존슨 대통령의 평을 들 수가 있다.

기타[편집]

제럴드 포드는 미국 대통령들 중 유일하게 두 번 암살당할 뻔 한 대통령이다. 첫 번째는 자신이 추종하던 살인범 찰스 맨슨의 석방을 주장하던 라넷 프롬, 두 번째는 정신병력이 있는 가정 주부 사라 제인 무어였다.

1976년 미국 독립 200주년 기념식에서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대원수로 추증하였다.

읽어보기[편집]

바깥 고리[편집]

Published works[편집]

Libraries and museums[편집]

Biographies[편집]

President Ford

Obituaries[편집]

Multimedia and other[편집]

전 임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G7 의장
1976년
후 임
제임스 캘러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