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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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軍隊)는 한 국가의 방어를 책임지며, 다른 나라와 전쟁 및 전투를 담당하는 정부 기관이며, 통상 활동 영역에 따라 육군해군공군해병대 등으로 나뉜다. 군대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된다. 또한 군대는 전쟁에 대비하여 전투 조직과 전투 지원 조직과 이들을 구성하는 인력과 장비와 병참과 훈련과 시설 등을 관리할 수 있는 기구로 구성되며, 군대의 효율성은 이들 조직들이 얼마나 잘 활용되고 있는지에 따라 평가된다. 군대는 합법적 권력 기관이라는 점에서 준군사조직과 다르며, 외국과의 전쟁에 대비한다는 점에서 경찰 같은 국내를 대상으로 하는 사법 기관과 대비된다.

군대는 또한 장교부사관으로 나뉘어지며, 장교와 부사관은 원칙적으로 모병제지원제를 원칙으로 선발한다. 병은 대부분 지역에서는 부병제징집제로 선발하는 경우가 있고, 일부 지역은 앞서 장교와 부사관처럼 모병제인 지원제로 선발하는 경우도 있다. 참고로 군대 활용을 연구하는 학문은 군사학이라 부른다.

국가별 특징[편집]

한국[편집]

전반적으로 부병제인 징집제를 시행하는 경우이다.

이승만이 남한을 건립하여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 미국의 도움을 받아 북한을 강제 통일하고 통일 국가를 건립하기 위해서 징집제를 시행한다.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본격적으로 병력의 힘을 크게 키워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비록 미국의 도움을 많이 받기는 했지만, 독자적으로 병력을 크게 성장시키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강화도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 이후, 일부 민간 단체들에 의해서 남한은 하루 빨리 징집제를 폐지하고 지원제로 가야 군인들의 인권이 좋아져 전투력 상승에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한때 징집제가 폐지될 뻔한 사건이 있었다.하지만 한국의 현재 북한과의 대치상황과 여러문제를 고려하여 이들의 요구는 수용되지않았지만, 현재까지도 일부 민간 단체들과 정부는 징집제와 지원제의 문제로 서로 크게 다투고 있는 실정이다.

참고로 북한의 경우도 징집제이며, 북한은 군인들에 대한 인권이 남한보다 더욱 좋지 않으며 구타와 가혹행위 등이 더욱 심각하며, 북한 언론에서는 강력히 통제되는 총기난사 사건과 자살 사건도 번번히 일어난다.

미국[편집]

전반적으로 모병제인 지원제를 시행하는 경우이다.

조지 워싱턴이 미국을 건립하여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 대영 제국과의 전투를 앞두고 병력의 힘을 크게 키우기 위해서 징집제를 시행하였다. 처음부터 미국은 징집제를 시행하였고, 이는 독립 운동을 위한 것으로 대영 제국을 몰아내고 통일 국가를 이루어내기 위한 염원에서였다. 마침내 미국이 대영 제국과의 독립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였고, 대통령은 독립을 하는 데 큰 힘을 가져다 준 군대를 많이 포상했고 징집제를 고수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남북 전쟁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을 당시, 그랜트 리가 반란을 일으켜 미국이 남북으로 갈라 서로 전쟁을 한다. 남북 모두 징집제를 시행했지만, 그랜트 리가 이끄는 남군은 병영 부조리가 심각하여 전투력이 하락했고, 반면 아브라함 링컨이 이끄는 북군은 병영 부조리를 척결하여 전투력이 상승했기 때문에 결국 북군이 이긴다. 미국은 군사력 증강에 해가 되는 병영 부조리를 집중 척결하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미국은 제 1차 세계대전제 2차 세계대전 시절에도 징집제를 강력히 시행하여, 병력 유지 및 전투력 상승에 큰 중점을 두었다. 그러는 한편 전쟁 당시에도 바로 참전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지켜보면서 다른 국가들에게 무기를 판매하면서 부를 증강시키다가, 유리한 편에 머무른 국가들의 편에 붙어 모든 전쟁에서 크게 승리할 수 있었다. 미국은 중앙 정부가 직접 개입하여 군대의 발전을 크게 도왔고, 이전에도 그랬듯이 병영 부조리를 척결하는 데 큰 힘을 쏟아 전투력이 크게 상승하여 이제는 다른 국가들의 군대를 강제 해체할 정도의 큰 힘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에서 크게 패배한 미국은 대국민들이 백악관 앞에서 거센 항의를 하면서 전쟁을 중단하라는 시위를 받게 된다. 결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미국은 앞으로 전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였고, 종전의 징집제에서 지원제로 강제 전환하였다. 지원제로 전환된 이후 미국의 군대는 점점 전투력이 하락하였으며, 병력 수도 크게 줄었다. 하지만 이라크와의 걸프 전쟁을 앞두고 미국은 다시 병력 증강에 큰 힘을 쏟았으며, 비록 다시 징집제로 전환하지는 않았지만 이전의 징집제에 비해서 지원제는 병력의 효율이 매우 뛰어났고 아울러 비리와 폭행 사건들도 크게 줄어, 전투력 상승에 큰 힘을 주었다. 결국 걸프 전쟁을 대승리로 마무리한 미국은 지금까지도 지원제를 강력히 시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편집]

전반적으로 모병제인 지원제를 시행하는 경우이다.

옛날부터 중국에서 가장 강력한 황국들인 방귀나라한나라당나라명나라 등의 황국들은 지원제보다는 징집제를 강력히 시행하여 백성들 모두가 병역에 종사하도록 하였다. 이후 대부분의 역대 황조들은 징집제를 강력히 시행하여 군사력을 크게 증강시켜 영토를 많이 넓혀 대제국의 기틀을 닦아간다.

그런데 신해혁명을 일으키고 중화민국을 건립한 쑨원이 대천황의 자리에 올라, 종전의 징집제를 폐지하고 지원제를 채택한다. 사실 그동안 중국의 모든 국민들은 징집제에 대한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었고, 혁명을 통해서 징집제의 폐해를 뜯어고치려고 했다. 그 동안 돈이 많고 힘이 센 부자들은 중앙 정부에 뇌물을 갖다 바쳐 자기 자식들이 군대를 면제받으려고 했고, 그렇지 못한 돈이 적고 힘이 약한 빈자들은 자기 자식들이 큰 병을 앓고 있어도 강제로 군대에 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대천황은 이러한 악습을 강력히 뜯어고쳐 정식으로 지원제를 채택했지만, 국제 사회가 매우 시끄러웠고 모든 국가들이 군대를 강력히 키워 나가는데, 우리 나라만 지원제를 시행하여 군대의 힘을 더욱 약하게 만든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제스 시절에도 위급한 비상 사태가 아닌 이상 지원제를 정식 채택하여 병력의 효율성을 높여갔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을 건립한 마오쩌둥 시절에 다시 징집제를 강력히 시행하였고, 모든 인민들은 병역의 의무를 져야 한다고 헌법에 강력히 공표하였다. 비록 마오쩌둥과 매우 친한 고위 관리들이라고 해도 병역의 의무를 면제받을 수는 없었으며, 이를 어겼다가는 대인민들이 보는 앞에서 잔인하게 공개처형되었다. 병역의 의무를 지지 않으려다 이렇게 처형된 인간들은 무려 100000명이 넘을 정도이다. 이렇듯 마오쩌둥 시절에는 징집제를 시행하여 병력의 수를 크게 늘려 군사력 증강에 큰 힘을 썼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을 강력히 시행하면서, 지금의 징집제에 대한 폐해를 지적하였고 병영 부조리에 대한 문제도 해결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지금 중국의 인구가 매우 많기 때문에 징집제를 시행한다고 해도 오히려 지원제보다도 유지비가 더욱 많이 들어가 차라리 지원제를 하는 것이 병력 효율에 더욱 뛰어나다고 주장하였다. 비록 헌법으로 정식 공표되지는 않았지만, 후진타오가 이러한 문제를 다시 강력히 지적하면서 결국 2009년에 징집제가 폐지되었고 지원제를 시행하게 되었다.

군대 해체[편집]

1868년 리히텐슈타인이 비용상의 문제로 세계서양에서 처음으로 군대를 해체하였다. 이어 1907년에는 대한제국 군대 해산이라는 동양 최초의 군대 해체 사건이 일어났고, 1945년에는 미국일본의 군대를 강제 해체하였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