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로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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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로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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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김영남, 최영림, 최룡해
총비서 김정일 (영원한 당 총비서)
김정은 (당 제1비서)
창당 1945년 10월 10일
중앙 당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
당보 로동신문
청년조직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이념/정치노선 반제국주의
사회주의
주체사상
국제조직 공산당-노동당 국제회의
최고인민회의
601 / 687
조선로동당 당기
조선로동당의 구조

조선로동당(朝鮮勞動黨, 표준어: 조선노동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유일 집권정당이다. 한자 표기는 "노동당"이지만, 영문 표기로는 Workers' Party of Korea, 즉 "조선로동자당"이다. 조선사회민주당조선천도교청우당과 같은 당이 존재하고 있기는 하지만 형식적으로, 사실상 우당에 불과하다. 실제 정치권력은 조선로동당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는 《사회주의헌법》 11조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령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 라는 구절에 규정되어 있다. 이론적 기초는 주체사상혁명적 수령관이다.

역사[편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학계는 조선로동당의 기원을 김일성1926년에 세웠다는 타도제국주의동맹에서 찾는다. 그 밖에도 타도제국주의동맹 외에 조선공산당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뿌리로 하는 계열도 있다. 이 계열이 조선로동당의 실질적 기원이 되었다.

1945년 9월 11일 국내파 공산주의자들이 서울조선공산당을 재건했는데, 이 사태를 지켜보던 소비에트 연방은 1국 1당주의라는 명분을 위해 같은 해 10월 10일부터 13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조선공산당 서북5도 당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를 통해 친소파 공산당원을 중심으로 한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설치했다. '분국'이라는 개념은 박헌영이 주도하는 서울의 조선공산당을 '중앙'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였다.[1] 초기에는 김용범이 임시비서로 재직하다 김일성으로 교체되었다. 김일성은 1945년 9월 19일 원산시에 입항, 1945년 12월 17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에서 '분국'의 명칭을 거부하고 위원장에 추대된다.

북조선분국은 1946년 6월 22일 분국 제7차회의에서 명칭을 '북조선공산당'으로 바꾸고, 서울을 연고로 한 조선공산당으로부터 독립한다. 이 과정에서 박헌영을 따르는 국내파 공산주의자들의 반대도 있었으나, 소련군의 지원을 받는 김일성은 자신의 의도를 관철한다. 이후 같은해 8월 28일부터 8월 30일까지 연안파가 세운 조선독립동맹 계열 중심의 조선신민당과 통합하고 '북조선로동당'을 발족,[2] 북반부의 유일한 집권당이 된다.

11월 23일, 서울의 조선공산당. 조선신민당. 조선인민당의 합당이 이루어져 남조선노동당이 결성되었으나 1949년 6월 24일 북로당에 흡수되고 6월 30일 "조선로동당"으로 명칭을 바꾸고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선출하며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는 위원장으로 김일성, 부위원장으로 박헌영, 허가이, 비서로 허가이, 이승엽, 김삼룡이 선출되었고, 중앙위원회의 정치위원회의 의장에는 김일성, 부의장에는 박헌영, 위원으로 김책, 박일우, 허가이, 리승엽, 김삼룡, 김두봉, 허헌이 선출되었다. 남북로동당의 합당 이후 서울에서 기반을 잃고 월북한 박헌영 등의 남로당계는 한국전쟁 이후에 숙청당한다.

조직 원칙[편집]

사회주의 국가의 행정 구조는 당 조직과 정부 조직으로 나뉘며, 당은 정책을 결정하고 사회 내 전 조직을 감시하고 동원하는 역할을 하고 정부 조직은 당 정책을 집행하는 역할을 한다. 당 조직은 거의 모든 행정 단위와 생산 단위까지 조직되어 있다.

조선로동당의 조직 원칙은 소련 공산당과 마찬가지로 레닌이 주창한 '민주주의 중앙집권제'를 따른다. 민주주의 중앙집권제는 상급 중앙당 조직이 아래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되는 것을 전제로 삼으나, 실제로는 한번 중앙당 조직이 결정되면 다음 선거는 중앙당이 결정하는 후보자와 선거 방식으로 시행되므로 중앙집권제가 강조된다.[3]

구조[편집]

당 대회[편집]

당 대회는 조선로동당의 최고 지도기관이다. 당 대회에서 당 강령과 규약을 채택, 수정, 보완하며, 당 노선과 정책 및 전략, 전술의 기본 문제를 결정하고 당중앙위원회 및 당중앙 감사위원회의 선거도 실시한다. 1980년의 제6회 대회 이후 당 대회가 열리지 않았다. 당 대회는 당중앙위원회가 소집하는데, 3개월 전에 소집기일과 의정을 공고하여 당 대회를 개최한다. 당 대회의 대표자 선출은 당중앙위원회가 그 비율을 정하며 이들 대표자들도 도 당 대표회, 시(구역)·군 당 대표회에서 선출하도록 되어 있다.

당 대회에서는 의사 일정에 따라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를 하는데 중앙당 총비서부터 각 도, 시 책임비서들이 해당 지역의 사업총화를 보고하여 당 대회 사이에 성과와 결함을 검토하고 그 전망과 과업을 제시하며, 이 보고에 대하여 지지 및 토론을 하게 된다. 이어 당중앙 검사위원회에서 당 재정에 관한 보고를 청취한다.

현실적으로 당 대회는 당중앙위원회나 당 정치국에서 이미 결정한 중요 정책을 선언하거나 비준하는 역할에 그친다. 특히 대의원의 수가 3,220명(제6차 당 대회 당시)에 이르므로 실질적인 정책을 형성하거나 활발하게 토론하기에는 너무 규모가 크며, 그나마 1980년까지 거의 10년에 한 번꼴로 열려 효율적으로 정책 결정을 하기에 적당하지 않다. 당 대회는 1980년 제6차 당 대회를 끝으로 현재까지 열리지 않았다.

역대 당 대회

당 대표자회[편집]

당 대회는 규모가 크고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에 당 대회 사이에 긴급한 안건이 발생하면 당 중앙위원회에서 당 대표자회를 소집할 수 있다. 당 대회와 마찬가지로 당 대표자회 역시 당중앙위원회에서 대표자 선거 절차와 선출 비율을 결정한다. 당의 노선과 정책 및 전략·전술에 관한 긴급한 문제를 토의·결정하며,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당중앙위원회 위원, 후보위원, 준후보위원을 제명하고, 그 결원에 대한 보궐 선거를 실시한다.

1958년의 당 대표자회는 8월 종파 사건을 정리하는 회의였고 1966년의 당 대표자회는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 남한의 군사 정권 등장과 베트남 파병등으로 군사 긴장이 고조된 시기에 4대 군사화 노선을 다시 확인하는 회의로서 두 차례 모두 김일성 반대파를 숙청하고 독재 체제를 공고히하는 회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2010년 9월 28일 44년만에 조선로동당 최고지도기관 선거를 위한 제3차 당 대표자회를 소집해 김정은에게 대장 칭호를 부여하는 등 3대 세습이 공식화되었다.[4]

역대 당 대표자회

당 중앙위원회[편집]

당 중앙위원회는 당 대회에서 결정한 사업 형태를 구체적으로 조직화하고, 세부 기관을 통해 지도한다. 당 대회 폐회 중에 당을 대표하여 모든 당 사업을 조직하고 지도하는 것 외에 당의 재정을 관리하여 실질적인 당의 최고지도기관이 된다. 당 중앙위원회의 성원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공 조직과 정부의 모든 중요 지위에 있는 인물로 구성되어 권력 엘리트 집단을 이루고 있으며, 당에서 규정한 과업을 수행하기에 당 대회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는 중요 문제의 토의 외에 중앙위원회 정치국 및 정치국 상무 위원회, 중앙위원회 비서를 선출하고, 비서국과 중앙군사위원회를 조직한다. 중앙위원회 구성은 정위원, 후보위원으로 구성되며 위원 수는 당 대회에서 결정한다.

당 중앙위원회의 전원회의는 6개월에 한번 이상 소집하게 되어있으나, 1991년 이후 1년에 한 번씩만 열렸다. 필요에 따라서 당·정 기관 및 경제 기관 등의 책임일꾼들이 참가하는 확대전원회의를 열기도 한다. 김일성이 살아있을 당시에 당 중앙위원회는 국가 정책의 전반과 조직 문제를 다루는 기관이었으나, 김일성 사망 이후 그 활동이 공개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당 중앙위원회 비서국[편집]

당 중앙위원회 결정의 집행지도기관인 비서국은 중앙위원회의 필요에 따라 설치된 부서를 일상적으로 지휘 감독하는 역할을 하는 당의 중추기관이다. 비서국은 총비서와 비서, 그리고 산하 20여개 부서로 구성되어 있다. 비서국은 당내 인사, 경제, 군사, 문화, 선전선동, 사회단체 등을 조직 관리하며, 분야별 담당비서가 소관 부서를 관장하여 구체적인 계획 수립과 집행을 지도 통제하여 총비서를 보좌한다. 비서국은 당 총비서의 지시를 받기 때문에 총비서가 공식적, 실질적 최고 권력자이다.

각급 당 조직[편집]

당의 중앙조직은 도(직할시) 당 조직 - 시(구역)·군 당 조직 - 초급 당 조직 - 당 세포에 의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 최소 단위까지 분포한다. 도(직할시) 당 대표회는 도 당 조직의 최고지도기관으로서 3년 1회 도 당위원회가 소집하도록 되어 있다.

도 당 대표회에서는 집행기관인 도 당위원회와 도 당 검사위원회를 선출하고 선출된 도 당위원회는 당 중앙위원회처럼 도 당위원회 책임비서 및 비서를 건출하여 비서처를 조직한다.

직속 기관[편집]

그외 조선로동당출판사, 로동신문사, 김일성고급당학교, 당 역사연구소가 당 중앙위원회에 소속되어 있다.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편집]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와 전원회의 사이에 중앙위원회의 권한을 대행하여 당의 모든 사업을 조직·지도한다. 당 대회나 당 중앙위원회는 그 규모나 회기의 제한 때문에 주요 의제를 심층적이고 상시적으로 다루기 곤란하므로 일상적인 당무는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에서 맡는다. 정치국은 실질적으로 북한정권 최고 권력의 핵심체이자 절대권력 기관이며 당 중앙위원회의 모든 활동과 구성까지도 사실상 통제한다.

정치국 상무위원회[편집]

현, 정치국 상무위원 (4명)

  • 김정은 -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당 제1비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 김영남 -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 최영림 - 전 내각 총리
  • 최룡해 -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5]

당 중앙위원회 검열위원회[편집]

당 중앙위원회 검열위원회는 '반당, 반혁명적 종파행위 및 기타 당의 유일사상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거나 당의 노선과 정책 및 규약을 준수하지 않아 당 규율을 위반한 당원에게 책임을 추궁하며 당 규율 문제와 관련된 도(직할시) 당위원회의 제의 및 당원의 신소를 심의 해결한다.'(당 규약 3장 28조)

검열위원회 조직[편집]
위원장
제1부위원장
부위원장
위원

당 중앙군사위원회[편집]

중앙군사위원회는 국방 정책에 관한 군사 노선의 결정, 로농적위대를 비롯한 민간방어계획 및 집행, 국토요새화계획과 그 집행, 군의 간부화 및 현대화계획의 추진, 군사산업시설 발전의 사업수행, 정무원 산하 각 부의 군사 관계 업무를 담당하며, 이를 수행하기 위해 군사동원부, 훈련과, 대열과, 작전과, 병기과, 교양과, 통신 및 수신과 등의 전담 부서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전역을 병영체제화하는 4대 군사로선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며, 전국적으로 도, 시, 군 단위에 각급 군사위원회를 둔다.

그러나 1972년 사회주의 헌법 개정 시 중앙인민위원회 산하에 국방위원회를 신설하면서 상당한 임무와 역할이 이관되었다.

2010년 9월 28일, 제3차 조선노동당 대표자회에서 선출된 당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 당중앙검사위원회 위원들은 전원회의를 개최하여 김정일을 위원장으로 재추대하고 김정은을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했다.[6]

조직[편집]

위원장
부위원장
위원

당 중앙검사위원회[편집]

당 중앙검사위원회는 당의 재정을 회계, 감사하는 곳이다. 주로 중앙당 재정경리부에서 만든 재정사업총화보고서를 당 대회에서 낭독하는 일을 한다.

조직[편집]

위원장
부위원장
위원

참고자료[편집]

상징[편집]

조선로동당의 마크망치, 이다. 망치는 혁명의 령도 계급로동자를, 낫은 농민을, 붓은 근로 인테리를 뜻한다.

각주[편집]

  1. 권오윤, 127쪽.
  2. '공산당'이라는 당명을 포기하고 '로동당'을 사용한 이유는 공산주의를 지지하지 않지만 노동운동은 찬성하는 조선신민당이 당시에는 북조선공산당 보다 세력이 컸기 때문이다.
  3. 권오윤, 2007년, 191~192쪽.
  4. 데일리엔케이.
  5. 김치관. "최룡해.김원홍.리명수 국방위원에 보선", 《통일뉴스》, 2012년 4월 14일 작성. 2012년 4월 14일 확인.
  6. 김치관. "김정은 당군사위 부위원장 선출", 《통일뉴스》, 2010년 9월 29일 작성. 2010년 9월 30일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