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A. 월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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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어거드 월리스
Henry Agard Wallace
헨리 아그래드 월리스
헨리 아그래드 월리스
미국 미국제33대 부통령
임기 1941년 1월 20일~1945년 1월 20일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전임: 존 낸스 가너(제32대)
후임: 해리 S. 트루먼(제34대)

출생일 1888년 10월 7일
출생지 미국 미국 아이오와 주 애데어 카운티
사망일 1965년 11월 18일 (77세)
사망지 미국 미국 코네티컷 주 댄버리
정당 민주당
진보당
학력 아이오와 주립 대학교
종교 미국 성공회
배우자 일로 브라운 월리스
서명 Henry A Wallace Signature.svg

헨리 어거드 월리스(영어: Henry Agard Wallace, 1888년 10월 7일 ~ 1965년 11월 18일)는 미국의 제33대 부통령(1941~1945)이었다. 그의 부인은 일로 월리스이다. 그는 또한 농무 장관(1933~1940), 상무 장관(1945~1946)을 지낸 바있다.

아이오와 주 애데어 카운티에서 태어나, 아이오와 주립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그의 아버지 헨리 C. 월리스가 농무부 장관이 되었던 1921년에 어린 월리스는 잡지 월리스의 농부(Wallace's Farmer)의 편집자로 근무하였다.

그는 뉴딜 정책과 공정 정책 시기에 가장 논쟁적 인물들 중의 하나였다. 정부의 계획에 의하여 농장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설계한 뉴딜 정책의 농업조정법(AAA)의 채택을 주장하였다. 월리스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의 전쟁노력에 대한 활동적 행정관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1년에 그를 우선적 공급, 배당 위원회의 회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는 또한 핵무기 개발을 이끄는 의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많은 민주당원들이 그의 사회 관념론과 국제론을 싫어했던 이유로 1944년 부통령 후보로 다시 지명되지 못하였다. 1946년에는 소련에 향한 미국의 강경책에 비평한 연설로 트루먼 대통령이 그에게 상무부 장관직을 사임하도록 시켰다.

1948년 트루먼 대통령의 외교 정책을 반대한 세 번째 정당 진보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원예 전문가인 그는 1920년대에 교배종 옥수수를 개발하였고, 대기업 씨앗 회사 파이오니어 하이브레드(Pioneer Hi-bred)사를 설립하였다.

1965년 11월 8일 코네티컷 주 댄버리에서 사망하였다.

헨리 아그래드 월리스 초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