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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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Barack Hussein Obama II
버락 오바마
미국의 국기 미국제44대 대통령
임기 2009년 1월 20일~
부통령 조 바이든
전임: 조지 W. 부시(제43대)

출생일 1961년 8월 4일(1961-8-4) (47)
출생지 미국의 국기 미국 하와이 주의 국기 하와이 주 호놀룰루
정당 민주당
종교 개신교 (미국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
배우자 미셸 오바마
자녀 말리야 오바마, 사샤 오바마
서명
웹사이트 공식 홈페이지

버락 후세인 오바마 2세(영어: Barack Hussein Obama II, 스와힐리어: Barack Hussein Obama, 문화어: 버라크 오바마, 1961년 8월 4일 미국 하와이 주 호놀룰루 출생)는 미국의 정치인으로 현직 제44대 대통령이다.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미국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흑백 혼혈인으로,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민주당 소속으로 출마, 미국 최초의 혼혈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며, 2009년 1월 20일부터 임기를 시작하였다.

목차

[편집] 성장 과정

미국 하와이 주 호놀룰루에서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캔자스 주 출신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 당시 부모는 하와이 대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이었다. 아버지 버락 오바마 시니어케냐 루오족으로 케네디 재단의 지원으로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으며, 그에게 자신과 똑같은 이름을 남겨주었으나, 버락이 2세 때 이혼하고 케냐로 돌아가 버렸다. 모친 앤 더넘(Ann Dunham)은 하와이 주에서 버락을 홀로 키우던 중, 인도네시아 출신의 하와이 대학교 유학생인 롤로 수토로(인도네시아어: Lolo Soetoro 또는 Sutoro)와 재혼하였다. 고국 인도네시아로 돌아간 새아버지를 따라 버락도 1967년 ~ 1971년 인도네시아에서 지낸 경험이 있다. 그 후 버락에게는 인도네시아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여동생이 생겼으며, 하와이 주에서 백인 외조부모와 함께 생활하였다. 그 후 모친은 새아버지와 다시 이혼하였다. 이와 같이 버락 오바마는 여러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데다가, 가족들의 인종마저 다양한 다문화 가정이지만 이로 인하여 정체성에 큰 혼란을 겪었고, 복잡한 가정사에 방황하여 한때 마약에 손을 대는 등 우울한 청년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로스앤젤레스옥시덴탈 대학교에 입학하여 2년 동안 재학하였고, 뉴욕컬럼비아 대학교로 편입했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과 정치학을 전공하였고, 졸업 후 시카고 시의 빈민가에서 인권 운동가로 활동였다. 1988년에는 하버드 법학대학원에 진학, 법학을 전공하였으며, 1991년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하버드 대학교 법과대학의 학술지 편집장을 지냈으며 탁월한 학업 성취력을 발휘하여 우등으로 졸업하였다.

[편집] 정치 활동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오바마는 시카고로 돌아와 시카고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 기독교계의 자선 봉사 단체 및 시민 법률 상담 활동을 하면서 지역 기반을 다졌고, 1990년대에 지역 인권 변호사로 그 명성을 드높였다. 1993년부터 2004년까지 시카고 대학교 법과 대학의 인기 전임강사로서 헌법과목을 지도하여 학술적으로도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1996년일리노이 주 상원의원(민주, 시카고 남부 제13지역구 대표)이 되면서 정계에 입문하였으며, 활발한 입법 활동으로 유명세를 드높였다. 그러나 2000년에는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도전했으나, 예비 선거에서 낙선하는 등 위기를 겪기도 하였다. 2004년 연방 상원 의원 선거에 출마, 예비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선출되었으며, 2004년 전당 대회에서 기조 연설을 하며 유명인사가 되었고, 2004년 11월의 미국 연방 상원의원 선거(일리노이 주 대표)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70%의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되었다.

미국 중앙 정치무대에서 이라크전에 강력하게 반대[1]한, 유일한 개혁적 아프리카계 정치인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2004년 8월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국전당대회 기조연설과 2004년, 2006년 선거전 등에서 보여준 천재적인 대중연설 능력과 열성 지지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2007년 2월 제44대 미국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후보경선에 출마를 선언하였다. 힐러리 클린턴과의 길고 치열한 경선 끝에 2008년 6월 3일,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지명에 필요한 대의원수를 확보하여, 당의 공식 후보로 사실상 확정되었으며 2008년 8월 28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후보 지명 수락 연설을 함으로써 공식적으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이후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공화당존 매케인 후보에 우세를 보이며 일찌감치 대세론을 세웠다. 그러나 공화당부통령 후보로 비교적 신선한 이미지의 세라 페일린이 지명되면서 한때 매케인과 경합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로는 양측의 치열한 선거전이 이어졌다. 그러나 결국 2008년 11월 4일 제 44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대선 주자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두배가 넘는 선거인단을 확보하며 큰 차이로 승리를 거둠으로써 232년 미합중국 역사상 유색 인종으로는 처음으로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기록을 세웠다.

[편집] 주요 정책과 비판점

2008 대선 연설 중인 버락 오바마 (2008.10.03)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시절부터 명분없는 이라크 전쟁에 거듭 반대해온 그는, 집권시 2008년 3월까지 이라크에 파병된 자국 군인들의 완전한 철수를 핵심 공약으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전국민 건강보험 혜택(당선시 그의 첫 임기 말까지)과 대학 교육 비용 절감 및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세금제도 개편 등 더욱 적극적인 사회복지정책들을 추진하고, 또한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을 위한 교토 의정서의 조속한 비준과 더불어 에탄올 등의 대체에너지 개발을 촉진하며, 초고속통신망의 조기 구축을 통한 지식정보화 강국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아울러, 지나치게 보수적이면서 땅에 떨어진 워싱턴 D.C. 기성 정치권의 신뢰 회복 및 공정하고 투명한 정치제도 개혁을 약속했다. 또한 그는 동성결합[출처 필요] 낙태를 지지하며, 줄기세포연구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찬성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 하지만 반대자(주로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던 사람들과 공화당의 지지자)들은 그의 핵심공약들과 그 실현 가능성, 특히 추진 비용 등을 문제 삼고 있다.

[편집] 대 한반도 정책

2008년 2월 11일, 오바마는 자신이 속한 미국 연방상원 외교위원회에서 '남-북한 정부에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이 발표문에서,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해서는 전 부시 정권의 불안한 접근방식 등으로 인해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 보유를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하면서, '북한에 어떠한 환상도 갖고 있지 않은' 자신이 집권하면, 단호하고 지속적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계속 추진할 것을 공언했다.[3] 한미자유무역협정 비준 문제에서는, 체결시 미국의 근로자들에게 매우 불리한 협정이 될 것이라며 비준 반대 및 재협상 입장을 밝혔다. 특히 상호호혜주의에 입각하여, '한국이 미국에 자동차를 파는 만큼 미국도 한국(시장)에 (자국의)자동차를 팔 수 있어야 한다'며 자동차시장 분야에 문제를 집중 제기하였다.[4]

[편집] 현재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시점에 관한 상세한 정보는 오바마 행정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취임선서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은 미셸 오바마 여사)

오바마는 민주당 경선과정에서부터 지금까지 주로 젊은층과 여성 및 사회적 소수계층에서 더 높은 지지를 받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2008년 1월 3일에 치러진 아이오와 주민주당 당원대회(caucus)에서 38%를 득표하여 30%를 득표한 존 에드워즈와 29%를 득표한 힐러리 클린턴을 제치고 승리하였다.[5] 이후, 2008년 11월 4일,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08년 8월 27일에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만장일치로 지명된 미국연방상원의원 조셉 바이든(Joseph Biden, 델라웨어 주)이 오바마의 부통령이며, 관례에 따라 먼저 취임선서를 하였다. [6]

가족으로, 미셸 오바마 여사 (Michelle Obama, 1964년 1월 17일 출생, 전 시카고대학교병원 부원장)여사와 두 딸들(말리아, 사샤)이 함께 살고있다.

[편집] 화제

  • 그의 이름은 '버락 후세인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이다. 이는 2003년말 조지 W. 부시 정권에 의해 제거된 이라크사담 후세인을 연상시켜 반대측의 비난의 빌미가 되었다. 하지만 후세인이라는 이름은 오바마의 할아버지 후세인 온양고 오바마(Hussein Onyango Obama)의 이름이다.
  • 오바마의 케냐인 아버지는 4명의 부인과 살았다고 한다. 현재 케냐에서는 그의 이복동생들이 이슈가 되고 있다.[7]심지어 그의 이복동생들 중에는 중국에서 불고깃집을 운영하는 이도 있어 중국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다.[8]
  • 그리고 그의 6대 조부가 독일계였다는 것이 밝혀졌다.[9]
  • 그는 어린 시절 몇 년간을 인도네시아자카르타에서 보내기도 했다.
  • 일본 호쿠리쿠 지방의 오바마 시와 발음이 비슷해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 농구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 청년시절에 하와이 푸나호우 고등학교 대표선수로 활약하면서 '배리 오바머'(Barry O'Bomber, 폭탄 배리)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미국농구협회(NBA)의 제안을 받아들여 2009년 1월 20일 취임과 동시에 1969년 이후 지금까지 백악관에 설치되어있던 볼링경기장을 개축, 실내농구경기장으로 활용하기로 결정하였다.[10]
  • 2009년 2월 1일에 열린 제43회 미식축구 슈퍼볼을 앞둔 기자회견(1월 30일)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고향 시카고의 팀(베어스) 다음으로 좋아하는 팀이 피츠버그 스틸러스라고 밝히면서, 이 팀의 승리를 공식 응원하였다.[11]

[편집] 여론 조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시절 버락 오바마의 공식사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조사당시 당선자)이 미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선정됐다. USA투데이갤럽2008년 12월 12~ 14일 미국인 1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에서 오바마 당선인이 전체 응답자 가운데 32%의 지지를 얻어 남자 부문 1위에 올랐다.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1위에 오른 경우는 1948년 이후 50여년만에 처음이다. [12] 11월에는 67%, 12월에는 76%로 점점 높아지더니 대통령 취임일 직전인 1월 20일에는 워싱턴 포스트(WP)와 ABC방송의 여론조사에서 80%의 지지율을 받았다. 1930년대 이후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높은 수치다. [13]

미국 내에서 오바마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는 수준으로 전 신분 전 연령층을 통털어 과반수 이상의 인원이 오바마를 지지하지 않는 연령 및 신분 계층은 만 70살 이상 백인 남자들 뿐이었다. 오바마에 대한 지지도에서는 여성몰표, 흑인몰표는 물론 만40세 이하의 연령층에서 역시 몰표가 나왔다. [14]

[편집] 오바마 노믹스

오바마의 경제철학은 서민들에게 경제적 기회를 더 부여한다는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지금 미국의 8분의 1의 국민들이 가난하고 6분의 1의 국민들은 비싼 의료비 때문에 걱정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걱정들을 덜어주기 위해서 오바마는 서민들에게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15]

서민들을 위한 정책으로는 다음과 같다.

  • 생활임금 제공:오바마는 노동자들이 가난하게 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여 10년 동안 거의 오르지 않은 최저임금 7.25달러를 10달러까지 올린다고 한다 7.25달러에서 10달러까지 올린다면 가족을 부양할 수 있게 되고 비싼 병원비에 대한 걱정을 조금은 덜 수 있으리라고 예상해서이다.
  • 근로소득 세액공제 확대:최저임금을 받는 전업노동자들은 현재 175달러에서 555달러로 3배가 넘는 근로소득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 유급 병가 일수 확대:거의 대부분의 미국 노동자들 절반은 유급 병가를 얻지 못한다 임금이 낮은 곳은 전체 노동자의 4분의 1수준이 유급 병가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오바마는 이러한 노동자들에게 유급 병가 7일을 주는 것을 의무화할 계획이다.
  • 의료 보험 확대:지금 거의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보험에 의지하고 있을 것이다. 보험이 없다면 비싼 진료비 걱정에 병원가기를 두려워 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이러한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오바마는 의료 보험 제도를 확대할 계획이다.

[편집] 저서 및 관련서적

저서의 내역은 한국어판을 기준하였다.

  • 버락 오바마 (2007). 《담대한 희망》(Audacity of Hope). 랜덤하우스코리아. ISBN 978-89-255-1105-4.
  • 버락 오바마 (2007).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Dreams from my father). 랜덤하우스코리아. ISBN 8925510149.

2008년 4월 기준, 한국어판 관련서적 내역은 다음과 같다.

  • 박성래 (2008). 《역전의 리더 검은 오바마》. 랜덤하우스코리아. ISBN 978-89-255-3055-0.
  • 스티브 도허티 (2007). 《꿈과 희망-버락 오바마의 삶》. 송정문화사. ISBN 978-89-448-0302-4.
  • 마틴 더퓌 (2008). 《오바마론(論)》. 늘봄. ISBN 978-89-88151-86-0.
  • 모린 해리슨 외 (2008).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변화》(오바마 연설문 모음집). 홍익출판사. ISBN 978-89-7065-132-3.
  • 《열등감을 희망으로 바꾼 청소년의 리더 오바마》.

[편집] 주석 및 참고자료

  1. 그가 2005년에 취임하기 이전에는 러스 페인골드연방상원의원(민주-위스콘신 주)만이 유일하게 이러한 의사를 표명('이봐, 내 나라를 돌려줘!', 마이클 무어, 한겨레출판, 2004 발췌)했으나,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것은 그의 상원의원으로서의 입법활동이 본격화된 이후였다.
  2. 제44대 미합중국 대통령선거 출마선언문(영문), 버락 오바마, 2007년 2월 10일 발표.
  3. 오바마의 '남-북한 정부에 보내는 메시지' 전문, 뷰스앤뉴스, 2008년 2월 15일작성
  4. 버락 오바마, "한미 FTA 반대", mbn, 2008년 4월 16일작성
  5. (속보)오바마, 힐러리 이겨. 아이오와 코커스 '대파란', 뷰스앤뉴스, 2008년 1월 4일 작성
  6. "Journey Begins for Obama, Biden", (영문) The State Journal-Register. 2008년 8월 24일 작성.
  7. "케냐에 "오바마 브러더 참 많네""
  8. "오바마 이복동생 中 선전서 불고깃집 운영"
  9. 오바마 6대 조부는 독일계
  10. The Presidential Pickup Game(영어), Amy Chozick, 월스트리트 저널, 2008년 12월 19일 작성
  11. 오바마도 하인스 워드 응원?… “슈퍼볼서 피츠버그 이겼으면”, 한겨레 홈페이지(연합뉴스 제공), 2009년 1월 30일 작성
  12.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오바마’
  13. 지지율 80% 역대 최고 ‘허니문’ 신기록 세울까”, 《중앙일보》, 2009년 1월 20일 작성.
  14.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2364872 오바마 승리에 할리우드 스타들도 흥분
  15. ISBN 978-89-6086-144-2

[편집]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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