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넬 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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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넬 메시
Lionel Messi Player of the Year 2011.jpg
개인 정보
풀 네임 Lionel Andrés Messi
출생 1987년 6월 24일(1987-06-24) (25세)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산타페 주 로사리오

169cm
체중 67kg
포지션 공격수
클럽 정보
현 소속팀 600px Catalano azulgrana.png 바르셀로나
등번호 10
청소년 클럽
1995-2000 600px Nero e Rosso con lettere N-O-B.png 뉴웰스 올드 보이스
클럽1
연도 클럽 출장수 (골)
2003-2004
2004-2005
2004-
600px Catalano azulgrana.png 바르셀로나 아틀레틱
600px Catalano azulgrana.png 바르셀로나 B
600px Catalano azulgrana.png 바르셀로나
008 000(5)
022 000(6)
03270(254)
국가대표팀2
2005
2008
2005-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U-20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U-23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0007 000(6)
0005 000(2)
0076 00(31)

1성인 클럽 출장수와 골은 정규 리그 기록만 세며,
2012년 5월 13일 기준입니다.
2국가대표팀의 출장수와 골은
2012년 3월 21일 기준입니다.

메달 기록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의 선수
남자 축구
올림픽
2008년 베이징 남자 축구

리오넬 안드레스 메시(스페인어: Lionel Andrés Messi, 1987년 6월 24일 ~ )는 아르헨티나축구 선수이다. 애칭은 레오(Leo)이다. '살아있는 전설', '메시아'로 불리며 현 세대 최고의 축구 선수로 꼽힌다. 아르헨티나 산타페 주 로사리오에서 태어난 메시는 프리메라리가의 축구 클럽인 FC 바르셀로나의 선수이며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의 주장이다.

메시는 어릴 때부터 주목받았는데 2005년부터 2008년까지 3년 연속 FIFPro월드 사커 매거진 최우수 유망주로도 뽑힌 바 있다. 수 차례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후보에 올랐다가, 그는 22세의 나이에 최연소이자 최다 득표로 발롱도르(Ballon d'Or) 수상자와 FIFA 올해의 선수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그 이듬해와 그 다음 해, 연속해서 2013년에도 FIFA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4년 연속 수상의 기록을 세우고 있다. 발롱도르를 3회 수상한 선수는 크루이프, 미셸 플라티니, 반 바스텐이고, 이 중 3년 연속 수상은 미셸 플라티니가 유일하다. 메시는 이로써 축구 역사상 최초로 발롱도르를 4회, 4연속으로 수상하게 되었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과 능력은 축구의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에 비견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마라도나는 메시를 그의 후계자라고 선언한 바 있다. 이후 마라도나는 스페인 <스포르트> 지에서 "1986년의 자신보다 메시가 더 뛰어나다", "메시는 마라도나-펠레 논쟁을 끝낼 수 있는 선수이다. 메시를 볼 때면 마치 예수와 공을 차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 누구도 메시와 비견될 수 없을 뿐더러, 그가 하는 것의 40%를 하는 선수조차 없다." 등의 메시를 극찬하는 인터뷰를 했다. 또한 AC 밀란의 부회장 아드리아노 갈리아니는 2011-2012 시즌 유럽 챔피언스 리그 8강전 AC 밀란과 바르셀로나의 경기를 앞두고 "나는 펠레와 마라도나의 플레이를 모두 두 눈으로 봤다. 내 생각에 메시가 그들보다 뛰어나다. 역대 최고의 선수는 메시라고 생각한다. 메시가 밀란과의 8강전에선 제 기량을 발휘하지 않았으면 한다." 라는 인터뷰를 했다. 마라도나와 갈리아니 이외에도 세계 각국의 축구 관계자들, 감독들, 선수들, 언론인, 심지어 다른 종목의 운동 선수들과 정치인들까지 메시를 추켜세운다. 한 예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콜로라도 라피즈로부터 유니폼을 선물받았는데 등번호가 10번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바로 "메시와 같은 번호구나!"라고 말하며 기뻐한 경우가 있다. 매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은 메시의 유니폼과 자신의 유니폼을 교환하기 위한 쟁탈전을 벌이는데, 2012년 챔피언스리그 FC 바르셀로나레버쿠젠의 경기에서 하프타임에 레버쿠젠의 선수들이 메시의 유니폼을 가지려고 싸운 사례도 있다.

메시는 어린 나이부터 축구를 시작했으며 FC 바르셀로나가 그의 잠재력을 일찍부터 발견했다. 바르셀로나가 그의 성장 호르몬 장애를 치료해줄 것을 약속함으로써 그는 뉴웰스 올드 보이스 유스팀을 떠나 2000년 그의 가족과 함께 유럽으로 이주했다. 2004–05 시즌 데뷔로, 그는 라 리가 최연소 선수 기록을 세웠으며 또한 최연소 리그 골도 기록했다. 메시가 데뷔한 해에 FC 바르셀로나는 프리메라리가에서 우승했고, 다음 해인 2006년에는 프리메라리가와 UEFA 챔피언스리그 더블을 달성했다. 메시는 19살이 된 2006–07 시즌부터 독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는 정규 주전멤버가 되었고, 엘 클라시코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으며 리그 26경기에서 14득점을 기록했다. 2008–09 시즌에 메시는 38골을 기록하며 바르셀로나의 트레블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 결과로서 2009년 발롱도르, 2009년 유럽 올해의 선수상, 2009년 FIFA 올해의 선수, 베스트 11에 모두 선정되는 등 축구와 관련된 대부분의 상을 거머쥐며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2009–10 시즌에는 더 향상된 경기력을 선보이며 53경기 47골 14도움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했다. 이는 호나우두가 바르셀로나 역대 한시즌 최다골을 세웠던 골 기록과 동률이었으며 그 많은 득점 중 페널티킥은 단 하나에 불과했다. 또한 2012년 챔피언스 리그 8강 2차전에서 AC밀란을 상대로 2골을 넣어서 56점이 되었는데 게르트 뮐러가 1972-73 시즌에 달성한 한시즌 최다득점기록인 55점을 돌파했으며 시즌을 마무리하는 동안 총 73골 29어시스트로 유럽 역사상 최초 한시즌 공격포인트 100 이상을 기록하였다. 이 시즌(2011-2012)에 메시는 축구계의 각종 기록들을 갈아치웠다.

메시는 2005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결승전의 두 골을 포함 총 여섯 골을 기록하여 득점왕에 올랐다. 그 직후 그는 아르헨티나 성인 국가대표팀의 일원이 되었다. 2006년 메시는 월드컵에서 뛴 최연소 아르헨티나 선수가 되었고,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의 경기에서 후반 30분에 교체 투입되어 후반 43분에 골을 넣는 등의 활약으로 아르헨티나의 6-0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다음 해에는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그의 성인 국가대표 경력 중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한때 스페인에서 국가 대표팀의 보강을 위해 메시의 귀화를 시도한 바 있으나 메시는 자신의 병마를 해결해 준 스페인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조국인 아르헨티나를 버릴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메시는 세계에서 연 수입이 가장 많은 축구선수로서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던 잉글랜드데이비드 베컴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축구선수로 랭크되었다.[1]

목차

FC 바르셀로나 [편집]

메시는 만 16세 145일 째 되는 날인 2003년 11월 16일FC 포르투와의 경기에서 비공식적인 첫 1군 경기를 가졌다. 약 1년 뒤인 2004년 10월 16일, 그는 RCD 에스파뇰과의 경기에 출전함으로써 첫 번째 리그 경기에 출장했다. 이것은 그가 17세 114일 째 되는 날이었는데, 이로써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뛰었던 역사상 세 번째로 어린 선수가 되었고, 프리메라 리가에 출전한 가장 어린 선수가 되었다. (이 기록은 팀 동료인 보얀 크르키치에 의해 2007년 9월 새로이 경신되었다.) 그가 바르셀로나에서 기록한 최초의 1군 경기 골은 2005년 5월 1일 알바세테와의 경기에서 터졌다. 그 당시 메시는 17세 10개월 7일의 나이였고, 이것은 라 리가에서 득점한 바르셀로나 선수중 가장 어린 나이였다. (이 기록은 역시 2007년 보얀에 의해 다시 깨졌다. 보얀의 그 골은 메시가 어시스트 한 것이었다.)

2005-06 시즌 [편집]

9월 16일, 바르셀로나는 메시에게 1군 선수로서의 연봉을 지급할 것을 약속하는 계약을 2014년 6월까지 연장했다. 메시는 9월 26일에 스페인 시민권을 획득했고, 마침내 스페인 1부리그 경기에서 데뷔할 수 있었다. 그 이전엔 바르셀로나가 비유럽권 선수 할당(non-EU quota)을 모두 채운 상태였기 때문에 메시가 경기를 뛸 수 없었다. 메시의 첫 번째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는 9월 27일 우디네세와의 경기였다. 그가 보여준 볼 앞에서의 침착함과 호나우지뉴와의 패싱 조합을 본 캄프 누의 팬들은 메시가 교체 될 때 기립박수를 보냈다.

2006-07 시즌 [편집]

메시는 첼시FC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훌륭한 플레이를 선보이며 주전 자리를 확고히 했다. 그러나 11월 12일 레알 사라고사와의 경기에서 메시는 중족골 골절을 입는 부상을 당하여 그 후로 3개월 간을 뛰지 못하였다. 아르헨티나에서 회복과정을 거친 뒤 그는 2월 11일 라싱 산탄데르와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로 경기장에 돌아왔다. 프랑크 레이카르트 감독은 메시의 출전 시간을 점진적으로 늘려가며 그의 완전한 회복을 기다렸다. 한 달 후인 3월 10일에 있었던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그는 부상 후 처음으로 풀타임 출전했다. 메시는 또한번 엘 클라시코에서의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이 경기에서 메시는 해트트릭을 기록함으로써 10명이 뛰고 있는 상황이었던 바르셀로나에게 3-3 무승부를 안겨 주었다. 세 골 모두 동점골이었으며 마지막 세 번째 골은 후반 추가시간에 터진 것이었다. 이로써 메시는 이반 사모라노(레알 마드리드 소속, 1994–95 시즌)와 바르셀로나의 호마리우(1993–94 시즌)에 이어 세 번째로 엘 클라시코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또한 이것은 엘 클라시코에서 나온 득점 중 가장 어린 선수의 득점이기도 했다. (정규시즌 기준)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그는 더 자주 득점을 기록했는데, 그의 리그 골 열네개 중 열한개는 마지막 열세 경기에서 터진 것이었다.

메시가 헤타페전에서 마라도나를 연상시키는 골을 넣기 직전의 모습.

메시는 또한 마라도나의 가장 유명한 골들과 거의 흡사한 득점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새로운 마라도나"라는 별명이 헛된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4월 18일, 메시는 헤타페와의 코파 델 레이 준결승전에서 두 골을 기록했는데, 그 중 한 골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마라도나가 잉글랜드를 상대로 넣은 골('세기의 골'이라고도 일컬어진다)과 매우 비슷했다. 세계 축구 언론은 이것을 두고 마라도나와 비교하며 대서특필했고, 스페인 언론은 메시에게 "메시도나(Messidona)"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는 21년 전 마라도나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60미터를 달렸고, 똑같이 여섯명의 선수를 제쳤으며(골키퍼 포함), 거의 유사한 위치에서 골을 넣었고, 코너 깃발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경기 후 열렸던 기자 회견에서 메시의 팀 동료인 데쿠는 이렇게 말했다: "레오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메시는 그 후에도 에스파뇰을 상대로 마라도나가 월드컵 16강전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 넣었던 골과 거의 유사한 골을 넣었다. 메시는 볼을 향해 뛰어오른 상태에서 손으로 공을 건드렸고, 이것이 이드리스 카를로스 카메니 골키퍼 뒤로 흘러들어갔다. 에스파뇰 선수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이 골은 인정되었다.

2007-08 시즌 [편집]

2007–08 시즌이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메시는 일주일에 다섯 골을 넣기도 하는 활약을 보여 주었다. 올림피크 리옹과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득점 한 후 며칠 지나지 않은 9월 22일 그는 세비야를 상대로 두 골을 넣는다. 그리고 9월 26일 바르셀로나가 4-1로 레알 사라고사를 꺾은 경기에서 메시는 두 골을 더 추가했다.

그는 2007년 FIFPro가 선정한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포함되었다. 스페인 지역의 신문인 마르카의 설문조사 결과 77%의 투표자가 메시를 세계 최우수 선수로 꼽았다. 바르셀로나 기반의 신문인 엘 문도 데포르티보스포르트의 칼럼니스트들은 발롱도르가 메시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프란츠 베켄바워요한 크라위프도 이에 동조했다. 호나우지뉴, 사뮈엘 에토, 프랑크 레이카르트, 빅토르 페르난데스, 베른트 슈스터, 구티, 라울, 잔루카 참브로타, 프란체스코 토티, 안토니오 카사노,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디에고 마라도나펠레 등의 축구계 유명인사들도 메시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축구선수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2월 27일 발렌시아의 경기에 출전함으로써 메시는 바르셀로나 선수로서 공식 100번째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메시는 3월 4일 셀틱과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근육부상을 얻어 6주동안 출전하지 못했다. 이 경기에서 교체되면서 메시는 눈물을 보였다. 이러한 종류의 부상이 발생한 것이 세 시즌 동안 벌써 네 번째였다.

2008-09 시즌 [편집]

UEFA 챔피언스리그 2008-09시즌 결승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캐릭을 상대하고 있는 메시.

호나우지뉴가 클럽을 떠나면서 메시는 그의 등번호 10번을 물려받았다. 2008년 10월 1일 샤흐타르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앙리와 교체된 메시는, 7분만에 두 골을 성공시키면서 0-1로 뒤지고 있던 팀에게 2-1의 역전승을 선물했다. 바로 다음에 있었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선 프리킥 득점과 도움 하나를 기록하면서 팀의 6-1 대승을 이끌었다. 세비야와의 경기에서는 23미터 거리에서 발리슛을 성공시켰고, 골키퍼를 돌아 드리블해 들어간 후 각도가 없는 곳에서 한 골을 추가로 성공시키기도 했다. 바르셀로나가 2-0으로 승리한 전반기 엘 클라시코에서 메시는 두 번째 골을 넣었다. 연말에는 678점을 얻음으로써 2008년 FIFA 올해의 선수 시상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메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코파 델 레이 경기에서 2009년 첫 번째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팀은 이에 힘입어 3-1로 승리했다. 2009년 2월 1일에있었던 라싱 산탄데르전에서는 팀이 1-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후반 교체 투입되었고, 두 골을 성공시켜 팀의 1-2 역전승을 이끄는 훌륭한 플레이를 보였다. 그 중 두 번째 골은 바르셀로나의 통산 5000호 리그 골이었다. 6-0으로 승리한 리가 28라운드 말라가와의 경기에서는 08-09 시즌 통산 자신의 서른번째 골을 터뜨렸다.

"메시의 발에 닿으면 모든 것이 황금으로 바뀐다."
2009년, 조제 무리뉴

시즌이 종반부에 다다른 시기에 열린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의 엘 클라시코에서, 메시는 환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며 두 골을 득점, 팀의 2-6 대승을 도왔다. 이것은 레알 마드리드에게는 1930년 이후로 경험한 가장 큰 패배가 되었다. 골을 넣을 때마다 메시는 카메라로 달려가 유니폼을 들어올려 그 속에 입은 티셔츠를 보여주었다. 이 티셔츠에는 'Síndrome X Fràgil(카탈루냐어프래자일 엑스 증후군이라는 뜻)'라는 단어가 새겨져있었는데, 이는 자신이 후원하는 이 증후군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메시는 또한 첼시 FC와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터진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골에도 기여를 했고, 이로써 팀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으로 이끌었다. 그는 5월 13일에 열린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하여 팀의 4-1 승리를 도왔고, 생애 첫 코파 델 레이 우승컵을 들었다. 그는 팀이 리그까지 우승함으로써 더블을 달성하는 것에도 일조했다. 월 27일, 메시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후반 70분 팀의 두 번째 골을 성공시켰고, 9득점으로 챔피언스리그 최다득점자의 자리에 올라섰다. 결국 이로써 바르셀로나는 레이, 리가, UEFA 챔피언스리그의 우승컵을 전부 들어올리는 위업을 달성했다. 스페인 클럽이 트레블을 달성한 것은 금회가 처음이었으며 전유럽 클럽이 트레블을 달성한 것은 이것을 포함하여 딱 5번뿐이었다. 이 공로로 메시는 2009년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 올해의 유럽 선수상을 휩쓸게 되었다.

2009-10 시즌 [편집]

메시가 2009년 여름 캄프 누에서 열린 맨체스터 시티와의 호안 감퍼 트로피 대회에서 플레이하는 모습.

2009 UEFA 슈퍼컵에서 우승한 직후, 바르셀로나 감독 주제프 과르디올라는 그가 두 눈으로본 선수 중 메시가 가장 뛰어난 선수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메시가 일단 뛰기 시작하면 그를 막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는 엄청난 속도를 유지하면서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유일한 선수예요."

"그는 압도적으로 세계 최고의 선수입니다.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보는 것 같아요. 그는 우리가 만드는 모든 실수를 자신의 기회로 가져갑니다."

아스널이 바르셀로나에 4 - 1로 패배한 후에 가진 아르센 웽거 아스널 감독의 인터뷰.

9월 18일, 메시는 바르셀로나와 재계약에 합의했다. 새 계약기간은 2016년 까지로 정해졌으며, 바이아웃은 2억 5억만 유로로 책정되었다. 또한 약 950천만 유로의 연봉을 받게 되면서 팀 동료인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함께 프리메라리가 최고 연봉자로 올라섰다. 4일 후인 9월 22일 열린 라싱 산탄데르전에서 메시는 두 골을 넣고 한 골을 어시스트하면서 바르셀로나의 4:1 승리에 기여, 팀과의 재계약 체결을 자축했다. 시즌 첫 유럽 대항전 골은 9월 29일 디나모 키예프전에서 터졌다.

메시는 12월 1일 열린 2009년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전년도 수상자였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473표 대 233표라는 역대 최대 득표차로 누르고 상을 거머줬다. 그 직후에 있었던 프랑스 풋볼지와의 인터뷰에서 메시는 "이 상을 제 가족들에게 바칩니다. 그들은 제가 필요로 할 때 늘 함께 있어주었고 제가 하는 일들에 대해 저보다 더 큰 열정을 가지고 지켜봐 주었어요." 라고 말했다. 12월 19일 아부다비에서 열린 2009년 FIFA 클럽 월드컵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 클럽 에스투디안테스를 상대로 메시는 연장전에서 극적인 역전골을 성공시키며 팀의 2009년 6관왕 달성을 이끌었다. 이틀 후, 그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사비 에르난데스, 카카,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를 제치고 FI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아르헨티나인으로서는 최초의 수상이었다. 2010년 1월 10일, 메시는 테네리페 전에서 시즌 첫 해트트릭을 달성했고, 1월 17일에는 세비야 전에서 그의 클럽 기록 통산 100골을 이뤄냈다.

"메시는 인간이 아니다. 거짓말이 아니고 사실이다. 볼과 함께 그러한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를 본 적이 없다. 상대를 완전히 무력화시킨다. 그것도 정말 쉽게 말이다. 내가 아무리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도 결국 안 될 것이다. 그는 언제나 한발 나아갈때마다 볼을 터치한다. 그가 아스날을 상대로 4골을 넣은 후 난 스스로 기립하여야 한다고 중얼거렸고 결국 기립박수를 쳤다. 정말 놀라웠다. 화요일 아스날과의 경기가 끝나고 그를 보러 체인징룸에 갔다. 그런데 그가 나를 보고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왜? 무슨일인데?' 그 순간 난 그냥 웃어버렸고 룸을 나와버렸다. 그 상황에서 그한테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참 질기고 강한놈이다. 그는 지기 싫어하는 전형적인 파이터이다. 훈련에서 만약 그가 속한 팀이 지고 있으면 그는 볼을 가지고 모든 선수들을 제치고 동점골을 넣고야 마는 선수이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훈련하는 메시를 볼 기회가 있다. 그의 테크닉과 스피드는 나로썬 도무지 이해가 안될 정도로 완벽하다. 그의 플레이를 보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즐거움이다. "
2010년, 티에리 앙리

그리고 메시는 5게임에서 11골이라는 경이로운 골 행진을 이어갔다. 우선 말라가를 상대로 후반 48분 극적인 역전골을 일궈낸 그는 다음 경기인알메리아 전에서 두 골을 작렬, 팀을 패배 위기에서 구하고 2:2 동점으로 경기를 끝낼 수 있게 도왔다. 메시는 그에 그치지 않고 다음 라운드 상대 발렌시아를 상대로 또 한번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슈투트가르트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두 골을 넣으며 팀의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에 힘을 보탰다. 마지막으로 사라고사전에서 메시는 또다시 해트트릭을 기록, 바르셀로나 역사상 처음으로 리가 두 경기 연속 해트트릭 달성 선수가 되었다. 3월 24일 그는 오사수나전에 출장함으로써 개인 200경기 출전 기록도 세웠다.

4월 6일 FC 바르셀로나캄프 누에서 아스널과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을 치렀다. 니클라스 벤트네르의 선제골로 아스널에게 희망이 보이는 듯 했으나, 그 직후에 메시가 한 골을 넣으며 다시 경기를 원점으로 만들었다. 메시는 이에 그치지 않고 세 골을 더 넣는 믿을 수 없는 플레이를 펼치며 팀의 4:1을 이끌었다. 이것은 메시가 커리어 사상 최초로 네 골을 기록한 경기였으며, 동시에 클럽의 선수 역사에 있어 히바우두의 통산 골 기록을 넘어서게 된 경기였다. 4월 10일에는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하는 엘 클라시코에서 선제골을 넣어 팀의 2:0 승리에 기여했다. 3일 후인 5월 4일에도 테네리페를 상대로 두골을 뽑아냈다. 그는 리가 우승의 분수령이었던 세비야 전에서 32번째 골을 기록했고 리가 마지막 경기인 레알 바야돌리드전에서는 두 골을 넣으며 호나우두가 1996-97 시즌 세웠던 한 시즌 클럽 최다골이었던 34골과 동률을 이루며 시즌을 끝냈다. 이로써 메시는 생애 첫 리가 최다득점자가 되었고 2008-09시즌에 이어 2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최다 득점자가 되는 영예를 안았다.


2010-11 시즌 [편집]



리오넬 메시는 여러차례의 수상을 받았다.

1. 세계 클럽 선수권대회 골든볼

"만약 지금 축구의 신이 있다면 그 신의 이름은 바로 리오넬 메시일 것이다."
사무엘 에투

2. UEFA 유럽 최우수 선수상

"메시는 그만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나는 나만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경기를 풀어나가고 나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 나는 또한 그처럼 빅 클럽에서 뛰고 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다르다. 그러나 지금, 그가 바로 최고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2011년 9월 골닷컴과의 인터뷰에서

3. 2010 FIFA 발롱도르상, FIFA 베스트 일레븐

4.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5. 프리메라리가 득점왕

6. 골든 부트상

7. K리그 올스타전 MOM 상

8.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득점왕

9.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2011-12 시즌 [편집]


11-12 한 시즌 동안 메시는 축구계의 각종 역사를 갈아치웠다. 소속되어 있는 FC 바르셀로나는 주전들의 줄부상으로 인한 공격진-수비진 라인업의 붕괴, 선수들의 전체적인 경기력 난조 등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선수들이 감독 펩 과르디올라의 새로운 3-4-3 전술 실험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서 승점을 잃어 레알 마드리드에게 리그 우승을 넘겨주게 되었다. 이 같은 악재들 속에서도 메시는 전체적인 경기를 플레이메이킹함과 동시에 많은 기록을 갈아치웠고, 축구계에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내었다. 메시가 이 한 시즌 동안 뒤바꾼 축구계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1. 전세계 축구 역사상 한 시즌 최다골, 최다공격포인트 (60경기 73골 29어시스트 102공격포인트)

2. 프리메라리가 역사상 한 시즌 최다 득점, 최다 공격포인트 (36경기 50골 16어시스트)

"사람들이 나와 메시를 비교해주어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메시는 현재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선수다."
"메시는 말도 안 된다. 그는 역사상 최고의 선수다."
웨인 루니

3. 프리메라리가 역사상 최초 리그 3시즌 연속 30골 이상 득점

"메시의 플레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즐겁고 감사한 일이다"
잭 윌셔

4. 프리메라리가 역사상 최다연속골 (10경기)

"유럽 챔피언스 리그는 메시를 위한 파티인가? 아니면 메시는 플레이스테이션(게임) 속 사나이인가."
라다멜 팔카오

5. 프리메라리가 역사상 한시즌 최다해트트릭(8회, 총12번)

6. 프리메라리가 역사상 한시즌 홈경기 최다골 (35골)

7. 프리메라리가 역사상 최연소 150골 돌파(24세 270일)

8. 바르셀로나 역사상 최단시간 해트트릭 (17분)

9.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한시즌 최다 득점, 최다 공격포인트 (11경기 14골 5어시스트)

10.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최다 해트트릭 (3회) - 고메즈,오웬,인자기와 타이

11.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한경기 최다골 (5골)

12.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한시즌 최다해트트릭(2회) - 고메즈와 타이

13.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최다득점왕 (4회) - 게르트 뮐러와 타이

14.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최다연속득점왕 (4시즌 연속)

15.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토너먼트 최다골 (26골)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편집]

201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볼리비아와의 경기에 출전한 메시

청소년 대표팀와 성인 대표팀 초반 [편집]

2004년 6월 파라과이와의 친선 경기에 출전하면서 아르헨티나 U-20 대표팀에 데뷔했다. 이 경기에서 메시를 출전시킬 때 아르헨티나는 3-0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이였는데 메시가 출전한 후 경기결과는 8-0으로 아르헨티나가 대승을 거두었다. 2005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아르헨티나 대표로 출전하는 동안 골든볼(대회 MVP)와 골든슈(대회 득점왕)를 석권하면서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끌었다. 2005년 8월 17일에 열린 헝가리와의 경기에 선발 출전하면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무대에 데뷔하게 된다.

2006 FIFA 월드컵 [편집]

리오넬 메시는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엔트리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지만 나이가 너무 어려 출전 기회는 많이 잡지 못했고 하비에르 사비올라가 메시를 대신해서 월드컵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2006 FIFA 월드컵에서 코트디부아르,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네덜란드와 함께 C조에 속해 있던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조별 예선 두 번째 경기인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전에서 팀이 압도적인 점수차이로 앞서 경기에 여유가 생기자 감독은 교체 투입시켰다. 메시는 그라운드에 올라오자마자 에르난 크레스포의 골을 어시스트했고, 15분 후에는 직접 골까지 터뜨렸다. 이로써 메시는 월드컵에 참여한 최연소 아르헨티나 축구선수가 되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편집]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브라질과의 준결승전 경기에 출전한 리오넬 메시

리오넬 메시는 소속팀 FC 바르셀로나의 만류를 뿌리치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했다. 바르셀로나 측은 메시에게 올림픽의 출전을 불허하고 계속 리그 경기에서 뛰어줄 것을 요구했으나 메시는 FIFA를 방문하여 해명하고 올림픽에 반드시 출전하고 싶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했다. 결국 메시는 바르셀로나의 반대를 누르고 자신의 뜻대로 올림픽 축구종목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엔트리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메시는 워낙 높은 애국심으로 유명한 선수였고 바르셀로나에서 메시는 가장 중요한 선수였기 때문에 논란은 그 정도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메시는 자신의 대표팀 동료인 앙헬 디 마리아를 상대로 어시스트하는 연속해서 기록하면서 큰 활약을 보여주었고 아르헨티나는 그의 활약에 힘입어 준결승전에서 브라질을 3-0, 결승전에서 나이지리아를 1-0으로 이기고 금메달을 획득하게 된다.

2010 FIFA 월드컵 [편집]

"다리가 3개 달린 줄 알았어요. 메시 반만큼만 축구했으면 좋겠어요."
기성용, 월드컵이 끝난 후

메시는 조벌예선 1차전인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 선발 출전했으나 상대 골키퍼인 빈센트 에니에아마의 선방들에 막혀 골을 기록하지는 못했다.[2] 조벌예선 2차전인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도 선발 출장했으며 아르헨티나의 모든 골(4골 가운데 3골은 곤살로 이과인 선수가 기록한 득점(해트트릭)이었으며 나머지 1골은 대한민국박주영 선수가 기록한 자책골이었음)에 기여를 했다.[3] 또한 조별리그 3차전인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메시는 경고누적을 우려하여 결장한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를 대신하여 주장 완장을 착용한 채 경기에 임했고, 좋은 경기력으로 제 몫을 해냈다.

"메시는 최고의 선수였다. 선수들이 경기 끝나고 '축구 하기 싫어졌다'고 할 정도였다. 워낙 훌륭한 선수라 막아낼 힘이 나지 않았다. 뭐 저런 선수가 있나 싶었다. 수비하려고 우르르 달려들면 옆으로 툭 패스하고 빠져들어가고… 참 영리한 선수였다."
조용형,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아르헨티나에 1-4로 패한 후

16강전에 진출하자 4년만에 다시 만난 상대인 멕시코를 상대로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으며 카를로스 테베스에게 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테베스가 골을 넣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하지만 독일과의 4년만의 8강전 리턴매치에선 감기몸살로 인한 부진과 수비의 중심이 되어야만 하는 월터 사무엘이 무릎 부상으로 결장하는 데다가 당시 감독이였던 디에고 마라도나가 그나마 있던 수비수인 니콜라스 오타멘디를 빼고 미드필더인 하비에르 파스토레를 투입시키는 바람에 수비는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혼자 담당하는 상황이 되는 바람에 독일에게 4:0으로 완패하면서 탈락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유효슈팅 숫자는 13:8로 오히려 아르헨티나쪽이 훨씬 많았다. 특히 메시, 이과인, 디 마리아 3인방이 폭풍같은 골세레를 연거푸 퍼붓고도 독일의 골키퍼에게 모두 선방당해 득점을 하지 못했다. 2010 FIFA 월드컵에서 메시는 결국 무득점으로 대회를 마쳤고 FIFA 월드컵 우승의 꿈 또한 4년 뒤로 미뤄야 했다.

2011년 코파 아메리카 [편집]

자국에서 개최한 코파 아메리카 2011에 메시는 참가했다. 하지만 조별리그 첫경기부터 세르히오 바티스타 감독이 출장시킨 선수들의 손발이 맞지 않아 전부다 따로 놀게 되어 결국 선제골을 내주었다. 하지만 교체 출장한 세르히오 아궤로가 만회골을 넣어 간신히 무승부로 경기를 종료했다. 선수들의 손발이 맞지 않는 상황은 2차전에도 계속되어 결국 콜롬비아와 또다시 무승부를 하고 말았다.

세르히오 바티스타 감독은 고심끝에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코스타리카전에서는 에베르 바네가를 제외하고 그 자리에 앙헬 디 마리아를 넣고 세르히오 아궤로를 선발로 출장시켰다. 그리고 그 두 선수, 세르히오 아궤로와 앙헬 디 마리아의 맹활약으로 코스타리카를 3-0으로 완파했다.

하지만 8강에서 만만치 않은 상대인 우루과이를 만났다.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는 코파아메리카 역대 우승횟수로서 1위와 2위를 다투는 팀이다. 경기는 초반에 우루과이의 디에고 페레스가 골을 넣은 뒤 아르헨티나의 곤살로 이과인이 골을 넣고 1-1이 되었다. 이후 시종일관 아르헨티나의 우세속에 난타전이 진행되었지만 우루과이에서 선수가 퇴장당해 아르헨티나가 잠시 숫적우세를 점했지만 하비에르 마스체라노가 퇴장당하면서 10대 10의 시합이 되었다. 아르헨티나는 리오넬 메시, 앙헬 디 마리아, 세르히오 아게로, 곤살로 이과인 등이 폭풍같이 슛을 퍼부었지만 이를 우루과이의 골키퍼인 페르난도 무슬레라가 다 선방해냈다. 우루과이는 아르헨티나보다 한 수 아래의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신들린 선방능력을 자랑하는 골키퍼 페르난도 무슬레라 덕분에 경기를 승부차기까지 끌고 갔다. 승부차기에서 양팀 키커들이 모두 성공하는 가운데 카를로스 테베스만 유일하게 실축하는 바람에 아르헨티나의 코파 아메리카 준결승 진출은 좌절되었다.

"오 하나님 맙소사, 저 사람을 보십시오! (천국) 사람들은 하늘에 리오넬 메시를 위한 별자리라도 만들어 줘야 합니다."
레이 허드슨, 2011년 포르투갈과 아르헨티나의 경기에서 메시의 어시스트를 보고

아르헨티나 국민들과 언론들은 메시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아르헨티나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이 좌절되자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사실상 미드필더의 역할로 경기에 출전한 메시의 플레이는 경이로웠으며, 메시는 중원에서 매 경기 3~5개씩 킬패스들을 배급해 주었으나 아르헨티나의 공격수들의 골 결정력 부족은 아르헨티나의 패배 요인이 되었다. 또한 선수들의 과도한 개인 플레이와 손발이 맞지 않는 팀 플레이, 전술 및 앙헬 디 마리아를 벤치멤버로 결정하여 소극적으로 활용한 점 등이 또 다른 패배의 요인이 되었다.

2014 FIFA 월드컵 [편집]

그러나 단지 감독만 알레한드로 사베야로 바꿨을 뿐인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메시는 완전히 FC 바르셀로나에서의 모습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4년 FIFA 월드컵 남아메리카 지역 예선에서 메시는 총합 8골로 곤살로 이과인의 9골에 이어 루이스 수아레스와 공동2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 남아메리카의 대부분의 팀들이 메시에게 있는대로 유린당한 끝에 패배하고 있는 상황이며 특히 칠레콜롬비아같은 남미의 내로라하는 팀들도 자신들의 홈에서 아르헨티나에게 패배를 기록했다. 2012년말 현재 아르헨티나는 7승3무1패로 남은 7경기 중에 1무(승점 1점)만 더 기록하면 본선 진출이 확정된다.

알레한드로 사베야 감독은 메시를 위치상으로 아주 절묘하게 배치하여 메시가 스트라이커, 윙어, 플레이메이커 중에서 자기가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경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특히 사베야가 메시에게 팀을 위한 요구사항이라는 게 니 마음대로 해봐였는데 메시는 진짜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활약을 펼치며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을 마치 12명같은 11명인 팀으로 변모시켰다. 또한 그에 따라 아르헨티나의 피파 랭킹 역시 3위로 치솟았다.

국가대표 골 기록 [편집]

날짜 장소 상대 점수 결과 대회
1 2006년 3월 1일 장크트 야콥 파크, 바젤, 스위스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2 - 2 2 – 3 친선 경기
2 2006년 6월 16일 벨틴스 아레나, 겔젠키르헨, 독일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6 - 0 6 – 0 2006년 월드컵
3 2007년 6월 5일 캄프 누, 바르셀로나, 스페인 알제리 알제리 2 - 0 4 – 3 친선 경기
4 2007년 7월 8일 메트로폴리타노 데 풋볼 데 라라 경기장, 바르퀴시메토,
베네수엘라
페루 페루 2 - 0 4 – 0 2007년 코파 아메리카
5 2007년 7월 11일 폴리데포르티보 카차마이 경기장, 푸에르토 오르다스,
베네수엘라
멕시코 멕시코 2 - 0 0 – 3 2007년 코파 아메리카
6 2007년 10월 16일 호세 파첸초 로메로 경기장, 마라카이보,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 2 - 0 2 – 0 2010년 월드컵 예선
7 2007년 11월 20일 엘 캄핀 경기장, 보고타, 콜롬비아 콜롬비아 콜롬비아 1 - 0 1 – 2 2010년 월드컵 예선
8 2008년 6월 4일 퀄컴 경기장, 샌디에이고, 미국 멕시코 멕시코 3 - 0 4 – 1 친선 경기
9 2008년 8월 7일 상하이 경기장, 상하이, 중국 코트디부아르 코트디부아르 1 - 0 2 – 1 2008년 하계 올림픽 축구 남자
10 2008년 8월 16일 상하이 경기장, 상하이, 중국 네덜란드 네덜란드 1 - 0 2 – 1 2008년 하계 올림픽 축구 남자
11 2008년 10월 11일 엘 모누멘탈,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우루과이 1 - 0 2 – 1 2010년 월드컵 예선
12 2009년 11월 11일 스타드 벨로드롬, 마르세유, 프랑스 프랑스 프랑스 1 - 0 2 – 0 친선 경기
13 2009년 3월 28일 엘 모누멘탈,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 1 - 0 4 – 0 2010년 월드컵 예선
14 2009년 11월 14일 비센테 칼데론 경기장, 마드리드, 스페인 스페인 스페인 1 - 2 1 – 2 친선 경기
15 2010년 9월 8일 엘 모누멘탈,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스페인 스페인 1 - 0 4 – 1 친선 경기
(아르헨티나 독립 200주년 기념)
16 2010년 11월 18일 칼리파 국제 경기장, 도하, 카타르 브라질 브라질 1 - 0 1 – 0 친선경기
17 2011년 2월 16일 스타드 드 제네브, 제네바, 스위스 포르투갈 포르투갈 1 - 0 2 – 1 친선경기
18 2011년 10월 8일 엘 모누멘탈,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칠레 칠레 2 - 0 4 – 1 2014년 월드컵 예선
19 2011년 10월 8일 로베르토 메렌데스 스타디움, 바랑키야, 콜롬비아 콜롬비아 콜롬비아 1 - 1 2 – 1 2014년 월드컵 예선
20 2012년 3월 1일 방크도르프 경기장, 베른, 스위스 스위스 스위스 1 - 0 3 – 1 친선경기
21 2012년 3월 1일 방크도르프 경기장, 베른, 스위스 스위스 스위스 2 - 0 3 – 1 친선경기
22 2012년 3월 1일 방크도르프 경기장, 베른, 스위스 스위스 스위스 3 - 0 3 – 1 친선경기
23 2012년 6월 2일 엘 모누멘탈,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에콰도르 3 - 0 4 - 0 2014년 월드컵 예선
24 2012년 6월 9일 메트라이프 스타디움, 뉴저지, 미국 브라질 브라질 1 - 1 4 – 3 친선경기
25 2012년 6월 9일 메트라이프 스타디움, 뉴저지, 미국 브라질 브라질 2 - 1 4 – 3 친선경기
26 2012년 6월 9일 메트라이프 스타디움, 뉴저지, 미국 브라질 브라질 4 - 3 4 – 3 친선경기
27 2012년 8월 15일 코메르츠방크 아레나, 프랑크푸르트, 독일 독일 독일 2 - 0 3 – 1 친선경기
28 2012년 9월 7일 에스타디오 마리오 알베르토 켐페스, 코르도바,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파라과이 3 - 1 3 – 1 2014년 월드컵 예선
29 2012년 10월 12일 말비나스 아르헨티나스 경기장, 멘도사,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우루과이 1 - 0 3 – 0 2014년 월드컵 예선
30 2012년 10월 12일 말비나스 아르헨티나스 경기장, 멘도사,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우루과이 3 - 0 3 – 0 2014년 월드컵 예선
31 2012년 10월 16일 에스타디오 나시오날 데 칠레, 산티아고, 칠레 칠레 칠레 1 - 0 2 – 1 2014년 월드컵 예선
32 2013년 3월 23일 엘 모누멘탈,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 2 - 0 3 – 0 2014년 월드컵 예선

커리어 통계 [편집]

클럽 기록 [편집]

2012년 5월 26일 기준

클럽 시즌 리그 1 유럽2 클럽 월드컵 Total
출장 득점 도움 출장 득점 도움 출장 득점 도움 출장 득점 도움 출장 득점 도움
바르셀로나 2004–05 7 1 0 1 0 0 1 0 0 9 1 0
2005–06 17 6 3 2 1 0 6 1 1 25 8 4
2006–07 26 14 2 4 2 1 6 1 0 0 0 0 36 17 3
2007–08 28 10 12 3 0 0 9 6 1 40 16 13
2008–09 31 23 15 8 6 2 12 9 5 51 38 18
2009–10 35 34 19 4 3 0 12 8 1 2 2 0 53 47 14
2010–11 33 31 24 7 7 3 13 12 3 55 53 24
2011–12 37 50 15 7 3 4 11 14 5 2 2 1 58 73 29
커리어 통산 214 169 66 40 28 12 69 52 16 4 4 1 327 253 111

1코파 델 레이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2UEFA 챔피언스리그UEFA 슈퍼컵

국가대표 [편집]

국가 연도 출전 득점 도움
아르헨티나 2005 5 0 0
2006 7 2 2
2007 14 6 3
2008 8 2 1
2009 10 3 2
2010 10 2 2
2011 13 4 10
2012 8 12 1
통산 76 32 23

수상 기록 [편집]

클럽 [편집]

FC 바르셀로나 [편집]

국가 대표팀 [편집]

개인 [편집]

기타 [편집]

  • 메시가 처음 축구선수를 시작했을 때 그 팀의 감독이 메시의 아버지였다.
  • 지네딘 지단이 리오넬 메시에 대해 "메시를 봉쇄하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방법을 알고 있다. 그것은 메시의 두 발목을 끈으로 묶어놓는것 밖에 없다."라고 평가했다.
  • 메시는 평소에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으로 인하여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되었을 때 다른 선수들에게 말조차 걸지 못했다. 당시 메시의 선배 선수들이 처음에는 이런 메시를 버릇없게 행동한 것으로 오해했지만 메시의 성격을 알고 난 이후에는 오히려 메시와 친해지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또한 메시는 이러한 성격 때문에 큰 상을 받거나 크게 활약해서 팀 승리에 기여해도 그 사실을 자랑하는 일이 없었다.
  • 메시는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이 우승하면 이미 해체된 오아시스를 재결합시키겠다고 선언했으며 우승축하파티에 오아시스를 꼭 섭외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아시스를 재결성시키기 위해서라도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을 반드시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우승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는 월드컵이 끝난 이후 메시 본인의 발언이 아닌 영국 언론에서 날조된 기사임이 판명되었다.
  • 2010년 FIFA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그리스전이 메시의 생일날 실시되었다. 마라도나는 경고누적을 우려하여 원래 주장인 마스체라노를 결장시켜 놓은 뒤 메시에게 주장 완장을 생일 선물로 줬다. 결과적으로 메시는 2010년 FIFA 월드컵의 모든 팀 중 최연소 주장이 되었다.
  •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스페인의 선수들은 골든볼은 무조건 메시가 받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스페인의 푸욜은 2010년도 발롱도르는 무조건 메시가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바르셀로나 구단은 K리그 올스타팀과 바르셀로나 FC의 친선 경기에서 계약과 달리 메시를 단 16분만 출전시킨 대가로 대한 축구 협회에 위약금 20만 유로를 지불한 바 있다.[4]
  • 일본에서는 아르헨티나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만약 메시가 경기에 출전하지 않으면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에 지불하는 초청 개런티에서 20만달러를 뺀다고 선언했다.[5] 이렇게 메시는 국가대표나 클럽팀이나 초청 경기에서 불참하게 되면 그 상대팀에서 소속팀이 벌금을 물도록 하고 있을 정도로 메시는 상대팀에게마저 인기가 높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감독이 메시의 국가대표 팀메이트인 카를로스 테베스를 맨체스터 시티로 방출하자 이에 대해 메시는 "퍼거슨은 테베스를 버린 것을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고 일침을 놓았다.[6]
  • 메시는 자신의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세르히오 바티스타가 계속 담당해야만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7] 실제로 메시는 세르히오 바티스타를 마음 속 깊이 존경하고 있다.
  • 메시는 유소년 축구선수 시절을 굉장히 가혹하게 보냈다. 유소년 축구선수시절을 보낼 당시 다른 선수들은 오후 6시가 되면 일과가 끝나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나 메시는 치료비용을 갚아야 했기 때문에 밤 10시까지 오로지 축구만 연습했다. 이 시기 메시에게 사생활은 전혀 없었다. 그 결과 메시를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 성장시키게 되었다.
  • 메시는 2003년 바르셀로나 FC 유소년 시절 K리그인천 유나이티드 FC로부터 100만달러 상당의 제의를 받았었다.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하는 팀이나 바르셀로나 FC를 상대하는 상당수의 팀들이 수비를 하는 도중 범하는 실수가 수비수들이 메시에게 모두 달라붙는 것이다. 이 때문에 메시와 같은 팀의 선수들은 수비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활약을 하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축구 남자종목에서 앙헬 디 마리아가 이런 방식으로 결정적인 순간에 골을 성공시켰으며 2010년 FIFA 월드컵 조별리그 대한민국전에서 곤살로 이과인 역시 이런 상황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또한 최근에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A매치가 이루어졌는데 경기종료 직전에도 같은 상황이 발생하여 에세키엘 라베시가 자유의 몸이 되었다.
  • 메시는 주장인 하비에르 마스체라노가 코파아메리카 8강 우루과이전에서 퇴장당하자 주장완장을 물려받고 경기에 임했다.
  • 세르히오 바티스타의 후임으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 된 알레한드로 사베야감독은 메시를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 임명했다.[8]
  • 아르헨티나코스타리카가 평가전을 갖게 되자 경기종료 이후 코스타리카 선수들은 메시에게 싸인을 받으려 몰려들었다.
  • 아르헨티나스위스가 평가전을 갖게 되자 스위스의 필립 센더로스는 메시의 유니폼을 차지하기 위해 친분이 있는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통해서 메시와 연결을 시도했다. 메시는 이 연결을 흔쾌히 응했으며 아르헨티나와 스위스의 평가전이 아르헨티나의 3-1 승리로 끝난 이후 메시는 다른 모든 스위스 선수들과의 유니폼 교환을 거절한 뒤 필립 센더로스와 유니폼을 교환했다.[9]
  • 2012년도 챔피언스리그 16강 레버쿠젠과의 2차전에서 메시는 놀라운 활약을 선보였다. 1차전에서 이미 레버쿠젠을 3-1로 승리한 바르셀로나는 너무나 쉽게 레버쿠젠을 상대하며 7-1이라는 기록적인 점수로 승리했다. 첫골을 먹히고 난 후 레버쿠젠의 수비수들은 전의를 상실하였고 수비수들의 능력은 급격히 떨어졌다.중요한 것은 이 경기에서 메시 혼자 5골을 넣었다는 점인데 이는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한 경기에 혼자 넣은 최다득점으로 기록되었다. 또한 이 경기를 관람하고 있던 웨인 루니는 "이건 장난이다 나에게 그는 최고선수"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10]
  • FC바르셀로나는 정식 훈련시간이 끝나면 선수들끼리 각자 포지션을 아무렇게나 정해서 장난을 치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이 장난을 치는 과정에서 메시에게 골키퍼를 시켰는데 메시의 선방능력이 뛰어나서 화제가 되었다.[11]
  • 2014년 FIFA 월드컵 남아메리카 지역 예선에서 꾸준히 득점을 올려서 스위스브라질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달성하여 국가대표에서는 바르셀로나 FC에비해 활약이 저조하다는 여론을 잠재웠다. 특히 남아메리카 지역 예선에서 메시는 11차전까지 8골을 기록하며 루이스 수아레스와 공동2위를 달리고 있다.
  • 11월 2일 메시의 여자친구인 안토네야 로쿠소가 스페인 바르셀로나 캄프누 경기장 근처의 병원에서 건강한 아들을 출산했다. 메시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된 것 같다”며 “내 아이가 태어났다. 이런 선물을 주신 데 대해 신께 감사드린다”며 기쁨을 표현했다. 메시는 이에 그치지 않고 FC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유아용으로 따로 제작한 후 자신의 등번호를 세긴 뒤 이름을 티아고라 새겼다. 메시의 아들 이름은 '티아고 메시' 이며 아이가 태어난 시간은 오전 2시이다.
  • 2013년 2월 6일 스웨덴과의 평가전에서 후반 인저리타임이 시작되기 직전 FC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은 관중이 난입해서 메시를 포옹하고 도망쳤다.[12]
  • 2013년 3월 26일 2014년 FIFA 월드컵 남아메리카 지역 예선에서 볼리비아와의 경기를 치르던 도중 구토 증세를 보였으며 경기가 종료되자마자 병원응급실에 실려갔다. 다음날 회복되자 팬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 발롱도르를 암만 타봐야 FIFA 월드컵 우승을 못한다고 신세한탄을 하고 이 과정에서 눈물도 많이 흘렸다. 사실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은 21세기 들어와서 3번의 대회 모두 오직 감독 한 사람 때문에 팀이 좌절했다. 2002년에는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만 편애해서[13] 팀을 망친 마르셀로 비엘사, 2006년에는 8강 독일전에서 홈텃세를 당하는 와중에 어이없는 선수교체[14]로 팀을 좌절시킨 호세 페케르만, 2010년에는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축구감독인 디에고 마라도나 때문에 아르헨티나는 전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선수진을 이끌도고 월드컵 우승을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메시는 결국 지금까지 받은 발롱도르 4개 모두 반납해도 좋으니 제발 월드컵 우승 한개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15]

주석 [편집]

  1. 메시, 연수입에서도 베컴 넘어…지난 해 504억 '대박'
  2. Argentina 1 Nigeria 0: match report (영어)”, 《Daily Telegraph》, 2010년 6월 12일 작성.
  3. Argentina 4 South Korea 1: match report (영어)”, 《Daily Telegraph》, 2010년 6월 1일 작성.
  4. 16분출전 리오넬 메시, '위약금 3억' 물었다
  5. 스포츠조선
  6. 메시 “퍼거슨 감독, 테베스와 결별 후회할 것”
  7. 메시 "대표팀 감독은 바티스타로"
  8.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87309
  9. 스위스 센더로스, '머리 썼더니' 메시 유니폼 득템
  10. 메시 5골 대폭발, 바르셀로나 레버쿠젠 7-1 대파 '루니도 입이 떡'
  11. http://www.ajnews.co.kr/view_v2.jsp?newsId=20120313000552
  12. "메시가 너무 좋아요"
  13. 잉글랜드는 아르헨티나전에서 이 사실을 철저하게 이용했다.
  14. 에르난 크레스포와 후안 로만 리켈메를 아무 이유없이 벤치로 불러들였다.
  15. 4년 연속 메시 "월드컵과 바꾸고 싶다"

바깥 고리 [편집]

이 전
잉글랜드 웨인 루니
FIFPro 올해의 영 플레이어
2006, 2007, 2008
다 음
  
이 전
포르투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FIFPro 올해의 스페셜 영 플레이어
2007, 2008
다 음
 아르헨티나 세르히오 아게로 
이 전
포르투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UEFA 챔피언스리그 최다 득점자
2008-09, 2009-10, 2010-11, 2011-12
다 음
  
이 전
포르투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
2009
다 음
 아르헨티나 디에고 밀리토 
이 전
포르투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유러피언 골든슈
2010, 2012
다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