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넬 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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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넬 메시
Messi in Germany and Argentina face off in the final of the World Cup 2014 -2014-07-13 (24).jpg
개인 정보
전체 이름 Lionel Andrés Messi
국적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출생 1987년 6월 24일(1987-06-24) (27세)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산타페 주 로사리오

169cm
포지션 중앙 공격수
클럽 정보
현 소속팀 바르셀로나
등번호 10
청소년 클럽
1995-2000
2000-2003
뉴웰스 올드 보이스
바르셀로나
클럽1
연도 클럽 출장수 (골)
2003-2004
2004-2005
2004-
스페인 바르셀로나 C
스페인 바르셀로나 B
스페인 바르셀로나
0100(5)
0220(6)
2770(243)
국가대표팀2
2004-2005
2007-2008
2005-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U-20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U-23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0160(11)
0050(2)
0930(42)

1성인 클럽 출장수와 골은 정규 리그 기록만 세며,
2014년 5월 17일 기준입니다.
2국가대표팀의 출장수와 골은
2014년 7월 13일 기준입니다.

리오넬 안드레스 메시 (Lionel Andrés Messi, 1987년 6월 24일 ~ )는 아르헨티나축구 선수이다. 그는 이탈리아 계열이며, 그의 증조부 안젤로 메시는 이탈리아인으로서 19세기 말 아르헨티나로 이주해왔다. 메시의 애칭은 레오다. 그외에도‘살아있는 전설’, '메시아'로 불리며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로 꼽힌다. 아르헨티나 산타페 주 로사리오에서 태어난 메시는 현재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바르셀로나의 선수이며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이다. 호날두,드록바,박주영과 함께 신계이다.


메시는 어릴 때부터 주목받았는데 2005년부터 2008년까지 3년 연속 FIFPro와 월드 사커 매거진 최우수 유망주로도 뽑힌 바 있다. 수 차례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후보에 올랐다가, 2009 발롱도르와 2009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며, 세계 최고 선수 반열에 올랐으며, 22세의 나이에 최다 득표로 발롱도르 (Ballon d'Or) 수상자와 FIFA 올해의 선수 수상자로 선정 되었다. 그 후로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이 통합 된 후, 연속해서 2010, 2011, 2012 FIFA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등극 하였으며, FIFA 발롱도르 4회 연속 수상의 기록을 세우고 있다. 발롱도르를 3회 수상한 선수는 크루이프, 미셸 플라티니, 마르코 판 바스턴이고, 이 중 3년 연속 수상은 미셸 플라티니가 유일하다. 메시는 이로써 축구 역사상 최초로 발롱도르를 4회, 4연속으로 수상한 현존 하는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이다.


"1986년의 나보다 메시가 더 뛰어나다. 메시는 마라도나-펠레 논쟁을 끝낼 수 있는 선수이다. 그 누구도 메시와 비견될 수 없을 뿐더러, 그가 하는 것의 40%를 하는 선수조차 없다."
- 마라도나, 스페인의 잡지 《스포르트》에서의 인터뷰

마라도나와 갈리아니 이외에도 세계 각국의 축구 관계자들, 감독들, 선수들, 언론인, 심지어 다른 종목의 운동 선수들과 정치인들까지 메시를 추켜세운다. 한 예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콜로라도 라피즈로부터 유니폼을 선물받았는데 등번호가 10번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바로 "메시와 같은 번호구나!"라고 말하며 기뻐한 경우가 있다. 매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은 메시의 유니폼과 자신의 유니폼을 교환하기 위한 쟁탈전을 벌이는데, 2012년 UEFA 챔피언스리그 바르셀로나갈라타사라이의 경기에서 하프타임에 갈라타사라이의 선수들이 메시의 유니폼을 가지려고 싸운 사례도 있다.


메시는 어린 나이부터 축구를 시작했으며 FC 바르셀로나가 그의 잠재력을 일찍부터 발견했다. 바르셀로나가 그의 성장 호르몬 장애를 치료해줄 것을 약속함으로써 그는 뉴웰스 올드 보이스 유스팀을 떠나 2000년 그의 가족과 함께 유럽으로 이주했다. 2004–05 시즌 데뷔로, 그는 라 리가 최연소 선수 기록을 세웠으며 또한 최연소 리그 골도 기록했다. 메시가 데뷔한 해에 FC 바르셀로나는 프리메라리가에서 우승했고, 다음 해인 2006년에는 프리메라리가와 UEFA 챔피언스리그 더블을 달성했다. 메시가 19살이 된 2006–07 시즌부터 메시가 독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는 정규 주전멤버가 되었고, 엘 클라시코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으며 리그 26경기에서 14득점을 기록했다. 2008–09 시즌에 메시는 38골을 기록하며 바르셀로나의 트레블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 결과로서 2009년 발롱도르, 2009년 유럽 올해의 선수상, 2009년 FIFA 올해의 선수, 베스트 11에 모두 선정되는 등 축구와 관련된 대부분의 상을 거머쥐며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2009–10 시즌에는 더 향상된 경기력을 선보이며 53경기 47골 14도움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했다. 이는 호나우두가 바르셀로나 역대 한시즌 최다골을 세웠던 골 기록과 동률이었으며 그 많은 득점 중 페널티킥은 단 하나에 불과했다. 또한 2012년 챔피언스 리그 8강 2차전에서 AC밀란을 상대로 2골을 넣어서 56점이 되었는데 게르트 뮐러가 1972-73 시즌에 달성한 한시즌 최다득점기록인 55점을 돌파했으며 시즌을 마무리하는 동안 총 73골 29어시스트로 유럽 역사상 최초 한시즌 공격포인트 100 이상을 기록하였으며, 펠레의 75골 기록을 넘어, 게르트 뮐러가 세운 한해 최다골 기록인 85골을 뛰어 넘어 2012년 한해 동안 무려 91골을 터트리며 전무후무한 세계 신기록을 작성 하였다.

2011-12 시즌에 메시는 축구계의 각종 기록들을 갈아치웠다. 또한 메시는 2009년 부터 2012년까지 4년 연속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에 올랐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 통산 역대 득점 2위 이다.

메시는 2005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결승전의 두 골을 포함 총 여섯 골을 기록하여 득점왕에 올랐다. 그 직후 그는 아르헨티나 성인 국가대표팀의 일원이 되었다. 2006년 메시는 월드컵에서 뛴 최연소 아르헨티나 선수가 되었고,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의 경기에서 후반 30분에 교체 투입되어 후반 43분에 골을 넣는 등의 활약으로 아르헨티나의 6-0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다음 해에는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8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그의 성인 국가대표 경력 중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한때 스페인에서 국가 대표팀의 보강을 위해 메시의 귀화를 시도한 바 있으나 메시는 자신의 장애를 해결해 준 스페인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조국인 아르헨티나를 버릴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리오넬 메시는 주장으로써 2014 FIFA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며, 브라질 월드컵 결승에 진출 하였으나, 아쉽게 독일에게 패배 하였다. 이 대회에서 메시는 4경기 연속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 되는 등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으며, 7경기 4골 1도움을 기록 하며 2014 FIFA 월드컵 득점 3위, 월드컵 최우수선수상인 골든볼을 수상 하였다.

리오넬 메시는 UEFA 챔피언스리그 통산 득점 역대 2위, UEFA 챔피언스리그 4년 연속 득점왕, UEFA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 단일 시즌 최다골 (60경기 73골), 단일 시즌 최다 공격포인트 (60경기 73골 29도움, 102공격포인트), 한해 최다골 (69경기 91골), FIFA 발롱도르 4년 연속으로 수상, 월드컵 4경기 연속 맨 오브 더 매치, 월드컵 준우승, 월드컵 최우수선수 골든볼 수상 등 살아있는 전설이자,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이다.

FC 바르셀로나[편집]

메시는 만 16세 145일 째 되는 날인 2003년 11월 16일FC 포르투와의 경기에서 비공식적인 첫 1군 경기를 가졌다.

2004-05 시즌[편집]

2004년 10월 16일, 그는 RCD 에스파뇰과의 경기에 출전함으로써 첫 번째 리그 경기에 출장했다. 이것은 그가 17세 114일 째 되는 날이었는데, 이로써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뛰었던 역사상 세 번째로 어린 선수가 되었고, 프리메라리가에 출전한 가장 어린 선수가 되었다. (이 기록은 팀 동료인 보얀 크르키치에 의해 2007년 9월 새로이 경신되었다.) 그가 바르셀로나에서 기록한 최초의 1군 경기 골은 2005년 5월 1일 알바세테와의 경기에서 터졌다. 그 당시 메시는 17세 10개월 7일의 나이였고, 이것은 라 리가에서 득점한 바르셀로나 선수중 가장 어린 나이였다. (이 기록은 역시 2007년 보얀에 의해 다시 깨졌다. 보얀의 그 골은 메시가 어시스트 한 것이었다.)

2005-06 시즌[편집]

9월 16일, 바르셀로나는 메시에게 1군 선수로서의 연봉을 지급할 것을 약속하는 계약을 2014년 6월까지 연장했다. 메시는 9월 26일에 스페인 시민권을 획득했고, 마침내 스페인 1부리그 경기에서 데뷔할 수 있었다. 그 이전엔 바르셀로나가 비유럽권 선수 할당(non-EU quota)을 모두 채운 상태였기 때문에 메시가 경기를 뛸 수 없었다. 메시의 첫 번째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는 9월 27일 우디네세와의 경기였다. 그가 보여준 볼 앞에서의 침착함과 호나우지뉴와의 패싱 조합을 본 캄프 누의 팬들은 메시가 교체 될 때 기립박수를 보냈다.

2006-07 시즌[편집]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뛰고 있는 메시 (2007년)

메시는 첼시FC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훌륭한 플레이를 선보이며 주전 자리를 확고히 했다. 그러나 11월 12일 레알 사라고사와의 경기에서 메시는 중족골 골절을 입는 부상을 당하여 그 후로 3개월 간을 뛰지 못하였다. 아르헨티나에서 회복과정을 거친 뒤 그는 2월 11일 라싱 산탄데르와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로 경기장에 돌아왔다. 프랑크 레이카르트 감독은 메시의 출전 시간을 점진적으로 늘려가며 그의 완전한 회복을 기다렸다. 한 달 후인 3월 10일에 있었던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그는 부상 후 처음으로 풀타임 출전했다. 메시는 또한번 엘 클라시코에서의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이 경기에서 메시는 해트트릭을 기록함으로써 10명이 뛰고 있는 상황이었던 바르셀로나에게 3-3 무승부를 안겨 주었다. 세 골 모두 동점골이었으며 마지막 세 번째 골은 후반 추가시간에 터진 것이었다. 이로써 메시는 이반 사모라노(레알 마드리드 소속, 1994–95 시즌)와 바르셀로나의 호마리우(1993–94 시즌)에 이어 세 번째로 엘 클라시코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또한 이것은 엘 클라시코에서 나온 득점 중 가장 어린 선수의 득점이기도 했다. (정규시즌 기준)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그는 더 자주 득점을 기록했는데, 그의 리그 골 열네개 중 열한개는 마지막 열세 경기에서 터진 것이었다.

메시가 헤타페전에서 마라도나를 연상시키는 골을 넣기 직전의 모습

메시는 또한 마라도나의 가장 유명한 골들과 거의 흡사한 득점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새로운 마라도나"라는 별명이 헛된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4월 18일, 메시는 헤타페와의 코파 델 레이 준결승전에서 두 골을 기록했는데, 그중 한 골은 1986년 FIFA 월드컵에서 마라도나가 잉글랜드를 상대로 넣은 골('세기의 골'이라고도 일컬어진다)과 매우 비슷했다. 세계 축구 언론은 이것을 두고 마라도나와 비교하며 대서특필했고, 스페인 언론은 메시에게 "메시도나(Messidona)"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는 21년 전 마라도나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60미터를 달렸고, 똑같이 여섯명의 선수를 제쳤으며(골키퍼 포함), 거의 유사한 위치에서 골을 넣었고, 코너 깃발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경기 후 열렸던 기자 회견에서 메시의 팀 동료인 데쿠는 이렇게 말했다: "레오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2007-08 시즌[편집]

2007–08 시즌이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메시는 일주일에 다섯 골을 넣기도 하는 활약을 보여 주었다. 올림피크 리옹과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득점 한 후 며칠 지나지 않은 9월 22일 그는 세비야를 상대로 두 골을 넣는다. 그리고 9월 26일 바르셀로나가 4-1로 레알 사라고사를 꺾은 경기에서 메시는 두 골을 더 추가했다.

그는 2007년 FIFPro가 선정한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포함되었다. 스페인 지역의 신문인 마르카의 설문조사 결과 77%의 투표자가 메시를 세계 최우수 선수로 꼽았다. 바르셀로나 기반의 신문인 엘 문도 데포르티보스포르트의 칼럼니스트들은 발롱도르가 메시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프란츠 베켄바워요한 크라위프도 이에 동조했다. 호나우지뉴, 사뮈엘 에토, 프랑크 레이카르트, 빅토르 페르난데스, 베른트 슈스터, 구티, 라울, 잔루카 참브로타, 프란체스코 토티, 안토니오 카사노,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디에고 마라도나펠레 등의 축구계 유명인사들도 메시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축구 선수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2월 27일 발렌시아의 경기에 출전함으로써 메시는 바르셀로나 선수로서 공식 100번째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메시는 3월 4일 셀틱과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근육부상을 얻어 6주동안 출전하지 못했다. 이 경기에서 교체되면서 메시는 눈물을 보였다. 이러한 종류의 부상이 발생한 것이 세 시즌 동안 벌써 네 번째였다.

2008-09 시즌[편집]

UEFA 챔피언스리그 2008-09시즌 결승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캐릭을 상대하고 있는 메시.

호나우지뉴가 클럽을 떠나면서 메시는 그의 등번호 10번을 물려받았다. 2008년 10월 1일 샤흐타르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앙리와 교체된 메시는, 7분만에 두 골을 성공시키면서 0-1로 뒤지고 있던 팀에게 2-1의 역전승을 선물했다. 바로 다음에 있었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선 프리킥 득점과 도움 하나를 기록하면서 팀의 6-1 대승을 이끌었다. 세비야와의 경기에서는 23미터 거리에서 발리슛을 성공시켰고, 골키퍼를 돌아 드리블해 들어간 후 각도가 없는 곳에서 한 골을 추가로 성공시키기도 했다. 바르셀로나가 2-0으로 승리한 전반기 엘 클라시코에서 메시는 두 번째 골을 넣었다. 연말에는 678점을 얻음으로써 2008년 FIFA 올해의 선수 시상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메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코파 델 레이 경기에서 2009년 첫 번째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팀은 이에 힘입어 3-1로 승리했다. 2009년 2월 1일에있었던 라싱 산탄데르전에서는 팀이 1-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후반 교체 투입되었고, 두 골을 성공시켜 팀의 1-2 역전승을 이끄는 훌륭한 플레이를 보였다. 그중 두 번째 골은 바르셀로나의 통산 5000호 리그 골이었다. 6-0으로 승리한 리가 28라운드 말라가와의 경기에서는 2008-09 시즌 통산 자신의 서른번째 골을 터뜨렸다.

"메시의 발에 닿으면 모든 것이 황금으로 바뀐다."
- 2009년, 조제 무리뉴

시즌이 종반부에 다다른 시기에 열린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의 엘 클라시코에서, 메시는 환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며 두 골을 득점, 팀의 2-6 대승을 도왔다. 이것은 레알 마드리드에게는 1930년 이후로 경험한 가장 큰 패배가 되었다. 골을 넣을 때마다 메시는 카메라로 달려가 유니폼을 들어올려 그 속에 입은 티셔츠를 보여주었다. 이 티셔츠에는 'Síndrome X Fràgil(카탈루냐어로 프래자일 엑스 증후군이라는 뜻)'라는 단어가 새겨져있었는데, 이는 자신이 후원하는 이 증후군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메시는 또한 첼시 FC와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터진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골에도 기여를 했고, 이로써 팀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으로 이끌었다. 그는 5월 13일에 열린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하여 팀의 4-1 승리를 도왔고, 생애 첫 코파 델 레이 우승컵을 들었다. 그는 팀이 리그까지 우승함으로써 더블을 달성하는 것에도 일조했다. 월 27일, 메시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후반 70분 팀의 두 번째 골을 성공시켰고, 9득점으로 챔피언스리그 최다득점자의 자리에 올라섰다. 결국 이로써 바르셀로나는 레이, 리가, UEFA 챔피언스리그의 우승컵을 전부 들어올리는 위업을 달성했다. 스페인 클럽이 트레블을 달성한 것은 금회가 처음이었으며 전유럽 클럽이 트레블을 달성한 것은 이것을 포함하여 딱 5번뿐이었다. 이 공로로 메시는 2009년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 올해의 유럽 선수상을 휩쓸게 되었다.

2009-10 시즌[편집]

메시가 2009년 여름 캄프 누에서 열린 맨체스터 시티와의 호안 감퍼 트로피 대회에서 플레이하는 모습.

2009 UEFA 슈퍼컵에서 우승한 직후, 바르셀로나 감독 주제프 과르디올라는 그가 두 눈으로본 선수 중 메시가 가장 뛰어난 선수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메시가 일단 뛰기 시작하면 그를 막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는 엄청난 속도를 유지하면서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유일한 선수예요."

"그는 압도적으로 세계 최고의 선수입니다.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보는 것 같아요. 그는 우리가 만드는 모든 실수를 자신의 기회로 가져갑니다."

- 아스널이 바르셀로나에 4 - 1로 패배한 후에 가진 아르센 웽거 아스널 감독의 인터뷰.

9월 18일, 메시는 바르셀로나와 재계약에 합의했다. 새 계약기간은 2016년 까지로 정해졌으며, 바이아웃은 2억 5억만 유로로 책정되었다. 또한 약 950천만 유로의 연봉을 받게 되면서 팀 동료인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함께 프리메라리가 최고 연봉자로 올라섰다. 4일 후인 9월 22일 열린 라싱 산탄데르전에서 메시는 두 골을 넣고 한 골을 어시스트하면서 바르셀로나의 4:1 승리에 기여, 팀과의 재계약 체결을 자축했다. 시즌 첫 유럽 대항전 골은 9월 29일 디나모 키예프전에서 터졌다.


메시는 12월 1일 열린 2009년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전년도 수상자였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473표 대 233표라는 역대 최대 득표차로 누르고 상을 거머줬다. 그 직후에 있었던 프랑스 풋볼지와의 인터뷰에서 메시는 "이 상을 제 가족들에게 바칩니다. 그들은 제가 필요로 할 때 늘 함께 있어주었고 제가 하는 일들에 대해 저보다 더 큰 열정을 가지고 지켜봐 주었어요." 라고 말했다. 12월 19일 아부다비에서 열린 2009년 FIFA 클럽 월드컵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 클럽 에스투디안테스를 상대로 메시는 연장전에서 극적인 역전골을 성공시키며 팀의 2009년 6관왕 달성을 이끌었다. 이틀 후, 그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사비 에르난데스, 카카,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를 제치고 FI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아르헨티나인으로서는 최초의 수상이었다. 2010년 1월 10일, 메시는 테네리페 전에서 시즌 첫 해트트릭을 달성했고, 1월 17일에는 세비야 전에서 그의 클럽 기록 통산 100골을 이뤄냈다.

"메시는 인간이 아니다. 거짓말이 아니고 사실이다. 볼과 함께 그러한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를 본 적이 없다. 상대를 완전히 무력화시킨다. 그것도 정말 쉽게 말이다. 내가 아무리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도 결국 안 될 것이다. 그는 언제나 한발 나아갈때마다 볼을 터치한다. 그가 아스날을 상대로 4골을 넣은 후 난 스스로 기립하여야 한다고 중얼거렸고 결국 기립박수를 쳤다. 정말 놀라웠다. 화요일 아스날과의 경기가 끝나고 그를 보러 체인징룸에 갔다. 그런데 그가 나를 보고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왜? 무슨일인데?' 그 순간 난 그냥 웃어버렸고 룸을 나와버렸다. 그 상황에서 그한테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참 질기고 강한놈이다. 그는 지기 싫어하는 전형적인 파이터이다. 훈련에서 만약 그가 속한 팀이 지고 있으면 그는 볼을 가지고 모든 선수들을 제치고 동점골을 넣고야 마는 선수이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훈련하는 메시를 볼 기회가 있다. 그의 테크닉과 스피드는 나로썬 도무지 이해가 안될 정도로 완벽하다. 그의 플레이를 보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즐거움이다. "
- 2010년, 티에리 앙리

그리고 메시는 5게임에서 11골이라는 경이로운 골 행진을 이어갔다. 우선 말라가를 상대로 후반 48분 극적인 역전골을 일궈낸 그는 다음 경기인알메리아 전에서 두 골을 작렬, 팀을 패배 위기에서 구하고 2:2 동점으로 경기를 끝낼 수 있게 도왔다. 메시는 그에 그치지 않고 다음 라운드 상대 발렌시아를 상대로 또 한번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슈투트가르트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두 골을 넣으며 팀의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에 힘을 보탰다. 마지막으로 사라고사전에서 메시는 또다시 해트트릭을 기록, 바르셀로나 역사상 처음으로 리가 두 경기 연속 해트트릭 달성 선수가 되었다. 3월 24일 그는 오사수나전에 출장함으로써 개인 200경기 출전 기록도 세웠다.

4월 6일 FC 바르셀로나캄프 누에서 아스널과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을 치렀다. 니클라스 벤트네르의 선제골로 아스널에게 희망이 보이는 듯 했으나, 그 직후에 메시가 한 골을 넣으며 다시 경기를 원점으로 만들었다. 메시는 이에 그치지 않고 세 골을 더 넣는 믿을 수 없는 플레이를 펼치며 팀의 4:1을 이끌었다. 이것은 메시가 커리어 사상 최초로 네 골을 기록한 경기였으며, 동시에 클럽의 선수 역사에 있어 히바우두의 통산 골 기록을 넘어서게 된 경기였다. 4월 10일에는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하는 엘 클라시코에서 선제골을 넣어 팀의 2:0 승리에 기여했다. 3일 후인 5월 4일에도 테네리페를 상대로 두골을 뽑아냈다. 그는 리가 우승의 분수령이었던 세비야 전에서 32번째 골을 기록했고 리가 마지막 경기인 레알 바야돌리드전에서는 두 골을 넣으며 호나우두가 1996-97 시즌 세웠던 한 시즌 클럽 최다골이었던 34골과 동률을 이루며 시즌을 끝냈다. 이로써 메시는 생애 첫 리가 최다득점자가 되었고 2008-09시즌에 이어 2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최다 득점자가 되는 영예를 안았다.

2010-11 시즌[편집]

UEFA 챔피언스리그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뛰고 있는 메시

리오넬 메시는 여러차례의 수상을 받았다.

1. 세계 클럽 선수권대회 골든볼

"만약 지금 축구의 신이 있다면 그 신의 이름은 바로 리오넬 메시일 것이다."
- 사무엘 에투

2. UEFA 유럽 최우수 선수상

"메시는 그만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나는 나만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경기를 풀어나가고 나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 나는 또한 그처럼 빅 클럽에서 뛰고 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다르다. 그러나 지금, 그가 바로 최고다."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2011년 9월 골닷컴과의 인터뷰에서

3. 2010 FIFA 발롱도르상, FIFA 베스트 일레븐

4.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5. 골든 부트상

6. K리그 올스타전 MOM 상

리그에선 33경기 31골을 넣는 활약을 하였으나 라이벌팀 호날두의 34경기 40골 활약으로 인해 피치치를 수상하지는 못했다.

2011-12 시즌[편집]

FIFA 클럽 월드컵 2011 우승 세레모니를 펼치고 있는 바르셀로나와 메시

2011-12 시즌 동안 메시는 축구계의 각종 역사를 갈아치웠다. 소속되어 있는 FC 바르셀로나는 주전들의 줄부상으로 인한 공격진-수비진 라인업의 붕괴, 선수들의 전체적인 경기력 난조 등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선수들이 감독 펩 과르디올라의 새로운 3-4-3 전술 실험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서 승점을 잃어 레알 마드리드에게 리그 우승을 넘겨주게 되었다. 이 같은 악재들 속에서도 메시는 전체적인 경기를 플레이메이킹함과 동시에 많은 기록을 갈아치웠고, 축구계에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내었다. 메시가 이 한 시즌 동안 뒤바꾼 축구계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1. 전 세계 축구 역사상 한해 최다골 (69 경기 91골)

2. 전 세계 축구 역사상 한 시즌 최다골, 최다공격포인트 (60경기 73골 29도움, 102공격포인트)

3. 프리메라리가 역사상 한 시즌 최다 득점, 최다 공격포인트 (36경기 50골 16도움)

"사람들이 나와 메시를 비교해주어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메시는 현재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선수다."
"메시는 말도 안 된다. 그는 역사상 최고의 선수다."
- 웨인 루니

4. 프리메라리가 역사상 최초 리그 3시즌 연속 30골 이상 득점

"메시의 플레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즐겁고 감사한 일이다"
- 잭 윌셔

5. 프리메라리가 역사상 최다연속골 (10경기)

"유럽 챔피언스 리그는 메시를 위한 파티인가? 아니면 메시는 플레이스테이션(게임) 속 사나이인가."
- 라다멜 팔카오
FIFA 클럽 월드컵 알사드 SC전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는 메시

6. 프리메라리가 역사상 한시즌 최다해트트릭(8회, 총12번)

7. 프리메라리가 역사상 한시즌 홈경기 최다골 (35골)

8. 프리메라리가 역사상 최연소 150골 돌파(24세 270일)

9. 바르셀로나 역사상 최단시간 해트트릭 (17분)

10.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최다 해트트릭 (3회) - 고메즈,오웬,인자기와 타이

11.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한경기 최다골 (5골)

12.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한시즌 최다해트트릭(2회) - 고메즈와 타이

13.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최다득점왕 (4회) - 게르트 뮐러와 타이

14.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최다연속득점왕 (4시즌 연속)

15.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토너먼트 최다골 (27골)

2012-13 시즌[편집]

이 시즌 FC바르셀로나는 펩 과르디올라와 재계약에 실패하고 분위기가 뒤숭숭한 상태로 시작한다. 당시 후임 감독은 과르디올라의 절친이자 수석코치 티토 빌라노바가 이끌게 된다. 하지만 빌라노바의 바르셀로나는 시즌 전부터 과르디올라 시절보다 전력이 떨어질것이라는 전문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과거 압도적인 내용으로 승리하던 때와 달리 이 시즌에는 힘겹게 이긴 경기가 매우 많았다. 전방 압박 실종, 주전들 노쇠화 등 여러 이유가 있다. 이 시즌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4강진출은 온전히 메시 혼자의 힘으로 달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이 시즌 메시는 최고의 활약을 펼친다.(시즌 막판 부상이 너무나도 아쉽다). 메시의 활약중 가장 대표적인 경기는 이와 같다. 2013년 2월 20일 바르셀로나는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하향세를 타고 있던 AC밀란을 만나 손쉽게 승리할 것이라는 전문가의 예상과 달리 2대0으로 일격을 당한다. 이 경기에서 AC밀란 수비진에게 완전히 고립당한 메시는 언론으로부터 고공폭격을 당한다. 하지만 3월 12일 누캄프에서 열린 16강 2차전에서 메시의 기적과 같은 활약으로 인해 바르셀로나는 4대0으로 승리, 8강 티켓을 극적으로 따낸다. 이 경기가 메시의 인생에 남을 경기중에 하나다. 메시의 진가는 PSG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도 나타난다. 4월 2일 열린 1차전 경기에서 메시는 전반전 한골을 넣고 햄스트링 부상으로 경기를 뛸 수 없게 된다. 보통 햄스트링의 회복기간은 3~4주 정도 소요된다. 4월 10일 누캄프에서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이 열린다. 바르셀로나가 1대0으로 뒤지고 있어 탈락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햄스트링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메시가 감독 지시를 받고 그라운드에 나선다. 메시가 투입되자마자 메시의 패스를 받은 페드로의 동점골로 극적으로 4강에 진출한다. 이 경기 또한 왜 메시인지 보여주는 경기이다. 메시가 이 시즌 동안 바꾼 축구계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1. 리그 21경기 연속골 (세계기록) 2. 골든슈 3회 수상 (세계기록)

2013-14 시즌[편집]

메시는 3년 연속 UEFA 최우수 선수상 후보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프랭크 리베리와 함께 선정되었다. 리베리가 36투표를 얻어 상을 탔으며 메시는 14표로 2위를 차지한다, 반면 호날두는 3표로 3위로 마친다. 2013년 8월,메시는 2013-14 라리가 시즌 개막전 레반테와의 상대에서 2골과 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고 바르셀로나는 그 경기에서 7-0으로 승리하게 된다. 8월 28일, 바르셀로나는 11번째 스페인 슈퍼컵 타이틀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로 따낸다. 9월 1일, 메시는 발렌시아를 상대로 그의 커리어 23번째 해트트릭을 달성하게된다. 이 골로 그는 원정 100번째 골을 넣은 선수가 되었고, 라리가 역사상 원정 최다골의 주인공이된다. 이 골로 그는 퀴니의 219골을 뛰어넘어 라리가 역사상 득점 6위가 된다. 2013년 9월 18일, 메시는 바르셀로나의 아약스와의 챔피언스리그 1차전에서 그의 커리어 24번째 해트트릭을 달성하게 된다. 그 경기는 4-0으로 끝나며, 그 골로 그는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62골로 라울에 뒤를 이어 통산 득점 순위 2위에 등극하게 된다. 그리고 모든 유럽 대회 득점 순위에서도 63골로 4위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이 해트트릭과 더불어 메시는 챔피언스리그 사상 4번째 해트트릭을 달성한 첫번째 선수가 된다. 11월 10일 메시는 4-1로 이긴 레알 베티스전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게되고 이부상은 2014년 1월까지 이어진다. 이 부상은 그시즌 그가 당한 세번째 부상이다. 2014년 2월 8일, 메시는 코파델레이 헤타페전에서 부상을 회복하고 돌아온다. 2월 13일, 그는 2013 발롱도르에서 2위를 차지하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1위를 차지한다. 2월 15일 메시는 라요 바예카노전에서 2골을 넣으며 팀은 6-0으로 이겼으며 228골로 라리가 역사상 득점랭킹 3위에 오르게 된다. 2014년 3월 16일, 메시는 7-0으로 승리한 오사수나전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하게 되며 파울로 알칸타라를 제치고 비공식 경기 포함 바르셀로나 역사상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On 3월 23일, 그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레알마드리드와의 엘클라시코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게 되며, 디스테파노가 가지고 있던, 엘클라시코 최다골 기록을 경신하게되며, 팀은 4-3으로 이겼다. 이골은 또한 그가 라리가 통산 득점 2위에 오르게 해준다. 메시는 그의 클럽 시즌을 한개의 트로피로 끝낸다. 바르셀로나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이어 라리가 준우승을 하게되며, 또한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인해 탈락하게 된다. 바르셀로나는 또한 코파델레이 결승전에서 라이벌 레알마드리드에게 패하게 된다. 메시는 그 시즌 모든 대회 41골과 15개의 어시스트로 마무리하게 되지만, 그의 라리가 28골은 31골을 기록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때문에 피치치를 수상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2014년 5월 16일, 메시는 바르셀로나와 재계약에 동의한다.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청소년 대표팀와 성인 대표팀 초반[편집]

2004년 6월 파라과이와의 친선 경기에 출전하면서 아르헨티나 U-20 대표팀에 데뷔했다. 이 경기에서 메시를 출전시킬 때 아르헨티나는 3-0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이였는데 메시가 출전한 후 경기결과는 8-0으로 아르헨티나가 대승을 거두었다. 2005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아르헨티나 대표로 출전하는 동안 골든볼(대회 MVP)와 골든슈(대회 득점왕)를 석권하면서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끌었다. 2005년 8월 17일에 열린 헝가리와의 경기에 선발 출전하면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무대에 데뷔하게 된다.

2006 FIFA 월드컵[편집]

리오넬 메시는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스쿼드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지만 나이가 너무 어려 출전 기회는 많이 잡지 못했고 하비에르 사비올라가 메시를 대신해서 월드컵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코트디부아르,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네덜란드와 함께 C조에 속해 있던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조별 예선 두 번째 경기인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전에서 팀이 압도적인 점수차이로 앞서 경기에 여유가 생기자 감독은 교체 투입시켰다. 메시는 그라운드에 올라오자마자 에르난 크레스포의 골을 어시스트했고, 15분 후에는 직접 골까지 터뜨렸다. 이로써 메시는 월드컵에 참여한 최연소 아르헨티나 축구 선수가 되었다.

2008년 하계 올림픽[편집]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브라질과의 준결승전 경기에 출전한 메시

리오넬 메시는 소속팀 FC 바르셀로나의 만류를 뿌리치고 2008년 하계 올림픽에 출전했다. 바르셀로나 측은 메시에게 올림픽의 출전을 불허하고 계속 리그 경기에서 뛰어줄 것을 요구했으나 메시는 FIFA를 방문하여 해명하고 올림픽에 반드시 출전하고 싶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했다. 결국 메시는 바르셀로나의 반대를 누르고 자신의 뜻대로 올림픽 축구종목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엔트리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바르셀로나에서 메시는 가장 중요한 선수였기 때문에 논란은 그 정도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메시는 자신의 대표팀 동료인 앙헬 디 마리아에게 연속해서 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큰 활약을 보여주었고 아르헨티나는 그의 활약에 힘입어 준결승전에서 브라질을 3-0, 결승전에서 나이지리아를 1-0으로 이기고 금메달을 획득하게 된다.

2010년 FIFA 월드컵[편집]

2010년 FIFA 월드컵 8강 독일과의 경기에서 뛰고 있는 아르헨티나와 메시
"다리가 3개 달린 줄 알았어요. 메시 반만큼만 축구했으면 좋겠어요."
- 기성용, 월드컵이 끝난 후

메시는 조별라운드 1차전인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 선발 출전했으나 상대 골키퍼인 빈센트 에니에아마의 선방들에 막혀 골을 기록하지는 못했다.[1] 조별라운드 2차전인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도 선발 출장했으며 아르헨티나의 모든 골(4골 가운데 3골은 곤살로 이과인이 기록한 득점(해트트릭)이었으며 나머지 1골은 대한민국박주영이 기록한 자책골이었다.)에 기여를 했다.[2] 또한 조별리그 3차전인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메시는 경고누적을 우려하여 결장한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를 대신하여 주장 완장을 착용한 채 경기에 임했고, 좋은 경기력으로 상대를 위협하면서 무득점에도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다.

"메시는 최고의 선수였다. 선수들이 경기 끝나고 '축구 하기 싫어졌다'고 할 정도였다. 워낙 훌륭한 선수라 막아낼 힘이 나지 않았다. 뭐 저런 선수가 있나 싶었다. 수비하려고 우르르 달려들면 옆으로 툭 패스하고 빠져들어가고… 참 영리한 선수였다."
- 조용형,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아르헨티나에 1-4로 패한 후

16강전에 진출하자 4년 만에 다시 만난 상대인 멕시코를 상대로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으며 카를로스 테베스에게 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테베스가 골을 넣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하지만 이 경기는 당시 오심 논란으로 화재가 되기도 했다. 테베스는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득점을 한 이후 주심을 쳐다봤고 주심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내릴것이라 생각했지만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오프사이드 판정이 내려지지않아 그때서야 기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정지된 화면으로 보면 메시에게서 공이 연결되는 순간 테베스는 완벽한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다.

이후 독일과의 4년만의 8강전 리턴매치에서 메시는 부진했고 수비의 중심이 되어야만 하는 월터 사무엘이 무릎 부상으로 결장했다. 독일에게 2골을 실점하며 0:2로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당시 감독이었던 디에고 마라도나는 승부수를 띄우려고 수비수인 니콜라스 오타멘디를 빼고 미드필더인 하비에르 파스토레를 투입시켰지만 오히려 2골을 더 실점하면서 독일에게 4:0으로 완패를 당하며 탈락하고 말았다. 전체슛팅 20:18 유효슈팅 숫자는 7:6 으로 수치상으로는 대등하였으나 미드필드 지역을 완벽히 장악당하면서 완패를 한 것이다. 메시, 이과인, 디 마리아 3인방의 슛도 독일의 골키퍼에게 모두 막히면서 결국 영패를 당하고 말았다.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메시는 나름 분전했지만 결국 무득점으로 대회를 마쳤고 FIFA 월드컵 우승의 꿈 또한 4년 뒤로 미뤄야 했다.

2011년 코파 아메리카[편집]

201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볼리비아와의 경기에 출전한 메시

자국에서 개최한 2011년 코파 아메리카에 메시는 참가했다. 하지만 조별리그 첫 경기부터 세르히오 바티스타 감독이 출장시킨 선수들의 손발이 맞지 않아 전부다 따로 놀게 되어 결국 선제골을 내주었다. 하지만 교체 출장한 세르히오 아구에로가 만회골을 넣어 간신히 무승부로 경기를 종료했다. 선수들의 손발이 맞지 않는 상황은 2차전에도 계속되어 결국 콜롬비아와 또다시 무승부를 하고 말았다.

세르히오 바티스타 감독은 고심끝에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코스타리카전에서는 에베르 바네가를 제외하고 그 자리에 앙헬 디 마리아를 넣고 세르히오 아구에로를 선발로 출장시켰다. 그리고 그 두 선수, 세르히오 아구에로와 앙헬 디 마리아의 맹활약으로 코스타리카를 3-0으로 완파했다.

하지만 8강에서 만만치 않은 상대인 우루과이를 만났다.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는 코파아메리카 역대 우승횟수로서 1위와 2위를 다투는 팀이다. 경기는 초반에 우루과이의 디에고 페레스가 골을 넣은 뒤 아르헨티나의 곤살로 이과인이 골을 넣고 1-1이 되었다. 이후 시종일관 아르헨티나의 우세속에 난타전이 진행되었지만 우루과이에서 선수가 퇴장당해 아르헨티나가 잠시 숫적우세를 점했지만 하비에르 마스체라노가 퇴장당하면서 10대 10의 시합이 되었다. 아르헨티나는 리오넬 메시, 앙헬 디 마리아, 세르히오 아게로, 곤살로 이과인 등이 폭풍같이 슛을 퍼부었지만 이를 우루과이의 골키퍼인 페르난도 무슬레라가 다 선방해냈다. 우루과이는 개최국 아르헨티나에게 위협적인 장면을 수차례 허용하였지만 수비진과 뛰어난 선방능력을 자랑하는 골키퍼 페르난도 무슬레라 덕분에 경기를 승부차기까지 끌고 갔다. 승부차기에서 양팀 키커들이 모두 성공한 가운데 카를로스 테베스만이 유일하게 실축을 했고, 아르헨티나의 코파 아메리카 준결승 진출은 좌절되었다.

"오 하나님 맙소사, 저 사람을 보십시오! (천국) 사람들은 하늘에 리오넬 메시를 위한 별자리라도 만들어 줘야 합니다."
- 레이 허드슨, 2011년 포르투갈과 아르헨티나의 경기에서 메시의 어시스트를 보고

아르헨티나 국민들과 언론들은 메시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아르헨티나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이 좌절되자 비난을 퍼부었다. 사실상 공격형 미드필더의 역할로 경기에 출전했던 메시는 미드필더 역할의 한계를 드러냈고, 아르헨티나의 공격수들의 골 결정력 부족 또한 아르헨티나의 패배 요인이 되었다. 또한 선수들의 과도한 개인 플레이와 손발이 맞지 않는 팀 플레이, 전술 및 앙헬 디 마리아를 벤치멤버로 결정하여 소극적으로 활용한 점 등이 또 다른 패배의 요인이 되었다.

2014년 FIFA 월드컵[편집]

그러나 단지 감독만 알레한드로 사베야로 바꿨을 뿐인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메시는 완전히 FC 바르셀로나에서의 모습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4년 FIFA 월드컵 남아메리카 지역 예선에서 메시는 총합 8골로 곤살로 이과인의 9골에 이어 루이스 수아레스와 공동 2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 메시의 뛰어난 활약으로 칠레콜롬비아같은 남미의 내로라하는 팀들도 자신들의 홈에서 아르헨티나에게 패배를 기록했다. 2013년 8월 현재 아르헨티나는 7승 5무 1패로 대륙간 플레이오프 진출이 확정되었다.

알레한드로 사베야 감독은 메시를 위치상으로 아주 절묘하게 배치하여 메시가 자유롭게 플레이 할 수 있도록 프리롤을 부여 하였으며, 메시를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 하였으며, 상황에 따라 세컨드 스트라이커로도 기용 하였다.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와 프리롤을 부여 받아 자유롭게 움직이며, 플레이메이킹을 하였다. 특히 사베야가 메시에게 팀을 위한 요구사항이라는 게 네 마음대로 자유롭게 해봐였는데 메시는 진짜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활약을 펼치며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을 변모시켰다. 또한 그에 따라 아르헨티나는 16라운드 만에 본선 진출을 확정함과 더불어 피파 랭킹 역시 2위로 치솟았다.

F조 조별리그에서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상대로 자책골을 유도하였고, 특유의 멋진 드리블 돌파에 이은 왼발 슛팅으로 직접 1골을 넣어 팀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이란을 상대로는 90분간 혈투끝에 점수가 나오지 않자 후반전 추가시간때 패널티박스 밖에서 왼발 슈팅으로 1골을 성공시켰다. 또한 나이지리아전에서는 프리킥 포함해 2골을 넣는 맹활약끝에 나이지리아를 3대2로 이기고 F조에서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16강전에서는 스위스를 상대로 고전을 했으나, 메시는 연장후반 118분 앙헬 디 마리아에게 어시스트를 감행하였고 이 어시스트를 디 마리아가 침착하게 골로 성공시킴으로서 8강 진출에 기여하였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리오넬 메시는 조별리그부터 16강전까지 4경기 연속으로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다.

8강전은 벨기에를 상대로 경기를 펼쳤는데, 이 경기에서는 마루앙 펠라이니빈센트 콤파니 등 벨기에 선수들의 집중 마크를 받아 어려움에 봉착하였지만, 곤잘로 이과인의 결승골로 팀은 승리했다.

4강전에서는 네덜란드를 상대로 비를 맞으며 진행된 경기에서 양팀 모두 동일한 실력을 보여주는 바람에 승부차기까지 0-0 상태가 되었다. 이 경기에서도 메시는 네덜란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슈팅을 몇번 시도했지만 무위에 그쳤다. 하지만 세르히오 로메로의 놀라운 선방으로 아르헨티나는 승부차기끝에 승리하고 1990년 이후, 24년만에 결승에 진출하였다.

아르헨티나는 메시를 비롯해 공격수들의 부진으로 어렵게 결승에 진출하였고 공격에서와 다르게 견고한 모습을 보인 수비진과 최고의 활약을 보인 골키퍼 로메로가 아르헨티나 결승진출의 기징 큰 몫을 해냈다.

결승전에서는 독일을 상대로 정규 경기시간 0-0으로 마치고, 연장 후반 1실점하여 아쉽게 월드컵 우승을 놓쳤다. 초반 날카로운 움직임을 보였지만 골을 기록하지 못하였고, 연장 막바지에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 기회를 갖었지만, 기회를 무위로 날리며 준우승을 하였다.

아르헨티나는 대회 초반부터 메시의 공격력에만 의존하는 모습이었고, 메시 또한 16강전 부터 결승전까지 골 침묵을 보이며 결승에서도 무기력한 공격으로 대회를 마쳤다.

2014년 FIFA 월드컵 결승전 마츠 후멜스를 상대로 드리블 하고 있는 메시

하지만 메시는 주장으로써 이 대회에서 4경기 연속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 되는 등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을 월드컵 준우승으로 이끌었으며, 7경기 4골 1도움을 기록 하며, 2014 FIFA 월드컵 득점 3위, 월드컵 최우수선수상인 골든볼을 수상 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메시는 준결승전과 결승전 같이 중요한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했고, 특히 16강전 부터 결승전까지 4경기 연속 무득점으로 일관했기에 메시의 월드컵 골든볼 수상은 많은 자격 논란을 낳았다. 많은 사람들과 주요 축구계 인사들까지도 메시의 수상에 의문을 가졌고 FIFA 블래터 회장은 "메시가 이번 대회 최고의 선수로 선정된 것은 다소 놀라운 일이었다."라며 메시의 골든볼 수상이 놀랍다는 반응을 전했다.[3]

2014년 FIFA 월드컵이 끝난 뒤 고국으로 돌아온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을 마중을 나온 아르헨티나 대통령 크리스티나 키르치네르와 대통령을 보고 있는 메시 (좌)

국가대표 골 기록[편집]

날짜 장소 상대 점수 결과 대회
1 2006년 3월 1일 장크트 야콥 파크, 바젤, 스위스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2 - 2 2 – 3 친선 경기
2 2006년 6월 16일 벨틴스 아레나, 겔젠키르헨, 독일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6 - 0 6 – 0 2006년 월드컵
3 2007년 6월 5일 캄프 누, 바르셀로나, 스페인 알제리 알제리 2 - 0 4 – 3 친선 경기
4 2007년 7월 8일 메트로폴리타노 데 풋볼 데 라라 경기장, 바르퀴시메토,
베네수엘라
페루 페루 2 - 0 4 – 0 2007년 코파 아메리카
5 2007년 7월 11일 폴리데포르티보 카차마이 경기장, 푸에르토 오르다스,
베네수엘라
멕시코 멕시코 2 - 0 0 – 3 2007년 코파 아메리카
6 2007년 10월 16일 호세 파첸초 로메로 경기장, 마라카이보,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 2 - 0 2 – 0 2010년 월드컵 예선
7 2007년 11월 20일 엘 캄핀 경기장, 보고타, 콜롬비아 콜롬비아 콜롬비아 1 - 0 1 – 2 2010년 월드컵 예선
8 2008년 6월 4일 퀄컴 경기장, 샌디에이고, 미국 멕시코 멕시코 3 - 0 4 – 1 친선 경기
9 2008년 8월 7일 상하이 경기장, 상하이, 중국 코트디부아르 코트디부아르 1 - 0 2 – 1 2008년 하계 올림픽 축구 남자
10 2008년 8월 16일 상하이 경기장, 상하이, 중국 네덜란드 네덜란드 1 - 0 2 – 1 2008년 하계 올림픽 축구 남자
11 2008년 10월 11일 엘 모누멘탈,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우루과이 1 - 0 2 – 1 2010년 월드컵 예선
12 2009년 11월 11일 스타드 벨로드롬, 마르세유, 프랑스 프랑스 프랑스 1 - 0 2 – 0 친선 경기
13 2009년 3월 28일 엘 모누멘탈,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 1 - 0 4 – 0 2010년 월드컵 예선
14 2009년 11월 14일 비센테 칼데론 경기장, 마드리드, 스페인 스페인 스페인 1 - 2 1 – 2 친선 경기
15 2010년 9월 8일 엘 모누멘탈,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스페인 스페인 1 - 0 4 – 1 친선 경기
(아르헨티나 독립 200주년 기념)
16 2010년 11월 18일 칼리파 국제 경기장, 도하, 카타르 브라질 브라질 1 - 0 1 – 0 친선경기
17 2011년 2월 16일 스타드 드 제네브, 제네바, 스위스 포르투갈 포르투갈 1 - 0 2 – 1 친선경기
18 2011년 10월 8일 엘 모누멘탈,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칠레 칠레 2 - 0 4 – 1 2014년 월드컵 예선
19 2011년 10월 8일 로베르토 메렌데스 스타디움, 바랑키야, 콜롬비아 콜롬비아 콜롬비아 1 - 1 2 – 1 2014년 월드컵 예선
20 2012년 3월 1일 방크도르프 경기장, 베른, 스위스 스위스 스위스 1 - 0 3 – 1 친선경기
21 2012년 3월 1일 방크도르프 경기장, 베른, 스위스 스위스 스위스 2 - 0 3 – 1 친선경기
22 2012년 3월 1일 방크도르프 경기장, 베른, 스위스 스위스 스위스 3 - 0 3 – 1 친선경기
23 2012년 6월 2일 엘 모누멘탈,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에콰도르 3 - 0 4 - 0 2014년 월드컵 예선
24 2012년 6월 9일 메트라이프 스타디움, 뉴저지, 미국 브라질 브라질 1 - 1 4 – 3 친선경기
25 2012년 6월 9일 메트라이프 스타디움, 뉴저지, 미국 브라질 브라질 2 - 1 4 – 3 친선경기
26 2012년 6월 9일 메트라이프 스타디움, 뉴저지, 미국 브라질 브라질 4 - 3 4 – 3 친선경기
27 2012년 8월 15일 코메르츠방크 아레나, 프랑크푸르트, 독일 독일 독일 2 - 0 3 – 1 친선경기
28 2012년 9월 7일 에스타디오 마리오 알베르토 켐페스, 코르도바,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파라과이 3 - 1 3 – 1 2014년 월드컵 예선
29 2012년 10월 12일 말비나스 아르헨티나스 경기장, 멘도사,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우루과이 1 - 0 3 – 0 2014년 월드컵 예선
30 2012년 10월 12일 말비나스 아르헨티나스 경기장, 멘도사,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우루과이 3 - 0 3 – 0 2014년 월드컵 예선
31 2012년 10월 16일 에스타디오 나시오날 데 칠레, 산티아고, 칠레 칠레 칠레 1 - 0 2 – 1 2014년 월드컵 예선
32 2013년 3월 23일 엘 모누멘탈,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 2 - 0 3 – 0 2014년 월드컵 예선
33 2013년 6월 14일 과테말라 시티 국립경기장, 과테말라 시티, 과테말라 과테말라 과테말라 1 - 0 4 – 0 친선경기
34 2013년 6월 14일 과테말라 시티 국립경기장, 과테말라 시티, 과테말라 과테말라 과테말라 3 - 0 4 – 0 친선경기
35 2013년 6월 14일 과테말라 시티 국립경기장, 과테말라 시티, 과테말라 과테말라 과테말라 4 - 0 4 – 0 친선경기
36 2013년 9월 10일 데펜소레스 델 차코 스타디움, 아순시온, 파라과이 파라과이 파라과이 1 - 0 5 – 2 2014년 월드컵 예선
37 2013년 9월 10일 데펜소레스 델 차코 스타디움, 아순시온, 파라과이 파라과이 파라과이 3 - 1 5 – 2 2014년 월드컵 예선
38 2014년 6월 15일 마라카낭,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2 - 0 2 – 1 2014년 월드컵
39 2014년 6월 21일 미네이랑, 벨루오리존치, 브라질 이란 이란 1 - 0 1 – 0 2014년 월드컵
40 2014년 6월 25일 이스타지우 베이라히우, 포르투알레그리, 브라질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 1 - 0 3 – 2 2014년 월드컵
41 2014년 6월 25일 이스타지우 베이라히우, 포르투알레그리, 브라질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 2 - 1 3 – 2 2014년 월드컵

커리어 통계[편집]

클럽 기록[편집]

2014년 8월 28일 기준

클럽 시즌 프리메라리가 코파 델 레이 UEFA 챔피언스리그 클럽 월드컵 UEFA 슈퍼컵1 Total
출장 득점 도움 출장 득점 도움 출장 득점 도움 출장 득점 도움 출장 득점 도움 출장 득점 도움
바르셀로나 2004–05 7 1 0 1 0 0 1 0 0 0 0 0 9 1 0
2005–06 17 6 2 2 1 0 6 1 1 0 0 0 25 8 3
2006–07 26 14 2 2 2 1 6 1 0 0 0 0 3 0 0 37 17 3
2007–08 28 10 12 3 0 0 9 6 1 0 0 0 40 16 13
2008–09 31 23 11 8 6 1 12 9 5 0 0 0 51 38 17
2009–10 35 34 10 3 1 0 12 8 0 2 2 0 2 2 1 54 47 11
2010–11 33 31 19 7 7 2 13 12 3 2 3 0 55 53 24
2011–12 37 50 16 7 3 4 11 14 5 2 2 1 3 4 3 60 73 29
2012–13 32 46 12 5 4 1 11 8 2 2 2 0 50 60 15
2013–14 31 28 11 5 5 3 5 8 0 2 0 0 46 41 14
2014–15 1 2 0 0 0 0 0 0 0 0 0 0 1 2 0
커리어 통산 278 245 95 43 29 12 86 67 17 4 4 1 14 11 4 425 356 129

1UEFA 슈퍼컵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국가대표[편집]

국가 연도 출전 득점 도움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2005 5 0 0
2006 7 2 2
2007 14 6 4
2008 8 2 2
2009 10 3 1
2010 10 2 1
2011 13 4 9
2012 9 12 1
2013 7 6 4
2014 9 5 1
통산 92 42 25

수상[편집]

클럽[편집]

FC 바르셀로나[편집]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개인[편집]

기타[편집]

주석[편집]

  1. "Argentina 1 Nigeria 0: match report (영어)", 《Daily Telegraph》, 2010년 6월 12일 작성.
  2. "Argentina 4 South Korea 1: match report (영어)", 《Daily Telegraph》, 2010년 6월 1일 작성.
  3. "블래터 회장 "메시 골든볼 수상, 조금 놀랐다", 《goal.com》, 2014년 7월 15일 작성.
  4. 메시 “퍼거슨 감독, 테베스와 결별 후회할 것”
  5. 2006년 FIFA 월드컵 당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전에서 크레스포의 골을 메시가 어시스트해줬고 이 덕에 크레스포가 동률인 호나우두를 출전시간으로 제치고 실버슈를 수상했다. 이 일로 메시와 크레스포는 매우 친해졌다.
  6. 메시 "아르헨티나, 강하고 단결된 팀"

바깥 고리[편집]


이 전
잉글랜드 웨인 루니
FIFPro 올해의 영 플레이어
2006, 2007, 2008
다 음
 oye chicu 
이 전
포르투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FIFPro 올해의 스페셜 영 플레이어
2007, 2008
다 음
 아르헨티나 세르히오 아궤로 
이 전
포르투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UEFA 챔피언스리그 최다 득점자
2008-09, 2009-10, 2010-11, 2011-12
다 음
  
이 전
포르투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
2009
다 음
 아르헨티나 디에고 밀리토 
이 전
포르투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유러피언 골든슈
2010, 2012, 2013
다 음
  
이 전
우루과이 디에고 포를란
제9대 FIFA 월드컵 골든볼
2014년
다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