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로 마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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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산드로 마촐라
Ajman 1968-08-25 stamp - Sandro Mazzola.jpg
개인 정보
전체 이름 Alessandro Mazzola
국적 이탈리아 이탈리아
출생 1942년 11월 8일(1942-11-08) (72세)

이탈리아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 토리노

179cm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 공격수
청소년 클럽
1956-1960 트레빌리에세
클럽1
연도 클럽 출장수 (골)
1960-1978 인테르나치오날레 417 (116)
국가대표팀
1963-1974 이탈리아 이탈리아 070 (22)

1성인 클럽 출장수와 골은 정규 리그 기록만 세며,
기준입니다.
2국가대표팀의 출장수와 골은
기준입니다.

알레산드로 마촐라(이탈리아어: Alessandro Mazzola, 1942년 11월 8일 ~ )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이다. 현재 RAI의 축구 분석가이자 해설자를 맡고 있다. 그는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사망한 발렌티노 마촐라의 아들이다.마촐라는 평생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서만 뛰었으며 '라 그란데 인테르' 시절을 이끈 인물 중 하나이다. 마촐라는 그의 패스 범위나 시야, 볼 컨트롤을 돕는 창의적인 본능으로 인사이드 라이트나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다. 또한 마촐라는 많은 골을 넣는 스코어러이기도 하다.

그는 오직 인테르에서만 17시즌을 뛴 원 클럽 맨이다.

어린 시절[편집]

마촐라는 그의 아버지가 베네치아 AC에서 토리노 FC로 이적했을 때인 1942년에 태어났다. 이후 6년 뒤에 토리노 회장의 이름을 딴 동생 페루치오 마촐라가 태어났다. 마촐라의 부모는 1946년에 이혼했으며 마촐라의 양육권은 그의 어머니가 가졌다. 마촐라가 6살 때 그의 아버지는 죽었다.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편집]

산드로 마촐라와 그의 동생 페루치오는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와 계약했다. 마촐라는 그의 선수 경력을 오직 인테르에서만 보냈으며 417경기에서 116골을 기록했다. 그는 1961년 6월 10일, 인테르의 라이벌인 유벤투스 FC와의 경기에서 데뷔했다. 그 데뷔전에서 팀이 9-1로 처참하게 지면서 마촐라는 쓴 맛을 맞봐야 했다. 그가 인테르에서 데뷔하기 1년전인 1960년, 엘레니오 에레라가 인테르의 감독으로 FC 바르셀로나에서 넘어왔다. 에레라는 그의 새로운 팀의 주전으로 1년 뒤 바르샤에서 데리고 온 루이스 수아레스 미라몬테스를 중원사령관으로 배치했고, 타르키시오 부르니치자친토 파케티를 풀백으로 두었다. 그리고 브라질에서 데리고 온 자이르 다 코스타를 오른쪽 윙어로, 마리오 코르소를 왼쪽 미드필더로 배치시켰고, 아르만도 피키를 스위퍼로 두었다. 그리고 마촐라는 이 팀의 오른쪽 공격수에 낙점되었다. 마촐라는 인테르의 일원으로 유럽 정상에 두 번이나 오르며 라 그란데 인테르 시절을 이끌었다. 카테나치오로 알려진 수비 전술의 도움을 받으면서 마촐라는 유러피언컵 1963-64 결승 레알 마드리드 CF전에서 2골을 기록하면서 인테르의 도시 라이벌인 AC 밀란이 전 시즌을 우승한 이후 또다시 이탈리아 클럽이 유럽 최고임을 증명하였다. 다음 시즌인유러피언컵 1964-65에서도 SL 벤피카를 꺾으며 마촐라의 팀 인테르는 연속하여 유러피언 컵 우승을 차지한다. 이후 유러피언컵 1966-67에선 셀틱 FC에게 패배하며 인테르는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지만, 마촐라는 그 경기에서도 1골을 기록했다.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마촐라는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70경기 22골을 기록했다. 그는 1963년 5월 12일 브라질전에서 데뷔했다. 당시 20세에 불과했던 그는 이 경기에서 페널티 킥으로 데뷔 경기에서 데뷔 골을 넣는데 성공했다. 또한 마촐라는 이탈리아를 대표해 1966년, 1970년, 1974년 FIFA 월드컵에 출전하였다. 마촐라의 국가대표팀 경력 중 가장 성공적인 것은 UEFA 유로 1968로 그의 조국 이탈리아에서 열린 이 대회를 우승으로 이끌었다는 점이다. 2년 뒤 멕시코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감독 페루치오 발카레치는 마촐라가 또 한 명의 스타 선수인 밀란의 잔니 리베라와 공존하지 못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2라운드에서 발카레치는 '스타페타'(이탈리아어: staffetta, 교대)라고 이름붙인 전술을 사용하여 두 선수를 공존시키는데 성공했다. 마촐라가 전반전을 뛰고 난 뒤 하프 타임에 리베라가 교체되어 들어오는 방법이었다. 32년 만에 올라온 결승에서 이탈리아는 펠레의 브라질과 맞붙었다. 이 경기는 이탈리아의 수비 축구와 브라질의 공격 축구가 맞붙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경기 당일엔 발카레치는 스타페타 방식을 버리고 마촐라가 그 경기를 다 소화하게 했다. 8분 정도를 남기며 리베라가 교체로 들어와 마촐라와 리베라가 최초로 같이 뛰었으나, 팀은 1-4로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4년 뒤의 월드컵에서 발카레치는 둘을 같이 뛰게 하였으나 이탈리아의 선수들은 너무 늙었기 때문에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며 일찍 짐을 쌀 수 밖에 없었다.

수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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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편집]

주석[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