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프 과르디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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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프 과르디올라
Guardiola 2010.jpg
개인 정보
전체 이름 Josep "Pep" Guardiola i Sala
국적 스페인 스페인
출생 1971년 1월 18일(1971-01-18) (43세)

스페인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산트페도르

182cm
체중 73kg
포지션 은퇴 (과거 수비형 미드필더)
클럽 정보
현 소속팀 독일 바이에른 뮌헨 (감독)
청소년 클럽
1983-1990 스페인 바르셀로나
클럽1
연도 클럽 출장수 (골)
1990-1992
1990-2001
2001-2002
2002-2003
2003
2003-2005
2005-2006
스페인 바르셀로나 B
스페인 바르셀로나
이탈리아 브레시아
이탈리아 AS 로마
이탈리아 브레시아
카타르 알아흘리
멕시코 도라도스
0590(5)
2630(6)
0110(2)
0040(0)
0130(1)
0180(2)
0100(1)
국가대표팀2
1991-1992
1992-2001
스페인 스페인 U-23
스페인 스페인
0120(0)
0470(5)
팀 감독/코치
2007-2008
2008-2012
2013-
스페인 바르셀로나 B
스페인 바르셀로나
독일 바이에른 뮌헨

1성인 클럽 출장수와 골은 정규 리그 기록만 세며,
2007년 1월 1일 기준입니다.
2국가대표팀의 출장수와 골은
2007년 1월 1일 기준입니다.

주제프 "펩" 과르디올라 이 살라 (카탈루냐어: Josép "Pep" Guardiola i Sala [ʑuˈzɛp ɡwəɾˈðjɔɫə], 1971년 1월 18일 ~ )는 과거 스페인축구 선수로, 현재 독일 분데스리가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이다. 그는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바르셀로나에서 보냈지만, 또한 브레시아, AS 로마, 알아흘리 (도하), 그리고 도라도스에서 선수 생활을 하기도 했다. 과르디올라는 스페인과 카탈루냐 두 대표팀에서 뛴 바 있다. 은퇴 후, 그는 바르셀로나 아틀레틱의 감독이 되었다.

2008년 5월 8일, 바르셀로나의 구단주인 주안 라포르타는 프랑크 레이카르트의 뒤를 이어 그를 새 감독으로 선임했고, 그는 감독을 맡은 첫 시즌에 프리메라리가, 코파 델 레이, 챔피언스리그에서 바르셀로나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선수 경력[편집]

국가대표팀[편집]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발탁되었으며 1994년 FIFA 월드컵UEFA 유로 2000에서 활약했다. 1994년 월드컵에서는 볼리비아전에 페널티킥을 넣어 팀의 승리에 기여했으며 8강에서 당시 대회 준우승 팀인 이탈리아와 고전끝에 패배했다.

바르셀로나[편집]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의 전형적인 유스 아카데미 출신 선수였다. 그는 짐나스틱 데 만레사와 바르셀로마 B팀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1990년부터 2001년까지, 그는 리가 263경기를 포함, 총 379경기를 바르셀로나에서 뛰었다. 1990년 12월 16일에 열린, 바르셀로나가 카디즈를 2-0으로 이긴 경기에서 과르디올라는 리가 데뷔전을 치렀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면서 그는 요한 크라위프가 이끄는 드림팀의 키 플레이어가 되었다. 바스크인과 외국인 선수가 대부분이었던 당시 그는 팀에 몇 안되는 카탈루냐인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하는 동안 그는 팬들로부터 대단한 인기를 끌었고, 팀에게 1992년 유러피언 컵과 총 여섯 개의 리가 타이틀을 안겼다. 그는 보비 롭슨의 지휘하에서 UEFA 컵 위너스 컵을 따내기도 했다. 1997년, 과르디올라는 호세 마리 바케로에 이어 바르셀로나의 주장이 되었다. 하지만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그는 일 년간 경기에 거의 출장하지 못했다. 발렌시아를 3-2로 이긴 2001년 6월 17일 리그 경기에서 그는 마지막 라 리가 경기 출전을 기록했다.

세리에 A[편집]

2001년에 바르셀로나를 떠난 이후, 그는 뉴캐슬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웨스트햄, 토트넘, 리버풀, AC 밀란, 인터 밀란 등의 구애를 받았다. 하지만 과르디올라는 브레시아에 입단했고, 그 후 AS 로마에 입성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의 그의 삶은 행복하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스테로이드 양성 판정으로 네 달간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07년 10월 23일에서야 과르디올라는 약물 복용에 대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도라도스 데 시날로아[편집]

카타르알아흘리 도하에서의 선수 생활을 끝낸 과르디올라는 계약 기간이 너무 짧다는 이유로 맨체스터 시티의 오퍼를 거절하였다. 하지만 2006년 후안 마누엘 리요멕시코 클럽인 도라도스 데 시날로아의 감독직을 맡으면서 과르디올라를 영입하였다. 그렇게 과르디올라는 6개월간 멕시코에서 뛰었다. 하지만 2006년 5월, 팀이 강등됨과 동시에 그는 은퇴를 선언했다.

감독 경력[편집]

과르디올라는 2007년 6월 21일 바르셀로나 B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의 지도하에서 팀은 따르세라 디비시온에서 우승, 2008년 세군다 디비시온 B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2007-08시즌 종료를 앞두고, 바르셀로나의 회장 후안 라포르타는 과르디올라가 바르셀로나의 감독직을 맡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B팀의 감독직 수행을 마친 과르디올라는 호나우지뉴, 데쿠, 사뮈엘 에토를 포함한 몇명의 선수를 다음 시즌의 계획에 넣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 선언 당시에 이미 과르디올라는 잔루카 참브로타AC 밀란으로, 히오바니 도스 산토스토트넘으로, 에드미우송비야레알로 보낸 상태였다. 결국 데쿠는 첼시로, 그리고 바르셀로나의 상징이었던 호나우지뉴는 AC 밀란으로 이적했다. 릴리앙 튀랑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할 계획이었으나 심장 계통의 이상이 발견되어 은퇴를 결정했다. 올레게르아약스로 떠났고, 산티아고 에스케로는 방출되었으며 마크 크로사스셀틱으로 이적했다. 에토의 경우에는 여름 내내 몇 개의 클럽과 연결되면서 해결책을 도모했으나, 결국 과르디올라가 프리시즌에서의 그의 헌신적인 훈련과 참여태도를 보고 에토의 잔류 방침을 밝혔다. 에이두르 구드욘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과르디올라의 새로운 리더십 하에서, 몇 건의 새로운 이적이 성사되었다. 다니에우 아우베스세이두 케이타세비야로부터 영입되었고, 마르틴 카세레스비야레알에서 옮겨왔으며, 헤라르드 피케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부터 친정팀으로 복귀했다. 알략산드르 흘렙아스날로부터 영입되었다. 엔리케파우메이라스로부터 영입되었지만 바로 레버쿠젠으로 임대되었다.

과르디올라의 첫 번째 대승은 UEFA 챔피언스리그 3라운드에서 바르셀로나가 폴란드 클럽 비스와 크라쿠프를 홈에서 4-0으로 누른 경기였다. 라 리가 개막 라운드에서 누만시아에게 패배한 바르셀로나는 그 이후 20경기동안 무패 행진을 이어가며 리그 정상에 올라섰다. 2006년 이후로 우승하지 못했던 바르셀로나는 2009년 5월 16일 레알 마드리드가 비야레알에 패배함으로써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리그 타이틀은 과르디올라가 부임 첫 시즌만에 들어올린 두 번째 우승컵이었다. 이미 바르셀로나는 5월 13일에 아틀레틱 빌바오를 4-1로 제압하며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컵을 하나 들어올린 상태였다.

과르디올라는 2009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2-0으로 누르고 시즌을 마무리지었다. 스페인 클럽이 자국 컵, 리그, 유럽피안 클럽 타이틀을 모두 들어올린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트레블을 달성했고 게다가 과르디올라는 역대 챔피언스리그 우승 팀 감독 중 최연소였다.

과르디올라는 전임자 프랑크 레이카르트와 마찬가지로 주로 4-3-3 시스템을 운용했다. 그러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선수들은 이전보다 더 혹독한 연습과 개인적인 향상, 감독과의 더 깊은 유대감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2011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에서 다시한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3-1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2011-12 시즌 종료 후 휴식을 위해 팀을 떠나겠다고 공식 사임 의사를 밝혔다. 한시즌간 휴식을 취하고 13-14시즌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수상[편집]

선수[편집]

스페인 바르셀로나 B


스페인 바르셀로나


스페인 스페인


개인


감독[편집]

스페인 바르셀로나


독일 바이에른 뮌헨


개인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