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 히딩크
| 거스 히딩크 | ||
| 개인 정보 | ||
|---|---|---|
| 풀 네임 | Guus Hiddink | |
| 국적 | ||
| 출생 | 1946년 11월 8일 (65세) | |
| 키 | 182cm | |
| 체중 | 100kg | |
| 포지션 | 감독 (선수시절 미드필더) | |
| 클럽 정보 | ||
| 현 소속팀 | ||
| 청소년 클럽 | ||
| 1959 | ||
| 클럽1 | ||
| 연도 | 클럽 | 출장수 (골) |
| 1967-1970 1970-1972 1972-1976 1978 1980 1978-1981 1981-1983 |
113 (49) 39 (1) 196 (22) 13 (4) 15 (0) 107 (2) 47 (0) |
|
| 팀 감독/코치 | ||
| 1982-1984 1984-1987 1987-1990 1990-1991 1991-1994 1994-1998 1998-1999 1999-2000 2000-2002 2002-2006 2005-2006 2006-2010 2009 2010-2011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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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성인 클럽 출장수와 골은 정규 리그 기록만 세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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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 히딩크(네덜란드어: Guus Hiddink 휘스 히딩크[*][1] 듣기 , 문화어: 구스 히딩크, 1946년 11월 8일 ~ )는 네덜란드 파르세벌트(Varsseveld) 출신의 축구 감독이다.
2006년에는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과 오스트레일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아, 호주 국가 대표팀을 16강까지 올려놓은 바가 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4위,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4위,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오스트레일리아를 16강에 올린 경력이 있다. 2006년 FIFA 월드컵이 끝난 이후,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러시아를 유로 2008 4강에 진출시켰으며 한때 첼시 FC의 임시 감독직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2010년 8월부터는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기 시작해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을 유로 2012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지만, 터키는 크로아티아에 밀리면서 탈락하였다. 히딩크는 터키의 탈락이 확정된 직후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났다.
목차 |
[편집] 선수 경력
아마추어 클럽 SC 바세펠트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하였으며, 네덜란드 클럽 데 흐라프스합(De Graafschap) 에서 1967년 이래 대부분의 선수생활을 보냈다. 1970년 PSV 에인트호번에 들어가지만, 주전자리를 얻지 못하고 1년 만에 다시 데 흐라프스합으로 돌아가 1976년까지 선수로 활동하였다. 이후 잠시 미국에서 북아메리카 축구 리그 워싱턴 디플로매츠, 새너제이 어스퀘이크스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고향에 돌아가 NEC 네이메헌과 계약하였다. 1981년 데 흐라프스합으로 돌아가나 1년 후 은퇴하였다. 선수생활 동안 그는 주로 미드필더로 뛰었으며 뛰어난 축구기술로 주목받았다.
[편집] 지도자 경력
[편집] 초기 클럽
데 흐라프스합에서 보조 코치로 지도능력의 가능성을 보인 후 1983년부터 1987년까지 PSV의 보조 코치를 지냈으며, 결국 1987년에는 그곳의 감독이 되었다. 1988년 팀 창단이래 최초로 UEFA 챔피언스 리그의 우승과 유럽축구역사상 세번째의 트레블을 달성하며 팀을 AFC 아약스, 페예노르트과 함께 네덜란드 축구 리그의 3강의 위치에 올려 놓았다. 또한 1987년부터 1990년까지 팀에 두번의 네덜란드 1부 리그 타이틀과 한번의 준우승을 안겼다.
1990년 터키 프로팀 페네르바체의 감독으로 잠시 머무르지만 1년 후 그만두고 스페인의 강호 발렌시아 CF의 감독으로 갔다. 히딩크는 여기서 의견을 서슴없이 말하는 성격을 드러냈다. 한번은 경기 중 발렌시아의 메스탈라 스타디움에 인종차별적 구호가 적혀있자 경기 중에 이를 없애도록 지시하였다. 히딩크가 구사하는 공격 스타일의 축구는 발렌시아 팬들뿐 아니라 스페인 리그의 다른 팀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편집]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및 이후 행적
히딩크가 1995년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었을 때 가장 큰 도전은 각기 뛰어난 선수들로 구성된 팀 내의 분란이었다. 유로 1996 토너먼트에서 엣하르 다비츠는 그와 말다툼 끝에 고향으로 보내졌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히딩크는 그런 마찰을 피하고 네덜란드 팀은 가장 멋진 경기들을 선사하였다. 미드필더가 받쳐주는 양쪽 윙들의 공격은 수비형 미드필더인 필립 코퀴나 엣하르 다비츠조차 득점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조별리그에서 벨기에와 멕시코와 무승부, 대한민국에 5:0 대승을 거둬 16강에 진출한 뒤 유고슬라비아, 아르헨티나를 물리치고 4강까지 진출하였지만, 브라질에 승부차기끝에 패배하고 크로아티아와의 3, 4위전에서도 패해 4위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후 감독직을 사임하였다.
바로 뒤이어 스페인 클럽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레알마드리드 역사상 도요타컵을 우승하였지만 구단 수뇌부의 아들을 넣어달라는 강요를 받고, 마찰이 생기자 성적이 부진하여서 경질당하였고, 레알 베티스를 맡았으나 끝나가는 시점이여서 성적도 내기전에 관두었다. 히딩크도 후반기에 팀을 맡았기에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네덜란드로 돌아갔고 서서히 축구계에서 잊혀져 야인이 되는 듯하였다. 그러다가 2000년 말에 대한축구협회로부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고, 고심 끝에 승낙하였다.
[편집]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2002년 FIFA 월드컵 이전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4회 연속으로 FIFA 월드컵에 진출하였으나 본선에서 한 경기도 승리하지 못하고 4무 10패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게다가 월드컵을 2년 앞둔 2000년까지도 시드니 올림픽 축구 조별리그 탈락에, 아시안컵 3위를 기록하는 등의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데 반해,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은 시드니 올림픽 축구 8강과 아시안컵 우승을 기록하는 등의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어 우려가 증폭되었다.
이에 대한축구협회는 허정무 감독을 경질하고 외국인 감독을 찾아나서게 되었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개최국 프랑스의 감독을 맡았던 에메 자케였으나 본인의 고사로 인해 영입에 실패하였고, 다음 순위는 바로 대한민국에 5:0의 참패를 안겼던 거스 히딩크였다. 마침 히딩크 본인도 1998년 이후 부진한 성적을 안고 있던 터라, 월드컵 개최국인 대한민국의 감독직에 도전하는 것을 받아들였고, 마침내 2000년 12월 정식 계약을 하게 되었다.[2] 2001년 1월 1일 거스 히딩크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편집] 2002 FIFA 월드컵 이전
2001년 히딩크는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정식 행보를 시작하였다. 첫 무대는 홍콩 칼스버그컵이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노르웨이에 2:3으로 패배하고, 파라과이에 승부차기로 승리를 거두어 3위를 기록하였다.[3]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이 한국과 일본에서 공동개최되었는데, 대구에서 열린 개막전에서 한국은 프랑스에 5:0으로 대패하고 말았다.[4]
그러나 히딩크는 이것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았다. 강팀과의 경기를 함으로써 객관적인 실력차를 확인하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일부 언론과 축구팬들 사이에서 서서히 히딩크 경질론이 나오기 시작하였고, 급기야는 8월 체코 원정 평가전에서 또 5:0으로 대패[5]하면서 히딩크 경질론이 급부상하게 되었다. (일부에선 그를 '오대영 감독' 이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하였다.) [6] 그렇지만 대한축구협회의 정몽준 회장은 히딩크 감독을 적극적으로 옹호[7][8]하면서 경질론을 일축하였다. 2001년 11월, 마침내 주경기장인 서울 월드컵 경기장이 개장되었고, 한국은 크로아티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1승 1무를 기록하였다.
한국은 폴란드, 포르투갈, 미국과 D조에 편성되었다. 2002년, 한국은 우루과이와의 원정 평가전과 북중미 골드컵에 초청팀 자격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루과이전에서는 2:1 패배, 그리고 북중미 골드컵에서는 미국과 캐나다에 1:2로 패하고 최약체 쿠바와 득점없는 무승부를 기록하는 등의 부진한 모습을 보여 또 다시 불안감을 갖게 하였다. 월드컵 첫 경기가 불과 4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국인들로서는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히딩크는 여전히 여유있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2002년 3월 이후, 터키와 0:0 무승부, 핀란드에 2:0으로 승리한 이래로, 4월 코스타리카 2:0 승리, 중국 0:0 무승부를 기록하며 계속해서 무패 행진을 기록하고, 5월 16일에는 스코틀랜드를 상대로 4:1의 대승을 거두었다. 5월 21일,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박지성의 동점골로 경기는 결국 1:1 무승부로 끝났다. 5월 26일 최종 평가전 상대는 프랑스였다. 한국은 2:3으로 패배하였지만 이 경기는 한국 축구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편집] 2002년 FIFA 월드컵
2002년 FIFA 월드컵이 개막한 이후, 6월 4일 폴란드전에서 황선홍과 유상철의 연속골로 2:0으로 승리하여 한국의 월드컵 사상 첫 승을 안겨주었다. 6월 10일 미국전에서는 시종일관 유리한 경기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이을용이 페널티 킥을 실축하는 등, 수많은 골 기회를 놓쳐 아쉬운 1:1 무승부를 거두었으나, 6월 14일 포르투갈전에서 박지성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하여 2승 1무로 D조 1위를 기록해 한국 축구는 사상 최초로 피파 월드컵 16강에 진출하였다.
이로 인한 한국 국민들의 열광은 대단하였다. 그러나 히딩크 본인은 아직 배가 고프다는 말로 다음 경기를 준비하였고, 6월 18일 16강전 이탈리아와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전반 18분에 크리스티안 비에리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뒤, 이탈리아의 수비에 고전하자 히딩크는 후반 중반 이후 수비수 전원을 벤치로 불러들이고 공격수들만 투입하는 도박을 감행하였다. 결과적으로 이 작전은 성공하여 후반 종료 직전 설기현이 동점골을 넣었고, 연장 후반 12분에는 안정환이 역전 골든골을 넣어 이 대회에서 아시아 팀으로는 유일하게 8강에 진출하였다.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도 전후반과 연장을 모두 0-0으로 마무리하고, 승부차기에서 5-3으로 승리하여, 월드컵 사상 최초로 아시아 팀이 4강에 진출하는 새 역사를 기록하였다.
6월 25일 독일과의 준결승전에서 미하엘 발라크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결승 진출에는 실패하였다. 6월 29일에 열린 터키와의 3-4위전에서도 전반에 대량 실점을 기록하며 2-3으로 패배하여 4위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러나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16강 진출조차 어려워보였던 한국팀을 4위에 올린 것은 히딩크 자신도 놀란 대단한 성과였다.
이런 공로로 히딩크는 대한민국 최초의 명예 국민이 되었고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다음 월드컵까지 그를 감독으로 앉히자는 말이 있었고, 히딩크 본인 역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잔류를 희망한다는 의중에 무게를 싣는 듯한 발언을 했었지만, 결국 재계약을 하지 않고 네덜란드의 프로팀 PSV 에인트호번을 맡게 되어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그 후에도 히딩크는 유독 대한민국을 자주 방문하고, 한국 기업의 CF 제의를 수락하는 등, 한국에 남다른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이는 1998년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한 채 야인으로 전락해가던 자신의 위상이 대한민국 대표팀을 맡으면서 높아졌기 때문이다.
[편집] PSV 에인트호번
월드컵 이후 히딩크는 고향으로 돌아가 PSV 에인트호번의 감독을 맡았다. 그리고 그는 PSV 에인트호번에 박지성과 이영표를 영입하였다. 에레디비시에서 2002-03, 2004-05, 2005-06 시즌을 내리 우승하였다. 또한, UEFA 챔피언스리그 2004-05에서 에인트호번은 챔피언스 리그가 지금의 형태로 바뀐 1992-93 시즌 이래 처음으로 준결승에 진출하였다. (PSV는 1988년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안컵을 차지했다.) PSV는 준결승에서 AC 밀란에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의해 탈락하였다.
[편집] 오스트레일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2005년 7월 22일 히딩크는 오스트레일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직을 수락하고, PSV와 오스트레일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동시에 감독할 거라고 발표하였다.
이후 남미 5위 우루과이와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원정경기 0:1 패배, 홈경기 1:0 승리를 거두었고, 홈에서 연장전을 무승부로 마친 뒤 가진 승부차기에서 4:2로 이기며 1974년 서독 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을 따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에서 호주는 브라질, 크로아티아, 일본과 함께 F조에 속하였다. 일본과의 첫 경기에서는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인해 선제골을 허용하였지만 후반 40분 이후 3골을 몰아넣으며 3:1로 역전승을 거뒀다. 브라질과의 경기에서는 선전하였지만 0:2로 패배하였고, 마지막 크로아티아와의 경기에서는 2:2 무승부를 거둬 브라질에 이어 1승 1무 1패로 16강에 진출하였다.
16강에서 맞붙은 팀은 지난 대회에서도 히딩크가 맞붙었던 이탈리아였다. 호주는 이탈리아를 맞아 대등하게 선전하며 후반까지 0:0을 기록하여 연장전으로 가는 듯하였지만, 후반 추가시간 종료 직전 이탈리아의 그로소가 먼저 넘어진 호주 선수의 발에 걸린 것을 심판이 페널티킥을 선언하였다. 결국 토티의 페널티킥 성공으로 호주는 0:1로 패배하여 8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편집]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2006년 4월 14일, 히딩크는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수락하였다. 계약의 상세 내용은 2년 6개월의 계약기간과 240만 달러의 연봉을 받고, 성과에 따라 계약 기간을 추가로 2년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6 FIFA 월드컵이 끝난 이후, 히딩크는 러시아의 감독직을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같은 해 8월 16일, 히딩크는 라트비아와의 친선전을 통해 러시아 국가대표팀에서의 공식 첫 경기를 치렀다.
유로 2008 예선에서 E조에 편성된 러시아는 잉글랜드를 승점 1점차로 따돌리고 조 2위를 차지하여 본선에 진출하였다. 히딩크는 최근 러시아와의 계약기간을 2010년까지 연장하였다.[9]
히딩크가 이끈 러시아는 본선 조별리그에서 D조 2위를 차지하여 8강에 올랐다. 2008년 6월 21일에 펼쳐진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3-1로 승리하여 4강에 진출하였으나, 그 이후 4강전에서 우승국이기도 한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0-3으로 패배하였다.
2010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4조에서 2위를 차지하여 플레이오프를 치렀으나, 슬로베니아에게 원정 다득점 원칙에서 밀려 러시아는 예선 탈락하였다.
[편집] 첼시 FC
첼시 FC의 감독이었던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가 성적 부진을 이유로 해임되었다. 첼시의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평소에 친분이 있던 히딩크 감독을 설득시켰고, 히딩크는 남은 시즌 동안만 감독직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2009년 2월 11일부터 첼시의 감독직에 앉게 되었다.
히딩크는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유벤투스를 3-2로 물리쳐 첼시를 8강에 진출시키고, 8강전에서 리버풀을 7-5로 제압하여 첼시를 4강에 진출시켰다. 첼시는 FC 바르셀로나와의 준결승전에서 원정 1차전은 수비적인 전술을 펼치며 0-0으로 마치고, 홈에서 벌어진 2차전에서 전반 마이클 에시엔의 선취골로 1-0으로 앞서가는 등 결승 진출을 눈앞에 두었으나, 계속되는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인해 불안한 경기를 이어나갔고, 결국 경기 종료 직전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에게 동점골을 허용해 1-1로 무승부를 거두어,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결승 진출에 실패하였다.
첼시는 스콜라리 해임 당시 리그 4위의 위치도 위태로운 상태였으나, 히딩크가 부임한 이후로는 3위의 자리를 확고히 하였다. 또한 히딩크가 이끄는 첼시는 FA컵 결승전에서 2:1 역전승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가 남긴 이러한 성과들로 인해 수많은 팬들을 비롯하여 코칭 스탭, 구단주, 선수들까지 그의 잔류의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하였으나 결국 이 경기 이후 히딩크는 계약대로 첼시를 떠나게 되었다.
[편집]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
현재 터키 국가대표팀 히딩크 사단은 유로 2012 예선에서 독일과 함께 조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11월 11일, 15일 크로아티아와 홈/원정에서 경기를 치룬 결과 터키는 플레이오프 1차전 홈에서 크로아티아에게 3:0으로 패배하였다. 플레이오프 2차전 크로아티아 원정에서 0:0으로 비기며 합계 3:0으로 크로아티아에게 밀려 유로 2012 진출에 실패하였다.
[편집] 탈세 혐의
히딩크는 2007년 2월 탈세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와 벌금 45,000 유로를 선고받았다.[10]
[편집] 기타
- 히딩크가 감독을 맡은 팀들 중에는, 메이저급 대회 토너먼트에서 4강에 오른 경우가 아주 많았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지휘하였던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4강에 올린 것을 필두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아시아 최초로 4강에 올렸으며, 그 다음으로는 친정팀 PSV 에인트호번을 맡아서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시켰고, UEFA 유로 2008에서는 다시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서 역시 4강에 진출시켰다. 이후 첼시 FC에 단기 계약으로 부임하여서는 팀을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또다시 4강에 올림으로써, 그의 지도력을 입증하였으나, 특이한 것은 앞에서 열거한 팀들이 4강전에서 모두 고배를 마셔 정작 결승에는 오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에게 '4강 징크스' 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히딩크 감독은 지난 4월 27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네덜란드-벨기에 월드컵 공동유치위원회 기자회견에서 남아공월드컵 우승후보를 묻는 질문에 "감히 월드컵에 대해 예측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면서도 "네덜란드는 월드컵에 진출하였으며 강력한 우승후보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스페인도 강력한 우승후보"라고 짚어냈다. 특히 월드컵 우승 경험이 없는 네덜란드를 우승후보로 지목한 전문가는 거의 없어서 그의 예언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지만, 결론적으로 그의 예언은 정확하게 적중하여, 네덜란드팀과 스페인 팀은 결승전에서 맞붙게 되었다. 이러한 예측을 두고 펠레의 저주와 대비하여 히딩크의 예언으로 일컫기도 한다.[11]
-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남미 지역예선에서 아르헨티나는 디에고 마라도나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볼리비아에게 1-6으로 완패하는 것을 시작으로 브라질, 파라과이, 에콰도르, 칠레에게 연달아 패하자 히딩크를 마라도나와 같이 공동감독으로 임명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적이 있다.
[편집] 수상
- 2008년 러시아 축구협회 올해의 감독상
- 2002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1등급 청룡장
- 2002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 선정 한일월드컵 최고의 감독
- 2002년 명예국민증(제1호 대한민국 명예국민), 명예시민증(서울시)
[편집] 참고 자료
- Marc Bennetts, 'Football Dynamo - Modern Russia and the People's Game,' Virgin Books, (15 May 2008), 0753513196
[편집] 주석
- ↑ 국립국어원 외래어표기법 - 휘스 히딩크
- ↑ 매일경제 (2000/12/7). 히딩크, 축구 대표팀감독 수락. 2008/06/22에 확인.
- ↑ 연합뉴스 (2001/1/27). -칼스버그컵축구- 히딩크호, 천신만고끝 첫 승(종합). 2008/6/22에 확인.
- ↑ 한국일보 (2001/05/30). [컨페드컵] 한국축구, 프랑스에 0-5 참패. 2008/06/22에 확인.
- ↑ 연합뉴스 (2001/8/16). -한.체코평가전- 한국, 유럽징크스 재확인. 2008/6/22에 확인.
- ↑ 동아일보 (2001/8/26). [축구]히딩크 능력 체코전 대패후 비난-옹호론 팽팽. 2008/06/22에 확인.
- ↑ 한국일보 (2001/8/29). [대표축구] 축구협, 히딩크에 힘 실어주기. 2008/6/22에 확인.
- ↑ 한국일보 (2001/8/31). [대표축구] 정몽준-히딩크 '16강 대책 기내 회동'. 2008/6/22에 확인.
- ↑ skysports.com (2008/3/25). Hiddink pens new Russia deal.
- ↑ 매일경제 (2007년 2월 28일). 히딩크 탈세 유죄 집행유예ㆍ벌금형. 2008년 8월 24일에 확인.
- ↑ 히딩크의 예언·펠레의 저주 ‘완벽 적중’…문어 파울은 ‘살해 위협’
[편집] 바깥 고리
|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 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 |
- Russia (USSR) National Football Team
- Guus Hiddink Foundation
- Guus Hiddink career in pics Virgin Media Sport
| 전 임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1년 1월 1일 - 2002년 6월 30일 |
후 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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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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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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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0년대 | |
| 1950년대 | |
| 1960년대 | |
| 1970년대 | |
| 1980년대 | |
| 1990년대 | |
| 2000년대 | |
| 2010년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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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 UEFA 유로 1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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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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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 1998년 FIFA 월드컵 4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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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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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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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2002년 CONCACAF 골드컵 4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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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2002년 FIFA 월드컵 4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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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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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2006년 FIFA 월드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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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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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 UEFA 유로 2008 4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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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