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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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
Lee Dong-Gook from acrofan.jpg
개인 정보
로마자 표기 Lee Dong-Gook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출생 1979년 4월 29일(1979-04-29) (35세)

대한민국 대한민국 경상북도 포항시

187cm
포지션 스트라이커
클럽 정보
현 소속팀 한국 전북 현대 모터스
등번호 20
청소년 클럽
1995-1998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클럽1
연도 클럽 출장수 (골)
1998-2006
2000-2001
2003-2005
2007-2008
2008
2009-
포항 스틸러스
베르더 브레멘 (임대)
광주 상무 (군 복무)
미들즈브러
성남 일화 천마
전북 현대 모터스
1030(38)
70(0)
530(15)
230(0)
100(2)
1800(101)
국가대표팀2
1999
1999-2000
1998-2014
대한민국 대한민국 U-20
대한민국 대한민국 U-23
대한민국 대한민국
0130(6)
0200(15)
1030(33)

1성인 클럽 출장수와 골은 정규 리그 기록만 세며,
2014년 8월 31일 기준입니다.
2국가대표팀의 출장수와 골은
2014년 10월 14일 기준입니다.

이동국 (李同國[1], 1979년 4월 29일 ~ )은 대한민국축구 선수로서, 포지션은 스트라이커다. 현재 전북 현대 모터스 소속으로 뛰고 있다. 2007년 개명 전까지는 한자표기로 李[1] 을 썼다.

개요[편집]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태어나 포항제철동초등학교, 포항제철중학교,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위덕대학교를 졸업하였다.[2] 데뷔 초기에는 머리가 길어 골을 넣고 뛰어다닐때 머리 모습이 돼지 '품바'의 갈기와 비슷하다는 연유로 '품바'라는 별명이 붙었다. 2014년 9월 5일 베네수엘라와의 친선경기에 출전하여 A매치 100경기 출전을 달성, 센추리클럽에 가입했다. 이동국은 이 경기에서 2골을 기록했다.

실력[편집]

주 포지션은 포워드이나 공격형 미드필더로의 능력도 탁월하다.(단 선수 시절의 대부분을 원톱 스트라이커로 보냈다.)라고 주장하는 일부 몰지각한 팬들이 있으나, 실제 실력은 분데스리가 1년, EPL 2년 도합 3년간 리그경기서 공격포인트 하나 기록하지 못한 공격수로 축구에 재능이 없는 선수였다.

아시아권에서는 정상권의 피지컬 능력을 바탕으로하여 탁월한 공중볼 다툼, 포스트 플레이 능력을 보이며, 발리슛으로 대표되는 간결한 터치로 순간적으로 슈팅까지 연결짓는 뛰어난 슈팅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상대 수비수를 등지고 순간적으로 돌아서서 공격으로 쇄도하는 플레이나 오프사이드를 뚫는 능력을 겸비하여 수비진에 위협을 주는 플레이를 한다. 또한 위치선정능력이 좋고 시야도 넓어 공간을 찾아들어가는 동료에게 곧잘 위협적인 전진패스를 연결한다. 이런 이유로 간혹 공격형 미드필더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아시아의 수준 낮은 팀들에게나 통하는 플레이며, 실제로 이동국이 아시아 무대 이상의 성인 경기에서 뚜렸한 성과를 내보인 적은 없다.

클럽 경력[편집]

포항 스틸러스[편집]

1998년 연고 팀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한 뒤, 그 해 K리그에서의 활약과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에 크게 공헌하여 신인상을 받게 되었다. 2000년 대한축구협회의 주도 하에 국내 유망주들의 해외 이적이 진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무릎 부상 치료차 독일에서 재활 중이었던 이동국은 2001년 1월 푸스발-분데스리가SV 베르더 브레멘로 6개월 임대 형식으로 이적하게 되었다.[3] 그러나 부상의 여파로 인해 SV 베르더 브레멘 구단에서 선수의 건강 상태에 대한 보호 차원으로 출장 기회를 제한하였으며, 이 때문에 월드컵 국가대표 선발에 대한 위기 의식으로 귀국을 결심하였고, 결국 6월 포항 스틸러스로 복귀하게 되었다. 그 뒤에 FA컵 2회 준우승 (2001년, 2002년)에 공헌하는 등 맹활약을 펼쳤지만, 거스 히딩크 감독은 그를 2002년 FIFA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하였다.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도 동메달에 그쳐 병역 면제 혜택을 받지 못하였다, 2003년 상무에 입단하기전 98년 11월 신체검사시 아버지 이길남씨가 병무청 직원에게 돈을 쥐어준 사실이 밝혀졌다. 서울지검 특수부에 따르면 이번사건은 당시 이씨가 병무청 7급 직원 김모씨에게 2,000만원을 주며 선처를 부탁했으나 현역판정을 받자 다시 1,700만원을 받았다는 것이 전말이다. 본인의 플레이 스타일도 적극적으로 바꾸고 정신적으로 성숙해져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며 2005년 군 복무를 마치고 포항 스틸러스로 복귀하였다.[4] 2004년 9월 19일 대전 시티즌과의 홈 경기에서 K리그 통산 46번째로 20-20클럽에 가입하였다.

미들즈브러[편집]

이후, 이동국은 2007년 1월 23일 프리미어리그미들즈브러에 입단하였다.[5] 포항 스틸러스 구단은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동국을 이적료 없이 이적시키기로 미들즈브러와 최종 합의했다. 이동국은 K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직행하게 된 첫 번째 선수가 되었다. 데뷔전에서 스튜어트 다우닝의 크로스를 발리슛으로 연결해 골대를 맞추는 등 초반의 인상적인 활약으로 눈에 띄었으나, 이후 골을 기록하지 못하며 현지에서 그리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다. 2시즌 동안 FA컵풋볼 리그 컵에서 1골씩밖에 넣지 못하고, 결국 2007-08 시즌이 끝나고 2008년 6월 30일을 끝으로 상호간에 계약을 해지하였다.[6] 또한 더 선지에서 뽑은 최악의 공격수에 꼽혀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동국과 함께 뽑힌 선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시절의 디에고 포를란리즈 유나이티드 시절의 토마스 브롤린 등이 있다.[7]

성남 일화 천마[편집]

K리그 복귀 를 타진하던 중, 하강세를 보이던 팀에 보탬이 될 것이라며 성남 일화 천마 구단 고위층이 영입에 적극 나섰다. 성남에 입단하기 전까지 대전 시티즌,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도 협상했다.[8] 하지만 리그 중위권인 대전 시티즌 보다는 상위권인 성남 일화 천마에 입단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여 2008년 7월 25일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했지만,[9] 많은 출전 기회를 살리지 못하였다. 시즌 후 팀이 신태용 감독 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그는 전력에서 배제되어 트레이드 카드로 올라가게 되었다.[10]

전북 현대 모터스[편집]

때마침 조재진J리그에 진출하게 되어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그의 영입을 타진하자 2009년 1월 10일 미드필더 김상식과 함께 문대성과 홍진섭을 상대로 전북 현대 모터스에 트레이드되었다.[11] 성남에서의 좋지 않은 모습 탓에 주변에서는 전북 최강희 감독의 지나친 모험수라는 우려도 있었으나 2009 K리그가 개막한 후 2라운드 대구 FC와의 경기에서 2골을 쏘아올리며 재기했고, 결국 29경기 20골로 득점왕을 차지하였다. 20골 이상의 득점왕은 K리그 4번째 기록이다.[12] 2009 K리그 대상에서 2009 시즌 MVP를 수상하였다.

12년 만에 월드컵에 출전하였던 2010년 시즌의 이동국은 늘어난 활동량에 비해 저조한 득점력을 보였다. 리그 28경기 12골을 기록하였으며, K리그 개인 통산 99호 골을 기록하였으나 이후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100호 골을 넣지 못해 다음 해인 2011년 시즌 3라운드 부산 아이파크와의 경기에서 100호 골, 101호 골을 넣어 아홉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13]

2011년 시즌에서 15도움을 기록하면서 도움왕에 선정되어 프로 데뷔 14년 만에 신인상(1998), MVP(2009), 득점상(2009) 등 K리그 역사상 최초로 4대 개인 타이틀을 모두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AFC 챔피언스리그 2011에서 팀은 준우승에 그쳤지만 이동국은 대회 9득점을 기록하여 득점왕과 대회 MVP를 차지한다.

2012년 3월 3일 개막전 성남 일화 천마와의 경기에서 전반 14분, 18분 연속 골을 터트려 우성용의 116골을 뛰어 넘은 117골을 기록, K리그 사상 최다 골 신기록을 세웠다. 이후 2012년 11월 4일 부산 아이파크과의 경기에서 두 골을 터뜨리며 K리그 통산 137골로 K리그 최다 골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2013년 7월 16일 대전 시티즌전에서는 K리그 통산 최다 연속 득점 기록인 8경기 연속 득점에 도전하였으나, 골을 넣는 데 실패하며 7경기 연속 득점에서 연속 득점 기록을 멈추었다.[14]

2014년 8월 16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전북 입단 이후 181경기 만에 100번째 골을 기록하였고 K리그 역사상 4번째로 한 구단에서 100골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15]

국가대표 경력[편집]

신인 시절 황선홍의 뒤를 이을 대형 스트라이커로 주목받았다. 1998년 5월 16일 자메이카와의 친선경기에서 후반 34분 황선홍과 교체되면서 처음으로 국가대표팀 경기에 데뷔했다. 이후, 1998 FIFA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되어 예선 2차전 네덜란드전에서 다비즈를 따돌리고 강력한 중거리 슛을 쏘아 강한 인상을 준 바 있다.

월드컵이 끝나고 청소년 대표팀, 올림픽 대표팀을 거치며 대표팀의 간판 스트라이커로 자리잡게 되고, 2000년 AFC 아시안컵에서 6골로 득점왕을 차지하였다.[16]

하지만 2002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엔트리에서 제외되어 큰 충격을 받았고,[17] 같은 해에 개최된 2002년 아시안 게임 축구 대표팀에서 주장을 맡아 분전했지만 준결승전 이란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이영표가 어이없게 실축하는 바람에 패하면서 끝내 병역 면제 혜택을 받지 못하여 결국 2003년 상무에 입대하였다.

2004년 새로 부임한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의 데뷔전이었던 바레인전에서 골을 기록하고, 2004년 AFC 아시안컵에서 4골을 기록하는 등 여러 좋은 장면을 연출하면서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의 눈도장을 찍었다. 2004년 12월 19일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열린 독일과의 친선 경기에서 멋진 터닝 슛으로 결승골을 넣어 팀의 3-1 승리를 이끌었다.[18] 이 골은 축구팬들이 뽑은 '2004년 최고의 골'로 선정되기도 했다.[19]

이후 아시안컵월드컵 지역예선을 통해 10골 넘게 기록하면서 '본프레레호의 황태자'로 확실하게 부활하였고,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본프레레 감독의 후임으로 임명된 후에도 대표팀에 소집되어 2006년 FIFA 월드컵 무대를 노렸지만 2006년 4월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입어 무릎 수술을 받기로 해 월드컵 본선에서의 활약이 끝내 좌절되었다.[20][21]

이후, 2007년 AFC 아시안컵 엔트리에 발탁되었으나,[22] 음주 파동에 휘말리게 되어 국가대표 1년 간 자격 정지 및 대한축구협회 주관 대회 2년 간 출전 정지의 중징계를 받았다.[23]

2009년, 징계 기간이 끝나고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자 일부 축구 팬들은 이동국의 대표팀 발탁을 바라는 목소리를 높였고 언론들도 이동국의 국가대표 발탁 여부를 조명하기 시작하였다. 대표팀의 허정무 감독은 "더 좋은 활약을 펼쳐야 한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밝히다가[24], 2009년 말 대표팀 평가전에 다시 발탁하였다[25].

재발탁 직후 대표팀 전술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8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다. 이후 4경기 3골을 넣었고, K리그에서도 개막 이후 5경기 동안 침묵하다가 AFC 챔피언스리그와 인천전에서 연속골(3경기 4골)을 넣는 등 절정의 몰아넣기를 과시했다.

이동국은 2010년 5월 16일 에콰도르전에서 전치 3주의 허벅지 부상을 당하여 월드컵 엔트리 합류 여부가 불투명하였으나 허정무 감독에 의해 2010년 FIFA 월드컵 국가대표 최종 엔트리 23명에 선발되었다.

조별 예선 두 번째 경기 아르헨티나전에서 후반전에 교체 출전하여 13분 간 뛰었다. 16강 우루과이전에서도 후반전에 김재성과 교체되어 34분 간 경기를 뛰었다. 후반 40분, 박지성이 연결해 준 패스를 받아 골키퍼와 1:1이 되는 결정적인 상황을 맞이했으나 수중전 상황에서 슛이 빗맞아 골키퍼 정면으로 굴러가 막혀 버리며 동점 골을 넣는데 실패했고 대한민국은 결국 1:2로 패해 8강 진출에 실패했다.

2011년 9~11월,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던 이동국을 외면하던 조광래 감독이 여론에 못 이긴 채 그를 발탁하고, 폴란드와의 평가전에서 이동국 맞춤 전술을 구사하겠다고 언론에 밝혔으나, 어울리지 않는 쓰리톱 전술로 후반전 시작과 함께 바로 경기장 밖으로 교체해 내보냈고, 그 다음 경기에서도 후반전 20여분만을 뛰었다. 이동국도 그 이후 대표팀 은퇴를 시사하는 트위터 글을 남기기도 했다.

2011년 12월, 최강희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된 후 부름을 받았고 2012년 2월 25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친선경기에 이동국은 선발로 출전하여 2골을 넣어 최강희 감독의 데뷔전 승리를 이끌었다. 2010년 3월 3일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 이후 약 2년 만에 나온 골이었다.

2012년 2월 2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쿠웨이트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후반전에 선제골을 기록하였다. 2012년 6월 9일 201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카타르와의 경기에서는 김신욱의 골을 어시스트하였으며, 2012년 9월 11일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는 1:1 상황에서 역전골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전에서 골을 기록한 이외에는 부진한 플레이로 인해 다음 이란과의 경기에서는 엔트리에서 제외됐으며, 이후 K리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최강희호에 재승선하여 호주와의 친선경기에서 발리슛으로 골을 기록하였다.

이후 2013년 6월까지 계속된 카타르, 레바논, 우즈베키스탄, 이란과의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에서 부동의 원톱으로 경기에 나섰다. 그러나 3월 26일 카타르와의 경기에서 손흥민의 골을 어시스트한 것 이외에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였고, 레바논전에서는 결정적인 골키퍼와의 1대1 찬스를 놓쳐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하였다. 당시의 대표팀의 전반적인 경기력 하락과 맞물려 최전방 공격을 책임진 이동국은 저조한 득점력의 원흉으로 지목되었으며, 6월 18일 이란전에서도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하여 패배를 지켜보아야 했다. 이후 홍명보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이동국은 대표팀에서 제외되었고, 브라질 월드컵 최종 명단에는 기존에 뽑혔던 선수들로 구성하고 깜짝 발탁은 없다는 홍명보 감독의 인터뷰로 인해 브라질 월드컵 출전은 사실상 좌절되었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동양 선수 중 드물게 좋은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고 등지는 플레이를 선호하며 상체 페인팅이 특기 중 하나이다. 2선으로 내려와서 동료들과 연계하는 플레이를 많이 하며, 시야가 있어 원터치나 로빙으로 패스를 구사할 수 있다는 평가이다.[26][27]

그 외[편집]

2005년에는 박주영, 이관우와 함께 K리그 올스타전 홍보 포스터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28]

2005년 12월, 미스코리아 출신 이수진과 결혼하여[29] 2007년 8월 쌍둥이 딸이 태어났다.[30]

2005년 12월 차두리와 함께 코카콜라 TV CF를 찍었는데,[31] 공교롭게도 두 선수 모두 2006년 FIFA 월드컵 무대 입성이 좌절되었고, 이에 축구 팬들에 의해 '코카콜라의 저주'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하였다.[32]

2009년 3월 15일 K리그 2라운드 대구 FC와의 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였지만 코너킥 깃발을 차는 골 세러모니 때문에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기도 했다.[33]

2010년 4월 20일에 그의 처형 이윤희 씨가 은지원과 결혼하면서 은지원과 동서지간이 되었으나, 2012년 8월에 이윤희 씨가 은지원과 이혼하면서 끝을 맺었으며, 2012년 1월 1일에 방송된 1박 2일 2012년 신년특집 '친구야, 우리 함께 가자'에 은지원, 이근호와 함께 출연하였다.

2012년 1월 23일 방송된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하였다.

2014년 11월에 아들이 태어났다. (1남 4녀)

기록[편집]

클럽[편집]

2014년 10월 21일 기준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국내 컵 리그 컵 대륙 대회 통산
출장 득점 출장 득점 출장 득점 출장 득점 출장 득점
대한민국 리그 FA컵 리그컵 AFC 통산
1998 포항 스틸러스 K리그 15 7 0 0 9 4 - 24 11
1999 15 7 0 0 4 1 - 19 8
2000 7 4 0 0 1 0 - 8 4
독일 리그 DFB-포칼 리가포칼 UEFA 통산
2000-01 베르더 브레멘 분데스리가 7 0 0 0 - 0 0 6 0
대한민국 리그 FA컵 리그컵 AFC 통산
2001 포항 스틸러스 K리그 17 3 2 1 0 0 - 17 3
2002 21 7 4 3 0 0 - 21 7
2003 광주 상무 불사조 27 11 0 0 - - 27 11
2004 19 1 2 0 4 3 - 25 4
2005 0 0 0 0 1 0 - 1 0
포항 스틸러스 17 3 3 0 7 4 - 27 7
2006 10 7 0 0 0 0 - 10 7
잉글랜드 리그 FA컵 리그컵 UEFA 통산
2006-07 미들즈브러 프리미어리그 9 0 2 0 0 0 - 11 0
2007-08 14 0 2 1 2 1 - 18 2
대한민국 리그 FA컵 리그컵 AFC 통산
2008 성남 일화 천마 K리그 10 2 0 0 3 0 - 13 2
2009 전북 현대 모터스 29 21 4 4 3 1 - 36 26
2010 28 12 2 0 2 1 8 4 38 17
2011 29 16 1 0 0 0 8 9 38 25
2012 40 26 2 2 - 6 4 47 31
2013 K리그 클래식 30 13 2 2 - 4 3 34 16
2014 29 13 1 0 - 6 3 35 16
통산 대한민국 343 153 22 12 34 14 32 23 431 202
독일 7 0 0 0 - 0 0 6 0
잉글랜드 23 0 4 1 2 1 - 29 2
종합 372 153 26 13 36 15 32 23 466 204

국가대표 득점[편집]

2014년 9월 5일 기준

수상[편집]

클럽[편집]

대한민국 포항 스틸러스[편집]

대한민국 전북 현대 모터스[편집]

국가대표[편집]

개인[편집]

주석[편집]

  1. 노주환. "이동국, 역술인의 도움으로 한자 이름 개명 http://dcimg2.dcinside.com/viewimage.php?id=2bb4c32e&no=29bcc427b18a77a16fb3dab004c86b6f01720db71ff8b167c8267cd33ee6e7de07ea4b377de18de4292afb2e218187d6e620502f4ccc출판사=스포츠조선", 2007년 8월 13일 작성. 단, 호적상의 이름을 바꾼 것은 아님.
  2. 이해준 기자. "고졸 선수들, 병역 연기 위해 대학 입학", 《일간스포츠》, 2007년 9월 16일 작성. 2009년 11월 16일 확인.
  3. 박용철. "이동국, 獨브레멘 입단 확정", 《한국일보》, 2001년 1월 10일 작성.
  4. 최원창. "이동국, 2년간 5억+a 초특급대우 포항 등록", 《조이뉴스24》, 2005년 4월 1일 작성.
  5. 서호정. "이동국, EPL 미들즈브러 진출 확정", 《대한축구협회》, 2007년 1월 23일 작성.
  6. "미들즈브러, 이동국 방출 공식 발표…"일본·독일행 유력 "".
  7. 한준. "sa_uniq=20080514072222 英 신문, '이동국은 EPL 사상 최악의 공격수'", 《스포탈코리아》, 2008년 5월 14일 작성.
  8. 전광열. "이동국 우여곡절 끝에 성남 입단...연봉 4억", 《스포츠경향》, 2008년 7월 30일 작성.
  9. 윤신욱. "이동국, K리그 성남 입단…계약 기간 1년 5개월", 《마이데일리》, 2008년 7월 30일 작성.
  10. 김동욱. "이동국, 성남과 결별…구단 공식 통보 받아", 《노컷뉴스》, 2008년 12월 31일 작성.
  11. 김삼우. "이동국·김상식, 전북 입단...문대성·홍진섭과 트레이드", 《이데일리》, 2009년 1월 10일 작성.
  12. 조수현. "오늘의 스포츠 (이동국 득점왕 외)", 《연합뉴스》, 2009년 11월 2일 작성. 2009년 11월 16일 확인.
  13. 박린. "'이동국 100호 골' 전북, 2연승 질주", 《세계일보》, 2011년 3월 20일 작성.
  14. 김준영. "이동국 연속골 불발…7경기서 기록 멈춰", 《세계일보》, 2013년 7월 16일 작성.
  15. 김준영. "이동국, 전북에서 통산 100호 골", 《YTN》, 2014년 8월 17일 작성.
  16. 김준동. "결승골 이동국…득점왕 등극", 《국민일보》, 2000년 10월 30일 작성.
  17. 라동철. "안정환 합류 이동국 탈락… 월드컵 엔트리 23명 확정", 《국민일보》, 2002년 4월 30일 작성.
  18. "한국 축구, 전차군단 격파…'3골 축포 쐈다'", 《마이데일리》, 2004년 12월 19일 작성.
  19. 이상헌. "독일전 이동국 골, 네티즌이 뽑은 2004 최고의 골에 선정", 《대한축구협회》, 2004년 12월 28일 작성.
  20. 김현기. "이동국 '십자인대 파열 진단'…월드컵 참가 적신호", 《마이데일리》, 2006년 4월 10일 작성.
  21. 배영은. "이동국, 끝내 월드컵 출전 좌절...무릎 수술키로", 《조이뉴스24》, 2006년 4월 13일 작성.
  22. 배진경. "아시안컵 최종 엔트리 발표.. 이동국 발탁-박주영 예비-안정환 탈락", 《스포탈코리아》, 2007년 6월 15일 작성.[ ]
  23. 김종국. "이운재 등 음주 파문 선수 4명 징계 확정, 대표팀 자격 1년간 상실", 《마이데일리》, 2007년 11월 2일 작성.
  24. 김진회. "허정무 감독 “이동국 재발탁, 지켜봐야 한다”", 《동아일보》, 2009년 7월 6일 작성.
  25. 이상규 객원기자. "펄펄 날던 이동국·이근호 ´이유 있는 침묵´", 《데일리안》, 2009년 11월 16일 작성. 2009년 11월 16일 확인.
  26. 김지한. "'전매특허' 발리슛으로 희망 쏜 이동국, 한 방에 끝냈다 다만 가슴으로 공을 받는 능력은 준수한 것에 비해, 공이 발로 오는 경우의 퍼스트 터치가 부정확하다는게 흠이다. 또한 원톱 스트라이커의 포지션을 수행하지만, 좋은 체격 조건에도 불구하고, 몸싸움으로 상대 수비수들과 비비는 플레이를 하기보다는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플레이를 즐겨한다. 드리블이 좋지 않다는 평을 받으며 비교적 느린편이다 url=http://www.xportsnews.com/tabid/92/EntryID/113466/language/ko-KR/Default.aspx", 《엑스포츠뉴스》, 2010년 3월 4일 작성. [깨진 링크]
  27. 심재훈. "프로축구 황선홍, "내 후계자는 이동국"", 《스포츠서울》, 2003년 2월 12일 작성.
  28. 김종력. "박주영 이동국, 올스타전 홍보 포스터 모델", 《조이뉴스24》, 2005년 8월 12일 작성.
  29. 김현기. "이동국, 미스코리아 이수진씨와 백년가약", 《마이데일리》, 2005년 12월 18일 작성.
  30. 박지은. "이동국, 마침내 '쌍둥이 아빠' 됐다", 《노컷뉴스》, 2007년 8월 14일 작성.
  31. 김기범. "이동국 차두리 코카콜라 동반CF", 《스포츠투데이》, 2005년 12월 26일 작성.
  32. "펠레·바이킹·골대·중국·푸마·코카콜라의 공통점은?", 《한겨레》, 2006년 6월 21일 작성.
  33. 윤신욱. "'터졌다!' 이동국, 대구전 2골…'과도한 세리머니? 추가골 이후 퇴장'", 《마이데일리》, 2009년 3월 15일 작성.

바깥 고리[편집]

이 전
이란 알리 다에이
제12대 AFC 아시안컵 득점왕
2000년
다 음
 바레인 알라 후바일
이란 알리 카리미
 
이 전
오스트레일리아 사샤
제31대 AFC 챔피언스리그 MVP
2011년
다 음
 대한민국 이근호 
이 전
브라질 호세 모따
제31대 AFC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2011년
다 음
 브라질 히카르두 올리베이라 
이 전
대한민국 신진원
제14대 K리그 신인선수상
1998년
다 음
 대한민국 이성재 
이 전
대한민국 이운재
제27대 K리그 MVP
2009년
다 음
 대한민국 김은중 
이 전
대한민국 김은중
제29대 K리그 MVP
2011년
다 음
 몬테네그로 데얀 
이 전
브라질 두두
제27대 K리그 득점왕
2009년
다 음
 대한민국 유병수 
이 전
대한민국 구자철
제29대 K리그 도움왕
2011년
다 음
 콜롬비아 몰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