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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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원
(徐正源)
개인 정보
로마자 표기 Seo Jung-Won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출생 1970년 12월 17일(1970-12-17) (42세)

대한민국 대한민국 경기도 광주군

173cm
포지션 감독 (과거 윙어, 공격수)
클럽 정보
현 소속팀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
청소년 클럽
1990-1991 대한민국 고려대학교
클럽1
연도 클럽 출장수 (골)
1992-1995
1996-1997
1998
1999-2004
2005
2006-2007
대한민국 LG 치타스
대한민국 안양 LG 치타스
프랑스 RC 스트라스부르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
오스트리아 SV 잘츠부르크
오스트리아 SV 리트
033 0(6)
033 0(7)
017 0(4)
143 (36)
012 0(2)
054 0(9)
국가대표팀2
1990-2001 대한민국 대한민국 087 (16)
팀 감독/코치
2009
2009-2010
2010-2011
2012
2013-
대한민국 대한민국 U-20 (코치)
대한민국 대한민국 올림픽 (코치)
대한민국 대한민국 (코치)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석 코치)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

1성인 클럽 출장수와 골은 정규 리그 기록만 세며,
2008년 1월 1일 기준입니다.
2국가대표팀의 출장수와 골은
2008년 1월 1일 기준입니다.

메달 기록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축구
아시안 게임
1990 베이징 축구

서정원(徐正源, 1970년 12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감독이다.

목차

개요 [편집]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출생으로 남한산초등학교, 연초중학교, 거제고등학교, 고려대학교를 졸업하였다. 프랑스 르샹피오나에서 활약할 당시, 프랑스 사람들이 서정원의 성을 프랑스식으로 읽어 '세오(Seo)'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100m를 11초대에 뛰는 빠른 스피드 때문에 '날쌘돌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 양발에 모두 능했으며 젊은 시절에는 골을 쉽게 넣었고 나이가 들면서 스피드는 약간 줄었지만 창의성 있는 득점으로 멋진 골들을 뽑아내며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해외진출 설 [편집]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스웨덴전 이 후, FC 바르셀로나에게 영입 제의를 받았던 것과 바이어 04 레버쿠젠 을 비롯한 독일 분데스리가 팀들에게 영입 제의를 받았다. [1]

그는 군 문제와 당시 국내 축구 제도에서는 구단이 선수의 권리를 모두 가졌던 올바르지 못한 제도에 의해 LG 치타스가 서정원의 해외 진출에 대해 이적료가 적다는 이유로 거부를 하면서 피해를 봤다.

이것이 무산되었고 스트라스부르 이후 감독 불화로 국내 복귀를 하기 전에도 큰 구단으로는 발렌시아 CF, 바이에른 뮌헨의 러브콜도 받았지만 당시 에이전트 제도가 미숙했던 관계로 이적이 쉽지 않았다.

1997년에는 벤피카가 배번 9번을 주며 영입 제의를 했고 벤피카 선수단에 합류해서 함께 훈련을 할 정도로 이적이 확정됐지만 벤피카가 당시 리그에서 성적이 신통치 않았던 이유로 서정원이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뛰지 않는 조건을 부여했는데 당시 감독이었던 차범근도 월드컵 진출을 위해 팀의 핵심 멤버중 1명이었던 서정원을 붙잡으려 했다. 그로인해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차범근은 대한축구협회의 이적동의서를 써주지 말라고 했으며 이로인해 무산되었다. 이 당시 차범근은 언론사 인터뷰에서 서정원이 벤피카에 입단테스트를 구걸하러 갔다고 주장했다. 포르투갈의 축구 영웅 에우제비오2009년홍명보를 만나서 서정원의 안부를 물었다는 사례를 볼 수 있듯이 그의 벤피카행은 확정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차범근은 신문사와 방송사 인터뷰에서 "한국 축구의 수준은 높아졌습니다. 굳이 포르투갈 구단에 입단을 구걸할 필요가 있습니까?"라고 발언하였다. 당시에는 해외 축구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몰랐지만 지금와서 보면 차범근씨의 처신은 매우 잘못되었던 사건이었다. 그의 발언은 거짓이었던 것이다. 그런 행동 때문에 서정원의 골수 팬들은 아직도 차범근을 그닥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사건 이후로 스트라스부르에 우여곡절 진출했었지만 이 사건이 아쉬움을 주는 이유는 안정환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FC 메스, MSV 뒤스부르크에서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골든골을 기록하고 페루자 칼초에서 방출된 이후로 선수를 정말로 원하고 대우해줄 수 있는 팀에 가지 못했던 이유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또한 팬들에게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진출 기회가 무산된게 해외 진출 무산 사례에서 제일 손꼽힌다.

축구인 생활 [편집]

선수 생활 [편집]

1992년 LG 치타스 (현 FC 서울)에 입단하며 K리그에 데뷔하여, 1997년 아디다스 컵 득점왕에 올랐다. 군복무는 1994년 4월 11일 방위로 입대하였는데 축구는 상무 선수단에 속해서 훈련을 했기 때문에 당시 상무에는 서정원과 박태하,박정혁,최문식,정광석,강철,최은성등을 보유하였다. 18개월간의 복무기간을 마치고 1995년 10월 소집이 해제되었으며 이 기간 주말 LG 치타스동대문운동장 홈경기에 출전하였다.[2]

1998년 1월 7일, 이적료 110만불에 프랑스 르샹피오나RC 스트라스부르로 이적하여 활약하였다. 데뷔전이었던 올림피크 리옹전에서 득점을 기록하는등 그의 활약으로 스트라스부르는 강등권에서 벗어나는데 일조했다.

하지만 다음 시즌때 르 로이 감독이 부임하게 되고 동양인인 서정원은 이유없이 벤치에 머물렀다. 그는 외국인 선수로는 아프리카 선수들만 중용했다. 결국 구단 측은 서정원에게 스위스 슈퍼리그로의 임대를 제한했지만 당시 젊었던 서정원은 젊은 혈기의 자존심의 상처를 입었다는 생각으로 무단으로 가족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사건이 불화가 되자 결국 인종차별의 감독 불화로 프랑스를 떠나게 된다. (실제로 서정원의 팀 동료였던 AS 로마에서 활약했던 올리비에 다쿠르, 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했던 발레리앙 이스마엘등의 유능한 인재들도 이 당시 스트라스부르를 떠났다.)

이후 1999년 대한민국으로 복귀하였으나, 그도 가정이 있었고 선수 본인도 밝히진 않았지만 과거 LG 치타스 구단 수뇌부들과의 골이 깊었던 점이 있는 등 여러가지 사정으로 당초 복귀를 약속했던 안양 LG 치타스가 아닌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복귀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안양 LG 치타스 간의 지지대 더비가 형성되었다.) 서정원은 당초 그를 주시하던 유럽 구단들이 있었기 때문에 국내에서 다시 유럽으로 진출하려고 했으나 불운하게도 십자인대 부상으로 국내에 계속 머무르게 된다. 한편, 안양 LG 치타스 측은 당시 약속이행을 조건으로 지급했던 이적료의 절반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서정원측이 이면계약을 이유로 이것을 거부하면서, 법정 공방이 거듭되었으나 2004년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 따라 서정원측이 구단측에 금액을 보상하는 것으로 마무리지어졌다.

1999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한 이후, 서정원은 맹활약을 거듭하며 팀의 K-리그 2회 우승 (1999년, 2004년)과 2001년2002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2연패, 2002년 FA컵 우승에 일조하였다. 특히, 2002년 FA컵 당시 대회 MVP를 받았으며,[3] 2003년 10월 26일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 K리그 통산 42번째로 20-20클럽에 가입하였고, 2002년에는 팀의 주장을 맡기도 했다. 2005년,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의 SV 잘츠부르크 (현 FC 레드 불 잘츠부르크)에 입단하면서 다시 한 번 유럽의 문을 두드렸다.[4] 그 해 플레잉코치 계약을 맺고 SV 리트로 다시 이적하였고[5], 팀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쳐 2005년 말에는 오스트리아의 한 유력 일간지에서 '올해의 최고 선수' 로 선정되었고, 오스트리아의 한 유력 스포츠 주간지에서 리그 내 모든 선수 가운데 평점 1위를 받기도 하였으며,[6] 05-06 시즌이 끝난 뒤에는 오스트리아의 한 유력 스포츠 전문 주간지에서 '오스트리아 최우수선수'로 선정되기도 하였다.[7] 2006년, 팀의 UEFA 인터토토컵 우승에 일조하여 팀의 사상 첫 UEFA컵 진출에 공헌하였고,[8] 2006-07시즌 작년에 2부에서 올라온 팀을 4위까지 올리는 공헌을 하였다.

그에게 독일 분데스리가 1부, 2부에 팀들까지 관심을 보였지만 지도자 생활 공부를 위하여 심사숙고 끝에 2007년 5월 SV 리트와 결별한 뒤,[9] 그 해 7월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유럽에 남아 지도자 수업을 받기로 결정하였다.[10]

국가 대표 생활 [편집]

1990년 7월 27일, 다이너스티컵에서 일본과의 경기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1990년 FIFA 월드컵, 1994년 FIFA 월드컵, 1998년 FIFA 월드컵 등에 참가하였다. 특히, 1994년 FIFA 월드컵에는 스페인과의 조별 예선 첫 번째 경기에서는 후반 막판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2001년 4월 26일, 이집트와의 87번째 A매치 경기가 자신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가 되었다. 2007년 8월 22일,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 하프타임에 은퇴식을 가져 공식적으로 은퇴하였다.[11]

지도자 경력 [편집]

서정원은 2009년에 취임한 홍명보 감독 하에 김태영, 신의손과 함께 대한민국 U-20 청소년 대표팀 코치로 임명되었다. [12]2009년 FIFA U-20 월드컵이 끝나고 홍명보 감독이 올림픽 대표팀 감독에 취임함에 따라 그 역시 올림픽 대표팀의 코치가 되었다.

그 후,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인 조광래가 국가대표팀 코치로 승격시켜 합류했으나 2012년 조광래의 해임으로 인해서 국가대표팀 코치직을 사임했다.

2012년부터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수석 코치를 맡았다가 2012 시즌 종료 후 윤성효 감독의 성적 부진으로 인한 자진사퇴로 인해 수원의 제4대 감독으로 승격하였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준비하였을 때 함께하였던 데트마어 크라머 전 올림픽 대표팀 감독은 그의 멘토이기도 하다.[13]

플레이 스타일 [편집]

빠른 스피드를 살린 공격이 특기이며, 이에 준하여 '날쌘돌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경력 [편집]

선수 경력 [편집]

국가 대표 경력 [편집]

지도자 경력 [편집]

방송 [편집]

수상 [편집]

선수 [편집]

대한민국 LG 치타스 [편집]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 [편집]

오스트리아 SV 리트 [편집]

개인 [편집]

주석 [편집]

  1. 월드컵 人터뷰5 -서정원上 “바르샤, 벤피카 진출 좌절이 가장 아쉬워”
  2. 군제대 서정원 월드컵돌파 앞장선다”, 《동아일보》, 1995년 10월 29일 작성.
  3. 대회 MVP 서정원 - "선수들의 의욕이 FA컵 우승의 요인"
  4. 서정원, 잘츠부르크 이적, 17일 출국
  5. 서정원, 오스트리아 리트와 플레잉코치 계약
  6. 서정원, 오스트리아 '올해의 축구선수' 선정
  7. 서정원, '오스트리아 최우수선수'
  8. 서정원 활약 리트, UI컵 통과...UEFA컵 최종 예선 진출
  9. 서정원 리트와 결별, 제2의 길 모색
  10. 서정원 은퇴 “유럽서 지도자 수업”
  11. 굿바이! 서정원 “나를 아껴준 팬이 있어 행복했다”
  12. 홍명보 사단, 내달 2일 뜬다… 서정원은 7월 합류할 듯
  13. 스승 크라머가 제자 서정원에게…"네가 원하는 그림대로 가라" - 스포츠서울

바깥 고리 [편집]

전 임
대한민국 윤성효
제4대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
2012년 12월 12일 - 현재
후 임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