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현대 모터스 FC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넘어옴)
이동: 둘러보기, 검색
전북 현대 모터스 FC
전체 이름 전북 현대 모터스 축구단
별칭 녹색전사, 닥치고 공격
마스코트 초아, 초니
설립 연도 1994년 전북 다이노스로 창단
연고지 전라북도
연맹 한국프로축구연맹
경기장 전주월드컵경기장
수용 인원 42,477명
소유주 대한민국 현대자동차
구단주 대한민국 정의선
대표이사 대한민국 김충호
단장 대한민국 이철근
감독 대한민국 최강희
리그 대한민국 K리그 클래식
2014시즌 우승
웹사이트 공식 웹사이트
원정
우승
K League Classic Trophy.pngK League Classic Trophy.pngK League Classic Trophy.png Korean FA Cup Trophy.pngKorean FA Cup Trophy.pngKorean FA Cup Trophy.png AFC Champions League Trophy.png
국내 리그 3 K리그 클래식
국내 대회 3 FA컵
1 슈퍼컵
국제 대회 1 AFC 챔피언스리그
Soccerball current event.svg 현재 시즌

전북 현대 모터스 FC(Jeonbuk Hyundai Motors Football Club)는 전라북도를 연고지로 하는 대한민국의 프로 축구단이며, 현재 K리그 클래식에 속해있다. 법적으로는 주식회사이며 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사이다.

모태라고 볼 수 있는 전북 버팔로1994 시즌K리그에 참가하였으나 재정 문제로 시즌 후 공식적으로 해체가 되었고, 이후 현대자동차가 주축이 되어 전북 다이노스 축구단이란 이름으로 창단되었다. 2000년부터 현재의 명칭으로 바꾸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의하여 전북 버팔로와는 별개의 구단이라고 규정되어 역사와 기록을 승계하지 않고 있으며 클럽의 공식적인 연혁 또한 전북 다이노스의 창단부터 시작되고 있다.

2000년대 이후로 K리그에서 가장 성공한 클럽 중 하나로 꼽히는 전북 현대 모터스는 2009, 2011 K리그 우승, 2000년, 2003년, 2005년 FA컵 우승, 2004년 슈퍼컵 우승, 2011년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002년 아시안 컵 위너스 컵 준우승, 2004년 AFC 챔피언스리그 4강, 2006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승과 더불어 2006년 FIFA 클럽 월드컵에도 참가해 5위에 입상했다. 2009 시즌 K리그 우승은 호남 지역팀 최초 우승이라는데에 큰 의의가 있다.

역사[편집]

모태[편집]

지금의 전북 현대 모터스의 모태는 전북 버팔로에서 찾을 수 있다. 1993년 1월 16일 전라스포츠클럽에 의해 창단되고, 스포츠 용품 업체 푸마에 의해 후원 약속을 받은 완산 푸마는 대한민국 프로축구에서 지역연고에 기반을 두고 클럽제도 정착을 시도한 최초의 클럽이었다. 그러나 당시 축구 클럽 제도에 회의적인 축구계 여론과 창단 전, 후 재정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같은 해 3월 선수등록에 실패하였고 스폰서가 제우정보로, 구단주가 문수기 보배 대표이사로 변경되어 팀명까지 제우 엑스터로 바뀌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와 같은 우여곡절을 겪은 후 1994년 2월 16일 팀명을 전북 버팔로로 변경한 후 K리그 1994 시즌에 참가하게 되었다. 초대 감독으로는 김기복이 선임되었다. 1994 시즌 전북 버팔로는 점차 재정이 바닥나기 시작하면서 시즌 말 인수자가 나올 때까지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의해 위탁 운영되는 상황까지 맞이하였다. 시즌이 끝날 때까지 인수 희망자는 나오지 않았고 결국 일화 천마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와해될 위기에 처했다.[1]

창단과 초창기 (1994 ~ 1999)[편집]

1994년 11월 현양이 10억원을 기본 자본금으로, 전라북도 완주군에 상용차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가 20억 규모의 홍보 스폰서 형식으로 지원하여 독립 법인체인 전북 다이노스로 창단을 선언하였고,[2] 차경복을 초대 감독으로 내정하였다.[3] 이와중에 전북 다이노스는 전북 버팔로 선수들을 주축으로 하는 대신 선별하여 스카우트 하겠다는 방침을 세웠고, 이에 전북 버팔로 선수들은 모든 선수들이 구제되지 않을 시에는 선수 전원이 전북 다이노스로의 입단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4] 공식 창단식은 1994년 12월 12일에 이루어졌다.[5]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공식적으로 전북 버팔로를 해체한 구단으로 규정하여 모든 역사와 통계 기록을 버팔로로 따로 분리하고 있으며 전북 현대 모터스의 역사와 공식 통계 기록은 1994년 12월 12일 공식 창단식을 한 이후 리그에 참가한 1995년부터 계산되고 있다.

전북 다이노스의 리그 첫 경기는 같은 신생 팀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였고, 3-0 승리를 거두었다.[6] 이후로 전북은 신인이자 창단 멤버인 김도훈을 앞세워 승점을 쌓는데 노력하였다.[7][8] 그러나 첫 시즌의 결과물은 8개 팀 중 7위였다. 1996 시즌에는 9개 팀 중 5위에 머물렀고, 차경복 감독이 자진 사퇴하자 최만희 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승격되었다.[9] 1997년에는 "전북 현대 다이노스"로 구단 명칭을 변경하였다.[10] 이후 1999년 5월현대자동차가 구단의 지분을 인수해 완전한 직영 체제로 전환하였다.[11] 그 해에 최초로 FA컵 결승전에 올랐으나, 결승전에서 천안 일화 천마에게 패배하여 창단 후 첫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12]

전북 현대 모터스로의 변경 및 활약 (2000 ~ 2004)[편집]

2000년 5월 31일, 팀명을 "전북 현대 모터스"로 개명하였다.[13] 2000 시즌을 앞두고 비셀 고베로 떠났던 김도훈이 K리그 최다 연봉을 받으며 전북 현대 다이노스로 복귀했다.[14] 김도훈은 초반 8경기까지 단 1골 만을 넣어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6월 22일 대전 시티즌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여 논란을 잠재웠다.[15] 김도훈의 활약으로 전북 현대 모터스는 창단 이래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다.[16] 또한 FA컵에서는 2년 연속 결승에 올랐는데, 상대 또한 작년과 같은 팀인 성남 일화 천마를 만나게 되었다(성남은 천안에서 연고지를 옮긴 후였다). 이 경기에서 전북은 2-0으로 승리를 거두어 전 시즌의 복수와 함께 창단 이후 첫 우승을 달성하게 되었다.[17]

전 시즌과의 성공과는 다르게 2001 시즌에는 중반까지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였고, 결국 7월 18일 최만희 감독이 경질당하였다.[18] 공백을 메꾸기 위해 남대식 기술 고문이 감독 대행으로 팀을 이끌었고,[19] 이후 10월 4일 조윤환 감독이 새롭게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였으나,[20] 최종적으로 10개 팀 중 9위를 기록하는 부진을 이어갔다. 2002 시즌에도 7위를 기록하여 하위권을 탈출하지 못하였으나, 2000년 FA컵 우승 자격으로 출전한 2001-02 아시안 컵 위너스컵에서 결승전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21] 그러나 결승전에서 연장전 끝에 알힐랄에게 1-2로 패배하면서 준우승에 머물렀다.[22]

본격적으로 조윤환 감독이 이끄는 2003 시즌에는 5위를 기록하였다. 비록 1위 성남 일화 천마의 승점이 91점으로 압도적이었긴 했지만 2위 울산 현대 호랑이의 승점은 73점으로 69점을 얻은 전북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한 해였다. 게다가 FA컵에서도 전남 드래곤즈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23] 2004 시즌 또한 전기 리그에서 2위를 기록하며 호조를 보였다. 반면 후기 리그에서는 꼴찌에서 2위라는 성적을 남기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는 불행을 겪었다. FA컵 우승으로 진출한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4강까지 올라갔으나 알이티하드에게 패배하였다.[24]

최강희 시대의 개막 (2005)[편집]

2005 시즌 중반에 조윤환 감독이 13개 팀 중 12위로 떨어지는 성적 부진으로 자진 사퇴하였다.[25] 그 뒤를 이어 대한민국 국가대표 코치를 맡고 있던 최강희를 감독으로 선임하였다.[26] 그는 전북 현대 모터스의 감독직을 맡기 전까지 한번도 감독직을 맡은 경력이 없었다. 당시 팀의 상황은 선수들이 다른 팀으로 보내달라고 조르고 SK파, 주류, 비주류 등으로 갈라져 있는 등 최악이었다. 부임 후 리그에서 3연패를 기록하자 전북의 팬들은 감독 경험이 없어 그렇다고 비난하였다. 비록 후기 리그에 13개 팀 중 군인팀인 광주 상무 불사조에 이은 두 번째로 낮은 순위를 기록했지만 FA컵 8강에서 5년 동안 이기지 못했던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꺾고 결승까지 올라가 돌풍을 일으켰던 K2리그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를 제압하고 FA컵 우승을 거머쥐었다.[27]

역전의 명수, 강희대제 (2006)[편집]

2006 시즌 최강희 감독은 울산에서 최성국, 이천수 등에 밀려 벤치 신세였던 김형범과 카르로스(제칼로)를 데려오고, 호남대학교를 졸업한 염기훈도 영입하였다. 젊은 선수들로 선수단을 바꾼 그 해 전기리그에서 7위를 마크하였다.

FA컵 우승 자격으로 AFC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한 전북은 J리그 우승 팀 감바 오사카, 중국 슈퍼리그 우승 팀 다롄 스더, 베트남의 다낭과 E조에 배정 되었다. 감바 오사카와의 1차전에서는 1-2에서 후반 교체 투입된 김형범이 2골을 넣어 극적 역전승을 하였는데 이는 드라마의 시작일 뿐이었다. 조 1위만이 8강에 진출하기 때문에 꼭 이겨야 하는 다롄 스더와의 마지막 6차전에서도 실점하였다가 3골을 몰아넣어 승점 1점차로 진출하였다. 상하이 선화와의 8강 1차전에서는 주심의 석연찮은 판정으로 김형범과 보띠가 퇴장당하는 악재 속에 0-1로 패배하였다. 이어진 2차전에서 또 1실점을 하여 4강 진출을 위해서는 3골이 필요하게 되는 상황에서 거짓말처럼 제칼로의 멀티골, 염기훈, 정종관이 골을 몰아 넣으며 통합 4-3의 스코어로 4강에 진출하였다.

4강 1차전에서는 A3 챔피언스컵에서 감바 오사카를 6-0, 다롄 스더를 4-0으로 꺾은 바 있는 전년도 K리그 우승 팀 울산 현대 호랑이에게 2-3으로 패배하였지만 2차전에 또다시 4골을 몰아쳐 결승에 진출하게 된다. 연이어 극적인 승리를 거둔 전북은 ‘역전의 명수’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결승전에서는 쿠웨이트의 알카디시야를 물리치고 올라온 시리아알카라마와 대진하게 되었다.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1차전에서 염기훈과 보띠의 골로 2-0으로 승리하여 어렵지 않게 우승을 쟁취하는 듯했다. 홈스 칼레드 빈 알 왈리드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차전에서는 시리아 대통령까지 경기장에 나왔고 4만여 관중의 열기에 눌려 2골을 내주며 경기를 어렵게 풀어갔다. 하지만 경기 종료 3분전, 제칼로가 헤딩으로 골을 성공시켜 전북에 우승을 안겨주게 된다.[28]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성공을 지켜 본 중국 기자들이 청나라 시대의 강희제(康熙帝)의 한자어가 최강희의 이름과 같아 강희대제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AFC 챔피언스리그에 집중한 탓에 리그에서는 전, 후기리그 통합 11위에 그쳤다. FIFA 클럽 월드컵에서는 멕시코클럽 아메리카에 0-1로 지고 뉴질랜드오클랜드 시티에 3-0으로 승리하여 5위로 마감하였다.

명문으로의 도약 (2007 ~ 2008)[편집]

2007 시즌에는 마케도니아 리그에서 3시즌 연속 득점왕을 한 스테보를 영입했다. 광주와의 개막전에서 스테보가 경기 시작 50초만에 골을 넣어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중위권에 머물던 전북은 대구와의 경기에서 스테보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타 제주, 수원, 포항을 연이어 꺾으면서 3위로 진입하였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전년도 우승 팀 자격으로 자동으로 8강에 진출하여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와 맞붙게 되었다. 9월 19일 사이타마에서 1-2로 패하고, 9월 26일 전주 에서 열린 2차전에서 역전을 이루고자 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칼리 알 감디 주심의 노골적인 편파판정이 있었다. 전남 드래곤즈와 가와사키 프론탈레의 조별리그 경기에서도 편파판정을 한 전력이 있던 알 감디 주심은 전반 3분 우라와의 오프사이드에 이은 골을 인정했으며, 전반 21분 툴리오에게 반칙을 당한 정경호를 헐리웃액션을 했다며 퇴장시켰다.[29] 경기 종료 후 전북의 김재형은 주심에게 다가가 가운데 손가락 욕설을 하여 퇴장당했다. 0-2로 패하여 탈락하였고 여파가 리그에도 영향을 미쳐 4연속 무승부를 기록하며 순위가 가라앉아 결국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고 8위로 리그를 마감하였다.

2008 시즌 2월 전북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뉴캐슬 유나이티드로의 이적이 불발된 조재진을 영입하였다. 포항에서 최태욱 그리고 루이스도 영입하였다. 적극적인 전력 보강이 이루어져 우승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시즌 초반 1승 1무 6패로 꼴찌로 추락하고 말았다. 4년째 성과를 내지 못하는 최강희 감독에 시즌 중반 까지 계속 팬들이 비판하면서 경질론도 나오게 되었으나 최강희 감독은 직접 전북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려 ‘믿어 달라’고 하며 팬들의 비판을 잠재웠다.[1]

저는 전북을 지키면 안되는겁니까?

저는 영원히 전북감독을 하면 안되는거지요?

팀은 안으로 정말 좋아졌어요

젊어지고 가능성이 있는팀

(중략)

저도 가끔 꿈을 꿉니다

가슴에 별을 달고 축구판을 호령하는 모습

우리팬들의 영원한 숙제 리그우승도 꿈꾸고

다시한번 아챔 도전을해서 역사를 다시한번 써보자

2006년을 재현해보자

그런 꿈을 꿉니다

우승을 위하여 전북 구단 자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던 '2010 프로젝트'도 최강희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시즌 후반 순위를 끌어올리며 11월 9일 경남 FC 와의 리그 최종전에서 3-1 역전승을 거두어 6강 플레이오프에 6위로 턱걸이 하였다. 성남을 2-1로 이기고 울산과 대진하게 되었다. 이 때, 울산으로 이적했던 염기훈이 준플레이오프에서 전북을 탈락시키는 골을 넣고 ‘친정팀에게 골을 넣어 더 기쁘다’라고 말하여 전북 팬들의 공분을 사게 되었다. [30]조재진은 시즌 종료 후 감바 오사카로 이적하며 15억이라는 이적료를 전북에 안겨준다.

최강희 감독은 잦은 부상과 주전 경쟁에서 밀린 김형범을 영입하여 핵심 멤버로 키웠다. 또한 포항에서 따바레즈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린 국가대표 출신 최태욱을 2대2 트레이드로 영입하여 재기할 수 있게 하였고 수원에서 방출 당했던 루이스도 다시 K리그에 불러들여 뛰어난 활약을 이끌었다. 부상과 부진에 빠진 선수를 영입하여 능력을 다시 끌어내고 재기시키는 방식을 써와 재활공장장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31]

가슴에 별을 달고 (2009 ~ 2010)[편집]

2009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에서 성남 일화 천마로 돌아왔지만 부진하던 이동국신태용 감독의 팀 개편 으로 사실상 방출 당한 김상식을 2대2 트레이드로 영입하였다. 조재진을 이적시키며 얻은 돈으로 대구에서 에이스 역할을 하던 진경선, 하대성, 에닝요를 모두 영입하여 공수 모든 부분에 걸쳐 보강하였다.

경남 FC와의 개막전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5월 2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이동국이 해트트릭을 기록하여 완벽한 부활을 알렸다. 5월 9일 FC 서울에 2-0으로 승리하며 8경기 연속 무패로 1위로 등극하였다. 광주 상무, FC 서울과 엎치락 뒤치락 하는 1위 경쟁 레이스를 이어갔다. 9월 12일 서울에 1-2로 역전패하며 2위에 머물러 리그 내내 서울의 뒤만 바라보다가 10월 11일 강원에 3-1로 승리하며 다시 1위에 등극하였다. 리그 최종전 경남에 4-2로 승리하며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짓고 챔피언십 결승에 직행하였다. 더불어 이동국은 20골로 득점왕, 루이스가 12도움으로 도움왕에 오르고 최다승(17승), 최다 득점(58득), 최다 도움(41도움), 최다 연속 경기 득점(18경기)으로 타이틀을 독식하였다.

이어진 챔피언 결정전에선 인천 유나이티드, 전남 드래곤즈, 포항 스틸러스를 무전기 매직으로 연파하고 올라온 신태용이 이끌던 성남 일화 천마와 격돌하게 되었다. 12월 2일 모란에서 치러진 1차전에선 0-0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12월 6일 전주에서 치른 2차전에서 에닝요의 2골과 이동국의 PK골을 앞세워 김진용이 한 골을 만회한 성남에 승리를 거둬 창단 15년만의 첫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32] 전북은 12월 22일 K리그 대상 시상식장에서 베스트팀, 감독상(최강희), 도움왕(루이스)를 수상하였다. 또한 베스트 11에 이동국, 김상식, 최태욱, 에닝요가 선정되었다. 이동국은 MVP, 득점왕, 베스트 11, 팬타스틱 플레이어(FAN-tastic player)를 휩쓸어 유례없는 4관왕의 영광을 누렸다

2010 시즌 부산으로부터 강승조, 크로아티아 리그 득점왕 로브렉, 포항으로부터 박원재, 대구 FC로부터 펑샤오팅을 영입하였다. 첫 우승의 기세를 앞세워 전북은 리그, FA컵, 리그 컵, 챔피언스리그에서 전관왕을 목표로 삼았다. 수원과의 개막전에서는 에닝요가 2골을 넣으며 3-1로 승리하였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가시마 앤틀러스, 페르시푸라 자야푸라, 창춘 야타이와 F조에 배정 되어 조 2위로 진출하였다. 16강에서 애들레이드 원정에서 3-2로 이겼으나 8강에서 만난 알 샤밥와의 경기는 파상공세를 펼쳤음에도 골 결정력 부족과 침대 축구에 0-2로 패했다. 결국 사우디 원정에서 1-0까지 밖에 따라잡지 못해 탈락의 눈물을 떨궜다.

포스코 컵에서는 비 주전 위주로도 결승 까지 올랐으나 FC 서울에 0-3으로 패하며 우승컵을 놓쳤다. FA컵에서는 4강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0-2 패배하였다. 리그 최종전에서 수원에 5-1로 대승하며 리그 3위로 마쳤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 경남에 2-1로 승리하고, 준 플레이오프에서 성남에 1-0으로 승리하였으나 제주와의 플레이오프에서 0-1로 패하며 시즌을 무관으로 마감하였다. 그러나 이동국, 에닝요, 로브렉으로 이어지는 삼각 편대는 28경기에서 36골을 터뜨리며 전북을 리그 최고의 공격적인 팀으로 만들기에 충분하였다.[33]

닥치고 공격 (2011)[편집]

2011 시즌은 닥치고 공격의 파괴력이 절정에 달한 한 해였다. 이기고 있어도 공격, 한 명이 퇴장당했어도 공격을 외치던 전북의 팀 컬러는 상대팀에게 공포를 심어주었다. 이동국, 에닝요가 27골 20도움을 합작하고 경남 FC서 영입한 김동찬이 10골을 기록하였다. 부산 아이파크서 영입한 정성훈과 이승현, 베이징 궈안에서 영입한 황보원 등이 더블스쿼드를 구축하면서 정규리그 30경기에서 67득 32실의 성과로 리그를 제패하였다.

AFC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세레소 오사카를 6-1[34]로 이겨 아시아 무대에서도 닥공의 위력을 발휘한 전북은 2004년에 이어 알이티하드와 다시 준결승에서 마주하여 이번에는 3-2, 2-1 로 꺾고 전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이기고 올라온 알사드와 결승전을 치르게 되었다. 에닝요가 프리킥 선제골을 작렬하였으나 심우연이 자책골을 기록하고, 압둘 카데르 케이타에 역전골을 내주고 87분 정성훈의 슈팅이 포스트바를 맞는 등 알사드 선수들의 침대축구에 패색이 짙던 후반 추가시간에 이승현이 92분 극적인 동점골을 넣으면서 승부는 연장으로 이어졌다. 114분 에닝요의 코너킥이 알사드 수비수에 맞고 포스트바를 때리면서 불운은 이어졌고 승부차기에서 김동찬과 박원재가 연속으로 실축하면서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35] AFC에서는 우승한 알사드에 대해 침대축구도 전술이라는 말로 논란을 빚기도 하였다.[36]

이어진 K리그 챔피언십 결승에서는 포항 스틸러스를 꺾고 올라온 울산 현대를 만나 11월 30일 울산에서 2-1로 승리하였다. 1차전을 이긴 상황에서도 12월 4일 2차전에 공격적인 선수교체를 단행하다 설기현에 선제골을 얻어맞아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결국 에닝요의 페널티킥과 루이스의 골이 터지면서 2-1로 승리하여 닥공의 결실을 맺었다.[37] 우승과 함께 5월 21일 11R 강원전 1-0승리 이후 연속 무패행진을 22경기(14승 8무)로 기록하며 성남이 2007년 기록한 역대 최다 무패행진 기록과 타이를 이루는 성과도 얻었다.

이흥실 감독 대행 (2012)[편집]

조광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2011년 12월 8일에 경질된 후,[38] 대한축구협회는 전북을 황금기로 이끌던 최강희 감독에게 계속적인 추파를 던졌다. 최강희 감독은 그때마다 극구 거절했지만 끈질긴 설득 끝에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하였다.[39] 이후 그는 201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이 끝나는 2013년 6월까지만 대표팀을 이끌기로 약속하고 전북 현대 모터스를 떠났다.[40] 전북을 떠나면서 최강희 감독은 대표팀 지휘를 끝낸 후 전북으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였다.[41]

최강희 감독을 대신하여 그를 7년간 보좌해 왔던 이흥실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승격하였다.[42] 전북은 그 해 FA(자유계약) 최대어인 김정우, 이강진을 영입하였다. 수원행을 희망하여 이적한 서정진[43]을 대신해 칠레 대표팀 출신 드로겟도 영입하였다.

2012 시즌 초반 전북의 수비진 붕괴는 재앙수준이었다.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광저우 헝다와의 1차전에서 조성환(꼬리뼈 골절)과 임유환(코뼈 골절)이 부상을 당했다. 이는 1-5 패배의 원인이 되었다.[44] 심우연은 이어진 대전 시티즌과의 리그 2R에서 부상(갈비뼈 골절)당했다. 가시와 레이솔과의 예선 2차전에서 김정우를 원톱으로 최철순, 김상식, 진경선을 스리백으로 내세우는 파격을 감행했다가 1-5 패배가 재현되었다.[45] 리그 4R FC 서울전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남은 중앙 수비수인 이강진마저 부상(목 근육 파열)을 당했다. 결국 김상식과 정성훈이 센터백을 보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겪었다.[46] 결국, 이 경기에서 종료 직전 89분에 몰리나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지난 시즌부터 이어온 리그 최다 무패 기록이 25경기에서 종료 되었다.[47]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광저우 헝다와의 5차전에서는 경기 내내 일방적으로 밀리고 조성환이 퇴장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동국의 89분 역전골, 92분 쐐기골이 터지면서 3-1으로 승리하여 조 1위로 등극하였다.[48] 하지만 가시와 레이솔 과의 마지막 6차전에서 0-2로 패배하면서 16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센터백의 연이은 부상사태로 인해 리그 초반 8위까지 떨어지는 부진을 겪었으나 17R를 기점으로 1위로 등극하였다. 그러나 29R 스플릿 직전 FC 서울에 역전을 허용하여 17점차로 리그 우승을 내주고 말았다. FA컵에서도 후에 우승하는 포항 스틸러스에 8강전에서 2-3으로 패배함으로써 시즌을 무관으로 마쳤다. 그로 인해 이흥실 감독대행이 경질되고 피지컬 코치로 있던 파비우가 감독대행직을 이어 받게 되었다.[49]

돌아온 봉동 이장 (2013)[편집]

2013 시즌 전북은 인천 유나이티드로부터 정인환, 정혁, 이규로를, 대전 시티즌으로부터 케빈 오리스를, 광주 FC로부터 이승기 등을 대대적으로 영입하였다. 그러나 감독 경험이 없는 피지컬 코치를 대행에 앉힌 전북은 리그에서 예전만큼의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4~6위권을 전전하였다. AFC 챔피언스리그 에서는 작년에 이어 다시 같은 조가 된 광저우 헝다와 함께 우라와 레즈, 무앙통 유나이티드와 F조를 이뤘다. 우라와 레즈를 사이타마에서 3-1로 꺾어 2007년의 복수를 하는 동시에 득실차로 밀어내고 2위로 16강에 진출하였으나 또 다시 가시와 레이솔에게 홈 0-2, 원정 2-3[50]로 연패하며 탈락하였다. 파비오 감독 대행은 6승 3무 4패를 기록하여 5위로 대행직을 마쳤다. 임시로 뒤를 이은 신홍기 감독 대행은 6월 26일 수원에 4-5로 패하여 8위까지 추락하였다.

6월 19일, 대표팀 감독직을 내려 놓은 최강희는 어느 정도 휴식기를 가지고 7월 중에 복귀하고자 했으나 수원전을 지켜보고 휴식을 취소하였다. 6월 28일, 1년 6개월 만에 최강희 감독이 전북에 복귀하였다.[51] 복귀전인 경남전에서 4-0승리하고 다음 경기에서 성남에 2-3으로 지며 주춤하였지만 10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이끄며 3위까지 뛰어올랐다. 그 중 8월 26일 제주전에서는 3-0으로 이기며 케빈의 3번째 골로 기존 성남이 가지고 있던 기록(747경기)를 앞당겨 692경기만에 최단경기 팀 1000골을 달성하였다. 9월 8일 리그 1위 포항을 이기면 선두에 오를 기회를 맞았으나 0-3 스코어로 패배하며 4위로 하락하였다. 부산과 FA컵 4강전, 리그 경기를 2연승으로 장식하며 다시 승점 52점으로 포항과 승점이 같고 득실차에 밀린 2위로 올라서나 이어진 선두 포항과 3위 울산의 경기가 0-0으로 끝나 3위로 밀리게 된다. 10월 9일 선두 울산에 1-0으로 승리하나 포항에 득실차로 밀려 선두 등극에 실패한다. 세번이나 선두에 오를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이 눈 앞에서 놓쳤다. FA컵 결승에서 포항과 맞서 공격을 주도했으나 승부차기에서 두 번의 선방을 선보인 신화용에 가로막혀 준우승에 그친다. 연승가도를 달리며 선두로 치고 나가던 울산에 0-2, 포항에 1-2, 서울에 1-4로 연이어 패하며 승점 11점차로 벌어져 사실상 우승 경쟁 레이스에서 탈락한다. 3위 결정전이 된 서울과의 최종전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3위로 시즌을 마친다.

유니폼[편집]

전북의 유니폼은 세계 축구에서도 드문 형광 연두색을 사용한다. 1995년 첫 유니폼은 남보라색과 흰색, 녹색, 빨간색이 섞인 일명 색종이 유니폼이었다. 2000년 모기업 현대자동차의 영향으로 홈 킷이 상의 흰색, 하의 파란색으로 바뀌었으나 M.G.B의 요구로 반 시즌만에 녹색 계통으로 복귀하였다. 1999년은 풀색에 주황색 줄무늬의 유니폼이었고 2000~01년은 풀색에 흰색이 약간 가미된 형태였다. 2002~04년은 상하의 짙은 초록색이었고 2005년에는 상의는 짙은 초록색에 흰색 스트라이프가 있고 하의는 흰색인 디자인이었다. 최강희 감독은 2006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과정에서 선수들의 짙은 녹색 유니폼이 비를 맞으면서 어둡고 처져보인다고 생각하였고 이를 두고 단장 이철근과 논의를 하여 다음 시즌 상하의 모두 밝은 형광 연두색으로 바꾸어 가시성을 높였다. 독특한 색깔에 처음에는 논란이 많았지만, 이 유니폼으로 연이어 좋은 성적을 거두자 상징적인 색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클럽하우스[편집]

창단 초기 선수들은 숙소가 없어 전주종합경기장 옆의 여관에서 자기도 하였다. 숙소를 마련해 달라는 요청에 1996년부터 완주군 봉동읍 용암리에 있는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현대사원아파트 5, 6층을 숙소로 써왔으나 클럽하우스라고 볼 수는 없었고 환경도 열악했다. 훈련장은 봉동읍 율소리에 마련하여 훈련하였는데, 2009년 K리그 우승을 계기로 감독과 단장이 요청하자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부회장이 자금을 지원하여 기존 훈련장 옆에 짓기 시작 하였다.[52] 클럽 하우스를 짓기 전 건축 설계팀은 국내(수원 삼성 블루윙즈, 포항 스틸러스, 파주 NFC)와 해외(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볼튼 원더러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보르도,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유명 클럽의 클럽하우스를 직접 방문해 현황 조사를 하여 장단점을 파악하고 클럽 하우스에 반영하였다.

2013년 10월 클럽하우스가 착공 3년 만에 완공하였다. 대지 8,078.36㎡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지어진 클럽하우스는 천연 잔디 2면과 실내 인조 잔디 1면, 총 3면의 운동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가로 60m, 세로 36m, 높이 11m의 실내 연습 구장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캐링턴 구장을 벤치마킹하여 선수들이 날씨에 관계 없이 훈련할 수 있게 하였다. 삼성 트레이닝 센터에 이어 국내 두 번째로 수중 치료기를 도입하였고 축구화 피팅룸, 체력 단련장, 물리 치료실, 시청각 회의실, 비디오 분석실 등을 갖추고 있다. [53] [54]

우승 기록[편집]

국내 대회[편집]

우승 (3): 2009, 2011,2014
우승 (3): 2000, 2003, 2005
우승 (1): 2004

국제 대회[편집]

우승 (1): 2006

기록[편집]

최다 관중 기록[편집]

순위 날짜 경기 상대팀 경기 결과 장소 관중 비고
1 2011년 11월 5일 2011 ACL 결승 알 사드 2-2 전주월드컵경기장 41,805
2 2009년 12월 6일 K리그 챔피언십 결승 2차전 성남 일화 천마 3-1 전주월드컵경기장 36,246
3 2011년 12월 4일 K리그 챔피언십 결승 2차전 울산 현대 2-1 전주월드컵경기장 33,554
4 2005년 5월 5일 삼성 하우젠컵 FC 서울 4-0 전주월드컵경기장 32,110
5 2010년 8월 8일 K리그 16R FC 서울 3-1 전주월드컵경기장 30,876

선수단[편집]

현재 선수단[편집]

2014년 9월 16일 기준

임대 및 군 복무 중인 선수 명단[편집]

영구 결번[편집]

유명 선수[편집]

현재 유명 선수[편집]

과거 유명 선수[편집]

코칭 스태프[편집]

프로팀 코칭 스태프[편집]

직위 이름 비고
감독 대한민국 최강희
수석 코치 대한민국 신홍기
코치 대한민국 박충균
트레이너 브라질 파비우 레푼지스
골키퍼 코치 대한민국 최은성
스카우트 대한민국 차종복
팀 주치의 대한민국 송하헌
팀 닥터 대한민국 김병우, 이현주

U-18 코칭 스태프[편집]

직위 이름 비고
감독 대한민국 김경량
수석 코치 대한민국 김종천
골키퍼 코치 대한민국 김지운
팀 닥터 대한민국 황근우

U-15 코칭 스태프[편집]

직위 이름 비고
감독 대한민국 안재석
코치 대한민국 안대현

U-12 코칭 스태프[편집]

직위 이름 비고
감독 대한민국 공석
코치 대한민국 정재민

감독 연혁[편집]

  • 취임은 공식 취임식 일자이며 취임식이 없거나 미상인 경우 공식 선임 일자를 기재한다.
순번 이름 취임 사임 재임시즌 비고
1대
대한민국 차경복 1994/11/26 1996/12/05 1995-1996 초대 감독
2대
대한민국 최만희 1996/12/06 2001/07/18 1997-2001
대행
대한민국 남대식 2001/07/19 2001/10/03 2001 최만희 감독 중도 사임으로
감독 대행직 수행
3대
대한민국 조윤환 2001/10/04 2005/06/12 2001-2005
대행
대한민국 김형렬 2005/06/13 2005/07/10 2005 조윤환 감독 중도 사임으로
감독 대행직 수행
4대
대한민국 최강희 2005/07/04
2013/06/28(복귀)
2011/12/21 2005-2011
2013-현재
데뷔전은 8월 24일 포항전
최단기간 단일팀 100승 기록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직 수행 후
2013년 6월 28일 전북 복귀
대행
대한민국 이흥실 2012/01/05 2012/12/12 2012 최강희 감독의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 발탁으로
감독 대행직 수행
대행
브라질 파비우 레푼지스 2012/12/20 2013/06/01 2013 최강희 감독의 복귀하기 전까지
감독 대행직 수행
대행
대한민국 신홍기 2013/06/25 2013/06/27 2013 최강희 감독의 복귀하기 전까지
감독 대행직 수행

주석[편집]

  1. "프로축구 全北버팔로 해체 불가피", 《연합뉴스》, 1994년 11월 17일 작성.
  2. "전북 다이노스 창단 공식 선언", 《연합뉴스》, 1994년 11월 25일 작성.
  3. "재창단 전북, 차경복 씨 창단 감독 내정", 《연합뉴스》, 1994년 11월 24일 작성.
  4. "버팔로 선수들, 신생 팀 선별 입단 거부", 《연합뉴스》, 1994년 11월 25일 작성.
  5. "전북 다이노스, 12일 공식 출범", 《연합뉴스》, 1994년 12월 12일 작성.
  6. "전북 다이노스, 전남 꺾고 화려한 데뷔", 《연합뉴스》, 1995년 3월 25일 작성.
  7. "-아디다스컵 프로축구-김도훈,전북 열풍", 《연합뉴스》, 1995년 4월 1일 작성.
  8. "<프로필> 김도훈", 《연합뉴스》, 1995년 6월 5일 작성.
  9. "전북,최만희 코치를 감독 대행으로", 《연합뉴스》, 1996년 12월 5일 작성.
  10. "전북 현대 모터스 축구단 역사관", 《전북 현대 모터스》. 2011년 6월 7일 확인.
  11. 김용윤. "프로축구 전북 현대, 현대자동차 직영 전환", 《연합뉴스》, 1999년 5월 13일 작성.
  12. 김용윤. "-FA컵 축구- 천안, 전북 꺾고 첫 우승", 《연합뉴스》, 1999년 11월 21일 작성.
  13. "프로축구 전북, 새 이름 '모터스' 확정", 《매일경제》, 2000년 5월 31일 작성.
  14. 박성제. "김도훈, 2억7천만원 한국프로축구 최고연봉받고 현대에 복귀", 《연합뉴스》, 2000년 2월 8일 작성.
  15. 배극인. "김도훈 대전戰 해트트릭 단숨에 득점공동선두", 《동아일보》, 2000년 6월 22일 작성.
  16. 박용철. "전북 포스트시즌 진출 확정", 《한국일보》, 2000년 10월 1일 작성.
  17. 김정호. "전북 팀창단 이후 첫우승 '감격'", 《한국일보》, 2000년 12월 5일 작성.
  18. "'꼴찌' 전북 감독 경질", 《한국일보》, 2001년 7월 18일 작성.
  19. 박태훈. "남대식 고문 '프로감독 첫 나들이'", 《한국일보》, 2001년 7월 18일 작성.
  20. 정지융. "전북 새 사령탑 조윤환", 《한국일보》, 2001년 10월 4일 작성.
  21. 조상운. "전북 현대 “亞정상 보이네”", 《국민일보》, 2002년 3월 29일 작성.
  22. "전북 아시안컵위너스컵 준우승", 《연합뉴스》, 2002년 3월 31일 작성.
  23. 김창금. "전북 3년만에 FA컵 포옹", 《한겨레》, 2003년 12월 1일 작성.
  24. 옥철. "-亞챔피언스리그- 전북, 결승행 좌절", 《국민일보》, 2004년 10월 26일 작성.
  25. 설성환. "전북 조윤환 감독, 성적 부진에 사퇴 결정", 《오마이뉴스》, 2005년 6월 14일 작성.
  26. 정종석. "프로축구 전북, 최강희 신임감독 임명", 《YTN 스포츠》, 2005년 7월 3일 작성.
  27. 김현승. "전북, '프로 킬러'잠재우고 FA컵 정상등극", 《조이뉴스24》, 2005년 12월 17일 작성.
  28. 이상철. "전북 '역전'과 '기적'으로 일궈낸 亞 챔스리그 우승", 《뉴시스》, 2006년 11월 9일 작성.
  29. 김태석. "전북-우라와전, 주인공은 주심", 《플라마》, 2007년 9월 27일 작성.
  30. 김동욱. "염기훈 "친정팀 상대로 골 넣어 더 기뻤어요"", 《노컷뉴스》, 2008년 11월 26일 작성.
  31. 이상규. "축구판 '김인식의 재발견'... '재활공장장' 최강희 감독", 《오마이뉴스》, 2009년 5월 22일 작성.
  32. 배진남. "-프로축구- 전북, 창단 15년만에 첫 우승(종합)", 《연합뉴스》, 2009년 12월 6일 작성.
  33. 김성진. "Who is the Champion of 2010? (3) 전북 현대", 《스포탈코리아》, 2010년 11월 18일 작성.
  34. 김종국. "'이동국 4골 폭발' 전북, 세레소 오사카 완파하고 AFC 챔스 4강행", 《마이데일리》, 2011년 9월 27일 작성.
  35. 노주환. "[ACL]전북, 알사드에 지며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준우승", 《스포츠조선》, 2011년 11월 5일 작성.
  36. 류한준. "도쿠아키 AFC 경기국장 “침대축구도 전술”", 《MK스포츠》, 2011년 11월 7일 작성.
  37. 박상현. "'닥공' 전북, 2년만에 2번째 별 품었다", 《데일리안》, 2011년 12월 4일 작성.
  38. 지순한. "조광래 월드컵 대표팀 감독 전격 경질", 《YTN》, 2011년 12월 8일 작성.
  39. 박재호. "조중연 "소주 5병 비우며 최강희 설득했다"", 《스포츠조선》, 2011년 12월 26일 작성.
  40. 김덕중. "'2013년 6월까지'…최강희 발언에 축구협회 어쩌나", 《엑스포츠뉴스》, 2011년 12월 22일 작성.
  41. 허종호. "최강희, 전북 팬들에 "Good bye 아닌 So long"", 《OSEN》, 2011년 12월 22일 작성.
  42. 조범자. "전북 현대, 최강희 후임에 이흥실 감독대행 선임", 《아시아경제》, 2011년 12월 26일 작성.
  43. 서호정. "[코드네임K ⑦] 이흥실 감독대행, “봉동이장 빈 자리, 새마을지도자가 메워야지”", 《풋볼리스트》, 2012년 12월 29일 작성.
  44. 이성철. "'K리그 챔피언' 전북, 광저우에 1-5 완패", 《SBS》, 2012년 3월 7일 작성.
  45. 안경남. "전북, AFC 챔스 가시와 원정에서 1-5 완패", 《마이데일리》, 2012년 3월 21일 작성.
  46. 이민선. "[K리그 돋보기] ‘골잡이에서 센터백으로’...정성훈의 우여곡절 90분", 《스포탈코리아》, 2012년 3월 25일 작성.
  47. 김세훈. "방패 잃은 전북, 창마저 안 통했다", 《경향신문》, 2012년 3월 25일 작성.
  48. 서경훈. "'이동국 2골' 전북, 광저우 제압…기적의 반전드라마", 《데일리안》, 2012년 5월 2일 작성.
  49. 한재현. "전북, 파비오 코치 감독대행 선임", 《인터풋볼》, 2012년 12월 20일 작성.
  50. 허종호. "전북, 가시와에 2-3 역전패...ACL 8강 좌절", 《OSEN》, 2013년 5월 22일 작성.
  51. 엄다인. "휴식보다 전북이 먼저, 최강희 감독 15R 복귀", 《에스티엔》, 2013년 6월 27일 작성.
  52. 도영인. "전북, 숙원사업 클럽하우스 우승선물로 받았다", 《스포츠서울》, 2009년 12월 16일 작성.
  53. 손병하. "전북, 국내 최고•최대 규모의 클럽 하우스 공개", 《베스트일레븐》, 2013년 10월 3일 작성.
  54. 서호정. "[핫이슈K] K리그의 새 명품 세운 두 남자의 집념", 《풋볼리스트》, 2013년 10월 7일 작성.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