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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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운동장
Dongdaemun Stadium
Korea-Seoul-Dongdaemun Stadium.jpg
이전이름 경성운동장(1925년~1945년)
서울운동장 (1945년~1984년)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7가
기공 1925년 5월 24일
개장 1925년 10월 15일[1]
폐장 2003년
철거 2008년
표면 천연잔디
사용처
1988 올림픽 축구
일화 천마 (K리그) 1989년-1995년
LG 치타스 (K리그) 1990년-1995년
유공 코끼리 (K리그) 1991년-1995년
수용 인원
22,706명

동대문운동장(東大門運動場)은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7가에 있던 스포츠 경기장 종합 단지였다. 옛 이름은 서울운동장이었으나 잠실종합운동장이 개장하면서 1985년부터 동대문운동장으로 개칭하였다. 원래는 동대문운동장이 축구장과 야구장을 비롯한 모든 체육 시설을 통칭하는 용어이지만 축구장을 동대문운동장 그리고 야구장은 동대문야구장으로 구분해서 부르기도 한다. 운동장에는 스포츠 용품점과 벼룩시장이 있었으나, 기존 스포츠 용품 시장 기능은 2호선 종합운동장역 7번 출구 방향으로, 벼룩시장 기능은 인근 신설동의 서울풍물시장으로 이전되었다.

역사[편집]

본래 동대문운동장 터의 일부는 조선시대 치안을 담당하던 하도감과 군사훈련을 담당하던 훈련도감이 있던 곳이다. 또 일부는 서울성곽이 있던 곳으로 성곽을 통과하는 수문이던 이간수문도 있었는데, 2008년 동대문운동장 재개발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경성운동장은 훈련원 동쪽 광희문과 동대문 사이의 공원지에 해당하는 대지 22,700평에 총공사비 155,000원을 들여서 만든 동양 제일의 경기장이었다.”, “경성운동장은 경성부 토목과장인 이와시로(岩城)의 공사 지휘로 1925년 5월 24일 기공해서 동년 10월 15일에 개장식을 거행하였으며 총면적 22,700평, 총 공사비 155,000원, 총 수용인원 25,800명이었다.”[2]

해방 후 이름이 서울운동장으로 바뀌었고, 1959년에는 야구장이 재개장하였다. 동대문운동장은 운동경기와 함께 대규모 집회 등 현대사에 큰 일들이 있었던 곳이다. 1984년 서울종합운동장 (현 잠실종합운동장)이 개장되어 1985년 1월부터 동대문운동장으로 개칭되었다.[3][4]

동대문운동장 축구장[편집]

동대문운동장 축구장은 축구와 육상을 할 수 있는 다목적 경기장으로 1926년 개장되어 주로 축구 경기에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동대문축구장으로 많이 불리었으며 2003년 3월 1일부로 폐쇄되었으며 그 후 주차장 시설과 동대문 풍물시장이 축구장 필드 자리에 들어섰다.[5]

2007년 8월 22일 신설동으로 이사를 하였고 2008년 4월 30일 완전이전 되었다. 2008년 5월 14일 굿바이 동대문축구장 행사가 열렸고 이후 철거가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의 클래식 더비 매치인 경평축구대항전을 비롯하여 한국 프로축구 수퍼리그의 역사적인 원년 출범 경기를 비롯해서 일화 천마 (현 성남 일화 천마)가 1989 시즌부터 1995 시즌까지, LG 치타스 (현 FC 서울)가 1990 시즌부터 1995 시즌까지, 유공 코끼리 (현 제주 유나이티드)가 1991 시즌부터 1995 시즌까지 홈 경기장으로 사용하였다.[6] 1996년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으로 서울 연고 프로축구단들이 지방으로 연고지를 이전한 후에는 K리그의 중립 경기와 특정 컵대회 경기들이 벌어졌으나 2000년 10월 22일 성남 일화 천마수원 삼성 블루윙즈컵대회 경기를 마지막으로 프로축구 경기는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또한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이 개장하기 전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홈구장으로 수많은 A매치가 열려 한때 한국 축구의 성지로 불리기도 했으며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1988년 하계 올림픽 당시 브라질 대 아르헨티나의 8강전을 비롯한 국제축구대회들의 경기들이 개최되었다.

동대문운동장 야구장[편집]

1925년 개장되어 주로 동대문야구장으로 불리었으며 1959년 8월 재개장되었다. 2007년 11월 마지막 경기를 끝냈다.

동대문운동장 수영장[편집]

1938년 개장되어 주로 동대문수영장으로 불리었으며 1993년 폐쇄되었다.

철거[편집]

2007년 12월 18일 동대문야구장부터 철거를 시작하여[7] 2008년 5월 14일 '굿바이 동대문운동장' 행사를 진행하고 동대문운동장 축구장이 철거작업에 들어갔다.[8]

운동장 터에서 조선 시대의 치성과 이간수문이 발굴되어 화제가 되었다.[9]

그러나 동대문운동장의 역사성을 감안해 흔적을 남긴다는 차원에서 주경기장 동쪽 관중석 뒷편에 있던 조명탑을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고 있다. 또한 주경기장의 성화대도 철거 과정에서 떼낸 뒤 공원 내부에 전시하고 있다.

계획[편집]

동대문 디자인플라자&파크

같이 보기[편집]

참고자료[편집]

주석[편집]

  1. "경성운동장 사용규정", 《동아일보》, 1925년 10월 7일 작성.
  2. 동대문역사문화공원부지 발굴조사 동대문운동장 유적1』(서울특별시·재단법인 중원문화재연구소, 2011) 55-56쪽
  3. "국립경기장 이름 확정", 《동아일보》, 1985년 1월 17일 작성.
  4. 서울 토박이의 사대문 안 기억 255쪽, 서울시사편차위원회 2009년
  5. "시민 곁을 떠나는 동대문운동장 (축구장)", 《YTN》, 2007년 12월 18일 작성.
  6. "K리그 꿈의 구장 제1탄 동대문 운동장", 《한국프로축구연맹》, 2005년 11월 3일 작성.
  7. "동대문운동장 오늘부터 철거", 《YTN》, 2007년 12월 18일 작성.
  8. "'굿바이 동대문 운동장' 프로축구 마지막골 서정원 회고", 《스포츠서울》, 2008년 5월 14일 작성.
  9. ‘갑자기 귀해진 땅 밑’어찌 지키나, 《시사저널》, 2008.12.31.
  10.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들어서는 건물 홍보 영상(서울시)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