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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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서울
전체 이름 FC 서울
Football Club Seoul
마스코트 씨드
설립 연도 1983년 12월 22일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으로 창단[1]
연고지 서울특별시
연맹 한국프로축구연맹
경기장 서울월드컵경기장 (상암벌)
수용 인원 66,806명[2]
소유주 대한민국 GS그룹
구단주 대한민국 허창수
사장 대한민국 장기주
단장 대한민국 이재하
감독 대한민국 최용수
리그 대한민국 K리그 클래식
2013 시즌 4위
웹사이트 공식 홈페이지
원정
우승
K League Classic Trophy.pngK League Classic Trophy.pngK League Classic Trophy.pngK League Classic Trophy.pngK League Classic Trophy.png Korean FA Cup Trophy.png
국내 리그 5 K리그 클래식
국내 대회 1 FA컵
2 리그컵
1 슈퍼컵
국제 대회
Soccerball current event.svg 현재 시즌

FC 서울(Football Club Seoul)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특별시연고지로 하는 K리그 클래식 소속 프로축구단이다. FC 서울 구단 CI 차원에서 사용하는 공식 한글 표기법은 띄어쓰기 없이 FC서울이며 구단 모토2007년 캐치프레이즈로 선정되었던 'Soul of Seoul, FC SEOUL'이 사용되고 있다.[3]K리그 클래식 5회 우승, 리그컵 2회 우승, FA컵 1회 우승 달성을 비롯하여 한 시즌 최다 총관중 및 최다 평균관중 등 성적과 인기 모든면에서 K리그 클래식의 대표 명문 구단 중 하나로 평가되며 2012년 전 세계 클럽 브랜드 가치 평가에서 대한민국 프로축구 클럽 중 최고인 62위에 랭크되었다.[4]

역사[편집]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응원하는 서포터즈

구단 창단과 초창기 (1983–1989)[편집]

FC 서울은 1983년 8월 18일 구단 공식 창단 발표 후[5]1983년 12월 22일 공식 창단식을 거행하고 [6]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으로 대한민국의 프로축구단 가운데 다섯 번째로 정식 출범하였다. 창단 연고지는 충청도[7] 를 배정 받았으며 마스코트는 황소를 선정하였다. 당시 럭키금성그룹은 프로축구단을 창단하기 위해 기획조정실이 주축이 되어 1982년부터 면밀한 준비 작업을 했으며[8][9]서울특별시를 창단 연고지로 하여 출범할 계획이었지만[10] 당시 대한축구협회 수퍼리그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충청도를 연고지로 배정하였다.

창단 첫 시즌에는 리그 8개 구단 중 7위에 그쳤지만 이듬해 1985 시즌에는 타이 출신 피아퐁 선수의 활약에 힘입어 축구대제전 수퍼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구단 역사상 첫 번째 정규리그 트로피를 얻게 되었다.

서울과 안양 시대 (1990–2003)[편집]

1988년 초부터 창단 당시 원했던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추진해[11] 1989년 10월 16일 프로축구 특별위원회에서 충청도에서 서울로 연고지 이전이 승인이 되어 1990년 도시지역연고제 시행과 함께 서울운동장 (현 동대문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해 한국프로축구대회에서 우승했다. 특히 1990 시즌 우승은 대한민국 프로축구 역사상 최초의 서울 연고지 프로축구단의 우승으로 기록되고 있다. 1991년 모기업의 사명 변경과 함께 LG 치타스로 구단 공식 명칭을 변경하였으며[12][13] 1992년 서울 연고지 정착을 위해 다양한 팬서비스와 [14]경품 제공, [15] 현재의 매치데이 매거진에 해당하는 치타스 가족이라는 구단 소식지 발간,[16] 당시 같은 서울 연고 구단이었던 일화, 유공 구단들과 공동 마케팅,[17] 서울과 경기 지역 축구동호회들과의 자매결연 사업을 추진하여 LG치타스배 축구대회 개최[18]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 유치 활동과 맞물려 서울 축구전용구장 건설과 지방 축구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청와대의 지침을 받은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의해 불이행시 리그 참여 금지를 포함한[19]강압적인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으로[20][21] 인하여 당시 서울 연고 3개 구단 중 마지막까지 서울 연고 고수를 위해 강력히 저항하고[22] [23]팬들의 반대 시위도 있었지만[24]결국 강제 연고지 이전을 당하면서 1996년 4월 연고지를 서울의 위성 도시안양으로 이전함과 동시에 구단 공식 명칭을 안양 LG 치타스로 변경했다. 그 후 2000 시즌 최용수 선수의 대활약으로 K리그에서 우승을 하여 구단 통산 세 번째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하였다.

서울 시대의 재개막 (2004–2006)[편집]

2004년 안양 LG 치타스는 축구인과 축구팬들의 찬반 논란을[25][26][27]겪은 후 2004년 3월 11일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사회에서 서울 입성이 만장일치로 승인되어[28]과거 연고지였던 서울로 다시 복귀 하였다.[29]그 후 3월 19일에 구단 공식 명칭을 FC 서울로 변경하였으며[30]3월 29일에는 서울특별시와 연고지 협약을 체결하였다.[31]

현재 FC 서울은 다시 서울로 연고지 복귀를 하여 흥행, 성적면에서 대체적으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K리그 최고의 인기구단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32] 2004년 LG그룹GS그룹이 분리되면서 FC 서울을 운영하던 산하 계열사인 LG스포츠 또한 GS그룹으로 분리되어 6월 1일 스포츠 법인의 이름을 (주)GS스포츠로 변경, GS그룹이 운영하게 되었다.

2005 시즌부터는 제 6대 이장수 감독이 취임하였으며 박주영 선수의 돌풍으로 한 시즌 최다 관중인 45만 8605명을 기록했다. 2006 시즌 FC 서울은 정규리그FA컵 우승은 하지 못하였으나 K리그의 리그컵 대회인 삼성 하우젠컵 2006에서 우승을 하여 구단 역사상 첫 리그컵 우승 트로피를 얻었다. FC 서울은 2006 시즌에 통합순위 4위에 올라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어웨이 경기로 벌어진 성남과의 경기에서 0:1로 패배해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실패하였다.

귀네슈 시대 (2007–2009)[편집]

FC 서울은 2007 시즌을 앞두고 2년 동안 팀을 이끌어 온 이장수 감독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자 재계약하지 않았다. 후임으로 한·일 월드컵에서 터키 대표팀을 3위에 올려 놓았고 대한민국 축구 팬들에게도 친숙한 터키 출신 셰놀 귀네슈 감독을 영입하였다. 그리고 4월 8일, FC 서울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홈 경기에서 K리그를 포함한 국내 프로 스포츠 당시 단일 경기 사상 최다 관중인 55,397명의 입장 관중 기록을 수립하며 K리그 25년 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33]

2007년 7월 20일, FC 서울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할 K리그 팀으로 선정되었다. 경기 결과는 0:4로 패했다. 한편, 2007년 10월 14일에 벌어진 삼성하우젠 K리그 2007 최종 라운드에서 무승부를 기록하기만 해도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었으나, 대구 FC에게 0-1로 패하여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008 시즌에서는 후반기의 18 경기 연속 무패 행진에 힘입어 정규리그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울산을 4-2로 대파하여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였지만,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상대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1차전 1-1 무승부,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차전 2-1 로 패하면서 2위에 오르며 준우승과 함께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얻었다.

2009년 1월 7일 AFC 챔피언스리그 2009 조 추첨 결과, 일본감바 오사카, 중국의 산둥 루넝, 인도네시아스리위자야와 함께 F조에 속했다. 2009 시즌 개막전, 전남 드래곤즈와 벌인 원정 경기에서 6-1로 승리했으나, 2라운드 홈에서 신생 팀 강원 FC에게 1-2로 패하며 강원 FC의 돌풍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감바 오사카에게 이기고 스리위자야가 최소한 산둥 루넝에게 무승부를 거둬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감바 오사카에게 2-1로 승리를 거두고 스리위자야가 0-2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4골을 몰아넣으며 역전하여 2위로 16강에 진출하였다. 16강전에선 J리그 디펜딩 챔피언 가시마 앤틀러스를 만나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하여 8강전에 진출하였다. 이후 8강전에서 카타르 클럽 움 살랄과 붙어서 안태은의 중거리슛이 골라인을 완벽히 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골로 인정해 주지 않는 오심이 일어나면서 결국 준결승 진출에 실패하였으며, 2009년 정규 리그 3위로 끝마쳤다. 플레이오프 6강 PO에서 패하고 최종 순위를 5위로 마감했으며 11월 24일 귀네슈 감독이 사임하였다.[3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만나 대등한실력으로 싸우며 3:2로 패하는등 K리그 강호의 면모를 보여줬다. 11월 24일 사임한 셰놀 귀네슈 감독은 비록 팀의 우승컵을 거머쥐지 못했지만 패스에 중점을 둔 매력적인 공격 축구를 구사해 K리그 전체에 변화를 일으켰다고 평가받았다.[35] [36]

빙가다 시대 (2010)[편집]

귀네슈 감독이 사임한 후, 2009년 12월 14일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포르투갈 국적의 넬루 빙가다 감독의 선임을 발표하였다.[37] 이후 김승용, 이상협, 김치곤, 심우연 거기에다가 팀의 공수를 조율하는 기성용셀틱으로 이적시키고 현영민, 방승환, 최효진, 이현승, 이규로, 하대성, 김용대 등을 영입하며 대대적인 팀 리빌딩에 착수하였다. 리빌딩된 팀에 대한 기대와 걱정 속에 치러진 2010 K리그 1라운드 대전과의 경기에서 5-2로 승리하여 지난 시즌에 이어 2년 연속 개막전을 대승으로 장식하였다. 2010년 3월, 호주 국가대표팀 수비수 사이먼 콜로시모의 영입을 시도했으나 이적 시장 마감 기한이 지나면서 영입이 무산되었다. 2010년 5월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남 일화 천마와의 쏘나타 K리그 2010 경기에서 꿈의 6만 관중을 돌파하며 2007년에 역시 FC 서울이 작성한 55,397명의 입장 관중 기록을 3년 만에 경신함과 동시에 60,747명이라는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사상 단일 경기 최다 관중 신기록을 작성하였다.[38] 한편 포스코컵 2010 조별 예선 B조를 1위로 통과한 후 대구수원을 각각 8강전과 4강전에서 물리치고 진출한 결승전에서 전북에 3-0 대승을 거두며 빙가다 감독 부임 후 첫 우승을 차지하였다.

정규리그를 20승 2무 6패 승점 62점으로 팀별 홈 앤드 어웨이 2라운드 체제로 개편된 이후 역대 정규리그 사상 가장 높은 승점의 1위로 마쳤으며 단일 경기 최다 관중 신기록 - 60,747명, 단일 시즌 (정규리그, 챔피언십, 리그컵) 최다 총 관중 신기록 - 546,397명, 단일 정규리그 (리그, 챔피언십) 최다 총관중 신기록 - 488,641명, 단일 정규리그 (리그, 챔피언십) 최다 평균 관중 신기록 - 32,576명, 단일 리그 최다 평균 관중 신기록 - 30,849명 등 역대 관중 관련 기록들을 모두 경신하며 성적과 인기면에서 K리그 최고의 구단으로 등극하였다.[39] [40]

2010 K리그 챔피언십 챔피언결정전에서 제주 유나이티드를 1승 1무로 이기고 10년 만에 K리그 우승을 달성하였으며 시즌 총관중 50만명을 돌파하여 겹경사를 눌렸다.[41] [42]

한편, 12월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쏘나타 K리그 2010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는 56,759명의 관중이 입장하여, K리그 역대 챔피언결정전 최다 관중 신기록 및 K리그 역대 단일경기 최다 관중 2위의 기록을 수립하였다.

2010년 12월 13일 빙가다 감독과의 재계약 협상이 연봉 조건 등의 의견 차이로 인해 최종 결렬되어 12월 14일 빙가다 감독이 포르투갈로 출국하면서 빙가다 시대는 불과 1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43]

최용수 시대 (2011–현재)[편집]

서울월드컵경기장 북측좌석의 서울 서포터들

2010년 12월 28일, 구단 웹사이트를 통해 넬로 빙가다 감독의 후임으로 황보관 감독의 선임을 발표하였다.[44] 이후 우승의 주역이었던 정조국, 김진규등이 이적하고 최효진, 김치우, 이종민 등이 군입대를 하여 전력 공백이 우려되었으나 몰리나, 김동진, 그리고 임대 영입을 했던 제파로프를 완전 영입시키면서 전력보강을 착실히 진행하였고 의욕적으로 2011 시즌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정규리그 초반 1승 3무 3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한때 15위까지 순위가 떨어지는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며 황보관 감독이 2011년 4월 26일 자진 사퇴를 하면서 클럽 레전드 최용수 수석 코치가 감독 대행이 되었다. 최용수 감독 대행은 데뷔전이 4월 30일 제주 유나이티드전을 역전승으로 장식하며 빠르게 팀을 수습하였고 그 후 시즌 중간 구단 최다 연승인 7연승 신기록을 달성하였으며 리그를 3위로 마쳤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울산 현대에 패하면서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얻지 못하고 최종 순위 5위로 끝마쳤다. 하지만 감독 대행 기간 동안 팀을 정상화 시키는 등 가능성을 보인 것을 높게 평가 받아 2011년 12월 9일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다.[45]

정식 감독 첫해인 2012 시즌 선배인 박태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와 그 외 박희도 등을 영입하며 시즌을 준비하였는데 당시 타 구단에 비해 전력 보강이 미흡하여 구단 내부에서도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확보가 목표인 3위로 잡았고 축구 전문가들조차 우승후보로 단독 지목한 전문가는 1명 밖에 없었다.[46] 시즌 개막 초 최용수 감독과 데얀과의 불화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는 등 좋지 않은 출발을 보였으나 이를 원만히 해결하고[47] 이후 시즌 내내 기복없는 전력을 발휘하며 압도적인 승점차로 리그 종료 3경기를 앞두고 조기 우승을 확정하여 구단 통산 5번째 우승을 달성하였다. 특히 이번 우승으로 최용수 감독은 구단으로서도 사상 최초이지만 K리그 역사로서도 사상 최초인 한 클럽에서 선수, 코치, 감독으로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첫 번째 축구인이 되었다.[48] 또한 2012 시즌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데얀K리그 최우수선수상 및 최다 관중을 기록한 클럽에게 주는 풀 스타디움상 등 개인, 구단 등 각종 부분에서 13개의 상을 휩쓸어서 최고의 한 해가 되었다.[49]

2013 시즌 지난 시즌 우승의 후유증으로 리그 전반기 부진을 겪었지만 여름부터 구단 최다 연승 타이 기록인 리그 7연승을 기록하여 다시 선두권에 복귀 하였고 구단 역사상 최초로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렸지만[50] 결승전에서 광저우 헝다와 2무를 기록했으나 원정팀 다득점 룰로 인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2014 시즌을 앞두고 아디가 은퇴함과 동시에 데얀, 하대성 등 팀의 주축 선수들을 이적시켰고 몰리나의 이적 역시 추진하였으나 협상이 지지부진하다 결렬되어 최종적으론 잔류하게 되었다.[51] 떠난 선수들을 대체하기 위해 하파엘, 이웅희, 오스마르 등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하여 대대적인 팀 리빌딩에 들어갔다.

클럽 문화[편집]

서포터스[편집]

FC 서울의 메인 서포터스 그룹은 2004년 3월에 만들어진 수호신이며 2009년 지지자연대 모임으로 변경되었으며 웨스트스토리,극락조 마르스, 서울아빠, SEM, GruppoTHANATOS, 레이피어, 서울사람들, 혼자왔니, ADELANTE , FRIS, sTyLe, BP365, 황족 같은 많은 소모임들이 연대를 구성하고 있다.

2014년 현재 의장그룹은 웨스트 스토리이며 Gruppo THANATOS와 연합 현장팀을 구성하고 있다.

이 들(수호신) 은 한해에 한번 수호신 풋살대회를 개최하여 친목을 다진다. 2014 풋살대회 우승모임은 2004년에 창단한 극락조 마르스 소속의 극락조팀이다.

또한 1980년대 럭키금성 황소 시절부터 시작해서 1990년대 LG 치타스의 동대문운동장 시절과 그 후 안양 LG 치타스 시절까지 다양한 올드팬층이 존재하며 디시인사이드 FC서울 갤러리 등등 팬들의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 역시 활발하다. 한편 디시인사이드의 FC 서울 갤러리는 디시인사이드에 개설된 최초의 국내 프로축구단 갤러리이다.[52]

또한 [53] 는 강성적이고 열정적인 응원을 하기로 유명하다.

V걸스와 V맨[편집]

과거 1990년대 후반 서포터스 응원문화가 들어오면서 사라졌던 치어리더 응원이 2010년 3월 FC 서울 구단 주도하에 V걸스와 V맨으로 다시 탄생하여 일반석에서 응원을 주도하고 있다.[54]

마스코트[편집]

FC 서울의 현재 마스코트는 씨드(SSID)이며 Seoul & Sun In Dream의 약자이다. 생년월일은 2004년 4월 3일이고, 탄생지는 대한민국 서울월드컵경기장이다. FC 서울의 홈 경기 때마다 경기장에 나와 경기 중 익살스러운 행동과 적극적인 응원 유도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2009년까지 길게 찢어진 눈매를 가지고 있었으나 2010년부터 커다란 눈을 갖게 되었다. 과거 마스코트는 황소와 치타이며 이 마스스코트들을 형상화한 깃발을 흔드는 팬들이 존재한다.

선수단[편집]

현재 소속 선수[편집]

2014년 10월 22일 기준 [55]

임대 및 군복무 중인 선수[편집]

현재 시즌 이적 현황[편집]

현재 주요 선수[편집]

과거 주요 선수[편집]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공식 통계 원칙에 의거 FC 서울은 전신 구단의 역사와 기록을 승계하고 있다.
※ 출장수는 FC 서울 소속으로 K리그 정규리그와 리그컵의 통산 기록이며 AFC 챔피언스리그FA컵 등 기타 대회는 포함되지 않았다.
※ 연도의 * 표시는 은퇴 선수를 의미한다.

역대 해외 진출 선수[편집]

역대 주장[편집]

시즌 주장 부주장 비고
1984 대한민국 한문배
1985 대한민국 김광훈
1986 대한민국 박항서
1987–1988 대한민국 정해성
1989–1990 대한민국 최진한
1991–1992 대한민국 이영진
1993 대한민국 구상범
1994 대한민국 최영준
1995 대한민국 윤상철 –1995/08/04
1995–1996 대한민국 이영익 1995/08/05–
1997 대한민국 조병영
1998 대한민국 김봉수
1999 대한민국 강준호 –1999/07/??
1999–2000 대한민국 최용수 1999/07/??–2000/05/09
2000 대한민국 김귀화 2000/05/10–
2001 대한민국 이상헌 –2001/05/??
2001 대한민국 손현준 2001/05/??–
2002 대한민국 최윤열
2003–2004 대한민국 김성재
2005–2006 대한민국 이민성
2007–2008 대한민국 이을용 대한민국 김치곤
2009 대한민국 김치곤 대한민국 김진규
2010 대한민국 박용호 대한민국 김진규
2011 대한민국 박용호 대한민국 현영민
2012–2013 대한민국 하대성 대한민국 김진규
2014 대한민국 김진규 대한민국 고명진

코칭 및 지원스태프[편집]

코칭스태프[편집]

직위 이름 비고
감독 대한민국 최용수
수석 코치
공석
코치 대한민국 김성재
코치 대한민국 이기형
코치 대한민국 김한윤
코치 브라질 아디
골키퍼 코치 대한민국 원종덕
피지컬 코치 일본 칸노 아쯔시
U-18 & U-15팀 총감독 대한민국 최기봉
U-18팀 코치 대한민국 윤대성
U-18팀 골키퍼 코치 브라질 레안드로
U-15팀 코치 대한민국 정상남
U-15팀 골키퍼 코치 대한민국 조준호
스카우트팀 팀장 대한민국 김현태
스카우트 대한민국 이원준
대한민국 정재윤
대한민국 김상문
대한민국 서민우

지원스태프[편집]

직위 이름 비고
구단 주치의 대한민국 조윤상
트레이너 대한민국 박성률, 황보현, 최규정
전력 분석관 대한민국 김정훈, 김혁중
장비 담당관 대한민국 이천길
통역관 대한민국 김현수

역대 감독[편집]

※ 선임일자는 최초로 공식 영입을 발표한 일자를 의미한다.
※ 취임일자는 취임식을 가지고 공식 업무를 시작한 일자를 의미하며 공식 취임식이 없을 경우 선임일자를 기재한다.
※ 사임일자는 최초로 공식 사임을 발표한 일자를 의미한다.

순번 이름 재임시즌 K리그 리그컵 FA컵 ACL 기타대회 비고
1대
대한민국 박세학
1984–1987
우승 (1) : 1985
준우승 (1) : 1986
대행
대한민국 고재욱 1988–1993 우승 (1) : 1990
준우승 (1) : 1989
준우승 (1) : 1992
0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 : 1988
2대
3대
대한민국 조영증
1994–1996
준우승 (1) : 1993 준우승 (1) : 1994
4대
대한민국 박병주
1997–1998
우승 (1) : 1998
5대
대한민국 조광래
1999–2004
우승 (1) : 2000
준우승 (1) : 2001
준우승 (1) : 1999
0
준우승 (1) : 2002
0
슈퍼컵
우승 (1) : 2001
준우승 (2) : 1999
6대
대한민국 이장수
2005–2006
우승 (1) : 2006
7대
터키 귀네슈
2007–2009
준우승 (1) : 2008 준우승 (1) : 2007
8대
포르투갈 빙가다
2010
우승 (1) : 2010 우승 (1) : 2010
9대
대한민국 황보관
2011
성적 부진으로 자진 사퇴
대행
대한민국 최용수 2011–현재 우승 (1) : 2012 준우승 (1) : 2013
10대

경영진[편집]

현재 경영진[편집]

직위 이름 비고
구단주 대한민국 허창수
사장 대한민국 장기주
단장 대한민국 이재하

역대 구단주[편집]

순번 이름 취임 사임 기간 비고
1대
대한민국 구자경
1983-08-12
1990-12-31
1984–1990
초대 구단주
2대
대한민국 구본무
1991-01-01
1997-12-31
1991–1997
3대
대한민국 허창수
1998-03-01
현재
1998–현재

우승 기록[편집]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공식 통계 원칙에 의거 FC 서울은 전신 구단의 역사와 기록을 승계하고 있다.[56]

국내 대회[편집]

국제 대회[편집]

더블 우승[편집]

역대 시즌 통계[편집]

시즌별 전 대회 기록[편집]

K리그 챔피언십 경기 결과를 포함하지 않은 순수 정규리그 승무패 승점과 골득실이다.
1993, 1998 1999, 2000 시즌은 무승부시 승부차기가 시행되었으며 승부차기를 무승부로 처리하는
00통산 기록 규정에 근거한 승무패를 별도로 아래에 표기하였다.
2004, 2005, 2006 시즌의 리그순위는 전후기리그 통합승점 순위표의 순위이다.
※ 아 - 아디다스컵, 프-프로스펙스컵, 필-필립모리스코리아컵, 대-대한화재컵, 삼-삼성 하우젠컵, 피-피스컵 코리아, 포-포스코컵

시즌 리그
팀수
K리그 경기수 승점 리그컵 FA컵 수퍼컵 ACL 감독
1984 8 7위 28 8 6 14 38 45 -7 33 대한민국 박세학
1985 8 우승 21 10 7 4 35 19 +16 27 대한민국 박세학
1986 6 준우승 20 10 7 3 28 17 +11 27 5위 (프로)[1] 진출 실패 대한민국 박세학
1987 5 5위 32 7 7 18 26 55 -29 21 미개최 대회 기권 대한민국 박세학
1988 5 4위 24 6 11 7 22 29 -7 23 우승 (전국)[2] 진출 실패 대한민국 고재욱 ()
1989 6 준우승 40 15 17 8 53 40 +13 47 대한민국 고재욱
1990 6 우승 30 14 11 5 40 25 +15 39 대한민국 고재욱
1991 6 6위 40 9 15 16 44 53 -9 33 대한민국 고재욱
1992 6 4위 30 8 13 9 30 35 -5 29 준우승 () 대회 불참 대한민국 고재욱
1993 6 준우승 30 18
10
0
11
12
9
28 29 -1 59 4위 () 진출 실패 대한민국 고재욱
1994 7 5위 30 12 7 11 53 50 +3 43 준우승 () 대한민국 조영증
1995 8 8위 28 5 10 13 29 43 -14 25 6위 () 대한민국 조영증
1996 9 9위 32 8 8 16 44 56 -12 32 8위 () 16강 대한민국 조영증
1997 10 9위 18 1 8 9 15 27 -12 11 10위 ()
A조 3위 ()
4강 대한민국 박병주
1998 10 8위 18 9
8
0
2
9
8
28 28 0 23 4위 ()
3위 ()
우승 대한민국 박병주
1999 10 9위 27 10
8
0
4
17
15
38 52 -14 24 준우승 ()
B조 4위 ()
4강 준우승 대한민국 조광래
2000 10 우승 27 19
17
0
5
8
5
46 25 +21 53 4위 ()
A조 5위 ()
8강 진출 실패 8강[3] 대한민국 조광래
2001 10 준우승 27 11 10 6 30 23 +7 43 A조 4위 () 8강 우승 진출 실패 대한민국 조광래
2002 10 4위 27 11 7 9 37 30 +7 40 4위 () 32강 진출 실패 준우승[4] 대한민국 조광래
2003 12 8위 44 14 14 16 69 68 +1 56 미개최 32강 미개최 진출 실패 대한민국 조광래
2004 13 5위 24 7 12 5 20 17 +3 33 12위 () 16강 진출 실패 대한민국 조광래
2005 13 7위 24 8 8 8 37 32 +5 32 5위 () 16강 대한민국 이장수
2006 14 4위 26 9 12 5 31 22 +9 39 우승 () 8강 대한민국 이장수
2007 14 7위 26 8 13 5 23 16 +7 37 준우승 () 8강 대회 중단 터키 귀네슈
2008 14 준우승 26 15 9 2 44 25 +19 54 A조 3위 () 32강 터키 귀네슈
2009 15 5위 28 16 5 7 47 27 +20 53 4강 () 16강 8강 터키 귀네슈
2010 15 우승 28 20 2 6 58 26 +32 62 우승 () 16강 진출 실패 포르투갈 빙가다
2011 16 5위 30 16 7 7 56 38 +18 55 8강 () 8강 8강 대한민국 황보관
대한민국 최용수 ()
2012 16 우승 44 29 9 6 76 42 +34 96 대회 중단 16강 진출 실패 대한민국 최용수
2013 14 4위 38 17 11 10 59 46 +13 62 8강 준우승 대한민국 최용수

[1] 당시 공식 대회명칭은 프로축구선수권대회로 정규리그 이외 별도로 실시된 최초의 대회로 리그컵의 시초이다.
[2] 당시 공식 대회명칭은 전국축구선수권대회로 2001년 FA컵대회로 통합되었다.
[3] 당시 공식 대회명칭은 1999-2000 아시안 컵 위너스컵으로 아시안 컵 위너스컵은 2002-03 AFC 챔피언스리그에 통합되었다.
[4] 당시 공식 대회명칭은 2001-02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으로 2002-03 AFC 챔피언스리그로 대회명칭을 개명하고 확대 재출범하였다.

K리그 챔피언십 기록[편집]

시즌 진출
팀수
순위 경기수 승부차기 감독
1986 2 준우승 2 0 1 1 1 2 -1 N/A 대한민국 박세학
2000 4 우승 2 1 1 0 5 2 +1 4-2 승
(챔피언결정전 2차전)
대한민국 조광래
2006 4 4위 (4강 PO) 1 0 0 1 0 1 -1 N/A 대한민국 이장수
2008 6 준우승 2 1 1 1 6 5 +1 N/A 터키 셰놀 귀네슈
2009 6 5위 (6강 PO) 1 0 1 0 1 1 0 2-3 패
(6강 PO)
터키 셰놀 귀네슈
2010 6 우승 2 1 1 0 4 3 +1 N/A 포르투갈 넬루 빙가다
2011 6 5위 (6강 PO) 1 0 0 1 1 3 -2 N/A 대한민국 최용수 (대행)

역대 통산 전적[편집]

※ 2013 시즌 종료 시점 기준
AFC 챔피언스리그에 통합되기 전 1999-2000 아시안 컵 위너스 컵과 전신 대회인 2001-02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의 결과가 포함되어 있다.
※ 기권승과 부전승 모두 전적에 포함된다.
※ 승부차기 결과는 무승부로 계산된다.

대회 기간 경기수 득점 실점 득실차 승률 비고
K리그 1984–2013 1074 413 329 332 1453 1293 +160 38.45%
FA컵 1996–2013 41 20 6 15 83 55 +28 48.78%
AFC 챔피언스리그 1986–2013 43 18 16 9 73 44 +29 41.86%
합계 1158 451 351 356 1609 1392 +217 38.95%

관중 기록[편집]

FC서울 보유 관중 신기록[편집]

기록 날짜 / 시즌 경기수 관중수 비고
프로스포츠 단일 경기 최다 관중 신기록 2010-05-05 1 60,747명
K리그 챔피언십 단일 경기 최다 관중 신기록 2010-12-05 1 56,759명
K리그 단일 정규리그 최다 평균관중 신기록 2010 시즌 14 30,849명 리그 14경기
K리그 사상 최초 리그 3만 평균관중 신기록 수립
K리그 단일 정규시즌 최다 평균관중 신기록 2010 시즌 15 32,576명 리그 14경기, 챔피언십 1경기
K리그 단일 정규리그 최다 총관중 신기록 2010 시즌 15 488,641명 리그 14경기, 챔피언십 1경기
K리그 단일 시즌 최다 총관중 신기록 2010 시즌 19 546,397명 리그 14경기, 챔피언십 1경기, 리그컵 4경기
K리그 사상 최초 시즌 50만 총관중 신기록 수립

총관중과 평균관중 기록[편집]

※ 시즌 총관중수는 K리그 정규리그 (챔피언십 포함), 리그컵, FA컵, AFC 챔피언스리그의 공식 홈경기 관중수의 총계이며 친선 경기 관중수는 포함하지 않는다.
※ K리그 시즌 총관중수는 K리그 정규리그 (챔피언십 포함), 리그컵의 공식 홈경기 관중수의 총계이다.

시즌 시즌
총관중
K리그
총관중
정규리그
평균관중
리그컵
평균관중
FA컵
총관중 / 평균관중
ACL
총관중 / 평균관중
친선경기
관중
관중
순위
비고
1984–2003
공식 관중수 신뢰성 불확실로 미기재
2004 223,529 223,529 15,363 6,529 홈경기 미개최 N/A N/A
2005 458,605 458,605 22,010 32,415 홈경기 미개최 N/A 17,211
(보카 주니어스전)[57]
K리그 시즌 총관 1위
정규리그 평관 2위
2006 357,231 315,698 18,782 11,921 41,533 / 13,844 N/A 61,235
(FC 도쿄전)[58]
K리그 시즌 총관 2위
정규리그 평관 2위
FA컵 8강 수원 삼성전 38,533명
역대 FA컵 최다 관중 기록[59]
FC 도쿄 친선경기 무료 관중
2007 411,362 379,903 21,515 14,315 31,459 / 31,459 N/A 약 65,000
(맨체스터 UTD전)
K리그 시즌 총관 2위
정규리그 평관 2위
2008 398,757 398,757 22,417 12,499 홈경기 미개최 N/A 약 34,000
(LA 갤럭시전)[60]
약 41,500
(FC 도쿄전)[61]
K리그 시즌 총관 2위
정규리그 평관 2위
K리그 챔피언십 2경기
K리그 평균관중 포함
2009 319,250 270,624 16,535 11,300 1,315 / 1,315 47,311 / 11,828 약 65,000
(맨체스터 UTD전)
K리그 시즌 총관 2위
정규리그 평관 2위
K리그 챔피언십 1경기
K리그 평균관중 포함
2010 547,592 546,397 32,576 14,439 1,195 / 1,195 N/A N/A K리그 시즌 총관 1위
정규리그 평관 1위
K리그 챔피언십 1경기
K리그 평균관중 포함
2011 520,138 448,027 28,002 N/A 3,733 / 3,733 68,378 / 13,676 N/A K리그 시즌 총관 1위
정규리그 평관 1위
K리그 챔피언십 1경기
K리그 평균관중 포함
2012 467,649 451,045 20,502 N/A 16,604 / 8,302 N/A N/A K리그 시즌 총관 1위
정규리그 평관 1위
2013 451,845 315,540 16,607 N/A 11,945 / 3,982 124,360 / 17,766 N/A K리그 시즌 총관 2위
정규리그 평관 2위
객단가 1위
(2위 구단과 대략 2배 차이)[62][63]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단일 경기 최다 관중 기록 TOP 10[편집]

순위 대회 경기일 홈팀 스코어 원정팀 경기장 관중수 비고
1위 2010 K리그 2010-05-05 FC 서울 4–0 대한민국 성남 일화 천마 서울월드컵경기장 60,747명 공휴일 (어린이날)
2위 2010 K리그 2010-12-05 FC 서울 2–1 대한민국 제주 유나이티드 서울월드컵경기장 56,759명 주말
K리그 챔피언십
챔피언결정전 2차전
3위 AFC 챔피언스리그 2013 2013-10-26 FC 서울 2–2 중국 광저우 헝다 서울월드컵경기장 55,501명 주말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1차전
4위 2007 K리그 2007-04-08 FC 서울 0–1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서울월드컵경기장 55,397명 주말
5위 2011 K리그 2011-03-06 FC 서울 0–2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서울월드컵경기장 51,606명 주말
2011시즌 홈 개막전
6위 2012 K리그 2012-08-18 FC 서울 0–2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서울월드컵경기장 50,787명 주말
7위 2010 K리그 2010-04-04 FC 서울 3–1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서울월드컵경기장 48,558명 주말
8위 2005 K리그 2005-07-10 FC 서울 4–1 대한민국 포항 스틸러스 서울월드컵경기장 48,375명 주말
9위 2004 K리그 2004-04-03 FC 서울 1–1 대한민국 부산 아이파크 서울월드컵경기장 47,928명 주말
10위 2014 K리그 클래식 2014-07-12 FC 서울 2–0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서울월드컵경기장 46,549명 주말

오너십[편집]

기간 소유주 비고
1983–1991 대한민국 럭키금성그룹
(주) 럭키금성스포츠
국내 최초 종합스포츠 주식회사 설립 (1983-11-09)[64]
1991–2004 대한민국 LG그룹
(주) LG스포츠
(주) 럭키금성스포츠에서 (주) LG스포츠로 사명 변경 (1991-02-27)[65]
2004–현재 대한민국 GS그룹
(주) GS스포츠
지주회사 분할에 따라 기존 (주) LG스포츠에서 (주) GS스포츠로
사명(社名)을 변경하고 독립법인으로 출범 (2004-06-01)[66]

스폰서십[편집]

용품 스폰서는 창단 이래 당시 모기업 계열사인 반도패션 (현 LG패션)이 맡아오다 1997년 리복으로 변경되었다가 1998년 아디다스와 연간 현금 8천만원과 용품 1억원어치 계약을 체결하며[67] 처음으로 용품 스폰서를 교체하였으며 2005년 3년간 30억원의 계약 체결 후 2008년 4년간 당시 K리그 최대 규모의 계약으로 계약 기간을 연장해가며 14년간 지속되었다.[68] 그러나 2011년 12월 르꼬끄 스포르티브로 용품 스폰서를 교체하면서 4년간 80억원의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고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며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69]

용품 스폰서와 유니폼 광고 스폰서[편집]

기간 용품 스폰서 유니폼 광고 스폰서 유니폼 프린팅 비고
1984–1986 대한민국 반도패션 대한민국 럭키금성
럭키금성
1993–1996시즌 동안 축구스타킹은
프로스펙스에서 지급 받음
1995년 9월 반도패션에서
LG패션으로 CI 변경
1987–1994 대한민국 금성사
금성VTR 외 다수
1995–1996 대한민국 LG전자
LG하이비디오 외 다수
1997 영국 리복 대한민국 LG정보통신
프리웨이 외 다수
1998 독일 아디다스 대한민국 LG전자
LG 싸이언 외 다수
1999 대한민국 LG전자
디지털 LG / DIGITAL LG
2000 대한민국 LG텔레콤
카이 / X
2001–2002 대한민국 LG전자
싸이언 / CYON
2003 대한민국 LG전자
엑스캔버스 / XCANVAS
2004 대한민국 LG전자
싸이언 / CYON
2005–2011 대한민국 GS건설
자이 / Xi
2005시즌부터 3년간 30억원
규모 계약
2008시즌부터 4년간 당시
K리그 사상 최대 규모 계약
(타구단과의 관계 고려 금액 미공개)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Hi Seoul
Soul of Asia
2009년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시 한시적 사용
2012–13 프랑스 르꼬끄 스포르티브 대한민국 GS건설
자이 / Xi
2012시즌부터 4년간 80억원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대 규모 계약
2014–15 대한민국 GS SHOP
GS SHOP

대중 문화에서의 FC 서울[편집]

K리그 최고 인기 구단이란 명성과 방송사가 많은 수도 서울을 연고지로 하며 동시에 대한민국 최고의 축구전용구장인 서울월드컵경기장을 홈구장으로 가지고 있는 이점 때문에 드라마와 영화 등등에서 축구를 소재로 하는 장면에 많이 등장하고 있다. [70]

마케팅 활동[편집]

2006년 FC 서울은 서울특별시에서의 지역 연고 정착과 구단 자생력을 키우기 약 1억원을 들여 일본 J리그 컨설팅 회사 하쿠호도사에 의뢰해 장기 프로젝트인‘FC서울 2035 비전'을 세웠다. 즉 2035년까지 ‘진정한 NO.1’구단을 지향한다는 프로젝트의 기본 이념에 따라 지역 밀착을 통해 지역 사회에 공헌하고 미래의 잠재 팬 확보를 위한 다양한 마케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71]

2007시즌부터 FC 서울은 ‘Soul of Seoul, FC SEOUL’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마케팅 활동을 하고 있으며 특히 유소년 축구클럽 ‘Future of FC서울’, 어린이 무료 축구교실 ‘두근두근 축구클리닉’과 ‘FC서울-맥도날드 어린이 축구교실’, 중학생 축구대회 ‘FC서울 주니어 챔피언십’소시오 ‘어린이 회원권 제도’등 다양한 축구 저변 확대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2009년 5월 16일서울도시철도공사와 공동 마케팅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으며 [72] 공동 마케팅의 일환으로[73] FC서울의 간판 스타인 기성용선수와 이청용선수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홍보대사로 위촉되었고 월드컵 경기장내에 도시철도공사 홍보 광고물을 부착하고 전광판에 홍보 동영상을 방영하였다. 또한 공사측에서는 월드컵경기장역 벽면에 FC서울 선수들의 랩핑사진을 부착하여 FC서울 테마역으로 지정하였고[74] 역사내에 FC서울의 홈경기 홍보포스터 부착하여 상호 홍보를 하고 있다.[75]

2010 시즌 시작과 함께 그 동안 서포터스 응원 문화로만 단조롭게 진행되던 축구장에 V걸스와 마스코트 씨드 등을 도입하여 새로운 축구 응원 문화를 개척하였으며 어린이와 여성들을 위한 축구 도서 '볼수록 만만한 축구'를 출간하였으며[76] 2011시즌에는 FC 서울 티켓북을 출간하였다.[77]

2014 시즌에는 FAN기반 마케팅 활동을 기획. 매 홈경기마다 테마를 정해 팬과 소통하고 팬이 만드는 경기를 구현하는 'FAN이 일으키는 Sensation'<FANsation> 을 마케팅 컨셉으로 수립하여 팬이 경기운영에 참여하고, 팬 중심의 이벤트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78]

GS&Point 카드에도 FC 서울 멤버십 카드를 추가하여 더 큰 포인트 적립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클럽 하우스[편집]

FC 서울은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1988년 12월 천연잔디구장(3면)을 포함한 훈련장 시설을 완공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사계절 잔디구장을 포함한 천연잔디구장(3면), 인조잔디구장(1면) 그리고 웨이트트레이닝룸, 미팅룸, 물리치료실들을 갖춘 관리동으로 구성된 GS챔피언스파크를 조성해 클럽훈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관련 항목[편집]

참고 자료[편집]

  1. 한국프로축구연맹 공식 K리그 클럽 소개
  2. 서울월드컵경기장 공식 웹사이트 에 따르면 총 관중석은 66,806석이며 귀빈석 816석, 보도석 754석, 스카이박스 75실 (1실당 12-29석)이 총 관중석에 포함되어 있다.
  3. "2007 캐치프레이즈 Soul of Seoul, FC SEOUL", 《FC서울 뉴스》, 2007년 1월 24일 작성.
  4. "FC서울 전 세계 클럽 브랜드 평가 62위, K리그 최고", 《스포츠조선》, 2012년 6월 1일 작성.
  5. "11월말까지 선수단 구성 럭키 프로축구팀 창단 공식발표", 《매일경제》, 1983년 8월 18일 작성.
  6. "프로축구 금성 오늘 창단식 심벌마크는 황소", 《매일경제신문》, 1983년 12월 12일 작성.
  7. 충청도는 충청남도, 충청북도, 현재의 대전광역시를 모두 포함하는 행정구역으로 1989년 충청남도 소속인 대전시가 직할시가 되면서 독립하였다.
  8. "스포츠팀총괄 법인체설립 럭키금성 프로축구팀 고경환 단장", 《매일경제신문》, 1983년 8월 19일 작성.
  9. 김덕기. "럭키금성, 그룹 명에 걸고 프로대열에", 《스포탈코리아》, 2013년 1월 26일 작성.
  10. "연고지 서울희망 럭키금성 축구 창단 발표", 《경향신문》, 1983년 8월 19일 작성.
  11. "88대표 프로무대서 비실비실", 《경향신문》, 1988년 4월 14일 작성.
  12. "스포츠 단신", 《동아일보》, 1991년 2월 27일 작성.
  13. "럭키금성축구단 이름바꿔 '럭금 LG 치타스'로", 《한겨레》, 1991년 2월 27일 작성.
  14. "프로축구 LG치타스, 각종 팬서비스 실시", 《연합뉴스》, 1992년 5월 29일 작성.
  15. "프로축구단신-LG,팬 2천명에 무선호출기 지급", 《연합뉴스》, 1995년 9월 25일 작성.
  16. "'치타스 가족' 창간호 발간", 《한겨레》, 1992년 7월 12일 작성.
  17. "프로축구 서울 3구단 팬확보 공동홍보 합의", 《동아일보》, 1992년 3월 10일 작성.
  18. LG 치타스 94년도 자매결연 사업 추진 포스터
  19. "프로축구 지역연고 먼길인가", 《한겨례》, 1995년 11월 9일 작성.
  20. "일화 유공 LG, 내년에 서울연고 없어", 《월간축구 (현 베스트일레븐)》, 1995년 12월호 작성.
  21. "서울 한지붕 세가족 일화, LG, 유공 내년엔 모두 서울 떠난다", 《스포츠서울)》, 1995년 11월 6일 작성.
  22. "프로축구 LG 안양에 "새둥지"", 《동아일보》, 1996년 4월 27일 작성.
  23. "일화, LG, 유공 서울 포기 못해", 《한겨레》, 1995년 12월 13일 작성.
  24. "K리그 서울 연고의 어제와 오늘", 《스포츠조선》, 2014년 4월 9일 작성.
  25. "11개 구단 긴급설문 '기존팀' 서울입성 찬성", 《스포츠서울》, 2004년 2월 3일 작성.
  26. "서울시축구협회, 안양 LG 연고 이전 환영", 《경기신문》, 2004년 2월 3일 작성.
  27. (2004년) K리그 핫이슈 - 서울 구단 탄생 어제, 오늘 그리고.... 《베스트일레븐 2004년 3월호》: 91페이지.
  28. "프로축구연맹, LG 서울 입성 승인", 《연합뉴스》, 2004년 3월 11일 작성.
  29. "안양LG, 서울 연고지 이전 최종 확정", 《YTN》, 2004년 3월 19일 작성.
  30. "LG 새이름 "FC 서울"", 《일간스포츠》, 2004년 3월 19일 작성.
  31. "서울시 - FC서울” 프로축구 서울 연고지 협약 체결", 《서울특별시 공식홈페이지》, 2004년 3월 29일 작성.
  32. 1996년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시행 이전 당시 서울을 공동 연고로 하던 LG 치타스, 일화 천마, 유공 코끼리 3개 구단의 홈경기들을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보았던 LG 치타스 팬을 비롯한 서울 축구팬들은 '연고 복귀'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연고지 이전의 당위성을 주장하였다. 이들은 그 당시에 서포터즈만 없었을 뿐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프로축구를 즐기던 서울 구단들에 대한 연고 의식을 가진 서울 축구팬들이 다수 존재했던 것은 명확한 사실이며 근본 원인인 서울에서 안양으로의 강제 연고지 이전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하고, 안양에서 서울로의 연고지 이전에 대해서만 타당하지 않다고 비난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얘기하였다. 또한 강제 이전 당시 축구전용경기장이 신축되면 서울로 연고 복귀를 허용한다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의 단서조항이 있었으며 그 당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현재 서울을 강북-서울월드컵경기장, 강남-잠실종합운동장, 강서-목동운동장 이렇게 서울을 분할하는 더비 매치를 벌였다면 (실제 서울 연고지 분할 방안을 축구계에서 검토 하였다. 기사 문체부,협회 활성화 대책 국민열망 업고 정책지원 잰걸음 참고) 런던 부럽지 않은 축구 도시로 성장시켰을 수도 있었던 것에 대해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졸속행정을 비난하는 K리그 올드팬들도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그 당시 1996년 이전 서울에서 프로축구를 즐겼던 주력세대는 2004년 연고지 이전 당시 최소 30대 이상의 연령대가 되어서 인터넷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주계층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는 그렇게 크게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또한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의해서 서울에서 강제이전 될 당시는 K리그 8개 팀 중에 3팀이 서울에 있었던 상황이 그 당시에는 서울에 집중된 것 처럼 보였으나 경쟁종목인 프로야구도 2008년도부터 8개 팀 중에 3팀이 서울을 연고로 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살고 있고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생기고 있는 시류를 예상하지 못하고 다시 서울 연고팀을 만들기 위해 축구계에서 안간 힘을 쏟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연맹의 일차적인 책임이 가장 크다는 것에 축구팬들이 수긍해 가고 있다.
  33. "K리그 '5만 관중'시대 열다!", 《KBS 뉴스》, 2007년 4월 9일 작성.
  34. "귀네슈 감독의 작별 인사, “서울 팬들 영원히 잊지 못할 것”", 《매일경제》, 2009년 11월 24일 작성.
  35. "굿바이 귀네슈, 귀네슈 3년 한국 축구에 남긴 메시지”", 《스포탈코리아》, 2009년 11월 27일 작성.
  36. "FC 서울과 귀네슈 감독의 3년을 추억하다", 《FC 서울 웹진 12월호》, 2009년 12월 8일 작성.
  37. "FC서울 사우디 요르단 지휘 빙가다 감독 영입", 《FC서울》, 2009년 12월 14일 작성.
  38. "6만 747명 상암벌, 서울 K리그 역사를 쓰다", 《스포츠동아》, 2010년 5월 5일 작성.
  39. "FC서울, 성적도 인기도‘모두 No.1’K리그 최고 구단 우뚝", 《FC서울 뉴스》, 2010년 11월 7일 작성.
  40. "FC서울, 성적+팬심 둘 다 잡고 진정한 NO.1 됐다", 《스포츠월드》, 2010년 11월 7일 작성.
  41. "'아디 역전골' 서울, 제주 누르고 10년 만에 K리그 제패", 《스포탈코리아》, 2010년 12월 5일 작성.
  42. "서울, '우승-50만 관중' 모두 잡다…완벽한 승리", 《스포탈코리아》, 2010년 12월 5일 작성.
  43. "빙가다 감독 '굿바이 코리아', 14일 한국 떠나", 《스포츠조선》, 2010년 12월 14일 작성.
  44. "FC서울,‘공부하는 지도자’황보관 감독 선임", 《FC서울》, 2010년 12월 28일 작성.
  45. "최용수 감독 대행 꼬리표 뗐다, 정식 감독 선임", 《스포츠조선》, 2011년 12월 9일 작성.
  46. "K리그 개막 특집 ① - 올 시즌 K리그 통합 우승 팀 & 8강팀은?", 《네이버 스포츠》, 2012년 3월 1일 작성.
  47. "최용수 감독-데얀, 불화 및 태업설 일축 ‘되찾은 훈훈함’", 《파이낸셜뉴스》, 2012년 3월 8일 작성.
  48. "최용수, K리그 최초 한 팀서‘선수-코치-감독’우승", 《인터풋볼》, 2012년 11월 21일 작성.
  49. ""2012년은 서울 천하"…13관왕 '싹쓸이'", 《아시아경제》, 2012년 12월 3일 작성.
  50. "서른살 서울에 최초의 역사 새길 '레전드' 최용수의 도전", 《스포츠서울》, 2013년 11월 7일 작성.
  51. "몰리나의 눈물과 재기, 사라진 7개월 드라마를 들춰내다", 《조선》, 2014년 7월 16일 작성.
  52. 디시인사이드 FC서울 갤러리
  53. GruppoTHANATOS
  54. FC서울 공식 웹사이트 V걸스 소개 메뉴
  55. FC 서울 공식 웹사이트 선수단 명단
  56. "한국프로축구연감", 《한국프로축구연맹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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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서울, 연이은 빅매치...프로축구 흥행몰이 나선다", 《스포츠서울》, 2006년 8월 7일 작성.
  59. "역대 FA컵 8강전… 스프링클러에서 최다 관중까지", 《스포츠서울》, 2009년 7월 15일 작성.
  60. "LA갤럭시 투어 서울, LA갤럭시에 승부차기 승", 《대한축구협회 뉴스》, 2008년 3월 1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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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FC서울의 스크린 이력서", 《FC서울 명예기자 공식 블로그》, 2011년 8월 3일 작성.
  71. "FC 서울, 구단 프런트 절반이 마케팅 담당...자생력 키우기", 《이데일리》, 2008년 5월 30일 작성.
  72. "서울도시철도와 FC서울, 광고 마케팅 협약 체결!", 《서울도시철도 홍보블로그》, 2009년 6월 1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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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FC 서울역으로 변신", 《스포탈코리아》, 2009년 5월 15일 작성.
  75. "기성용과 이동국의 맞대결! FC서울이 마련한 어린이 무료입장 이벤트", 《서울도시철도 홍보블로그》, 2009년 9월 4일 작성.
  76. "FC서울과 함께 만화로 배우는 축구 ‘ 볼수록 만만한 축구’", 《FC서울뉴스》, 2010년 7월 1일 작성.
  77. "위시쿠폰, 소셜커머스 최초 프로축구 ‘FC서울 티켓북’ 판매", 《경제투데이》, 2011년 2월 26일 작성.
  78. "서울, 새로운 마케팅 컨셉 ‘FANsation’", 《인터풋볼》, 2014년 2월 2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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