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프로 축구 리그
| 일본 프로 축구 리그 | |
|---|---|
| 국가 | |
| 대륙 | AFC |
| 설립 연도 | 1992년 |
| 분리 | J리그 디비전 1 J리그 디비전 2 |
| 리그 등급 | 1 ~ 2 |
| 참가 팀 수 | 40 |
| 하위 리그 | 일본 풋볼 리그 |
| 국내 컵 | J리그 컵 천황배 |
| 대륙 컵 | AFC 챔피언스리그 |
| 최근 우승 | |
| 최다 우승 | |
| 공식 홈페이지 | j-league.or.jp |
일본 프로 축구 리그(日本プロサッカーリーグ)는 일본의 최상위 프로 축구 리그이다. 흔히 약칭으로 J리그(Jリーグ)라 불린다. 일본 축구 협회와 사단법인 일본 프로 축구 리그가 공동 주최하며 일본 프로 축구 리그에 가입한 각 클럽들이 주관하고 있다.
1992년 발족하여 1993년 10개의 클럽으로 첫 대회가 열렸으며 1999년 J리그 디비전 1과 J리그 디비전 2로 나뉘어 현재 각각 18개, 22개 팀이 소속되어 있다.
목차 |
역사 [편집]
발족 이전 [편집]
J리그가 발족되기 전 일본 축구의 전체적인 환경은 빈약했다. 이미 일본사커리그(JSL)가 있었으나 한 경기당 관객 동원수는 1,000~3,000명 정도였다. 천황배 등을 포함한다면 연간 20~30만명 정도가 되었다.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선발전은 지방의 소규모 경기장에서 열렸는데도 관중석이 채워지지 않을 정도였다. 사회인 톱클래스 팀도 연습 설비가 부족하고 경기장의 잔디도 겨울이 되면 노랗게 죽고 비가 오면 물에 잠기는 일이 일상적이었다. 선수는 일부를 빼면 아마추어였고 회사원이었던 대부분은 일 때문에 축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축구 수준은 전 세계적으로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낮은 축에 들었다. 이런 상황을 타파하고 인기와 경기 수준의 향상을 이끌어내기 위해 프로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져갔다. 하지만 JSL 참가 팀으로부터 시기상조라는 목소리가 높아져 발전의 걸음이 늦어졌으나 일본 축구 협회의 주도로 일본 프로 축구 리그(J리그)의 발족이 결정되었다. 첫 해에는 열 팀이 참가하여 1992년에 리그컵 대회인 J리그 야마자키 나비스코 컵 대회가 열렸다.
개막과 거품 (1993년 ~ 1995년) [편집]
1993년 5월 15일 화려하게 개막한 J리그는 여태껏 프로 야구, 골프, 스모 정도밖에 없던 일본 프로 스포츠계에 충격을 주었다. 경기가 매일 텔레비전으로 방영되었으며 경기장에는 많은 관중이 몰려들었다. 관련 상품들도 많이 팔려나갔고 1993년에는 신조어 유행어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개막 초기에는 "유명 선수들의 막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세계의 올드 스타가 모여들었으나 1994년 FIFA 월드컵 이후로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고액을 제시하여 세계의 현역 톱 플레이어들을 끌어모았다. 이 해의 한 경기당 평균 관객 동원수는 19,598명으로 그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경기장의 정비도 현재와 비교가 안 될 정도였지만 평일 관중수도 당시의 높은 인기를 증명하고 있다.
개막 당시 J리그의 "기업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 경영", "지역 주민과 지자체와의 연대"라는 방침은 일본에 있어서 극히 이색적이며 강한 독자성이 있었으나 초기에는 "프로 야구의 축구판"이라고 보는 쪽도 없지 않았다. 또한 초기에는 선수의 연봉이 국제 시장 가격과 비교해 높아서 후에 J리그 각 클럽의 경영을 압박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 시기는 현재에는 비판적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축구의 인지도는 많이 향상되어 일본 축구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또한 많은 거물 외국인 선수와 유명 감독과의 우호적인 관계도 대부분 이 시기에 쌓아졌다.
1994년에는 팀의 정식 명칭에서 회사명을 빼기로 결정되었고 이 일로 클럽의 오너와 J리그 협회 사이에 마찰이 시작되어 J리그 경영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게 되었다.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의 후유증과 버블의 종식 (1996년 ~ 2000년) [편집]
J리그 출범을 기획하였던 일본의 축구 행정가들은 특히 당시 연맹 회장이었던 가와부치 사부로는 일본 프로 야구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너무나 과도한 인기를 누리고 이런 인기를 바탕으로 프로야구연맹에 반기를 드는 구단 이기주의가 일본 프로야구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점 그리고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한신 타이거즈 같은 몇몇팀들을 제외하고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특정 슈퍼 클럽의 독주가 리그의 전체적인 발전을 해친다고 판단하였다. 특히 가와부치 사부로는 전 구단의 전력이 평준화되고 공동으로 이익을 배분하는 미국 프로 미식축구 NFL를 모델로 삼고자 하였으며 특히 "축구에 거인군 (요미우리 자이언츠)은 필요없다""라며 전국구 구단의 출현을 공개적으로 반대하였다.[1] 와부치 사부로 인터뷰|작성일자=|출판사=GQ}}</REF>
그리하여 J리그는 몇개의 전국구 슈퍼 클럽의 출현 보다는 모든 구단들이 해당 연고지내에서만 인기 있는 것을 목표하는 지역 밀착을 이념으로 삼았으며 그 결과 슈퍼 클럽이 존재할 가능성이 큰 도쿄를 J리그 규정을 충족하는 유일한 경기장인 도쿄 국립 경기장을 불허하면서 전구단이 순회하면서 도쿄에서 중립경기를 가지는 세계 프로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수도에 연고 구단을 가지지 않고 프로 리그를 운영하는 방식의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 시행하였다.[2] 하지만 이런 의사결정은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어마어마한 전국적 인기를 구가하고 독주하는 것만 생각을 하였지 그 반대 현상으로 반요미우리 정서 또한 엄청나고 이러한 반요미우리 정서가 오히려 도쿄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 강한 경쟁심을 불러 일으켜 이것이 일본 프로야구의 인기를 유지한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였으며 리그를 주도하는 슈퍼 클럽의 등장은 전세계 대부분의 프로스포츠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역기능보다 순기능이 더 많다는 것을 간과하여 결과적으로 잘못된 정세 판단을 하였다. 그리하여 J리그 출범 당시 도쿄 연고지를 허락하면 막대한 투자를 하여 프로 축구의 요미우리 자이언츠같은 전국구 슈퍼 클럽이 되겠다고 약속한 요미우리 축구단(현 도쿄 베르디 1969)과 미쓰비시 축구단(현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은 J리그 연맹의 반대로 도쿄 인근 가와사키 시와 우라와 시를 연고지로 도쿄 대신 선택하였다.
즉 일본 프로야구가 도쿄 연고의 요미우리 자이언츠라는 슈퍼 클럽이 있고 이를 견제하는 선봉 클럽에 오사카와 고베 광역 연고의 한신 타이거즈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면서 야구팬이 아니어도 평범한 일본 사람들도 이런 지역주의 구도에 관심을 끌게 하면서 국민스포츠가 된 반면 J리그는 출범 초부터 도쿄를 공동화해서 요미우리 자이언츠같은 슈퍼클럽이 생길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였으며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일본 지역주의의 가장 큰 구도인 간토 지방(도쿄 중심) 대(對) 간사이 지방(오사카 중심) 지역 대결 구도를 프로야구처럼 형성하는데[3] 실패하여 결국은 일본 사회에 그다지 파급효과가 없는 중소도시 연고 클럽들이 리그를 주도하는 중소도시 빅클럽 구조로 개편되었다.
한편 일본 J리그의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은 대한민국의 프로 축구 K리그에도 영향을 미쳐 한국프로축구연맹은 도쿄 연고 공동화 정책을 그대로 모방하여 1996년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을 시행하게 만들었다.
또한 1996년 신규 가맹한 두 팀의 수준이 리그 수준에 못 미칠뿐더러 16개 팀 중 15위와 16위를 기록했다. 이때부터 "팀 수가 과다하다", "레벨이 낮다" 등의 비판이 제기되었다. 또한 2002년 FIFA 월드컵이 팬들이 원치 않던 대한민국·일본 공동 개최가 된 것도 인기 저하의 요인이 되었다.
관객 동원수도 급격히 감소하여 1994년에 19,598명을 기록한 평균 관객 동원수도 1997년에는 10,131명이 되어 3년 만에 반으로 전락하였다. 일본 대표의 에이스가 된 나카타 히데토시는 조호바루의 환희 후의 인터뷰에서 "다음은 J리그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세요"라고 읍소한 일화도 있었다. 그것은 말레이시아 경기장을 꽉 채운 일본 대표팀 서포터들에게 대하여 그런 노력을 할 수 있다면 J리그도 보러 와달라는 비아냥거림이기도 하였다.
J리그가 인기가 하락하고 있던 1996년 J리그는 ‘J리그 백년 구상’을 발표하였다. 그것은 기업의 스폰서에서 벗어 나 지역에 연고를 둔 스포츠의 존재 방식을 모색하자는 취지의 이념으로 적극적인 클럽 수를 확대하여 최종적으로는 전국에 100개의 클럽을 만들자는 목표이다.
그 방안에 대하여 당시 베르디 가와사키의 오너기업인 요미우리 신문사의 사장인 와타나베 쓰네오가 강력히 반대하였다. 하지만 J리그 회장인 가와부치 사부로가 그것을 듣지 않았다. J리그 발족 때부터 순탄치 않던 둘의 관계가 결정타를 맞게 된 것이었다. 1999년 요미우리 신문사와 요미우리 랜드는 베르디의 경영으로부터 손을 떼고 계열 자회사인 니혼 텔레비전에 전 주식을 양도하였다.
그리고 1998년에는 요코하마 마리노스와 요코하마 플뤼겔스의 합병(사실상 플뤼겔스의 소멸)이 발표되었다. 당시의 J리그 클럽 중에서 비교적 인기가 있고 성적도 상위였던 요코하마 플뤼겔스의 소멸은 J리그 이념과 일본사회의 스포츠에 대한 생각의 괴리가 빚어낸 비극이었다. 1999년에 요코하마 플뤼겔스의 사실상 후계자인 요코하마 FC가 발족하였으나 대부분의 팬들은 이 참사에 실망하여 경기장에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심각한 위기를 맞은 J리그였지만 일본 대표팀의 1998년 FIFA 월드컵 출전(일본의 사상 첫 FIFA 월드컵 출전)과 2002년 FIFA 월드컵 개최 결정(대한민국과 공동 개최 결정)을 계기로 관객 동원수는 조금씩 회복되었으며 그리하여 2001 시즌은 베르디 가와사키 (현 도쿄 베르디)가 일본 최대 빅마켓인 도쿄로 입성하는 등 여러 호재를 발판으로 평관관중 목표를 14,000명대로 정했었다.[4]
그리고 1999년에는 J리그 참가를 희망하는 클럽의 증가에 힘입어 2부제를 도입. 이것에 의해 지방을 중심으로 많은 J리그 2부 클럽이 전국 각지에서 탄생하였다.
부활과 지역 밀착 (2001년 ~ 2010년) [편집]
일본개최의 월드컵을 개최하기로 결정한 2001년 장기간 침체되어 있던 J리그 관객 동원수가 크게 호전되었다. 특히 알비렉스 니가타(アルビレックス新潟)로 대표되는 지방 도시 클럽이 대두 되었다.
미디어 주도였던 발족 당시의 인기에 대하여 2001년 이후의 인기회복은 지역과 지방도시의 로컬리즘에 의한 비중이 비상히 컸다. 본거지를 프랜차이즈가 아닌 홈타운이라고 부른 것에 상징성을 부여하고 지역주민에 자기 마을의 클럽이라는 인식을 강력히 갖게 한 서포터라고 불리는 열광적인 팬 층을 두텁게 하여 리비타 효과에 의한 관중수를 늘렸다. 또한 소수의 기업 등이 클럽을 보유하였으나 현재에는 여러 스폰서가 참가하여 지자체와 지역의 시민들로 클럽을 지지하는 경영수법을 쓰는 클럽도 다수 생겨났다.
또한 2002년 월드컵 등으로 전국 각지에서 세운 경기장에 의하여 여태까지 경기장에 들어갈 수 없던 관객도 관전을 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영향이 컸다. 전국적으로 규모도 좁은 지역과 지방도시를 바탕으로 착실히 확대하여 J리그의 이념이 조금씩 침투하게 되었다. 또 종래에는 대도시밖에는 할 수 없다고 믿었던 프로 스포츠의 경영도 지방에서도 된다는 것을 증명하여 J리그에 입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클럽이 지방도시를 중심으로 증가되었다.
또 2부제의 도입에 의해 J1과 J2로 바뀌어 진행되어 J1하위 팀의 동향에도 주목이 집중되는 것과 함께 J2에도 대표선수가 소속되는 일이 크게 늘어나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경기가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다.
현재와 미래 (2011년 ~ ) [편집]
J리그는 2011년 현재 J1, J2을 포함해 38개 클럽이 소속해 있다. J리그의 장래 구상 위원회 보고서에 의하면 2010년까지 36개 클럽(J2는 18개 클럽)으로 확장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는데 2008년 시즌이 끝나고 3개 팀이 J2에 합류해 목표를 달성했다. 리그 전체의 경기 레벨을 유지하기 위해 당초 예정되어 있던 JFL와의 교체는 당분간 실시하지 않고 천천히 J2의 확대를 실시해 가는 당초의 생각이 이뤄진 결과였다. 또한 J리그 공백 지대인 기타도호쿠(도호쿠 북부), 호쿠리쿠, 산인, 미나미큐슈(규슈 남부), 오키나와 등에 팀이 필요하다는 소리도 많다.
구성 [편집]
현재는 1부리그와 2부리그로 구성되어 있다.
우승 기록 [편집]
역대 리그 우승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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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편집]
- ↑ “JFA회장 가와부치 사부로 인터뷰”, 《GQ》.
- ↑ “10년간 한국 축구 얼마나 발전했나?”, 《엑스포츠뉴스》, 2012년 6월 1일 작성.
- ↑ “일본 프로야구 최고 인기구단 한신 취재기”, 《박동희 칼럼》, 2009년 5월 7일 작성.
- ↑ “J리그의 올 시즌 평균관중 데드라인은 1만4,000명.”.
바깥 고리 [편집]
- (일본어) J리그 공식 웹사이트
- (일본어) J's GOAL(J리그 공식 팬사이트)
- (일본어) J리그 선수 협회
- (일본어) J리그 캐리어 서포트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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