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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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시
나라 시의 위치
한자 표기 奈良市
가나 표기 ならし
나라 일본 일본
지방 긴키 지방
도도부현 나라 현
분류코드 29201-0
면적 276.84 km²
인구 365,470명
(2009년 10월 1일)

나라 시(일본어: 奈良市, ならし)는 일본 긴키 지방 나라 현 북쪽에 위치하는 이며, 현청 소재지이다. 8세기헤이조쿄(平城京)가 자리 잡았던 고도이다.

나라 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 도시인 동시에 고도 나라의 문화재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역사 도시이고, 연간 관광객은 약 1,300만명이다. 또 오사카위성 도시이기도 하고, 시 서부 지역에 주택 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중핵시로 지정되어 있다.

지리[편집]

나라 시는 나라 시대에 헤이조쿄가 세워졌던 일본의 고도이며, 실크로드의 종착점으로서 덴표 문화를 꽃피웠던 땅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의 나라 시는 나라 현의 북부 일대를 차지한 광역시로서 나라 분지의 북단에 해당한다. 북쪽으로는 고대에는 나라야마(平城山)라 불렸던 구릉지대로 교토 부와 접하는데, 나라야마를 넘어서 야마시로 국과 이어지는 나라자카(奈良坂)는 예로부터 일본의 주요 교통로의 하나였다. 도시는 남북으로 22.22km, 동서로 33.51km에 걸쳐 뻗어있어 남북보다는 동서로 조금 더 넓으며, (1) 동부의 산간지, (2) 문화재를 많이 보유하고 국제적인 관광문화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춘 중동부의 시가지 일대, (3) 오사카위성도시로서 택지개발이 이루어진 서부, 라는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어 같은 나라 시 안에서도 거리 분위기나 주민들의 의식 지향은 차이가 있다. 최근 2005년 4월 1일의 합병으로 쓰게 촌과 쓰키가세 촌을 편입해 현재의 경계는 동쪽으로 야마토 고원, 미에 현과도 접하며 표고 300m에서 600m에 이르는 고지가 이어진다. 총 면적은 276.84km²이다. 고대 헤이조 궁 부지의 동쪽에 지금의 나라 시가 놓여있으며, 나라 현청, 나라 시청과 같은 행정 기관들은 헤이조쿄의 니조 대로(二条大路), 주요 은행들의 지점은 산조 대로(三条大路)에 해당하는 지점에 있으며 두 거리 모두 동서 방향을 관통한다. 도시에서 가장 높은 지점은 가이가히라 산으로 해발 822m이고 가장 낮은 지점은 이케다 정으로 해발 56.4m이다.

기후[편집]

나라 시의 기후는 세토나이카이식 기후와 대륙성 기후를 모두 갖추고 있다.

나라 시, 2008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전년
평균 기온 °C 3.8 4.3 7.3 13.5 18.0 21.9 26.1 27.1 23.0 16.6 11.0 6.6 15.0
강수량 (mm) 54.0 67.5 102.5 134.5 213.0 144.5 91.0 162.5 163.5 71.5 54.5 41.5 1300.5

[1]

주요 지명은 다음과 같다.

  • 강: 사호 강(佐保川) 도미오카 강(富雄川), 야마토 강(大和川), 기쓰 강(木津川)
  • 분지: 야마토 분지(奈良盆地)
  • 고지: 야마토 고원(大和高原)

인구[편집]

2005년에 도시의 추정 인구는 373,189명이었고 인구밀도는 km²당 1,348명이었다. 나라 시에는 147,966세대가 살고 있다. 인구가 가장 집중된 곳은 오사카와 연결되는 긴테쓰 선의 연선 지역이다. 등록된 외국인 수는 약 3,000명으로 이 중 한국인과 중국인이 각각 1,200명과 800명으로 가장 많은 집단이었다.

역사[편집]

고대에는 지금의 나라 지역을 가리켜 소호리(添)라 불렀다. 시가지가 위치한 평탄한 지형에서 ‘나라(奈良)’라는 도시 이름이 유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설이 유력하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당시 조정의 관군이 초목을 밟아 울렸다는 데에서 부근의 산이 나라 산(那羅山)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고 ‘나라’라는 지명도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설도 있다. 나라 시의 한자 표기는 ‘奈良’이지만, 고문서에는 ‘那羅’, ‘寧楽’, ‘平城’ 등으로 표기된 경우도 있다(읽는 법은 모두 똑같다). 현대 한국어로 ‘국가’를 의미하는 ‘나라’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으나, 근거는 없다. 일본에서 ‘국가’를 의미하는 단어는 이미 고대로부터 ‘구니(クニ)’였고, 이것을 ‘나라(ナラ)’로 적은 문헌은 눈에 띄지 않으며, 고대 한국어에서 국가를 가리켜 ‘나라’라고 불렀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현재 나라 시가지의 서쪽에는 우와나베 고분(ウワナベ古墳)을 비롯한 5세기의 대형 고분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들을 묶어 사키 고분군(佐紀古墳群)이라 부른다. 《와묘쇼(和名抄)》에 보이는 야마토 국(大和國) 소에가미 군(添上郡)의 야마무라노사토(山村郷), 야규노사토(楊生郷), 야지마노사토(八島郷), 오오카노사토(大岡郷), 가스가노사토(春日郷) 및 소에가미 군 사키노사토(佐紀郷), 도리가이노사토(鳥貝郷)의 땅이 지금의 나라 시에 해당된다. 원래의 도시인 헤이조쿄당나라의 수도 장안(현재의 시안 시)을 모방한 것이었다. 고대 일본 역사서인 일본 서기에 따르면 ‘나라’라는 이름은 일본어로 ‘평탄한 땅’을 의미하는 ‘나라시타’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시역(市域) 주변이 일본 역사의 무대로 등장하게 된 것은 710년에 수도를 후지와라쿄(藤原京)에서 헤이조쿄(平城京)로 옮기면서부터의 일이다. 그 뒤 일부 단기간의 천도 기간을 제외하고, 나가오카쿄(長岡京)로 옮기게 되는 784년까지 이 땅은 일본의 중심지였으며, 이 시대를 나라 시대라고도 부른다. 나가오카쿄로 천도한 뒤에도 도다이지(東大寺)나 야쿠시지(薬師寺), 고후쿠지(興福寺) 등의 사찰 세력들이 이 지역에 퍼져 있었고, 이곳을 가리켜 ‘남쪽의 수도’라는 뜻의 ‘남도(南都)’라고 불렀다.

나라의 사원들은 중세에 이르러서도 고후쿠지가 야마토의 슈고(守護)에도 임명되는 등 광대한 장원을 소유한 세력으로서 여전히 맹위를 떨쳤는데, 전란이 격화될 수록 영향력은 더욱 커졌고 때문에 몇 번이나 전장이 되어 소실되곤 했다. 헤이안 시대 말기의 다이라노 시게히라(平重衡)에 의한 난토쇼토(南都燒討)와 센고쿠 시대의 도다이지 대불전 전투(東大寺大佛殿の戰い) 등 두 차례의 걸친 대불 소실은 이것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에서 센고쿠 시대에 이르는 동안 타국 및 인근 영지까지 현지의 야마토 무사단(大和武士團)이 실효지배하게 되면서 불교 세력은 쇠퇴했다.

에도 시대(江戶時代)에는 나라부교(奈良奉行)가 설치되어 에도 막부(江戶幕府)의 직접지배를 받았는데, 이 시대의 분위기는 나라마치(奈良町)에서 엿볼 수 있다. 또한 현재 나라 시 영역의 남쪽은 쓰 번(津藩)의 영지(후루이치마치古市町 부근), 같은 북동부는 야규 번(柳生藩)의 영지가 되었다. 전쟁 중에도 교토(京都)처럼 대규모 공습을 피한 덕분에 많은 문화유산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현대에 현 정부의 소재지로써 나라는 지역의 상업과 행정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도시는 공식적으로 1898년 2월 1일에 성립되었다.

관광[편집]

도다이지
사슴 공원

자매결연도시[편집]

일본 일본[편집]

해외[편집]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GHCN Climate averages 1953-1990, GISTEMP, Goddard Institute of Space Studies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