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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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전

도다이지(東大寺)는 일본 나라 현 나라 시에 위치한 불교 사원 단지이다. 이 절의 대불전(大仏殿)은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 건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비로나자불(毘盧遮那佛)이 있다. 절은 또한 일본 화엄종의 대본산이다. 절은 고도 나라의 문화재로서 나라 시의 절, 신사 등을 포함한 7개의 다른 곳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역사[편집]

기원[편집]

계단원

도다이지 부지에 건물이 놓이기 시작한 것은 728년에 쇼무 천황이 어린 나이에 죽은 황태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기쇼센지(金鐘山寺)를 세웠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덴표 시대에 일본은 거듭되는 재해와 전염병으로 고통받았다. 이러한 일을 겪은 후에 쇼무 천황은 전국 곳곳에 고쿠분지(国分寺)의 건설을 장려하는 칙령을 내렸다. 도다이지(이때는 여전히 기쇼센지)는 야마토 국의 고쿠분지로 지정되었고 모든 고쿠분지의 수장이 되었다. 729년 나가야 왕의 정변과 735~737년 천연두의 창궐, 연이은 흉작과 740년 후지와라노 히로쓰구의 반란으로 일본은 혼란한 상황에 빠졌다. 쇼무 천황이 이 기간에 수도를 네 번이나 옮긴 것은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을 잘 나타낸다.


초기 일본 불교에서의 역할[편집]

나라 시대에 율령 체제 하에 불교는 국가에 의해 소고(僧綱-불교 승려들을 관리하기 위해 두어진 승관직)로 지정되었다. 이 무렵 도다이지는 난토 6종(법상종, 화엄종, 성실종, 삼륜종, 율종, 구사종)의 고쿠분지들을 위한 중앙 관리 사원 역할을 했다. 나라 시대에 도다이지는 "6종 겸학의 절"로 여겨져 대불전 내에는 각 종파의 경론을 넣어둔 "6종 주자"가 있었다.

중문

일본 불교는 이 기간에 여전히 의 계통을 유지하고 있었고 모든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승려들은 도다이지에서 율 하에 수계를 받아야했다. 중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승려인 감진은 754년에 도다이지에서 고켄 천황쇼무 천황을 포함한 황족들이 보살계를 받을 수 있게 하였고 일본 불교에 수계 제도를 정착시켰다. 이후 구카이, 사이초 등의 불교 승려들도 이곳에서 수계를 받았다.

쇠퇴[편집]

일본 불교의 힘의 중심은 나라에서 히에이 산천태종으로 이동했고 일본의 권력의 중심이 가마쿠라로 이동하면서 도다이지의 권위 또한 쇠퇴하기 시작했다. 몇 세대 후에 부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율의 계통 또한 소멸하게 되었고 더이상 도다이지에서 수례식이 행해지지 않게 되었다.

건축[편집]

초기의 건설[편집]

종루

743년에 쇼무 천황은 일본 곳곳에 새로운 사원을 설립하라는 칙령을 반포했다. 이것은 부처의 힘을 빌려 국가를 더 이상의 재앙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승려 교키는 일본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기부를 요청했다. 도다이지의 기록에 따르면 도다이지의 불상과 대불전을 건설하는데 260만 명 이상이 도움을 주었다. 16m 높이의 불상은 3년 넘게 8번의 주조를 통해 만들어졌고 머리와 목은 별도로 주조되었다. 불상의 제작은 시가라키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몇 번의 화재와 지진을 견딘 후, 제작은 745년에 나라에서 다시 시작되어 751년에 마침내 완성되었다. 1년 후인 752년에 불상의 완성을 기념하는 의식에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했다. 이 프로젝트는 이 무렵에 이용 가능한 청동의 대부분을 소모해버리는 바람에 일본의 경제를 파탄 지경에 이르게 만들었다.

원래의 사원에는 100m가 넘는 두 개의 불탑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지진에 의해 파괴되었다. 쇼소인은 도다이지의 창고로 현재 덴표 시대의 많은 미술 공예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나라 시대 이후의 재건[편집]

대불전은 화재 이후 두 번 재건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709년에 완공된 것으로 길이 57m, 너비 50m에 달하지만 원래의 것에 비해 사실상 30% 더 작은 것이다. 대불은 지진을 포함한 다양한 이유로 몇차례 다시 주조되었다. 현재 불상의 손은 아즈치모모야마 시대(1568~1615)에 만들어진 것이고 머리는 에도 시대(1615~1867)에 만들어진 것이다.

남대문은 12세기 말에 송나라의 건축 양식으로 재건된 것이다. 남대문에 있는 8.5m 높이의 두 개의 금강역사상은 불상 조각가 운케이, 가이케이와 작업 인부들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절 경내와 정원[편집]

도다이지의 다양한 건물들은 정원 설계의 전체적인 미적인 의도에 따라 배치되었다. 인접한 정원은 오늘날 도다이지의 일부로 여겨진다.

이들 구조물의 일부는 현재 대중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과 정원은 독특하고 유기적인 사원 단지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발전하였다.

도다이지의 일본 국보[편집]

국보
이름 한자
금당 (대불전) 金堂 (大仏殿)
남대문 南大門
개산당 開山堂
종루 鐘楼
법화당 (삼월당) 法華堂 (三月堂)
이월당 二月堂
전해문 転害門


주요 역사적 사건[편집]

  • 728년 : 도다이지의 전신인 긴쇼센지가 모토이 황자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세워졌다.
  • 741년 : 쇼무 천황이 전국에 고쿠분지를 세울 것을 명령했고 긴쇼센지는 야마토 국의 고쿠분지로 지정되었다.
  • 743년 : 천황은 아주 큰 불상을 만들 것을 명령했고 초기 작업이 시가라키에서 시작되었다.
  • 745년 : 수도가 헤이조쿄로 돌아온 후 대불은 나라에서 다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 752년 : 대불이 완성된 것을 기념하는 의식이 행해졌다.
  • 855년 : 대불의 머리가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일본의 신앙 심깊은 사람들이 또다른 것을 만들기 위해 모금하였고 대불은 더욱 잘 고정된 상태로 복원되었다.

갤러리[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