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키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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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키 지방

긴키 지방(일본어: 近畿地方, 근기지방) 또는 간사이 지방(일본어: 関西地方, 관서지방)은 남쪽은 기이 반도에서 북쪽은 와카사 만에 이르는, 주고쿠 지방주부 지방 사이에 위치한 일본의 지역을 말한다. 교토 부, 오사카 부의 2부와 시가 현, 효고 현, 나라 현, 와카야마 현, 미에 현의 5현을 포함한다. 때때로 후쿠이 현도쿠시마 현을 포함하기도 한다. 시가 현에는 일본 최대의 호수 비와 호가 있다.

아스카(飛鳥)로부터 헤이안쿄(平安京)에 이르기까지 왕부(王府)였으며 메이지 유신의 도쿄 천도까지 명실 공히 일본의 중심이었다. 정치 · 경제의 중심이 간토 지방으로 옮겨진 현재도 서일본의 핵심 지역으로서 또 일본의 전통적인 역사 · 문화 중심지이다.

최대 도시는 오사카 시이다.

긴키 지방의 범위[편집]

긴키 지방

긴키 지방에 속하는 부현에 관한 구분은 다음과 같은 예가 있다.

  • 2부 4현
    • 오사카 부, 효고 현, 교토 부, 시가 현, 나라 현, 와카야마 현
    • 공직 선거법으로 정하는 중의원 비례 대표 선출 의원 선거의 긴키 선거구, 최고재판소(오사카 고등재판소), 방송에 있어서의 긴키 광역권, 국토 형성 계획법에서 규정하는 긴키 권역에서 채용하고 있다. 그 외에도 정부 기관의 긴키 지역 담당관서의 범위이기도 하다.
  • 2부 5현 - 2부 4현 + 미에 현
    • 시가 현, 교토 부, 나라 현, 미에 현, 와카야마 현, 오사카 부, 효고 현(국정교과서 「소학지리」로의 차례)
    • 고지엔(広辞苑)등의 유명 국어사전이나 백과사전에서 이 범위를 채용하고 있다.
  • 2부 5현 - 2부 4현 + 후쿠이 현
    • 시가 현, 교토 부, 나라 현, 후쿠이 현, 와카야마 현, 오사카 부, 효고 현
    • 총무성(긴키 관할구역 행정 평가국), 국토교통성(긴키 지방 정비국), 경제 업성(긴키 경제 산업국, 원자력 안전·보안원중부 킨키 보안 감독부 킨키 지부), 후생노동성(킨키 후생국) 등에서 채용하는 범위이다.
  • 2부 6현 - 2부 4현 + 미에 현 + 후쿠이 현
    • 오사카 부, 효고 현, 교토 부, 시가 현, 나라 현, 미에 현, 후쿠이 현, 와카야마 현
    • 긴키권정비법(1963년) 법제1장 제2조에 「킨키권」이란 '후쿠이 현, 미에 현, 시가 현, 교토 부, 오사카 부, 효고 현, 나라 현 및 와카야마 현의 구역'으로 정의되었다.

지리[편집]

기후[편집]

기후는 크게 셋으로 나뉜다. 단바 고지(丹波高地) · 주고쿠 산지(中国山地) 이북은 동해측 기후, 기이 산지(紀伊山地) 이남은 태평양 측 기후에 속한다. 그 사이에 끼여있는 지역은 세토 내해식 기후를 나타내며 긴키 북부지역은 대설 지역이다.

지형[편집]

지역 구분[편집]

기상 예보 · 경제정세 · 교통방송 등에서는 대략적으로 북부(동해 측), 중부, 남부(태평양 측)의 3지역으로 나뉘어 안내된다. 명확한 경계선은 없는 편이다.

  • 북부(동해 측) : 효고 현 북부, 교토 부 북부, 시가 현 북부
  • 중부: 오사카 부, 효고 현 남부, 교토 부 남부, 시가 현 남부, 나라 현 북부, 와카야마 현 북부
  • 남부(태평양 측) : 나라 현 남부, 와카야마 현 남부

그 외의 구분법으로 기타킨키 지방(北近畿), 게이한신 지방(京阪神)도 존재한다.

주요 도시[편집]

지역 경제[편집]

긴키 지방(2부 4현)의 부현 총생산 (GDP)은 2004년도에 약 80조 2990억엔으로 간토 지방에 이어 일본 2위의 경제권을 구성하지만 간토와의 차이는 약 2.5배로 이 차이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제조업 상당수는 오사카 부, 효고 현, 교토 부 일대에 집중하고 있으며 농수산업은 그 외 지역에서 번성하다.인구는 약 2천만명 가량으로 추산되고 있다.(수정바람)

역사[편집]

선사 시대[편집]

야요이 시대(弥生時代) 전기의 기나이에는 눈에 뛰는 정치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후기가 되면 나라 분지 동남부에 대규모 취락이 발생했다. 이 유적에는 일본 각지에서 유통되어 왔다고 추측되는 토기가 다수 발견되고 왕궁 자취로 보이는 대형의 고대 건축물의 흔적도 남아있어서 야요이 시대 후기 야마토의 중심 도시였다고 생각된다.

긴키 지방 중부에는 야마토 왕권이 3세기 중반 성립하여 고훈 시대(古墳時代)가 시작됨에 따라 야마토 왕권은 야마토 국을 대표하는 정치 세력이 되었다. 왕은 나라 분지나 카와치 평야에 왕궁을 세웠고 주변에는 왕족이나 귀족들의 고분이 다수 생겼다.

긴키 지방 중부에는 야마토 왕권이 3 세기 중엽에 성립해, 고분 시대가 시작되면, 야마토 왕권은 야마토국을 대표하는 정치 세력으로서 성장해 갔다.야마토 왕권의 왕(대왕)은 대대 나라 분지나 카와치 평야에 왕궁을 경영하고 또 동지에는 왕족이나 호족들의 고분이 다수 쌓아 올려졌다. 이즈미노쿠니(和泉国)의 오오야마 고분(大山古墳, 사카이 시)은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고대[편집]

고대 [편집] 고훈 시대가 끝난 6세기 중엽부터 왕궁은 나라 남부의 아스카(飛鳥)에 자리잡았다. 이 시대를 아스카 시대라고 한다. 고훈 시대 후기부터 중국 대륙이나 백제 등에서의 도래인(渡来人)이 다수 들어와 있었고 대부분 기나이 부근에 정착하여 동화되었다.

645년에 소가노 이루카(蘇我入鹿)가 궁중에서 암살되고 고토쿠 천황(孝徳天皇)에 의해 다이카 개신이 단행되어 수도는 아스카로부터 나니와(難波, 오사카 시)로 옮겨졌다. 그 후 덴지 천황(天智天皇)이 정권을 잡으면서 667년에 오쓰쿄(大津京, 오쓰 시)로 다시 천도를 했다.

672년에는 덴지천황의 후계자 싸움이 있었고 이 고대 최대의 내란은 기나이를 무대에 벌어졌으며, 여기서 승리한 덴무 천황(天武天皇)은 아스카로 다시 천도하여 중앙집권국가를 이루었다.

701년에 다이호 율령이 시행되어 율령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율령제의 지역구분인 고키시치도에 의하면 야마토노쿠니 · 야마시로노쿠니 · 셋쓰노쿠니 · 가와치노쿠니 · 이즈미노쿠니의 5국은 기나이에, 단바노쿠니 · 단고노쿠니 · 다지마노쿠니산인도에, 하리마노쿠니산요도에, 기이노쿠니 · 아와지노쿠니난카이도에, 이가노쿠니, 이세노쿠니도카이도에, 오오미노쿠니국도산도에 편입되어 있었다.

710년에는 헤이조쿄(平城京, 나라 시)로 천도하였고 그 이후를 나라 시대라고 한다.

8세기 후기가 되면, 간무 천황에 의해서 나가오카쿄(長岡京) 그리고 헤이안쿄(平安京)로의 천도가 연달아 실시되었다. 794년부터 1192년까지를 헤이안 시대라고 한다.

중세[편집]

가마쿠라 시대에는 무사에 의한 장원·공령에의 침출이 현저해졌지만, 많은 권문(유력 귀족이나 유력 지샤)의 권리가 복잡하게 뒤얽히는 장원·공령이 널리 퍼져있던 기나이(킨키)에서는, 무사의 침출이 타지역 만큼은 되지 않았다. 수입의 증가를 꾀했던 권문은 중국 유래의 농업 기술이나 새로운 농업 기술을 도입하려 노력해 기나이는 농업 기술의 선진 지역이 되었다. 예를 들면, 기나이에서는 가마쿠라 시대까지 이미 이모작이 실시되고 있었다.

또 한편에서는, 아킨도·쇼쿠닌 등이 상업상·생산상의 특권을 얻기 위해서, 유력 지샤의 신인이 되거나, 천황에 봉사하는 구고닌이 되는 움직임이 현저하게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신인·구고닌 등은 획득한 특권을 바탕으로 (座, 좌)라고 불리는 동맹을 결성해, 기나이 뿐만 아니라 타지역으로 건너가 광범위한 교역 활동을 전개했다.

농업 생산의 향상과 교역 활동의 광역화는 카마쿠라 중기 경부터 진전해 나가 기나이를 중심으로 유통의 활발화, 금전의 보급 그리고 사회의 유동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종래의 장원 영주·무사층과는 다른 계층이 급속히 경제력·정치력을 가지기 시작해 그들은 악당으로 불렸다. 고다이고 천황의 도바쿠(倒幕, 막부를 쓰러트림)운동에 호응한 구스노키 마사시게도 악당의 한 명이었다고 추정된다.

악당의 대두는 사회구조의 유동화를 가속시켜, 종래는 장원 영주·코쿠가·타케시에 지배되기만 하던 촌락이, 자검단권을 가져 영주와 대등하게 교섭할 수 있는 총촌으로 발달했다. 무로마치 시대당시, 총촌 만이 아니고, 신인·구고닌으로서 광범위한 상업 활동을 실시하고 있던 쓰치쿠라·바샤쿠 등이나, 재지 무사층인 고쿠진(国人, 국인)등도 높은 자립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의 하나로서 15세기 전기부터 쓰치잇키·도쿠세이잇키·총쿠니이치규가 발생했다. 이렇게 자립성·자주성이 높아짐으로 인해 전국시대가 되어도 타지역과 같이 센고쿠 다이묘에 의한 1원적 지배는 행해지지 않고,오다 노부나가·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출현을 기다리게 된다.

남북조 이후 감합 무역이나 남만 무역의 거점에 있었던 사카이는, 회합중(会合衆, 에고슈 또는 가이고슈)로 불렸던 유력 상인 등에 의한 자치 도시로서 번창해 「동양의 베니스」라고도 칭해졌다. 그러나 오다 노부나가·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지배 하에서 도시는 해체되어, 상인의 상당수는 오사카로 이주 당했다.

근세[편집]

에도 시대에 정치 중심은 에도로 옮겨졌지만 교토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하는 이 지역은 여전히 경제와 문화 중심지였다. 동해 연안과 세토 내해 연안의 물자가 집적되는 오사카는 일본 최대의 상업도시로 성장하였다.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겐로쿠 문화가 번성했다. 에도 시대 중기에 경제와 문화 중심이 점차 에도로 옮겨지면서 에도와 긴키 지방 간의 문화 대립 의식이 생겨났다. 에도 막부 말기에는 교토가 막부 타도와 유신의 주요 무대가 되었고 니죠 성에서 대정봉환(大政奉還)의 의식이 거행되었다.

근현대[편집]

메이지 유신을 맞이하면서 천황은 교토 고쇼(京都御所)를 나와 에도로 옮기게 되었다. 에도는 도쿄로 개명되었고 정부 기관은 도쿄에 설치되었다. 인재와 행정 기능 등의 유출로 이 지역에서는 위기감이 팽배하기도 했으나 1897년 교토 제국 대학(현 교토 대학)의 창립으로 문화 거점으로서 부흥을 이뤘다. 오사카는 계속해서 이 지역의 경제와 공업 중심지가 되었다. 유신 직전에 개항한 고베는 1890년대 동양 최대의 항만도시로 발전했다.

게이한신 도시권에서는 정부 대신 철도 회사가 주축이 되어 철도 사업을 일으켰기 때문에 이 지역은 오랫동안 '사철 왕국'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오늘날에도 JR에 비교하여 사철 회사들이 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군사 면에서는 동해(일본해) 연안 마이즈루에 해군 기지가 건설되었다.

교통면에서는, 킨키 지방 각지를 묶는 철도가 관민 양자에 의해서 건설되지만, 케이한신의 도시간에서는 전철 회사가 중심이 되어 철도 정비나 다각화 사업을 활발하게 서로 경쟁해, 킨키 지방은 오랜 세월 「사철 왕국」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군사면에서는, 일본해 연안의 마이즈루에 해군의 거점(마이즈루 진수부)이 놓였다.

1890년대부터 쇼와 초기에 이르는 시대에는 간토 대지진 등으로 인한 도쿄의 쇠퇴로 인해 일본 문화와 경제의 거점이 되었다. 그러나 1930년대 전시 체제가 선포되면서 유력 기업이나 자본가의 도쿄 이동이 일어났다.

전 후 1963년메이신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1964년 도카이도 신칸센이 개통되어 이 지역은 재부흥의 시대를 맞이하였고 1970년 세계 박람회가 오사카에서 개최되면서 그 절정에 달하였다. 1970년대에는 고베 항이 세계 제일의 컨테이너 항이 되기도 했다. 긴키 지방은 간토에 이은 일본 제2의 경제권을 형성하지만 오일 쇼크나 버블 붕괴, 한신·아와지 대지진 등의 영향과 도쿄 일극 체제가 강화되면서 지위가 하락하고 있다.

문화[편집]

긴키 지방은 고대부터 일본 문화의 중심으로서 활발한 문화 활동이 있었으며 수많은 전통 예능과 문화재가 계승되고 있다. 국보와 중요 문화재의 약 6할, 인간 문화재의 약 3할, 일본의 세계 문화 유산 11건 가운데 5건(호류지, 히메지 성, 고도 교토의 문화재, 고도 나라의 문화재, 기이 산지의 영지와 참배길)이 국토 면적 7%에 불과한 긴키에 있다. 교토와 나라는 고도(古都)로 유명하고 국내외에서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

에도 시대 조닌(町人)층의 풍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겐로쿠 문화(元禄文化)가 꽃피었다. 일반 상민을 대상으로 한 연예 활동이 활발해졌으며 가부키(歌舞伎)나 분라쿠(文楽), 가미가타 만담(上方落語)이 번성했다. 근대에도 만담은 계속 발달하여 오사카 하면 만담을 떠올릴 정도가 되었다.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긴키 지방에서는 합리적이고 속마음을 드러내는 기풍이 강한데, 이것은 이상주의적이고 겉 모습을 중시하는 간토의 그것과는 대조적이다.

식문화[편집]

긴키 지방의 전통적 식생활 문화의 특징은 국물맛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다시마, 간장, 미소 등이 전통적으로 많이 이용되었으며 분지 지형으로 해산물이 귀했던 교토에서는 채소나 건어물을 살린 요리가 발달했다. 오사카는 식재료의 집산지였던 특징을 살려 오사카의 식도락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문어빵(타코야키)나 오코노미야키 같은 서민을 대상으로 한 음식의 유래도 이 지역이다.

방언[편집]

긴키 지방에서 주로 사용되는 이른바 '간사이 사투리'는 교토말(京言葉)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에도 시대에 에도 방언이 대두하기 전까지 일본 전체의 표준어는 긴키 방언이었다. 현재도 표준어(도쿄 방언)에 뒤지지 않는 사용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오사카 방언은 만담을 통해서 지명도가 높다.

교통[편집]

항공[편집]

철도[편집]

긴키 지방은 폭이 좁은 평야가 펼쳐진 지형으로 산재한 각 대도시를 연결하는 성격을 띤다. 또 같은 방향의 2개 이상 노선이 병행하거나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 그에 따라 게이한신 대도시권은 도쿄권에 이은 이용자수 및 운행량을 보여준다.

장거리 수요로는 주부 지방간토 지방 방면을 연결하는 도카이도 신칸센과 주고쿠 지방, 규슈를 연결하는 산요 신칸센 등이 있다.

교육[편집]

국립대학[편집]

공립대학[편집]

방송[편집]

긴키 2부 4현에서는, 광역 방송의 긴키 광역권으로 여겨진다.(미에 현은 주쿄 광역권)

스포츠[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