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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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Doosan Bears
Doosan Bears insignia.svg
이니셜 로고
회사명 주식회사 두산베어스
설립 연도 1982년
마스코트 철웅이
소속 리그
한국야구위원회
한국프로야구
이전 구단명
OB 베어스 (1982년 ~ 1998년)
홈 구장
1군 : 잠실야구장
2군 : 베어스 필드
수용 인원 26,986명 (최다 30,500명)
이전 홈구장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
(1982년 ~ 1984년)
동대문야구장
(1985년)
연고지 대전 (1982년 ~ 1984년)
서울 (1985년 ~ 현재)
영구 결번
21 박철순, 54 김영신
역대 타이틀
한국 시리즈 우승(3회)
198219952001
성적(타이틀 이외)
한국 시리즈 출장(8회)(굵은 글씨는 승리한 해)
19821995・2000・2001・2005・2007・2008・2013
플레이오프(12회)(굵은 글씨는 승리한 해)
1986・1987・1999・20002001・2004・200520072008・2009・2010・2013
준플레이오프(8회)(굵은 글씨는 승리한 해)
1993・1998・2001200420092010・2012・2013
구단 조직
구단주 박정원
운영모체 두산그룹
감독 송일수
단장 김태룡
유니폼
홈경기
원정경기
두산 베어스 2013 시즌
두산 베어스 구단 버스(기아 그랜버드)

두산 베어스(Doosan Bears)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를 연고지로 하는 한국야구위원회 소속 프로 야구 팀이다.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잠실야구장LG 트윈스와 공동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1982년 1월 15일 대전광역시를 연고로 'OB 베어스'라는 팀명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 야구팀으로 창단되었다. 초대 단장은 박용민, 초대 감독은 김영덕이었고 창단 첫 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OB 베어스대전광역시충청남도를 연고지로 하며, 3년 후 서울특별시로 연고지를 이전하기로 하였다. 1985년부터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고 홈구장은 동대문 야구장을 사용하였으나, 이듬 해 아마야구계의 마찰로 아마야구가 동대문 야구장에 아마야구 일정을 확다잡아 버리는 바람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되었으나 3년간 잠실야구장을 쓰기로 하고 홈구장을 잠실야구장으로 이전하였다. 하지만 이후 중하위권을 기록하다가, 1994년 김인식이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1995년,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OB 맥주벨기에의 주류 기업인 인터브루에 매각되면서 1999년 1월 5일에 두산 베어스로 팀 이름을 바꾸었다. 2004년부터 김경문이 감독을 맡고 있었는데 2011년 6월 13일 자진 사퇴하면서 김광수 감독 체제로 2011시즌을 치렀다. 2012시즌부터 2013시즌까지 김진욱 감독이 팀을 이끌었고, 2014년부터는 2군 감독이던 송일수를 1군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역사[편집]

1982년 충청도 대전이 연고지인 프로 야구단[편집]

1982년 프로 야구 출범 작업을 할 무렵 원래 인천 지역 연고 배정기업은 OB(현 두산)였다. OB가 처음에는 서울을 원했으나 MBC에 밀려 인천을 택했다. 대전이 비어 있는 상황에서 삼미그룹 김현철 회장이 팀을 만들겠다고 자청, 결국 3년 뒤 OB가 서울로 연고지를 옮긴다는 조건을 달고 대전에, 삼미가 인천에 배정됐다.OB 베어스의 첫 경기는 MBC 청룡과의 경기로 박철순의 4안타 2실점(1자책점) 완투승으로 승리했다.[1] 이후 4월 중순부터 분위기가 반전되어 5월 2일 홈경기에서는 10승 5패로 단독 선두에 나섰다.[2] 이후 9연승 등으로 시즌 4경기를 남겨두고 28승 8패로 전기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3] 후기리그에서도 좋은 페이스를 유지했으나 9월 29일 대구 삼성 전에서 박철순의 11 2/3이닝 2실점 완투패로 종합 우승에는 실패했다.[4] 그 경기에서, 또한 24승을 거뒀던 박철순이 '요부 추간판 헤르니아'의 디스크 증상으로 한국시리즈 출전이 불투명해졌다.[5]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15회 3-3 무승부로 승부를 결정짓지 못한 두 팀은,[6] 다음 날, OB 선발 계형철이 2회 6점을 내주는 등의 투구로 대패를 당했다.[7] 그리고 3차전, 박철순은 국소마취제을 맞으면서[8] 3.1이닝 던지며 OB가 5-3으로 승리했다.[9] 이후 4, 5차천에서 내리 이긴 OB는 6차전에 박철순과 이선희의 선발 맞대결에서 8회까지 3-3 균형이 이어졌지만,[10] 김유동이 9회 만루홈런을 쳐내면서 MVP에 선정되어 4승 1무 1패로 우승을 차지했다.[11]

그러나 1983년 시즌에는 박종훈, 한대화, 장호연, 정선두만을 신인으로 확보했고,[12] 박철순, 선우대영, 강철원 등의 주력 투수와 구천서 등의 야수진도 부상을 당하면서,[13] 결국 전기리그 6위, 후기리그 5위를 기록 순위가 5위로 하락했다.[14] 그해 10월 14일, 김영덕 감독이 팀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15]

김성근 감독시대 (1984년 ~ 1988년)[편집]

1984년, 새 감독으로 투수 코치였던 김성근이 취임했고, 코치진도 보강되었다.[16] 선수도 재일교포 최일언, 홍신차등을 비롯해 신인 윤석환, 김진욱, 김광림 등을 확보했다.[16] 그리고 계형철이 14승, 박상열 12승, 장호연이 평균자책점 1위의 성적을 거두었고, 야수진에서도 부상 공백이 메워지며 9연승으로 치고 나갔다.[14] 그러나 이후 6연패에 빠지며 삼성에게 전기리그를 내주었고, 후기리그에서도 초반에는 선두로 질주했지만, 8월 15일 부터 선두 자리를 내주었다.[17] 마지막 두 경기에서 OB는 해태와, 롯데는 삼성과 맞붙었는데, 삼성은 롯데에게 일부러 패하면서 OB는 후기리그도 2위에 머물렀다.[18]

1985년, OB는 연고지를 대전에서 서울 동대문 야구장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해, 전기리그는 2위를 기록했으나 후기리그는 5위로 마무리했다. 1986년, OB는 다시 구장을 잠실 야구장으로 옮기고, 전 연고지에는 빙그레 이글스가 창단되었다. 그해, 플레이오프 진출권이 달린 롯데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김형석의 동점 홈런과 이후 안타로 4-3으로 승리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19]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게 2승 3패로 패한다. 1987년, 전기리그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지만 해태에 2승 3패로 탈락한다. 1988년, 개막전에서 장호연은 무탈삼진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다.[20] 이후 전기리그 3위, 후기리그 5위를 기록한다. 시즌 후에 두산 그룹은 우승을 못한 김성근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으려 했고, 김성근 감독도 사임하여 신용균 코치, 최주억 코치, 박상열 투수가 태평양으로 이적하게 된다.[21]

1989년 ~ 1994년[편집]

1989년, 제3대 이광환 감독이 취임했다. 그는 선수들 개개인에 개성과 책임감을 믿고 맡기는 '자율 야구'의 기치를 들었으나, 오히려 10연패, 11연패를 기록하고 그 해 6월 19일 시즌 중 교체 되었다.[22] 제4대 감독으로는 타격 인스트럭터였던[23] 이재우였다. 그는 1990년 대행 기용되어 1991년 정식으로 감독에 취임했다. 하지만 그 해 9월 9일 시즌 중에 교체되었다.[22]

제5대 감독은 최초의 선수 출신 감독으로 윤동균이 내정되었고,[23] 그는 남은 경기를 5할의 승률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다.[24] 1992년, 본격적인 첫 시즌에 그는 김민호, 장원진, 안경현등의 신예들을 대거 발탁하여 5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25] 1993년에는 초반에는 5위에 머무르다가 9월부터 연승을 시작해 마지막 경기에서 LG에게 승리하며 3위로 6년 만에 팀을 포스트 시즌 진출로 이끈다.[25] 그러나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오히려 LG에게 1승 2패로 탈락한다.

1994년, 선발진은 김상진, 권명철, 강병규 등의 젊은 투수로 구성되었고 불펜에는 마무리 김경원, 노장 박철순등이 있었다. 타선에서도 김형석, 김상호의 중심 타선과 김민호를 중심으로 한 수비진이 있었다.[25] 개막전은 잠실 쌍방울 전이었으나 대통령이 시구를 하고 관전하는 것을 의식한 탓인지 선발 자원 4명을 투입하고도 패배한다.[26] 그리고 5월 중순 부터는 6,7위에 머물렀고 7위를 굳히는 형세가 되었다.[26] 이러한 부진의 이유는 장호연이 2승, 쌍방울에서 트레이드 해 데려온 강길룡이 1승만을 기록한 것도 있었다.[26] 그리고 9월 4일, 군산 쌍방울 전에서 1-2로 패배하자 윤동균 감독은 '몽둥이를 들겠다'고 했고 선수들은 이를 거부하자 윤동균 감독이 '맞기 싫은 선수들은 다 짐싸서 서울로 올라가라'라고 하였고 17명의 선수들은 이탈해 서울로 올라갔다.[27][28] 선수들 중 최고참인 박철순은 '윤 감독과 같이 옷을 벗겠다'라고 사태를 무마시키려 했다.[28] 결국 9월 14일, 윤동균 감독은 사태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났고,[29] 박철순, 김상호, 김형석, 장호연, 강영수 등의 다섯 고참 선수들은 계약을 해지하기로 했다.[30] 그러나 그들은 팀 전력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부진했던 강영수 만을 태평양으로 트레이드 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30] 그리고 남은 시즌은 최주억 코치가 감독직을 대행했다.[31]

김인식 감독시대 (1995년 ~ 2003년)[편집]

1995년, 제6대 감독인 김인식이 취임했다. 선수단 이탈 사건을 겪었으나 예상과 달리 연습생 출신의 김상진이 3경기 연속 완봉승[32] 을 포함해 17승을 올렸고, 이어 권명철이 15승, 그리고 신인 이용호, 진필중은 김경원의 빈자리를 메워주었다.[33] 타선에서는 1번 타자이자 유격수인 연습생 출신 김민호, 고졸 신인 심정수는 21홈런으로 분발했다.[33] 시즌 구도는 서울 라이벌인 LG와 OB의 선두 다툼으로 흘러갔는데, LG가 8월 중순에 6경기차로 간격을 벌렸다.[33] 그러나, 이후 LG가 연패를 하자 OB는 6연승, 4연승을 거두고 9월 10일에는 처음으로 선두를 탈환한다.[33] 그리고 마지막 27경기에서 OB는 20승 7패를 기록하면서 LG에 반 경기차로 정규 시즌에서 우승한다.[33] 롯데와의 한국시리즈에서는 7차전에 롯데에게 4-1로 승리하며 사상 두 번째 우승을 거머쥐었다.[34]

1996년에는 최하위, 1997년에는 5위를 기록했다. 1998년, 이 해에는 10년 이상 중심 타선을 지켜오던 김상호, 김형석이 빠지게 된다.[35] 그 때문에 8월 말까지 꼴지를 기록했으나 외국인 타자 타이론 우즈, 김동주, 심정수의 활약에 힘입은 시즌 막판 연승으로 1경기차 4위에 오른다.[36] 그러나 준플레이오프에서는 LG에 2연패로 탈락하게 된다.

1999년 1월 5일, 구단 명칭을 현재의 '두산 베어스'로 바꾼다. 이 해 우즈의 활약과 3할 20홈런의 김동주, 3할3푼5리의 타율에 31홈런을 친 심정수의 활약으로 드림리그 1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만 한화에 4연패로 탈락한다.[37] 2000년, 우동수 트리오는 99홈런 308타점을 기록했으나 현대의 91승에 밀려 드림리그 성적은 2위였다.[38] 플레이오프에서 LG에게 4승 2패로 승리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고, 한국시리즈에서는 1~3차전을 통틀어 3점 밖에 내지 못했으나 4~6차전을 모두 쓸어 담는다.[38] 하지만 7차전에서 톰 퀸란에게 연타석 홈런을 맞고 패배한다.[38]

2001년, 심정수는 선수협 사태로 심재학과 트레이드 되었으나 심재학은 그해 3할4푼4리에 24홈런 88타점을 기록해 심정수의 빈틈을 메운다.[39] 두산은 상당한 자금력의 삼성, 현대에 밀려 3위를 기록했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를 2연승으로 일축한 뒤 플레이오프에서도 현대를 1패 후 3연승으로 가볍게 제치고,[40] 한국시리즈를 삼성과 맞붙는다.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은 갈베스의 구위에 밀려 1차전을 4-7로 패한다.[41] 그러나 다음 날 경기가 우천 취소가 되자, 활기를 다소 되찾은 두산은 장원진의 3점홈런으로 9-5로 2차전을 승리한다.[41] 잠실 3차전은 난타전이었으나 11-9로 승리한다.[41] 그리고 4차전, 두산은 우즈의 2점홈런으로 선취점을 얻었지만 2회초 삼성에게 타자 일순을 허용하여 8점을 내준다. 하지만 3회말, 두산은 김동주의 만루 홈런, 안경현의 백투백 홈런등으로 12점을 뽑아내고, 결국 18-11로 승리한다.[42] 이날 경기는 역대 한국시리즈 한 경기 최다 점수, 최다 안타, 최다 점수차 역전 경기였다.[42] 하지만 5차전에서는 심기일전한 삼성에게 10점차로 대패한다.[42] 그리고 6차전, 1회초 삼성은 2점을 선취했으나 우즈의 150m 홈런으로 3-2로 역전시켰고, 다시 삼성이 3점을 냈지만 두산은 다시 동점을 만들어낸다.[42][43] 그리고 8회말에 심재학의 얕은 좌익수 플라이에 정수근이 홈으로 들어오며 6-5로 역전하기에 이른다.[43] 그리고 진필중이 마지막 타자 마해영을 삼진으로 잡아내며 세 번째 우승을 달성한다.[43] 한국시리즈 MVP는 시리즈에서만 7홈런을 기록한 우즈가 차지한다.

이후 FA, 트레이드로 팀 전력이 나빠지면서 2002년에는 5위, 2003년에는 7위를 기록했으며 2003년 시즌이 끝난 후 김인식 감독은 감독직에서 물러난다.

김경문 시대 (2004년 ~ 2011년)[편집]

2003년 말, 두산은 원래 일본에서 코치 연수를 받던 선동열을 감독으로 영입하려고 했다.[44] 그 때문에 김인식 감독이 스스로 감독에서 물러났다.[45] 그러나 영입에 실패하면서 그 대안으로 김경문을 감독으로 영입했다.[46] 2004년, 두산은 정규시즌 3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 기아에 2연승하고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게 1승 3패로 탈락한다. 2005년에는 정규시즌 2위를 기록해 플레이오프에서 한화에 3연승하여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만 삼성에게 내리 4연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머문다. 그 해에는 이천 구장을 준공해 열었다.[47] 2006년에는 WBC에 출전했던 김동주의 부상으로[48] 5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신고선수 출신의 이종욱을 발굴해냈다.

2007년, 두산은 22승을 거둔 다니엘 리오스와 12승을 거둔 맷 랜들의 원투펀치로 정규시즌 2위로 한화와의 플레이오프를 3연승으로 가볍게 이기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SK 와이번스에게 2연승 뒤 4연패로 준우승에 머문다.[49] 다음 해, 두산은 일본으로 리오스를 떠나 보내고 선발진에 약점을 드러냈고 정규 시즌 2위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1승 뒤 4연패로 2년 연속 준우승에 머문다.[49] 2009년, 지난 2년과 달리 기아가 1위를 차지하고 SK가 2위, 두산은 3위를 차지했다. 두산은 준플레이오프에서 롯데를 1패 뒤 3연승으로 이기고 플레이오프에서 SK에게 좌완 7승 금민철과 4승 후안 세데뇨가 2연승을 거두었다.[50] 하지만 3차전 10회초, 1사 2루에서 박재상의 타구를 우익수 정수빈이 조명탑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 놓쳤고, 이를 틈타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 SK가 2연패 뒤 3연승을 하면서 두산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다.[50] 2010년, 두산은 켈빈 히메네스김선우의 원투펀치와 토종 타자 20홈런 5명으로 정규시즌 3위를 기록했고, 준플레이오프에서 롯데를 2패뒤 3연승으로 이기고, 플레이오프에서 삼성과 맞붙었다. 1차전에서 박한이의 역전 홈런으로 패했으나 2차전에서 임태훈이 경기를 마무리하면서 1승 1패로 가져갔다. 3차전, 양팀은 역전과 재역전을 반복했으나 결국 임재철의 동점타와 손시헌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했다. 4차전은 타격전으로 삼성이 승리했다. 5차전에서 박석민의 끝내기 안타로 두산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다.

2011년, 김경문 감독이 계약 마지막해 성적 부진을 이유로 시즌 도중 자진사퇴하였다. 8시즌 통산 960경기 512승 16무 432패를 기록한 김경문 감독대신에 김광수 감독대행 이끄는 두산은 4강 진출에 실패하고 5위로 2011 시즌을 마감하였다.

김진욱 시대 (2011년 ~ 2013년)[편집]

2011 시즌 이후 김진욱 불펜 코치를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또한 세이부 라이온스에서 우승경력이 있는 이토 쓰토무를 수석코치로 선임하고 넥센2군에서 투수코치로 있던 정명원도 투수코치로 선임하는 등 코치진을 개편하였다.

2012년에도 최주환,최재훈,변진수,허경민 등 많은신인들의 등장으로 제2의 화수분야구를 시작했고 니퍼트,노경은,이용찬,김선우,김승회로 이어지는 선발투수는 국내최고라는 평가를 받을정도로 성장했다. 특히 노경은이용찬의 활약이 돋보였는데 생애 첫 완봉,10승 등 맹활약을 펼쳤다. 홍상삼은 불펜에서 안정된 피칭으로 힘을 보탰다. 반면 타격에 있어서는 이종욱,김현수,김동주,최준석 등 주전선수들의 대거 부진과 부상 이탈로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롯데 자이언츠가 두산을 이기기는 했으나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함에 따라 김진욱 감독은 첫시즌을 3위로 마무리지었다.

2013시즌에는 기존 수석코치였던 이토 쓰토무와 불펜 코치였던 고마키 유이치, 작전 및 주루코치였던 김민호, 배터리 코치였던 고정식, 2군 타격코치였던 이명수 등과 재계약하지 않았다. 그리고 새롭게 수석코치로 황병일, 작전 및 주루코치로 조원우, 수비코치로 김민재, 배터리 코치로 강성우, 2군 재활 코치로 문동환, 2군 타격 코치로 김우열을 선임하여 코치진을 대폭 개편하였다. 그리고 두산은 2013년에 페넌트레이드에서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으며, 준플레이오프에서 넥센 히어로즈를 이기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고, 이후 LG 트윈스까지 이기면서,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였으나 삼성 라이온즈에게 지면서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하게 되었고 2013년 시즌을 2위로 마무리 지었다.

2013 시즌이 종료된 후 두산은 FA로 신청된 선수인 이종욱,손시헌,최준석이 각각 NC 다이노스롯데 자이언츠로 떠났고 2차 지명으로 임재철김선우마저 LG 트윈스로 보내게 되었다. 그 뒤 윤석민넥센 히어로즈장민석과 맞트레이드 까지 하였고, 2013년 11월 27일에는 김진욱 감독을 전격 경질하기에 이르자 정명원 투수코치, 김민재 수비코치, 조원우 작전,주루코치가 사임하였다.

현재 (2014년 ~ )[편집]

김진욱 감독의 경질로 후임으로는 이전 2군 감독이였던 송일수 감독을 신임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그리고 1월 중순에 수석코치를 송재박, 투수코치로 권명철이 선임되었고 2군 감독자리는 이전 1군 수석코치였던 황병일, 2군 재활코치로 유지훤, 2군 타격코치로 강동우로 맏게 되면서 코치진을 전격 개편하였다.

한국 시리즈[편집]

# 연도 감독 상대 팀 경기 결과 우승 횟수 시리즈 MVP 주석 및 기타
1 1982년 김영덕 삼성 라이온즈 4승 1무 1패 (△XOOOO) 1회 김유동 (외야수)
2 1995년 김인식 롯데 자이언츠 4승 3패 (XOOXXOO) 2회 김민호 (내야수)
3 2000년 김인식 현대 유니콘스 3승 4패 (XXXOOOX)
4 2001년 김인식 삼성 라이온즈 4승 2패 (XOOOXO) 3회 타이론 우즈 (내야수)
5 2005년 김경문 삼성 라이온즈 4패 (xxxx)
6 2007년 김경문 SK 와이번스 2승 4패 (OOXXXX)
7 2008년 김경문 SK 와이번스 1승 4패 (OXXXX)
8 2013년 김진욱 삼성 라이온즈 3승 4패 (OOXOXXX)
한국 시리즈 총 3회 우승

역대 유니폼, 엠블럼, 마스코트[편집]

역대 유니폼[편집]

OB 베어스 시절 흰색 기본바탕에, 짙은 남색과, 빨간색으로 구성된 유니폼을 착용하였다. 프로 원년 전기리그에서는 가슴 양쪽에 OB가 새겨져있는 버튼형 유니폼을 착용하였다가, 후기리그에서는 가슴전체에 OB BEARS라는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착용하였다. 그 후 1983 시즌 부터 1998시즌까지 16년동안, 원년 후기리그 유니폼 디자인에, 단추형 유니폼에서 V넥 형태의 셔츠 형 유니폼으로 변경되어 착용하였다. 그 후 OB 베어스에서 두산 베어스로 팀명이 바뀌어 구단 BI도 변경되었다. 그에 따라 흰색 기본바탕에, 짙은 남색, 노랑색의 유니폼으로 변경되었다. 이 유니폼의 특징은 새로운 구단 BI의 상징인 반달곰 로고를 가슴 부분에 새겨 넣었은 것이다. 1999 시즌 부터 2001 시즌까지 가슴 전체에 반달곰 로고가 들어가있는 셔츠형 유니폼을 착용하였다가, 2002 시즌 부터 2009년 시즌까지는 반달곰 로고를 가슴 오른쪽에 새겨 넣은 단추형 유니폼을 착용하였다. 그 후 2010 시즌이 시작되기 전인 2010년 1월 4일에 두산베어스는 구단 엠블럼과 유니폼을 기존의 짙은 남색 및 노랑색에서 짙은 남색과 빨강색이 어우러진 새로운 팀 엠블렘 및 유니폼을 제작 발표하였다.[51] 유니폼을 발표 한 후 바뀐 유니폼에 대하여 불만과 논란이 있었다.[52] 2012시즌 현재 두산 베어스는 흰색에 BEARS 로고가 새겨진 버튼형 홈 유니폼과, 짙은 남색 바탕에 가슴 오른쪽에 구단 엠블럼이 새겨진 버튼형 원정 유니폼, 그리고 기존 OB 베어스 유니폼에서 OB를 뺀 셔츠형 올드 유니폼, 그리고 빨간색이 아닌 황금색으로 구성되고 BEARS가 흘림체로 적혀진 버튼형 스페셜 유니폼을 경기에 착용하고 있다.

마스코트[편집]

두산 베어스의 마스코트는 철웅이다. 두산 베어스의 상징 동물인 곰을 로봇 캐릭터로 형상화 하였다. 이는 강인함과 미래 지향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이고, 두산 그룹의 도전과 혁신정신을 표현 한 것이다.

응원[편집]

Doosan v LG Audience.jpg

두산 베어스의 팀 응원가로는 <라랄라 두산 베어스>, <최강 두산 베어스>, <승리의 두산>, <다함 께 허슬 두> 등 20여 곡이 사용되고 있다.

팬 서비스 행사[편집]

두산 베어스는 베어스 데이(매월 마지막 일요일 홈경기)[53](2004년~2007년에는 토요일). 베어스 데이는 홈페이지 여론 조사를 실시를 통해서 기획되었다.[53] , 플레이어스 데이(매월 특정 일요일 홈경기, 옛 유니폼 착용), 퀸스 데이(여성 대상 이벤트)[54], 직장인의 날(직장인 대상 이벤트) 등 다양한 팬 서비스와 이벤트를 제공하고 있다.

선수단[편집]

현 선수단[편집]

역대 감독[편집]

두산 베어스의 창단 감독은 김영덕이었으며, 현 감독은 9대인 송일수이다. 최장 기간 지휘봉을 맡은 감독은 6대인 김인식이다. 그는 1995년부터 2003년까지 9시즌 동안 한국 시리즈에서 두 차례 우승하며 정규 시즌 579승 33무 556패를 기록했다.

역대 선수[편집]

1982년 창단 멤버 중 가장 오래 OB에서 뛴 선수는 1996년에 은퇴한 까지 박철순(투수)이다.

역대 외국인 선수[편집]

역대 신인 지명[편집]

  • 선수 이름은 지명 순서대로 나열되었다.
  • 이름에 가로줄이 그어진 것은 해당 선수에 대한 지명권을 포기했음을 의미한다.
연도 1차 지명 2차 지명
1983 장호연, 정선두, 박종훈, 이선웅(지명권 양도), 한대화, 정구선(지명권 양도), 송일섭(지명권 양도) 없음
1984 한오종, 장훈, 김성호, 윤석환, 김남수, 기세봉, 김수남, 홍희섭, 사인상, 김영하, 이광국, 배원영, 오덕환, 김광림, 김명구, 김진욱 임재준
1985 김형석, 김영신, 이승희, 윤수봉, 김문수, 이종융, 천성호, 이종원, 박상석, 김일중, 권광운, 탁재원, 계동식, 도이석 박기수
1986 박노준, 박형열, 임채섭, 이복근, 조석신, 김희식, 김현찬, 정광식, 차재택, 박상익 김강익, 박칠성, 임동구
1987 조재환, 김경남, 김태진 박희종, 진상봉, 박병준
1988 이석재, 김원식, 정삼룡 박상국, 김용희, 길홍규, 김태형, 정형진
1989 이진, 김동현, 김보선 구동우, 이명수, 김진규, 곽연수, 하득인, 안종호
1990 임형석, 김경원 서준룡, 조정수, 김상진, 한형탁, 김만조
1991 황일권 김익재, 정효형, 노춘섭, 권영일, 구교록, 이병우, 박천유
1992 손경수 이상현, 권명철, 안경현, 박철홍, 장원진, 허영철, 한국일
1993 추성건 박상근, 김종성, 김덕칠, 김종신, 염상엽
1994 류택현 홍우태, 김광현, 한태균, 윤기수
1995 송재용 문희성, 진필중, 서석영, 박성균, 이보형, 최윤승, 장보성
연도 1차 지명 고졸우선지명 2차 지명
1996 최기문 김선우(보스턴 입단), 박명환, 한명윤 강영수, 정원석, 박찬협, 임봉수, 이정주, 박상언, 강봉규, 김규식, 표성대, 이기승, 홍재호, 김용혁, 장건희, 윤준호
1997 이경필 최성훈, 김성환, 김덕용 진갑용, 김영수, 강규철, 김도형, 김환조, 김도균, 김원섭, 윤태수, 강신창, 박수현, 이용우, 장인규
1998 김동주 이경수, 유재웅, 윤상무 송원국, 이혜천, 김지훈, 김주용, 이영일, 오세학, 유석호, 박세훈, 조은진, 유병목, 이재우, 구판진
1999 홍성흔 구자운 정종수, 장성진, 이승준, 이광오, 정재훈, 노기환, 백대운, 김성배, 김호영, 백승훈, 김성균, 박종윤
연도 1차 지명 2차 지명
2000 문상호 구자민, 방승재, 성민국, 장원영, 정재훈, 홍마태, 정진용, 홍석균, 맹진영
2001 황규택 김상현, 김태구, 김용영, 이대현, 배광진, 임창섭, 이범석, 손제민, 최홍진, 채태인, 이수
2002 이재영 고영민, 박종섭, 이경환, 황덕균, 이민택, 이승엽, 박훈범, 최종군, 오주헌, 이상원, 하정인, 김명효
2003 노경은 전병두, 나주환, 김만윤, 김영준, 김승회, 김영진, 허도환, 최영주, 오재원
2004 김재호 이원희, 이경민, 윤석민, 남찬섭, 구명환, 김수훈, 오현근, 용덕한, 김무학
2005 김명제 서동환, 조현근, 이호성, 금민철, 윤형관, 박정배, 이윤호
2006 남윤희 김용성, 민병헌, 박성남, 송영찬, 유상우, 최주환, 홍병오, 양의지, 박진원
2007 임태훈, 이용찬 이원재, 이두환, 권영준, 김강률, 이정민, 이용호, 조영민, 장동우, 문준용
2008 진야곱 김재환, 고창성, 홍상삼, 김용의, 윤요한, 윤도경, 박민석
2009 성영훈 허경민, 박건우, 조승수, 배상현, 정수빈, 유희관, 김진형, 민정후
연도 전면드래프트
2010 장민익, 이재학, 정대현, 김상훈, 김준호, 문상철, 강백산, 김건효, 김선민
2011 최현진, 이현호, 천상웅, 안규영, 정진호, 황필선, 이정호, 김동한, 최현정, 양현
2012 윤명준, 변진수, 이규환, 류지혁, 박세혁, 박민정, 유민상, 신동규, 장우람
2013 김인태, 이우성, 정혁진, 장승현, 함덕주, 천영웅, 송주영, 홍성은, 고동현, 계정웅
연도 1차 지명 2차 지명
2014 한주성 최병욱 전용훈 이성곤 이승헌 정기훈 김경호 심형석 최형록 문진제 문지훈

역대 2차 드래프트 지명[편집]

2차 드래프트한국 야구 위원회에서 2년마다 11월 말에 개최되며, 타 팀에서 FA 신청선수를 제외한 40명의 보호선수에서 제외된 선수를 지명할 수 있다.

연도 1라운드 2라운드 3라운드
2012 오장훈
(롯데 자이언츠, 내야수)
김강
(한화 이글스, 내야수)
오성민
(SK 와이번스, 투수)
2014 허준혁
(SK 와이번스, 투수)
최영진
(LG 트윈스, 내야수)
양종민
(롯데 자이언츠, 내야수)

한국 프로 야구상 수상자[편집]

두산 베어스는 한국 프로 야구 최우수 선수를 네 명 배출했다.

영구 결번[편집]

DoosanBearsRetired54Flag.svg
포수: 1985-1986
1986년 결번
DoosanBearsRetired21Flag.svg
투수: 1982-1996
2002년 결번

두산 베어스의 영구 결번은 54번, 21번이며, 특히 54번은 성적 비관으로 인해 자살한 김영신의 배번으로, OB 베어스 측에서 애도하는 의미에서 영결식을 치르고, 대한민국 프로 야구 최초로 영구 결번했다.[55] 또한 21번은 박철순의 번호로 2002년 4월 5일 시즌 개막전 경기 전 영구 결번식을 통해서 영구 결번되었다.[56]

통산 기록[편집]

연도 팀명 순위 승률 득점 실점 타율 안타 홈런 도루 평균 자책 포스트 시즌 수상 선수 감독
1982 OB 전기 1위
후기 2위
56 24 0 0.700 399 318 0.283 778 57 106 3.20 * 한국시리즈 : 삼성 전 4-1-1 승 박철순 (최) 김영덕
1983 전기 6위
후기 5위
44 55 1 0.444 418 432 0.259 863 50 60 3.52 박종훈 (신)
1984 전기 2위
후기 2위
58 41 1 0.586 382 298 0.256 816 53 111 2.53 윤석환 (신) 김성근
1985 전기 2위
후기 5위
51 57 2 0.472 473 416 0.260 954 67 107 3.14
1986 전기 5위
후기 1위
56 48 4 0.442 369 341 0.249 880 38 78 2.61 플레이오프 : 삼성 전 2-3
1987 전기 2위
후기 4위
55 52 1 0.514 415 405 0.261 927 30 73 3.26 플레이오프 : 해태 전 2-3
1988 전기 3위
후기 5위
54 52 2 0.509 418 447 0.258 923 44 87 3.73
1989 5위 54 63 3 0.463 447 481 0.247 970 42 135 3.70 이광환
1990 7위 35 80 5 0.313 404 616 0.231 901 62 83 4.72 이광환
이재우(감독대행)
1991 8위 51 73 2 0.413 501 593 0.250 1054 59 136 4.21 이재우
윤동균(감독대행)
1992 5위 56 66 4 0.460 547 582 0.259 1096 126 110 4.22 윤동균
1993 3위 66 55 5 0.544 473 405 0.258 1066 59 86 2.89
1994 7위 53 72 1 0.425 477 507 0.246 1013 75 81 3.46
1995 1위 74 47 5 0.607 629 500 0.266 1154 106 121 3.42 *한국시리즈 : 롯데 전 4-3 승 김상호(최) 김인식
1996 8위 47 73 6 0.397 446 520 0.242 1008 82 78 3.69
1997 5위 57 64 5 0.472 511 551 0.254 1070 84 143 3.84
1998 4위 61 62 3 0.496 520 506 0.256 1080 102 123 3.60 준플레이 오프 : LG 전 0-2 타이론 우즈 (최)
1999 두산 드림리그 1위 76 51 5 0.598 721 657 0.284 1305 141 136 4.58 플레이 오프 : 한화 전 4-0 홍성흔 (신)
2000 드림 리그 2위 76 57 0 0.571 694 616 0.289 1325 150 115 4.22 * 플레이오프 : LG 전 4-2 승
* 한국시리즈 : 현대 전 4-3 패
2001 1위 65 63 5 0.508 732 733 0.276 1266 130 132 4.96 * 준플레이 오프 : 한화 전 2-0 승
* 플레이 오프 : 현대 전 3-1 승
* 한국시리즈 : 삼성 전 4-2 승
2002 5위 66 65 2 0.504 587 562 0.261 1173 130 106 3.93
2003 7위 57 74 2 0.435 563 619 0.276 1251 90 58 4.24
2004 3위 70 62 1 0.530 606 560 0.268 1200 89 71 3.88 * 준플레이오프 : KIA 전 2-0 승
* 플레이오프 : 삼성 전 1-3 패
김경문
2005 2위 72 51 3 0.585 596 465 0.270 1147 63 103 3.42 * 플레이오프 : 한화 전 3-0 승
* 한국시리즈 : 삼성 전 0-4 패
2006 5위 63 60 3 0.512 455 467 0.258 1068 55 132 3.36
2007 2위 70 54 2 0.565 578 480 0.263 1103 78 161 3.44 * 플레이오프 : 한화 전 3-0 승
* 한국시리즈 : SK 전 2-4 패
다니엘 리오스 (최)
임태훈 (신)
2008 2위 70 56 0 0.556 647 542 0.276 1198 68 189 3.89 * 플레이오프 : 삼성 전 4-2 승
* 한국시리즈 : SK 전 1-4 패
2009 3위 71 60 2 0.534 722 662 0.280 1286 120 129 4.60 * 준플레이오프 : 롯데 전 3-1 승
* 플레이오프 : SK 전 2-3 패
이용찬 (신)
2010 3위 73 57 3 0.549 731 669 0.281 1276 149 128 4.62 * 준플레이오프 : 롯데 전 3-2 승
*플레이오프 : 삼성 전 2-3 패
양의지 (신)
2011 5위 61 70 2 0.466 614 619 0.271 1221 92 130 4.26 김경문
김광수(감독대행)
2012 3위 68 62 3 0.523 524 519 0.260 1139 59 116 3.58 * 준플레이오프 : 롯데 전 1-3 패 김진욱
2013 2위 71 54 3 0.568 699 625 0.289 1271 95 172 4.57 * 준플레이오프 : 넥센 전 3-2 승
* 플레이오프 : LG 전 3-1 승
* 한국시리즈 : 삼성 전 3-4 패
OB/두산 베어스 32시즌 1957 1880 86 0.499 17298 16713 0.264 34782 2629 3582 3.83 한국시리즈 우승 3회

참조[편집]

참고 문헌
주석
  1. 상게서, 83쪽
  2. 상게서, 89쪽
  3. 상게서, 96쪽
  4. 상게서, 106쪽
  5. 상게서, 112쪽
  6. 상게서, 115쪽
  7. 상게서, 116쪽
  8. 상게서, 125쪽
  9. 상게서, 124쪽
  10. 상게서, 126쪽
  11. 네이버 디지털 뉴스 아카이브 "환상적 아치에 삼섬 넋잃고… OB 감격의 만세", 《동아일보》, 1982년 10월 13일 작성, 8면면. 2009년 5월 31일 확인.
  12. 상게서, 136쪽
  13. 상게서, 138쪽
  14. 상게서, 139쪽
  15. 네이버 디지털 뉴스 아카이브 "김영덕감독 사임 OB 부진등으로", 《매일경제》, 1982년 10월 15일 작성, 12면면. 2009년 5월 21일 확인.
  16. 상게서, 149쪽
  17. 상게서, 155쪽
  18. 상게서, 157쪽
  19. 상게서, 187쪽
  20. 상게서, 199쪽
  21. 상게서, 183쪽
  22. 상게서, 184쪽
  23. 상게서, 185쪽
  24. 상게서, 212쪽
  25. 상게서, 213쪽
  26. 상게서, 214쪽
  27. 상게서, 215쪽
  28. 상게서, 216쪽
  29. 상게서, 217쪽
  30. 상게서, 218쪽
  31. 상게서, 223쪽
  32. 상게서, 233쪽
  33. 상게서, 225쪽
  34. 상게서, 230쪽
  35. 상게서, 245쪽
  36. 상게서, 246쪽
  37. 상게서, 257쪽
  38. 상게서, 258쪽
  39. 상게서, 260쪽
  40. 상게서, 261쪽
  41. 상게서, 262쪽
  42. 상게서, 263쪽
  43. 상게서, 264쪽
  44. "두산, 선동열씨 감독영입 추진", 《YTN》, 2003년 9월 30일 작성. 2010년 11월 21일 확인.
  45. "2003년 프로야구의 ‘케빈 베이컨 놀이’", 2007년 10월 22일 작성. 2011년 10월 8일 확인.
  46. 정환수. "[프로야구두산, 기아에 파죽의 2연승]", 《동아일보》, 2004년 10월 10일 작성. 2011년 11월 21일 확인.
  47. 상게서, 250쪽
  48. "김동주 어깨부상…정성훈으로 대체", 《YTN》, 2006년 3월 3일 작성. 2011년 11월 21일 확인.
  49. 상게서, 277쪽
  50. 상게서, 278쪽
  51. 두산베어스, 새로운 CI 제작 발표 2010년 1월 4일 (두산베어스 공지 사항)
  52. 유니폼 교체에 두산팬 “구톰슨 못 잡은 것 보다 더 슬퍼” 2010년 1월 6일 네이트 뉴스)
  53. 구경백. "<구경백의 프로야구 산책>할인·이벤트로 관중 불러라", 《문화일보》, 2004년 7월 28일 작성. 2009년 5월 26일 확인.
  54. 이정호. "두산, 2009시즌 여성팬 위한 '퀸스데이' 이벤트 실시", 《마이데일리》, 2009년 2월 27일 작성. 2009년 5월 29일 확인.
  55. 홍윤표. "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 - 등번호가 뭐길래 ①선동렬이 18번을 달게된 사연", 《OSEN》, 2006년 12월 4일 작성. 2009년 5월 31일 확인.
  56. 정수익. "[프로야구 개막전 표정] 김종훈 첫 병살타… 박정환 실책 불명예", 《국민일보》, 2002년 4월 5일 작성. 2009년 5월 31일 확인.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