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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갑용(陳甲龍, 1974년 5월 8일 ~ )은 한국 프로 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포수이다. 그는 박경완과 함께 2000년대를 풍미한 대한민국 최고의 포수 양대 산맥으로 손꼽힌다.[1][2][3][4][5][6][7]
진갑용 선수의 이름에서 본뜬 "갑-드래곤"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프로 야구 경력 [편집]
OB · 두산 베어스 시절 [편집]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후 199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OB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그러나 1999년 홍성흔의 입단으로 주전에서 밀려 2군을 전전하였던 진갑용은 김인식 감독과 두산 구단 사장에게 트레이드를 요청하였고 두산 베어스에서 이를 받아들여 그 해 트레이드 마감 기일이었던 7월 31일 포수가 필요하였던 삼성 라이온즈에 투수 이상훈을 상대로 한 현금(4억) 트레이드로 이적했다.[8]
삼성 라이온즈 시절 [편집]
그 당시 김영진과 정회열이 배터리를 맡았지만, 포수진이 허술해 삼성 라이온즈는 애를 먹고 있었다.[9] 특히 김영진의 경우 1997년 연속경기 때의 낫아웃 오판 사건으로 인해 삼성에서 2001년에 내야수 김승권을 상대로 한화 이글스에 트레이드할 정도였다.[10] 원년 프랜차이즈 포수 스타 이만수 이후로 수준급의 포수가 장기간 부족했던 삼성 라이온즈에서 진갑용은 기회를 얻어 단비와 같은 존재로 좋은 활약을 펼치며 오랫동안 삼성 라이온즈의 주전 포수로 자리잡아 나갔다.[11][12] 삼성 라이온즈는 1990년대 내내 포수난을 겪었던 탓에 트레이드로 진갑용을 데려온 뒤에도 곧이어 LG 트윈스의 포수 김동수를 FA 계약을 통해 영입하기도 했는데, 오히려 삼성에서 부진하여 2001년 말 SK 와이번스에 트레이드된 김동수에 비해 진갑용은 이에 굴하지 않고 조범현 베터리 코치의 조련을 받아 당당히 주전 경쟁에서 살아남으며 주전 자리를 굳혀 나갔다. 진갑용의 트레이드는 삼성의 성공적인 트레이드 중 하나로 꼽힌다.[13][14] 진갑용은 삼성 라이온즈가 2002 정규 시즌 및 2002년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하였고, 그 해 데뷔 첫 골든 글러브를 받았다. 2003 시즌이 끝난 뒤 김한수의 주장 자리를 물려받아 2008 시즌까지 팀을 잘 이끌었다.[15] 특히 2005~06 시즌 연속 우승을 일궈 냈고, 2008 시즌까지 삼성 구단이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루는 데에 큰 기여를 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16][17][18][19][20] 2008 시즌이 끝난 뒤 박진만에게 주장 자리를 물려 주었다.[15]
2009 시즌에는 7월 11일 문학 SK전에서 SK의 선발 투수 송은범의 투구에 맞아 좌측 척골 골절상을 입으며 일찍 시즌 아웃되었다. 그 해 삼성 라이온즈는 진갑용을 비롯하여 양준혁, 박진만, 조동찬, 박석민, 오승환, 권오준, 안지만 등 주전 선수들의 대거 부상으로 전력이 급격히 약화되면서 13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다.[18][19][20] 부상에서 돌아온 진갑용은 2010 시즌에도 여전히 주전 포수로 활약하였으나 잔부상과 체력 저하로 예전에 비해 경기 출전량이 줄어들었다.[3][21]
2010년에 부진하였던 강봉규를 대신하여 2011년 팀 주장 자리에 복귀했으며,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거쳐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였으며 그 해 아시아 시리즈까지 우승하였다. [22]
고려대학교 2학년 때 출전하였던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을 계기로 국가대표팀에 입문하였고, 애틀랜타 올림픽에 참가했는데,[23] 그 해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처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하였으며 1승 6패로 최하위를 기록했고, 시드니 올림픽부터 프로 선수의 출전이 허용되었다.[24]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그는 오랫동안 국가대표팀을 거쳤으며 그가 병역 문제를 해결했던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등 국가대표팀의 베테랑 주전 포수로 여러 차례 활약하며 3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베이징 올림픽의 경우 대회 도중 허벅지 부상을 당하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대표팀 주장으로서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좋은 활약을 펼침으로써 대표팀이 9전 전승 금메달을 따는 데에 크게 공헌하였다.[16][25][26] 하지만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는 대표팀 엔트리 확정 전 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어 대표팀에서 제외되는 사건이 있었고, 그를 대신하여 KIA 포수 김상훈이 합류하였다. 김상훈 선수는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 혜택을 받았다.[27]
소속 구단 [편집]
수상 · 타이틀 경력 [편집]
아마추어 수상 경력 [편집]
- 1996년 대통령기 - 최우수 선수상
- 1995년 화랑기 - 수훈상
- 1995년 백호기 - 수훈상
- 1994년 대학 선수권 - 타격상
- 1992년 화랑기 - 최우수 선수상, 타격상
- 1991년 화랑기 - 최우수 선수상, 타격상, 안타상, 도루상
프로 수상 경력 [편집]
연도별 세부 성적 [편집]
| 연도 |
소속 |
경기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도루 |
희생타 |
4구 |
사구 |
삼진 |
병살타 |
실책 |
타율 |
장타율 |
출루율 |
기타 |
| 1997 |
OB |
95 |
281 |
21 |
68 |
7 |
0 |
4 |
20 |
2 |
2 |
20 |
6 |
44 |
7 |
6 |
0.242 |
0.310 |
0.306 |
|
| 1998 |
88 |
253 |
12 |
68 |
14 |
1 |
2 |
22 |
1 |
4 |
14 |
0 |
44 |
10 |
7 |
0.269 |
0.356 |
0.306 |
방콕 아시안 게임 대표 선수 |
| 1999 |
두산
삼성 |
68 |
156 |
13 |
33 |
3 |
0 |
4 |
17 |
0 |
4 |
10 |
2 |
29 |
7 |
0 |
0.212 |
0.308 |
0.265 |
|
| 2000 |
삼성 |
114 |
297 |
30 |
81 |
14 |
0 |
8 |
58 |
2 |
4 |
23 |
6 |
45 |
7 |
7 |
0.273 |
0.401 |
0.333 |
|
| 2001 |
89 |
314 |
54 |
96 |
25 |
2 |
7 |
57 |
2 |
5 |
23 |
7 |
37 |
4 |
4 |
0.306 |
0.465 |
0.361 |
|
| 2002 |
133 |
462 |
58 |
130 |
29 |
1 |
18 |
86 |
0 |
6 |
41 |
8 |
56 |
13 |
11 |
0.281 |
0.465 |
0.347 |
타점 8위, 타격 25위
골든 글러브 |
| 2003 |
126 |
435 |
64 |
126 |
20 |
2 |
21 |
53 |
1 |
4 |
36 |
10 |
34 |
13 |
13 |
0.290 |
0.490 |
0.356 |
타격 19위 |
| 2004 |
129 |
439 |
60 |
122 |
20 |
0 |
24 |
71 |
0 |
6 |
34 |
12 |
51 |
16 |
5 |
0.278 |
0.487 |
0.344 |
홈런 5위, 장타율 9위 |
| 2005 |
110 |
347 |
34 |
100 |
17 |
0 |
6 |
41 |
1 |
15 |
36 |
8 |
47 |
8 |
6 |
0.288 |
0.389 |
0.365 |
타격 16위
골든 글러브 |
| 2006 |
110 |
358 |
28 |
103 |
22 |
0 |
6 |
47 |
1 |
16 |
29 |
5 |
37 |
18 |
4 |
0.288 |
0.399 |
0.343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 선수
타격 10위
포수 골든 글러브 |
| 2007 |
122 |
362 |
28 |
89 |
12 |
0 |
5 |
39 |
0 |
9 |
49 |
7 |
38 |
9 |
4 |
0.246 |
0.320 |
0.344 |
|
| 2008 |
105 |
272 |
34 |
76 |
7 |
0 |
11 |
45 |
1 |
10 |
30 |
1 |
41 |
6 |
3 |
0.279 |
0.426 |
0.342 |
베이징 올림픽 대표 선수 |
| 2009 |
57 |
142 |
10 |
33 |
3 |
1 |
3 |
20 |
1 |
4 |
15 |
4 |
23 |
5 |
2 |
0.232 |
0.331 |
0.321 |
|
| 2010 |
100 |
259 |
36 |
68 |
8 |
0 |
10 |
28 |
0 |
14 |
45 |
2 |
57 |
7 |
4 |
0.263 |
0.409 |
0.375 |
|
| 2011 |
112 |
286 |
26 |
78 |
7 |
0 |
10 |
42 |
1 |
7 |
35 |
3 |
53 |
10 |
6 |
0.273 |
0.402 |
0.357 |
|
| 2012 |
114 |
313 |
27 |
96 |
15 |
1 |
6 |
57 |
0 |
X |
17 |
7 |
46 |
6 |
3 |
0.307 |
X |
X |
|
| 통산 |
16 시즌 |
1686 |
5002 |
541 |
1378 |
224 |
8 |
146 |
710 |
13 |
X |
459 |
90 |
684 |
147 |
93 |
0.275 |
X |
X |
|
출신 학교 [편집]
주석 [편집]
- ↑ OSEN - 2009년 4월 기사 "제2, 제3의 박경완 · 진갑용을 기다리며"
- ↑ 스포츠 조선 - 2010년 8월 기사 "포수 방어율 부문 1위 진갑용, 꼴찌 조인성"
- ↑ 가 나 스포츠 조선 - 2010년 8월 기사 "진갑용 회복, 26일 1군 컴백 저울질"
- ↑ 동아일보 - 2010년 5월 기사 "유선정 · 양의지… 안방에 ‘새댁’ 바람"
- ↑ 세계일보 - 2010년 9월 기사 "롯데 홍성흔, ‘2인자 클럽 결성!’"
- ↑ 스포츠 춘추 - 2008년 6월 박동희의 칼럼 "조인성이 문제였나"
- ↑ 스포츠 춘추 - 2010년 1월 박동희의 칼럼 "롯데 강민호의 ‘명품 포수 되기’"
- ↑ 매일신문 - 2007년 4월 기사 "최종문의 펀펀 야구 - 삼성의 안방 마님 진갑용"
- ↑ 프로야구,진갑용-이상훈+4억 트레이드 - 연합뉴스
- ↑ 한화 내야수 김승권 삼성으로 트레이드 - 동아일보
- ↑ 스포츠 춘추 - 2008년 10월 박동희의 칼럼 "김상엽 “파워 커브처럼 낙차 컸던 내 인생”"
- ↑ "2005 한국시리즈는 ‘라이벌 시리즈’" - 오마이뉴스
- ↑ 마이 데일리 - 2008년 9월 기사 "‘포수 첫 2,000경기’ 김동수와 ‘역대 최초’의 인연"
- ↑ 데일리안 - 2009년 8월 기사 "‘화수분’ 두산… 포수 욕심의 결과는?"
- ↑ 가 나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 2010년 8월 기사 "진갑용 삼성 선수단 주장 후임으로 박진만 선임"
- ↑ 가 나 마이 데일리 - 2008년 10월 기사 "베이징의 체인징 파트너 진갑용-강민호, 적으로 만났다"
- ↑ 조이 뉴스 24 - 2008년 10월 기사 "롯데, 진갑용을 막아라"
- ↑ 가 나 OSEN - 2009년 9월 기사 "‘4강 탈락’ 진갑용, 힘이 되지 못해 화도 많이 났다"
- ↑ 가 나 OSEN - 2010년 2월 기사 " 안방마님 진갑용, 100경기 출장 위해 최선 다할 것"
- ↑ 가 나 OSEN - 2010년 3월 기사 "진갑용, 현재 컨디션은 80점 정도"
- ↑ OSEN - 2010년 9월 기사 "복귀 첫 홈런 진갑용, 1위 포기하지 않았다"
- ↑ 삼성 진갑용 "100경기 이상 뛰면 한국 시리즈 우승할 수도…" - 스포츠월드
- ↑ 아마 야구, 올림픽 대표팀 20명 선발 - 연합뉴스
- ↑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야구, 그 후 12년 - 마이데일리
- ↑ 동아일보 - 2008년 8월 기사 "진갑용 허벅지 부상 어떡해!… 포수 엔트리 강민호와 단 두 명뿐"
- ↑ 조이 뉴스 24 - 2008년 8월 기사 "진갑용, 마지막을 장식하게 해 준 민호에게 고맙다"
- ↑ ‘약물’진갑용 드림팀 제외 - 동아일보
바깥 고리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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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
|
삼성 라이온즈〈1982 ~ 〉 |
| 역대 감독 |
|
역대 코치
(삼성선수출신 코치제외) |
|
| 역대 투수 |
|
| 역대 포수 |
|
| 역대 1루수 |
|
| 역대 2루수 |
|
| 역대 3루수 |
|
| 역대 유격수 |
|
| 역대 좌익수 |
|
| 역대 중견수 |
|
| 역대 우익수 |
|
| 역대 지명타자 |
|
| 영구 결번 |
|
| 현 운영진 |
송삼봉 (단장 · 부사장) • 김인 (사장) • 이수빈 (구단주)
|
| 관련 문서 |
|
| 구단 시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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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라이온즈 - 2013 |
| 감독 |
|
| 코치 |
80 김성래 (수석, 타격겸직) • 00 코야마 (트레이닝) • 70 김태균 (수비,1루 주루) • 73 김재걸 (작전,3루 주루) • 76 김현욱 (트레이닝, 불펜 투수겸직) • 77 김종훈 (타격) • 78 김용국 (수비) • 82 김태한 (투수) • 83 세리자와 (배터리) • 86 김한수 (타격)
|
| 2군 감독 |
|
| 2군 코치 |
|
| 잔류군 코치 |
|
| 3군 매니저 |
|
| 투수 |
|
| 포수 |
|
| 내야수 |
|
| 외야수 |
|
| 군입대 선수 |
|
| 2013년 신인지명 선수 |
|
|
|
OB 베어스 〈1982 ~ 1998〉 |
| 역대감독 |
|
| 역대코치 |
|
| 역대투수 |
|
| 역대포수 |
|
| 역대내야수 |
|
| 역대외야수 |
|
| 역대 팀기록 |
928승 984패 50무
|
| 연고지 |
|
|
한국 시리즈 우승 1982년, 1995년 플레이오프 진출 1993년, 1998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