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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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갑용
Jin Kab-Yong
삼성 라이온즈 No.20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생년월일 1974년 5월 8일(1974-05-08) (39세)
출신지 부산광역시
신장 182 cm
체중 90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포수
프로 입단 연도 1997년
드래프트 순위 1997년 2차 1순위 (OB 베어스)
첫 출장 KBO / 1997년 4월 12일
대전한화
획득 타이틀
계약금 3억 8,000만 원
연봉 3억 5,000만 원 (2011년)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올림픽 1996 애틀랜타, 2008 베이징
WBC 2006
아시안게임 1994 히로시마, 1998 방콕
아시아선수권 2003년 삿포로
메달 기록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야구
올림픽
2008 베이징 야구
아시안게임
1994 히로시마 야구
1998 방콕 야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6 샌디에이고 2006 WBC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2003 삿포로 야구
유니버시아드
1993 버펄로 야구

진갑용(陳甲龍, 1974년 5월 8일 ~ )은 한국 프로 야구 삼성 라이온즈포수이다. 진갑용 선수의 이름에서 본뜬 "갑-드래곤"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프로 야구 경력[편집]

OB · 두산 베어스 시절[편집]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후 199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OB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그러나 1999년 홍성흔의 입단으로 주전에서 밀려 2군을 전전하였던 진갑용은 김인식 감독과 두산 구단 사장에게 트레이드를 요청하였고 두산 베어스에서 이를 받아들여 그 해 트레이드 마감 기일이었던 7월 31일 포수가 필요하였던 삼성 라이온즈투수 이상훈을 상대로 한 현금(4억) 트레이드로 이적했다.[1]

삼성 라이온즈 시절[편집]

그 당시 김영진정회열이 배터리를 맡았지만, 포수진이 허술해 삼성 라이온즈는 애를 먹고 있었다.[2] 특히 김영진의 경우 1997년 연속경기 때의 낫아웃 오판 사건으로 인해 삼성에서 2001년내야수 김승권을 상대로 한화 이글스에 트레이드할 정도였다.[3] 원년 프랜차이즈 포수 스타 이만수 이후로 수준급의 포수가 장기간 부족했던 삼성 라이온즈에서 진갑용은 기회를 얻어 단비와 같은 존재로 좋은 활약을 펼치며 오랫동안 삼성 라이온즈의 주전 포수로 자리잡아 나갔다.[4][5] 삼성 라이온즈는 1990년대 내내 포수난을 겪었던 탓에 트레이드로 진갑용을 데려온 뒤에도 곧이어 LG 트윈스포수 김동수를 FA 계약을 통해 영입하기도 했는데, 오히려 삼성에서 부진하여 2001년SK 와이번스에 트레이드된 김동수에 비해 진갑용은 이에 굴하지 않고 조범현 베터리 코치의 조련을 받아 당당히 주전 경쟁에서 살아남으며 주전 자리를 굳혀 나갔다. 진갑용의 트레이드는 삼성의 성공적인 트레이드 중 하나로 꼽힌다.[6][7] 진갑용은 삼성 라이온즈2002 정규 시즌2002년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하였고, 그 해 데뷔 첫 골든 글러브를 받았다. 2003 시즌이 끝난 뒤 김한수의 주장 자리를 물려받아 2008 시즌까지 팀을 잘 이끌었다.[8] 특히 2005~06 시즌 연속 우승을 일궈 냈고, 2008 시즌까지 삼성 구단이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루는 데에 큰 기여를 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9][10][11][12][13] 2008 시즌이 끝난 뒤 박진만에게 주장 자리를 물려 주었다.[8]

2009 시즌에는 7월 11일 문학 SK전에서 SK의 선발 투수 송은범의 투구에 맞아 좌측 척골 골절상을 입으며 일찍 시즌 아웃되었다. 그 해 삼성 라이온즈는 진갑용을 비롯하여 양준혁, 박진만, 조동찬, 박석민, 오승환, 권오준, 안지만 등 주전 선수들의 대거 부상으로 전력이 급격히 약화되면서 13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다.[11][12][13] 부상에서 돌아온 진갑용은 2010 시즌에도 여전히 주전 포수로 활약하였으나 잔부상과 체력 저하로 예전에 비해 경기 출전량이 줄어들었다.[14][15]

2010년에 부진하였던 강봉규를 대신하여 2011년 팀 주장 자리에 복귀했으며,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거쳐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였으며 그 해 아시아 시리즈까지 우승하였다. [16] 2012년까지 주장직을 맡았고, 시즌이 끝난 2013년에는 최형우에게 주장직을 넘겨주었다.

국가대표 경력[편집]

고려대학교 2학년 때 출전하였던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을 계기로 국가대표팀에 입문하였고, 애틀랜타 올림픽에 참가했는데,[17] 그 해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처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하였으며 1승 6패로 최하위를 기록했고, 시드니 올림픽부터 프로 선수의 출전이 허용되었다.[18]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그는 오랫동안 국가대표팀을 거쳤으며 그가 병역 문제를 해결했던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8년 베이징 올림픽국가대표팀의 베테랑 주전 포수로 여러 차례 활약하며 3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베이징 올림픽의 경우 대회 도중 허벅지 부상을 당하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대표팀 주장으로서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좋은 활약을 펼침으로써 대표팀이 9전 전승 금메달을 따는 데에 크게 공헌하였다.[9][19][20]

소속 구단[편집]

수상 · 타이틀 경력[편집]

아마추어 수상 경력[편집]

  • 1996년 대통령기 - 최우수 선수상
  • 1995년 화랑기 - 수훈상
  • 1995년 백호기 - 수훈상
  • 1994년 대학 선수권 - 타격상
  • 1992년 화랑기 - 최우수 선수상, 타격상
  • 1991년 화랑기 - 최우수 선수상, 타격상, 안타상, 도루상

프로 수상 경력[편집]

연도별 세부 성적[편집]

연도 소속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도루 희생타 4구 사구 삼진 병살타 실책 타율 장타율 출루율 기타
1997 OB 95 281 21 68 7 0 4 20 2 2 20 6 44 7 6 0.242 0.310 0.306
1998 88 253 12 68 14 1 2 22 1 4 14 0 44 10 7 0.269 0.356 0.306 방콕 아시안 게임 대표 선수
1999 두산
삼성
68 156 13 33 3 0 4 17 0 4 10 2 29 7 0 0.212 0.308 0.265
2000 삼성 114 297 30 81 14 0 8 58 2 4 23 6 45 7 7 0.273 0.401 0.333
2001 89 314 54 96 25 2 7 57 2 5 23 7 37 4 4 0.306 0.465 0.361
2002 133 462 58 130 29 1 18 86 0 6 41 8 56 13 11 0.281 0.465 0.347 타점 8위, 타격 25위
골든 글러브
2003 126 435 64 126 20 2 21 53 1 4 36 10 34 13 13 0.290 0.490 0.356 타격 19위
2004 129 439 60 122 20 0 24 71 0 6 34 12 51 16 5 0.278 0.487 0.344 홈런 5위, 장타율 9위
2005 110 347 34 100 17 0 6 41 1 15 36 8 47 8 6 0.288 0.389 0.365 타격 16위
골든 글러브
2006 110 358 28 103 22 0 6 47 1 16 29 5 37 18 4 0.288 0.399 0.34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 선수
타격 10위
포수 골든 글러브
2007 122 362 28 89 12 0 5 39 0 9 49 7 38 9 4 0.246 0.320 0.344
2008 105 272 34 76 7 0 11 45 1 10 30 1 41 6 3 0.279 0.426 0.342 베이징 올림픽 대표 선수
2009 57 142 10 33 3 1 3 20 1 4 15 4 23 5 2 0.232 0.331 0.321
2010 100 259 36 68 8 0 10 28 0 14 45 2 57 7 4 0.263 0.409 0.375
2011 112 286 26 78 7 0 10 42 1 7 35 3 53 10 6 0.273 0.402 0.357
2012 114 313 27 96 15 1 6 57 0 X 17 7 46 6 3 0.307 X X
2013 101 181 22 49 9 0 6 36 0 4 12 5 28 5 4 0.271 0.420 0.330
통산 16 시즌 1773 5157 557 1416 232 8 151 739 13 15 469 93 710 151 96 0.275 X X

출신 학교[편집]

주석[편집]

  1. 매일신문 - 2007년 4월 기사 "최종문의 펀펀 야구 - 삼성의 안방 마님 진갑용"
  2. 프로야구,진갑용-이상훈+4억 트레이드 - 연합뉴스
  3. 한화 내야수 김승권 삼성으로 트레이드 - 동아일보
  4. 스포츠 춘추 - 2008년 10월 박동희의 칼럼 "김상엽 “파워 커브처럼 낙차 컸던 내 인생”"
  5. "2005 한국시리즈는 ‘라이벌 시리즈’" - 오마이뉴스
  6. 마이 데일리 - 2008년 9월 기사 "‘포수 첫 2,000경기’ 김동수와 ‘역대 최초’의 인연"
  7. 데일리안 - 2009년 8월 기사 "‘화수분’ 두산… 포수 욕심의 결과는?"
  8.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 2010년 8월 기사 "진갑용 삼성 선수단 주장 후임으로 박진만 선임"
  9. 마이 데일리 - 2008년 10월 기사 "베이징의 체인징 파트너 진갑용-강민호, 적으로 만났다"
  10. 조이 뉴스 24 - 2008년 10월 기사 "롯데, 진갑용을 막아라"
  11. OSEN - 2009년 9월 기사 "‘4강 탈락’ 진갑용, 힘이 되지 못해 화도 많이 났다"
  12. OSEN - 2010년 2월 기사 " 안방마님 진갑용, 100경기 출장 위해 최선 다할 것"
  13. OSEN - 2010년 3월 기사 "진갑용, 현재 컨디션은 80점 정도"
  14. 스포츠 조선 - 2010년 8월 기사 "진갑용 회복, 26일 1군 컴백 저울질"
  15. OSEN - 2010년 9월 기사 "복귀 첫 홈런 진갑용, 1위 포기하지 않았다"
  16. 삼성 진갑용 "100경기 이상 뛰면 한국 시리즈 우승할 수도…" - 스포츠월드
  17. 아마 야구, 올림픽 대표팀 20명 선발 - 연합뉴스
  18.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야구, 그 후 12년 - 마이데일리
  19. 동아일보 - 2008년 8월 기사 "진갑용 허벅지 부상 어떡해!… 포수 엔트리 강민호와 단 두 명뿐"
  20. 조이 뉴스 24 - 2008년 8월 기사 "진갑용, 마지막을 장식하게 해 준 민호에게 고맙다"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