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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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한
Son Min-Han
NC 다이노스 No.61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생년월일 1975년 1월 2일(1975-01-02) (39세)
출신지 부산광역시
신장 179 cm
체중 85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1997년
드래프트 순위 1997년 1차 지명(롯데 자이언츠)
첫 출장 KBO / 1997년 4월 12일
광주해태전 구원
획득 타이틀
  • 2001년 다승왕, 승률왕
  • 2005년 다승왕, 최우수 평균자책점, MVP, 골든 글러브
계약금 5억 원
연봉 1억원 (2014년)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올림픽 1996, 2000
WBC 2006, 2009
아시안게임 1994, 2006
메달 기록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야구
올림픽
2000 시드니 야구
아시안 게임
1994 히로시마 야구
2006 도하 야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6 샌디에이고 2006 WBC
2009 로스앤젤레스 2009 WBC

손민한(孫敏漢, 1975년 1월 2일 ~ )은 현 한국 프로 야구 NC 다이노스투수이다.

아마추어 시절[편집]

대연초등학교, 대천중학교를 거쳐 부산고등학교에 진학한다. 2학년이던 1991년 제 43회 화랑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염종석, 주형광 등과 함께 부산고등학교의 우승을 이끌었다. 3학년이던 1992년에는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되었으나[1] 메달을 획득하지는 못한다.

롯데 자이언츠 시절[편집]

199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 구단은 부산고등학교 동기이자 고려대학교 시절까지 배터리로 함께한 포수 진갑용 중 누구를 선택할지 고심하다가 투수인 그를 지명했다. 진갑용은 웨이버 방식으로 진행된 2차 지명에서 전년도 최하위였던 OB 베어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았고, 입단 2년 후 트레이드 마감일이었던 1999년 7월 31일 삼성에 트레이드되었다.

입단 초기에는 같은 해에 입단한 문동환과 함께 미래의 에이스 후보로서 기대되었다. 그러나 입단 첫 해 개막전에 등판하여 끝내기 폭투를 범해 데뷔전에서 패전 투수가 되었고 이후 3년 간은 부상으로 이렇다 할 활약은 하지 못하고 4년째인 2000년에 12승을 올려 간신히 기대에 부응했다.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으로 발탁되어 팀이 동메달을 획득, 병역 혜택을 받았다.

다음 해인 신윤호와 함께 2001년에는 15승으로 최다승 및 승률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러나 2002년2003년에 또 다시 부진에 빠져, 한 자리수 승리에 그쳤다. 2004년 전반기에는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으나 8세이브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2004년 7월 12일 박석진, 김대익과의 트레이드로 노장진, 김승관이 롯데에 입단하여 노장진이 마무리를 맡게 되자 2004년 후반기부터 다시 선발로 전향하여 9승을 거두어 재기 가능성을 보였다.

그리고, 2005년에 18승을 거두며 완벽히 재기하여 최다 승과 평균 자책 1위의 2관왕을 차지하고, MVP를 수상했다.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팀에서 MVP가 나온 사례는 1982년 한국 프로 야구가 출범한 이래로 이 시즌의 손민한이 유일했으며 2012 시즌 넥센 히어로즈박병호가 두 번째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팀에서 MVP가 나온 선수가 됐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되어 미국전에서 선발 투수로 호투해 승리 투수가 되었다.

2008 시즌에는 리그에서 가장 많은 퀄리티스타트와 퀄리티스타트+(각각 21회, 18회)를 하고도 계투진의 난조와 유독 손민한이 등판했을 때 타선의 지원 부족으로 단 12승밖에 거두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다. 2008 시즌이 끝난 후 FA 자격을 얻어 롯데 자이언츠와 재계약하였다.

또한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팀의 주장으로 뽑혀, 참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승전까지 단 1경기에도 등판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컨디션 난조 때문이라고 했으며 실제로 그는 그 때 어깨가 좋지 않았고 어깨로 인해 이후 발목이 잡히게 된다. 이를 본 팬들은 "손민한 실종" 이라는 패러디성 유머를 만들어 희화화하기도 하였다. [2] 2009 프로 야구가 개막한 이후로도 자신이 회장으로 있던 선수협의 노조 결성 논란으로 인해 출전이 없었다가, 2009년 6월 7일 잠실 두산전에 2008년 준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선발 출장한 이래 7개월만에 처음으로 1군에 등판하여 6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막아 팀의 영봉승을 이끌어 냈다.[3] 같은해 6월 26일에 대전 한화전에서 통산 100승을 거두었다(통산 20번째).

그러나 그는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부터 좋지 않던 어깨 때문에 2009년 10월 2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구단 지정병원인 조브 클리닉에서 감바델라 박사의 집도로 오른쪽 어깨 관절경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미국에서 1차 재활(관절가동범위 확보운동)을 마친 뒤 귀국하여 2010 시즌까지 계속 재활 훈련을 하였다. 그러나 재활 훈련 도중 통증이 재발되어 복귀가 무산되었고 2011년에도 시범 경기에 등판하였으나 또 다시 악순환을 거듭하여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시즌 후 방출되었다.[4]

NC 다이노스 시절[편집]

롯데 자이언츠에서 방출된 이후 제 9구단 NC 다이노스에 이적을 타진하며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선수협 문제 등은 해결됐고 메디컬 테스트도 통과했다.

하지만 결국 정식 선수 등록 마감일까지 새 둥지를 찾지 못했다. 2013년에 선수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신고선수로 입단해 6월 1일 이후부터 1군 등록이 가능한 신고선수 등록 기간에 돌아오는 길밖에 없었다. 다만 신고선수6월 1일 이후 정식 선수로 등록할 수 있고, 연봉도 별도의 언급이 없으면 최소 연봉(2,400만 원)을 받아야 한다. NC 다이노스에서도 그의 부상 이력 때문에 이를 바라보며 최대한 몸을 만들 때까지 복귀를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코칭스태프가 전지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3월에 테스트를 거쳐 신고선수 영입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5] 이후 2013년 4월 15일 NC 다이노스에 연봉 5,000만원의 조건으로 신고선수 계약을 맺었다. 퓨처스 팀(C팀)에 합류, 몸 상태를 고려하여 퓨처스 경기에 등판하였다.[6]

2013년 6월 5일 노성호를 대신하여 4년 만에 1군에 올라왔다. 마산 SK전 선발 투수[7]로 등판하여 1,378일 만에 1군 복귀전을 치렀고, 김광현을 상대로 1,407일 만에 선발승을 거두었다.[8] 2013년 6월 한 달 동안 4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3승 평균자책 0.77, 8탈삼진으로 활약하였으며, 한국프로야구 6월 MVP에 선정되었다.[9] 하지만 그는 선발로 나설 때마다 투구 수에 대한 부담으로 김경문 감독에게 불펜 전환 의사를 표명하였고, 김경문 감독도 이를 승인하여[10] 불펜으로 전환했으며, 마무리 투수도 겸했다. 2013년 7월 24일 대구 삼성전에서는 데뷔 첫 홀드를 따 냈다.[11] 2013년 8월 13일 청주 한화전에서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타석에 섰으나, 김혁민을 상대로 삼진 아웃을 당했다.[12]

연봉[편집]

연도 연봉 인상율(%) 비고
2011년 6억원 0
2013년 5,000만 원 -
2014년 1억 원 100

경력[편집]

수상 경력[편집]

  • 1995년: 제 29회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 최우수선수
  • 2001년: 2001년 한국프로야구 다승왕 (15승)
  • 2001년: 2001년 한국프로야구 승률 1위(0.714)
  • 2005년: 2005년 한국프로야구 다승왕 (18승)
  • 2005년: 2005년 한국프로야구 평균자책점 1위 (2.46)
  • 2005년: 2005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선수
  • 2005년: 2005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투수상
  • 2013년 : 한국프로야구 6월 MVP

국가대표 경력[편집]

통산 성적[편집]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비고
1997 롯데 4.80 9 0 0 1 3 1 0 0.250 128 30 23 2 20 1 17 17 16
1999 5.59 10 0 0 0 0 1 0 0.000 84 19 1/3 19 2 6 1 9 13 12
2000 3.20 28 4 1 12 7 0 0 0.632 707 174 1/3 153 16 55 6 117 68 62 평균자책점 3위, 완투 2위, 완봉 1위
시드니올림픽 대표 선수
2001 4.21 29 0 0 15 6 0 0 0.714 760 173 1/3 184 18 69 4 110 89 81 다승 1위
2002 3.67 23 2 1 4 9 0 0 0.308 586 142 1/3 144 19 30 4 82 68 58
2003 4.86 18 1 0 3 11 0 0 0.214 473 109 1/3 115 17 38 5 54 67 59
2004 2.73 42 0 0 9 2 8 0 0.818 433 108 2/3 90 8 29 2 88 36 33
2005 2.46 28 1 0 18 7 1 0 0.720 678 168 1/3 149 9 38 2 105 54 46 평균자책점 1위, 다승 1위
2006 2.78 25 2 1 10 8 1 0 0.556 664 161 2/3 147 4 39 9 96 54 50 평균자책점 3위, 완봉 3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 선수
도하 아시안 게임 대표 선수
2007 3.34 30 0 0 13 10 0 0 0.565 797 194 191 17 48 2 95 74 72 최다이닝 3위
2008 2.97 26 1 0 12 4 0 0 0.750 733 179 183 12 40 1 80 66 59 최다이닝 2위
2009 5.19 14 0 0 6 5 0 0 0.545 311 69 1/3 87 3 28 4 20 41 40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 선수
2013 NC 3.43 28 0 0 5 6 9 3 0.455 250 60 1/3 56 4 23 3 22 24 23
통산 13시즌 3.46 310 11 3 108 78 21 3 0.581 6604 1590 1541 131 463 44 895 671 611

출신학교[편집]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건[편집]

2007년 12월 16일에 열린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정기총회에서 2008년 ~ 2009년을 이끌어갈 선수협회회장으로 선출된다.[13] 2008년 현대 유니콘스의 해체를 막기위해 10억을 기탁하는 등 이전과는 달리 더 적극적으로 선수협 활동을 이끌었다.

주석[편집]

  1. 야구협,청소년야구대표선발 - 연합뉴스
  2. "다섯 번째 한국전을 남겨둔 일본 '손민한은 누구?' " 《글로벌 종합일간지》 2009-03-25 인터넷 뉴스팀
  3. '손민한 무실점 쾌투' 롯데, 두산 꺾고 2연승, 《OSEN》 2009년 6월 7일
  4. 손민한, 롯데 떠난다…자유계약 공시 신청 - OSEN
  5. 선수등록 마감일을 넘긴 손민한…6월에는 돌아올까 - 스포츠월드
  6. NC, 손민한과 연봉 5,000만원에 입단 계약 - OSEN
  7. 손민한이 1군에 올라오면서 4승으로 선발진에서 활약한 이재학은 마무리로 보직을 바꾸었으나, 난조를 보여 다시 선발 투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8. ‘살아 있네’ 손민한, 화려한 귀환 알리다 - OSEN
  9. '6월 MVP' 손민한 "앞으로도 좋은 모습으로 야구할 것" - 엑스포츠뉴스
  10. 불펜 전환 손민한, “선발로 이기기 쉽지 않더라” - 일간스포츠
  11. 역전패에 빛 바랜 손민한의 생애 첫 홀드 - 마이데일리
  12. NC 손민한, 프로 데뷔 17년 만에 첫 타석 '삼진' - OSEN
  13. [1]

바깥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