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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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Hanwha Eagles
Hanwha Eagles insignia.svg
이니셜 로고
회사명 주식회사 한화이글스
설립 연도 1986년
마스코트 위니, 비니
소속 리그
한국야구위원회
한국프로야구
이전 구단명
빙그레 이글스 (1986년 ~ 1993년)
홈 구장
1군 : 대전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
제2홈구장 :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
2군 : 서산야구장
수용 인원 13,000명 (대전)
10,500명 (청주)
연고지 대전광역시
영구 결번
21 송진우, 23 정민철, 35 장종훈,[1]
역대 타이틀
한국 시리즈 우승(1회)
1999
성적(타이틀 이외)
한국 시리즈 출장(6회)(굵은 글씨는 승리한 해)
1988・1989・1991・1992・1999・2006
플레이오프(7회)(굵은 글씨는 승리한 해)
19881991・1994・1999・2005・2006・2007
준플레이오프(7회)(굵은 글씨는 승리한 해)
1990・1994・1996・2001・200520062007
구단 조직
구단주 김승연
운영모체 한화그룹
감독 김응룡
유니폼
홈경기
원정경기
한화 이글스 2014 시즌
한화 이글스 구단 버스(현대 유니버스).

한화 이글스(Hanwha Eagles)는 대전광역시충청도를 연고지로 하는 한국야구위원회 소속 프로야구 팀이다. 홈 구장은 대전광역시 중구 부사동의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이다. 제2홈구장은 충청북도 청주시 청주야구장이고, 2군 홈구장은 충청남도 서산시 서산야구장이다. 현재와 같은 지역을 연고지로 1986년 3월 8일 빙그레 이글스란 이름으로 창단되었다. 1993년 11월 1일 구단 이름을 한화 이글스로 변경하였다. 1999년 한국시리즈에서 창단 이래 처음으로 우승하였다. 한화그룹의 기반 업종을 본뜬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라는 별명이 있다.

2014년 기준으로 한국프로야구 사상 영구 결번 선수(35번-장종훈, 23번-정민철, 21번-송진우)를 가장 많이 지정한 구단이다.

목차

역사[편집]

창단 과정[편집]

1982년 한국 프로 야구 출범 당시 대전·충청권을 연고지로 한 OB 베어스1984년 시즌을 마치고 연고지를 서울특별시로 이전한다. 이는 한국야구위원회OB 구단 사이에 프로 야구 출범 당시부터 3년 후 연고지를 서울특별시로 이전하겠다는 사전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1985년 한국 프로 야구 리그 참가를 희망한 한화그룹에서 1월 15일 창단 준비 위원회를 발족시킨다. 다음 날인 1월 16일 한국 야구 위원회로부터 제 7구단으로 승인받게 되고 3월 11일 '(주)빙그레 이글스 야구단'이 설립된다. 그 해에는 2군 리그에 참가하였다.

1986년 3월 8일과 9일, 대전청주에서 빙그레 이글스 창단식을 개최한다. 그 해 처음으로 1군 리그에 참가하였지만 신생 구단의 한계와 얕은 선수 층으로 리그 7위를 기록한다.

빙그레 이글스[편집]

1985년 창단 ~ 1987년 (배성서 감독 시대)[편집]

1988년 ~ 1993년 (김영덕 감독 시대)[편집]

1988년[편집]

1988년에 3년 계약 기간이 만료된 배성서 감독과 재계약을 포기하고 김영덕 감독을 영입하여 정규 시즌을 2위로 마감한 빙그레 이글스는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3전 전승으로 물리치고 창단 이래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 정규 리그 1위 팀 해태 타이거즈와 일전을 벌이게 되는데, 내리 3경기를 지게 된다. 그 후 2경기를 잡고 분위기를 타는 듯 했으나, 결국 6차전에서 져서 2승 4패로 준우승에 머문다.

1989년[편집]

창단 4년 만에 빙그레 이글스는 6할의 승률을 기록하며 정규 시즌 우승을 한다. 준 플레이오프에서는 태평양 돌핀스삼성 라이온즈를 이기고 올라왔고, 플레이오프에서는 해태 타이거즈가 태평양을 잡았다. 1988년에 이어 또 다시 빙그레 이글스와 해태 타이거즈가 만났다. 1차전에서는 빙그레가 에이스 이상군의 호투로 승리하였다. 하지만 내리 4경기를 모두 져서, 또 다시 준우승에 머문다.

1990년[편집]

빙그레 이글스는 정규 시즌 3위를 기록했다. 준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게 2패를 당하여, 포스트 시즌을 마감했다. 정규리그 4위였던 삼성이 빙그레(3위), 해태(2위)를 연달아 물리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빙그레는 최종 순위 4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1991년[편집]

빙그레 이글스는 정규 시즌 2위에 올랐다. 롯데 자이언츠를 꺾고 올라온 삼성 라이온즈와 플레이오프에서 만났다. 결과는 3승 1패로 빙그레 이글스가 한국시리즈에 올라갔다. 한국시리즈에서 정규시즌 우승 팀인 해태 타이거즈와 3번째로 만났다. 하지만 단 한경기도 이기지 못하고 4:0으로 져 또 다시 준우승에 머물렀다.

1992년[편집]

빙그레 이글스는 투-타 및 팀 조직력이 완벽했다. 6할이 넘는 승률과 팀 홈런 146개를 기록하였으며, 신인 정민철은 14승, 송진우는 19승, 이상군도 10승을 했고, 팀의 주축 거포 장종훈은 무려 41개의 홈런을 날렸다. 이정훈은 타율 0.360라는 고타율을 기록하고 25개의 홈런을 날렸으며, 이강돈도 0.320의 타율과 13개의 홈런을 날렸다.

정규 시즌을 우승한 빙그레 이글스는 삼성과 해태를 꺾고 올라온 롯데 자이언츠와 한국시리즈에서 만났다. 1차전과 2차전에서 패배한 빙그레는 3차전을 이겼지만, 롯데 염종석의 활약으로 4차전도 지고 5차전에서도 패배하면서, 시리즈 전적 4:1로 롯데 자이언츠가 8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1992년 정규시즌은 이글스 팬들에게는 아쉬운 해였다. 투-타 걸쳐서 완벽했던 시즌이였고 한국시리즈에서도 해태도 아니였고, 이번에는 우승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롯데 자이언츠는 강했다. 이로써 빙그레의 4번째 한국시리즈 첫 우승 도전도 실패했다.

1993년[편집]

이 해 빙그레 이글스는 부진에 시달렸다. 주축 외야수 이정훈 선수가 부상을 당했고, 장종훈 선수도 부상을 당해 시즌 아웃되었다. 베테랑 투수 한희민김영덕 감독과 갈등을 빚어 삼성 라이온즈로 박철희를 상대로 현금 트레이드되었고 다른 투수들은 부진했다. 이 시즌 동안은 프로 2년차를 맞이했던 투수 정민철이 13승을 거두며 홀로 고군분투했다. 1993년에는 좌완 투수 구대성 선수가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한 해이기도 했지만 구대성은 기대와 달리 프로 데뷔 첫 해에 부진했다. 1993년 빙그레 이글스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부진했다. 정규 시즌 5위로 마감한 빙그레 이글스는 이제 더 이상 '빙그레'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시즌 후 그 해 11월 9일 모그룹명을 팀명으로 쓰기로 하고 '한화 이글스'로 구단명을 바꾸었다.(이후 빙그레한화그룹에서 계열 분리된다.) 그리고 김영덕 감독도 계약 기간이 만료된 후 빙그레를 떠나게 되어 김영덕 감독의 퇴장과 함께 빙그레의 시대도 끝났다.

한화 이글스[편집]

1994년 ~ 1998년 (강병철 감독 시대)[편집]

새롭게 구단명을 바꾸고 강병철 감독이 사령탑을 맡았지만 1994년부터 1998년까지 한화는 5년 동안 두 차례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는 데 그쳤다. 1994년 길배진, 1995년 신재웅 등 1차 지명 선수가 거듭 실패하면서 세대교체 작업도 여의치가 않았다. 다행인 것은 199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향후 팀의 새로운 주축이 될 선수들을 대거 지명했다는 점이었다. 그 해 한화는 신인 지명에서 이영우, 송지만, 김수연, 임수민, 이상열, 심광호, 홍원기 등을 선택하며 세대교체의 물꼬를 트는 데 성공했다. 그중 임수민, 이영우, 송지만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하였다. 여기에 마운드에서는 기존의 송진우와 정민철이 좌·우 에이스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고, 데뷔 첫 해 실망스러웠던 투수 구대성이 ‘대성불패’로 거듭났다.

1998년 ~ 2000년 (이희수 감독 시대)[편집]

1998년[편집]

강병철 감독이 성적 부진의 이유로 올스타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98년 7월 9일에 경질당했다. 강병철 감독은 한화 이글스 역대 감독 중 한대화 감독과 더불어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경질된 감독이다. 북일고등학교 감독 출신 수석코치 이희수가 감독 대행으로 남은 시즌을 치렀고, 시즌 후 정식 감독이 되었다.

1999년[편집]

1999년부터 새로이 양대 리그가 출범함에 따라, 각 리그 1·2위 팀이 상대 리그의 1·2위와 교차로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다. 매직 리그 2위인 한화 이글스는 드림 리그 1위인 두산 베어스를 맞이하여 4전 전승으로 1999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였다. 드림 리그 2위인 롯데 자이언츠는 매직 리그 1위인 삼성 라이온즈와의 대결에서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4승 3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였다. 그 해 외국인 타자 댄 로마이어제이 데이비스가 힘을 보탰으며, 로마이어는 그 해 45홈런을 기록했다. 정민철은 무려 18승을 기록했다.

모두 5차전을 벌인 결과 롯데 자이언츠를 4승 1패로 누르고 한화 이글스는 창단 13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였다. MVP는 구대성으로 선정되었다.

2000년[편집]

우승 다음 해인 2000년, 3할 타자 3명-20홈런 타자가 5명이나 되는 타선을 갖고도 시즌 7위로 추락했다. 투수진 운영에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한화 이글스의 약점은 불펜이었다. 1999년 18승을 기록한 에이스 정민철요미우리 자이언츠 진출에 이어 전 해 14승을 거둔 이상목이 부상으로 이탈하였다. 시즌 후 이희수 감독과 재계약을 포기했고, 다혈질의 댄 로마이어는 방출되었다. 시즌 후 구대성일본 프로 야구에 진출했다.

2001년 ~ 2002년 (이광환 감독 시대)[편집]

갑작스런 구대성의 공백에 한화는 2001년 내내 마무리 투수 부재에 시달렸고, 2002년에는 장종훈이 역대 최악의 성적(타율 .248/12홈런)을 기록하며 급격한 노쇠화를 보였다. 2001년 5할이 안 되는 승률로 4위에 올랐지만 준 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에게 2연패를 당하며 탈락했다. 그 해 1차 지명으로 입단한 신인 내야수 김태균이 신인왕을 차지했다. 2002년 7위를 기록한 후 이광환 감독은 경질되었다.

2003년 ~ 2004년 (유승안 감독 시대)[편집]

유승안 감독이 부임한 이후에도 2003년 5위, 2004년 7위로 부진하였다. 2003년 시즌 후 프런트와의 마찰로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 외야수 송지만을 잃게 되었다.

2004년 유승안 시프트 사건[편집]

2004년 6월 25일 잠실 두산전에서 3:0으로 뒤지고 있던 8회. 1사 만루의 위기, 타자는 외야수 최경환이었다. 안타 하나에도 2점이 날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점수 차가 벌어지면 경기가 힘들어질 수 있겠다고 판단한 한화 이글스의 유승안 당시 감독은 무조건 내야 병살을 유도하기 위해 시프트를 지시하게 된다. 그에 따라 유승안 감독은 좌익수 이영우를 내야로 불러들이는 내야 5인 수비망을 펼친다. 땅볼만 나왔다면 병살로 처리할 수 있었겠지만 결과는 좌측으로 날아가는 2타점 적시타였다. 이영우가 제 수비 위치에 있었다면 충분히 잡을수 있는 타구였지만 좌익수가 없는 바람에 1점을 막으려다가 도리어 2점을 내주고 말았다. 이는 일명 유승안 시프트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2]

2005년 ~ 2009년 (김인식 감독 시대)[편집]

2005년[편집]

김인식 감독의 부임 첫 해로 정규 시즌 4위의 성적으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여 준 플레이오프에서 SK 와이번스와 맞붙어 3승 2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으나 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에 3전 전패를 당해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되었다.

2006년[편집]

‘괴물 투수’ 류현진의 등장은 놀라웠다. 인천 출신의 좌투수 류현진은 한화 이글스의 2차 1순위 지명으로 입단하여 18승 6패 1세이브를 기록, 프로 데뷔 첫 해인 2006년 다승·평균 자책·탈삼진 1위로 투수 트리플 크라운에 오르며 신인상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다. 그리고 문동환도 16승 9패라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고 미국에서 복귀한 구대성은 37세이브, 방어율 1.82로 한화의 뒷문을 걸어 잠궜다. 노장 투수들과 신인 투수의 완벽한 조화로 정규 시즌을 3위로 마감한 한화 이글스는 4위 팀인 KIA 타이거즈와 준 플레이오프에서 만났다.

준 플레이오프에서 정규리그 3·4위를 각각 기록한 한화 이글스와 KIA 타이거즈가 격돌하였다. 한화 이글스가 KIA 타이거즈에 2승 1패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플레이오프에서 정규 리그 2위인 현대 유니콘스에 1차전을 내주었지만, 남은 세 경기를 모두 이기면서 한화 이글스가 2006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여 삼성 라이온즈와 맞붙게 되었다. 한화 이글스는 1999년 이후 정상을 노렸지만 1승 1무 4패로 준우승하여 아쉽게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이 해를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한화와 함께한 제이 데이비스가 떠났다.

2007년[편집]

제이콥 크루즈세드릭 바워스를 영입하면서 정규 시즌 3위의 성적으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여 정규 시즌 4위 삼성 라이온즈와 맞붙었다. 2승 1패로 삼성 라이온즈에게 2006년 한국시리즈 패배를 되갚으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와 맞붙었으나 2005년에 이어 3전 전패의 성적으로 또 다시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되었다.

2008년[편집]

외야수 덕 클락과 좌투수 브래드 토머스를 영입하고 시즌 중반까지 상위권을 유지했으나, 시즌 중반을 지나 주전 선수들의 부진과 부상, 베이징 올림픽의 후유증 등으로 인하여 정규 시즌 5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대신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로 핵심 투수 류현진이 병역을 해결한 게 다행이었고, 소집 해제로 돌아온 투수 마정길이 새로운 셋업맨으로 부상하였다.

2009년[편집]

외야수 덕 클락이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하고 넥센 히어로즈와 계약하여 이적했지만, 투수 브래드 토머스와 재계약하였고 우투우타 외야수인 빅터 디아즈를 영입하여 투타 강화를 꾀했다. 그러나 디아즈의 떨어지는 수비력과 효율성 없는 타격 능력 등을 고려하여 시즌 도중 빅터 디아즈를 방출하고 투수 에릭 연지를 영입하여 남은 시즌을 소화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또한 팀 내 최고의 타자 김태균이 4월까지 타율 4할을 넘기는 등 맹활약하였으나, 4월 26일 두산 베어스의 포수 최승환과 홈 승부 도중 충돌하며 뇌진탕 증세를 보였고, 이후 페이스가 급락하며 팀의 타격을 책임지는 데 실패했다. 이 시즌에는 KIA 타이거즈에서 신종길을 상대로 한 트레이드로 영입한 외야수 강동우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전술한 여러 악재로 인하여 8위를 기록함으로써 1986년 빙그레 이글스 팀 창단 원년 이후로 최초로 최하위를 기록하는 불명예를 당하게 되고 암흑기가 찾아오게 된다. 한편 팀의 레전드 투수인 송진우정민철이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였으며, 두 선수의 배번인 21번과 23번은 영구 결번 처리되었다. 김인식 감독은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물러났다. 시즌 후 내야수 이범호김태균이 FA를 선언하고 일본 프로 야구에 진출하였다.

2010년 ~ 2011 (한대화 감독 시대)[편집]

2010년[편집]

삼성 라이온즈 수석코치 한대화가 계약이 만료된 김인식의 후임 감독으로 전격 부임했다. 리빌딩을 주 목표로 했던 2010년에는 호세 카페얀훌리오 데폴라라는 2명의 우완 투수를 용병으로 영입했으나, 팀의 주축이던 내야수 김태균지바 롯데 마린스로, 이범호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적하여 모두 해외 진출을 한다. 때문에 한대화 감독은 고향 팀에 오자마자 폭탄을 떠맡아야 했다. 시즌 전 시범 경기 중 셋업맨 마정길마일영을 상대로 넥센 히어로즈에 현금 트레이드되었지만, 마일영은 부상으로 인해 이적 후에도 부진했다. 팀의 투수진을 책임지고 있던 송진우, 정민철 등의 베테랑 투수들이 2009년 시즌 중 은퇴하는 바람에 유원상, 김혁민 등의 신인급 투수들이 팀의 선발진을 급하게 맡게 되어 에이스 류현진을 제외한 투수진이 괴멸해 버리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강동우김태완 등 팀의 주전 타자들이 부진하여 성적이 암울한 전망을 나타내었으나 경찰청에서 제대한 우타 외야수 최진행이 새로운 다이너마이트 주포로 거듭남으로써 큰 성과를 남겼다. 그 해 최진행이대호에 이어 홈런 2위를 기록하였다. 한대화 감독이 부임하자마자 두산 베어스유격수 이대수를 투수 김창훈조규수의 2:1 트레이드로 영입하여 주전 유격수로 출전시켰고 같은 팀 두산 베어스에서 방출된 내야수 정원석을 2루수로 영입했다. 넥센 히어로즈에서 2009년에 방출된 외야수 전근표도 팀에 합류했고 시즌 중 KIA 타이거즈의 1루수였던 장성호안영명-김다원-박성호와 3:3 트레이드해 이동현-김경언과 함께 한화에 데려왔다. 그러나 장성호는 스프링 캠프 불참, 훈련 부족 및 부상 등의 이유로 형편없는 성적을 남기게 되었다. 그중 이동현은 이듬해 시즌 중 방출당했고, 안영명이범호의 보상 선수로 이듬해 복귀했다. 호세 카페얀은 시즌 초반 기대를 모았으나 잦은 야수 실책과 적은 득점 지원으로 인해 승리를 기록하지 못하고 11패에 그쳐 시즌 중 방출되어 좌완 투수 프랜시슬리 부에노를 시즌 중 영입하게 된다. 팀의 주포의 부재와 류현진을 제외한 투수진의 몰락으로 투타의 불균형으로 인하여 2010년에도 2년 연속 8위를 기록하였으나 시즌 막판 안승민 등의 신진 투수들과 김강, 박노민 등의 신인 타자들의 잦은 출전 기회 획득으로 인해 다음 시즌에 대한 더 나은 전망을 내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좌투수 박정진이 방출 직전에 한대화 감독에 의해 다시 중용되어 최고의 셋업맨으로 부활하였다. 갑작스러운 팀 리빌딩을 이유로 시즌 후 몇몇 선수들을 대거 방출하여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FA를 선언한 포수 이도형과 투수 최영필과도 계약하지 않았다.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였던 강타자 이영우는 부진 끝에 결국 현역에서 은퇴했고, 마지막까지 레전드로 남았던 투수 구대성도 이 해를 끝으로 은퇴했다.

2011년[편집]

2011년 한화 이글스는 리빌딩의 핵심 주전 타자인 김태완, 송광민, 정현석 등이 병역을 이행하게 되어 전력이 더 약화되었다. 고동진, 한상훈, 오재필, 정재원, 정민혁 등이 제대 및 소집 해제로 복귀했지만, 무게감이 떨어졌다. 2010년에는 선수 관리 부재로 시즌 중 내야수 송광민의 현역 입대 영장 때문에 큰 혼선을 겪었다. 그 때 부상을 안고 있었던 송광민은 훈련소에서 귀가 조치를 받은 후 수술을 받아 시즌을 마감한 후 이듬해 재검을 받고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는 등 큰 진통을 겪었다. FA를 선언하여 일본 소프트뱅크에 이적했다가 2011년 국내 복귀를 타진하였던 내야수 이범호를 결국 놓치고 KIA 타이거즈에 빼앗기게 되면서, 3루수 딜레마와 동시에 프런트의 무능력한 구단 운영으로 이글스 팬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게 되었다.

2011년 시즌이 시작되면서 한화 이글스는 4월 승률이 3할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악의 부진을 겪어 2011년 최하위를 예상한 게 맞아 떨어 지는 듯했다. 핵심 투수 류현진은 시즌 초 연패를 당해 크게 슬럼프에 빠졌고 이후 근육통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이에 코칭 스태프의 보직 변경이 있었고, 급기야 구단 운영진의 총 사퇴까지 이루어졌다.[3] 외국인 투수 오넬리데폴라는 성적 부진으로 시즌 중 방출당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예상과 달리 5월 12일 잠실 LG전에서 벌어진 조인성전현태의 홈 플레이트 충돌 사건 이후 한화는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이며 급격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투수진에선 김혁민, 양훈 등의 젊은 선발진이 각성하였고, 전년도에 부활한 셋업맨 박정진이 뒷문을 맡아 무결점의 호투를 선보였으며, 프로 10년차의 잊혀진 언더핸드 유망주 투수 신주영이 2군에서 올라와 평균 자책점 0점대의 호투를 이어갔다. 2010년 트레이드 이후 부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장성호 역시 부상에서 복귀하여 전성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맹타를 선보이자 전체적인 타선의 집중력도 급상승, 5월 이후 팀 득점권 타율이 3할을 넘기며 어떤 팀에게도 밀리지 않는 기세를 선보였다. 결국 5월 이후의 한화는 근래에 보기 드물었던 끈기있는 면모를 보이며 몇 차례의 기적적인 역전승을 포함, 5할여의 승률을 유지하며 순위를 6위까지 끌어올렸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기대 이상의 리빌딩 솜씨를 보이고 있는 한대화 감독에게 '야왕(野王)'이라는 별명까지 따라오게 되었다. 또한 6월에는 데폴라를 보내고 2010년까지 롯데 자이언츠에서 활약하였던 외야수 카림 가르시아를 영입하여 장성호 - 최진행 - 가르시아로 이어지는 꽤 짜임새 있는 중심 타선을 구축하게 되었으며, 가르시아는 복귀 후 2번째 시리즈(대 KIA 타이거즈)전에서 2011년 6월 15일과 16일에 걸쳐 프로야구 통산 4번째 두 경기 연속 만루 홈런을 터뜨렸고, 팀은 14일 유격수 이대수의 만루 홈런을 더하여 3일 연속 만루 홈런이라는 한국 프로 야구 사상 초유의 기록을 남기며 다이너마이트의 부활을 알렸다.[4] 결정적일 때마다 패하여 하위권에서 맴돌았지만 새로 영입한 데니 바티스타카림 가르시아의 활약에 힘입어 LG 트윈스와의 공동 6위를 기록함으로써 2년 만에 탈꼴찌에 성공하여 희망을 보였다. 이대수가 그 해 골든 글러브 유격수 부문을 수상하여 다시 한 번 "연습생 신화"를 썼고, 장종훈 이후 21년 만에 빙그레 시절을 통틀어 한화에서 유격수 골든 글러브 부문을 배출하였다. 그 해 시즌 후 스토브 리그에서 FA를 선언한 셋업맨 송신영을 영입했고, 동일본 대지진과 허리 부상 등으로 일본 무대를 단념한 내야수 김태균이 전격 복귀하였다. 또한 대한민국 최초의 메이저리그 투수 박찬호는 계약금과 연봉을 전액 기부하면서 고향 팀 한화 이글스를 통해 한국 프로 야구 무대로 들어오게 되었다.


2012년[편집]

2012년 한화 이글스는 김태균송신영, 박찬호를 영입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8위에 머물렀다. 거기에 대전야구장 증축 공사 완공이 6월로 늦어지면서 청주야구장을 계속 쓰게 되었고, 이는 경기력 저하로 이어졌다.[5] 배스숀 헨은 기대 이하로 방출당했고, 많은 탈삼진에도 에이스 류현진이 9승 9패로 부진했다. 올스타전을 반환점으로 한화는 달라지는 듯했다. 류현진김혁민의 호투로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해서 전과 달라진 게임을 보여 줬고 그 후에 있던 주말 3연전에서 KIA를 상대해 선발로 올라간 바티스타장성호 등의 활약에 힘입어 KIA를 상대로 스윕했다. 한화의 상승세는 멈추지 않았고 LG 트윈스를 맞아 첫 경기에서 패했지만 그 후 위닝 시리즈를 거두었고 김태균은 타율 4할권에 진입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으며 그 해 타격왕에 올랐다. 또한 SK 와이번스를 상대해 승리하며 3연승으로 7위 LG를 바짝 추격했지만 SK 와이번스에게 위닝 시리즈를 내주고 두산 베어스를 상대해서는 3연패로 다시 후반기에 하락세로 치닫았다. 그 후로도 여러 팀을 상대하여 상당히 악화된 성적을 보여 주었다. 결국 8월 28일 한대화 감독이 경질되었다. 한용덕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았고 그 후 한화 이글스는 나아진 경기 플레이를 보여 주는 듯했지만 얇은 선수층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 다시 최하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2012.10~ (김응용 감독 시대)[편집]

시즌 후 김응룡 감독이 새로 선임되어 현장에 복귀하게 되었다. 류현진이 포스팅에 입찰하여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게 되었으며, 한용덕 감독대행은 사의를 표명한 이후 류현진이 이적한 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지도자 연수를 떠났다. 박찬호는 현역 은퇴를 선언했고, FA로 부진하였던 송신영NC 다이노스의 전력 보강 선수로 이적했다. 또한 2012년 시즌 이후에 팀의 베테랑이었던 장성호와 롯데가 선발한 신인 투수 송창현을 트레이드하였다. 시즌 후 김태완정현석이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했다.

2013년[편집]

김응용 감독 영입과 류현진을 포스팅을 통해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이적시키면서 280억 원이라는 거금을 입수함에 따라 FA 영입 등을 포함한 대대적인 리빌딩을 통한 김응용 체제가 기대되었으나, FA 영입에 완전히 실패함에 따라 초반부터 불안한 행보를 보였다. 이러한 불안함은 2013년 시즌 초부터 바로 표면에 드러났다. 시즌 개막 후 13연패를 기록하여 종전 기록(12연패, 롯데)을 경신하였으며, 3할 이상을 회복하지 못하는 승률로 인해 일찌감치 4강 경쟁에서 밀려나게 된 상황에 처했다. 2013년 8월 10일자로 팀 타율은 0.264로 리그 5위, 팀 장타율과 팀 총득점은 각각 0.347과 320점으로 리그 최하위에 위치하는 등 기존의 '거포 타선' 이미지가 사라졌으며 병살은 96개로 타 구단에 비해 월등히 높은 상황이다. 한편 팀 사사구는 434개로 두산(436개) 다음으로 많았으며, 방어율은 5.56으로 역시 리그 최하위를 달리고 있어 투타 양면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 노출되었다.

또한 김응용 감독의 파격적인 선수 운용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2013년 4월 12일부터 2013년 4월 14일 간의 LG 3연전에서 격일로 김혁민을 선발 투수로 기용하였으며, 송창식을 마무리로 활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기에 등판시키거나 세이브 상황이 아닌 상황에서도 등판시켰다. 유창식의 경우, 4월 26일부터 5월 4일까지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여섯 차례(4월 26일, 28일, 30일, 5월 1일, 3일, 4일) 등판시키는 등 일반적이지 않은 투수 운용으로 인해 팬들로부터 투수를 혹사시킨다는 지적이 있었다. 특히 유창식의 경우, 이 시기 이후에 2군으로 보낸 이후 복귀하지 않고 있어 혹사 논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유창식의 경우와 같이 선발과 계투의 경계를 허물고 전날의 선발 투수를 계투로 기용하거나 전날 계투로 등판한 투수를 다음 날에 선발로 등판하는 등의 기용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한화 선발투수 가운데 유일하게 불펜을 겸하지 않은 투수는 바티스타뿐이었지만, 바티스타마저도 무리한 등판으로 인해 구속이 떨어지는 데드 암 증상을 보이고 있어 투수 혹사로 인한 전력 악화 문제가 심해지고 있다는 견해가 있다. 결국 이브랜드와 바티스타는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했다.

시즌이 끝나자 FA 기간을 통해서 내부 3명(이대수, 한상훈, 박정진)과 계약에 성공하였고, KIA 타이거즈이용규SK 와이번스정근우를 영입하였다.그리고 2차드래프트를 통해 이동걸.이성진.최윤석 선수를 영입했다.

그러나 그 해 11월 22일에 열린 2차 드래프트에서 이여상롯데 자이언츠의 지명을 받았고, 정근우의 FA 보상선수를 지명하려던 SK 와이번스에서는 “데려갈 만한 선수가 없다”라는 입장을 밝혀 여전히 한화 이글스에서는 얇은 선수층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6]

주요 기록[편집]

연도 팀 이름 경기수 타율 승률 득점 안타 홈런 출루율 장타율 도루 순위 비고
1986 빙그레 108 0.236 31 76 1 0.290 333 815 46 0.323 0.325 79 7위 정규리그 7위 (7개팀)
1987 빙그레 108 0.274 47 57 4 0.454 410 972 48 0.342 0.368 79 6위
1988 빙그레 108 0.266 62 45 1 0.579 506 961 73 0.333 0.387 83 2위 한국시리즈 준우승
1989 빙그레 120 0.276 71 46 3 0.604 595 1121 97 0.346 0.411 122 1위 정규리그 1위
한국시리즈 준우승
1990 빙그레 120 0.270 68 50 2 0.575 610 1074 112 0.355 0.411 138 4위
1991 빙그레 126 0.274 72 49 5 0.591 644 1155 136 0.353 0.433 121 2위 한국시리즈 준우승
1992 빙그레 126 0.267 81 43 2 0.651 658 1120 146 0.351 0.430 104 1위 정규리그 1위
한국시리즈 준우승
1993 빙그레 126 0.238 61 61 4 0.500 455 982 81 0.317 0.347 96 5위
1994 한화 126 0.247 65 59 2 0.524 482 1002 68 0.324 0.345 94 3위
1995 한화 126 0.249 55 71 0 0.437 510 1037 96 0.323 0.380 97 6위
1996 한화 126 0.245 70 55 1 0.560 522 1000 90 0.327 0.372 95 4위
1997 한화 126 0.253 51 73 2 0.413 481 1032 102 0.325 0.381 98 7위
1998 한화 126 0.250 55 66 5 0.455 503 1042 123 0.316 0.392 94 7위
1999 한화 132 0.283 72 58 2 0.554 731 1268 197 0.353 0.484 128 4위 매직리그 1위
한국시리즈 우승
2000 한화 133 0.276 50 78 5 0.391 680 1270 180 0.346 0.457 78 7위
2001 한화 133 0.275 61 68 4 0.473 659 1255 148 0.357 0.426 135 4위
2002 한화 133 0.256 59 69 5 0.461 603 1148 170 0.328 0.420 94 7위
2003 한화 133 0.254 63 65 5 0.492 577 1131 121 0.343 0.393 78 5위
2004 한화 133 0.268 53 74 6 0.417 632 1213 140 0.340 0.423 82 7위
2005 한화 126 0.270 64 61 1 0.512 622 1163 159 0.341 0.434 62 4위
2006 한화 126 0.253 67 57 2 0.540 511 1057 110 0.331 0.380 65 3위 한국시리즈 준우승
2007 한화 126 0.254 67 57 2 0.540 534 1050 104 0.342 0.376 48 3위
2008 한화 126 0.254 64 62 0 0.508 592 1086 120 0.333 0.395 97 5위
2009 한화 133 0.269 46 84 3 0.346 657 1241 164 0.348 0.426 69 8위 1988년 이래 최저 승률
한화 역사상 최저 방어율 (5.70)
최다연패 (12연패)
한 시즌 두자리수 연패 2번
2010 한화 133 0.244 49 82 2 0.368 543 1053 104 0.331 0.359 121 8위
2011 한화 133 0.255 59 72 2 0.450 568 1273 93 0.338 0.362 100 6위
2012 한화 133 0.243 53 77 3 0.408 509 1077 71 0.338 0.351 107 8위
통산 27시즌 3,272 0.265 1,616 1,715 72 0.485 15,532 29,193 3,099 0.325 0.396 2,464 통산 정규리그 1위 2회
통산 포스트시즌 진출 12회
통산 한국시리즈 우승 1회

통산 기록[편집]

연도 팀명 순위 승률 포스트 시즌 수상 선수 감독
1986 빙그레 전기 7위
후기 6위
31 76 1 0.290 배성서
1987 전기 6위
후기 7위
47 57 4 0.454 이정훈 (신)
1988 전기 2위
후기 4위
62 45 1 0.579 * 플레이 오프 : 삼성 전 3-0 승
* 한국시리즈: 해태 전 2-4 패
김영덕
1989 2위 71 46 3 0.604 * 한국시리즈: 해태 전 1-4 패
1990 4위 68 50 2 0.575 * 준 플레이오프: 삼성 전 0-2 패
1991 2위 72 49 5 0.591 * 플레이 오프 : SK 전 3-1 승
* 한국시리즈: 해태 전 0-4 패
장종훈 (최)
1992 2위 81 43 2 0.651 * 한국시리즈: 롯데 전 1-4 패 장종훈 (최)
1993 5위 61 61 4 0.500 김영덕
강병철
1994 한화 3위 65 59 2 0.524 * 준플레이 오프 : 해태 전 4-2 승
* 준플레이 오프 : SK 전 4-2 승
강병철
1995 6위 55 71 0 0.437
1996 4위 70 55 1 0.560 * 준 플레이오프: 현대 전 0-2 패 구대성 (최)
1997 7위 51 73 2 0.413
1998 7위 55 66 5 0.455 강병철
이희수
1999 매직 1위 72 58 2 0.554 * 플레이 오프 : 두산 전 4-0 승
* 한국시리즈: 롯데 전 4-1 승
이희수
2000 매직 3위 50 78 5 0.391 이희수
이광환
2001 4위 61 68 4 0.473 * 준 플레이오프: 두산 전 0-2 패 김태균 (신) 이광환
2002 7위 59 69 5 0.461
2003 5위 63 65 5 0.492 유승안
2004 4위 59 70 4 0.457 유승안
김인식
2005 3위 64 61 1 0.512 * 준플레이 오프 : SK 전 4-2 승
* 플레이오프 : 두산 전 0-3 패
김인식
2006 2위 67 57 2 0.540 * 준플레이 오프 : SK 전 4-2 승
* 플레이 오프 : 현대 전 3-1 승
* 한국시리즈: 삼성 전 1-1-4 패
류현진 (최, 신)
2007 3위 67 57 2 0.540 * 준플레이 오프 : SK 전 4-2 승
* 플레이오프 : 두산 전 0-3 패
2008 5위 64 62 0 0.508
2009 8위 46 84 3 0.346
2010 8위 49 82 2 0.368 한대화
2011 6위 59 72 2 0.450
2012 8위 53 77 3 0.408
2013 9위 42 85 1 0.331 김응용
한화 이글스 28시즌 1664 1739 72 한국시리즈 우승 1회

역대 감독[편집]

대수 감독 임기 부가 설명 주요 성적
1 배성서 1986년 - 1987년 빙그레 이글스 창단 감독
2 김영덕 1988년 - 1993년 1988년, 1989년, 1991년, 1992년 준우승, 1990년 4위
3 강병철 1993년 - 1998년 한화 이글스로 팀명 변경 후 첫 감독 1994년 3위, 1996년 4위
4 이희수 1998년 - 2000년 1998년 7월 한화 이글스 3대 감독이었던 강병철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경질이 된다.
이후 팀은 이희수 코치의 감독 대행 체제로 운영이 된다.
98년 시즌이 끝나고 구단은 이희수 감독 대행을 정식 감독으로 임명한다.
1999년 우승
5 이광환 2000년 - 2002년 2001년 4위
6 유승안 2003년 - 2004년 최초의 프랜차이즈(빙그레 이글스) 선수 출신 감독
7 김인식 2004년 - 2009년 2006년, 2009년 WBC 감독 2005년 4위, 2006년 준우승, 2007년 3위
8 한대화 2009년 - 2012년 최초의 연고지(대전) 출신 감독
9 김응룡 2013년 - 역대 최고령 감독 (71세)

감독별 상세 성적[편집]

연도 구분 이름 경기수 순위 승률 비고
1986 1대 배성서 108 31 1 76 7 0.290
1987 108 47 4 57 6 0.454
1988 2대 김영덕 108 62 1 45 2 0.579
1988(플레이오프) 3 3 0 0 승리 1.00 플레이오프 승리(對 삼성)
1988(한국시리즈) 6 2 0 4 패배 0.333 한국시리즈 준우승(對 해태)
1989 120 71 3 46 2 0.604
1989(한국시리즈) 5 1 0 4 패배 0.200 한국시리즈 준우승(對 해태)
1990 120 68 2 50 4 0.575
1990(준플레이오프) 4 3 0 1 승리 0.00 준플레이오프 승리(對 삼성)
1991 126 72 5 49 2 0.591
1991(플레이오프) 4 3 0 1 승리 0.750 플레이오프 승리(對 삼성)
1991(한국시리즈) 4 0 0 4 패배 0.00 한국시리즈 준우승(對 LG)
1992 126 81 2 43 2 0.651
1992(한국시리즈) 5 1 0 4 패배 0.200 한국시리즈 준우승(對 롯데)
1993 3대 강병철 126 61 4 61 5 0.500
1994 126 53 1 72 3 0.484
1994(준플레이오프) 2 2 0 0 승리 0.666 준플레이오프 승리(對 해태)
1995 126 74 5 47 6 0.500
1995(준플레이오프) 6 4 0 2 승리 0.666 준플레이오프 승리(對 LG)
1996 126 47 6 73 6 0.448
1997 126 51 2 73 7 0.413
1998 126 55 5 66 7 0.455
1998 4대 이희수 126 61 3 62 3 0.532
1999 132 76 5 51 매직 2 0.562
1999(플레이오프) 4 4 0 0 승리 1.00 플레이오프 승리(對 두산)
1999(한국시리즈) 5 4 0 1 승리 0.800 한국시리즈 우승(對 롯데)
2000 133 50 5 78 드림 3 0.391
2001 5대 이광환 133 61 4 68 4 0.473
2002 133 59 5 69 7 0.461
2003 6대 유승안 133 63 5 65 5 0.492
2004 133 53 6 74 7 0.417
2005 7대 김인식 126 64 3 61 4 0.512
2005(준플레이오프) 6 4 0 2 승리 0.666 준플레이오프 승리(對 SK)
2005(플레이오프) 3 0 0 3 패배 0.00 플레이오프 패배(對 두산)
2006 126 67 2 57 2 0.540
2007 126 67 2 57 3 0.540
2007(준플레이오프) 3 2 0 1 승리 0.666 준플레이오프 승리(對 삼성)
2007(플레이오프) 3 0 0 3 패배 0.00 플레이오프 패배(對 두산)
2008 126 64 0 62 5 0.508
2009 133 46 2 84 8 0.346
2010 8대 한대화 133 49 2 82 8 0.368
2011 133 59 2 72 6 0.450
2012 133 53 3 77 8 0.408
2013 9대 김응용 128 42 1 85 9 0.331
통산 9대 9명 3702 1725 88 1999

역대 빙그레 이글스 주요 선수[편집]

이름 국적 포지션
송진우 대한민국 대한민국 투수
정민철 대한민국 대한민국 투수
이상군 대한민국 대한민국 투수
이상목 대한민국 대한민국 투수
한용덕 대한민국 대한민국 투수
한희민 대한민국 대한민국 투수
구대성 대한민국 대한민국 투수


이름 국적 포지션
유승안 대한민국 대한민국 포수
김상국 대한민국 대한민국 포수
양용모 대한민국 대한민국 포수


이름 국적 포지션
장종훈 대한민국 대한민국 내야수
강정길 대한민국 대한민국 내야수
강석천 대한민국 대한민국 내야수
임수민 대한민국 대한민국 내야수
백재호 대한민국 대한민국 내야수
전대영 대한민국 대한민국 내야수
지화동 대한민국 대한민국 내야수
허준 대한민국 대한민국 내야수


이름 국적 포지션
이강돈 대한민국 대한민국 외야수
이정훈 대한민국 대한민국 외야수
이영우 대한민국 대한민국 외야수
송지만 대한민국 대한민국 외야수
이중화 대한민국 대한민국 외야수
고원부 대한민국 대한민국 외야수
진상봉 대한민국 대한민국 외야수
지화선 대한민국 대한민국 외야수
김수연 대한민국 대한민국 외야수

역대 외국인 선수[편집]

한화 이글스에서 가장 많은 시즌을 뛴 외국인 선수는 제이 데이비스이다. 그는 2003년 한 해 공백이 있기는 했지만, 1999년에서 2006년까지 일곱 시즌을 뛰며 통산 타율 0.313을 기록했다.

한국 프로 야구상 수상자[편집]

한화 이글스는 한국 프로 야구 최우수 선수를 세 명 배출했다. 장종훈은 1991년과 92년 연속으로 최우수 선수가 되었다.

역대 개인 기록 수상자(투수 부문)[편집]

다승[편집]

평균자책점[편집]

  • 년도 - 선수 - 이닝 - 자책 - 평균자책점
  • 1994년 정민철 218 - 52 - 2.15
  • 1996년 구대성 139 - 29 - 1.88
  • 2000년 구대성 133 1/3 - 41 - 2.77
  • 2006년 류현진 201 2/3 - 50 - 2.23
  • 2010년 류현진 192 2/3 - 39 - 1.82

최다 탈삼진[편집]

최다 세이브 포인트(세이브, 구원승)[편집]

  • 1990년 송진우 11구원승 27세이브 38SP
  • 1992년 송진우 08구원승 17세이브 25SP
  • 1996년 구대성 16구원승 24세이브 40SP

최다 세이브(구원승 제외)[편집]

역대 개인 기록 수상자(타자 부문)[편집]

최고 타율[편집]

  • 1989년 고원부 342타수 112안타 타율 0.327
  • 1991년 이정훈 379타수 132안타 타율 0.348
  • 1992년 이정훈 369타수 133안타 타율 0.360
  • 2012년 김태균 416타수 151안타 타율 0.363

최다 홈런[편집]

최다 안타[편집]

최고 장타율[편집]

최고 출루율[편집]

최다 타점[편집]

최다 득점[편집]

역대 MVP[편집]

한국시리즈[편집]

미스터 올스타(올스타전 MVP)[편집]

역대 신인 지명[편집]

2006년 2차 1순위로 지명된 류현진.

1992년[편집]

지명 선수명 포지션 소속 비고
1차 지연규 투수 동아대 천안북일고 졸
고졸우선 정민철 투수 대전고

1993년[편집]

지명 선수명 포지션 소속 비고
1차 구대성 투수 한양대
고졸우선 노장진 투수 공주고
2차 3순위 허준 내야수
2차 5순위 이민호 내야수 대전고

드래프트 요약[편집]

연도 1차 지명 고졸우선지명 2차 지명
1992 지연규(투수) 정민철(투수)
1993 구대성(투수) 노장진(투수) 3순위 허준(내야수), 5순위 이민호(내야수)
1994 길배진(투수) 박지상(외야수)
1995 신재웅(투수) 최명진(외야수), 강인권(포수), 김승권(내야수), 김영진(내야수)
1996 홍원기 이상열(투수),
심광호(외야수)
2순위 오중석(외야수), 3순위 이영우(외야수),
4순위 송지만 (외야수) 5순위 김수연(외야수), 10순위 임수민(내야수)
1997 이성갑(투수) 지승민(투수) 백재호(내야수), 김해님(투수)
1998 김민규(투수) 조현수(내야수)
임광규(외야수)
김재현(투수)
1순위 신경현, 2순위 김장백, 5순위 채상병, 10순위 마정길
1999 박정진 (세광고 투수) 문용민(투수) 3순위 신민기, 6순위 한상훈
연도 1차 지명 (고졸우선지명 제도 폐지) 2차 지명
2000 조규수 (북일고 투수) 1순위 이범호, 4순위 고동진
2001 김태균 (북일고 야수) 1순위 김백만(전체 5위), 5순위 백승룡(전체 37위), 12순위 오승택(전체 92위)
2002 신주영 (청주기공 투수) 4순위 임재청, 6순위 최주녕, 7순위 김경선,
8순위 김태완, 10순위 송광민, 12순위 연경흠
2003 안영명 (북일고 투수) 1순위 장순천(전체 5위), 2순위 윤규진(전체 13위)
2004 김창훈 (북일고 투수) 1순위 송창식, 2순위 최진행
2005 윤근영 (대전고 투수) 1순위 양훈(전체 4위), 2순위 전현태(전체 12위),
3순위 윤현민(전체 20위), 4순위 김동영(전체 28위)
2006 유원상 (북일고 투수) 1순위 류현진(전체 2위), 3순위 정범모(전체 18위)
2007 최진호 (세광고)
(장필준이 지명받았으나 입단 거부)
1순위 김혁민
2008 박상규 (대전고 외야수) 1순위 윤기호(전체 7위), 2순위 이희근(전체 10위), 3순위 조성우,
4순위 오선진(전체 26위), 5순위 정대훈
2009 김회성(내야수) 1순위 구본범(전체 6위), 2순위 허유강(전체 11위), 3순위 장민제(전체 22위),
4순위 박성호(전체 27위), 5순위 황재규(전체 38위), 6순위 김강석(전체 43위)
연도 전면드래프트
2010 1순위 김용주(전체 4위), 2순위 김재우(전체 13위), 3순위 안승민(전체 20위), 4순위 이상훈(전체 29위), 5순위 이태양(전체 36위), 6순위 김동빈(전체 45위)
2011 1순위 유창식(전체 1위), 2순위 강경학(전체 16위), 3순위 나성용(전체 17위), 4순위 이영기(전체 32위), 5순위 김용호(전체 33위), 6순위 박병우(전체 48위), 7순위 임신호(전체 49위), 8순위 오준혁(전체 64위), 9순위 문재현(전체 65위), 10순위 박건우(전체 78위)
2012 1순위 하주석(전체 1위), 2순위 임기영(전체 18위), 3순위 최우석(전체 24위), 4순위 양성우(전체 41위), 5순위 장철희(전체 42위), 6순위 엄태용(전체 59위), 7순위 김원석(전체 60위), 8순위 김병근(전체 77위), 9순위 공민호(전체 78위), 10순위 윤승렬(전체 92위)

팀기록[편집]

  • 2008년 7월 29일 팀 통산 1400승 : 한국 프로 야구 사상 6번째[7]
  • 2011년 8월 11일 팀 통산 3000홈런 : 한국 프로 야구 사상 3번째[8]
  • 2011년 6월 14~16일 팀 통산 3경기 연속 만루홈런 : 한국 프로 야구 최초
  • 2013년 3월 30일 ~ 4월 16일 개막 후 최다 연패 (13연패) [9]

영구결번[편집]

KBO Retired Hanwha 21.svg
송진우
P
(2009년 9월 23일 지정)
KBO Retired Hanwha 23.svg
정민철
P
(2009년 9월 11일 지정)
KBO Retired Hanwha 35.svg
장종훈
SS, 1B, DH
(2005년 9월 16일 지정)
99
류현진
P
(임시 결번으로 지정)

역대 2차 드래프트 지명[편집]

2차 드래프트한국 야구 위원회에서 2년마다 11월 말에 개최되며, 타 팀에서 FA 신청선수를 제외한 40명의 보호선수에서 제외된 선수를 지명할 수 있다.

연도 1라운드 2라운드 3라운드
2012 최승환
(두산 베어스, 포수)
임익준
(삼성 라이온즈, 내야수)
이학준
(LG 트윈스, 내야수)
2014 이동걸
(삼성 라이온즈, 투수)
이성진
(LG 트윈스, 투수)
최윤석
(SK 와이번스, 내야수)

팀내 등번호 사용추이[편집]

응원[편집]

  • 타자마다 응원하는 방법이 서로 다르며, 한화 주자가 1루, 혹은 2루에 있을 때 상대 투수가 견제를 하면 팬들은 이때 흘러나오는 리듬에 맞춰서 일제히 "뭐여! 뭐여! 뭐여! 야 야 쪽팔린다야! 하며 야유를 한다. 하지만 "쪽팔린다야"가 비속어로서 응원 구호에 사용한다는 것이 논란거리가 되기도 하여 "쪽팔린다야"를 "공빠진다야"로 바꿔 사용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원래 야유로 사용되고 있다. 2011년 5월 이후 '야왕 신드롬'이 일어나며 한대화 감독의 인기가 높아지자 기존의 "빰빠바 빠밤 빰빠밤 뭐야!" 후렴구를 한대화 감독의 유행어 "예끼"로 대체하여 사용하고 있다. 2011년에는 견제 응원 구호를 수정하여 "뭐여! 뭐여! 뭐여! 야 야 쪽팔린다 야! 오~~ 예끼! 오~~ 예끼!"로 바꿨다. 한대화 감독 퇴진 이후 다사 "뭐여! 뭐여! 뭐여! 야 야 쪽팔린다 야!" 로 바뀌었다.
  • 김응용 감독이 취임하면서 2013 시즌에서는 다시 "뭐여! 뭐여! 뭐여! 야 야 쪽팔린다야!"로 바뀌었다.
  • 주자가 도루할 때, '빰밤바 바밤 빠바밤~ 뛰어!!!!!!!!'하며 상대편 투수를 긴장시킨다.
  • 수비시 상대팀에서 파울을 쳤을때도 빨리 돌아오라는 의미로 도루와 동일하게 '빰밤바 바밤 빠바밤~ 뛰어!!!!!!!!'를 외친다.
  • 8회 공격때, 응원 도구들을 내려놓고 일어서서 앰프소리 없이 열중쉬엇 자세에서 육성으로만 허리를 뒤로 제끼면서 최!강!한!화! 하며 야구장의 한화팬 관중들이 육성응원을 한다.(잠실에서 LG 트윈스와의 경기가 있는날에는 LG관중석에서 이어 무!적!L!G!로 맞대응을 한다.)
  • 2번타자 등장시 별도의 응원곡(은지원-160)이 있다. 음악이 나오면 잠시 앉았다가 일어나면서 "두 번째입니다"를 외친다.
  • 볼카운트가 3B2S일때 "삐삑~" "어~~"하면서 길게 끌다가 점점 짧게 진행한다. 이 응원이 있는 팀은 한화와 SK 두 팀 뿐이다.
  • 점수를 따내거나 역전에 성공하거나 경기가 끝나가면 윤항기의 "나는 행복합니다"의 일부분을 개사하여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이글스라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한화라 행복합니다.."를 부른다.

공식 응원가[편집]

타자 응원가[편집]

빙그레 시절부터 홈구장에서 타자들의 등장음악은 '장 미셸 자르 - (1986) Fourth Rendez Vous'가 사용되었다.

안타 등을 쳐서 공격 성공시에는 '일 트로바토레 - 2막: 대장간의 합창 Chi del gita (집시들)'이 흘러나왔다.

2000년대 이후 타자별로 개성있는 응원가를 사용하게 되었다.


김~ 태~ 완~~ 난~ 한화의 김태완~ 이글스의 거친 남자니까 날려라 날려 워어어~(X2)
등장곡 : 원더걸스의 'Tell Me'
오! 오! 오선진 날려 버려 날려 버려 날려 버려 안! 타! (X2)
등장곡 : 길의 '엄마를 닮았네' (개사)
나는 나는 이글스의 귀염둥이 오선진x2 날려버려 날려버려 오~ 선진~x2 이글스의 승리위해 오선진 날려라x2 시작해볼까?
  • 김태균 - (1) 패티김의 '서울의 모정'
김태균 홈런 날려버려라~ 김태균 홈런 날려버려라~ 김태균 홈런 날려버려라~ 날려라~ 날려라~ 날려라~ (X2)

-(2) Rick Astley의 'Together Forever'

한화의 홈런타자 김태균 워어어~ 워우워어~ (X4)
등장곡 : Rick Astley의 'Together Forever'
한화 추승우 안타 오오오 한화 추승우 안타 오오오오오오 (X2)
  • 이대수 - 임병수의 '아이스크림 사랑'
한화 이대수 워어어어어어어 (X3) 한화 이대수 안타를 날려줘요
등장곡 : 부활의 '비와 당신의 이야기'
이글스 파워히터! 한화의 최진행! 워워워 워~ 한화 최진행 (X3)

-(2) 김지혜의 '선물'

한화 최진행 한화 최진행 오 오오오 홈런 진행 중 (X4)
등장곡 : Bruno Mars의 'Marry You'
이글스의 정현석 이글스의 정현석 이글스의 정현석 우워어어어어~ 날려라 (X2)

-(2) michael davidai se eu te pego

안타! 안타! 이글스 정현석 안타치고 홈런치고 안타치고 홈런치고 (X2)정현석! 정현석!
안타 날려라 한화의 김경언~ 날려라 한화의 김경언 오오오오오~ 이글스의 구레나룻 김경언! (X2)
  • 정범모 - 이문세의 '깊은 밤을 날아서'
이글스 절세미남 한화 정범모~ 정범모 워어어~ (X2)
야이 야이 야이 야이 윤섭! 야이 야이 야이 야이 윤섭! 한화 한윤섭 오 오오 안타! (X2)
이! 희! 근! 차세대 안방마님 이! 희! 근! 오오오오오오오~ (X4)
전현태 이글스의 전현태 이글스의 전현태 안타 날려라 저 하늘로 지금 (X3) 전현태
  • 고동진 - 애니메이션 '메칸더 V' 주제곡
고동진 고동진 고동진 안타! 날려버려 날려버려 고!동!진! (X4)
등장곡 : 황규영의 '나는 문제없어' (개사)
최강 한화의 고동진 워어 안타 고동진 한화승리위해 저하늘로 날려버려~ 최강 한화의 고동진 워어 안타 고동진 최강한화 승리위해 나는 문제없어~
(1)한화의 명품수비 한상훈 날려 버려 한상훈 한화의 명품수비 한상훈 라라라라라라라라 (X2)
(2)한~상훈~ 한화한상훈~ 승리를 위해~ 날려버려라~
으랏차차 이양기 날려 버려 오오오 날려 버려 이양기!(X2)
한화 이양기 으랏차차 (X2)
등장곡 : MBC드라마 전원일기 테마음악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요 오! 한화 임익준 날려주세요 우리를 위해 한화를 위해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요 오! 한화 임익준 날려줘요 승리가 우리에게로 한화에게로
하하하하 하주석 한화의 하주석 하하하하 하주석 승리의 하주석 (X2)
  • 조정원 - DJ Peter Project의 'Doo be Doo'
조정원 날쌘돌이 조정원 재간둥이 조정원 큐티보이 이글스의 조정원 (X2)[10]
  • 한승택 -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
이글스의 철벽수비 오오오 한승택~ 한화의 한승택 날려버려라~ 이글스의 철벽수비 오오오 한승택~ 한화 한승택~ 승리를 안겨준 그대
이학준 날려버려라~ (안!타!) 이학준 날려버려라~~(안!타!) 이글스의 이학준~ 한화의 이학준~ 승리위해 날려버려~ 이학준 날려버려라~ (안!타!)
한~화~ 이준수~ 한화이글스~ 이준수~ 한~화~ 이준수~ 이글스의 안방마님~

지역 사회 공헌[편집]

한화는 대전·충청지역 야구발전 및 유소년 야구 활성화와 취약 계층 어린이들의 건전한 방과 후 활동 지원을 위해 충청남도 서산시대전광역시 유성구와 연계하여 2013년 유소년 야구단 한화 이글렛 베이스볼 클럽(HANWHA EAGLETS BASEBALLCLUB)을 창단하였다. 창단식에는 서산시장, 유성구청장과 지역 스타인 박찬호 선수가 참석하였다. 유성구와 서산시는 유소년 야구팀의 교통 편의 시설 등을 지원하며, 한화이글스는 기술 지도를 비롯한 야구용품 일체를 지원한다. 한화는 향후 대전·충청지역 지자체와의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유소년 야구단을 추가적으로 창단 운영할 계획이다.[11]

주석[편집]

  1. 임시 결번임.
  2. 2군에서 부활한 ‘유승안 감독 시프트’ - OSEN
  3. 사·단장 교체…한화 ‘통큰 지갑’ 열까 - 동아일보
  4. 한화, 3G 연속 만루홈런 알고 보니 '최초 기록'
  5. 한화, 2년 만에 꼴찌 추락…최근 4년간 3번째 최하위 - OSEN
  6. 정근우 보상선수에서 드러난 한화의 불안한 미래 - 스포츠조선
  7. '6회 6득점 폭발' 한화, 사상 6번째 1400승 고지 점령 Osen, 2008년 7월 29일
  8. '독수리 군간' 3000홈런 고지 정복 대전일보, 2011년 8월 13일
  9. [1] SBS, 2013년 4월 14일
  10. 두산베어스 윤석민이 예전에 쓰던 응원가이다.
  11. 한화, 대전·서산에 유소년 야구단 창단 스포츠경향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