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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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Lotte Giants
Lotte Giants insignia.svg
이니셜 로고
회사명 주식회사 롯데자이언츠
설립 연도 1975년
마스코트 누리, 아라, 피니
소속 리그
한국야구위원회
한국프로야구
홈 구장
1군 : 사직야구장(1986년 ~ 현재)
제2홈구장 : 울산문수야구장(2014년 ~ 현재)
2군 : 상동야구장
수용 인원 28,500명 (사직)
12,000명 (울산)
이전 홈구장 구덕야구장
(1982년 ~ 1985년)
연고지 부산광역시
영구 결번
11 최동원
역대 타이틀
한국 시리즈 우승(2회)
19841992
성적(타이틀 이외)
아시아 시리즈 출장(1회)
(굵은 글씨는 우승, 이탤릭은 준우승)
2012
한국 시리즈 출장(4회)(굵은 글씨는 승리한 해)
19841992・1995・1999
플레이오프(5회)(굵은 글씨는 승리한 해)
199219951999・2011・2012
준플레이오프(7회)(굵은 글씨는 승리한 해)
1991・1992・2000・2008・2009・2010・2012
구단 조직
구단주 신격호
신동인(대행)
운영모체 롯데그룹
감독 김시진
단장 배재후
유니폼
홈경기
원정경기
롯데 자이언츠 2013 시즌
롯데 자이언츠 구단 버스(현대 유니버스).

롯데 자이언츠(Lotte Giants)는 대한민국 부산광역시를 연고지로 하는 한국야구위원회 소속 프로 야구단이다. 사직야구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1975년에 실업 야구단으로 창단되었고 1982년에 프로 야구단으로 전환했다. 부산광역시의 상징 새가 갈매기이고 구단의 대표적 응원가도 〈부산갈매기〉라서 “부산 갈매기”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역사[편집]

프로화 이전[편집]

롯데 자이언츠 야구단은 1975년 5월 6일 서울에서 창단되어 실업야구연맹에 10번째로 가입한 구단이었다. 미래의 프로야구단을 지향하여 롯데 자이언츠라는 구단명을 사용하였다. 창단 감독은 김동엽이었다.

  • 1976년 춘계리그 성적 5승 1무 3패로 육군팀과 공동 3위, 하계리그 성적 7승 1무 1패로 우승, 추계리그 성적 5승 2무 2패로 우승
  • 1977년 부산시장기 준우승, 백호기 전국선수권 준우승
  • 1978년 후기리그 우승, 코리언 시리즈 준우승 (78년 부터 코리언 시리즈 제도가 생김)
  • 1979년 코리언 시리즈 우승, 1차리그 준우승, 5차리그 준우승, 서라벌기 준우승[1]
  • 1981년 코리언 시리즈 우승, 전기리그 우승

프로화 이후[편집]

프로 구단 출범 과정[편집]

실업 야구단이던 롯데 자이언츠는 1982년 2월 22일 부산을 연고지로 하는 프로 야구단으로 전환했다. 초대 감독은 박영길이었다. 구단주는 애초 서울특별시를 연고지로 창단하고자 했으나 마지못해 부산직할시를 선택했다.[2] 이는 해태를 제외한 전 구단이 서울 연고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MBC는 프로야구 계획 단계에서 이미 서울 연고를 확고히 하고 있었고, 롯데의 대안으로 부산-경남 연고구단이 유력시되던 럭키금성그룹은 처음부터 야구단 창단을 거부했다. 럭키금성은 이후 MBC를 인수하여 참가하게 되며, 이는 지금의 LG 트윈스이다.

1982년 시즌[편집]

프로야구 첫 경기는 1982년 3월 28일 구덕야구장에서 열린 해태 타이거즈와의 경기로 14-2로 승리했다. 그러나 당해 시즌 승률 .388을 기록하며 6개 팀 중 5위의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프로 원년 롯데 자이언츠의 부진은 최동원, 유두열, 심재원 국가대표 주전 3명이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 참가로 롯데 입단을 1년 미루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당시, 모처럼 한국이 유치한 1982년의 제27회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를 맞아 대표팀 전력 강화를 위한 대한야구협회의 요청으로, 7명의 선수가 프로 전향을 유보하고 실업팀 등에 남았고, 그중 3명이 롯데 소속이었으며 3명 모두 주전이었다. 또한 국가대표 4번 타자였던 김용희가 부상으로 팀을 이탈하였다.

참고로 당시 국가대표 차출을 이유로 프로입단을 연기한 선수는 심재원, 유두열, 최동원, 김재박, 이해창, 임호균 등 6명이었다. 최동원은 당시 소속팀이던 실업팀 롯데 자이언츠가 프로로 전향하자 다른 실업팀인 '한국전력공사'로 이적까지 했다.

1983년 시즌[편집]

최동원, 심재원, 유두열 등 국가대표 선수들이 합류했으나 6개 팀 중 6위로 첫 최하위를 기록하였다.

V1(1984년 시즌)[편집]

1984년은 롯데 자이언츠가 첫 우승을 한 시즌으로 이해 전기리그에서는 6개 팀 중 4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후기리그에서 8월 11일부터 시작된 홈 5연전을 모두 승리하며 1위로 올라섰다. 이때, 최동원이 4게임에 나와 2승 2세이브를 올리는 활약을 했다. 후기리그 우승을 차지한 롯데는 전기리그 우승 팀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는 최동원의 역투(7전 4선승제 중 5경기 등판 4승1패)와 유두열의 역전 3점 홈런으로 시리즈 전적 4승 3패로 우승했다. 최동원은 이해 정규리그 MVP와 27승으로 다승왕를 차지했으며 탈삼진 223개로 역대 탈삼진 1위라는 기록도 세웠다.

1985년 ~ 1991년 시즌[편집]

1985년 0.536의 승률로 전체 2위의 성적을 내지만 삼성의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한국시리즈에는 진출하지 못하였다. (전기/후기 리그는 1988년까지 지속되었다.) 86년에는 5위를 기록하였으며 87년 3위, 88년 3위, 89년에는 7위, 90년에는 6위를 차지하였다. 91년에는 4위를 차지하였는데, 이해에 롯데는 1,001,920명의 관중을 동원, 국내 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로 홈경기 100만 관중을 돌파하였다.[3] 롯데는 1984년부터 1989년까지 6년 연속 프로야구 관중 동원 1위를 기록하였다.[3]

V2(1992년 시즌)[편집]

1992년에 정규시즌을 3위로 마친 롯데 자이언츠는 준 플레이오프 2차전(對 삼성, 4-0), 플레이오프 5차전(對 해태, 10-4), 한국시리즈 5차전(對 빙그레, 4-2)을 연속으로 승리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남두오성이라고 불리는 5명의 3할 타자(김민호, 김응국, 이종운, 박정태, 전준호)를 배출했고, 윤학길염종석이 각각 17승을 따내었다. 고졸 신인으로 17승을 따내고 평균자책점 1위를 차지한 염종석은 신인왕과 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롯데 자이언츠는 홈경기 누적 관중 1,209,632명, 평균 관중 19,201명을 기록하여 2년 연속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하였다.[3]

1993년 ~ 1998년 시즌[편집]

93~94년은 6위를 기록하였다. 95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였으나 OB 베어스에 3:4로 패하였다. 95년 1,180,576명의 홈경기 관중을 기록하여 3회에 걸쳐 100만 관중 달성을 기록하였다.[3] 96년은 5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고 97년과 98년에 최하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1999년 시즌[편집]

1999년 리그 2위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여,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에서 1승 3패에 몰렸으나, 5, 6, 7차전을 모두 6-5 한 점 차로 승리하였다. 특히 한국시리즈 진출을 결정지은 7차전은 프로 야구 사상 최고의 명승부 가운데 하나로 회자된다. 한국시리즈에서는 한화 이글스에 밀려 준우승에 그쳤다.

마해영이 .372로 역대 타격 5위의 기록을 세우며 타격왕에 올랐고, 박정태는 31게임 연속 안타의 기록을 수립했다. 스위치 히터 펠릭스 호세가 좌우타석 홈런, 연속게임 만루홈런과 1만번째 홈런의 주인공이 되는 진기록도 보여 주었다. 1999년 롯데는 팀평균자책점팀타율 모두 1위를 기록하였으며 특히 팀 타율 .291는 역대 2위에 해당하는 진기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승하지 못하였다.(역대 7번 중 1999년 롯데를 제외하고 모두 우승) [4]

2000년 시즌[편집]

2000년에는 양대 리그제가 시행되었던 때로 롯데 자이언츠는 매직리그 2위, 삼성 라이온즈는 드림리그 3위를 기록하였으나 삼성의 승률이 더 높아 양 팀 간 3전 2선승제의 준 플레이오프 경기를 치렀다. 1차전 당시 마산에서 최초로 포스트 시즌 홈 경기를 가졌다. 0-2, 4-2, 1-5로 1승 2패를 기록,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였고 최종 순위에는 5위로 기록되었다.

이후 롯데 자이언츠는 2007년까지 포스트 시즌에 오르지 못했다. 한편 2000년 4월 18일 잠실 LG전 도중 포수 임수혁이 2루로 가다가 갑자기 쓰러지며 식물인간 판정을 받아 롯데 구단과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임수혁은 이후 10년간의 투병 끝에 2010년 2월 7일에 세상을 떠났다.

2001년 ~ 2007년 시즌, 롯데의 암흑기[편집]

2001년 7월 24일 김명성 감독이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후임인 백인천 감독이 부임하면서 롯데 자이언츠의 대표적인 ‘암흑기’가 오게 된다. 특히 대표적인 1번 타자 감이었던 김주찬에게 거포형으로 바꾸기 위해 홈런 스윙을 가르치고 이대호를 전근대적인 훈련법으로 무릎 부상을 입게 했으며 손민한을 트레이드 하려 하는등 1년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그가 행한 수많은 만행들이 7년간의 롯데 자이언츠 성적이 부진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1년부터 2007년 까지 롯데 자이언츠는 년도 순으로 8 - 8 - 8 - 8 - 5 - 7 - 7위를 기록하여 7년간이나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해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5] 이 기간 중 롯데 자이언츠가 기록한 2001년부터 2004년까지의 4년 연속 최하위는 한국 프로 야구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6]

이 기간 중 펠릭스 호세 선수는 역대 출루율 1위, 2000년대 조정OPS 1위의 기록을 세웠다.[5] 2005년에는 시즌 초반 5연승과 함께 1위로 출발하였으나 여름 이후부터 처지기 시작하여 결국 5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한편 에이스 손민한은 18승에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하여 리그MVP를 수상하였다. 2006년 시즌 이대호는 1984년 이후 처음으로 타자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였다.

2008년 시즌[편집]

미국 메이저 리그 출신의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한 2008년 롯데 자이언츠는 정규 시즌 3위를 기록하였다. 9월 2일에는 팀 역사상 최다 연승 기록인 11연승을 기록하였다. (기간 : 2008년 7월 27일 사직 한화전 ~ 2008년 9월 2일 사직 LG전) 이 여세를 몰아 2008년 9월 16일에는 2000년 이후 8년만에 준 플레이오프행을 확정지었다.[7]

이를 보답이라도 하듯 부산과 마산 홈 경기에는 무려 22차례나 입장권이 매진되었고, 전국의 야구장마다 롯데 팬들이 모여들며 응원을 펼쳤다. 그리고 그해 9월 홈 마지막 경기인 KIA전을 앞두고 식전 행사에서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4강에 가면 "부산 갈매기"를 부르겠다는 약속에 따라 허남식 부산광역시장과 함께 부산갈매기를 부르며 성원에 보답하였다. 아울러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이날 명예 부산 시민증을 받았다. 그러나 팀은 포스트 시즌 경험이 부족한 탓에, 준 플레이오프 상대인 삼성 라이온즈에게 스윕당하면서 플레이오프행이 좌절되었다.

2009년 시즌[편집]

6월 초까지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던 롯데 자이언츠는 극적인 상승세를 타면서 4위로 시즌을 마무리하게 된다. 그 후 5전 3선승제의 준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첫 승을 거두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듯 하였으나 이후 3연패하여 실패하고, 최종 순위 4위로 기록되었다. 특히 주전선수들과 초반 선발투수들의 잇단 부상들이 6월초까지의 최하위의 원인이었다.

2010년 시즌[편집]

타격에서 다른 팀을 압도할 정도로 우세하여 롯데 타자를 만나면 몇 명 타자 제외하고 투수가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할 정도로 타격에서는 준수했다. 프로야구 최초로 이대호 선수는 도루를 제외한 타격 모든 부분1위를 달성하고(타격, 득점, 최다안타, 홈런, 타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9경기 연속홈런 세계신기록(8월 4일 ~ 8월 14일)달성하였다. 불펜 투수진이 불안정함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타선 덕분에 4위로 준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였다.

그 후 5전 3선승제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 준플레이오프 2차전을두산을 상대로 2승을 거두어 플레이오프 진출을 하는 듯 하였으나 믿었던 타선 김주찬, 손아섭, 조성환, 이대호, 홍성흔, 가르시아, 강민호, 전준우, 황재균, 문규현 (이)가 타석에서 침묵을 지키며 3연패 역스윕을 당하여 또다시 2008, 2009년 시즌과 같이 플레이오프 진출을 하지 못하고 말았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많은 팬들의 재계약 지지 운동에도 불구하고 재계약하지 못하였고, 후임 감독으로 고려대학교 감독이던 양승호 감독이 선임되었다.

2011년 시즌[편집]

롯데를 3년 연속 포스트 시즌으로 이끌었던 제리 로이스터를 이어 롯데를 맡은 양승호 감독은 시즌 전반기에 여러가지 변화를 주었다. 그는 지명타자 자리를 적절하게 이용하기 위해 홍성흔을 좌익수로, 불펜진 강화를 위해 고원준을 마무리 투수로 기용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좋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손아섭, 김주찬 등의 부상과 용병 투수 브라이언 코리의 퇴출 등으로 팀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시즌 후반기에 부상 선수들이 돌아오고 홍성흔도 제자리를 찾으면서 팀 타격이 살아나 시즌 팀 타율 1위를 차지했다.고원준도 불펜 혹사 논란 끝에 선발 투수로 복귀했다. 특히 전반기에 부진했던 불펜진이 살아났는데, 그중에서 임경완, 강영식, 김사율이 경기 후반부를 잘 마무리했고 김사율은 모처럼 20세이브를 기록했다. 또한 조원우 외야 수비코치의 지도로 김주찬, 손아섭의 외야 수비가 많이 향상되어 수비가 안정화된 것도 후반기 상승세의 한 요인이었다.

롯데는 창단 후 처음으로 정규 리그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SK 와이번스에게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패하며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여 KBO 대회 요강 3조 1항(한국시리즈 우승 구단이 제1위, 준우승 구단이 제2위, 그 이하는 페넌트레이스 승률 순으로 한다)에 따라 최종 순위는 3위가 되었다.

2012년 시즌[편집]

2011년 시즌 종료 후, 롯데는 4명의 주축 선수가 팀을 떠났다. 자유 계약 신분을 획득한 간판 1루수 이대호와 사이드암 투수 임경완이 롯데를 떠났다. 이대호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일본 프로 야구오릭스 버펄로스로 이적하여 그 해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임경완은 FA 협상이 결렬된 뒤 SK 와이번스로 이적했다. 또한 좌완 에이스 장원준과 백업 포수 장성우경찰청에 입대하며 전력에서 이탈했다.

SK 와이번스에서 좌완 투수 이승호와 메이저 리그 진출을 준비하다 메디컬 테스트 문제로 돌아온 우완 언더핸드 투수 정대현을 영입해 임경완이 떠난 대신 투수진을 크게 보강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승호는 잔부상과 겨울훈련 부족으로 인한 구위 부진으로 제 몫을 하지 못했고, 시즌 후 보호선수 제외 및 NC 다이노스의 전력보강 선수로 지명되어 팀을 떠났다. 정대현은 왼쪽 무릎 부상으로 인해 8월에서야 복귀하였다.

'미완의 대기'로 불렸던 강속구 중간계투 투수 최대성이 공익근무 소집 해제로 복귀했으며,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두산 베어스에서 사이드암 투수 김성배가 새로 영입됐다.

외국인 용병으로는 라이언 사도스키2010년부터 3시즌 연속 롯데 유니폼을 입었고, 장원준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좌완 투수 셰인 유먼을 영입했다. 유먼은 전 롯데 선수였던 브라이언 코리2011년 대만 프로 야구 라미고 몽키스에서 뛴 경험이 있으며, 코리로부터 롯데와 관련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유먼은 롯데 선발진의 한 축을 맡으며 장원준의 공백을 어느 정도 메우는데 성공하여 시즌 후 재계약에 성공했다.

시즌 초반 롯데는 셰인 유먼, 이용훈, 김성배, 이명우, 최대성 등 탄탄한 투수진과 짜임새 있는 타선을 앞세워 선두권을 질주했고, 특히 60경기 이상 치른 시점이던 6월에도 단독 선두에 올랐다. 60경기 이상 치른 시점에서 롯데가 중간 순위 1위에 오른 것은 창단 30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롯데는 6월 17일 주전 포수 강민호의 체력 안배를 위해 두산에 신인급 우완 투수 김명성을 내주고 용덕한을 영입했다. 용덕한은 롯데 입단 직후 1군에 즉시 투입되며 강민호와 번갈아 경기에 출장했다.

그러나 롯데는 시즌 내내 잔부상과 부진 때문에 시름을 앓았다. 4번 타자 홍성흔이 각종 잔부상으로 경기를 자주 걸렀고, 주전 유격수 문규현과 톱타자 김주찬도 잔부상에 자주 시달려 박준서, 정훈, 황성용, 이승화 등이 번갈아 가며 라인업을 채웠다. 또한 강민호, 전준우, 황재균 등 핵심 타자들의 활약이 2011년보다 부진해지면서 공격력이 약해졌다.

결국 페넌트레이스를 4위로 마감해 2010년 이후 2년 만에 준 플레이오프부터 포스트시즌을 시작했다. 페넌트레이스 개인 타이틀에서는 손아섭이 158개의 안타를 쳐내 최다 안타 타이틀을 획득했고, 마무리 보직을 맡은 주장 김사율은 34세이브를 기록해 롯데 자이언츠 투수 중 역대 최다 세이브 기록을 경신했다. (종전 기록은 1994년 박동희의 31세이브)

두산 베어스와의 준 플레이오프에서는 박준서, 용덕한, 문규현 등 그간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선수들이 맹활약하고, 부상에서 회복한 언더핸드 투수 정대현이 호투하면서 3승 1패로 시리즈를 통과한다. 롯데 자이언츠가 준 플레이오프를 통과한 것은 1992년 이후 20년 만이며, 상위 시리즈로 진출한 것은 1999년 이후 13년 만이다.

그러나 SK 와이번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2승 3패로 밀려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시즌 후 양승호 감독이 물러나고 권두조 수석코치가 대행을 맡아 아시아 시리즈를 치른 후 김시진 감독이 새로 취임하였다.

2012년 아시아 시리즈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려, 개최지 연고 팀 자격으로 아시아 시리즈에 출전하였으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밀려 우승에는 실패했다.

2013년 시즌[편집]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였던 우완 투수 조정훈유격수 박기혁이 공익근무 소집이 해제되어 복귀하였다. FA 협상 결렬로 김주찬홍성흔이 떠나게 되자 2013년 드래프트에서 지명하였던 투수 송창현한화 이글스장성호를 상대로 트레이드하여 보내고 장성호를 영입했다. 그리고 김주찬과 홍성흔의 보상 선수로 홍성민과 김승회를 지명하여 투수진을 보강했다. 시즌 시작과동시에 5연승을 하였으나 주축타자(홍성흔,김주찬)등의 이탈로 내리 7연패하며 저질야구 라는 오명까지 쓰게되며 극심한 타격동반부진이 있었으나 5월달 주축선수(조성환,박기혁,장성호)등이 부상으로 빠졌으나 2군에서 정훈 신본기 김대우 등의 경험없는 선수들이 활약하며 상승세를 타 4위에 안착하여 순조롭게 진행되나 했으나 무리한 투수기용과 과부화로 인하여 올스타 브레이크전 5위로 추락하여 그이후 5위로 마감하였으나 2012시즌 중반부터 문제되었던 전준우 황재균 손아섭 등의 타자들의 메커니즘이 정상궤도로 안착되었고 팀도 덩달아 상승세를 타며 다음시즌에 희망을 보여주었다.

통산 기록[편집]

연도 팀명 순위 승률 포스트 시즌 수상 선수 감독
1982 롯데 전기 5위
후기 5위
31 49 0 0.388 박영길
1983 전기 4위
후기 6위
43 56 1 0.434 박영길
강병철
1984 전기 4위
후기 1위
50 48 2 0.510 * 한국시리즈 : 삼성 전 4-3 승 최동원 (최) 강병철
1985 전기 4위
후기 2위
59 51 0 0.536
1986 전기 3위
후기 5위
50 52 6 0.490
1987 전기 4위
후기 3위
54 49 5 0.523 성기영
어우홍
1988 전기 4위
후기 3위
57 49 2 0.537 어우홍
1989 7위 48 67 5 0.421 어우홍
김진영
1990 6위 44 71 4 0.388 김진영
도위창 (감독 대행)
강병철
1991 4위 61 62 3 0.496 준플레이오프 : 삼성 전 1-1-2 패 강병철
1992 1위 71 55 1 0.563 준플레이오프 : 삼성 전 2-0 승
* 플레이오프 : 해태 전 3-2 승
* 한국시리즈 : 빙그레 전 4-1 승
염종석 (신)
1993 6위 62 63 1 0.496 강병철
김용희
1994 6위 56 67 3 0.456 김용희
1995 2위 68 53 5 0.560 * 플레이오프 : LG 전 4-2 승
* 한국시리즈 : OB 전 3-4 패
1996 5위 57 63 6 0.476
1997 8위 48 77 1 0.385
1998 8위 50 72 4 0.410 김용희
김명성
1999 드림 1위 75 52 5 0.591 * 플레이오프 : 삼성 전 4-3 승
* 한국시리즈 : 한화 전 1-4 패
김명성
2000 매직 2위 65 64 4 0.504 * 준플레이오프 : 삼성 전 1-2 패
2001 8위 59 70 4 0.469 김명성
우용득
2002 8위 35 97 1 0.265 우용득
김용희 (감독 대행)
백인천
2003 8위 39 91 3 0.300 백인천
김용철 (감독 대행)
양상문
2004 8위 50 72 11 0.410 양상문
2005 5위 58 67 1 0.464 손민한 (최)
2006 7위 50 73 3 0.407 강병철
2007 7위 55 68 3 0.447
2008 3위 69 57 0 0.548 * 준플레이오프 : 삼성 전 0-3 패 로이스터
2009 4위 66 67 0 0.496 * 준플레이오프 : 두산 전 1-3 패
2010 4위 69 61 3 0.519 * 준플레이오프 : 두산 전 2-3 패 이대호 (최)
2011 3위 72 56 5 0.563 * 플레이오프 : SK 전 2-3 패 양승호
2012 4위 65 62 6 0.512 * 준플레이오프 : 두산 전 3-1 승
* 플레이오프 : SK 전 2-3 패
양승호
권두조 (감독 대행)
김시진
2013 5위 65 62 6 0.512 김시진
롯데 자이언츠 32시즌 1801 2023 104 한국시리즈 우승 2회

관중 동원과 인기도[편집]

파일:IMG 5697.jpg
비닐봉지를 쓰고 응원하는 롯데 자이언츠 팬들

롯데는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 최고의 인기 구단이다.[8] 롯데는 1991년 8개 구단 중 최초로 100만 관중(1,001,920명)을 돌파했다. 그 후에도 92년(1,209,632명), 95년(1,180,576명), 2008년(1,379,735명), 2009년(1,380,018명) 등의 100만 관중 돌파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100만 관중 돌파 횟수 1위에 해당한다. 특히 2009년에는 역대 최다 관중(1,380,018명)을 기록하며 롯데가 최고 인기 구단임을 증명하였다. 1991년 기록 역시 당시에는 한 시즌 최다 관중 동원 기록이었다.[9]

또한 롯데는 2011년 8월 20일 SK와의 홈경기에서 2만4547명의 관중을 기록해 역대 누적 관중 2000만 1394명으로 2000만 관중을 넘어섰다.[10] 이는 1982년 프로야구 원년부터 팀을 유지한 단일 팀으로는 롯데가 최초이다. 참고로 원년부터의 단일 팀이 아닌 경우까지를 포함하면, LG 트윈스가 그 전신인 MBC 청룡시절까지 포함해서 지난해 합산 관중 2천만 명을 최초로 돌파했다.[10] 2011 시즌에는 총 67차례의 홈경기에서 총 135만 8322명의 관중(경기당 평균 2만 273명)[11]을 기록하며,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4년연속 (2008~2011년) 100만 관중을 돌파했다.[10] 이 기록은 현재 진행 중이다.

2011년 한국 갤럽이 조사한 설문조사에서도 롯데 자이언츠는 최고 인기 구단 1위로 선정되었다.[8] TV 방송 시청률을 기준으로 해도 롯데 자이언츠는 높은 인기도를 보이고 있다.[12] 시청률 조사 기관인 TNmSAGB닐슨 미디어 리서치 코리아에서 각각 집계한 2008시즌 시청률을 보면 프로야구 시청률 1~10위가 모두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였다.[13] 2007시즌에도 시청률 1~10위가 모두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였다.

그러나 롯데는 성적이 최하위였던 시절에 관중들이 롯데의 무기력한 경기에 실망하여 무관중 운동을 전개한 결과, 2002년 10월 19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불과 69명의 관중만 관람하는 경기를 하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이 관중 수는 역대 최소 관중 수 2위(1위는 1999년 10월 7일 전주 야구장, 쌍방울-현대의 54명)에 해당하는 불명예 기록으로 남아있다.[14]

롯데 구단은 2010년 기준으로 리그에서 구단 가치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15] 재벌닷컴(chaebul.com) 조사 결과 프로야구단 중 롯데자이언츠의 구단가치가 3,509억원으로 평가돼 1위를 차지하였다.[15]

또한 지역 방송인 KNN 라디오를 통해 롯데의 정규리그 전 경기와 포스트시즌 전 경기를 생중계하고 있다(캐스터 현승훈, 해설 이성득).

응원[편집]

응원 문화[편집]

비닐 봉지 응원을 하는 관중들

공식적 응원문화가 없었던 1980년대 당시 배우 유퉁이 무명시절 야구경기를 관람하러 사직구장에 갔다가 음주와 싸움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롯데 자이언츠의 사설 응원단장으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이후 이 사설 응원단장 문화는 한국 프로야구의 구단 전속 응원단장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16] 관중들이 자발적으로 개발한 응원 도구인 신문지를 가늘게 찢어 꽃술처럼 만들어 이를 흔들면서 부산갈매기돌아와요 부산항에 등을 부르며 응원한다. 경기 후반에 접어들면 야구장에 들어 올때 쓰레기 수거용으로 구단에서 나눠준 주황색 비닐 봉지를 머리에 쓰고 응원한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응원 구호는 "짝짝, 짝짝짝, 짝짝짝짝, 롯데!"이다. 경기 도중에 야구공이 관중석으로 들어오면 "아주라"를 관중들이 외치는데, 그러면 공을 잡은 어른은 주위의 어린이에게 그 공을 주는 문화가 있다. "아주라"는 "아이(에게) 주어라"라는 말의 경상도 사투리이다.

또한 상대팀이 게임을 지연하거나 비신사적인 플레이를 하면 투수에게 유키스의 "만만하니"의 음악에 맞춰서 '마!' ("인마"의 동남 방언)를 외친다.[17] '마'라고 관중이 외치는 응원 구호는 1999년 시즌 당시 정민태 투수가 주자를 견제할 때 관중들이 '마'라고 다 같이 외쳐 투수를 위축시키고자 만들어졌다. 그 이후 한 응원 단장이 이 구호를 모든 구단의 투수에게 사용하면서 지금의 '마'가 된 것이다. '마'라고 외치면 상대 투수가 주눅들어 투구에 집중하지 못하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몇몇 구단은 맞대응을 하기도 한다. 그 예로 과거 삼성 라이온즈 응원석에서는 "와!"를 외쳤고, 지금은 두산 베어스 응원석과 LG 트윈스 응원석에서 "왜!"를, SK 와이번스 응원석에서는 "쉬"[18] 를, NC 다이노스 응원석에서는 "산!"을 외치며 맞받아 친다. 2010년부터는 이런 상대의 대응에 대해 다시 롯데의 응원석에서 miss A의 'Bad Girl Good Girl'의 한 부분인 'Shut up boy, So shut up boy, So shut up boy, So shut up, Shut up'[19] 을 외치며 맞대응한다.

투수가 상대팀의 타자를 삼진 및 더블(트리플) 플레이, 도루 저지로 아웃시키면 Witches의 '떴다 그녀'의 전주가 흘러나오는데, 이 전주가 모두 끝나면 이 곡의 맨 첫 소절의 가사인 '어느 날~!'만 외치고 끝나게 된다.

교과서 출판사인 교학사가 2009년 출간을 위해 제작중인 중학교 1학년 사회 교과서에 '레저스포츠 및 응원을 통한 사회화’라는 단원에 사직구장 응원문화에 대한 내용과 사진이 실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국의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초이며, 2008년 12월 심사가 통과되고 1년가량의 여론수렴 과정을 거친 후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판되었다.[20]

응원가[편집]

팀 응원가[편집]

  • Dream Of Ground - 1회 말 종료 시
  • 미스터 자이언츠(Mr. Giants) - 5회 말 종료 후 선수들의 몸 풀기 시
  • 돌아와요 부산항에(조용필) - 9회 말(원정 시 9회 초) 또는 역전 시
  • 부산 갈매기(문성재) - 9회 말(원정 시 9회 초) 또는 역전 시
  • Just Victory
  • Forever Giants
  • 오, 최강롯데 (Jason Crest의 "Waterloo Road"[21]) - 롯데 자이언츠 투수 교체 시
  • 승리의 롯데 (Battle Hymn of the Republic[22])
  • 우리는 최강롯데
  • 롯데자이언츠 오오오~~ (Twisted Sister의 "We're Not Gonna Take It")

타자 응원가[편집]

팝송이 많이 사용된다. 대표적인 응원가와 그 원곡은 다음과 같다. 모두 원곡 멜로디를 바탕으로 그대로 부른다.

  • 손아섭 - Backstreet Boys의 'Straight Through My Heart', 등장곡: 장미하관 - 오빠라고 불러다오
자이언츠~ 손아섭~ 승리를 위해~ 오오~(X4)
  • 조성환 - Daniel Boone의 'Beautiful Sunday'
롯데 조! 성! 환! 오오오~ 오오~ 롯데 조! 성! 환! 오오오~ 오오~
롯데의 강민호 롯데의 강민호 오오오오~ 오오오오~
  • 전준우 - The Turtles의 'Happy Together', 등장곡 : 3OH!3-Starstrukk (전준우 등장시 팬들은 박자에 맞춰서 "유후"를 부른다 )
안타 안타 쌔리라 쌔리라 롯데 전준우~ (4회 반복)
  • 박종윤 - Arrows의 'I Love Rock 'N' Roll'
롯~데 박종윤! 안타 안타 오오오오 (X4)
  • 황재균 - 영화 귀여운 여인 OST 중 'Pretty Woman', 등장곡: 스페이스 A의 섹시한 남자
자이언츠 황재균~ 자이언츠 황재균~ 자이언츠 황재균~ 오오오~~ 오~~ (X2)[23] [24]
파 이 팅 롯데의 용덕한~ 파 이 팅 롯데의 용덕한~ 파 이 팅 롯데의 용~덕~한~오오오오~~(X2)
오~정훈~ 자이언츠 정훈~오~오오~오오~ 오오오오오~ (X2)
박준서~ 오오오~ 박준서~ 오오오~ 박준서~ 롯데의 박준서~ (X2)
롯데 롯데 롯데자이언츠! 안타 신본기~ 안타 신본기~ 오오오오오오오~
  • 문규현 - Gene Kelly의 'Singing in the Rain'
롯~데의 문규현~ 롯~데의 문규현~ 오오오오오오~ 롯!데! 문!규!현!(X2)
박기혁! 안타하나 쳐주세요 박기혁! 안타하나 쳐주세요 박기혁! 볼넷도 괜찮아요~!
롯데의 이승화 이승화 안~타~ 안~타 안타 이승화
롯데 자이언츠 안타 김문호 롯데 자이언츠 김문호 롯데 자이언츠 안타 김문호 오오오오오
롯데 롯데 자이언츠 김대우 자이언츠 김대우 롯데 김대우 헤이~
롯데의 장성호~ 자이언츠 장성호~ 오오오오오오~ 오오오~
롯데의 장성우~ 안타 오오오오~ (X4)
롯데의~ 최준석 파이팅~ 오오오오오~ (X4)
히메네스~ 히메네스~ (3번 반복) 오오오오오오오~ (X2)

투수 응원가[편집]

  • 김성배 - The Crystals의 'Da Doo Ron Ron'
김성배 김성배 파이팅! 롯데 자이언츠 김성배~
  • 송승준 - Don Gibson의 'I Can't Stop Loving You'
송승준 파이팅 오오오오 롯데 송승준 오오오오x2
오오오오 롯데의 유먼 워어어어 유먼 파이팅x2
  • 장원준 - Buggles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
롯데 장원준 오오오오오 롯데 장원준 오오오오오~ 오오오오오오오 롯! 데!~ 장! 원! 준! (x2)

유니폼[편집]

롯데 자이언츠의 기본적인 홈 경기 유니폼은 흰색 바탕에 검정색 줄무늬가 그어져 있다. 가슴 부분에는 구단 로고가, 등에는 선수 이름과 등번호가 검정색으로 새겨져 있다. 유니폼 속 언더셔츠는 검정색이다. 현 유니폼은 2003년부터 사용되었다.

선수단[편집]

현 선수단[편집]

역대 감독[편집]

롯데 자이언츠의 창단 감독은 박영길이었으며, 현 감독은 15대인 김시진이다.

감독별 정규 시즌 성적

구분 이름 연도 경기수 승률 비고
1대 박영길 1982-1983 130 53 76 1 0.411
2대 강병철 1983-1986 368 180 180 8 0.500 1984년 한국시리즈 우승
3대 성기영 1987-1987 108 54 49 5 0.523
4대 어우홍 1987-1989 228 105 116 7 0.478
5대 김진영 1989-1990 96 36 56 4 0.396
감독 대행 도위창 1990-1990 24 8 15 1 0.354
6대 강병철 1990-1993 378 194 180 4 0.519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
7대 김용희 1993-1998 559 249 292 18 0.460 1995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8대 김명성 1998-2001 419 202 204 13 0.498 1999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2001년 시즌 중 사망
9대 우용득 2001-2002 110 44 64 2 0.407
감독 대행 김용희 2002-2002 2 0 2 0 0.000
10대 백인천 2002-2003 163 41 119 3 0.256
감독 대행 김용철 2003-2003 41 16 25 0 0.390
11대 양상문 2003-2005 259 108 139 12 0.437
12대 강병철 2005-2007 252 105 141 6 0.427
13대 제리 로이스터 2008-2010 392 196 185 3 0.521 프로야구 최초 외국인 감독
14대 양승호 2011-2012.10 266 137 118 8 0.515 정규리그 단일시즌 최초 2위
감독 대행 권두조 2012.10-2012.11 3 2 1 0 0.667 아시아 시리즈만 지휘
15대 김시진 2012.11- 128 66 58 4 0.532 현재 롯데 감독
통산

감독별 상세 성적[편집]

연도 구분 이름 경기수 순위 승률 비고
1982 1대 박영길 80 31 0 49 5 .388
1983 50 22 1 27 4 .449 중도 퇴임(1983년 7월 6일)
2대 강병철 50 21 0 29 6 .420 감독 대행(1983년 7월 6일~ 1984년 1월 9일)
1984 100 50 2 48 1 .510 한국시리즈 진출
1984(한국시리즈) 7 4 0 3 우승 .571 한국시리즈 우승(對 삼성)
1985 110 59 0 51 2 .536
1986 108 50 6 52 5 .490
1987 3대 성기영 108 54 5 49 3 .523
1988 4대 어우홍 108 57 2 49 3 .537
1989 120 48 5 67 7 .421
1990 5대 김진영 96 36 4 56 6 .396 중도 퇴임(1990년 8월 28일)
6대 도위창 24 8 1 15 .354 감독 대행
1991 7대 강병철 126 61 3 62 4 .496 포스트시즌 진출
1991(준 플레이오프) 3 1 0 2 패배 .333 준 플레이오프 패배(對 삼성)
1992 126 71 0 55 1 .540 포스트시즌 진출
1992(준 플레이오프) 2 2 0 0 승리 1.000 준 플레이오프 우승(對 삼성)
1992(플레이오프) 5 3 0 2 승리 .600 플레이오프 우승(對 해태)
1992(한국시리즈) 5 4 0 1 우승 .800 한국시리즈 우승(對 빙그레)
1993 126 62 1 63 6 .496
1994 8대 김용희 126 56 3 67 6 .456
1995 126 68 5 53 2 .560 포스트시즌 진출
1995(플레이오프) 6 4 0 2 승리 .667 플레이오프 우승(對 LG)
1995(한국시리즈) 7 3 0 4 패배 .429 한국시리즈 패배(對 OB)
1996 126 57 0 63 5 .476
1997 126 48 1 77 8 .385
1998 55 20 3 32 8 .385 중도 퇴임(1998년 6월 16일)
9대 김명성 71 30 1 40 8 .430 감독 대행(1998년 6월 17일~10월 12일)
1999 132 75 5 52 2 .591 포스트시즌 진출
1999(플레이오프) 7 4 0 3 승리 .571 플레이오프 우승(對 삼성)
1999(한국시리즈) 5 1 0 4 패배 .200 한국시리즈 패배(對 한화)
2000 133 65 4 64 5 .504 포스트시즌 진출
2000(준 플레이오프) 3 1 0 2 패배 .333 준 플레이오프 패배(對 삼성)
2001 83 32 3 48 8 .400 중도 퇴임(2001년 7월 23일, 심장마비)
10대 우용득 50 27 1 22 .551
2002 60 17 1 42 8 .288
11대 김용희 2 0 0 2 .000 감독 대행
12대 백인천 71 18 0 53 .254 2002년 6월 21일~2003년 8월 5일
2003 92 23 3 66 8 .258
13대 김용철 41 16 0 25 .390 감독 대행
2004 14대 양상문 133 50 11 72 8 .410
2005 126 58 1 67 5 .464
2006 15대 강병철 126 50 3 73 7 .407
2007 126 55 3 68 7 .447
2008 16대 제리 로이스터 126 69 0 57 3 .548 포스트시즌 진출
2008(준 플레이오프) 3 0 0 3 패배 .000 준 플레이오프 패배(對 삼성)
2009 133 66 0 67 4 .496 포스트시즌 진출
2009(준 플레이오프) 4 1 0 3 패배 .250 준 플레이오프 패배(對 두산)
2010 133 69 3 61 4 .519 포스트시즌 진출
2010(준 플레이오프) 5 2 0 3 패배 .400 준 플레이오프 패배(對 두산)
2011 17대 양승호 133 72 5 56 2 .563 포스트시즌 진출
2011(플레이오프) 5 2 0 3 패배 .400 플레이오프 패배(對 SK)
2012 133 65 8 62 4 0.512 포스트시즌 진출
2012(준플레이오프) 4 3 0 1 승리 0.725 플레이오프 진출(對 두산)
2012 (플레이오프) 5 2 0 3 패배 0.400 플레이오프 패배(對 SK)이후 자진사퇴(2012년 10월 30일)
2012 (아시아시리즈) 18대 권두조 0 0 0 0 0.000 감독 대행(2012년 10월 30일~2012년 11월 13일)
2013 19대 김시진 128 66 4 58 5 0.532
통산 19대 15명 3923 1802 102 2019

역대 선수[편집]

역대 외국인 선수[편집]

영구 결번[편집]

KBO Retired Lotte 11.svg
최동원
P
2011년 영구결번 지정 행사 때 사직구장 잔디 위의 11번
  • 11번: 롯데가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데 일등 공신이자 한국프로야구의 전설적인 투수였던 최동원의 등 번호이다. 이 번호는 2011년 9월 30일에 롯데 구단 역사상 최초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어 사직야구장 왼쪽 외야 담장 상단에 걸렸다.

한국 프로 야구상 수상자[편집]

롯데 자이언츠는 한국 프로 야구 최우수 선수를 세 명 배출했다.

역대 신인 지명[편집]

연도 1차지명 2차지명
1983 김석일, 김성호, 김종근, 김호근, 박영태, 박정후, 배경환, 심재원, 우경하, 유두열, 최동원, 한문연, 나호동
1984 김민호, 김재열, 김진근, 김한조, 배종문, 안창완, 윤학길, 이문한, 이석규, 정인교, 조성옥, 조용철
1985 박동수, 박희찬, 양상문, 이동완, 이재성, 이충우, 한영준
1986 김성현, 박동희, 오명록, 윤학길, 이창원, 임경택, 최계영
1987 김종석, 정국헌 1순위 박태호, 2순위 전종화
1988 구명근, 이승훈 1순위 고정식, 2순위 김응국 3순위 이홍식
1989 김청수, 서호진, 김선일 1순위 김인호, 2순위 이종운, 3순위 윤동배, 4순위 김상우
1990 김도형, 공필성 1순위 손길호, 유충돌, 2순위 김종헌, 3순위 전봉석
1991 박정태 1순위 김태석, 2순위 전준호
1992 강성우 1순위 가득염, 2순위 박계원, 3순위 김상현, 4순위 김미호, 6순위 이요섭, 7순위 박지환, 8순위 배숙현, 9순위 최민호, 10순위 황석호
1993 김경환 1순위 마해영, 2순위 송태일, 3순위 권재광, 4순위 김정훈, 5순위 박기복
1994 강상수 1순위 임수혁, 2순위 김종훈, 3순위 손동일, 4순위 한성곤, 5순위 한상재, 6순위 박경민
1995 문동환 1순위 박현승, 2순위 조경환, 3순위 박보현, 4순위 박종일, 5순위 김옥일, 6순위 이현호
1996 차명주
고졸우선지명 이재섭, 이정훈, 손규환
1순위 김영복, 2순위 정학수, 3순위 김대익, 4순위 배정훈, 5순위 박효순, 7순위 차종현, 10순위 임성택, 16순위 박창원, 19순위 김세종, 21순위 선성균
1997 손민한
고졸우선지명 정인석, 이승훈, 신명철
1순위 임봉춘, 2순위 이동욱, 3순위 이영주, 4순위 김상현, 5순위 조유신, 7순위 박영호, 8순위 권오현, 9순위 김장현, 10순위 박상현
1998 임경완
고졸우선지명 이승학, 김진수, 김정열
1순위 손인호, 2순위 서한규, 3순위 전용종, 4순위 손용수, 5순위 엄정대, 8순위 노은성, 9순위 김정현, 11순위 윤지환, 12순위 임금민
1999 정원욱
고졸우선지명 송승준
1순위 김사율, 2순위 한규식, 3순위 임재철, 4순위 박경진, 6순위 김주용, 8순위 조성환, 9순위 이대일, 11순위 조인신, 12순위 이명수
2000 강민영 1순위 정진수, 2순위 박기혁, 3순위 서정호, 4순위 황이갑, 5순위 박진환, 10순위 전영삼
2001 추신수 1순위 이대호, 2순위 이승화, 4순위 박종윤, 5순위 김제빈, 6순위 최준석, 8순위 문왕식, 10순위 황준영
2002 이정민 1순위 고효준, 2순위 이명우, 3순위 허일상, 4순위 김풍철, 5순위 이승재, 6순위 신종길, 8순위 손호광, 9순위 추경식, 10순위 문규현, 12순위 신원주
2003 박정준 1순위 김대우, 2순위 김휘곤, 3순위 양성제, 7순위 김이슬, 8순위 이인구, 9순위 이창석
2004 장원준 1순위 김수화, 2순위 최대성, 3순위 강민호, 4순위 김종성, 5순위 이정동, 6순위 허준혁, 7순위 전준우, 8순위 김태우
2005 이왕기 1순위 조정훈, 2순위 이원석, 3순위 최혁권, 4순위 김진석, 5순위 이준휘, 6순위 이종우, 7순위 이동훈, 8순위 윤현기, 9순위 김범석
2006 손용석 1순위 나승현, 2순위 김정환, 3순위 김문호, 4순위 배장호, 5순위 김유신, 6순위 황성용, 7순위 박상흠, 8순위 이진혁, 9순위 홍유택
2007 이상화, 이재곤 1순위 이웅한, 2순위 김민성, 3순위 박세진, 4순위 손아섭, 5순위 이중훈, 6순위 황진수, 7순위 김용진
2008 장성우 1순위 하준호, 2순위 전준우, 3순위 강승현, 4순위 박시영, 5순위 심세준, 6순위 이재곤, 7순위 김현우
2009 오수호 1순위 진명호, 2순위 양종민, 3순위 허준혁, 4순위 민경수, 5순위 서성민, 6순위 권영준, 7순위 김진영, 8순위 김진솔
2010 1순위 홍재영, 2순위 이현준, 3순위 오승택, 4순위 김근호, 5순위 변용선, 6순위 황성웅, 7순위 이정윤, 8순위 오윤석, 9순위 안상민
2011 1순위 김명성, 2순위 허일, 3순위 이경우, 4순위 백세웅, 5순위 장국헌, 6순위 양동운, 7순위 이지혁, 8순위 문양식, 9순위 이정담, 10순위 백왕중
2012 1순위 김원중, 2순위 신본기, 3순위 김성호, 4순위 박휘성, 5순위 유정민, 6순위 김준태, 7순위 김상호, 8순위 윤정현, 9순위 윤여운
2013 1순위 송주은, 2순위 박진형, 3순위 송창현, 4순위 조홍석, 5순위 백민기, 6순위 구승민, 7순위 고도현, 8순위 이종하, 9순위 임종혁, 10순위 정준혁

역대 2차 드래프트 지명[편집]

2차 드래프트한국 야구 위원회에서 2년마다 11월 말에 개최되며, 타 팀에서 FA 신청선수를 제외한 40명의 보호선수에서 제외된 선수를 지명할 수 있다.

연도 1라운드 2라운드 3라운드
2012 김성배
(두산 베어스, 투수)
박동욱
(LG 트윈스, 투수)
지명 포기
2014 이여상
(한화 이글스, 내야수)
심수창
(넥센 히어로즈, 투수)
지명 포기

광고주[편집]

사직구장 익사이팅존 최초 퇴장사건[편집]

2012년 6월 1일 넥센전 사직구장에서 5회 초 넥센의 공격 때 3-7로 뒤지고 있던 넥센은 박병호가 진명호와 풀카운트 접전 끝에 좌익 선상에 떨어지는 안타를 쳤다. 그러나 익사이팅존에서 한 관중이 글러브로 이 볼을 낚아채 버려, 익사이팅 존이 만들어진 이래 최초로 관중 퇴장으로 기록되었다.[29][30]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롯데 기적의 우승", 《동아일보》, 1979년 9월 21일 작성. 2009년 5월 3일 확인.
  2. "프로야구 30년, 롯데 30년 부산의 거인, 그들을 만난다 <1> 롯데 자이언츠 창단 감독 박영길 씨", 《부산일보》, 2011년 3월 8일 작성. 2012년 6월 6일 확인.
  3. KBO역대관중현황
  4. KBO TEAM STANDINGS
  5. KBO 홈페이지 역대기록실
  6. 중앙일보 Joins스포츠 포스트시즌 배고픈 롯데
  7. KBS 스포츠뉴스 2008.09.16
  8. 프로야구 롯데, 3회 연속 최고 인기구단
  9. KBO 역대관중현황
  10. 롯데, 단일팀 최초 2천만 관중 돌파, 스포츠서울, 2011년 10월 21일 확인.
  11. 홈관중몰이 1위 롯데, 원정경기 1위 KIA, 스포츠서울, 2011년 10월 21일 확인.
  12. 오해와 진실
  13. 박동희의 입장 프로야구 시청률 우승 팀과 채널은?
  14. 롯데, 오욕의 7년 뒤로 하고 '가을로'
  15. 프로야구 롯데, '구단가치 3509억원' 1위, 《머니투데이》, 2011년 10월 27일 확인.
  16. 스포츠 연예팀. "유퉁 야구 열풍의 중심에서 화제로 떠오르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2008년 9월 2일 작성.
  17. 단, 넥센 히어로즈에서는 마! 대신 야!를 쓴다
  18. 영화 노팅힐(Notting Hill)에 나오는 OST로 엘비스 코스텔로가 부른 곡의 일부분을 따온 것이다.
  19. 롯데 투수가 상대 팀의 1루 혹은 2루 주자에게 견제구를 던진 후 상대 응원석에서 견제 야유를 보낼 때에 맞대응으로도 사용된다.
  20. 롯데 응원문화, 교과서에도 실린다 <스포츠서울> 2008년 11월 17일
  21. 이 곡은 1968년에 Mike Wilsh 작사, Mike Deighan 작곡으로 만들어져 제이슨 크레스트가 불렀던 곡이다. 이후 1970년 프랑스 작곡가 Pierre Delanoë 편곡으로 Joe Dassin에 의해 "Les Champs-Elysées"라는 제목으로 불렸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동양권에는 Danièle Vidal의 "Aux Champs-Elysées"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 곡은 1971년 일본에서 리메이크 되어 나온 앨범에 수록되었다.
  22. 원곡은 1858년 "G. S. 스타필드"가 쓴 감리교회의 찬송가 가운데서 'Say, Brothers, Will You Meet Us?'를 인용하여 1861년 미국 남북 전쟁 당시 북군의 승전가로 사용되었다. 이 곡은 흔히 'Glory Hallelujah'로 알려져 있으나 남북 전쟁 당시 'Battle Hymn of the Republic'으로 출판된 곡이다.
  23. 안타 및 홈런을 칠 때에는 Quiet Riot의 'Cum On Feel The Noize' 원곡으로 '롯데 황재균~ 롯~데 황재균 워 워 워"가 나간다.
  24. KIA 타이거즈신종길응원가와 음이 똑같다.
  25. NC 다이노스의 팀 응원가에도 이 음이 있다..
  26. 2002년 FIFA 월드컵 당시 테마송을 작곡한 인물이다.
  27. 실제 원곡은 Neil Sedaka의 1961년 앨범 "Neil Sedaka Sings Little Devil and His Other Hits"의 12번 트랙에 있으나, 히메네스의 응원가는 Eruption의 노래 전주곡 부분을 따온 것이다.
  28. 롯데 자이언츠는 2011년부터 유니세프의 공식 후원 구단으로 지정되어 유니세프와 함께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다.
  29. 사직구장, 익사이팅존에서 경기방해로 관중퇴장 2012년 6월 2일 문화저널21
  30. 프로야구 롯데-넥센 경기에서 `플레이 방해죄`로 관중퇴장 2012년 6월 2일 한국경제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