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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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회사명 롯데
설립연도 팀창단 : 1975년, 프로전환 : 1982년
소속 리그
한국 야구 위원회
한국 프로 야구(KBO)
이전 구단명
홈구장
사직 야구장, 마산 야구장
수용 인원 30,514석
이전 홈구장 구덕 야구장
연고지 부산, 경남
영구 결번
없음
역대 타이틀
한국시리즈 우승(2회)
1984・1992
성적(타이틀 이외)
한국시리즈 출장(4회)(굵은 글씨는 승리한 해)
2승 2패
19841992・1995・1999
플레이오프(3회)(굵은 글씨는 승리한 해)
3승 0패
199219951999
준플레이오프(4회)(굵은 글씨는 승리한 해)
1승 3패
1991・1992・2000・2008
구단 조직
구단주 신격호 롯데그룹회장
신동인 구단주대행
감독 제리 로이스터
유니폼
모자
좌완
상의
우완
하의
양말
홈경기
모자
좌완
상의
우완
하의
양말
원정경기
틀 보기  위키프로젝트 야구

롯데 자이언츠(Lotte Giants)는 대한민국의 프로 야구팀이다. 1982년 2월 12일부산, 경남을 연고지로 창단되었다. 현 감독은 제리 로이스터이다. 1982년 출범 당시에는 구덕 야구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하였으며, 1986년부터 현재까지 사직 야구장마산 야구장 을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목차

[편집] 역사

[편집] 프로 이전

롯데 자이언츠 야구단은 1975년 6월 서울에서 창단되었다. 롯데 자이언츠는 실업팀으로 창단되었으나 프로팀을 지향하여 롯데 자이언츠라는 구단명을 사용하였다.

롯데는 1975년 추계리그 부터 실업야구에 참가하였으며, 다음과 같은 실업야구 성적을 남겼다.

1976년 하계리그 우승, 추계리그 우승

1977년 부상시장기 준우승, 백호기 준우승

1978년 후기리그 우승, 코리언 시리즈 준우승 (78년 부터 코리언 시리즈 제도가 생김)

1979년 코리언 시리즈 우승, 1차리그 준우승, 5차리그 준우승, 서라벌기 준우승.[1]

1981년 코리언 시리즈 우승, 전기리그 우승

[편집] 프로 이후

[편집] 1982년 시즌

부산경남을 연고지로 하는 프로 야구팀으로 전환했다. 롯데 자이언츠는 서울을 연고지로 창단하려 하였으나, 부산 연고지가 지정되었던 럭키 금성이 창단을 포기하고, MBC 청룡이 서울 연고지를 조건으로 창단의사를 밝히자 롯데는 부산으로 연고지를 이전하였다.

프로야구 첫 경기는 1982년 3월 28일 해태 타이거즈와의 경기로 14-2로 롯데의 승리였다. 롯데 자이언츠는 승률 .388을 기록하며 6개팀중 5위의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 해 최하위를 거둔 팀은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약체로 평가받는 삼미 슈퍼스타즈였다. 롯데 자이언츠의 부진은 최동원, 유두열, 심재원의 국가대표주전 3인이 세계선수권 참가로 프로입단을 1년 미룰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컸다는 분석이 있다. (국가대표 차출을 이유로 프로입단을 연기한 선수가 총 7명이었는데 그 중 3명이 롯데 소속이었으며 3명 모두 주전이었다. 또한 국가대표 4번 타자였던 김용희가 부상으로 이탈하였다.)

[편집] 1983년 시즌

1983년 롯데 자이언츠는 6개 팀 중 6위로 첫 최하위를 기록하였다.

[편집] V1(1984년 시즌)

1984년은 롯데 자이언츠가 첫 우승을 한 해로 이 해 전기리그에서는 6개 팀 중 4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후기리그에서 8월 11일부터 시작된 구덕 5연전을 모두 승리하며 1위로 올라섰다. 이때, 최동원 투수가 4게임에 나와 2승 2세이브를 올리는 역투를 했다. 후기리그 우승을 차지한 롯데는 전기리그 우승팀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는 최동원의 역투(7전 4선승제 중 6경기 등판 4승1패)와 유두열의 역전 3점홈런으로 5-3으로 이겨 우승을 거두었다. 최동원은 이 해 정규리그 MVP를 차지했으며, 27승으로 다승왕과 탈삼진 223개로 역대 탈삼진 1위라는 기록을 세웠다. 또한 한국시리즈 4승은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전후기 리그 통합 성적은 100 경기 50승 48패 2무 승률 .510 이라는 성적으로 6개 팀중 4위에 그쳤다. 한편 롯데는 1984년부터 1989년까지 6년 연속 프로야구 관중 동원 1위를 기록하였다. [2]

[편집] 1985년 ~ 1991년 시즌

1985년 0.536의 승률로 전체 2위의 성적을 내지만 삼성의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한국시리즈에는 진출하지 못하였다. (전기/후기 리그는 1985년까지 지속되었다.) 86년에는 6위를 기록하였으며 87년 3위, 88년 3위, 89년에는 8위, 90년에는 7위를 차지하였으다 91년에는 3위를 차지하였는데, 이해 롯데는 1,001,920명의 관중을 동원, 국내 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로 홈경기 100만 관중을 돌파하였다. [3]

[편집] V2(1992년 시즌)

1992년에 정규시즌을 3위로 마친 롯데 자이언츠는 준플레이오프 2차전(對 삼성, 4-0), 플레이오프 5차전(對 해태, 10-4), 한국시리즈 5차전(對 빙그레, 4-2)을 연속으로 승리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5명의 3할타자(김민호, 김응국, 이종운, 박정태, 전준호)를 배출했고, 윤학길염종석이 각각 17승을 따내었다. 고졸 신인으로 17승을 따내고 평균자책점 1위를 차지한 염종석은 신인왕과 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1992년 롯데 자이언츠는 홈경기 누적 관중 1,209,632명, 평균 관중 19,201명을 기록하여 2년 연속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갱신하였다. [4]

[편집] 1993년 ~ 1998년 시즌

93~94년은 6위를 기록하였다. 95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였으나 두산에게 3:4로 패하였다. 95년 1,180,576명의 홈경기 관중을 기록하여 3회에 걸쳐 100만 관중 달성을 기록하였다.[5] 96년은 5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고 97년과 98년에 최하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편집] 1999년 시즌

1999년 리그 2위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여,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에서 1승3패에 몰렸으나, 5, 6, 7차전을 모두 6-5 한점 차로 승리하였다. 특히 한국시리즈 진출을 결정지은 7차전은 프로 야구 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기록되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한화 이글스에 밀려 준우승에 그쳤다. 마해영이 .372로 역대 타격 5위의 기록을 세우며 타격왕에 올랐고, 박정태는 31게임 연속안타의 기록을 수립했다. 펠릭스 호세가 좌우타석 홈런, 연속게임 만루홈런과 1만번째 홈런의 주인공이 되는 진기록도 보여주었다. 1999년 롯데는 팀평균자책점팀타율 모두 1위를 기록하였으며 특히 팀타율 .291는 역대 2위에 해당하는 진기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승하지 못하는 진기록을 남겼다.(역대 7번중 99년 롯데를 제외하고 모두 우승) [6]

[편집] 2000년 시즌

2000년에는 양대리그제가 시행되었던 때로 롯데 자이언츠는 매직리그 2위, 삼성 라이온즈는 드림리그 3위를 기록하였으나 삼성의 승률이 더 높아 양팀간 3선 2선승제의 준플레이오프 경기를 치렀다. 1차전 당시 마산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최초로 포스트시즌 홈 경기를 가졌다. 0-2, 4-2, 1-5로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하였고 최종순위에는 5위로 기록되었다. 한편 2000년 시즌은 4월 18일 경기 도중 포수로 뛰던 임수혁이 갑자기 쓰러지며 식물인간 판정을 받음으로써 롯데 구단과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편집] 2001년 ~ 2007년 시즌

2001년 시즌 중 김명성 감독이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그 이후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롯데 자이언츠는 년도 순으로 8 - 8 - 8 - 8 - 5 - 7 - 7위를 기록하여 7년간이나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해 일부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7] 이 기간 중 롯데 자이언츠가 기록한 2001년부터 2004년까지의 4년 연속 최하위는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7년간의 롯데 자이언츠의 평균 순위는 7.28로 8개 팀 중 7위에도 미치지 못해 꼴데(꼴찌 롯데를 뜻함) 자이언츠라는 별명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8]

이 기간 중 호세 선수는 역대 출루율 1위, 2000년대 조정OPS 1위의 기록을 세웠다. [9] 2005년에는 시즌 초반 5연승과 함께 1위로 출발하였으나 여름 이후부터 처지기 시작하여 결국 5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한편 에이스 손민한은 18승에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하여 리그MVP를 수상하였다. 2006년시즌 이대호는 84년 이후 처음으로 타자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였다.

[편집] 2008년 시즌

2008년 롯데 자이언츠는 3위를 기록하였다. 9월 2일에는 팀 역사상 최다연승기록 11연승을 기록하였다. (기간 : 2008년 7월 27일 사직 한화전 ~ 2008년 9월 2일 사직 LG전) 이 여세를 몰아 2008년 9월 16일에는 2000년 이후 8년여만에 준플레이오프행을 확정지었다.[10] 이를 보답이라도 하듯 부산 홈 경기에는 무려 22차례나 입장권이 매진되었고, 전국의 구장마다 롯데 팬들이 모여들며 응원을 펼쳤다. 그리고 그 해 9월 홈 마지막 경기인 기아 타이거즈전을 앞두고 식전 행사에서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4강에 가면 부산 갈매기를 부르겠다는 약속에 따라 허남식 부산 시장과 함께 부산 갈매기를 부르며 성원에 보답하였다. 아울러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이 날 명예 부산 시민증을 받았다. 그러나 팀은 준플레이오프 상대인 삼성 라이온즈에게 3연패를 당하면서 플레이오프행은 좌절되었다.


[편집] 역대 성적 (프로 이후)

년도 순위 경기수 승률
1982 5 80 31 49 0 .388
1983 6 100 42 56 1 .434
1984 1 100 50 48 2 .510
1985 2 110 59 51 0 .536
1986 5 108 50 52 6 .490
1987 3 108 54 49 5 .524
1988 3 108 57 49 2 .537
1989 7 120 48 67 5 .421
1990 6 120 44 71 5 .388
1991 4 126 61 62 3 .496
1992 1 126 71 55 0 .563
1993 6 126 62 63 1 .496
1994 6 126 56 67 3 .456
1995 2 126 68 53 5 .560
1996 5 126 57 63 6 .476
1997 8 126 48 77 1 .385
1998 8 126 50 72 4 .410
1999 2 132 75 52 5 .591
2000 5 133 65 64 4 .504
2001 8 133 59 70 4 .457
2002 8 133 35 97 1 .265
2003 8 133 39 91 3 .300
2004 8 133 50 72 11 .410
2005 5 126 58 67 1 .464
2006 7 126 50 73 3 .407
2007 7 126 55 68 3 .447
2008 3 126 69 57 0 .548

[편집] 관중동원과 인기도

롯데 자이언츠는 홈경기 누적 관중 수 16,430,160명으로 8개 구단 중 2위이다. 1위는 LG 트윈스(18,471,110명)이지만 LG 트윈스는 서울 구단의 특성상 어웨이 관중 비율이 높다.[출처 필요] 롯데는 1991년 8개 구단 중 최초로 100만 관중(1,001,920명)을 돌파한 이후, 92년(1,209,632명), 95년(1,180,576명), 08년(1,379,735명)의 4회에 걸쳐 100만 관중을 돌파하였으며, 이는 100만 관중 돌파 횟수 1위에 해당한다. 특히 08년 1,379,735명은 역대 한 시즌 최다 관중 동원 기록이다. 1991, 92년의 기록 역시 당시에는 한 시즌 최다 관중 동원 기록이었다. [11] 2008년에는 부산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의 홈경기 중 22경기가 매진되었는데, 이는 수용인원 3만명 이상 구장의 한 시즌 최다 매진 기록이다. 타 구장에서 열린 매진경기도 절반 이상이 롯데 자이언츠가 참가한 경기였다.[출처 필요] 한국 갤럽이 조사한 설문조사에서도 롯데 자이언츠는 최고 인기구단 1위로 선정되었다. [12] TV 방송 시청률을 기준으로 해도 롯데 자이언츠는 높은 인기도를 보이고 있다. [13] TNS미디어코리아AGB닐슨미디어리서치가 각각 집계한 2008시즌 시청률을 보면 프로야구 시청률 1~10위가 모두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이다. [14] 2007시즌에도 시청률 1~10위가 모두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였다.

그러나 2002년 10월 16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현대 유니콘스와의 경기는 입장 관중 수 96명을 기록하여 채 100명도 되지 않는 관중만이 관람하였으며, 3일 뒤인 19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는 불과 69명의 관중만이 입장하여 역대 최소 관중 경기 2위를 기록(1위는 1999년 10월 7일 전주 야구장, 쌍방울-현대의 54명)하기도 하였다. [15]

[편집] 응원

롯데 자이언츠의 응원 방법은 신문지를 가늘게 찢어 술처럼 만든 후 이를 흔들면서 비공식 응원가인 "부산갈매기"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함께 부르며 응원을 펼친다. 이와 더불어 주황색 비닐 봉지를 흔들면서 하는 응원도 볼 수 있다. 또한 경기 진행 도중 파울 볼이 내야 관중석으로 들어갔을 때 "아주라"를 외치면서 어린이에게 공을 주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아주라"는 "아이(에게) 주어라" 라는 말의 부산 사투리이다

타자마다 응원 구호가 다르며 특히 이대호가 타석에 등장하면 "이대호~ 쌔리라~"를 외친다. 이대호가 타석에 들어설 경우 주자가 있는 상황이거나 앞선 타자가 출루하는 경우 팬들이 일제히 상대 투수를 향해 "이대혼데~ 이대혼데~"라며 놀려대기도 한다. 그리고 롯데 주자가 1루 혹은 2루에 나갔을 때, 특히 도루가 가능한 상황에서 상대 투수가 주자에게 견제구를 던지면 롯데 팬들은 일제히 "마!" 를 세 번 외친다. "마"는 "인마"의 줄임말이다.

교과서 출판사인 교학사가 2009년 출간을 위해 제작중인 중학교 1학년 사회 교과서에 '레저스포츠 및 응원을 통한 사회화’라는 단원에 사직구장 응원문화에 대한 내용과 사진이 실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국의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초이며, 2008년 12월 심사가 통과되고 1년 가량의 여론수렴 과정을 거친후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판될 예정이다.[16]

[편집] 응원가

롯데의 응원가는 타자별로 다른 데, 주로 팝송이 많이 사용된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응원가와 응원가의 원곡은 다음과 같다. 모두 원곡 멜로디를 바탕으로 그대로 부른다.

롯데 자이언츠 김주찬! 롯데 자이언츠 김주찬!
  • 조성환 - Daniel Boone의 'Beautiful Sunday'
롯데 조! 성! 환! 오오오~ 오오~ 롯데 조! 성! 환! 오오오~ 오오~
  • 이대호 - Sarah Vaughan의 'A Lover's Concerto'
빰~ 빠바바바밤~ 빰~ 빠바바바밤~ 헤이! 롯데 이대호! 롯데 이대호! 롯데 이대호~! 오~!
가~ 가~ 가~ 가~ 가~르시아 가르시아 가르시아 가~르시아 가르시아 가르시아
롯데의 강민호 롯데의 강민호 오~오~오~오~오~ 오~오~오~오~오~
홍~ 성~ 흔~ 홍~ 성~ 흔~ 파이팅! 롯데의 홍성흔~~
박현승 안타~ 박현승 안타~ 롯데승리 위하여~
박기혁 안타하나 쳐주세요
롯데의 이승화 안타 안~타 안타 안타 이승화
  • 정수근 - Kylie Minogue의 'The Locomotion'
자이언츠 날쌘돌이 정수그~은 안! 타! 정수근

이 외에도 투수가 상대팀의 타자를 아웃 처리하면 Witches의 '떴다 그녀'의 전주가 흘러나오는데, 이 전주가 모두 끝나면 이 곡의 맨 첫 소절의 가사인 '어느날~!'만 외치고 끝나게 된다. 또한 이원석이 롯데 자이언츠 선수로 활동했을 당시에는 윤종신의 '팥빙수'가 응원가로 쓰였지만, 두산 베어스로 이적한 이후로는 더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

[편집] 일부 잘못된 응원문화와 그 비판

일부 롯데 자이언츠 팬들의 잘못된 응원 행동은 언론에서도 자주 비판되는 주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17] 이러한 잘못된 응원 행동으로는 상대 팀 선수나 응원단에게 욕이나 위협, 폭력을 가하는 행위, [18][19][20][21][22] 경기장이나 상대 팀 불펜에 난입하는 행위, [23][24][25][26] 레이저·거울 등으로 상대 팀 선수의 경기를 방해하는 행위 등[27]이 있으며, 주로 경기를 보고 흥분한 관객들에 의해서 일어난다.

다른 팀의 응원단에게 롯데 자이언츠 팬들에 대한 이미지는 이러한 응원 행동으로 인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꼴리건"이라는 신조어는 꼴데(꼴찌 롯데를 뜻함)와 훌리건의 합성어로, 다른 팀의 응원단이 롯데 자이언츠의 저조한 성적과 팬들의 후진적인 응원문화를 함께 비하하는 의미로 쓰고 있다. 또한 롯데 자이언츠 구단 역시 타 구장에 비해 월등히 많은 경호인력을 배치하여 연간 4억원 이상의 경호 비용을 부담하는 등 큰 피해를 입고 있다. [28] 그러나 롯데 자이언츠 팬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잘못된 응원문화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며, 난동을 부리는 취객을 스스로 제제하기도 하는 등 성숙한 응원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9]

이런 취객이나 몰지각한 팬들의 행동 외에 롯데의 아주라 문화에 대해서도 비판여론이 존재한다. 공을 꼭 아이만 가져야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그 과정도 반강압적이라며 어이없는 지적을 하는 비인기구단 팬들이 있으나 이는 그들의 팬 부족으로 인한 열등감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편집] 역대 감독

이 부분의 본문은 역대 롯데 자이언츠 감독입니다.
구분 감독 임기 비고
1대감독 박영길 1982년 ~ 1983년 7월 중도퇴진
강병철 1983년 7월 ~ 1984년 1월 감독대행
2대감독 강병철 1984년 ~ 1986년 1984년 우승
3대감독 성기영 1987년
4대감독 어우홍 1988년 ~ 1989년
5대감독 김진영 1990년 ~ 1990년 8월 중도퇴진
도위창 1990년 8월 ~ 감독대행
6대감독 강병철 1991년 ~ 1993년 1992년 우승
7대감독 김용희 1994년 ~ 1998년 6월 1995년 준우승, 중도퇴진
김명성 1998년 6월 ~ 감독대행
8대감독 김명성 1999년 ~ 2001년 7월 1999년 준우승, 2001년 심장마비로 사망
우용득 2001년 7월 ~ 감독대행
9대감독 우용득 2002년 ~ 2002년 6월 중도퇴진
10대감독 백인천 2002년 6월 ~ 2003년 8월 중도퇴진
김용철 2003년 8월 ~ 감독대행
11대감독 양상문 2004년 ~ 2005년
12대감독 강병철 2006년 ~ 2007년
13대감독 제리 로이스터 2008년 ~ 현재 최초의 외국인 감독

[편집] 역대선수

[편집] 외국인 선수

[편집] 역대 신인 지명

연도 1차지명 2차지명
1983 김석일, 김성호, 김종근, 김호근, 박영태, 박정후, 배경환, 심재원, 우경하, 유두열, 최동원, 한문연
1984 김민호, 김재열, 김진근, 김한조, 배종문, 안창완, 윤학길, 이문한, 이석규, 정인교, 조성옥, 조용철
1985 박동수, 박희찬, 양상문, 이동완, 이재성, 이충우, 한영준
1986 김성현, 박동희, 오명록, 윤학길, 이창원, 임경택, 최계영
1987 김종석, 정국헌 1순위 박태호, 2순위 전종화
1988 구명근, 이승훈 1순위 고정식, 2순위 김응국 3순위 이홍식
1989 김청수, 서호진, 김선일 1순위 김인호, 2순위 이종운, 3순위 윤동배, 4순위김상우
1990 김도형, 공필성 1순위 손길호, 유충돌, 2순위 김종헌, 3순위 전봉석
1991 박정태 1순위 김태석, 2순위 전준호
1992 강성우 1순위 가득염, 2순위 박계원, 3순위 김상현, 4순위 김미호, 6순위 이요섭, 7순위 박지환, 8순위 배숙현, 9순위 최민호, 10순위 황석호
1993 김경환 1순위 마해영, 2순위 송테일, 3순위 권재광, 4순위 김정훈, 5순위 박기복
1994 강상수 1순위 임수혁, 2순위 김종훈, 3순위 손동일, 4순위 한성곤, 5순위 한상재, 6순위 박경민
1995 문동환 1순위 박현승, 2순위 조경환, 3순위 박보현, 4순위 박종일, 5순위 김옥일, 6순위 이현호
1996 차명주, 고졸우선지명 이재섭, 이정훈, 손균환 1순위 김영복, 2순위 정학수, 3순위 김대익, 4순위 배정훈, 5순위 박효순, 7순위 차종현, 10순위 임성택, 16순위 박창원, 19순위 김세종, 21순위 선성균
1997 손민한, 고졸우선지명 정인석, 이승훈, 신명철 1순위 임봉춘, 2순위 이동욱, 3순위 이영주, 4순위 김상현, 5순위 조유신, 7순위 박영호, 8순위 권오현, 9순위 김장현, 10순위 박상현
1998 임경완, 고졸우선지명 이승학, 김진수, 김정열 1순위 손인호, 2순위 서한규, 3순위 전용종, 4순위 손용수, 5순위 엄정대, 8순위 노은성, 9순위 김정현, 11순위 윤지환, 12순위 임금민
1999 정원욱, 고졸우선지명 송승준 1순위 김사율, 2순위 한규식, 3순위 임재철, 4순위 박경진, 6순위 김주용, 8순위 조성환, 9순위 이대일, 11순위 조인신, 12순위 이명수
2000 강민영 1순위 정진수, 2순위 박기혁, 3순위 서정호, 4순위 황위갑, 5순위 박진환, 10순위 전영삼
2001 추신수 1순위 이대호, 2순위 이승화, 4순위 박종윤, 5순위 김제빈, 6순위 최준석, 8순위 문왕식, 10순위 황준영
2002 이정민 1순위 고효준, 2순위 이명우, 3순위 허일상, 4순위 김풍철, 5순위 이승재, 6순위 신종길, 8순위 손호광, 9순위 추경식, 10순위 문규현, 12순위 신원주
2003 박정준 1순위 김대우, 2순위 김휘곤, 3순위 양성제, 7순위 김이슬, 8순위 이인구, 9순위 이창석
2004 장원준 1순위 김수화, 2순위 최대성, 3순위 강민호, 4순위 김종성, 5순위 이정동, 6순위 허준혁, 7순위 전준우, 8순위 김태우
2005 이왕기 1순위 조정훈, 2순위 이원석, 3순위 최혁권, 4순위 김진석, 5순위 이준휘, 6순위 이종우, 7순위 이동훈, 8순위 윤현기, 9순위 김범석
2006 손용석 1순위 나승현, 2순위 김정환, 3순위 김문호, 4순위 배장호, 5순위 김유신, 6순위 황성용, 7순위 박상흠, 8순위 이진혁, 9순위 홍유택
2007 이상화, 이재곤 1순위 이웅한, 2순위 김민성, 3순위 박세진, 4순위 손아섭, 5순위 이중훈, 6순위 황진수, 7순위 김용진
2008 장성우 1순위 하준호, 2순위 전준우, 3순위 강승현, 4순위 박시영, 5순위 심세곤, 6순위 이재곤, 7순위 김현우
2009 오병일 1순위 진명호, 2순위 양종민, 3순위 허준혁, 4순위 민경수, 5순위 서성민, 6순위 권영준, 7순위 김진영, 8순위 김진솔

[편집] 참조

  1. “롯데 기적의 우승”, 《동아일보》, 1979년 9월 21일 작성. 2009년 5월 3일 확인.
  2. KBO역대관중현황
  3. KBO역대관중현황
  4. KBO역대관중현황
  5. KBO역대관중현황
  6. KBO TEAM STANDINGS
  7. KBO 홈페이지 역대기록실
  8. 중앙일보 Joins스포츠 포스트시즌 배고픈 롯데
  9. KBO 홈페이지 역대기록실
  10. KBS스포츠뉴스 2008.09.16
  11. KBO 역대관중현황
  12. '프로야구 최고 인기구단은 롯데'
  13. 오해와 진실
  14. 박동희의 입장 프로야구 시청률 우승팀과 채널은?
  15. [1]
  16. 롯데 응원문화, 교과서에도 실린다 <스포츠서울> 2008년 11월 17일
  17. 롯데팬, 500만 돌파 주역에서 '꼴리건' 으로 몰락? 사직구장 관람문화 진지한 자성 필요하다.<Daily 서프라이즈> 2008년 10월 10일
  18. 난장판 된 사직야구장연합뉴스 2003년 9월 27일
  19. 다시 고개든 관중난동, '야구열기 찬물 우려' 마이데일리 2006년 5월 12일
  20.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있던 날… 밤잠 잊은 사직벌 '부산 갈매기'부산일보 2008년 10월 9일
  21. 레이저 포인터로 투수 공격…빗나간 ‘광팬’동아일보 2008년 10월 11일
  22. 야구도, 매너도 완패…‘구도’ 사직의 치욕
  23. 부산 사직야구장에 열성팬 난입..경기중단 소동연합뉴스 2008년 9월 20일
  24. 경기장 난입한 관중뉴시스 2008년 4월 29일
  25. SK에 뿔난 일부 롯데팬들..장난감 칼에 물병·유리병·오물 투척까지
  26. 사직구장 관중, 삼성 불펜 난입 소동
  27. ‘빗나간 사랑’에 퇴색된 ‘가을 잔치’한겨레 2008년 10월 10일
  28. 롯데 "돈은 돈대로 쓰고 욕은 욕대로 먹고"
  29. '부산갈매기 = 꼴리건' 공식, 장외로 날리자

[편집] 같이 보기

[편집] 참고 자료

한국야구사간행위원회, <<한국야구사>> (대한야구협회 1999년)

[편집] 바깥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