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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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진
kim Si-jin
김시진.jpg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생년월일 1958년 5월 8일(1958-05-08) (56세)
출신지 경상북도 포항시
신장 183 cm
체중 83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1983년
드래프트 순위 1983년 1차 2순위(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KBO / 1983년 5월 4일
대구삼미
마지막 경기 KBO / 1992년 월 일
구장 대 상대 팀
획득 타이틀
계약금 3억 원
연봉 3억 원 (2012년)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감독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월드컵 1982년 서울

김시진(金始眞, 1958년 5월 8일(음력 3월 20일) ~ )은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다.

삼성 라이온즈롯데 자이언츠를 거친 투수였다. 1983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데뷔해 1992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은퇴할 때까지 10시즌 동안 통산 124승 73패 16세이브에 평균 자책점 3.12라는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은퇴 후 태평양 돌핀스를 시작으로 13년 동안 투수코치 생활을 하다가 2006 시즌김재박의 후임으로 현대 유니콘스의 감독으로 임명되어 2007 시즌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시즌을 거쳤다. 2009 시즌부터 넥센 히어로즈 감독직을 시작하여 2012년까지 재임하였다. 2014년 10월 팀 성적 부진으로 자진사퇴하였다.[1]

선수 생활[편집]

삼성 라이온즈 시절[편집]

경리단에서 병역을 마치고 1983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입단 첫 해에 17승을 올리면서 삼성 라이온즈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프로 데뷔 이후 5년 만에 한국 프로 야구 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100승을 올렸다. 1985년 25승 5패 10세이브 201탈삼진으로 소속 구단 삼성 라이온즈의 전·후기 통합 우승을 이끄는 등 삼성 라이온즈에서만 111승을 올렸다.[1] 삐쩍 마른 체구에 머리가 크다는 이유로 꼴뚜기라 불리기도 했다. [2] 삼성 라이온즈에서 거둔 111승은 한명의 선수가 기록한 최다 승리 기록이였으나 2013년 8월 8일 배영수가 112승을 거두면서 최다승 기록이 경신되었다.

롯데 자이언츠 시절[편집]

1980년대에 있었던 선수협 사건으로 인해 1988년 11월 23일 전용권, 오대석, 허규옥과 함께 최동원, 김성현, 오명록을 상대로 롯데 자이언츠에 트레이드되었다. 그리고 한 달 뒤 두 팀은 장효조김용철 등의 트레이드를 성사했다. 이후 4년 간 롯데 자이언츠에서 13승 24패를 추가하는 데 그쳤고, 1992년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정규 리그 통산 124승을 올렸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통산 무승 7패로 좋은 기록을 내지 못했다. 큰 경기에서 약하다는 이유로 "새가슴", "볼넷 공장장"이라는 별명을 갖기도 했지만, 이를 데뷔 후 5년 간 무려 1,104이닝이나 투구한 심한 혹사의 후유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롯데를 떠난 이후 20년 만에 감독으로 돌아오게 된다.

투수 코치 생활[편집]

현역에서 은퇴한 후 태평양 돌핀스의 투수코치로 부임했고,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코치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그의 조련을 겪은 투수들은 한 동안 좋은 스탯을 보여주다가도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부진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김수경, 조용준, 오재영, 신철인, 황두성 등 많은 투수들이 부상으로 신음했다. 사실 1군 투수코치라 대부분이 2군 투수코치인 정명원이 키웠다는 평이 정설이다. 실제로 황두성이나 신철인, 박준수등의 선수들은 정명원코치의 도움이 컸다고 밝힌적이 있다. 무엇보다 가장 문제인건 엄청난 연투를 시키면서도 혹사라고 생각하지 않는 등 현대 야구와는 맞지 않는 투수관을 가지고 있으며 본인이 연투를 시키고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등 오직 감으로만 투수교체를 한다. 투코시절부터 연투와는 상관없이 그저 지나 이기나 무조건 쓸놈쓸에 좌우놀이는 병적이었다. 신철인의 6연투 기사는 김시진의 투수관을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다. 김시진 본인과 정민태 코치가 한국을 대표하는 정통파 투수였기 때문에 두 사람이 떠난 이후로도 히어로즈의 투수들은 상당수가 140km의 볼과 그것을 뒷받침 할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삼고 있는데 제구 불안이라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고 이걸 떠날때까지 해결하지 못했다. 그리고 2013년에는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부임해서 투수를 키워내기는 커녕 있는 투수마저 다 망가뜨리는 모습에 역시나 투수 조련가는 거품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감독 생활[편집]

현대 유니콘스 시절[편집]

2007년, LG 트윈스로 이적한 김재박 감독의 후임으로 투수코치에서 감독에 선임되었으며, 전년도 2위팀을 6위로 성적을 마치면서 최악의 감독으로 뽑혔다. 당시 현대 타선은 강타자들이 즐비한 좋은 타선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2번에 김일경을 배치해서 번트만 지시한다거나, 5번 타자인 정성훈이나 심지어 당시 이대호와 함께 최고의 4번 타자로 뽑히던 브룸바에게도 번트지시를 하는 등 주자만 나가면 거의 광적으로 번트 지시를 하였다. 김재박 감독을 제치고 단일시즌 최다 번트 1위팀을 만들며 투수관리 미흡과 조용훈, 노환수, 황두성을 자주 기용하는 쓸놈쓸, 병적인 좌우놀이등으로 답답한 경기 운영능력을 보여준다. 2007년의 현대는 시즌 초 3~4위를 유지했는데, 시즌 초 0점대 ERA를 기록하며 좋은 페이스였던 장원삼이 5월달부터 밸런스가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수수방관하다가 7월달이 되어서야 2군에 보내서 밸런스를 찾게 하기도 했으며 주구장창 송신영을 2~3이닝씩 소화하는 중무리로 부리는 바람에 팔꿈치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간 일도 있었다. 프로 2년차인 조용훈이 8월 달에는 어깨 통증을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지속적으로 등판시켜 페이스가 확 떨어졌고, 7월까지 1점대였던 방어율이 3점대까지 오르기도 했다. 이렇듯 투수진에 알음알음 구멍이 생기는 바람에 현대는 쭉쭉 떨어지기 시작했다. 타선에서는도 나이가 많은 선수들이 많음에도 2군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는 선수들에게 기회를 잘 주지 않았다. 강정호는 훗날 2012년 이영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기회를 받지 못해 야구를 그만둘 뻔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렇듯 감독으로서 수많은 문제점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이 끝나고 현대가 해체하면서 마지막 감독이었다는 이유만으로 팬들의 동정을 사게 되면서 일명 뚝리타라고 불리는 광적 팬들이 생기게 되었다.

넥센 히어로즈 시절[편집]

현대 유니콘스의 해체 후 감독 자리에서 해임되었고, 2008년 KBO 기록관으로 근무하다 2009년 히어로즈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용병을 모두 타자로 가져가면서 덕 클락, 황재균, 이택근, 클리프 브룸바, 강정호, 송지만 등이 이끄는 강력한 타선을 내세워 한때 4강 싸움까지 노려봤으나 에이스 이현승을 4일 로테로 굴리는 등 투수들을 땡겨쓰거나 혹사로 투수진이 흔들리면서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가장 문제점은 감독이 되자마자 어려운 팀 상황에서 팀 투수진을 이끌고 새로운 선수들을 발굴했던 정명원 코치를 대뜸 2군에 보내고 코치로서 1년은 커녕 단 1주일조차도 경험이 없는 생초짜 정민태를 1군 투수 코치에 기용하면서 넥센 투수들을 망가뜨렸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넥센 히어로즈 홈페이지의 영웅방에서는 투수들이 단체로 부진하자 연일 김시진과 정민태를 비난하는 글들이 많았으나 시즌 후 역대급의 현금 트레이드가 터지면서 선발투수 세명과 중견수를 모두 잃는 바람에 이때부터 김시진 감독을 동정하는 분위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초대권까지 뿌리며 팬들이 만들어준 전준호의 은퇴식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서 섭섭해한 팬들이 많았다.

2010시즌에는 2군에서 투수들을 키워낸 정명원코치의 노력 덕에 금민철과 고원준이라는 새로운 투수를 발굴해내는 등 분전했으나 순위는 작년보다 떨어진 7위로 마감했다.

2011시즌은 넥센을 완전히 무기력한 팀으로 만들면서 창단 첫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트레이드된 4번타자 박병호의 가능성, 이택근의 친정 복귀 등 팀의 플러스 요소들이 많이 보이면서 다음 시즌에 기대를 갖게 했고 본인 역시 구단으로부터 재계약을 받으면서 한층 더 안정된 상황.

그렇게 시작된 2012 시즌, 새로운 거포 박병호와 3년만에 20홈런으로 복귀한 강정호, 27승을 합작한 외국인 선발 듀오, 신인왕 서건창 등 출중한 선수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에 힘입어 팀도 승승장구하며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전반기 이후 점점 불안한 기미를 보이더니 결국 귀신같은 DTD를 선보이게 되었다. 이에 빡친 넥센 팬들이 넥센 히어로즈 공홈 게시판에서 김시진과 정민태를 퇴출하자는 릴레이를 펼쳐기도 했다. 그동안 나름 점잖은 편이었던 넥센 팬들이 김시진을 자르라고 구단에 전화를 하기도 했으며 팬 커뮤니티에서도 그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자 결국 참다 못한 구단 측에서 경질을 하게 되었다.

롯데 자이언츠 시절[편집]

2013 시즌 계투진의 많은 블론세이브와 투수 교체에 관한 비판이 있었고, 또한 투수 김승회 혹사논란이 있었다. [1] 김시진만 짤랐으면 4강 갔다는 평이 대체적이다. 김승회,정대현,김성배,진명호등 불펜에서의 좌우놀이와 롱릴리프 혹사 문제는 넥센 시절부터 그대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롯데 팬들에게 강력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마디로 넥센 시절 이보근,박준수,송신영,오재영의 혹사 역할이 김승회,김성배,정대현,진명호등에게 넘어갔다는 것. 투수교체 타이밍 역시 저 두 문제만큼 명백한 비난의 대상이 돠고 있고 넥센 팬들의 주장대로 불펜 투수에게 과도한 강심장을 요구하는 특유의 한박자 늦은 교체를 보여주며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2014 시즌 10승 보증투수 장원준이 돌아오고 FA로 4번타자 최준석을 영입하는등 시즌 시작만 해도 우승후보로 뽑혔으나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고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시즌 최종전을 마지막으로 자진 사퇴의사를 밝혔다. 6678657 무려 감독기간 7년동안 4강 한번 가지 못했지만 짤리지 않고 감독생활을 이어간 최장수 감독으로 뽑힌다. 롯데 팬들에게는 8888577이후 다시 비밀번호를 만들어버린 악몽의 감독으로 뽑힌다.

한국야구위원회 생활[편집]

2008년 3월 현대 유니콘스의 해체 후 선수단을 인계하여 창단한 넥센 히어로즈는 김시진과 계약하지 않고, 이광환을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감독에서 물러난 뒤 2008년 한 해 동안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경기 감독관으로 재직하였다.

수상 경력[편집]

지도자 경력[편집]

출신 학교[편집]

등번호[편집]

통산 기록[편집]



























1983
삼성
2.55 37 17 5 17 12 1 0.586 229 1/3 189 8 95 14 154 78 65 완투 2위, 다승 3위, 이닝 3위, 탈삼진 3위
1984 3.18 39 11 2 19 11 2 0.633 215 178 14 112 13 154 94 76 완봉 3위, 다승 2위, 탈삼진 3위
1985 2.00 47 10 2 25 5 10 0.833 269 2/3 172 8 121 15 201 63 60 자책점 3위, 경기수 2위, 구원 2위
1986 2.47 30 11 1 16 6 3 0.727 196 2/3 161 6 110 6 87 68 54
1987 3.12 33 7 3 23 6 0 0.793 193 1/3 166 9 96 7 113 73 67 완봉 3위
1988 3.49 25 5 1 11 9 0 0.550 144 1/3 107 10 70 7 67 62 56 삼성시절 통산 111승 기록함.
1989
롯데
3.87 19 1 0 4 9 0 0.308 111 2/3 106 8 60 8 55 53 48
1990 4.04 26 4 2 7 10 0 0.412 151 1/3 136 9 57 12 67 75 68
1991 6.18 13 1 0 2 4 0 0.333 55 1/3 70 5 26 1 31 39 38
1992 13.06 4 0 0 0 1 0 0.000 10 1/3 17 5 8 0 2 15 15
통산 10시즌 3.12 273 67 16 124 73 16 0.629 1577 1302 82 755 83 931 620 547
  • 굵은 글씨는 당해 리그 최고 기록

감독 기록[편집]















2007
현대
6 126 56 1 69 0.448 0.271 1154 96 51 530 615 4.41
2009
히어로즈
6 133 60 1 72 0.451 0.272 1219 153 192 683 762 5.40
2010
넥센
7 133 52 3 78 0.391 0.262 1165 87 135 570 652 4.55
2011
넥센
8 133 51 2 80 0.389 0.245 1065 79 99 512 622 4.36
2012
넥센
6 118 54 2 62 0.466 0.247 952 90 159 497 503 3.94
2013
롯데
5 128 66 4 58 0.532 0.261 1118 61 133 556 553 3.93

주석[편집]

  1. 오마이뉴스 - 2008년 4월 기사 "최동원 · 선동렬에 가려진 위대한 투수"
  2. "KIA 김선빈, 프로 지명 못 받은 동생 선현 걱정", 《스포츠 한국》, 2010년 8월 31일 작성. 2011년 5월 5일 확인.

바깥 고리[편집]

전 임
이광환
제2대 히어로즈/ 넥센 히어로즈 감독
2008-10-06 ~ 2012-9-17
후 임
김성갑 (감독 대행)
전 임
김재박
제2대 현대 유니콘스 감독
2006-11-06 ~ 2008-3-11
후 임
(팀 해체)
전 임
권두조 (감독 대행)
제15대 롯데 자이언츠 감독
2012-11-11 ~ 2014-10-17
후 임
이종운
이 전
최동원
제4대 한국 프로 야구 골든글러브 투수
1984년
다 음
 선동열 
이 전
선동열
제6대 한국 프로 야구 골든글러브 투수
1987년
다 음
 선동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