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균 (1982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김태균
Kim Tae-Kyun
한화 이글스 No.52
Tae-Kyun Kim 2010.jpg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생년월일 1982년 5월 29일(1982-05-29) (32세)
출신지 충청남도 천안시
신장 185 cm
체중 130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1루수
프로 입단 연도 2001년
드래프트 순위 2001년 1차 지명(한화 이글스)
첫 출장 KBO / 2001년 4월 17일
수원현대
NPB / 2010년 3월 20일
계약금
  • 1억 6천만 원 (2001년)
  • 1억 엔 (2010년, 3년 계약)
연봉
  • 15억원 (2012년)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WBC 2006년·2009년
아시안게임 2010년 광저우
월드컵 2003 쿠바
메달 기록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야구
아시안 게임
2010 광저우 야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6 샌디에이고 야구
2009 로스앤젤레스 야구

김태균(金泰均, 1982년 5월 29일 ~ )은 충청남도 천안시 출신의 한국 프로 야구 한화 이글스 내야수이다.

200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고, 그 해 신인왕을 수상하였다. 2005년2008년 골든 글러브 상(1루수 부문)을 수상하였다. 정교한 타격과 장타력을 갖춘 타자로, 2006년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대한민국 국가대표 야구팀에 선발되었다.

2009년 시즌이 끝나고 자유 계약 선수 자격을 취득한 후 일본 프로 야구 퍼시픽 리그 팀인 지바 롯데 마린스와 3년 계약을 맺으며 일본 프로 야구에 진출하였다.[1] 2010년 12월 11일 아나운서 김석류와 결혼하였다. 2011년 역대 최고 연봉으로 한화 이글스에 복귀한 후, 2012년 시즌 타율(0.363)과 출루율(0.474)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학력[편집]

생애[편집]

고등학교 시절[편집]

  • 2000년 청소년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뽑혀 세계 청소년 야구 국제대회에 출전, 동갑내기 이대호, 정근우, 추신수와 함께 타선을 이끌어 청소년 대표팀 우승을 이끎.
  • 세계청소년야구 국제대회에서 0.433 타율 (30타수 13안타), 3홈런, 11타점을 기록했다.

한화 이글스 시절[편집]

200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의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입단 계약 조건은 계약금 1억 6천만 원, 연봉 2천만 원이었다.[2] 입단 첫 해인 2001년 88경기에 출전, 0.335의 타율과 20개의 홈런을 기록하여 그 해 한국 프로 야구 신인왕에 올랐으며, 2003년에는 31홈런을 달성하여 소속팀에서 4번타자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2005년에는 골든 글러브(1루수 부문)를 수상하였다. 2007년 올스타전에 출전하여, 홈런 레이스에서 9개의 홈런을 쳐서 우승하였다.

입단 당시 등번호는 52번으로 그 해 신인왕을 타는 등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 2002년 10번을 달고 2년차 징크스에 시달렸다. 그 후 등번호를 다시 52번으로 교체하였고 이 넘버는 그의 상징이 되었다.

2005년 시즌 타율 0.317, 146안타, 23홈런, 100타점을 기록하여 첫 번째 골든 글러브(1루수 부문)를 수상하였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출되었다.

2008년 시즌 타율 0.324(5위), 31홈런(1위), 92타점(4위), 장타율 0.622(1위)를 기록하여 홈런왕과 최고장타율 타이틀을 수상하였고, 2005년 수상 이후 두 번째로 골든 글러브 상(1루수 부문)을 수상함과 동시에 유효표 346표 중 332표를 얻어 최다득표의 영예까지 얻었다.[3]

2009 WBC에서 홈런, 타점 1위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개막 직후 한때 4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했지만 4월 26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 도중 홈으로 달려 오다가 포수 최승환과의 충돌을 피하려다가 넘어지면서 뇌진탕으로 병원으로 후송되기도 했다. 이 후유증으로 한때 2군에서 재활하였다. 뇌진탕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홈런을 19개나 치는 활약을 펼쳤다. 이를 일찍부터 지켜 본 지바 롯데 마린스 구단은 FA 자격을 취득하는 김태균을 영입하기로 하였고, 마침내 2009년 11월 13일 최장 3년간 총액 7억 엔(90억)에 계약을 맺었다.

2011년 한국으로 돌아온 후 10월부터 한화와 접촉했으며, 12월 12일 역대 최고 연봉인 15억을 받으며 한화 이글스로 복귀하였다.

2012년 전체적으로 장타력이 감소하여 홈런 갯수가 줄었으나 9월까지 4할에 육박하는 타율을 보여주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고, 2013시즌에는 한화 이글스의 주장으로 선임되어 야심차게 출발했으나 시즌 초반 한화 이글스가 심각한 부진에 빠지며 주저앉았고, 김태균도 상대팀의 집중 견재로 성적 부진에 시달려 시즌 중후반 타율은 3할초반대, 홈런은 7개밖에 치지 못했다. 여기에 허리 부상까지 겹처 시즌아웃이 예상 되었으나 9월 25일 대전 LG전에서 시즌 8호 스리런 홈런을 때려내 화려한 복귀를 알렸고, 10월 2일 잠실 LG전에서 우규민을 상대로 시즌 10호 홈런(스리런)을 때려내며 9년 연속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지바 롯데 마린스 시절[편집]

2009년 11월, KBO에 FA를 신청했다. 단연 이 해의 FA 대어로 많은 국내외 구단에서 러브콜을 받았으나 13일에 지바 롯데 마린스 입단을 발표했다. 등번호는 한국 프로 야구 한화 이글스에서 사용하던 52번으로 결정했고, 등록명은 본명과 같은 ‘김태균’(金泰均) 이지만, 유니폼 백네임은 ‘TAEKYUN’으로 했다.

일본 롯데리아에서는 그의 활약을 기대하며 김치가 들어간 햄버거인 ‘김치 태균 버거’를 지바 롯데 마린스의 홈 구장인 지바 마린 스타디움 내 점포에서 한정 판매하고 있다. 홈경기에서 홈런을 쳤을 경우에는 홈런을 친 순간부터 그의 등번호와 같은 숫자인 52개 한정으로 통상 가격 400엔의 8분의 1인 50엔으로 가격 인하하여 판매한다. 2010년 5월 3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의 7차전에서 3회 말에 홈구장 첫 홈런이 된 시즌 6호 홈런을 치면서 ‘김치 태균 버거’ 의 첫 가격 인하가 실시되었고 8분 만에 52개가 모두 팔려나갔다. 그러나 5회 말에 김태균의 연타석 홈런이 터지면서 다시금 ‘김치 태균 버거’의 가격 인하가 실시되었는데 이미 이 날 준비했던 ‘김치 태균 버거’가 모두 팔려나가고 없었기 때문에 통상 가격 410엔의 ‘치즈 버거’를 급하게 52개 한정 50엔으로 가격 인하하여 판매하는 해프닝이 생기기도 하였다.[4]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사용된 다비치의 ‘8282’를 개사한 곡과 한화 이글스 시절에 쓰였던 응원가 두 곡이다.

일본으로 진출한 대한민국 선수로는 임창용에 이어 두 번째로 올스타전 팬 투표에서 퍼시픽 리그 1루수 부문 1위와 최다 득표 선수로 뽑혔다. 대한민국 선수가 리그 최다 득표 선수로 뽑힌 것도 일본 진출 첫 해에 팬투표 1위를 차지한 것도 김태균이 최초이다. 김태균이 일본 진출 첫해에 퍼시픽 리그 플레이오프를 넘고 일본 시리즈 무대에서 주니치 드래건스를 상대로 하여 하위 타선인 7번 타자로 출전하여 안타와 타점을 올리는 등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하였고, 김태균 본인으로서 첫 프로 소속 팀 우승의 감격을 맛보았다.

[5]

김별명[편집]

김태균은 2005년 시즌 팬들 기대에 비해 많은 홈런을 치지 못했고, 더불어 결정적인 찬스에서는 장타보다 단타가 많았는데, 그 당시 인터넷 상에서 그의 활약을 비난하는 뜻으로 ‘김똑딱’이라 불리기 시작한 것이 ‘김별명’의 시작이다. 이후 2011년 시즌 도중 성적 부진과 일본 지진 및 방사능 여파로 31게임을 뛰고 지바 롯데 마린스와 계약 해지를 한 후 퇴단하였다. 그때부터 팬들의 뇌리에는 줄곧 지진이 겁나 도망친 ‘김도망’ 이라는 별명이 고착화되었다. 디시인사이드 야구 갤러리 및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그의 활약과 기행을 엮어 여러 버전의 별명을 만들게 됐다.

  • 김도망: 2011년 3월 일본 도호쿠 지방 태평양 연안에 지진이 났다. 일본에는 야구, 축구, 배구 등 수많은 스포츠 용병이 상주했었고 (한국 야구인으로는 임창용 박찬호 이승엽) 다른 선수들은 그 시즌을 충실히 보냈지만, 김태균은 부상과 성적 부진으로 팀에 폐를 끼치기 싫다는 이유로 중도 퇴단하였다. 그러나 실제는 일본 지진으로 인한 두려움으로 퇴단했다는것이 팬들 사이에서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이런한 김태균의 행동은 한국인으로 일본야구에 큰 족적을 남긴 장훈 선생님 조차도 2011-09-05 박동희와의 인터뷰에서 "참, 부끄럽습니다" 라며 탄식하였다. 그때부터 팬들은 김태균 기사에 김도망 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이것은 김태균의 가장 유명한 별명이다.
  • 김멀뚱, 김뜬공 : 경기에서 4연타석 삼진(김멀뚱)이나 플라이 아웃(김뜬공)을 기록하여 지어졌다.
  • 김고자, 김쉴드 : 2007년 5월 2일, 대구 삼성전 4회말 1사 상황에서 김태균이 수비중에 1루 강습 땅볼 타구에 중요 부위를 맞고 고통스러워 하던 동영상이 UCC를 통해 전해지면서 '김고자'라는 별명이 지어졌다. 그 경기 이후 김태균은 중요 부위를 보호하기 위해 컵을 착용하고 경기에 뛰었는데 ‘김쉴드’라는 별명이 더 붙게 되었다.
  • 김개콘, 김꽈당 : 2007년 4월 6일 대전에서 열린 개막전에서 김태균이 11회 말에 땅볼을 치고 1루로 진루하는 중 넘어져서 소위 '몸개그'를 보여 줬다 하여 붙여진 별명이다.
  • 김음흉 : 2008년 6월 25일, KIA와의 청주 홈 경기에서 5타수 2안타(끝내기 안타 기록) 1홈런 3타점을 기록하였다. 경기 종료 후 중계를 담당한 KBS N 스포츠의 오늘의 선수로 선정된 후 송지선 아나운서와의 인터뷰 도중 별명에 대한 질문에 김태균 선수가 가장 싫어하는 별명으로 "김꽈당, 김고자"라고 대답하자 그 다음날 인터넷 상을 통하여 붙여진 별명이다.
  • 김실연 : 2006년 8월 8일, KBS노현정 아나운서의 결혼 소식을 접한 김태균이 스포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말도 없이 시집가다니….”라는 아쉬운 멘트를 남긴 후 8월 11일까지 13타석 9타수 무안타 행진을 계속하자 붙여진 별명이다.
  • 김해결 : 2008년 4월 27일, 대전에서 열린 두산과의 홈 경기에서 2-3으로 뒤진 9회말 1사 1루에서 두산 임태훈의 3구 141km짜리 직구를 그대로 잡아당겨 좌측 담장을 훌쩍 넘기는 역전 투런 홈런을 쏘아 올려 4-3 역전승을 이끌자 언론에서 붙인 별명이다.
  • 김담비, 김류담, 김결림 : 2009년 1월 8일, WBC 2기 대표팀 출범식과 함께 새 유니폼을 발표할 때 김태균이 방망이를 들고 포즈를 취하다 갑작스런 담이 결리자 네티즌들이 붙인 별명이다.[6]
  • 김늑대 : 2009년 1월 14일, 네이버 야구 최훈의 프로야구 카툰에서 최훈이 김태균을 의 탈을 쓴 늑대로 묘사하자 붙은 별명이다.[7]
  • 김깜놀, 김식겁  : 2009년 3월 24일,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결승전에서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타자로 나선 고영민이 친 공이 한국 덕아웃으로 떨어지자, 관전하고 있던 김태균이 깜짝 놀라며 펜스 뒤로 주춤하는 모습이 미국 ESPN을 통해 중계되자 붙여진 별명이다.
  • 김도끼 : 2009년 4월 2일, 네이버 야구 최훈의 프로야구 카툰에서 최훈이 김태균에겐 김도끼, 이범호에겐 꽃도끼라 묘사해 붙어진 별명이다.
  • 김방전 : 2010년 8월 2일 김석류 아나운서와의 결혼이 기사로 나온 후 네티즌들이 김석류 아나운서의 트위터를 방문하였고 김석류 아나운서가 일본에서 충전을 하고 왔다는 글을 발견하였다. 이와 시기를 같이 하여 김태균의 성적이 좋지 않았고 컨디션 난조로 링겔까지 맞았다는 뉴스 기사로 인해 김방전이라는 별명을 만들어 내었다.[8]
  • 김잉여 : 2010년 11월 20일, 네이버 야구 최훈의 프로야구 카툰에서 최훈이 김태균을 다른 타자들이 잘 해줘서 꼭 필요 없다는 느낌이 들어 잉여라고 묘사하자 붙은 별명이다.[9]
  • 김가출 : 2012년 시즌 초반, 출루를 많이 하고도 후속 타선 불발로 단 한번도 홈을 밟지 못하면서 붙어진 별명이며 4월 20일 경기에서 출루 후 연경흠의 투런 홈런으로 첫 득점을 기록하였다.
  • 김아웃 : 2012 스프링캠프 때 팀 청백전에서 투수 류현진한테서 1루 견제사를 당해서 붙혀진 별명이다.

그 밖에 김우왕, 김질주, 김소녀, 김얼짱, 김우플, 김당무, 김꾸밈, 김본좌, 김찌질, 김갤러, 김정규, 김비켜, 김매니, 김박사, 김버럭, 김가발, 김짜르트, 김엑박, 김두목, 김푸우, 김보스, 김포기, 김나약, 김도망, 김핑계등 현재 붙여진 별명수가 비공식적으로 500개가 넘어가는 것으로 추정되며 또한, 연예인 야구단 ‘조마조마’에서 활약하고 있는 컬투의 희극인 김태균을 ‘김가짜’, 혹은 ‘김컬투’, NC 다이노스 포수 김태군을 ‘김별멍’, 삼성 라이온즈 내야수 출신의 김태균 코치를 ‘김코치’로 부르는 등 파생된 별명도 있다.

그의 수많은 별명 때문에 2009년에는 별명 200여개가 적힌 티셔츠가 제작되어 판매되기도 하였으며,[10] 가장 좋아하는 별명은 '김질주'이다.[11]

미디어[편집]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활약[편집]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편집]

2006년[편집]

  • 본선 미국전을 포함 총 3경기에 나와 1타수 무안타, 2볼넷, 1득점을 기록하였다.[12]

2009년[편집]

  • 이 대회에서 홈런왕(홈런 3개)와 타점왕(11타점)에 올랐다.[16]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편집]

대만전 4타석 나와 4볼넷을 기록하였다.

연도별 타격 성적[편집]

연도 소속




2

3





도루
실패
희생
번트
희생
플라이

고의
사구
몸에
맞는 볼








O
P
S
2001년 한화 88 289 245 51 82 13 2 20 159 54 2 0 0 0 40 2 4 72 4 .335 .436 .649 1.085
2002년 105 344 298 25 76 11 0 7 108 34 2 1 1 2 41 2 2 103 13 .255 .347 .362 .709
2003년 133 573 479 67 153 24 2 31 274 95 3 2 4 2 79 6 9 106 13 .319 .424 .572 .996
2004년 129 556 473 76 153 26 1 23 250 106 2 1 0 7 70 3 6 99 11 .323 .412 .529 .940
2005년 124 529 461 73 146 33 2 23 252 100 3 1 0 2 60 5 6 73 20 .317 .401 .547 .947
2006년 124 511 423 66 123 27 0 13 189 73 2 0 0 4 82 1 2 89 18 .291 .405 .447 .852
2007년 118 491 393 62 114 13 0 21 190 85 2 1 0 6 90 4 2 70 13 .290 .420 .483 .903
2008년 115 484 410 81 133 27 1 31 255 92 2 0 0 5 64 4 5 67 8 .324 .417 .622 1.039
2009년 95 389 336 63 111 15 0 19 183 62 0 0 0 2 45 4 6 71 12 .330 .416 .545 .961
2010년 지바 롯데 141 614 527 68 141 22 0 21 226 92 0 0 0 9 74 1 4 140 24 .268 .357 .429 .786
2011년 31 119 104 7 26 5 0 1 34 14 0 0 0 1 12 0 2 23 4 .250 .327 .336 .663
2012년 한화 126 513 416 61 151 24 0 16 223 80 3 1 0 5 81 8 11 69 11 .363 .474 .536 1.010
2013년 101 430 345 41 110 24 0 10 164 52 0 3 0 4 73 0 8 67 14 .319 .444 .475 .920
KBO : 11년 1258 5009 4279 666 1352 237 8 214 2247 833 21 10 5 35 725 39 61 886 137 .316 .419 .525 .944
NPB : 2년 172 733 631 75 167 27 0 22 260 106 0 0 0 10 86 1 6 163 28 .265 .353 .412 .765
  • 굵은 글씨는 리그 1위

타이틀·수상경력[편집]

주요 기록[편집]

대한민국[편집]

2001년[편집]

2003년[편집]

2008년[편집]

  • 7월 17일 대전 LG 트윈스 전 : 만루홈런 (5회 말 2-3 풀카운트에서 투수 이재영을 상대로)

2009년[편집]

2012년[편집]

일본[편집]

첫 기록[편집]

기타[편집]

연봉[편집]

등번호[편집]

KBO[편집]

  • 52(2001년, 2003년 ~ 2009년, 2012년 ~)
  • 10(2002년)

NPB[편집]

  • 52(2010년 ~ 2011년)

주석[편집]

  1. 김태균, 일본프로야구 롯데와 3년 계약 《연합뉴스》 2009년 11월 13일 11:37
  2. 프로야구 한화 -신인 김태균 소리없이 '쑥쑥' 《한국일보》, 2001년 5월 24일 작성
  3. '최다득표' 한화 김태균, 3년 만에 황금장갑 "내년에는 50홈런 치겠다" 《마이데일리》, 2008년 12월 11일
  4. 김태균 홈런 한방에 ‘태균버거’가 50엔?…“8분 만에 52개 동났다”
  5. 일본행 이대호 ‘이도망’ 돼선 곤란한 이유 - 데일리안
  6. (런다운) 김태균의 굴욕…배트 돌리다 담 걸려 2008년 1월 9일 기사 댓글 참고
  7. 최훈 스페셜 (2008 팀별정리) 한화 이글스
  8. MLB파크
  9. 최훈 스페셜 [AG 카툰군대 안가도 되겠죠?]
  10. [10번타자 한화, 김태균 별명 활용한 '김별명 티셔츠' 판매 外], 《스포츠서울》, 2009년 6월 5일 작성, 7월 23일 확인
  11. [런다운 푸하! 별명이 배꼽 잡네] 《스포츠동아》2008년 12월 9일 작성
  12.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공식 홈페이지 - 기록
  13. WBC 공식 홈페이지 2009년 3월 16일 경기 박스스코어
  14. WBC 공식 홈페이지 2009년 3월 18일 경기 박스스코어
  15.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공식 홈페이지 2009년 3월 22일 경기 박스스코어
  16. [1][WBC] 김태균, 이승엽 이어 'WBC 홈런-타점왕' 해외진출 발판
  17. 김태균, 2안타 추가로 통산 56번째 '1000안타' 달성 《Osen》, 2009년 4월 21일 작성
  18. 김태균 억대연봉 합류 《중도일보》, 2004년 1월 6일 작성
  19. <프로야구소식> 김태균, 연봉 1억5천500만원에 재계약 《연합뉴스》, 2005년 1월 11일 작성
  20. <프로야구소식> 한화 김태균, 2억4천만원에 계약 《연합뉴스》, 2006년 1월 31일 작성
  21. <프로야구> 김태균, 역대 7년차 최고 연봉 《연합뉴스》, 2006년 12월 20일 작성
  22. <프로야구소식> 한화 김태균, 2억9천만원에 재계약 《연합뉴스》, 2008년 1월 22일 작성
  23. 김태균, 4억2000만원 연봉 재계약 《스포츠조선》, 2009년 1월 21일 작성
  24. [사진지바 롯데 사장,'김태균 영입해 기쁘다'] 《OSEN》, 2009년 11월 13일 작성
  25. '15억원 사나이' 김태균, 사실상 영원한 한화맨됐다 《OSEN》, 2011년 12월 13일 작성
  2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18&aid=0002702741 한화 김태균, 내년 연봉도 15억원 '동결' ] 《연합뉴스》, 2012년 12월 17일 작성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