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흔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홍성흔
Hong Seong Heun
두산 베어스 No.22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생년월일 1976년 12월 12일(1976-12-12) (37세)
출신지 강원도 횡성군
신장 180 cm
체중 96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1루수,포수,좌익수
프로 입단 연도 1999년
드래프트 순위 1999년 1차 지명 (두산 베어스)
첫 출장 KBO / 1999년 5월 6일
잠실LG
획득 타이틀
  • 1999년 신인왕
  • 2001년 골든 글러브 (포수)
  • 2008년 골든 글러브 (지명타자)
  • 2009년 골든 글러브 (지명타자)
  • 2010년 골든 글러브 (지명타자)
  • 2011년 골든 글러브 (지명타자)
계약금 2억 원 (FA 계약)
연봉 4억 원 (2013년)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올림픽 2000 시드니
WBC 2006
아시안게임 1998 방콕
2002 부산
월드컵 1998 이탈리아
메달 기록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야구
아시안 게임
1998 방콕 야구
2002 부산 야구
올림픽
2000 시드니 야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6 샌디에이고 야구

홍성흔(洪性炘, 1976년 12월 12일(음력 10월 21일) ~ )은 강원도 횡성군 출신의 한국 프로 야구 두산 베어스의 선수이다. 경희대학교를 졸업한 뒤, 1999년 두산 베어스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하여 2008년까지 활약하였다가, 시즌 후 FA 자격을 얻어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였다. 두산 베어스에 입단한 이래 부동의 주전 포수였으나, 2008년부터는 주로 지명타자로 출장하고 있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시즌 연속 골든 글러브 상 부문을 수상하였다. 2012년 11월 19일 프로 데뷔 후 2번째 FA 자격을 얻어 4년만에 친정 팀 두산 베어스와 계약하면서 바로 주장직책을 맡았고, 김동주가 부진한 틈을 타 맹타를 휘두르면서 두산 베어스의 2년연속 준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 2014년 송일수감독 경질후 신임 김태형감독이 홍성흔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오재원에게 홍성흔의 주장직을 물려주었다.

부활한 2014 시즌[편집]

홍성흔은 2013시즌 저조했던 득점권타율과 홈런등을 향상시키기 위해 스프링캠프부터 많은 훈련을 하였고 시즌 시작전 목표를 20홈런 80타점으로 잡았다. 홍성흔은 작년보다 좋은 득점권타율을 기록하였다. 특히 장타율 출루율 OPS 등 타격부문에서 2013시즌보다 향상하였다. 비록 팀이 6위에 머물며 4강에 진입하지는 못하였으나 홍성흔 개인에게 있어서 작년 0.299였던 타율이 0.315가 되는등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홍성흔은 2014시즌 124경기에 출장하여 141안타 20홈런 82타점을 기록하였다. 특히 20홈런은 2010년 26홈런이후 첫 20홈런의 고지를 기록하였다.

학력[편집]

선수 활동[편집]

프로 입단 이전[편집]

경희대학교 재학 중 2000년 하계 올림픽, 1998년 아시안 게임 등 각종 대회의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활약하며, 1998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 획득에 기여하였다.

두산 베어스 시절[편집]

경희대학교를 졸업한 후 1999년두산 베어스에 입단하였고, 곧바로 주전 자리를 차지했으며 두산 베어스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입단 이후에는 그가 주전 포수 자리를 거의 독점하여 주전에서 밀린 진갑용이도형은 트레이드로 두산을 떠났다. 공수 양면에 능하고 파이팅이 넘치는 플레이와 잘생긴 외모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2005년부터 포수 기량 문제로 김경문 감독과 잡음이 일기 시작했고 2007년 허벅지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해 백업 포수였던 채상병이 주전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이 때부터 주로 지명타자로 나왔다.

홍성흔 자신은 포수 포지션에 상당히 애착이 강해 두산 베어스 구단에 트레이드까지 요청하기도 했으나, 결국은 김경문 감독의 뜻을 받아들여서 2008년 포수에서 물러난 뒤, 지명타자로 포지션을 전격 변경하였다. 2008년 시즌 3할3푼1리(2위) 8홈런 63타점을 기록하여 골든 글러브 상(지명타자)을 수상하였다.[1] 이는 그 이전 2004년에 최다 안타왕에 올랐던 경험을 살려 뛰어난 성적을 내었던 것이다.

롯데 자이언츠 시절[편집]

2009 시즌[편집]

2008년 시즌이 끝나고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은 후, 자신이 오랫동안 몸담았던 두산 베어스를 떠나 롯데 자이언츠와 연봉 2억 7,900만원에 4년간 계약하였다. 배번은 49번으로 확정되었다. 그의 롯데행은 정수근이 도와 주었다. 그 때 두산 베어스에서는 보상 선수로 3루수 이원석을 지명하였다. 당시 집 앞으로 리무진을 보내여 롯데호텔 VIP룸으로 데려온 후 끈질기게 그를 설득하면서 열의를 보인 롯데 자이언츠를 그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준 구단'이라며 고마워했고, 구단이 원하는 포지션에서 뛰겠다며 기쁨을 표시했다. [2] 롯데 이적 이후 2009 시즌 초에는 장타를 노리는 타격 매커니즘, 무릎 부상, FA에 대한 부담 등으로 잠시 부진하기도 했다.(당시 롯데에서 그의 보상 선수로 두산으로 이적한 3루수 이원석이 롯데를 상대로 맹활약하는 장면을 벤치에서 혼자 쓸쓸히 지켜보기도 했다) 하지만 곧바로 복귀하여 시즌 내내 절정의 타격감을 유지하여 타율 0.371(2위) 12홈런 64타점의 호성적을 냈다. 특히 2009년 7월 16일 사직에서 열렸던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2타점 적시타로 동점을 만들고 10회말에는 끝내기 안타로 이적 후 첫 홈경기 수훈선수로 선정되었다. 시즌 마지막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박용택 선수와의 타격왕 경쟁레이스에서 끝까지 출전을 고수, 2위로 마감했지만 수많은 팬들의 격려를 받았다. 그리고 2년 연속 골든 글러브(지명타자 부문)를 수상하였다.

2010 시즌[편집]

2010 시즌부터 외야수로 전업할 예정이었으나 캠프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였고, 김주찬이 외야 수비의 한 축을 전담함에 따라 보류되었고, 지난 시즌에 이어 계속하여 주전 지명타자로 활약하였다.[3] 2010 시즌에는 스윙폭을 좀더 늘려 장타력을 보강함으로써, 2009 시즌 롯데 이적 첫 해 활약의 옥에 티로 지적되었던, 타율에 비해 적은 타점 생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시즌 전반기가 종료된 2010년 7월 22일의 성적만으로도 이미 97타점 (홈런 22개)을 달성하게 되어 지난해 시즌 전체 기간동안 올린 타점 64점 (홈런 12개)을 훌쩍 넘어섰다. 개인통산 기록 면에서도 7월 6일 시점의 성적 (87타점, 홈런 21개)만으로도 최초로 한시즌 20홈런 고지를 넘기게 되었고, 데뷔 이후 가장 많은 타점(종전 최고 타점은 2004년 86타점)을 기록하게 되었다. 3번 타순에 주로 배치되어 이대호, 카림 가르시아로 이어지는 롯데 클린업 트리오의 한 축을 담당하였는데, 이 클린업 트리오는 이른바 홍대갈로 불렸고, 이 클린업 트리오는 전반기 올스타전 전까지의 성적만으로도 74홈런, 249타점을 합작하며 맹위를 떨쳤다. 2년차 징크스를 겪지 않고 오히려 더 향상된 기량을 보여주어 FA 제도가 생긴 이래 롯데 자이언츠에서는 가장 성공한 FA 선수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큰 활약에 힘입어, 홍성흔은 2010 올스타 투표에서 사상 최다 득표 (818,269표 득표)를 기록하는 영예도 누렸다. 그는 이러한 팬들의 호응에 보답하고자 7월 24일 올스타 전에서 등 뒤에 최다득표 감사 라고 적은 특수 주문 유니폼을 입고, 턱수염을 단 채 출전하는 깜짝 이벤트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7월 24일 올스타전에서는 동군 지명타자로 출전하여 홈런 2개와 3타점을 기록하였고, 9회말에 내야안타로 출루하여 황재균의 안타 때 끝내기 득점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하였다. 그리하여, 2006년에 이어 2010년 올스타전 MVP가 됨은 물론 올스타전 역사상 최초로 이적 전 팀(두산 베어스)과, 이적 후 팀(롯데 자이언츠)에서 각각 올스타전 MVP가 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2010년 7월 30일에는 역대 2번째로 93경기만에 시즌 100타점을 달성하였다. 이는 89경기만에 100타점을 기록했던 2003년의 이승엽 다음으로 빠른 기록이다. 100타점 달성 이후에도 8월 월간 타율 .370을 기록하는 등 전혀 페이스가 떨어지지 않아, 이승엽의 KBO 최고 타점기록(2003년, 144타점)을 경신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선수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2010년 8월 15일 광주구장 대 KIA 타이거즈전에서 9회초 윤석민선수에게 손등에 사구를 맞아 근처 병원으로 옮겨졌는데, 왼손목에 골절상을 입은 것으로 판명되어 그 이후 1달 넘게 출장하지 못하였다. 부상을 입은 8월 15일 당시의 기록은 타점 113점 (1위), 홈런 26개 (2위), 타율 .356 (2위)였다. 부상을 입은 당시에는 시즌 아웃까지 우려될 만큼 부상의 정도가 심각하였으나, [4] 본인의 강한 재활 의지로 한달만에 부상에서 완쾌되었고, 9월 17일 대 한화 이글스전에서 32일만에 복귀하게 되었다.

2011시즌[편집]

신임 양승호 감독이 홍성흔을 좌익수로 기용함에 따라 초반 엄청난 타격 슬럼프에 빠졌다. 이후 지명타자로 다시 출장하면서 페이스를 끌어올렸으나 2010 시즌의 26홈런을 친 장타력은 온데간데 없었다. 후반에는 병살을 한경기 2병살등 계속 병살을 생산하여 1시즌 22병살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또한 안경현의 통산 누적병살 갯수도 갱신하여 1위를 차지하였다. 시즌기록은 .306 6홈런 67타점. 2012년 시즌을 마치고 다시 FA 자격을 얻었으나, 롯데와 이견을 보여 친정 팀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이대호가르시아, 홍성흔의 각 글자를 딴 롯데 자이언츠"홍대갈"타선은 홍성흔의 이적으로 완전히 해체되었다.[5]

친정팀 두산 베어스 복귀 후[편집]

2013 시즌[편집]

2012년 11월 18일 친정팀 두산 베어스와 4년 31억으로 FA계약을 체결하였다. 두산 베어스는 홍성흔의 보상선수로 김승회롯데 자이언츠로 이적시켰다. 이적하자마자 두산 베어스의 주장이 되었다. 시범경기에서는 그다지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며 기대했던 두산 베어스 팬들에게 실망만 사는 듯 했다. 4월 4일 SK 와이번스와의 잠실 홈 경기에서 8회 무사1루에 최영필을 상대로 복귀 후 첫 홈런을 신고하였다. 그러고 다음날 LG 트윈스와의 원정경기에서 5회 2사 만루 풀카운트 접전끝에 리즈의 몸쪽 공이 삼진판정이 되자 당시 주심이던 문승훈구심에게 방망이와 헬멧을 집어 던지면서 "이게 어떻게 스트라이크냐?"라는 말과 함께 거칠게 항의를 하자 문승훈구심은 바로 퇴장선언을 내렸다. 2013시즌 첫 퇴장이자 본인의 프로데뷔 이후 첫 퇴장이었다. 그 이후로도 부진에 시달리다가 5월 3일 LG 트윈스와의 홈경기에서 4회 선두타자로 나와 상대투수 임찬규를 상대로 시즌 2호홈런을 신고하고 그 이후에는 팀에 활력소를 넣으며 본인의 임무는 충실히 하고 있다. 시즌초에는 주로 5번타자로 나왔지만, 4번타자로 나왔던 김동주가 여전히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해 4번타자로 복귀하였다. 그러나 본인도 4번에서 방황하는 모습이 보여 다시 5번으로 내려가고, 4번타자는 상대투수에 따라 오재일, 최준석이 출장한다. 2013년 9월 18일 한화이글스와의 잠실 홈 경기에서 4회 한화투수 송창현을 상대로 6-4-3으로 이어지는 병살타를 만들어내며 한국프로야구 통산 200병살타라는 독보적인 대기록을 작성하게 되었다. 2008년시즌 이후 5년만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어 냈으며, 이는 홍성흔이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기 바로 전년도가 최근 한국시리즈 진출이었으며, 두산 베어스로 복귀한 2013년시즌에 주장으로써 5년만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일궈냈다.

2014 시즌[편집]

2년연속으로 두산 베어스의 주장완장을 찼다. 2013년시즌이 끝나자 팀의 주축선수였던 이종욱, 최준석, 손시헌이 떠나고, 김진욱감독마저 경질이 되면서, 그의 부담은 배가 되었다. 5월 6일 롯데자이언츠 투수 셰인 유먼을 상대로 개인통산 1000타점을 달성하였다. 이는 한국프로야구 통산 10번째 기록이며, 종전기록은 롯데자이언츠장성호였다. 시즌 초에 부진을 겪었으나 현재 칸투의 뒤를 받치는 5번타자로서, 칸투가 없을 때에는 4번타자로서, 또 후배들을 이끄는 주장으로서의 제 몫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정수빈이 홍성흔의 조언을 듣고 타격 슬럼프에서 탈출한 바 있다. 하지만 타고투저에다가 팀의 약한 불펜진으로 인해 팀 성적이 좋지 않았고 결국 2006년 이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다.

주요 기록[편집]

기록 날짜 상대팀 장소 경기 내용 종전 기록 기타
통산 1000안타 2008, 5, 7 우리 히어로즈 목동 4회 2루타 (상대 투수:마일영) 53번째
통산 1100안타 2008, 9, 16 SK 와이번스 잠실 2회 2루타 (상대 투수:채병룡) 46번째
통산 1300안타 2010, 4, 27 넥센 히어로즈 사직 1회 2루타 (상대 투수:김성현) 30번째
통산 1400안타 2010, 8, 3 두산 베어스 잠실 7회 1루타 (상대 투수:왈론드) 22번째
통산 700타점 2010, 5, 8 두산 베어스 사직 2회 2점홈런 (상대 투수:홍상삼) 22번째

갈매기 타법[편집]

그는 FA 자격을 얻고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면서 그 해 겨울 캠프 때 방망이를 든 왼손이 중견수 쪽으로 뻗고 오른손은 1루 덕아웃 쪽으로 뻗는 타법을 고안하였다. 처음에는 포수의 얼굴을 가리는 동작 때문에 사용해야 할지 말지를 고민했으나 그 해 5월 12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 때부터 자신이 개발한 타법을 선보였고, 이후 그의 타율이 무려 0.411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그의 특이한 타격법이 '갈매기가 날개짓 하는 것과 비슷하다'며 팀의 연고지 부산을 상징하는 갈매기의 이름을 붙인 갈매기 타법이라 부르게 되었다.[6]

에피소드[편집]

  • 홍성흔은 2009년 9월 25일 잠실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4연속 볼넷으로 출루 기록하였다. 당시 홍성흔은 상대 팀의 박용택과 타격왕 경쟁 중이었는데, LG 트윈스 투수들은 박용택의 타격왕을 밀어주기 위해 홍성흔에게 노골적으로 볼넷을 허용하였고, LG 김재박 감독 또한 박용택을 출전시키지 않아 그 날 경기에서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홍성흔이 볼넷으로 1루에 나갈 때마다 야유를 퍼부었다. 경기가 끝난 후 홍성흔은 인터뷰에서 "내가 부산에서 못친 게 후회된다. 내가 타격 1위였어도 팀 동료들이 도와줬을 것"이라며 자책하였지만, 롯데 자이언츠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창피한 작전"이라며 분노하였다.[7]
  • 2009시즌 홍성흔은 3할 7푼 1리의 높은 타율을 기록하였으나 타점은 64점에 그쳤다. 이는 앞 타순의 이대호가 100타점을 기록하는등 본인에게 찬스가 많이 주어지지 않은 탓도 있으나 짧은 스윙폭으로 인해 장타력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에 홍성흔은 2010시즌 시범경기부터 스윙폭을 좀더 늘린 스윙을 선보였으나 아주 낮은 타율을 기록하며 부진하였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된 뒤 새로운 타격 폼에 적응하여 시즌 중간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이대호와 타격 주요 부문에서 1위를 다투는등 맹타를 휘둘렀다.
  • 2008년시즌부터 2010시즌까지 홍성흔은 3시즌연속 타격2위라는 기록을 남겼다. 자신은 KBO에게 3년연속 타격2위가 세계신기록이라고 말했다.
  • 2011년 3월 8일 부산에서 불법 유턴을 하다 교통사고를 당하였고,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입건되었다. [8]
  • 2013년 4월 5일 잠실 LG전 5회초 레다메스 리즈와의 풀카운트 승부끝에 삼진 아웃을 당하자 문승훈 주심에게 바락바락 성질을 내며 항의를 하다 프로 데뷔 첫 퇴장을 받았다.하지만 KBO에서 징계를 벌금 100만원이라는 솜방망이 징계를 내리면서 많은 야구팬들에게 질타를 받았다.

통산 기록[편집]

연도 소속 팀 타율 경기수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병살타 희생타 장타율 기타
1999 두산
등번호 22
10시즌
0.258 111 353 91 14 1 16 63 47 3 25 61 10 14 0.439
2000 0.290 127 438 127 13 2 10 59 55 10 35 50 12 11 0.397 시드니 올림픽 대표 선수
2001 0.267 122 408 109 18 1 8 48 50 9 32 53 13 12 0.375 포수 골든글러브
2002 0.289 127 432 125 17 0 18 70 51 5 42 63 17 10 0.454 부산 아시안 게임 대표 선수
2003 0.290 73 241 70 12 0 7 36 20 2 15 44 8 7 0.427
2004 0.329 133 501 165 27 2 14 86 62 10 46 70 8 5 0.475 안타 1위, 포수 골든글러브
2005 0.272 115 394 107 17 0 11 74 41 2 32 57 17 7 0.398
2006 0.287 119 390 112 16 0 10 56 36 1 30 49 10 4 0.405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 선수
2007 0.268 80 231 62 11 0 5 39 21 0 34 29 10 9 0.381
2008 0.331 114 423 140 19 2 8 63 45 8 29 35 16 8 0.442 타율 2위,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2009 롯데
등번호 49
4시즌
0.371 119 426 158 33 0 12 64 71 9 54 55 15 7 0.553 타율 2위,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2010 0.350 111 431 151 28 1 26 116 88 2 61 49 18 6 0.601 타율, 타점, 안타 2위, 득점 4위
홈런 5위,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2011 0.306 132 474 145 24 2 6 67 70 2 56 80 22 5 0.403 타율 8위, 병살타 공동 1위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2012 0.292 113 390 114 20 0 15 74 48 4 49 83 10 3 0.459
2013 두산
등번호 22
1시즌
0.299 127 469 140 21 0 15 72 61 5 63 93 15 6 0.439
통산 15시즌 0.303 1723 6001 1816 290 11 181 987 766 72 603 871 201 116 0.446 통산 병살타 1위
  • 시즌 기록 중 굵은 글씨는 리그 1위 기록

주석[편집]

  1. 'DH 첫 수상' 홍성흔, "김경문 감독님께 감사" 《Osen》, 2008년 12월 11일
  2. 홍성흔의 ‘벼랑에서 FA 롤모델까지’ - 박동희 칼럼
  3. '외야수 변신' 꾀하는 홍성흔의 '주전 도전' OSen 2010.01.21
  4. 롯데 홍성흔 부상으로 시즌 마감 연합뉴스, 8.15.
  5. ‘홍대갈 해체’ 롯데…SKC포 새로이 중무장? - 데일리안
  6. 홍성흔 ‘갈매기 타법’ 날개 달고 훨훨 《경향신문》 2009년 6월 24일 17:40 작성, 2009년 6월 25일 22:40 확인
  7. "내가 못해서…" 홍성흔, 남탓 대신 자책 《마이데일리》 2009년 9월 26일 10:38 작성, 2009년 9월 27일 0:42 확인
  8.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 입건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