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용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임창용
Lim Chang-Yong
삼성 라이온즈 No.37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생년월일 1976년 6월 30일(1976-06-30) (38세)
출신지 광주광역시
신장 180 cm
체중 80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1995년
드래프트 순위 지역 우선 드래프트
첫 출장 KBO / 1995년 6월 18일
대구삼성
NPB / 2008년 3월 28일
진구구장요미우리전 계투
MLB/ 2013년 9월 7일
리글리 필드밀워키전 계투
마지막 경기 NPB / 2012년
MLB / 2013년
획득 타이틀
  • 1998년·2002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
  • 1999년 최우수 평균자책
  • 1998년·2004년 세이브왕
계약금 9,000만 원
연봉 5억 원 (2014년)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올림픽 2000 시드니
WBC 2009 로스앤젤레스
아시안게임 1998 방콕
2002 부산
아시아선수권 2003 삿포로
메달 기록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야구
아시안 게임
1998 방콕 야구
2002 부산 야구
올림픽
2000 시드니 야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9 로스앤젤레스 야구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2003 삿포로 야구

임창용(林昌勇, 1976년 6월 30일(음력 6월 4일) ~ )은 대한민국의 프로 야구 선수이며, 한국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소속 선수(투수)이다.

한국프로야구 경력[편집]

해태 타이거즈 시절[편집]

광주 출신으로 광주진흥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5년 지역 우선 드래프트로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여 첫 해를 대부분 2군에서 보냈다. 당시 해태 타이거즈의 2군 감독이였던 김성근 감독의 밑에서 혹독한 훈련을 거치며, 입단 2년차부터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1996년 20살 임창용과 34살 김정수가 뭉쳐, 마치 메이저 리그뉴욕 양키스마리아노 리베라-존 웨틀랜드처럼 활약하듯이 불펜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 정규 시즌 1위, 팀의 8번째 우승에 공헌했다. 1997년 풀 타임 마무리로 데뷔한 임창용은 14승 8패 26세이브를 기록하며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우승에 공헌했다. 이 해 불펜과 마무리를 오가며 135이닝을 소화하였는데 이는 1993년 선동열이 125이닝을 소화한 것보다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창용 불패"의 신화를 만들어 낸다. 1998년에는 시즌 최다인 34세이브를 기록하며 22세 나이로 역대 최연소 구원왕에 올랐다.[1]

삼성 라이온즈 시절[편집]

트레이드 입단[편집]

1990년대 내내 강타선에 비해 약한 투수력으로 번번히 우승을 놓쳤던 삼성 라이온즈투수진 보강을 위해 팀의 간판 타자 양준혁을 트레이드 카드로 내걸 정도로 2년간 막 신예로 떠오른 임창용을 간절히 원했다. 거기에 IMF 이후 해태 타이거즈가 운영난에 시달린 것과 맞물려 1998 시즌 뒤 삼성 라이온즈양준혁·황두성·곽채진 3명에 현금 20억 원을 더한 조건으로 해태 타이거즈와 3:1 현금 트레이드에 합의하였다. 이는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대 규모의 트레이드였다. 이 사건으로 양준혁이 트레이드를 거부했다가 김응용 감독의 만류로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1999년~2004년[편집]

1999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보낸 첫 시즌에는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면서 38세이브와 평균 자책 2.14를 기록하여 두 부문 모두 리그 1위를 기록했다. "위기 상황 때마다 부르면 항상 나온다"는 뜻으로 자사의 휴대폰 브랜드인 "애니콜 (Anycall)"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혹사에 가까울 만큼 많은 경기, 많은 이닝을 소화해 냈다. 2000년까지 삼성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한 임창용은 두산 베어스진필중과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마무리 투수 양대 산맥으로 꼽힐 정도로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1][2][3][4][5]

2001년부터 그는 선발로 보직을 변경했다. 2001 시즌 14승, 2002 시즌 17승, 2003 시즌 13승을 기록하는 등 3년 연속 2자릿수 승수를 쌓으며 김진웅, 배영수와 함께 삼성의 주축 선발 투수로 활약하였다. 특히 2002 시즌에는 삼성 라이온즈가 정규 시즌 및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

한편, 그는 국가 대표로도 많은 활약을 펼쳤는데,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등 세 개의 국제 대회에 출전하여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데에 큰 기여를 하였다.

2003 시즌이 끝난 뒤 선동열이 삼성의 수석 코치 겸 투수 코치로 새롭게 부임하면서 그는 다시 마무리 투수로 보직을 옮겼다. 그 해 임창용은 정규 시즌 36세이브, 평균자책 2.01을 기록하며 여전히 최강 마무리 투수임을 확인시켰다. 하지만 시즌 막바지에 구위가 떨어지면서 포스트시즌에서는 좋지 못한 기량을 보여 주었다. 2004 시즌이 끝난 뒤 FA 자격을 얻은 임창용은 일본 프로 야구 진출을 모색했다. 당시 일본 구단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2002년 활약상의 비디오테이프를 전달하였으나 계약을 이루지못했고, 그의 높은 몸값에 대한 부담과 그 해 포스트 시즌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점 등이 빌미가 되어 대한민국의 다른 구단에서 선뜻 그의 영입을 조심스러워했었다. 결국 삼성 라이온즈에 잔류하기로 했으며 심정수, 정민태에 이어 리그 전체에서 고액 연봉 3위인 2년간 18억 원(계약금 8억 원, 연봉 5억원)을 기록하였다. 여기서 연봉 5억 원은 전년 시즌과 동일한 금액이다.[6][7][8][9][10][11][12]

2005년~2007년[편집]

2005 시즌선동열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 부임한 첫 시즌이자 임창용이 FA 계약 후 맞이한 첫 시즌이었다. 그는 다시 선발 투수로 보직을 옮겼지만,[1] 2004 시즌 말부터 계속된 제구력 및 구위의 난조로 5승 8패 3홀드, 평균 자책점 6.50이라는 그의 프로 생활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였다. 이것은 그에게 혹사의 후유증이 드러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 것이기도 했다. 2005 시즌 도중 팔꿈치 부상을 당한 임창용은 결국 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13][14] 2006 시즌에는 재활에만 전념하였으며,[6] 그 해 시즌 마지막 경기가 되어서야 1군에서 등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006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선 연장 12회에 구원 투수로 등판해 한화의 중심 타자 김태균을 상대로 148km/h의 강속구를 뿌리며 삼진을 잡아 조금씩 부활을 알렸다.

2007 시즌, 에이스 배영수가 토미 존 수술을 받아 재활군에 머무른 가운데 구단과 팬은 선발 투수 임창용에게 더욱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기량은 회복되지 못했고, 5승 7패 3홀드, 평균 자책점 4.90이라는 성적으로 2005 시즌과 거의 동일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일본 프로 야구 진출[편집]

2007년에도 자기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 실망스런 성적을 내면서 뭔가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환경과 동기 부여를 찾게된다. 고민 끝에 임창용은 일본 프로 야구 진출을 다시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2004년 시즌 후 소속 팀 삼성 라이온즈과 맺었던 2년 FA 계약 기간이 끝나는 시점인데다 삼성 구단은 그가 해외 진출을 원할 경우 조건 없이 풀어 주기로 미리 합의해 놓았었기에 일본 진출을 다시 시도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2007년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가 끝나자마자 그는 일본 진출을 하고 싶다고 구단 측에 말했고, 흔쾌히 동의를 받았다. 2005년부터 좋은 활약을 펼치지 못했을 뿐더러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단 새로운 리그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 더 중요했기에 “인생의 황금기는 한 번이 아니라고 들었다. 정체된 나를 깨우고 싶었다.”라는 말을 남기며, 몸값이 낮더라도 상관없이 어떻게든 일본에 진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6][15]

일본 프로 야구 팀 중 센트럴 리그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가 그에게 가장 먼저 관심을 보였다. 2007 시즌이 끝난 뒤 야쿠르트는 에이스 투수 2명, 용병 세스 그레이싱어와 재계약에 실패하고, 좌완 이시이 가즈히사세이부 라이온스로 이적하면서 투수진이 크게 약화되었기에 임창용의 영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16] 임창용은 야쿠르트와 2년 간 연봉 1,500만 엔(당시 1억 2,400만 원)의 조건으로 계약에 합의함으로써 일본 프로 야구에 진출하였다.[17]

일본 프로 야구 경력[편집]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절[편집]

야쿠르트로 이적한 임창용은 팀의 간판 마무리 투수로서 2008년 첫 시즌부터 뛰어난 활약을 하였다.[18][6][13]

2008년 요미우리와의 개막 첫 경기 때 3번째 투수로 등판했으나, 마무리 이가라시 료타의 부상으로 바로 그 다음날 마무리로 등판하면서 일본 진출 후 첫 세이브를 따냈다. 이 날 첫 삼진을 잡은 선수는 놀랍게도 이승엽이었다. 인상적인 피칭을 보여 줌으로서 현재까지도 팀의 주전 마무리로 2009년에는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도가 생긴 이후 처음으로 팀이 진출할 수 있었던 것에 일조했다. 팬들로부터 야쿠르트 "수호신"이라는 말과 함께 "미스터 제로", "이무타임"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의 강속구는 마치 뱀처럼 빠르고 꾸불꾸불하게 지나가는 것 같다고하여 "뱀직구"라 불리며, 최고 구속은 일본에서 세 번째로 빠른 160km/h이다. 일본에 진출한 한국 선수 중 최초로 올스타전 팬 투표 부문 1위를 기록하며 올스타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이렇듯 일본 진출 2년 만에 스스로 퀼리티를 높여 실력을 인정받고 첫 해 기본 연봉 30만 달러, 2010년 50만 달러(추정)에서 2010년에는 200% 증가한 기본 연봉 160만 달러에 재계약했다. 그러나 2012년 시즌 중 발생한 팔꿈치 부상으로 재활에 전념했으나 결국 그 해 11월 15일 야쿠르트에서 방출되었다. 이후 팔꿈치 수술을 받은 그는 미국 진출을 전격 선언하였다.

메이저 리그 경력[편집]

시카고 컵스 시절[편집]

2012년 12월 14일 미국 메이저 리그시카고 컵스와 계약했다. 이로써 역사상 3번째로 한국 프로 야구, 일본 프로 야구, 미국 메이저 리그 순으로 활약하게 된 선수가 됐다. 이후 팔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한 후 루키 리그부터 시작하여 트리플 A까지 올라와 마이너 21경기에 등판하여 22와 1/3이닝 동안 13피안타 4실점 평균자책점 1.61을 기록했다. 시카고 컵스 구단에서는 확대 엔트리를 시행한 후 2013년 9월 5일 우완 셋업맨 마이클 보우든을 지명할당 조치하고 임창용을 메이저로 승격시켰다.[19] 이로써 임창용은 한국인으로는 14번째 메이저 리거가 되었다. 2013년 9월 7일 홈 구장인 시카고 리글리 필드에서 열린 밀워키전에서 3:4로 뒤진 7회 초에 등판하여 ⅔이닝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을 기록했다. 최고 구속은 93마일(150km), 14구를 투구(스트라이크 7개)했다. 1피안타는 야쿠르트에서 함께하였던 좌타 외야수 아오키 노리치카에게 허용한 것이었다.[20] 2005년 뉴욕 메츠에 진출한 구대성이 세운 한국인 최고령 메이저 리그 데뷔 기록을 경신했으며, 컵스 구단에서 데뷔한 선수들 중 조 베리(투수)에 이어 2번째로 나이가 많다고 말했다.[21] 2013년 12월 3일 논텐더로 방출되었다.[22]

이후에도 시카고 컵스에 초청선수 자격으로 재합류한 뒤 시범경기에 등판하여 메이저 재진입을 노렸지만 마이너로 강등당하자, 결국 구단에 방출을 요청하여 시카고 컵스와 완전히 결별했다. 곧바로 귀국한 뒤 삼성 라이온즈에 복귀했다.

삼성 라이온즈 복귀 후[편집]

임창용은 삼성 라이온즈 복귀 이후 2014년 4월 13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안지만에 이어 등판하여 2408일만에 구원승을 달성하였으며,[23] 5월 4일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한일 통산 300 세이브를 기록하였다.[24] 이후 받은 격려금 2000만원을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 기부하였다.[25]

소속 발자취[편집]

프로 팀 경력[편집]

국가 대표 경력[편집]

주요 기록[편집]

기록 날짜 소속 구장 상대팀 상대 타자 경기 결과 경기수 달성 당시 나이 기타 주석
500경기 출장 2007. 5. 8 삼성 잠실 두산 30세 11개월 4일 역대 15번째

연도별 성적[편집]

연도 소속















고의
사구








평균
자책점
WHIP 비고
1995년 해태 14 2 0 0 0 2 0 0 .000 29.1 37 0 5 0 3 16 1 0 19 19 5.83 1.43
1996년 49 7 0 0 7 7 0 0 .500 114.2 91 8 38 1 6 78 4 0 48 41 3.22 1.12
1997년 64 0 0 0 14 8 26 0 .636 135.0 93 6 36 7 6 120 1 0 44 35 2.33 0.96
1998년 59 0 0 0 8 7 34 0 .533 133.2 90 4 30 8 12 141 2 0 35 28 1.89 0.90
1999년 삼성 71 0 0 0 13 4 38 0 .765 138.2 91 10 29 3 7 141 3 0 33 33 2.14 0.87
2000년 52 0 0 0 5 4 30 0 .556 88.2 58 2 22 2 9 95 3 1 19 15 1.52 0.90
2001년 30 29 1 1 14 6 1 0 .700 184.2 169 25 62 7 17 136 2 1 88 80 3.90 1.25
2002년 36 29 0 0 17 6 2 0 .739 204.1 188 24 34 4 24 160 2 0 82 70 3.08 1.09
2003년 28 26 1 1 13 3 1 0 .812 147.0 141 15 44 1 15 85 1 0 63 58 3.55 1.26
2004년 61 0 0 0 2 4 36 0 271 67.0 51 4 22 1 4 67 0 0 19 15 2.01 1.09
2005년 29 14 0 0 5 8 0 3 .385 91.1 110 11 36 1 15 70 3 1 67 66 6.50 1.60
2006년 1 0 0 0 1 0 0 0 1.000 2.0 3 0 1 0 0 0 0 0 1 1 4.50 2.00 '
2007년 40 21 0 0 5 7 0 3 .417 119.1 138 9 44 1 10 62 0 0 68 65 4.90 1.53
2008년 야쿠르트 54 0 0 0 1 5 33 3 .167 51.0 55 6 9 3 2 50 1 0 18 17 3.00 1.25
2009년 57 0 0 0 5 4 28 5 .556 57.0 40 4 19 4 2 52 2 0 15 13 2.05 1.04
2010년 53 0 0 0 1 2 35 6 .333 55.2 32 3 16 1 2 53 1 0 9 9 1.46 0.86
2011년 65 0 0 0 4 2 32 4 .667 62.1 40 2 22 1 2 69 0 0 15 15 2.17 0.99
2012년 9 0 0 0 0 0 0 3 --- 7.0 6 0 2 0 0 7 0 0 0 0 0.00 1.14
2013년 CHC 6 0 0 0 0 0 0 0 --- 5.0 6 0 7 1 1 5 1 0 3 3 5.40 2.60
KBO : 13년 534 128 2 2 104 66 168 6 .612 1455.2 1260 118 403 36 128 1171 22 3 586 526 3.25 1.14
NPB : 5년 238 0 0 0 11 13 128 21 .458 233 173 15 68 11 9 231 7 0 57 54 2.09 1.03
MLB : 1년 6 0 0 0 0 0 0 0 --- 5.0 6 0 7 1 1 5 1 0 3 3 5.40 2.60
통산 : 19년 778 128 2 2 115 79 296 27 .590 1693.2 1439 133 478 48 138 1407 30 3 646 583 3.10 1.10
  • 2010년 기준,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주요 기록[편집]

KBO[편집]

  • 첫 등판 : 1995년 6월 18일, 대 삼성 라이온즈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전.
  • 최연소 구원왕 : 1998년 22세, 34세이브 기록.
  • 평균 자책점 1위 : 1999년 마무리로서 규정 이닝을 채우며 평균 자책점 1위(2.14) 등극.
  • 최연소 100세이브 : 2000년 4월 14일, 대 해태 전(대구).
  • 3년 연속 30세이브 달성 : 역대 첫 번째로 1998년(34세이브), 1999년(38세이브), 2000년(30세이브)
  • 선발로 전향 : 2001년(14승). 2002년(17승), 2003년(13승).
  • 최연소 150세이브 : 2004년 6월 27일, 대 롯데 전(사직).
  • 프로 통산 2번째(최연소)로 100승150세이브 : 통산 100승-100세이브는 선동열, 김용수, 송진우, 임창용만 해낸 기록이다.
  • 프로 통산 13번째 투수 부문 534경기 출장.

NPB[편집]

MLB[편집]

수상 · 타이틀 경력[편집]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 (2009년)
  • 제13회 일구회 특별상 (2008년)
  •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2년)
  •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2000년)
  • 최고 평균자책점 (1999년)
  • 방콕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98년)
  • 최고 구원 투수 (1998년, 2004년)

등번호[편집]

KBO[편집]

NPB[편집]

MLB[편집]

마이너리그[편집]

  • 8(2013년, 아이오와 컵스 (트리플 A))

방송 출연[편집]

한국 방송[편집]

일본 방송[편집]

  • 2008년 4월 30일 「스왈로스 TV」 임창용 특집 방송.
  • CS후지《프로 야구 뉴스》의 코너〈토요일 밤의 열기〉방송 인터뷰.
  • 야구 전문 주간지《슈칸 베이스볼》특집 기사로 게재.
  • 스포츠 잡지《Sports Graphic Number》인터뷰 기사로 게재.
  • 2009년 7월 26일 NHK《선데이 스포츠》임창용 스패셜.
  • 2009년 12월 22일 TBS 특집 방송《카리스마 백서 2》.

출신 학교[편집]

같이 보기[편집]

참조[편집]

  1. 한국일보 - 2005년 5월 기사 "진필중 · 임창용, 변신이 유죄?"
  2. 김형준의 칼럼 - 2009년 5월 기사 "공포의 ‘3이닝 마무리’ 임창용"
  3. 세계일보 - 2010년 8월 기사 "이용찬, “올해 구원왕도 나야”"
  4. 오승환, 진필중·임창용 ‘전성기 버금’ :: 네이버 뉴스
  5. [프로야구]진필중-임창용 '엇갈린 명암' :: 네이버 뉴스
  6. 조이 뉴스 24 - 2008년 12월 기사 "임창용, 생애 마지막 태극 마크를 위해"
  7. 삼성, 올 겨울 190억원 썼다 :: 네이버 뉴스
  8. 특급 투수 임창용, 왜 외면당했나? :: 네이버 뉴스
  9. 심정수 ‘연봉왕’ 등극 :: 네이버 뉴스
  10. <기자수첩> 임창용 파동과 삼성 프런트 :: 네이버 뉴스
  11. <프로야구> 김동주.배영수, 삭발 결의 :: 네이버 뉴스
  12. <프로야구> 심정수 연봉킹..삼성 역시 최고 부자구단 :: 네이버 뉴스
  13. 스포츠 칸 - 2009년 6월 기사 "임창용 “슬라이더 · 포크볼 각이 나를 세웠다”"
  14. 동아일보 - 2009년 9월 기사 "수술의 기적?… 피나는 노력만 있을 뿐"
  15. 조이 뉴스 24 - 2007년 11월 기사 "일본행 임박 임창용, 개인적으로 큰 의미"
  16. SBS - 2007년 11월 기사 "임창용, 전격 일본 진출… 야쿠르트 계약 임박"
  17. 한겨레 - 2007년 12월 기사 "임창용, 일본 야쿠르트 입단"
  18. OSEN - 2008년 3월 기사 "임창용, 155km 광속구에 일본 깜짝"
  19. 위기 때마다 더 큰 도전…37세 임창용 빅 리그 입성 - 헤럴드경제
  20. 임창용, 인생의 축소판 같았던 ML 데뷔전 - MK스포츠
  21. ML 데뷔전 치른 임창용, 컵스에서도 최고령 기록 경신 - 엑스포츠뉴스
  22. 임창용, 시카고 컵스에서 논텐더 방출 - OSEN
  23. "임창용 1.2이닝 퍼펙트, 2408일만에 구원승", 《스포츠Q》, 2014년 4월 13일 작성.
  24. "-프로야구- 삼성, NC에 역전승…임창용 한·일 통산 300세이브(종합)", 《연합뉴스》, 2014년 5월 4일 작성.
  25. "임창용, 300세이브 격려금 전액 세월호 희생자에게", 《스포츠서울》, 2014년 5월 6일 작성.
  26. WBC 공식 홈페이지 2009년 3월 18일 경기 박스스코어
  27. 공식 홈페이지 2009년 3월 24일 경기 박스스코어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