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호 (19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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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호
Jeon Jun-Ho
NC 다이노스 No.72
전준호.jpg

2006년 현대 유니콘스 선수 시절, 타격연습하는 전준호.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출신지 대한민국 대한민국 경상남도 마산시
생년월일 1969년 2월 15일(1969-02-15) (44세)
신장 180 cm
체중 72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좌투좌타
수비 위치 외야수
프로 입단 연도 1991년
드래프트 순위 1991년 2차 2순위 (롯데 자이언츠)
첫 출장 KBO / 1991년 4월 5일
대구삼성
마지막 경기 KBO / 2009년 9월 26일
잠실LG
획득 타이틀
  • 1993·1995·2004 도루왕
  • 1995 득점왕
  • 1993·1995·1998 골든 글러브
계약금 2천만 원 (1991년 롯데 입단 당시)
연봉 1억 6천만 원 (2009년)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 SK 와이번스 주루코치 (2010년)
  • 투손 파드레스 타격 인스트럭터 코치 (2011년)
  • NC 다이노스 작전/주루코치 (2011년 ~ 현재)


전준호(田埈昊, 1969년 2월 15일 ~ )는 전 한국 프로 야구 롯데 자이언츠, 현대 유니콘스, 우리 히어로즈에서 활약했던 외야수였고, 2011년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트리플 A팀인 투손 파드레스의 타격 인스트럭터코치를 거쳐 그해 10월 9일 NC 다이노스의 작전/주루코치로 임명되었다.

영남대학교를 졸업하고 1991년 2차 2순위 지명을 받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였다. 1997년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되어 팀이 우리 히어로즈로 바뀐 뒤까지 선수로 뛰다가 2009년 시즌을 마치고 은퇴했다.

프로 데뷔 연도인 1991년 4월 5일 대구 삼성전에서 1호 도루를 성공시킨 뒤, 1995년 7월 25일에 사직 OB전에서 최소 경기 200도루, 2002년에 400도루를 기록한 데 이어, 2005년에는 한국 프로 야구 사상 최초로 통산 500도루를 달성하였다. 1993년 75개, 1995년 69개, 2004년 53개로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도루왕에 올랐다. 특히 1993년에는 이종범과의 치열한 도루왕 경쟁 끝에 75개의 도루를 기록, 한 시즌 70도루 시대를 열기도 했다.

프로 데뷔 후 세 시즌(1994, 2000, 2005)만 빼고 모두 100경기 이상을 출장하는 성실함을 보인 끝에 2008년 6월 7일 대전 한화 전에서 18시즌 만에 역대 최초 2,000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1]

같은 해 9월 11일 롯데와의 사직 경기에서는 투수 손민한을 상대로 좌전 안타를 쳐 양준혁에 이어 두 번째로 통산 2,000안타 기록을 수립함으로써, 한국 프로 야구에서 '2000경기 출전 - 2000안타' 기록을 가진 최초의 선수가 되었고,[2] 10월 3일 목동 두산 베어스 전에서는 한국 프로 야구 사상 첫 통산 100호 3루타를 기록했다. [3]

2009년 1월 13일에는 송진우, 양준혁과 함께 한국판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인 성구회를 창립하였다.

2009년 시즌 종료 후 방출되어 선수 생활을 접고 SK 와이번스의 1군 주루코치로 취임하였다. 2011년에는 투손 파드레스 타격 인스트럭터 코치 연수를 받은 후 2011년 10월 10일 고향팀인 NC 다이노스의 작전/주루코치에 임명되었다.

목차

출신학교[편집]

어린 시절[편집]

상남초등학교에 야구부가 없었던 시절, 소년 전준호는 무작정 야구가 하고 싶은 마음에 제발로 근처 중학교 야구부를 찾아가 같이 훈련하였다고 한다. 대한민국에 프로 야구가 없었던 당시 일본 프로 야구에서 활약하고 있던 재일교포 야구 선수 장훈을 우상으로 여기며 야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4]

롯데 자이언츠 시절[편집]

1991년 신인 드래프트 2차 2순위로 롯데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었다.

1992년 팀의 톱 타자이자 3할 타자로 롯데의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하였다.

1993년에는 이종범과 치열한 도루 경쟁을 펼치며 75개의 도루를 기록, 73개를 기록한 이종범과 함께 한 시즌 70도루 시대를 열며 도루왕에 첫 등극하였으며, 첫 골든 글러브 수상의 기쁨도 함께 누렸다.

1995년 '소총부대'라고 불리며 장타력이 부족한 팀으로 평가받던 롯데 자이언츠는 기동력으로 이를 대신하고자 하였으며, 공격적인 베이스 러닝을 주문한 알바레즈 주루 코치의 지휘 아래 프로 야구 역사에서 유일하게 팀 도루 200개를 돌파(220개)하였고, 그 선봉에 전준호가 있었다. 그는 .393의 높은 출루율을 기록하는 동시에 역대 4위에 해당하는 69개의 도루로 톱타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팀의 '뛰는 야구'를 이끌었고[5], 1995 시즌 도루왕과 득점왕을 석권하며 2번째 골든 글러브를 차지하였다.

현대 유니콘스로의 트레이드[편집]

롯데 자이언츠의 톱타자로 활약하며 구단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었던 전준호는 1997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엉뚱하게도 롯데 자이언츠가 애초에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선수인 투수 문동환을 데려오는 과정에서 현대 유니콘스로 전격 트레이드되었다. 롯데 구단은 당시 '전준호를 트레이드시키는 대가로 계약금과 이자를 포함한 문동환에 대한 모든 권리를 현대로부터 양도받았다'고 발표했으나, 이는 엄밀히 말해 사실과 다르다.

본래 '트레이드'는 동일한 규약을 적용받는 프로 구단 사이에서만 성립하게 되어 있으나, 롯데 구단은 문동환이 롯데에 입단하기 위해 실업 팀인 '현대 피닉스'에 지불해야 했던 위약금(입단계약금 및 이자포함 약 5억 원 추정) 대신에 전준호를 '현대 유니콘스'로 보냈다. 사실상 롯데 구단이 약 5억 원에 전준호를 프로 야구팀 '현대 유니콘스'에 현금 트레이드하고, 그 현금을 문동환에게 계약금으로 지급한 뒤, 문동환이 롯데에게서 받은 계약금으로 실업팀 '현대 피닉스'에 위약금을 물게 된 것이다. 이 트레이드는 일명 '선수 팔아먹기'의 시초로, 프로야구 사상 최악의 트레이드이자, 가장 이상한 트레이드[6]로 회자되고 있다.

롯데는 트레이드 당시 젊은 유망주 선수였던 김대익을 비롯, 전준호를 대신할 타자가 많을 것으로 자신하였으나, 이후 톱타자난에 허덕이며 지속적인 부진을 겪은 끝에 2003년에 6년간 40억 원이 넘는 금액에 정수근을 FA로 영입함으로써, 이것이 결과적으로 실패한 트레이드였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롯데가 정수근을 데려오면서 두산 베어스에 내 준 보상 선수는 다름아닌 문동환이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편집]

현대 유니콘스로 이적한 첫 해인 1997년, 전준호는 갑작스런 트레이드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시즌을 맞이하였고, 타율 0.247를 기록하여 프로 데뷔 이후 가장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1998년 시즌에는 0.321타율에 35도루를 기록하며 세 번째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였으며, 현대 유니콘스 창단 첫 우승의 기쁨도 함께 누렸다.

이후로도 그는 현대 유니콘스 부동의 1번 타자로 매년 3할을 넘나드는 타율과 20~30도루를 기록, 총 4번(98, 00, 03, 04년)에 걸친 현대 유니콘스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하였다.

2004년에는 만 35세 나이에 53도루를 기록하여 세 번째 도루왕에 등극하였다. 이듬해 2005년시즌에는 부진과 부상으로 시련의 와중에서도 8월 5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수원 경기에서 1회말 기습 번트 후 2루를 훔쳐 프로야구 최초 '통산 500도루' 달성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하였다.[7] 이후 2006년시즌과 2007년시즌에도 2할8푼~2할9푼 타율에 두 자릿 수 이상의 도루를 기록하는 등 꾸준한 성적을 내며 테이블 세터로 활약, 노익장을 과시하였다.

넥센 히어로즈 시절[편집]

2007년 현대 유니콘스가 심각한 자금난에 빠지자, 이듬해 3월에 투자 회사인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는 서울특별시 연고지 보장을 대가로 현대 유니콘스를 해체, 선수단과 프런트를 승계받아 히어로즈프로야구단을 창단하였다. 이 과정에서 전준호는 고액 연봉 선수의 연봉을 대폭 삭감하려는 구단의 정책 아래 2007년 당시 2억 5천만원에서 2008년에는 무려 72%가 삭감된 7천만원의 연봉을 받게 되는 수모를 겪었다.

2008 시즌 전준호는 총 114경기에 나서 3할 1푼의 타율과 44득점을 기록하였다. 또한 프로 야구 사상 두 번째 '통산 2000안타' 기록 및 10번째 '통산 2500루타'와 더불어, '18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통산 2000경기 출장'·'통산 100호 3루타'와 같은 한국 프로 야구의 각종 통산 기록을 갈아치웠다. 2009년에는 전년 대비 128% 오른 1억 6천만원에 연봉 계약을 체결하였다. 2009년 시즌에 부상으로 인해 장기간 공백이 있었지만, 9월 25일 KIA전에서 통산 최초 550도루를 달성한다. 이 도루가 현역 마지막 도루였다.

2009년 정규 시즌이 끝난 후인 10월 16일, 히어로즈 구단은 전준호에게 이유를 밝히지 않고 갑작스럽게 방출을 통보하여 논란이 되었다.

은퇴와 은퇴 이후[편집]

방출된 이후 현역 복귀 의지를 드러냈지만 접고 2009년 11월 10일 한국 프로 야구 선수협회를 통해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SK 와이번스에서 주루 코치로 영입 제안을 받아 11월 24일, SK 와이번스에서 주루코치로 확정되어[8] 2010년까지 활동한 후 도미하였다. 한편 2009년 11월 29일, 다음네이버의 히어로즈 팬 카페 소속 팬들이 주관하여 목동 KT 챔버홀에서 은퇴식을 열어 주었다. 2011년에는 미국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서 코치연수를 하였다. 이후 2011년 10월 10일 NC 다이노스의 작전/주루코치로 임명되었다. [9]

수상경력[편집]

별명[편집]

타이거즈 소속의 야구선수인 이종범과 비견이 될 정도로 3번의 도루왕과 프로 야구 최초의 시즌 70도루·18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통산 550도루 등 각종 도루 관련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데에서 유래된 대도(大盜)라는 별명이 대표적이며, 정교한 컨택·번트와 같은 작전 수행 능력·센스 있는 주루 플레이 등 1번 타자가 갖추어야 할 기량을 고루 갖추고 있다는 데에서 1번 타자의 교과서로도 불린다. 철저한 자기 관리 능력과 강한 근성에서 비롯된 독사도 빼놓을 수 없는 별명이다.

사상 첫 2000경기 출장, 역대 두 번째 2000안타, 사상 첫 100호 3루타 등 한국 프로 야구 역사에 남을 여러가지 통산 기록을 수립하며 불혹을 넘긴 나이까지 현역으로 뛴 근래에는 꾸준함의 대명사 혹은 성실함의 대명사로 많이 불리고 있다.

주요 기록[편집]

  • 굵은 글씨 항목은 한국 프로 야구 최초 기록임
기록 날짜 소속 구장 상대 팀 상대 투수 경기 결과 타석수 경기수 달성 당시 나이 주석 및 기타
첫 도루 1991. 4. 5 롯데 대구 삼성
300도루 1998. 9. 13 현대 인천 삼성 29세 7개월 9일 역대 4번째
400도루 2002.6.20 현대 사직 롯데 1302 33세 4개월 5일 [10]
1000 득점 2004.9.24 현대 수원 한화 1625 35세 7개월 9일 역대 2번째, 4회말 선두타자로 안타 출루한 후 윤규진의 폭투로 홈인. [11]
500도루 2005. 8. 5 현대 수원 롯데 1705 36세 5개월 21일 1회말 기습번트로 출루한 후 도루 성공,
은퇴시 통산 550개 [12]
1951경기 출장 2007. 9. 8 히어로즈 광주 KIA 종전 기록: 장종훈 (1950경기)[13]
2000경기 출장 2008. 6. 7 히어로즈 대전 한화 39세 3개월 22일 좌익수 겸 2번 타자로 출장 4타수 1안타[14]
550도루 2009. 9. 25 히어로즈 광주 KIA 구톰슨 1회초 우전안타 출루 후 2루 도루 성공
기록 날짜 소속팀 상대팀 구장 경기 내용 종전 기록 기타
사이클링 히트[15] 2001.7.06 현대 삼성 대구 2회 2루타, 6회 단타, 7회 홈런, 8회 3루타 10번째
통산 최다 도루 신기록(372개) 2001.7.11 현대 롯데 수원 해태 이순철, 371개
한국시리즈 홈스틸[16] 2004.10.29 현대 삼성 잠실 1회말 전병호의 1루 견제시 한국시리즈 최초로 홈스틸 성공 첫 번째 7차전
2500 루타[17] 2008.6.28 히어로즈 LG 목동 10번째
18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 2008.7.11 히어로즈 한화 대전 첫 번째
2000 안타 2008.9.11 히어로즈 롯데 사직 3회초 2사후 상대선발 손민한을 상대로 좌전안타 두 번째
통산 100호 3루타 2008.10.3 히어로즈 두산 목동 2회말 2사 2루서 상대선발 김선우를 상대로 우익수 뒤 3루타 첫 번째
  • 2,000안타 달성

2008년 9월 11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3회초에 3루방향으로 좌전안타를 쳐서 삼성 라이온즈의 양준혁에 이어 프로 야구 통산 두 번째로 2,000안타를 기록하였다. 2009년 은퇴 시까지 개인통산 2,018개의 안타를 쳤으며, 2009 시즌 종료 현재 통산 최다 안타 1위인 양준혁은 2,284안타를 기록하고 있다.

  • 통산 100호 3루타 달성

2008년 10월 3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2회말에 우익수 뒤쪽으로 3루타를 쳐서 한국 프로 야구 사상 첫 100호 3루타를 달성했다. 2009 시즌 종료 현재 역대 3루타 2위는 前 롯데 자이언츠 외야수인 김응국이 기록한 61개로, 1, 2위간 격차가 매우 크다.

  • 통산 550도루 달성

2009년 9월 25일 광주 무등구장에서 열린 기아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톱타자로 선발 출장하여 1회초 우전안타로 출루한 후 기아 선발 구톰슨이 2번타자 장기영에게 초구를 던지는 사이 2루 도루에 성공, 통산 550도루라는 한국 프로 야구 전인미답의 기록을 또 하나 달성하였다. 그는 시즌 초반인 4월 11일 목동 SK전에서 개인 통산 549호 도루를 성공 시켰으나, 이 과정에서 상대 내야수의 스파이크에 밟혀 오른손 약지에 골절상을 입고 수술 및 재활 과정을 거쳤다. 시즌 막바지인 9월에야 1군에 복귀한 전준호는 시즌 종료 2경기를 남겨둔 상태에서 마침내 550도루 고지를 밟았다.[18]

통산 기록[편집]

연도 타율 경기수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병살타 희생타 장타율 비고
1991 롯데 0.263 122 372 98 13 6 2 48 66 18 60 38 1 17 0.347
1992 0.300 120 466 140 17 9 5 49 90 33 58 49 4 13 0.408
1993 0.282 120 393 111 3 7 1 31 63 75 52 31 2 20 0.333
1994 0.288 79 281 81 5 3 2 25 47 25 33 32 1 6 0.349
1995 0.308 124 458 141 13 12 1 42 93 69 68 54 5 14 0.395
1996 0.272 103 324 88 12 9 2 22 49 23 38 37 4 15 0.383
1997 현대 0.247 110 369 91 14 7 2 18 48 23 46 54 5 10 0.339
1998 0.321 126 446 143 16 7 5 43 78 35 59 58 2 13 0.422
1999 0.291 129 470 137 7 2 4 43 80 38 71 72 1 21 0.340
2000 0.316 87 263 83 12 2 1 18 53 18 57 36 0 14 0.388
2001 0.325 125 400 130 18 6 4 35 85 27 73 51 5 17 0.430
2002 0.300 126 420 126 15 8 3 28 83 26 66 51 2 15 0.395
2003 0.269 129 442 119 16 6 3 38 79 20 68 56 3 22 0.353
2004 0.292 132 487 142 10 7 4 48 88 53 68 64 4 26 0.366
2005 0.266 94 278 74 8 2 0 22 34 18 29 42 1 13 0.309
2006 0.287 109 303 87 10 1 1 26 37 20 27 28 3 16 0.337
2007 0.296 121 371 110 8 1 1 13 52 11 49 45 6 10 0.332
2008 우리 0.310 114 352 109 16 5 1 24 44 16 36 41 5 3 0.392
2009 히어로즈 0.242 24 33 8 1 0 0 4 2 2 4 5 0 0 0.273
통산 19시즌 0.291 2,091 6,928 2,018 214 100 42 577 1,171 550 962 844 54 265 0.369 통산 3루타, 도루 역대 1위
  •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보라색 글씨는 한국 프로 야구 역대 포지션별 최고 성적, 붉은색 글씨는 한국 프로 야구 역대 최고 성적.

참조[편집]

  1. 이완, '2000경기 출장, 전준호 대기록', 《한겨레》, 2008, 6, 9.
  2. 성환희, '전준호 친정에서 2000안타 - 2000경기 출전과 첫 동시 돌파… 롯데 7연승 2위로', 《한국일보》, 2008, 9, 12.
  3. 강필주, '전준호, 프로 사상 첫 '100 3루타' 달성', 《OSEN》, 2008, 10, 3.
  4. 최민규, '와인처럼 숙성한 이 남자, 전준호',《Sports 2.0》, 2007, 1, 8.
  5. 김형준, '프로야구 기록추적 14: '최고의 대도 군단' 1995년 롯데', 《네이버뉴스 '김형준 칼럼'》, 2009, 7, 20.
  6. 최민규, '단장들의 악몽 사상 최악의 트레이드',《Sports 2.0》, 2006, 8, 17.
  7. 조기원, '프로야구 전준호 통산 500도루 달성', 《한겨레》, 2005, 8, 5.
  8. SK 코칭스태프 개편…전준호, 정경배 합류 확정 - 이데일리
  9. '박승호 수석-최일언 투수-김광림 타격' NC 코치 구성 마무리 - 이데일리
  10. 《2010 Korean Baseball Record Book》,(사)한국야구위원회, 2010
  11. 김종석, '전준호 통산 1000득점', 《동아일보》, 2004, 9, 25.
  12. 《2010 Korean Baseball Record Book》,(사)한국야구위원회, 2010
  13. 《2010 Korean Baseball Record Book》,(사)한국야구위원회, 2010
  14. '2000경기 출장 전준호 대기록' 《한겨레》2008,6,9
  15. 이춘재, '현대 전준호 '사이클링히트' 기록', 《한겨레》, 2001, 7, 6.
  16. 윤승옥, '플래시백: 발야구로 갈린 승부…역대 PO는?', 《스포츠서울》, 2008, 10, 17.
  17. 손민석, 등번호 '1' 전준호, 18년의 결실 '2500루타' 달성, 《조이뉴스24》, 2008, 6, 28.
  18. 석명, '영원한 대도' 전준호, 사상 첫 '550 도루' 달성, 《조이뉴스24》, 2009, 9, 25.

바깥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