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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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태
Jeong Min-tae
롯데 자이언츠 No.74
P1010015.JPG

현대 유니콘스 선수 시절의 정민태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생년월일 1970년 3월 1일(1970-03-01) (44세)
출신지 대한민국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신장 183 cm
체중 90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1992년
드래프트 순위 1992년 1차 지명 (태평양 돌핀스)
첫 출장 KBO / 1992년
마지막 경기 KBO / 2008년 4월 18일
광주한화전 선발
획득 타이틀
  • 1998·1999·2003년 골든 글러브
  • 1999·2000·2003년 다승왕
  • 2003년 승률왕
  • 1998·2003년 한국시리즈 MVP
계약금 1억 7,200만 원 (태평양 입단시)
연봉 7,500만 원 (2013년)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올림픽 2000 시드니
아시아선수권 2003 삿포로
메달 기록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야구
올림픽
2000 시드니 야구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2003 삿포로 야구

정민태(鄭珉台, 1970년 3월 1일 ~ )는 전 한국 프로 야구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KIA 타이거즈투수이자, 현 롯데 자이언츠투수코치이다.

1999년 20승 7패로 다승왕에 올라 한국 프로 야구의 "20세기 마지막 20승 투수"으로 기록되었다. 시속 150km에 근접하는 포심과 범타유도를 위한 투심 등의 속구, 그리고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포크볼 등과 같은 변화구를 잘 활용하여 타자를 잡아내는 투수였다는 평가를 받았디.[1]

한양대학교 시절 국가 대표 에이스로 활약했다. 1992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하여 프로로 데뷔하였으나, 그 해에 병역 비리에 휘말려 구속되었으며, 복귀한 후에는 시즌 중의 부상으로 이듬해인 1993년까지 부진을 거듭했다. 그러나 1994년 8승을 시작으로 소속 팀이 현대 유니콘스로 바뀐 첫 해인 1996년 15승을 올리며 재활에 성공했고, 1998년에는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으며, 1999년에는 20승 투수가 되었다. 당시 주 무기는 150km 부근의 직구와 슬라이더, 슬로우 커브였다. 2001년2002년에는 일본 프로 야구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었지만 눈에 띄는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2002년을 끝으로 현대 유니콘스로 복귀했으며, 복귀 후 첫 시즌이었던 2003년 다승왕과 승률왕을 동시에 차지하는 등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지만 이후 부상으로 내리막길을 걸었고 2004년에 7억 5천만원이었던 연봉도 계속 삭감되었다.

2007년 부상에서 회복하여 1군에 복귀했지만 오랜 공백으로 인한 자신감 부족과 고령으로 인한 직구 구위 저하 때문에 난조를 보이며 6패만을 기록하였고, 2008년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되면서 새로 만들어진 우리 히어로즈와 계약 협상을 진행했으나 입장 차이로 협상이 결렬되면서 자유 계약 선수로 풀려난 뒤 KIA 타이거즈와 연봉 7,000만원에 계약하면서 선수 생활 16년 만에 처음으로 타 팀에 둥지를 틀었다. 2008년 4월 18일 광주 한화전에 선발 등판해 3과 2/3이닝을 던지며 1루수 김태완의 장외 만루 홈런을 포함해 무려 5안타 6실점을 기록했다.[2] 2008년 KIA 소속으로 나온 1군 경기의 처음이자 마지막 등판 경기였다. 이후 2군으로 내려갔고, 같은 해 7월 8일 결국 오른쪽 어깨 부상을 이유로 은퇴를 선언했다.[3] 다승 1위 3차례(1999, 2000, 2003), 승률 1위(2003), 골든 글러브 3차례(1998, 1999, 2003)를 차지했고, 통산 290경기 124승(96패 3세이브)에 평균 자책 3.48을 기록했다. [3]

선수 생활[편집]

프로 입문 이전[편집]

인천 동산고등학교 야구부에서 투수로 활동하였다.[4] 위재영과 함께 1988년 동산고등학교를 우승으로 이끈 뒤[5], 연고 팀 태평양 돌핀스의 지명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고 한양대학교로 진학하였다. 한양대학교에서는 구대성과 함께 에이스로 활약하였으며[6], 아마추어 국가대표팀으로 뽑히게 되었는데[7], 1989년 IBA 회장배 아마추어 야구 대회에서는 한국 국가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끌어, 투수 부문 베스트 나인으로 뽑혔다.[8] 1990년에는 13승 3패, 1.26의 평균 자책점으로 그 해 아마추어 야구 대회의 MVP가 되었다.[9] 같은 해에 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가 입단을 제의했으나[10], 협상이 흐지부지된 이후 1차 지명을 받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한다.

태평양 돌핀스[편집]

1991년 말 정민태는 태평양 돌핀스의 선배 김동기, 동료 가내영 등과 함께, 구단주가 허위 진단서를 써 병역을 면제시켰다는 혐의에 휘말려[11] 수감 위기에 처했으나[12], 집행 유예로 풀려나 1억 7천 2백만 의 계약금 및 연봉의 조건으로 태평양 돌핀스의 정식 선수가 되었다.[13] 그러나 같은 해 부상과 컨디션 난조 등으로 결장이 심해지면서[14][15] 이듬해까지 계속 부진하였다.[16] 그러나 재활 끝에 1994년부터 서서히 재기하기 시작하여[17] 선배 박정현, 최창호, 후배 신인 김홍집, 마무리 정명원 등과 함께 활약하며, 태평양 돌핀스가 인천 연고 팀 중 최초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다.[18][19] 시즌이 끝난 뒤인 11월 21일 결혼하였다.[20] 1995년에는 8승을 기록하였으나, 동시에 13패를 기록하여 한화한용덕, 구대성과 함께 다패 타이 기록을 남겼다.[21]

현대 유니콘스[편집]

1996년 현대그룹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면서 구단 이름은 "현대 유니콘스"가 되었고, 정민태도 현대 유니콘스 소속이 되었다. 4월 16일 개막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첫 승을 거둔 뒤[22] 시즌 초반에 마무리 정명원과 함께 현대 유니콘스의 6연승을 이끌었으며[23], 1996년 올스타전에도 베스트 10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는데[24], 이 과정에서 현대 구단의 부정 투표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25] 9월까지 15승을 거두며 구대성, 송진우, 주형광 등과 다승 경쟁을 벌인 끝에[26], 15승 9패, 평균 자책점 2.44, 127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다승 6위로 시즌을 마쳤다. 이 해에 현대는 신인왕 타이틀을 획득한 박재홍, 박진만, 윤덕규 등도 활약하며[27][28][29]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였으나, 해태 타이거즈에게 패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정민태는 한국시리즈에서 조계현을 상대로 2번 등판했으나[30][31], 1번의 구원승 (조웅천)[32]과 1번의 패전을 기록했다.[33] 시즌이 끝난 뒤, 정민태는 9,000만원으로 오른 연봉으로 현대 유니콘스와 재계약을 하는 데 성공하여 2년 연속 100% 연봉 상승을 기록했다.[34]

1997년에도 개막전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승리를 거두었다.[35] 그러나 타선의 부진으로 패전을 거듭하며, 시즌 초반에는 저조한 성적을 냈다.[36] 그러나 7월 12일 2연패를 끊은 것을 시작으로 점차 승리 수를 채워나가며[37][38], 롯데의 박지철, OB의 김상진, 한화의 정민철과 다시 다승왕 경쟁을 벌였다.[39] 또한 정민철과는 다승왕 뿐만 아니라 탈삼진왕 타이틀을 두고도 경쟁했는데[40], 시즌 마지막 경기가 있었던 9월 23일에도 완봉승을 거두며 13승 13패로 시즌을 마치며, 그 날까지 탈삼진 1위였으나[41], 한화의 잔여 경기에서 정민철이 삼진을 더 잡아 정민태의 기록을 추월하여 정민철이 탈삼진왕 타이틀을 얻었다.[42] 시즌이 끝난 뒤, 정민태는 구단으로부터 팀 내 최우수 선수 타이틀을 받았다.[43]

1998년, 3년 연속으로 개막전 선발 투수가 되었지만, 이 날 LG 김용수와의 개막전 대결은 비로 연기되었다.[44][45] 또한, 4월 동안 4승을 기록하며 이승엽과 함께 첫 월간 MVP로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46] 박재홍과 함께 현대의 최단기 시즌 40승을 기록하는 데 공헌했다.[47] 후반기에 이르러, 정민태는 삼성의 베이컨, 같은 팀의 위재영과 정명원, 롯데의 문동환 등과 다승 경쟁을 벌여야 했다.[48] 7월 30일 12승을 기록하고[49], 8월 7일 다시 완봉승을 거두며 13승으로 선두를 지켜왔으나[50] 결국 18승을 거둔 LG의 김용수가 다승왕을 차지하였다.[51] 현대는 정규 리그에 우승하여 한국시리즈로 직행하였는데[52], LG와의 한국시리즈에서 정민태는 1차전과 4차전에서 선발승을[53][54], 6차전에서 구원 등판으로 세이브를 기록하며, 현대의 첫 우승과 함께 한국시리즈 MVP 타이틀을 획득했다.[55] [56] 시즌이 끝난 뒤, 정민태는 대우자동차스포츠조선이 개최한 "레간자 대상"에서 선수들이 직접 뽑은 선수에게 주는 상인 "라노스 대상"을 받았고[57] 골든 포토상에 선정되었으며[58], 경쟁 후보였던 김용수를 제치고 처음으로 투수 부문 골든 글러브 타이틀을 획득했다.[59]

1999년, 정민태는 1억 5,200만원의 연봉으로 현대 유니콘스와 재계약했는데, 정명원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그 해에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되었다. 그 다음으로는 김용수가 뒤를 이었다.[60] 이 해 2월에 처음으로, 한국 프로 야구 팀들이 해외 전지훈련지에서 현지의 프로 야구단과 연습 경기를 치렀는데, 정민태는 스즈키 이치로가 있었던 오릭스 블루웨이브와 현대 사이의 두 번째 연습경기[61]에 첫 등판했다.[62] 1999년에는 또한 한국 프로 야구가 드림리그와 매직리그의 양대 리그제를 시행하게 되었는데, 정민태는 드림리그 개막전에서도 선발로 등판해, 3년 연속 개막전 선발승을 거두었다.[63][64] 시즌 중반, 정민태는 허리 통증과 허벅지 부상 등으로 등판을 못하기도 했지만[65][66], 20승을 기록하여 다승왕 타이틀을 획득했다.[67] 시즌이 끝난 뒤, 정민태는 1999년 한일 슈퍼 게임대한민국 대표로 출장하였으며[68] 오릭스 블루웨이브가 영입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으나[69] 프로 야구 선수는 7년 이상 한국에서 활동해야 해외로 진출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둔 KBO가 정민태가 아직 7년을 채우지 못했다며 허락하지 않았다.[70] 그 후에도 정민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진출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71][72], MLB 메이저 리그 커미셔너 사무국에서도 정민태, 정민철 등의 신분 조회를 요청하며 관심을 보였으나[73] 한국야구위원회가 허락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자[74] 구단과 모기업 현대그룹까지 엮이며 마찰을 빚게 되었다.[75] 결국 일본 진출이 무산된 정민태는 구단에게 3억을 요구하여 논란이 일기도 했다.[76] 12월, 정민태는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투수 부문을 수상하였다.[77]

2000년 207이닝을 던지면서 18승, 평균 자책점 3.48, 153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다승 1위, 투구 이닝 2위, 평균 자책점 7위, 탈삼진 4위에 오른다. 같은 팀 소속 투수 임선동, 김수경과 함께 다승왕이 되며 1999년에 이어서 2년 연속으로 다승왕이 된다. 플레이오프에서 1, 4차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해 모두 승리를 했으며, 한국시리즈에서는 2번 선발로 등판해 1번의 승리를 기록했다.

정민태 외에 5년 연속 200이닝 이상 던진 투수는 롯데 자이언츠최동원이 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편집]

현대 유니콘스에서 최고의 활약을 한 정민태는 2000년 시즌이 끝난 뒤, 해외 진출을 원했었다. 그때 당시 일본 야구팀에서 주니치 드래건스오릭스 블루웨이브, 요미우리 자이언츠 세 팀에서 관심을 보였는데, 2001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전격 입단한다. 그 당시 일본에 진출했을 때, 3년 계약에 이적료 약 5억 5천만엔, 계약금 1억 5천만엔에 연봉 1억 3천만엔에 계약하고 입단하여 당시 최고 대우였다.

그러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의 활약은 너무도 기대 이하였다. 그는 입단 첫 해부터 수석코치 겸 투수코치였던 가토리 요시타카와 불화가 있었다. 결국 2001년, 2002년 2년 동안 일본 리그 적응 실패와 실력 차이를 느꼈다. 일본에서 활약했을 때, 통산 성적은 27경기 등판, 방어율 6.28, 2승 1패를 기록하며, 그가 한국 프로 야구에서 활약한 모습과는 달리 불명예를 남기며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한 채 친정 팀에 복귀하게 된다.

현대로의 복귀[편집]

2003년 현대 유니콘스로 돌아오면서 정민태는 새로운 변화를 꾀하였다. 그는 이때 투심을 새로 개발하였고, 투심과 슬라이더, 직구, 특유의 슬로 커브 등으로 통해 경기를 운영해 나갔다. 이 시즌에 177이닝을 던지면서 17승 2패, 평균 자책점 3.31, 탈삼진 122개를 기록하며 다시 한 번 리그 최정상급 투수로 군림한다. 또한, 이 해 2000년의 기록과 이어지는 선발 21연승을 달성, 세계 신기록을 세운다.

이 시즌에는 다승 1위, 투구 이닝 4위, 평균 자책점 3위, 탈삼진 3위, 승률 1위를 기록했으며 현대 유니콘스의 정규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한다. 200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SK 와이번스를 맞아 1, 4, 7차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하였는데, 모두 승리를 기록했다. 특히 7차전에서는 허벅지 통증이 심한 상태임에 불구하고, 테이핑을 감으면서까지 경기에 선발등판하여 9회 완봉승(7:0으로 승리.)을 거두며 현대 유니콘스의 3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한다.

2003년 한국시리즈에서 3승을 거둔 그는 1998년에 이어서 2번째로 한국시리즈 MVP가 되었으며, 1999년, 2000년에 이어서 3번째로 다승왕이 되었고, 정규시즌 0.895라는 높은 승률로 프로선수생활 처음으로 승률왕이 된다. 이러한 그의 활약과 공헌을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 구단으로부터 인정받아 시즌 이후 연봉 7억 4천만원에 계약하여 프로야구 선수로서 최대 연봉을 받게된다.

하지만 이듬해 2004년에는 4월 말 무렵에 노화와 허리 부상 등이 겹치면서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2004년에는 7승 14패, 방어율 5.00을 기록하면서 '현대 유니콘스 에이스', '국내 최고의 투수'에 걸맞지않는 성적을 남겨 부진했으며,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2차전과 7차전에 등판했을 때도 크게 부진을 겪었다. 이때부터 그는 '먹튀'라는 온갖 오명을 받아야만 했고, 그의 연봉은 그 이후에도 계속 대폭 감소되어 2005년 ~ 2007년 사이에는 부상과 재활을 반복하여 부상 후유증 등 부진으로 인해, 단 1승도 못 거둔채 10패만 기록하게 된다.

KIA 타이거즈[편집]

2008년 3월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되고 선수단을 인계하여 새로 만들어진 팀 우리 히어로즈와 계약 협상을 진행했으나 입장 차이로 협상이 결렬되면서 자유 계약 선수로 풀렸다. 그리고 KIA 타이거즈와 연봉 7,000만원에 계약하면서 선수 생활 16년만에 처음으로 인천, 수원을 떠나 타 팀에 둥지를 옮기게 된다.

2008년 4월 18일 광주 한화전에 시즌 첫 선발로 등판했으나, 3과 2/3이닝을 던지며 김태완의 장외 만루 홈런을 포함해 무려 5안타 6실점을 기록하여 패전 투수가 되었다. 이 경기가 2008년 KIA 타이거즈 소속으로 나온 1군 경기의 처음이자 현역 마지막 경기였다. 이후 2군에 내려가면서 재활에 다짐했으나 그 해 7월 8일, 결국 오른쪽 어깨 부상을 이유로 재활을 포기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이후[편집]

은퇴 이후 투수코치로 활동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초창기에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한 KIA에서의 투수 코치 생활을 하고 싶어했었으며, 미국이나 일본으로의 코치 연수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해외 연수를 한다지만 실상은 메이저 리그일본 1군 야구가 아닌 마이너 리그일본 2군 야구에서의 연수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해외 연수라는 우회로를 이용하지 않고 곧바로 투수 코치 생활에 뛰어들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78]

이후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감독이자, 넥센 히어로즈의 신임 감독으로 선임된 김시진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시절 오랫동안 코치 및 감독과 선수로서 함께하였던 정민태를 투수 코치로 영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정민태도 그러한 의사에 수락하여 2008년 10월 14일넥센 히어로즈와 연봉 6천만 원에 투수코치로 계약하였다. 넥센 히어로즈의 코치로 들어온 후 2009년 8월 2일목동야구장에서 은퇴식을 가졌다.[79] 은퇴식 때 정동진태평양 돌핀스 감독 등 예전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시절에 함께한 선수 및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80]

가족 사항[편집]

그의 아들 정선호는 현재 연세대학교 야구부에서 뛰고 있으며, 포지션은 외야수이다.

수상 경력[편집]

  • 한국 프로 야구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 (2000년)
  •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2000년)
  • 일간스포츠 제일화재 프로야구 최고투수상 (2003년)
  • 한국시리즈 최우수 선수 (1998년, 2003년)
  • 한국 프로 야구 정규리그 다승 1위 (1999년, 2000년, 2003년)
  • 한국 프로 야구 정규리그 승률 1위 (2003년)
  •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투수 부문 (1998년, 1999년, 2003년)

통산 기록[편집]

한국 프로야구 기록[편집]

투수[편집]















4












1992 태평양 7 0 0 1 3 0 0 26 110 21 3 13 0 21 13 11 0.250 3.81
1993 5 0 0 0 0 0 0 9 1/3 41 11 0 4 0 7 7 7 0.000 6.75
1994 25 5 0 8 9 0 0 145 1/3 619 159 7 38 2 91 66 60 0.471 3.72
1995 28 8 3 8 14 0 0 188 796 187 8 58 4 115 92 77 0.364 3.69
1996 현대 30 4 2 15 9 0 0 210 1/3 834 180 15 45 3 127 67 57 0.625 2.44
1997 31 8 1 13 13 0 0 219 886 189 15 51 7 159 97 81 0.500 3.33
1998 28 5 2 17 9 0 0 200 2/3 825 184 18 49 2 159 77 63 0.654 2.83
1999 33 7 0 20 7 3 0 230 2/3 936 208 24 63 4 178 69 65 0.741 2.54 다승 1위
2000 29 3 1 18 6 0 0 207 846 192 21 66 1 153 85 80 0.750 3.48 시드니 올림픽 대표 선수, 다승 1위
2003 29 1 0 17 2 0 0 177 741 179 17 42 5 122 76 65 0.895 3.31 다승, 승률 1위
2004 28 1 0 7 14 0 0 165 2/3 721 193 21 42 8 123 109 92 0.333 5.00
2005 8 0 0 0 3 0 0 26 2/3 120 34 2 6 1 13 19 14 0.000 4.73
2006 1 0 0 0 0 0 0 2 2 1 1 0 1 1 1 0.000 4.50
2007 7 0 0 0 6 0 0 19 2/3 35 5 12 0 6 29 28 0.000 12.81
2008 KIA 1 0 0 0 1 0 0 3 2/3 5 1 3 3 6 6 0.000 14.73
통산 15시즌 290 42 9 124 96 3 0 1831 7475 1779 158 497 37 1,278 813 707 0.564 3.48 통산 다승 역대 8위

타자[편집]








2

3






4











2005 현대 1 0 0 0 0 0 0 0 0 0 0 0 0 0 0 0.000 0.000 0.000
합계 - 1 0 0 0 0 0 0 0 0 0 0 0 0 0 0 0.000 0.000 0.000

일본 프로야구 기록[편집]


년도























2001년 요미우리 6.16 10 2 0 0 19 21 13 11 3 13 21 9.95
2002년 6.41 17 0 1 0 19.2 24 14 14 4 8 14 6.41
통산성적 6.28 27 2 1 0 38.2 45 27 25 7 21 35 8.15

출신 학교[편집]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박동희 기자, "마지막 20승 투수 현대 유니콘스 정민태 - 가장 두려운 타자는 오해와 편견", 《SPORTS 2.0 》, 2006년 9월 18일.
  2. 이완, '아…정민태', 《한겨레》, 2008, 4, 19
  3. 정민태. 전격 은퇴 권오상 기자, 《한겨레》, 2008, 7, 9
  4. '왕중왕' 내일 결판,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6년 10월 16일.
  5. 1년생 위재영, 뛰어난 피칭…,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8년 8월 6일.
  6. 결승 앞둔 양팀 감독, 출사표…,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9년 5월 19일.
  7. 한국 아마야구 한미선수권·대륙간컵 참가…,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9년 7월 21일.
  8. 한국, 12년 만에 국제 야구 패권…,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9년 11월 13일.
  9. 정민태, 90' 아마 야구 MVP,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0년 12월 13일.
  10. 투수 정민태·김도완, 미국에서 스카우트 교섭,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0년 12월 14일.
  11. 태평양 돌핀스 프로 야구 선수 6명, 병역 부정 조사…,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1년 11월 26일.
  12. 프로 야구 선수 1명 구속 영장,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1년 12월 11일.
  13. 정민태, 신인 최고 몸값…,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2년 2월 28일.
  14. 프로 야구의 마운드가 무너진다…,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2년 6월 2일.
  15. 팀 "간판-거액" 투수 부진…,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2년 9월 19일.
  16. 억대 신인 투수, 실력은 천만원대…,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3년 3월 11일.
  17. 돌아온 억대팔,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4년 3월 16일.
  18. 정민태-구대성, '부활의 노래',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4년 4월 15일.
  19. 프로 야구 - LG 특급 방망이, 태평양 철벽 마운드와 자존심 대격돌,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4년 10월 18일.
  20. 돌고래 마운드 정민태, 야망의 와인드업…,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5년 7월 1일.
  21. 창피한 기록…,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5년 9월 20일.
  22. 김동수, '잠실 개막' 2점 축포,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6년 4월 17일.
  23. 현대, 파죽지세의 6연승,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6년 5월 10일.
  24. 홍현우, 5년 연속 베스트 10…,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6년 7월 20일.
  25. 올스타전 인기 투표, 현대 "부정 몰표" 의혹…,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6년 7월 16일.
  26. '다승왕', 누구? "저요, 저요",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6년 9월 13일.
  27. 박재홍, "과연 신인왕",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6년 10월 2일.
  28. 박진만, 김인호 '투혼'…,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6년 10월 11일.
  29. "역시 윤덕규"… 현대 살렸다,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6년 10월 11일.
  30. 해태 조계현, 현대 정민태와 '강철 어깨' 두고 명예 대결,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6년 10월 16일.
  31. 조계현 - 정민태, "에이스 재대결",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6년 10월 12일.
  32. 현대, 연장 11회 짜릿한 역전승,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6년 10월 18일.
  33. 해태, 8번째 축배까지 "1승" 남았다,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6년 10월 23일.
  34. 현대 정민태, 9,000만원에 사인,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6년 12월 31일.
  35. 한대화, 1회 "개막 축포",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7년 4월 13일.
  36. "패전, 패전…" 고개 숙인 에이스 투수들,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7년 5월 13일.
  37. 에이스 정민태, "이름값",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7년 7월 13일.
  38. 실력은 행운을 부른다 - OB전 승리 투수, 현대 정민태,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7년 7월 23일.
  39. 박지철, 다승-방어율 "2관왕" 잰걸음,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7년 8월 14일.
  40. 닥터 K 자리 두고 "정가 형제" 싸움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7년 9월 23일.
  41. 현대 정민태 완봉승, "유종의 미",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7년 9월 24일.
  42. 정민철, 160개로 "탈삼진왕",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7년 10월 3일.
  43. 정민태, "팀MVP"에…,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7년 12월 24일.
  44. 김용수 노련미에 정민태 강속구 '맞불'…,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8년 4월 11일.
  45. '헝그리 투혼' 쌍방울, 대폭발,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8년 4월 13일.
  46. 정민태·이승엽, 첫 월간 MVP,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8년 5월 9일.
  47. 박재홍, 연타석포… 현대, 최단기 40승,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8년 6월 16일.
  48. 박세리와 월드컵으로 썰렁한 프로야구, 타이틀 경쟁만은 '후끈',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8년 7월 11일.
  49. 현대 정민태, 12승 '단독 선두',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8년 7월 31일.
  50. 정민태, 13승 '완봉쇼',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8년 8월 8일.
  51. 김용수, 18승 다승왕 '노장 찬가',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8년 9월 29일.
  52. 현대 우승비결, 투수-타격-이적 선수-구단의 후원 '4박자 척척',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8년 9월 5일.
  53. '호투맹타' 현대 먼저 웃었다…,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8년 10월 24일.
  54. 현대, "정민태 있으매…",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8년 10월 28일.
  55. 아토스배 '98 포스트 시즌 - 인천, "17년 갈증" 풀었다,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8년 10월 31일.
  56. 현대 우승 주역 정민태, "그저 최선 다했을 뿐… 내가 MVP라니",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8년 10월 31일.
  57. 삼성 양준혁, 올 시즌 '레간자 대상' 수상,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8년 12월 8일.
  58. 골든포토상에 정민태 선정,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8년 12월 10일.
  59. 정민태·유지현, 첫 '황금장갑',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8년 12월 12일.
  60. 현대 정명원, 1억 5,400만원으로 1위…,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9년 2월 5일.
  61. 현대는 1998년에도 오릭스 블루웨이브와 연습경기를 연 적이 있다.
  62. 벼르던 맞대결…,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9년 2월 11일.
  63. '드림' 구장 '매직' 쇼… 99' 프로야구 개막,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9년 4월 3일.
  64. 마해영, '거인 중의 거인',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9년 4월 5일.
  65. 현대 정민태, 허리통증으로 출장 불명,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9년 7월 30일.
  66. 현대 정민태, 허벅지 근섬유 파열 재발,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9년 9월 4일.
  67. 승엽아, 그래도 잘했다,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9년 10월 8일.
  68. 99' 한일 슈퍼 게임 대표 명단발표,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9년 10월 9일.
  69. 日 프로 야구, 국내 투수에 '손짓',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9년 10월 16일.
  70. "정민태 일본행 불허" KBO, "국내 활동 7년 채우지 않았다",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9년 10월 29일.
  71. 정민태, "요미우리에서 뛰고 싶다",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9년 11월 8일.
  72. 요미우리, 정민태에 '구애 공세',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9년 11월 13일.
  73. 美 메이저 리그, "정민철 영입 희망", 매일경제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9년 11월 19일.
  74. KBO, 정민태 日 진출 불허,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9년 11월 17일.
  75. 정민태, "선수 뜻 막는 '노예 규정', 해도 너무해…",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9년 11월 19일.
  76. "일본 못 가면 3억 달라"…,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9년 11월 24일.
  77. 이승엽, 최다 득표로 3년 연속 "황금 장갑"…,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9년 12월 16일.
  78. 정민태 "KIA 투수코치 하고 싶다"강영조 기자, 《스포츠 서울》,2008, 9, 23
  79. 정민태 지각 은퇴식…영웅들 끈끈한 정에 뭉클 - 동아일보
  80. 정민태 코치 은퇴식, 현대 유니콘스 동창회? - 일간스포츠

바깥 고리[편집]

이 전
이대진
제17대 한국 프로 야구 골든글러브 투수
1998년
다 음
 정민태 
이 전
정민태
제18대 한국 프로 야구 골든글러브 투수
1999년
다 음
 임선동 
이 전
송진우
제22대 한국 프로 야구 골든글러브 투수
2003년
다 음
 배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