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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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만
Park Jin-Man
SK 와이번스 No.7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생년월일 1976년 11월 30일(1976-11-30) (38세)
출신지 인천광역시
신장 177 cm
체중 78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유격수
프로 입단 연도 1996년
드래프트 순위 1996년 고졸우선지명(현대 유니콘스)
첫 출장 KBO / 1996년 4월 13일
인천LG
획득 타이틀 * 골든 글러브(2000년, 2001년, 2004년, 2006년, 2007년)
계약금 2억 원
연봉 1억 5,200 만 원 (2014년)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올림픽 2000 시드니, 2008 베이징
WBC 2006년
아시안게임 2002 부산, 2006 도하
아시아선수권 2003년 삿포로
메달 기록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야구
올림픽
2000 시드니 야구
2008 베이징 야구
아시안 게임
2002 부산 야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6 샌디에이고 야구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2003 삿포로 야구

박진만 (朴鎭萬, 1976년 11월 30일 ~ )은 한국프로야구 SK 와이번스유격수이며, 팀의 주장을 맡고 있다.

한국프로야구 유격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 차례 수상했으며(총 5회의 골든글러브 수상), 한국시리즈 우승 경력이 많아 럭키 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국제대회 경험도 풍부하다. 또한 외모와 이름에서 따온 애칭인 찐만두라고도 불리며, 실제 최훈의 카툰에서 박진만을 찐만두로 묘사했다.

선수활동[편집]

현대 유니콘스 시절[편집]

1996년 인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계약금 2억 8,000만 원의 조건으로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했다. 입단 첫 해, 1996년부터 현대 유니콘스의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였는데, 입단 첫해부터 주로 하위 타선으로 출장해 0.286에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듬해 1997년에 풀 타임 출장해서 1할 타율을 기록, 혹독한 2년차 징크스를 겪었고, 1998년에도 빈약한 타격을 보였다. 그러나, 꾸준히 출장하면서 타격 실력은 자연히 향상하게 되어 1999년에 0.263를 기록하였고, 이듬해 2000년에 2할8푼 타율을 기록한다. 그러나, 2000년 현대 유니콘스 시절 병역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박진만 선수의 아버지와 담당 의사는 불구속 기소되었고, 박진만은 재검 처분을 받기도 하였다.[1] 그러나 곧바로 시드니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에 발탁, 동메달을 획득하여 정식으로 병역 면제를 받았다.

이듬해 2001년에는 유격수로서는 쉽지 않은 3할 타율에 22홈런을 쳐 자신의 데뷔 이후 최고 성적을 기록하였다. 2002년시즌에 타격에서 크게 부진하여 0.219를 기록하였으나,2003년2004년에 2할 8푼대 타율을 꾸준히 기록하여 유지했다.

타격보다 수비에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기에 수비에서 평가가 높은데, 현대 유니콘스 시절 동안 그는 소속 팀에서 4번의 우승을 경험했고 팀에 기여한 선수들 중 한 명이었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편집]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후 FA 자격을 얻어 삼성과 4년 간 39억 원에 FA 계약을 맺고 이적했다. 이 때 삼성에서는 입단 때 기대주였으나, 부상과 병역 비리 등으로 별 활약을 보이지 못한 투수 이정호를 박진만의 보상 선수로 현대 유니콘스에 보냈다.(심정수에 대해서는 보상 선수를 받지 않았고, 보상금만 지급했다.)[2] 그러나 2005년에는 시즌 시작 전부터 부상에 겹쳐 시즌 중반이 돼서야 겨우 복귀할 수 있었고, 이 해 0.249를 기록한다. 이때 그를 대신하여 김재걸유격수 자리에 있었다. 이듬해 2006년에 부상에서 완치되어 풀타임 출장을 하였는데, 삼성 라이온즈에서 공-수 뛰어난 활약을 보여 2006년 한국시리즈 2연패에 기여하였고 MVP에 선정되었다. 2009 시즌에는 주장에 선임되었으나, 잦은 부상으로 1군 76경기에 그쳐 시즌 후 강봉규에게 넘겼다. 2010년에도 부상 후유증으로 부진하여 1군 46경기에 그쳤다. 주전 유격수 자리를 후배 내야수 김상수에게 넘겨 주면서 출장 경기 수가 줄어들었고, 2루수나 3루수로 출장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삼성과 결별하기로 결심하여 시즌 후 방출을 요청하여 2010년 11월 11일 보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3]

SK 와이번스 시절[편집]

삼성에서 떠난 후 여러 구단에서 영입을 시도하였으나 주전 유격수 나주환공익근무요원 입대로 인한 전력 공백이 생긴 SK 와이번스가 가장 적극적으로 영입을 시도하였고, 때마침 박진만의 고향이 인천이라는 점 등과 맞물려 SK 와이번스와 계약하였다. 2011년 4월 28일서재응에게 140km대의 직구 사구을 맞고 부상을 입었고 재활을 끝내고 활동중이면서 가끔 1루수로 출전하기도 한다. 2014년부터는 전 시즌 팀의 주장이었던 정근우가 FA로 팀을 옮기며 주장이 공석이 되었기 때문에 선수단내에서 투표를 실시하였고, 같은 최종 후보인 조인성을 두 표차로 앞서 선출되어 팀의 주장을 맡고 있다.[4]

출신학교[편집]

수상경력[편집]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활약[편집]

통산 기록[편집]

연도 소속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도루 희생타 4구 사구 삼진 병살타 실책 타율 장타율 출루율 OPS 비고
1996 현대 115 361 49 102 21 2 6 38 11 18 20 7 55 5 22 0.283 0.402 0.332 0.734
1997 112 351 29 65 11 0 5 29 7 19 20 8 62 6 14 0.185 0.259 0.245 0.504
1998 123 330 36 67 17 0 4 33 8 21 18 6 50 4 19 0.203 0.291 0.253 0.544
1999 128 395 50 104 21 2 3 42 5 21 36 7 63 9 22 0.263 0.349 0.334 0.683
2000 129 420 67 121 30 4 15 58 0 15 36 6 76 9 15 0.288 0.486 0.350 0.836 시드니 올림픽 대표 선수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
2001 122 383 72 115 13 0 22 63 9 15 47 4 65 13 25 0.300 0.507 0.380 0.886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
2002 126 401 47 88 24 0 12 57 2 13 47 5 85 6 12 0.219 0.369 0.306 0.675 부산 아시안 게임 대표 선수
2003 129 421 68 119 26 0 16 48 6 26 55 13 66 14 19 0.283 0.458 0.379 0.838
2004 129 434 65 124 18 0 17 69 6 15 48 9 67 10 14 0.286 0.445 0.365 0.810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
2005 삼성 85 281 34 70 16 0 7 44 5 11 32 9 47 8 10 0.249 0.381 0.343 0.723
2006 115 382 54 108 22 1 11 65 10 7 56 7 74 6 8 0.283 0.432 0.380 0.812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 선수
도하 아시안 게임 대표 선수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
2007 100 333 34 104 25 0 7 56 5 10 53 4 38 5 12 0.312 0.450 0.408 0.858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
2008 104 332 28 81 12 3 5 38 5 12 44 3 50 9 9 0.244 0.343 0.335 0.678 베이징 올림픽 대표 선수
2009 76 223 22 57 11 0 6 29 2 7 25 3 31 8 5 0.256 0.386 0.333 0.719
2010 46 131 14 31 5 1 1 14 1 5 24 1 27 1 12 0.237 0.313 0.354 0.667
2011 SK 100 282 42 79 18 0 6 39 6 19 34 5 44 6 11 0.280 0.408 0.363 0.771
2012 57 138 12 29 7 1 5 19 3 9 14 0 27 2 0 0.210 0.384 0.281 0.665
2013 100 276 25 69 14 1 3 24 3 8 37 5 47 6 9 0.250 0.341 0.346 0.686


통산 18시즌

등번호[편집]

박진만은 데뷔 후부터 현재까지 등번호 7번을 고수하고 있다. 그가 등번호 7번을 달게 된 것에는 김재박 감독과의 인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박진만은 1996년 프로 데뷔 당시 뛰어난 기량 덕분에 김재박 현대 감독의 후계자라고 불리게 됐고, 자연스럽게 김 감독의 등번호를 물려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2005년 FA 계약을 통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한 뒤에도 등번호 7번을 달았고, 2011년 SK 와이번스로 이적한 뒤에는 등번호 7번의 주인공이던 김재현이 은퇴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7번을 물려받게 됐다.

  • 7 : 1996년~현재 (1996~2004 현대, 2005~2010 삼성, 2011~ SK)

4회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편집]

박진만은 심정수와 같이 2003년, 2004년 현대 유니콘스 시절과 2005년, 2006년 삼성 라이온즈 시절 총 4시즌 연속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선수이다. 이 기록은 1986년부터 1989년까지 4시즌 연속 우승한 해태 타이거즈 이후 달성한 유일한 기록이다.

참조[편집]

  1. 프로야구선수 박진만 돈주고 병역면제 받아 《동아일보》, 2000년 6월 27일 작성
  2. 역대 FA 최고 몸값 '헤라클래스' 심정수 - 매일신문
  3. 박진만, 자유계약 풀렸다…삼성 보류명단서 제외 《마이데일리》, 2010년 11월 11일 작성
  4. 박진만, SK 2014시즌 이끌 새 주장 《이데일리》, 2014년 01월 04일 작성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