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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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호
Lee Bum-Ho
KIA 타이거즈 No.25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생년월일 1981년 11월 25일(1981-11-25) (32세)
출신지 대한민국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신장 183 cm
체중 93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3루수, 유격수
프로 입단 연도 2000년
드래프트 순위 2000년 2차 1순위 (한화 이글스)
첫 출장 KBO / 2000년 4월 5일
대전현대
NPB / 2010년 3월 22일
삿포로닛폰햄
획득 타이틀
  • 2005년 골든 글러브
  • 2006년 골든 글러브
계약금 1억 1천만 원(2000년 입단 당시)
연봉 4억 원(2011년)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WBC 2006년·2009년
메달 기록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야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6 샌디에이고 야구
2009 로스앤젤레스 야구

이범호(李杋浩, 1981년 11월 25일 ~ )는 대한민국의 프로 야구 선수이며, 현재 한국 프로 야구 KIA 타이거즈내야수(3루수)이다.

2000년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였고, 2004년 시즌 잠시 유격수를 담당하였으나 2005년 시즌 다시 원래 포지션인 3루수로 복귀하였다. 2005년2006년에는 안정된 수비와 타격으로 3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명성에 비해 약간 낮은 타율을 기록하고 있으나, 타율에 비해 압도적인 장타율을 기록하고 있고 특히 득점권 타율이 매우 높은 선수로 알려져 있다. 역대 프로 야구 준 플레이오프에서 가장 많은 홈런 수(7개)를 기록하고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2004년 홈런 23개를 시작으로 2007년까지 4년 연속 20홈런 이상을 기록[1]할 정도로 장타력과 리그 최정상급 수비를 갖춘 3루수이다.[2]

고등학교 시절[편집]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대구수창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당시 포지션은 유격수였고 팀 내 2루수박기혁이었다.[3] 이후 경운중학교를 거쳐 대구고등학교에 입학한다. 당시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는 경북고 야구부와 대구상고 야구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전력을 가진 팀이었다.[2] 고등학교 시절 대구고등학교의 전국 대회 성적은 주목할 만한 것이 없었고, 1997년 제 19회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한 번 우승(대회 최우수 선수는 전 삼성 투수 김진웅)한 것이 전부였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대구고등학교의 성적은 2무 13패[4]로, 프로 야구 팀의 스카우터들은 낮은 전력의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선수들을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2000년 신인 드래프트 당시 대구·경북 지역의 최대어는 경북고 투수 배영수였다. 예상대로 배영수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았고, 대구·경북 지역의 다른 선수들은 2차 지명으로 넘겨지게 되었다.

한국 프로 야구 시절[편집]

한화 이글스 시절[편집]

2000년 신인 드래프트[편집]

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예상을 뒤엎고 한화 이글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았다. 당시 이범호의 스카우트를 담당한 사람은 당시 한화 이글스의 스카우터였던 정영기였는데, 이범호 선수의 단단한 하체를 보고 지명을 고집하였다.[5] 예상 외의 높은 순위로 지명을 받았지만 계약금은 2차 1순위 지명 선수 치고는 적은 금액인 1억 1천만 원이었다.[4]

2001년~2003년[편집]

2001년까지는 주로 대수비 또는 대타로 출전했고, 2002년부터 타격에 눈을 뜨기 시작해 두자릿수홈런을 쳐낸다. 김태균과 더불어 한화의 차세대 거포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4년~2006년[편집]

2004년은 그에게 최고의 해였다. 유격수로서 기록한 .308에 23홈런은 이종범, 장종훈에 버금가는 역대급 기록이었다. 다만 유격수수비에는 다소 헛점을 보여 3루수로 포지션을 옮겼다. 그후로 꾸준히 20홈런을 치는 타자로 성장한다. 2006년,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3루수로 출전하였다.

2007~2009년[편집]

2008년 125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0.276, 120안타, 19홈런을 기록하였고, 시즌 후 연봉 협상에서 전년보다 57.1% 인상된 3억 3천만 원에 계약하였다.[6] 2009년 4월 30일 청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2회 1사 만루홈런(상대 투수 김민기), 6회 우월 솔로 홈런, 7회 3점 홈런 등 한 경기에서 총 3개의 홈런과 8타점을 기록하였다. 한국 프로 야구 역사상 싸이클링 홈런을 기록할 수 있었지만 마지막 타석 주자가 한 명 있는 상태에서 조건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오선진 선수로 교체함으로써 싸이클링 홈런에는 실패하였다.[7]

일본 프로 야구 시절[편집]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편집]

2009년 WBC에서 맹활약을 펼쳤고, 2009년 시즌 후 FA를 선언하여 소프트뱅크의 러브콜을 받아 3년 간 최대 5억엔의 조건으로 입단했다. 그러나 일본 리그 적응 실패와 3루수 마쓰다 노부히코와의 경쟁에서 밀리며 1군 48경기, 124타수, 28안타, 4홈런, 8타점, 1도루, 타율 2할 2푼 6리에 그쳤다. 그 후 2군에서 안타 44개, 2루타 9개, 3루타 1개, 홈런 10개를 기록하였지만 2군에 머무르다 잔류 논란 끝에 방출되었다.

한국 프로 야구 복귀[편집]

KIA 타이거즈 시절[편집]

귀국한 후 친정 팀 한화의 복귀 제의가 들어왔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거절하였다. 2011년 1월 27일 KIA 타이거즈와 계약금 8억, 연봉 4억의 계약을 맺고 이적하였다.[8] 그의 KIA 타이거즈 이적으로 인해 2011년한화 이글스는 프런트의 무능력으로 맹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그후 햄스트링 부상 등으로 인해 제대로된 역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태업에 가까운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원성이 빗발치고 있다. 특히, 2013년에는 득점권 타율이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고 반대로 병살타 개수는 리그의 탑 수준에 이름을 올리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KIA타이거즈 몰락의 장본인이라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2013년시즌이 끝나고 김상훈의 차기 주장으로 낙점되어 2014년시즌을 KIA 타이거즈의 캡틴으로 이끌고 가게 되었다.

수상·타이틀 경력[편집]

주요기록[편집]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편집]

2006년, 2009년[편집]

2009년[편집]

연도별 성적[편집]

연도 소속 경기 타석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도실 희생번트 희생플라이 볼넷 고의4구 사구 삼진 병살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비고
2000 한화 69 86 74 11 12 7 0 1 22 3 1 0 0 1 10 0 1 21 2 .162 .267 .297 .565
2001 71 159 138 22 27 7 1 3 45 16 2 4 7 1 11 0 2 25 3 .196 .263 .326 .589
2002 111 329 296 41 77 20 2 11 134 35 5 1 4 2 24 1 3 57 5 .260 .320 .453 .773
2003 107 384 323 46 77 19 1 11 131 38 2 6 8 1 47 1 5 63 6 .238 .343 .406 .749
2004 133 541 481 80 148 35 3 23 258 74 6 3 5 4 48 1 3 80 8 .308 .371 .536 .908
2005 126 513 444 69 121 27 1 26 228 68 6 2 1 6 53 0 9 94 8 .273 .357 .514 .871 3루수 골든글러브
2006 126 497 421 53 108 25 1 20 195 73 0 2 1 3 65 2 7 87 11 .257 .363 .463 .82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 선수
3루수 골든글러브
2007 126 505 418 57 103 14 0 21 180 63 2 0 6 4 72 1 5 73 14 .246 .361 .431 .791
2008 125 508 434 80 120 21 3 19 204 77 12 1 0 4 61 0 9 50 18 .276 .374 .470 .844
2009 126 499 436 64 124 21 0 25 220 79 3 1 0 3 53 5 7 70 10 .284 .369 .505 .87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 선수
2010 소프트뱅크 48 139 124 11 28 4 0 4 44 8 1 0 3 0 11 0 1 33 2 .226 .294 .355 .649
2011 KIA 101 405 318 63 96 21 0 17 168 77 2 0 X X 75 X 7 56 8 .302 .440 .528 .968
2012 42 171 140 13 41 7 0 2 54 19 1 0 0 3 27 2 1 23 3 .293 .404 .386 .789
2013 122 516 436 56 108 17 0 24 197 73 0 2 4 5 62 3 9 79 18 .248 .350 .452 .801

등번호[편집]

KBO[편집]

NPB[편집]

별명[편집]

KBS2개그콘서트의 간판 코너였던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꽃미남 역할로 나온 개그맨 오지헌과 닮아서 "꽃미남 이범호"가 되었고, 팬들은 이를 줄여 꽃범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12] 이후 2007년 준 플레이오프 3차전(對 삼성)을 중계한 MBC 스포츠+에서 홈런을 기록한 이범호를 클로즈업한 화면의 주변을 '꽃'으로 시각 처리하여 별명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같이보기[편집]

주석[편집]

  1. 나는 3루수이고 싶다 한화 Big4 (3) 5번 타자 이범호 《스포츠 2.0》, 2008년 5월 26일
  2. 박동희의 스토브리그 - 등번호보다 유니폼에 집중하는 남자, 이범호 《박동희 칼럼》, 2008년 11월 25일
  3. 이범호-박기혁 ‘반갑다, 친구야~’ 《동아일보》, 2009년 2월 18일 작성
  4. 이범호의 두 가지 키워드 '연속경기, 그리고 우승' 《마이데일리》, 2007년 10월 8일 작성
  5. 롯데 정영기 2군 감독은 왜 해임됐나 《박동희 칼럼》, 2008년 10월 21일
  6. '예비 FA' 이범호, '57.1% 인상' 3억3천만원 연봉 계약 《Osen》, 2009년 1월 20일
  7. '데뷔 첫 3홈런-8타점' 한화 이범호 "타석서 홈런 욕심은 없다" 《마이데일리》, 2009년 4월 30일 작성
  8. 이범호, KIA행 확정 기사 《OSEN》이선호 기자, 2011년 1월 27일 작성, 확인.
  9. '시즌 2호 홈런포' 이범호 "WBC후에도 타격감 좋아" 《마이데일리》, 2009년 4월 10일 작성
  10. WBC 공식 홈페이지 2009년 3월 16일 경기 박스스코어
  11. WBC 공식 홈페이지 2009년 3월 18일 경기 박스스코어
  12. 오지헌, 닮은꼴 이범호 선수에 "역시 최고!" 《스타뉴스》, 2009년 3월 25일 작성

바깥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