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자카 다이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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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자카 다이스케
松坂 大輔

Daisuke Matsuzaka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No.--
Daisuke Matsuzaka on March 7, 2014.jpg

마쓰자카 다이스케(2014년)

기본 정보
국적 일본 일본
생년월일 1980년 9월 13일(1980-09-13) (34세)
출신지 도쿄 도 고토 구
(출생지 : 아오모리 현 아오모리 시)
신장 183 cm
체중 93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1998년
드래프트 순위 1순위
첫 출장 NPB / 1999년 4월 7일
MLB / 2007년 4월 5일
연봉 1033만 3,333달러(2011년)[1]
경력
일본 국가대표팀
올림픽 2000년·2004년
WBC 2006년·2009년
마쓰자카 다이스케
일본어식 한자 표기: 松坂 大輔
가나 표기: まつざか だいすけ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 마쓰자카 다이스케
통용 표기: 마츠자카 다이스케
로마자: Daisuke Matsuzaka
메달 기록
일본 일본의 선수
남자 야구
올림픽
2004 아테네 야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6 샌디에이고 2006 WBC
2009 로스앤젤레스 2009 WBC

마쓰자카 다이스케(일본어: 松坂 大輔 (まつざか だいすけ), 1980년 9월 13일 ~ )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이자, 현재 퍼시픽 리그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선수이다.

애칭은 마쓰퐁(マツポン), 마쓰(マツ), 다이스케(ダイスケ) 이고, 미국 언론에서는 Dice-K, D-Mat라는 애칭이 사용되고 있다. 보스턴에서는 ‘Dice-K’를 선호하고 있으며 마쓰자카 본인은 싸인할 때 ‘D-Mat’ 를 사용하기도 한다.

인물[편집]

프로 입단 전[편집]

아오모리 현 아오모리 시에서 태어나 도쿄 도 고토 구에서 자랐으며 요코하마 고등학교 재학 시절 시속 152km/h의 예리한 강속구와 날카로운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을 무기로 고등학교 수준의 투수로서 ‘헤이세이의 괴물(平成の怪物)’ 이라는 별명이 불릴 정도로 언론에 큰 주목을 받았다. 1998년의 전국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서 준준결승전인 고교 명문 PL가쿠엔 고등학교를 상대로 연장 17회의 접전 끝에 250개의 공을 던지면서 완투승을 기록, 다음날 준결승전 상대인 메이토쿠기주쿠 고등학교전에서 1이닝에 등판, 팀은 역전극을 벌인 끝에 결승전에 진출했다.

결승전인 교토세이쇼 고등학교전에서는 시마 세이이치가 기록한 이래 59년 만에 결승전에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는 등의 압도적인 활약으로 팀도 춘계·하계 대회에서 모두 연패를 달성했다. 또, 새로운 팀이 결성된 이후 1997년 추계 현 대회 예선부터 다음해 제53회 국민 체육 대회 결승까지 공식 경기에서 44연승을 기록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제3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도 등번호 1번을 착용해 결승전에서는(준결승전에서는 백차승이 소속된 대한민국 대표팀을 꺾었다) 쟝즈지아가 소속된 대만 대표팀을 누르고 우승을 이끌었다.

1998년도 프로 야구 신인 선수 선택 회의에서는 지명 순위 1위로 세이부 라이온스,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닛폰햄 파이터스 등 3개 구단이 경합을 벌인 끝에 세이부가 교섭권을 획득, 당초 드래프트 직후의 회견에서 마쓰자카는 “자신의 희망 구단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였다”라고 밝혔지만 고심 끝에 세이부에 입단했다.

세이부 라이온스 시절[편집]

1999년[편집]

히가시오 오사무 감독이 이끄는 세이부에 입단한 이후 이듬해인 1999년 4월 7일, 도쿄 돔에서 열린 닛폰햄 파이터스전의 첫 선발 투수로 등판하면서 시속 155km/h의 직구를 포함해 8이닝 2실점의 호투로 첫 승리를 기록하는 등 강렬한 프로 데뷔를 장식했다. 같은 해 4월 21일의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서는 팀이 0대 2로 석패, 4월 27일의 지바 롯데전에서 데뷔 이후 첫 완봉승을 기록하였다.

5월 16일 오릭스 블루웨이브전에서 오릭스의 간판타자인 이치로와의 첫 대결이 화제가 되었지만, 이치로를 3타석 연속 삼진(1볼넷)을 거의 완벽하게 처리했다. 경기 종료 후에 가진 히어로 인터뷰에서 “나 자신으로부터 확신이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7월 24일에 올스타전의 출장 선수로 선정되면서 올스타전 제1차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해 3이닝을 던지는 등 고졸 신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사상 최다인 무려 5개의 탈삼진을 기록, 그러나 3회초에 팀의 실책으로 2점을 잃으면서 패전 투수가 되었지만, 이 경기에서 우수 선수상과 올스타전 신인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이후 시드니 올림픽의 일본 야구 대표팀 선수로 아시아 예선에 출전하여 9월 15일 대만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 후루타 아쓰야(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배터리를 짜는 등 1실점 완투 승을 거두어 일본의 올림픽 본선 진출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였다. 데뷔 첫 해인 1999년 시즌 최다인 16승을 기록하여 다승왕 타이틀을 획득, 고졸 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베스트 나인골든 글러브상을 동시에 수상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졸 신인 투수로서는 호리우치 쓰네오(요미우리 자이언츠) 이후 33년 만에 퍼시픽 리그 신인왕을 석권하면서 실력을 과시했다.

2000년[편집]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 시절의 마쓰자카

쓰노 히로시(닛폰햄) 이래 15년 만에 10대 선수로서의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다. 정규 시즌 도중 프로 선수와 아마 추어 선수 혼성으로 구성된 시드니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팀으로 선발하면서 닷새 후인 9월 17일 미국전에 선발로 등판하였지만 팀은 연장 13회에서 끝내기 패배를 당했고, 이후 9월 23일의 대한민국전에 선발 등판하여 첫 이닝에 무려 4실점을 하는 등 합계 161개의 공을 던지면서 9이닝 5실점을 기록, 팀은 또 다시 접전 끝에 패했다. 사흘 뒤 3위 결정전에서 상대인 대한민국과 다시 격돌, 구대성과의 투수전을 펼쳤지만 8회말에 상대 타자인 이승엽의 결정적인 2루타를 허용하면서 3실점 완투패, 호투도 보답 받지 못한 채 일본은 올림픽 야구로서는 1984년 이후 처음으로 메달을 놓치게 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이후 정규 시즌에서 오노 신고(지바 롯데)와의 다승왕 타이틀을 놓고 경쟁한 끝에 2년 연속 다승왕(14승) 타이틀을 획득했다.

2001년[편집]

이듬해 정규 시즌에는 15승 15패, 3.60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면서 시즌 최다인 15승을 올리는 등 3년 연속 다승왕 타이틀을 획득, 고졸 출신으로서는 데뷔 초부터 3년 연속의 다승왕 타이틀 획득은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최초였다. 또 최고의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와무라 에이지상을 수상했지만 일부 선정 위원들은 15패를 기록했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이 나오기도 했었다. 어쨌든 양대 리그에서 유일하게 15승을 달성한 투수로서 240와 1/3이닝이라는 압도적인 투구 이닝을 기록했다는 이유였지만 일부 심사 위원들은 2년 연속 ‘해당자 없음’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피하고 싶다는 견해를 밝혔다.

2002년[편집]

정규 시즌에 팀이 개막 이후 6연승을 기록하는 등 순조로운 스타트를 끊었지만, 5월 13일에 있은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와의 경기에서 오른쪽 팔꿈치에 부상을 당하는 등 몇 차례나 1군에 복귀하였지만 제구력 난조 등 본래의 투구는 돌아오지 않고 팀 전력에서 장기 이탈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 해에 팀은 리그 우승을 제패하였지만 일본 시리즈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맞대결에서 두 차례 등판하였지만 요미우리 타선에 막히는 등 2패라는 성적을 기록하는 것을 비롯해 팀은 4전 전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 부진한 한 해를 보냈다.

2003년[편집]

2002년 시즌의 부진을 씻으며 개인 최다 기록인 16승을 올리는 등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2.83의 최우수 평균 자책점 타이틀을 석권했다. 이후 아테네 올림픽 야구 대표팀 선수로 출전하여 아시아 예선전인 11월 6일의 대만전에 선발로 등판해 7이닝 무실점 호투로 승리, 팀은 올림픽 본선 출전 조건인 2위 안에 들면서 동시에 최우수 투수로 선정되었다.

2004년[편집]

지바 롯데와의 개막전에서 첫회 선두 타자였던 하루 도시오에게 초구를 얻어맞아 안타를 허용했고 4번 타자(일본 프로 야구 진출 후 첫 타석)인 이승엽에게 적시타를 허용하면서 실점을 기록하는 등 개막전에서 패전 투수가 되었다. 7월 10일, 올스타전에 출전 선수로 선정되어 제1차전에서는 팀의 2번째 투수로서 등판, 2이닝을 무안타와 무실점을 포함해 4개의 탈삼진을 기록하여 개인 최고 속도가 되는 156km/h의 강속구를 기록했다. 마쓰자카는 이 경기에서 MVP로 선정되었다.

같은해 아테네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팀 선수로 최종 발탁되면서 팀은 캐나다와의 3위 결정전에 승리하면서 팀의 동메달을 획득하는 일조를 했다. 소속팀에 복귀한 이후 정규 시즌에서 팀은 2위를 기록했지만 그 해부터 도입된 플레이오프에서 첫 상대인 닛폰햄전의 선발 투수로 등판, 8회에는 제구력 난조로 점수를 내주는 등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타선의 지원을 받아 팀은 10대 7로 승리하여 승리 투수가 되었다.

10월 11일 후쿠오카 돔에서 열린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와의 경기(제2 스테이지에서는 제2차전)에서 등판하였지만 기대 이하의 투구로 강판 당하는 등 결국은 승리 투수가 될 수는 없었지만 팀은 연장 10회말에 4대 3으로 승리하면서 팀의 퍼시픽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센트럴 리그 우승 팀인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2차전에 선발 등판해 상대 타자인 다쓰나미 가즈요시에게 3점 짜리 동점 홈런을 허용하는 등 6과 1/3이닝을 던져 8실점을 기록하는 등 패전 투수가 되었지만 팀의 2승 3패로 마지막 수단을 쓸 수 있었던 6차전에서는 8회에 2실점을 기록하면서도 승리 투수가 되었다. 다음날인 7차전에서는 팀의 3번째 투수(중간 계투)로 등판,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해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이후 니혼 TV의 아나운서인 시바타 도모요와의 결혼을 발표했다.

2005년[편집]

5월 18일 교류전한신 타이거스전에서 프로 야구 선수로서의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첫 등판을 했다. 고교 시절 고시엔 구장에서의 15연승과 0개의 피홈런 기록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후 경기에서 상대 타자인 히야마 신지로에게 선제 2점 홈런을 허용하는 등 팀은 2대 3으로 패하고 말았다. 고시엔 대회에서의 0개의 피홈런 기록은 끊어지면서 연승 기록도 15승으로 멈추게 되었다. 2005년 시즌 2.30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4승 13패의 성적으로 기대 이하의 패전 수가 많으면서 한때 슬럼프를 겪기도 하였다. 일부 평론가들은 그의 성적에 대해 “투구의 리듬이 나빠졌기 때문에 팀 중심 타선의 큰 활약은 없었다”라고 지적하면서 본인도 이를 자각하고 다음 시즌의 개선을 목표로 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시즌 종료 후에는 대리인을 선임하면서 포스팅 시스템을 이용해서 메이저 리그에 도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구단 측은 마쓰자카가 FA를 행사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2006년[편집]

오 사다하루 감독이 이끄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어 아시아 지역 예선전(도쿄 돔)인 3월 4일의 대만전에서는 4이닝 1실점, 본선 경기인 3월 14일의 멕시코전에서는 5이닝 무실점, 그리고 3월 20일의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는 경기 시작 전에 목을 다치면서도 기대 이상의 투구로 4회에는 1실점을 기록해 대회 기간 중 선발 투수로서는 모든 경기에서 승리 투수가 되는 등 결과적으로 대회 최고 성적인 3승, 1.38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한 공로로 대회 최우수 선수(MVP)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같은 해 6월 9일의 교류전인 한신전에서 1실점 완투승을 거두어 고교 시절에 활약했던 고시엔 구장에서의 프로 첫 승리를 기록하는가 하면, 8회의 타석에서도 2점 홈런을 기록했다. 6월 16일 교류전인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에서 191경기만에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1]

10월 7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플레이오프 제1 스테이지의 첫 경기에 선발 등판해 어려운 몸쪽 공격으로 4개의 사구를 허용했지만 사이토 가즈미와의 치열한 투수전 끝에 팀은 1대 0으로 승리하면서 자신도 완봉 승리를 거두었지만 팀은 그 후 2연패를 하면서 제1 스테이지에서는 패했다.

시즌 종료 후 포스팅 시스템을 이용해 메이저 리그보스턴 레드삭스가 5,111만 1,111달러 11센트(약 60억엔)로 독점 교섭권을 획득하면서 마쓰자카와의 본격적인 입단 계약 협상에 들어갔다. AP 통신에 따르면, 계약 내용은 6년간 총액 5200만 달러(약 61억 엔) 라고 보도했다.[2] 보스턴 레드삭스가 1998년 여름 고시엔 대회 당시 마쓰자카의 활약상을 주목하고 있어서 구단 관계자가 고시엔 구장에서 결승전 경기를 관전하기도 했다. 레드삭스의 팬이자 미국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인 크리스토퍼 힐중국 베이징에서 열릴 6자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 전 기자 회견에서 “오늘 마쓰자카의 입단 교섭은 어떻게 됐어요?”라고 말하는 등 마쓰자카의 레드삭스 입단 교섭 상황을 주시하는 등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로써 마쓰자카는 자신의 거취 문제와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8년간 몸담았던 세이부에서의 선수 생활을 마치고 메이저 리그로 진출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편집]

메이저 리그 성적
연도 승패 평균 자책점 탈삼진
2007년 15승 12패 4.40 201
2008년 18승 3패 2.90 154
2009년 4승 6패 5.76 54
2010년 9승 6패 4.69 133
2011년 3승 3패 5.30 26
2012년 1승 7패 8.28 41

2007년[편집]

메이저 리그 진출 첫 해인 2007년 4월 5일의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에서 메이저 리그의 정규 경기 첫 선발로 등판, 최고 속도인 94마일(약 153km/h)의 강속구와[3] 다채로운 변화구를 무기로 7회까지 솔로 홈런에 의한 1실점과 10개 탈삼진을 기록하여 승리투수가 되었다. 5월 세 번째주에는 아메리칸 리그의 주간 MVP에 선정되었고, 정규 시즌 마지막 등판이 된 9월 28일의 미네소타 트윈스전에서는 이시이 가즈히사의 14승을 웃돌아 일본의 메이저 리그 신인 투수로서 사상 최다가 되는 15승을(12패) 기록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10월 5일, 아메리칸 리그의 디비전 시리즈로 LA 에인절스와의 제2차전에 첫 등판, 이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제3차전(10월 15일)에 선발로 등판했지만 무려 4실점을 기록하는 등 패전 투수가 되었다. 10월 21일에 마쓰자카가 다시 등판, 5회에 2실점을 기록하며 일본인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승리투수가 되었다.

세이부에서 활약할 당시 그의 팀 선배인 마쓰이 가즈오가 소속된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월드 시리즈에서 10월 27일 3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5회에서 2실점을 기록하는 등 마쓰자카는 일본인 선수로서는 월드 시리즈 승리 투수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팀은 다음날인 제4차전에서도 승리하여 월드 시리즈 우승을 제패했다. 1경기에서의 평균 투구수는 108.8개를 기록하여 이것은 메이저 리그에서 1위가 되는 숫자였다.

2008년[편집]

5월 27일 시애틀 매리너스전에서 경기 도중 갑작스런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에 오르기도 했지만 6월 21일에 복귀, 그러나 메이저 리그 올스타전에 출전하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9월 21일의 토론토 블루 제이스전에서 노모 히데오가 3번째 기록한 16승을 기록하며 일본인으로서는 최다인 18승을 올렸다.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재대결을 하게 된 10월 3일의 디비전 시리즈(제2차전)인 LA 에인절스전에서는 5이닝동안 3실점을 기록하여 승패는 연결짓지 못했지만 팀은 9회에서 기적같은 승리를 거두었다. 10월 10일의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제1차전인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경기에서는 7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아 승리 투수가 되었다. 10월 16일의 제5차전에서는 4회에 5실점을 하여 강판당했지만 팀은 7회 2사까지 0-7로부터의 대역전극을 펼치며 끝내기 승리로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팀은 리그 우승을 놓치면서 메이저 리그 2년차의 시즌을 마감했다.

그 해에는 작년에 비해 볼넷이 증가했지만 정규 시즌의 피타율은 리그 1위의 낮음을 자랑하여 주자가 모이게 되면 더욱 낮아지기도 하였다.[4] 플레이오프를 포함해 만루 위기는 15차례나 있었고 밀어내기와 희생 플라이도 많이 있었지만 모두 노히트로 처리했다. 또 원정 경기에서 무패를 기록하여 2008년 시즌 승률(.8620)을 기록해 메이저 리그 승률 부문인 역대 25위에 랭크되었고 메이저 리그 최고의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이 영 상의 투표에서는 4위에 오르기도 했다.

2009년[편집]

마운드에서 투구 중인 마쓰자카
투수 코치와 상의를 하고 있는 마쓰자카

이듬해 하라 다쓰노리 감독이 이끄는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일본 대표팀으로 출전하면서 2006년 대회에 이어 두 번째로 참가하였다. 3월 7일, 도쿄 돔에서 열린 지역 예선 A조 승자전에 대한민국을 상대로 선발 등판한 마쓰자카는 상대 타자인 김태균에게 2점 홈런을 허용하는 것을 포함해 4이닝 동안 피안타 4개(홈런 1개 포함)를 허용하며 2실점하였고, 이 경기에서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어 그는 3월 15일에 8강 1조 첫 번째 경기인 쿠바전에 선발 등판하여 6이닝 동안 피안타 5개만을 허용하는 동안 탈삼진 8개를 잡으며 무실점으로 호투, 이 경기의 승리투수가 되었다. 3월 23일 마쓰자카는 4강 2경기 미국전에 다시 선발로 등판하여 4와 2/3이닝 동안 5피안타, 볼넷 3개, 탈삼진 4개를 기록하며 2실점, 이 경기에서의 승리투수가 되었다. WBC에서 선발 3승을 올린 마쓰자카는 일본이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우승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전 대회에 이어 두 번째로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정규 시즌 개막 이후 2경기 연속으로 부상자 명단에 오르는 등 복귀 이후인 6월 2일에 첫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 후에도 부진을 겪으면서 21일에 또 다시 부상자 명단에 들어갔다. 그 와중에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환경속에서 연습을 계속 강요당하면 나는 일본에 있을 때와 같은 피칭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라고 말해 팀의 조정 방침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을 하는 등 후에 자신의 발언에 대한 사과를 하기도 했다.

9월에는 다시 복귀했지만 이 해의 시즌 성적이 4승 6패와 평균 자책점 5.76이라는 프로에 입문한 이후 가장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부진의 원인에 대해서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WBC가 열리기 전부터 고관절에 이상이 생겨 통증이 있었다는 것을 밝혔지만 이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채 WBC에 출전했고, 시즌 오프가 되면서 일본 언론에 보고했던 것이 시즌 중에 마쓰자카의 부진한 원인을 해명하려던 구단의 분노를 샀다. 그 일 때문인지 마쓰자카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다시 구단에게 사과를 했다.[5]

2010년[편집]

마쓰자카 본인이나 구단 수뇌진은 속구에 반응을 느낀 시즌이라고 되돌아 보면서도[6] 캠프가 열리기 전부터 목에 통증을 호소해 조정이 늦어졌고 시범 경기에서도 2경기에 등판하여 결국 시즌 개막을 부상자 명단에 오르는 등 그대로 시즌을 보내게 되었다. 5월에는 복귀하여 이후 6월 8일에는 미일 통산 150승을 달성했다. 그러나 같은 달 12일에는 오른쪽 팔뚝에 통증을 호소하는 등 부상자 명단에 들어가기도 했다(같은 달 하순에 복귀). 5월 22일의 필라델피아 필리스전에서는 8회 2사까지 노히트 노런을 계속하는 등 호투를 보여주었지만 이후에 선발 등판한 같은 달 27일의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에서는 9개의 사사구를 던지는 등 시즌을 통해 투구 패턴이 나쁠 정도의 격렬한 피칭이 계속 되었다. 최종적으로는 2년 연속 규정 투구 횟수를 채우지 못해 한 자릿수 승리에만 끝났다. 규정 투구 횟수에 도달하지 않으면서 강판 당할 시에 남긴 주자는 21명과 선발 투수로서 리그 최하위인 10위였다(그 중 중간 계투가 되돌린 것은 6명).

2011년[편집]

스프링 트레이닝에서는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을 받아 오카지마 히데키, 다자와 준이치, 쇼다 이쓰키와 함께 의연금을 모아[7]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8] 시즌 개막 후에는 2경기에서 7이닝 10실점을 기록하여 2연패를 당했지만 4월 18일의 토론토 블루제이스전에서는 7이닝 1안타 무실점과 1볼넷, 탈삼진 3개의 투구로 시즌 첫 승리 투수가 되었다.

4월 23일의 LA 에인절스전에서는 8이닝 1안타 무실점과 3볼넷, 탈삼진 9개의 투구로 2승째를 올려 15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한 것 외에도 5월 4일의 LA 에인절스전에서는 연장 13회에 8번째 투수로서 메이저 리그 진출 후 처음이 되는 중간 계투로서의 등판을 경험했다(2사 만루로부터 2점 적시타를 허용해 패전 투수가 되었다).[9] 그러나 4월 29일의 시애틀 매리너스전에서 경기 도중에 강판되는 등 4월 말경부터 오른쪽 팔꿈치에 통증이 일어나 5월 17일에는 부상자 명단에 올랐고 일시 귀국을 거쳐 6월 10일에는 팔꿈치 인대 수술을 받았다.[10]

2012년[편집]

6월 9일 워싱턴 내셔널스전에서 복귀 후 첫 등판하여 구속은 평균 구속 91.5mph(약 147km/h), 최고 속도 93mph(약 150 km/h)를 기록하였지만 5이닝 동안 5개의 피안타, 4실점, 8개의 탈삼진, 볼넷 1개의 투구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11][12] 그 후 4경기에 선발 등판하였지만 승리 투수가 되지는 않았고 7월 3일에는 부상으로 인해 부상자 명단에 들어갔다.[13] 8월 27일에 복귀하여 그 날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에 선발 등판해 7이닝을 5개의 피안타, 1실점, 6개의 탈삼진, 볼넷 2개, 최고 속도 94mph(약 151 km/h)를 기록하는 투구로 일본인으로서는 역대 4번째이자 메이저 리그 통산 50승째가 되는 복귀 후 첫 승리 투수가 되었다.[14][15] 그러나 이후의 등판에서는 모두 4실점 이상을 기록하면서 승리 투수가 되지 못했고, 시즌 최종 등판이 된 10월 3일 뉴욕 양키스전에서는 구로다 히로키와 투수전을 펼쳤지만 2와 1/3이닝을 던져 2개의 피홈런을 포함한 6개의 피안타, 5실점으로 시즌 7패째를 당하는 등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16]

뉴욕 메츠 시절[편집]

2014년[편집]

4월 24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서 팀이 9회 4-1로 리드했을때 등판하여 1이닝을 탈삼진1개 포함 무실점으로 막고 메이저리그 진출 후 첫 세이브를 올렸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투구[편집]

투구 폼은 와인드업 중에 높은 직구의 스리쿼터로 퀵모션은 1.0초대로 매우 빠르다. 평균 구속 91.7mph(약 147.6km/h),[17] 최고 속도 97mph(약 156km/h)의 속구(포심 패스트볼, 투심 패스트볼, 컷 패스트볼, 원심 패스트볼[18])에 가세하면서 2종류의 슬라이더, 커브, 여러 종류의 체인지업(서클 체인지업, 스플릿트 체인지업,[19] 스트레이트 체인지업, 팜 체인지업), 스플릿 핑거를 구분해서 던질 수 있으며 세로에 변화하는 슬라이더로 삼진을 빼앗는 경우가 많다.

2010년부터는 속구 중심의 피칭이 되어[20] 팀 동료에게서는 메이저 리그 4년 간 “최고의 구위였다”라는 평가를 얻었다.[21]

자이로볼 논쟁[편집]

메이저 리그 스카우트들 사이에 “마쓰자카는 자이로볼을 던진다”라는 소문이 났던 적이 있어 정작 마쓰자카 본인도 처음엔 무슨 일인가가 모르고 있었지만 그의 주무기 하나인 140km/h를 넘는 컷 볼의 누락구이다. 볼의 회전축이 볼의 진행 방향과 같은 방향(나사나 탄환을 상상하면 이해하기 쉽다)이면서 항력이 작기 때문에 자이로볼의 일종으로 여겨지기도 하였지만 속구와 달라 백스핀의 양이 적기 때문에 중력에 따라 10cm 수직에 날카롭게 떨어지는 구질이 된다.

타격[편집]

고교 시절에는 4번 타자를 맡았던 적도 있어 고교 통산 14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타격에 고민하는 야수에게 타격에 대한 조언을 보내기도 하면서 2003년 4월 21일의 오릭스 블루웨이브전에서는 마쓰자카로부터 “체인지업을 노리면 재미있지 않은가”라고 조언했는데 고토 다케토시구대성의 체인지업을 파악하고 홈런을 때린 적이 있다. 퍼시픽 리그에 소속된 투수는 타격 연습을 거의 하지는 않지만 마쓰자카는 기분 전환도 할 겸해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한 2007년의 춘계 스프링 캠프에서는 자신의 방망이까지 지참했는데도 불구하고 코치진들이 타격 연습을 시켜 주지 않았다.

수비[편집]

세이부 시절에는 타구 처리에 대한 높은 평가를 받아, 일본 프로 야구에서의 8년 동안 골든 글러브상을 7차례나 수상했다(2002년에만 투구회와 등판한 경기 수의 부족으로 골든 글러브상의 유자격자는 아니었다).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한 이후에는 플러스 마이너스 시스템 및 수비 방어점의 평가가 각각 2007년은 ±0과 -1, 2008년은 +2와 +1, 2009년은 -1과 -2, 2010년은 +2와 -1로 대개 평균적인 수비력을 나타내는 숫자가 나와 있다.

에피소드[편집]

새로운 말·유행어 대상[편집]

프로 데뷔 연도인 1999년에는 같은 해 프로에 입문한 우에하라 고지(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함께 동년 새로운 말·유행어 대상의 연간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교통 법규 위반 은폐 사건[편집]

2000년 9월 13일 마쓰자카는 결혼 전 니혼 TV의 아나운서인 시바타 도모요(현재 마쓰자카의 부인)와 교제할 당시 시바타가 거주하고 있는 자택 앞에 세워둔 구단 명의로 된 차가 주차 위반 처분을 부과 받은 적이 있다. 마쓰자카는 그 해 8월경에 자동차를 운전하던 도중 속도 위반으로 면허 정지 처분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당시 세이부 구단의 구로이와 아키라(전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이자 1988년 캘거리 동계 올림픽 동메달 리스트, 2004년 12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세이부 구단 대표를 지냄) 홍보 과장이 마쓰자카를 대신해서 경찰에 출두했다.

그러나 “마쓰자카의 교통 위반 사건이 은폐되었다”라는 유력 시사 주간지에 의해 보도되면서 파문이 확대되자 경찰은 마쓰자카를 도로 교통법 위반(무면허 운전, 주차 위반), 구로이와 홍보 과장도 사건을 은폐한 혐의를 적용해 도쿄 지검에 사건을 송치 했다. 그 결과 약식 기소에 의해 벌금 19만 5000엔의 약식 명령을 받았지만 구단 직원이 마쓰자카의 주차 위반 은폐 사건에 관여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구단 이미지가 실추될 위기에 몰리자 당시 구단 사장과 구로이와 홍보 과장은 사건의 책임을 물어 사의를 표명, 사표를 제출했다. 또, 마쓰자카가 당시 사이타마 현 경찰청으로부터 교통 안전 캠페인의 이미지 캐릭터로 선정된 적이 있어 일본 사회에 충격과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 이것을 중요하게 본 구단측은 궁지에 몰리고 있는 마쓰자카를 무기한 근신 처분을 내렸지만, 근신 처분은 1개월 미만으로 낮추는 등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다이스케의 저주[편집]

아마추어 시대인 고교 야구 대회에서의 연패와 같은 훌륭한 성적을 기록한 것에 비해 정작 프로에 입문한 이후에는 소속팀의 우승 쟁탈이나 올림픽의 메달 경쟁 등 국제 대회와 같은 거대한 무대에서 기대 이하의 투구로 부진하는 등 우승에 인연이 없는 투수였다. 마쓰자카가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한 2002년에는 세이부가 퍼시픽 리그 우승을 제패했기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는 ‘다이스케의 저주’(ダイスケの呪い)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준결승전에서는 호투하면서도 팀 타선의 부진으로 패했지만 페넌트레이스에서는 순조롭게 승리 투수가 되는 등 특히 약점으로 여겨진 포스트 시즌에서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과 5차전에 호투를 하여 세이부를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후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2차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무려 8실점을 기록하는 등 패전 투수가 되었지만, 마지막 수단을 쓸 수 있었던 6차전에서는 초반에 리드를 빼앗기면서도 결국 2점으로 막아내 자신의 첫 시리즈 승리 투수가 되었다. 다음날인 7차전에서도 중간 계투로 등판해 팀은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도 대회 성적인 3승을 기록하여 팀의 우승에 기여하면서 이 대회에서의 MVP로 선정되는 등 국제 무대에서 약하다고 하는 ‘저주’ 를 완전하게 불식시켰다.

검도속구[편집]

마쓰자카는 어린 시절에 검도를 배운 적이 있었는데, 2006년 소년 야구 교실에서 일일강사로 활동할 당시 “직구를 빠르게 던질려면 어떻게 하면 좋으냐”라는 한 학생의 질문에 “검도를 하면 등골과 손목이 단련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라고 대답했다. 어린 시절에 배웠던 검도는 그가 현재 던지고 있는 속구의 기초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상세 정보[편집]

출신 학교[편집]

  • 요코하마 고등학교

선수 경력[편집]

NPB
MLB
국가 대표 경력

수상·타이틀 경력[편집]

타이틀[편집]

수상[편집]

국제 대회[편집]

주요 기록[편집]

투수 기록[편집]

  • 첫 등판·첫 선발·첫 승리 : 1999년 4월 7일, 대 닛폰햄 파이터스 2차전(도쿄 돔), 8이닝 5안타 2실점
  • 첫 탈삼진 : 상동, 1회말에 이데 다쓰야로부터
  • 첫 완투 : 1999년 4월 14일, 대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 2차전(세이부 돔), 9이닝 3안타 2실점에서 패전 투수
  • 첫 완투 승리·첫 완봉 승리 : 1999년 4월 27일, 대 지바 롯데 마린스 4차전(세이부 돔)
  • 첫 세이브 : 2000년 5월 9일, 대 지바 롯데 마린스 6차전(세이부 돔), 7회초에 2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마무리, 3이닝 무실점

타격 기록[편집]

기록 달성 경력[편집]

기타[편집]

  • 1이닝 4개 탈삼진 : 2004년 9월 17일, 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25차전(후쿠오카 돔)[25]
  • 올스타전 출장 : 7회(1999년 ~ 2001년, 2004년 ~ 2006년)[26]

등번호[편집]

  • 18(1999년 ~ )

연도별 투수 성적[편집]

연도 소속











상대
타자
투구
이닝





고의
사구
몸에
맞는 볼







평균
자책점
WHIP
1999년 세이부 25 24 6 2 0 16 5 0 -- .762 743 180.0 124 14 87 1 8 151 5 2 55 52 2.60 1.17
2000년 27 24 6 2 0 14 7 1 -- .667 727 167.2 132 12 95 1 4 144 2 0 85 74 3.97 1.35
2001년 33 32 12 2 1 15 15 0 -- .500 1004 240.1 184 27 117 1 8 214 9 1 104 96 3.60 1.25
2002년 14 11 2 0 0 6 2 0 -- .750 302 73.1 60 13 15 1 7 78 2 1 30 30 3.68 1.02
2003년 29 27 8 2 1 16 7 0 -- .696 801 194.0 165 13 63 2 9 215 4 0 71 61 2.83 1.17
2004년 23 19 10 5 0 10 6 0 -- .625 601 146.0 127 7 42 0 6 127 5 0 50 47 2.90 1.16
2005년 28 28 15 3 3 14 13 0 0 .519 868 215.0 172 13 49 0 10 226 9 0 63 55 2.30 1.03
2006년 25 25 13 2 2 17 5 0 0 .773 722 186.1 138 13 34 0 3 200 5 0 50 44 2.13 0.92
2007년 BOS 32 32 1 0 1 15 12 0 0 .555 874 204.2 191 25 80 1 13 201 5 0 100 100 4.40 1.32
2008년 29 29 0 0 0 18 3 0 0 .857 716 167.2 128 12 94 1 7 154 5 0 58 54 2.90 1.32
2009년 12 12 0 0 0 4 6 0 0 .400 283 59.1 81 10 30 1 2 54 8 0 38 38 5.76 1.87
2010년 25 25 0 0 0 9 6 0 0 .600 664 153.2 137 13 74 1 8 133 4 0 84 80 4.69 1.37
2011년 8 7 0 0 0 3 3 0 0 .500 167 37.1 32 4 23 0 1 26 0 0 24 22 5.30 1.47
2012년 11 11 0 0 0 1 7 0 0 .125 215 45.2 58 11 20 0 3 41 3 0 43 42 8.28 1.71
2013년 NYM 7 7 0 0 0 3 3 0 0 .500 166 38.2 32 4 16 0 5 33 0 0 21 19 4.42 1.24
2014년 34 9 0 0 0 3 3 1 3 .500 359 83.1 62 6 50 5 6 78 6 0 38 36 3.89 1.34
NPB : 8년 204 190 72 18 7 108 60 1 0 .642 5768 1402.2 1102 112 502 6 55 1355 41 4 508 459 2.95 1.14
MLB : 8년 158 132 1 0 1 56 43 1 3 .566 3444 790.1 721 85 387 9 45 720 31 0 406 391 4.45 1.40
  • 2014년 기준,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주석[편집]

  1. 이 후 같은 해인 2006년 8월 25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우에하라 고지가 마쓰자카와 똑같은 191경기 만에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하여 마쓰자카의 기록은 우에하라보다 최고로 빠른 타이 기록을 수립했다.
  2. 계약금이 200만 달러, 연봉은 2007년에는 600만 달러, 2008년 ~ 2010년에 각 800만 달러, 2011년 ~ 2012년엔 각 1000만 달러라고 보도되었다.
  3. 松坂幻の158キロ 닛칸 스포츠, 2007년 4월 27일.
  4. MLB 홈페이지 - 2008년 시즌에서 아메리칸 리그 1위를 기록했다(.211).
  5. 松坂がGMへ直接謝罪、股関節痛報告せず
  6. 松坂、岡島、田沢それぞれの2010年 Rソックス日本人選手を振り返る 스포츠나비, 2010년 10월 15일.
  7. 松坂が岡島が…ヤ軍戦前280万円集めた 닛칸 스포츠, 2011년 3월 16일
  8. 松坂が100万ドル=約8000万円寄付 닛칸 스포츠, 2011년 3월 26일
  9. 松坂、メジャー初の真夜中リリーフで黒星 닛칸 스포츠, 2011년 5월 6일
  10. 松坂の右肘手術成功、倫世夫人付き添う 닛칸 스포츠, 2011년 6월 11일
  11. 松坂手応え 黒星も390日ぶりメジャー 닛칸 스포츠, 2012년 6월 11일
  12. 松坂「ここで投げるの楽しい」/一問一答 닛칸 스포츠, 2012년 6월 11일
  13. 松坂が故障者リスト入り 右僧帽筋痛 닛칸 스포츠, 2012년 7월 4일
  14. 松坂50勝 野球人生の再スタート 닛칸 스포츠, 2012년 8월 29일
  15. 松坂「妻に文句言われるので」/一問一答 닛칸 스포츠, 2012년 8월 29일
  16. 松坂屈辱KO 残留は「限りなくゼロ」 닛칸 스포츠, 2012년 10월 4일
  17. FanGraphs Daisuke Matsuzaka Pitch FX
  18. 松坂、パワーピッチャーへ=新たな武器ワンシームを習得 스포츠나비, 2010년 7월 27일
  19. 不振脱出!松坂、新球「スプリットチェンジ」だ 스포니치, 2010년 9월 28일
  20. ストレート勝負の本格派に変身中!松坂大輔は魅力的な“悪女”である 生島敦「スポーツ・インテリジェンス原論」, Number Web, 2010년 6월 13일
  21. メジャー4年目で最高の出来だった松坂大輔を襲った悲劇 笹田幸嗣 Web Sportiva, 2010년 10월 5일
  22. 1999년은 대상, 2007년은 수훈상과 40주년 특별상.
  23. 1999년은 팬상, 2007년은 국제상
  24. 191경기 만의 달성은 드래프트제 도입 이후 가장 빠른 기록.
  25. 6회말에 마쓰나카 노부히코(낫아웃), 조지마 겐지, 훌리오 줄레타, 오미치 노리요시로부터 기록. ※역대 10번째(11번째)
  26. 2002년과 2003년은 갑작스런 부상으로 인해 출전 포기.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