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노스케
| 아베 신노스케 阿部 慎之助 Shinnosuke Abe 요미우리 자이언츠 No.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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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노스케(200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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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정보 | |
|---|---|
| 국적 | |
| 출신지 | 지바 현 우라야스 시 |
| 생년월일 | 1979년 3월 20일 (32세) |
| 신장 | 179 cm |
| 체중 | 91 kg |
| 선수 정보 | |
| 투구·타석 | 우투좌타 |
| 수비 위치 | 포수, 1루수 |
| 프로 입단 연도 | 2000년 |
| 드래프트 순위 | 1순위 |
| 첫 출장 | 2001년 3월 30일 |
| 연봉 | 4억 엔(2012년) |
| 경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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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국가대표팀 | |
| 올림픽 | 2000년·2008년 |
| WBC | 2009년 |
| 아베 신노스케 | |
|---|---|
| 일본어식 한자 표기: | 阿部 慎之助 |
| 가나 표기: | あべ しんのすけ |
| 외래어 표기법 표기: | 아베 신노스케 |
| 통용 표기: | 아베 신노스케 |
| 로마자: | Shinnosuke Abe |
| 메달 기록 | |||
|---|---|---|---|
| 남자 야구 | |||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
| 금 | 2009 로스앤젤레스 | 2009 WBC | |
아베 신노스케(일본어:
목차 |
[편집] 인물
[편집] 프로 입단 전
지바 현 출신으로 아버지는 실업팀인 덴덴 도쿄에서 소속된 야구 선수출신으로 가케후 마사유키와 나라시노 시립 나라시노 고등학교의 동창생이었다. 가케후와 클린업을 짜면서 가케후는 3번 타자, 아버지는 4번 타자로 활약해 여름에 열린 고시엔 대회에 출전한 경력이 있다. 그 영향으로 어렸을 때 한신 타이거스의 팬이면서 가케후를 동경해 좌타자로 활약하게 되었다.
그 후 아버지의 권유로 우라야스 시 야구 협회 연식 소년 야구팀에 입단하여 야구에 입문해 이후 야스다가쿠엔 고등학교 시절 통산 38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고교 졸업 후 주오 대학에 진학하면서 주오 대학 시절 3학년 봄까지 도토대학 2부 리그에서 활약하면서 2부 리그 통산 51경기 출장, 186타수 58안타, 타율 3할 1푼 2리, 12홈런, 41타점을 기록했다. 3학년 가을에는 1부 리그로 승격되어 1부 리그 통산 28경기 출장, 92타수 27안타, 타율 2할 9푼 3리, 5홈런, 19타점을 기록했고 베스트 나인 1회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0년 9월에는 시드니 올림픽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어 출전했고 같은 해 11월 드래프트 회의에서 1순위(역지명)로 지명을 받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편집] 프로 입단 후
[편집] 2001년
요미우리 구단으로서는 야마쿠라 가즈히로 이후 23년 만의 ‘신인 포수 개막전 선발 멤버’로서 출전해 그 경기에서는 첫 타석에서 첫 안타를 때려내는 것을 포함한 4타점을 기록하였다. 최종적으로 타격에서는 시즌 13개의 홈런을 기록, 신인 포수의 시즌 두 자릿수 홈런은 다부치 고이치 이후의 두 번째였으며, 규정 타석에는 6타석이 부족했다. 당시 요미우리는 무라타 신이치를 대신하는 정포수의 육성이 급선무였던 일도 있어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은 계속 기용했고, 프로 야구 포수로서의 경험을 거듭하게 되었다.
[편집] 2002년
하라 다쓰노리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전년도의 경험을 살려 127경기에 출전해 팀의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을 동시에 이끈 우승 멤버로 활약하면서 베스트 나인과 골든 글러브상을 동시에 선정되는 등 수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시즌 후반부터 다카하시 요시노부의 부진으로 3번 타자로 활약하여 끝내기 홈런을 기록, ‘사요나라 신짱’(サヨナラ慎ちゃん)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 해 아베가 규정 타석수에 도달한 것으로서 요미우리 구단으로서는 1987년에 야마쿠라 가즈히로 이후 포수에 의한 규정 타석에 도달하는 기록을 경신했다.
[편집] 2003년
시즌 중반 부상을 당해 전력에서 이탈 당하면서 94경기에 출전하는 등 규정 타석에서는 부족했지만 시즌 타율 3할 3푼을 기록했다. 그 해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출장했다.
[편집] 2004년
4월 9일부터 4월 16일까지 6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 4월 28일에는 3홈런을 기록하는 등 개막 이후부터 홈런을 기록하면서 4월에 16개의 홈런을 기록했지만 5월 12일에는 세계 기록에 줄선 ‘개막 33경기 만에 20개 홈런’을 기록한다. 5월 후반과 6·7월은 각각 2개씩에 머물러 8월에는 갑작스런 부상도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33개의 시즌 홈런을 기록하였다. 그런데도 시즌 33개의 홈런은 요미우리 소속 포수로서는 사상 최초이자 30개의 홈런을 넘은 성적이며, 월간 16개 홈런은 오 사다하루가 지금까지의 구단 기록을 경신하면서 1981년의 가도타 히로미쓰(난카이 호크스), 1994년의 에토 아키라(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대등한 일본 타이 기록이다. 규정 타석에 도달한 이후 처음으로 타율 3할대를 기록, 11월에는 미일 야구 대회에 포수·대타 출전하여 전체 8경기 중 6경기에 출전했지만, 13타석 11타수 무안타 2볼넷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였다.
[편집] 2005년
전년도부터 계속되어온 부상에 시달리면서, 특히 오른쪽 어깨 부상 때문에 도루 저지율이 큰 폭으로 저하되었다. 타격은 호조를 이루어 5번 타자로 출장, 최종적으로 타율은 3할 대를 넘어 출루율과 득점권 타율은 팀내 1위를 기록하였으며, 8월 23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에서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1루수로 선발 출장, 오른쪽 어깨 통증으로 인해 포수로서의 수비는 어렵기도 하였지만, 요미우리 공격의 중심이 되고 있었기 때문에 수비의 부담이 적은 1루수로 출전하였다.
[편집] 2006년
이듬해인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었지만 대회 개막을 앞둔 상황에서 갑작스런 부상 후유증으로 인해 출전을 포기, 이후 정규 경기에서 시즌 타율이 4년 만에 3할을 밑도는 것을 포함하여 홈런도 개인 성적 최저인 10개로 끝났다. 포수로서는 자신의 역대 최고 기록이자 도루 저지율인 4할 4푼 3리를 기록했다. 10월 18일에는 회사원인 여성과의 결혼을 발표했다.
[편집] 2007년
그 해 팀의 주장으로 임명, 6월 9일의 라쿠텐전에서 구단 역사상 72번째의 4번 타자를 맡아 2홈런, 5타점을 기록하여 맹활약을 했다. 또 6월 14일의 오릭스 버팔로스전에서는 첫 회에 히라노 요시히사로부터 만루 홈런을 때려내면서 이 홈런은 프로 야구 사상 최초의 구단 통산 200개의 만루 홈런이 되었다. 올스타전 2차전에서는 MVP를 차지했다.
9월 25일에는 33개의 홈런을 기록, 데뷔 이후 처음으로 100타점을 달성하였는데 포수로 등록된 선수의 시즌 100타점 달성은 2003년의 조지마 겐지(당시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이래 사상 4번째였다. 또 센트럴 리그에서는 다이요 웨일스의 몬젠 마사토 이후 두 번째로 57년 만의 기록을 경신했다. 또 2008년에 열리는 베이징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팀 선수로 출전, 예선 3경기에 출전해 13타수 10안타 4타점, 타율 7할 6푼 9리의 성적을 기록하여 최우수 타자상(수위 타자)과 MVP를 동시에 수상했다.
[편집] 2008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출전을 위해 소속팀을 떠났지만 아베는 팀의 중심타자로서의 견인차 역할을 하여 2년 연속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에서 주루 플레이 도중 오른쪽 어깨 부상을 당했는데 일본 시리즈에는 주로 대타로 출전하여 1개의 홈런을 포함한 타율 4할을 기록하여 맹활약을 했지만 팀의 준우승을 막긴 역부족이었다.
[편집] 2009년
이듬해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어 등번호는 10번으로 배정받았다. 전년도의 부상으로 인한 영향도 있어 그만큼 출전 기회에는 풍족하지 않았지만 제2 라운드 1조 1위 결정전에서는 선발 멤버로서 포수 마스크를 착용했다. 정규 시즌에서는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어 세스 그레이싱어가 선발로 등판할 시에는 쓰루오카 가즈나리가 마스크를 쓰면서 아베는 1루수로서 출전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9월에는 5경기에서 무려 7개의 홈런을 때려내는 등 월간 MVP를 수상했다. 팀내에서 가장 높은 성적이자 리그 2위인 32개의 홈런, 리그 1위의 장타율을 기록해 팀의 리그 3연패 달성에 기여했다. 9월 18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 요미우리의 포수로서는 처음이 되는 통산 200홈런을 달성했고, 이후 일본 시리즈에서도 끝내기 홈런과 결승타를 기록, 수비면에서도 이나바 아쓰노리, 다카하시 신지를 삼진으로 처리하여 팀은 7년 만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해 본인도 시리즈 MVP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편집] 2010년
5월 21일의 라쿠텐전에서는 나가이 사토시로부터 홈런을 때려내 10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 기록을 달성, 요미우리에서는 나가시마 시게오, 오 사다하루, 하라 다쓰노리, 마쓰이 히데키, 다카하시 요시노부에 뒤를 이은 6번째다. 6월 19일의 주니치전에서는 아사오 다쿠야로부터 이 경기에서의 2개 홈런을 기록하면서 통산 6번째의 연간 20홈런을 달성했다. 그리고 2004년 이후 양대 리그에서 가장 빠른 기록으로 20홈런을 기록(같은 날에는 크레이그 브라젤도 기록)하였고 6월에는 타율 3할 7푼 5리, 14홈런, 21타점이라는 좋은 성적으로 월간 MVP에 선정되었다. 9월 11일의 히로시마전에서 포수로서는 노무라 가쓰야, 다부치 고이치에 뒤를 잇는 역대 세 번째의 시즌 40홈런을 달성했다. 이 기록은 구단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자 좌타자로서도 달성한 최초의 기록이다. 시즌 후에 가진 재계약과 관련해서는 최고 연봉인 4억엔을 구단에서 제시되었다.
[편집] 2011년
[편집] 에피소드
이승엽이 요미우리에서 활약했을 당시 팀내에서 절친한 사이로 잘 알려져 있는 아베는 2006년에 이승엽이 시즌 도중 타격 부진에 시달려 슬럼프를 겪고 있을 무렵 한국어로 직접 작성한 메시지를 보내 이승엽의 타격 슬럼프에서 벗어났다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가 이승엽에게 직접 한국어로 작성한 메시지를 이렇게 남겼다.
당신(이승엽)은 나쁠 때도 좋을 때도 거인(요미우리)의 4번 타자입니다. 모두를 끌어가는 선수이니 괴로울 때도, 분할 때도, 잘 되지 않을 때도 한 명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모두가 뒤에서 지지해 주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말을 걸어와 주세요. 당신은 반드시 할 수 있습니다.
– --아베 신노스케
또 2007년 4월 15일에 야쿠르트와의 경기가 종료된 후 다카하시 히사노리와 공동으로 수훈 선수로 선정, 히어로 인터뷰 도중 한국어로 “최고입니다!”(最高です)라고 말해 한국에서도 큰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1]
[편집] 출신 학교
- 야스다가쿠엔 고등학교
- 주오 대학
[편집] 선수 경력
- 프로팀 경력
- 요미우리 자이언츠(2001년 ~ )
- 국가 대표 경력
- 시드니 올림픽 일본 국가대표팀(2000년)
- 베이징 올림픽 일본 국가대표팀(2008년)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국가대표팀(2009년)
[편집] 수상·타이틀 경력
- 일본 시리즈 MVP : 1회(2009년)
- 올스타전 MVP : 2회(2007년 제2차전, 2010년 제1차전)
- 베스트 나인 : 6회(2002년, 2007년 ~ 2011년)
- 골든 글러브상 : 2회(2002년, 2008년)
- 월간 MVP : 3회(2004년 4월, 2009년 9월, 2010년 6월)
- 우수 JCB·MEP상 : 2회(2004년, 2005년)
- 도쿄 돔 MVP : 2회(2005년, 2011년)
- 최우수 배터리상 : 4회(2002년, 2007년 ~ 2009년)[2]
- 한일 클럽 챔피언십 MVP : 1회(2009년)
- 센트럴·퍼시픽 교류전 우수 선수상(닛폰 생명상) : 1회(2010년)
[편집] 개인 기록
[편집] 첫 기록
- 첫 출장·첫 선발 출장 : 2001년 3월 30일, 대 한신 타이거스 1차전(도쿄 돔)
- 첫 타석·첫 안타·첫 타점 : 상동.
- 첫 도루 : 2001년 4월 11일, 대 주니치 드래곤스 2차전(나고야 돔)
- 첫 홈런 : 2001년 4월 13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1차전(도쿄 돔)
[편집] 기록 달성 경력
- 통산 100홈런 : 2005년 8월 10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14차전(도쿄 돔) ※역대 241번째.
- 통산 150홈런 : 2008년 5월 3일,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7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역대 146번째.
- 통산 1000경기 출장 : 2009년 5월 4일, 대 한신 타이거스 6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역대 430번째.
- 통산 1000안타 : 2009년 6월 8일, 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4차전(도쿄 돔) ※역대 253번째.
- 통산 200홈런 : 2009년 9월 18일,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20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역대 95번째.
- 통산 250홈런 : 2011년 5월 18일, 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차전(클리넥스 스타디움 미야기) ※역대 55번째.
[편집] 기타
- 월간 홈런 일본 기록 타이 : 16개(2004년 4월 29일·대 야쿠르트 5차전, 메이지 진구 야구장)
- 올스타전 출장 : 7회(2003년, 2004년, 2006년, 2007년, 2009년 ~ 2011년)
[편집] 등번호
- 10(2001년 ~ )
[편집] 통산 성적
[편집] 연도별 타격 성적
| 연도 | 소속 | 경 기 |
타 석 |
타 수 |
득 점 |
안 타 |
2 루 타 |
3 루 타 |
홈 런 |
루 타 |
타 점 |
도 루 |
도루 실패 |
희생 번트 |
희생 플라이 |
볼 넷 |
고의 사구 |
死 구 |
삼 진 |
병 살 타 |
타 율 |
출 루 율 |
장 타 율 |
O P S |
|---|---|---|---|---|---|---|---|---|---|---|---|---|---|---|---|---|---|---|---|---|---|---|---|---|
| 2001년 | 요미우리 | 127 | 428 | 386 | 40 | 87 | 18 | 0 | 13 | 144 | 44 | 3 | 0 | 2 | 2 | 31 | 7 | 7 | 79 | 9 | .225 | .293 | .373 | .666 |
| 2002년 | 127 | 511 | 446 | 62 | 133 | 26 | 0 | 18 | 213 | 73 | 4 | 1 | 4 | 3 | 46 | 12 | 12 | 81 | 10 | .298 | .377 | .478 | .855 | |
| 2003년 | 94 | 371 | 314 | 46 | 95 | 15 | 1 | 15 | 157 | 51 | 1 | 1 | 3 | 4 | 40 | 6 | 9 | 52 | 7 | .303 | .392 | .500 | .892 | |
| 2004년 | 108 | 436 | 379 | 61 | 114 | 22 | 1 | 33 | 237 | 78 | 0 | 0 | 1 | 0 | 43 | 1 | 13 | 87 | 6 | .301 | .391 | .625 | 1.016 | |
| 2005년 | 130 | 534 | 476 | 56 | 143 | 16 | 0 | 26 | 237 | 86 | 0 | 2 | 0 | 6 | 51 | 4 | 1 | 78 | 15 | .300 | .365 | .498 | .863 | |
| 2006년 | 129 | 497 | 452 | 39 | 133 | 26 | 2 | 10 | 193 | 56 | 0 | 2 | 4 | 2 | 35 | 4 | 4 | 76 | 8 | .294 | .349 | .427 | .776 | |
| 2007년 | 140 | 580 | 499 | 72 | 137 | 20 | 0 | 33 | 256 | 101 | 1 | 2 | 3 | 10 | 57 | 7 | 11 | 76 | 17 | .275 | .355 | .513 | .868 | |
| 2008년 | 125 | 484 | 428 | 60 | 116 | 27 | 0 | 24 | 215 | 67 | 1 | 1 | 4 | 0 | 44 | 5 | 8 | 66 | 17 | .271 | .350 | .502 | .852 | |
| 2009년 | 123 | 462 | 409 | 63 | 120 | 20 | 2 | 32 | 240 | 76 | 1 | 1 | 2 | 7 | 34 | 0 | 10 | 87 | 9 | .293 | .357 | .587 | .943 | |
| 2010년 | 140 | 569 | 498 | 85 | 140 | 27 | 2 | 44 | 303 | 92 | 0 | 0 | 1 | 1 | 58 | 3 | 11 | 91 | 8 | .281 | .368 | .608 | .976 | |
| 2011년 | 114 | 437 | 390 | 45 | 114 | 21 | 0 | 20 | 195 | 61 | 1 | 1 | 2 | 1 | 35 | 2 | 9 | 66 | 12 | .292 | .363 | .500 | .863 | |
| 통산 : 11년 | 1357 | 5309 | 4677 | 629 | 1332 | 238 | 8 | 268 | 2390 | 785 | 12 | 11 | 26 | 36 | 474 | 51 | 95 | 839 | 118 | .285 | .360 | .511 | .871 | |
- 2011년 기준,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편집] 연도별 수비 성적
| 연도 | 포수 | 1루 | |||||||||||||||
|---|---|---|---|---|---|---|---|---|---|---|---|---|---|---|---|---|---|
| 경기 | 척살 | 보살 | 실책 | 병살 | 패스트볼 | 수비율 | 도루 시도 | 도루 허용 | 도루 실패 | 저지율 | 경기 | 척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
| 2001 | 125 | 846 | 63 | 4 | 8 | 6 | .996 | 68 | 44 | 24 | .353 | - | |||||
| 2002 | 126 | 1013 | 65 | 6 | 15 | 9 | .994 | 50 | 30 | 20 | .400 | - | |||||
| 2003 | 93 | 772 | 51 | 7 | 4 | 4 | .992 | 61 | 39 | 22 | .361 | - | |||||
| 2004 | 108 | 894 | 56 | 2 | 10 | 4 | .998 | 56 | 38 | 18 | .321 | - | |||||
| 2005 | 98 | 793 | 55 | 8 | 10 | 1 | .991 | 72 | 53 | 19 | .264 | 32 | 263 | 14 | 3 | 14 | .989 |
| 2006 | 128 | 916 | 83 | 3 | 7 | 7 | .997 | 88 | 49 | 39 | .443 | - | |||||
| 2007 | 139 | 1001 | 74 | 8 | 9 | 8 | .993 | 70 | 50 | 20 | .286 | - | |||||
| 2008 | 122 | 914 | 82 | 4 | 15 | 4 | .996 | 79 | 50 | 29 | .367 | - | |||||
| 2009 | 107 | 715 | 67 | 4 | 7 | 5 | .995 | .325 | 10 | 71 | 5 | 0 | 6 | 1.000 | |||
| 2010 | 137 | 958 | 94 | 1 | 10 | 7 | .999 | .371 | 5 | 41 | 1 | 2 | 5 | .955 | |||
| 2011 | 112 | 758 | 75 | 2 | 12 | 3 | .998 | .328 | 1 | 4 | 0 | 0 | 0 | 1.000 | |||
| 통산 | 1295 | 9580 | 765 | 49 | 107 | 64 | .995 | 48 | 379 | 20 | 5 | 25 | .988 | ||||
- 2011년 기준.
[편집] 기타
- 일본의 야구 만화 《크게 휘두르며》의 등장 인물인 포수 ‘아베 다카야’의 원래 이름은 ‘아베 신노스케’ 였지만 실제로 이 선수가 있는걸 알게된 작가는 ‘아베 다카야’로 바꾸게 되었다. 하지만 이 선수가 데뷔하기 전부터 생각하던 이름이였고 같은 포수라는 사실에 작가는 놀라웠다고 한다.[3]
[편집] 주석
- ↑ 다카하시 히사노리·아베 신노스케 공동 히어로 인터뷰
- ↑ 최우수 배터리상을 수상할 당시 함께 선정된 투수들은 다음과 같다.
- ↑ 《크게 휘두르며》 단행본 3권.
[편집] 바깥 고리
|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 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 |
- (일본어) 개인 연도별 성적【아베 신노스케(요미우리 자이언츠)】 - 일본 야구 기구 공식 홈페이지
- (일본어) 고교 야구 정보. com 독점 인터뷰 - 아베 신노스케 선수(2009년 12월 11일)
- (영어) 일본 프로 야구 경력 통계 - Japanesebaseball.com
|
일본 시리즈 MVP |
|
|---|---|
| 1950년대 | |
| 1960년대 | |
| 1970년대 | |
| 1980년대 | |
| 1990년대 | |
| 2000년대 | |
| 2010년대 | |
|
센트럴 리그 베스트 나인(포수 부문) |
|
|---|---|
| 1950년대 | |
| 1960년대 | |
| 1970년대 | |
| 1980년대 | |
| 1990년대 | |
| 2000년대 | |
| 2010년대 |
2010: 아베 신노스케 | 2011: 아베 신노스케
|
|
센트럴 리그 골든 글러브상(포수 부문) |
|
|---|---|
| 1970년대 | |
| 1980년대 | |
| 1990년대 | |
| 2000년대 | |
| 2010년대 | |
| ※1972년부터 1985년까지는 다이아몬드 글러브상. | |
|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 2000년 하계 올림픽 |
|
|---|---|
| 감독 |
30 오타가키 고조
|
| 코치 |
33 하야시 히로유키 | 34 노무라 오사무 | 35 나가사키 게이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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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수 | |
| 포수 |
2 스즈키 후미히로 | 21 아베 신노스케 | 22 노다 고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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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야수 | |
| 외야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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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 2008년 하계 올림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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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77 호시노 센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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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수 | |
| 포수 | |
| 내야수 | |
| 외야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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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83 하라 다쓰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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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치 | |
| 투수 | |
| 포수 | |
| 내야수 | |
| 외야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