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노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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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노스케
阿部 慎之助

Shinnosuke Abe
요미우리 자이언츠 No.10
Giants abe 10.jpg

아베 신노스케(2012년)

기본 정보
국적 일본 일본
생년월일 1979년 3월 20일(1979-03-20) (35세)
출신지 지바 현 우라야스 시
신장 180 cm
체중 97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좌타
수비 위치 포수, 1루수
프로 입단 연도 2000년
드래프트 순위 1순위
첫 출장 2001년 3월 30일
연봉 5억 7,000만 엔(2013년)
경력
일본 국가대표팀
올림픽 2000년, 2008년
WBC 2009년, 2013년
아베 신노스케
일본어식 한자 표기: 阿部 慎之助
가나 표기: あべ しんのすけ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 아베 신노스케
통용 표기: 아베 신노스케
로마자: Shinnosuke Abe
메달 기록
일본 일본의 선수
남자 야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9 로스앤젤레스 2009 WBC

아베 신노스케(일본어: 阿部 慎之助 (あべ しんのすけ), 1979년 3월 20일 ~ )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이며, 현재 센트럴 리그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소속 선수(포수)이다.

인물[편집]

프로 입단 전[편집]

지바 현 출신으로 아버지는 실업팀인 덴덴 도쿄에서 소속된 야구 선수출신으로 가케후 마사유키와 나라시노 시립 나라시노 고등학교의 동창생이었다. 가케후와 클린업을 짜면서 가케후는 3번 타자, 아버지는 4번 타자로 활약해 여름에 열린 고시엔 대회에 출전한 경력이 있다. 그 영향으로 어렸을 때 한신 타이거스의 팬이면서 가케후를 동경해 좌타자로 활약하게 되었다.

그 후 아버지의 권유로 우라야스 시 야구 협회 연식 소년 야구팀에 입단하여 야구에 입문해 이후 야스다가쿠엔 고등학교 시절 통산 38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고교 졸업 후 주오 대학에 진학하면서 주오 대학 시절 3학년 봄까지 도토대학 2부 리그에서 활약하면서 2부 리그 통산 51경기 출장, 186타수 58안타, 타율 3할 1푼 2리, 12홈런, 41타점을 기록했다. 3학년 가을에는 1부 리그로 승격되어 1부 리그 통산 28경기 출장, 92타수 27안타, 타율 2할 9푼 3리, 5홈런, 19타점을 기록했고 베스트 나인 1회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0년 9월에는 시드니 올림픽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어 출전했고 같은 해 11월 드래프트 회의에서 1순위(역지명)로 지명을 받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프로 입단 후[편집]

2001년[편집]

요미우리 구단으로서는 야마쿠라 가즈히로 이후 23년 만의 ‘신인 포수 개막전 선발 멤버’로서 출전해 그 경기에서는 첫 타석에서 첫 안타를 때려내는 것을 포함한 4타점을 기록하였다. 최종적으로 타격에서는 시즌 13개의 홈런을 기록, 신인 포수의 시즌 두 자릿수 홈런은 다부치 고이치 이후의 두 번째였으며, 규정 타석에는 6타석이 부족했다. 당시 요미우리는 무라타 신이치를 대신하는 정포수의 육성이 급선무였던 일도 있어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은 계속 기용했고, 프로 야구 포수로서의 경험을 거듭하게 되었다.

2002년[편집]

하라 다쓰노리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전년도의 경험을 살려 127경기에 출전해 팀의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을 동시에 이끈 우승 멤버로 활약하면서 베스트 나인과 골든 글러브상을 동시에 선정되는 등 수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시즌 후반부터 다카하시 요시노부의 부진으로 3번 타자로 활약하여 끝내기 홈런을 기록, ‘사요나라 신짱’(サヨナラ慎ちゃん)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 해 아베가 규정 타석수에 도달한 것으로서 요미우리 구단으로서는 1987년에 야마쿠라 가즈히로 이후 포수에 의한 규정 타석에 도달하는 기록을 경신했다.

2003년[편집]

시즌 중반 부상을 당해 전력에서 이탈 당하면서 94경기에 출전하는 등 규정 타석에서는 부족했지만 시즌 타율 3할 3푼을 기록했다. 그 해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출장했다.

2004년[편집]

베이징 올림픽 일본 대표팀 시절의 아베 신노스케

4월 9일부터 4월 16일까지 6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 4월 28일에는 3홈런을 기록하는 등 개막 이후부터 홈런을 기록하면서 4월에 16개의 홈런을 기록했지만 5월 12일에는 세계 기록에 줄선 ‘개막 33경기 만에 20개 홈런’을 기록한다. 5월 후반과 6·7월은 각각 2개씩에 머물러 8월에는 갑작스런 부상도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33개의 시즌 홈런을 기록하였다. 그런데도 시즌 33개의 홈런은 요미우리 소속 포수로서는 사상 최초이자 30개의 홈런을 넘은 성적이며, 월간 16개 홈런은 오 사다하루가 지금까지의 구단 기록을 경신하면서 1981년의 가도타 히로미쓰(난카이 호크스), 1994년에토 아키라(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대등한 일본 타이 기록이다. 규정 타석에 도달한 이후 처음으로 타율 3할대를 기록, 11월에는 미일 야구 대회에 포수·대타 출전하여 전체 8경기 중 6경기에 출전했지만, 13타석 11타수 무안타 2볼넷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였다.

2005년[편집]

전년도부터 계속되어온 부상에 시달리면서, 특히 오른쪽 어깨 부상 때문에 도루 저지율이 큰 폭으로 저하되었다. 타격은 호조를 이루어 5번 타자로 출장, 최종적으로 타율은 3할 대를 넘어 출루율과 득점권 타율은 팀내 1위를 기록하였으며, 8월 23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에서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1루수로 선발 출장, 오른쪽 어깨 통증으로 인해 포수로서의 수비는 어렵기도 하였지만, 요미우리 공격의 중심이 되고 있었기 때문에 수비의 부담이 적은 1루수로 출전하였다.

2006년[편집]

이듬해인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었지만 대회 개막을 앞둔 상황에서 갑작스런 부상 후유증으로 인해 출전을 포기, 이후 정규 경기에서 시즌 타율이 4년 만에 3할을 밑도는 것을 포함하여 홈런도 개인 성적 최저인 10개로 끝났다. 포수로서는 자신의 역대 최고 기록이자 도루 저지율인 4할 4푼 3리를 기록했다. 10월 18일에는 회사원인 여성과의 결혼을 발표했다.

2007년[편집]

그 해 팀의 주장으로 임명, 6월 9일의 라쿠텐전에서 구단 역사상 72번째의 4번 타자를 맡아 2홈런, 5타점을 기록하여 맹활약을 했다. 또 6월 14일의 오릭스 버펄로스전에서는 첫 회에 히라노 요시히사로부터 만루 홈런을 때려내면서 이 홈런은 프로 야구 사상 최초의 구단 통산 200개의 만루 홈런이 되었다. 올스타전 2차전에서는 MVP를 차지했다.

9월 25일에는 33개의 홈런을 기록, 데뷔 이후 처음으로 100타점을 달성하였는데 포수로 등록된 선수의 시즌 100타점 달성은 2003년의 조지마 겐지(당시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이래 사상 4번째였다. 또 센트럴 리그에서는 다이요 웨일스몬젠 마사토 이후 두 번째로 57년 만의 기록을 경신했다. 또 2008년에 열리는 베이징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팀 선수로 출전, 예선 3경기에 출전해 13타수 10안타 4타점, 타율 7할 6푼 9리의 성적을 기록하여 최우수 타자상(수위 타자)과 MVP를 동시에 수상했다.

2008년[편집]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출전을 위해 소속팀을 떠났지만 아베는 팀의 중심타자로서의 견인차 역할을 하여 2년 연속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에서 주루 플레이 도중 오른쪽 어깨 부상을 당했는데 일본 시리즈에는 주로 대타로 출전하여 1개의 홈런을 포함한 타율 4할을 기록하여 맹활약을 했지만 팀의 준우승을 막긴 역부족이었다.

2009년[편집]

이듬해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어 등번호는 10번으로 배정받았다. 전년도의 부상으로 인한 영향도 있어 그만큼 출전 기회에는 풍족하지 않았지만 제2 라운드 1조 1위 결정전에서는 선발 멤버로서 포수 마스크를 착용했다. 정규 시즌에서는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어 세스 그레이싱어가 선발로 등판할 시에는 쓰루오카 가즈나리가 마스크를 쓰면서 아베는 1루수로서 출전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9월에는 5경기에서 무려 7개의 홈런을 때려내는 등 월간 MVP를 수상했다. 팀내에서 가장 높은 성적이자 리그 2위인 32개의 홈런, 리그 1위의 장타율을 기록해 팀의 리그 3연패 달성에 기여했다. 9월 18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 요미우리의 포수로서는 처음이 되는 통산 200홈런을 달성했고, 이후 일본 시리즈에서도 끝내기 홈런과 결승타를 기록, 수비면에서도 이나바 아쓰노리, 다카하시 신지를 삼진으로 처리하여 팀은 7년 만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해 본인도 시리즈 MVP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2010년[편집]

5월 21일의 라쿠텐전에서는 나가이 사토시로부터 홈런을 때려내 10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 기록을 달성, 요미우리에서는 나가시마 시게오, 오 사다하루, 하라 다쓰노리, 마쓰이 히데키, 다카하시 요시노부에 뒤를 이은 6번째다. 6월 19일의 주니치전에서는 아사오 다쿠야로부터 이 경기에서의 2개 홈런을 기록하면서 통산 6번째의 연간 20홈런을 달성했다. 그리고 2004년 이후 양대 리그에서 가장 빠른 기록으로 20홈런을 기록(같은 날에는 크레이그 브라젤도 기록)하였고 6월에는 타율 3할 7푼 5리, 14홈런, 21타점이라는 좋은 성적으로 월간 MVP에 선정되었다. 9월 11일의 히로시마전에서 포수로서는 노무라 가쓰야, 다부치 고이치에 뒤를 잇는 역대 세 번째의 시즌 40홈런을 달성했다. 이 기록은 구단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자 좌타자로서도 달성한 최초의 기록이다. 시즌 후에 가진 재계약과 관련해서는 최고 연봉인 4억엔을 구단에서 제시되었다.

2011년[편집]

수비 중인 아베 신노스케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일정이 늦어진 것에 의해 4월 5일의 한신과의 연습 경기에서는 오른쪽 장딴지를 다치는 등 시즌 준비가 늦어지기도 했다. 그 후에는 2군에서의 조정을 거쳐 1군에 복귀 무대이자 교류전 첫 경기인 라쿠텐전에서 5번·포수로 출전, 9회초 2사에 주자없는 상황에서 첫 안타를 때려내 역전의 발판을 만들었다. 시즌 종반에서는 알렉스 라미레스를 대신해서 4번 타자로 활약하는 등 공격과 수비에 걸쳐서 팀을 견인했다.

9월 29일의 요코하마전에서는 센트럴 리그 기록이자 다니시게 모토노부가 기록한 1708차례의 연속 수비 기회 무실책 기록을 경신, 1709차례의 신기록을 달성하는 등 최종적으로는 11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할 9푼 2리로 114개의 안타, 61타점, 그리고 홈런도 팀내 2위인 20개와 5년 연속으로 20홈런을 달성했다. 시즌 중에는 제7회 ‘조지아혼상’을 수상했고 JA 전농 Go·Go상은 8월의 ‘최다 도루 저지상’부문, 9월의 ‘최다 2루타·3루타상’부문, 10월의 ‘최우수상’이라는 3개월 연속 수상자로 선정된 것 외에도 5년 연속이 되는 베스트 나인에도 선정되었다.

시즌 종료 후 계약 갱신에서는 부상때문에 출발이 늦어지면서도 팀 타선을 견인했다는 평가를 받아 작년과 동일한 4억 엔(추정)으로 재계약을 맺었다.

2012년[편집]

정규 시즌에서는 주로 4번 타자로 기용되면서 역대 최다 타이 기록이 되는 1시즌 3차례의 월간 MVP를 수상하는 등 팀을 견인했고 처음으로 수위타자, 타점왕, 최고 출루율 등 타격 부문 타이틀을 연달아 획득했다. 홈런도 블라디미르 발렌티엔과의 4개 차이를 나타내며 2위를 기록했고 타점은 양대 리그에서 유일하게 100을 넘는 104 타점을 기록했다. 또, 삼진 갯수도 규정 타석을 채운 선수 중에서 리그 최저를 나타냈다.

에피소드[편집]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활약했을 당시 팀 내에서 절친한 사이로 잘 알려져 있는 아베는 2006년이승엽이 시즌 중 타격 부진에 시달려 슬럼프를 겪고 있을 무렵 한국어로 직접 작성한 메시지를 보내 이승엽의 타격 슬럼프에서 벗어났다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가 이승엽에게 직접 한국어로 작성한 메시지를 이렇게 남겼다.

당신(이승엽)은 나쁠 때도 좋을 때도 거인(요미우리)의 4번 타자입니다. 모두를 끌어가는 선수이니 괴로울 때도, 분할 때도, 잘 되지 않을 때도 한 명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모두가 뒤에서 지지해 주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말을 걸어와 주세요. 당신은 반드시 할 수 있습니다.

--아베 신노스케

2007년 4월 15일야쿠르트와의 경기가 종료된 후 다카하시 히사노리와 공동으로 수훈 선수로 선정, 히어로 인터뷰 도중 한국어로 “최고입니다!”(最高です)라고 말해 대한민국에서도 큰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기타[편집]

일본의 야구 만화 《크게 휘두르며》의 등장 인물인 포수 ‘아베 다카야’의 원래 이름은 ‘아베 신노스케’ 였지만 실제로 이 선수가 있는걸 알게된 작가는 ‘아베 다카야’로 바꾸게 되었다. 하지만 이 선수가 데뷔하기 전부터 생각하던 이름이였고 같은 포수라는 사실에 작가는 놀라웠다고 한다.[1]

상세 정보[편집]

출신 학교[편집]

선수 경력[편집]

프로팀 경력
국가 대표 경력

수상·타이틀 경력[편집]

타이틀[편집]

수상[편집]

  • MVP : 1회(2012년)
  • 일본 시리즈 MVP : 1회(2009년)
  • 일본 시리즈 우수 선수상 : 1회(2012년)
  • 일본 시리즈 특별상 - 모두가 선택하는 코나미상 : 1회(2012년)
  • 올스타전 MVP : 2회(2007년 제2차전, 2010년 제1차전)
  • 베스트 나인 : 7회(2002년, 2007년 ~ 2012년)
  • 골든 글러브상 : 2회(2002년, 2008년)
  • 월간 MVP : 6회(2004년 4월, 2009년 9월, 2010년 6월, 2012년 6월, 2012년 8월, 2012년 9월)
  • 우수 JCB·MEP상 : 2회(2004년, 2005년)
  • 최우수 JA 전농 Go·Go상 : 1회(2011년)
  • JA 전농 Go·Go상 : 2회(최다 도루 저지상 : 2011년 8월, 최다 2·3루타상 : 2011년 9월)
  • 도쿄 돔 MVP : 3회(2005년, 2011년, 2012년)
  • 최우수 배터리상 : 5회(2002년, 2007년 ~ 2009년, 2012년)[2]
  • 한일 클럽 챔피언십 MVP : 1회(2009년)
  • 센트럴·퍼시픽 교류전 우수 선수상(닛폰 생명상) : 1회(2010년)
  • ‘조지아혼’상 : 1회(2011년도 제7회)
  • 쇼리키 마쓰타로상 : 1회(2012년)

개인 기록[편집]

첫 기록[편집]

기록 달성 경력[편집]

기타[편집]

  • 월간 홈런 일본 기록 타이 : 16개(2004년 4월 29일·대 야쿠르트 5차전, 메이지 진구 야구장)
  • 올스타전 출장 : 9회(2003년, 2004년, 2006년 ~ 2012년)

등번호[편집]

  • 10(2001년 ~ )

연도별 타격 성적[편집]

연도 소속




2

3





도루
실패
희생
번트
희생
플라이

고의
사구
몸에
맞는 볼








O
P
S
2001년 요미우리 127 428 386 40 87 18 0 13 144 44 3 0 2 2 31 7 7 79 9 .225 .293 .373 .666
2002년 127 511 446 62 133 26 0 18 213 73 4 1 4 3 46 12 12 81 10 .298 .377 .478 .854
2003년 94 371 314 46 95 15 1 15 157 51 1 1 3 4 40 6 9 52 7 .303 .392 .500 .892
2004년 108 436 379 61 114 22 1 33 237 78 0 0 1 0 43 1 13 87 6 .301 .391 .625 1.016
2005년 130 534 476 56 143 16 0 26 237 86 0 2 0 6 51 4 1 78 15 .300 .365 .498 .863
2006년 129 497 452 39 133 26 2 10 193 56 0 2 4 2 35 4 4 76 8 .294 .349 .427 .776
2007년 140 580 499 72 137 20 0 33 256 101 1 2 3 10 57 7 11 76 17 .275 .355 .513 .868
2008년 125 484 428 60 116 27 0 24 215 67 1 1 4 0 44 5 8 66 17 .271 .350 .502 .852
2009년 123 462 409 63 120 20 2 32 240 76 1 1 2 7 34 0 10 87 9 .293 .357 .587 .943
2010년 140 569 498 85 140 27 2 44 303 92 0 0 1 1 58 3 11 91 8 .281 .368 .608 .976
2011년 114 437 390 45 114 21 0 20 195 61 1 1 2 1 35 2 9 66 12 .292 .363 .500 .863
2012년 138 556 467 72 159 22 1 27 264 104 0 0 2 8 69 6 9 47 11 .340 .429 .565 .994
2013년 135 529 422 81 125 17 0 32 238 91 0 0 0 6 86 9 15 59 8 .296 .427 .564 .991
통산:13년 1630 6394 5566 782 1616 277 9 327 2892 980 12 11 28 50 629 66 119 945 137 .290 .371 .520 .894
  • 2012년 기준,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연도별 수비 성적[편집]

연도 포수 1루
경기 척살 보살 실책 병살 패스트볼 수비율 도루 시도 도루 허용 도루 실패 저지율 경기 척살 보살 실책 병살 수비율
2001 125 846 63 4 8 6 .996 68 44 24 .353 -
2002 126 1013 65 6 15 9 .994 50 30 20 .400 -
2003 93 772 51 7 4 4 .992 61 39 22 .361 -
2004 108 894 56 2 10 4 .998 56 38 18 .321 -
2005 98 793 55 8 10 1 .991 72 53 19 .264 32 263 14 3 14 .989
2006 128 916 83 3 7 7 .997 88 49 39 .443 -
2007 139 1001 74 8 9 8 .993 70 50 20 .286 -
2008 122 914 82 4 15 4 .996 79 50 29 .367 -
2009 107 715 67 4 7 5 .995 .325 10 71 5 0 6 1.000
2010 137 958 94 1 10 7 .999 .371 5 41 1 2 5 .955
2011 112 758 75 2 12 3 .998 .328 1 4 0 0 0 1.000
통산 1295 9580 765 49 107 64 .995 48 379 20 5 25 .988
  • 2011년 기준.

주석[편집]

  1. 《크게 휘두르며》 단행본 3권.
  2. 최우수 배터리상을 수상할 당시 함께 선정된 투수들은 다음과 같다.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