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 기미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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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 기미야스
工藤 公康

Kimiyasu Kudo
Kudo Kimiyasu.jpg

구도 기미야스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시절, 2009년 7월 22일)

기본 정보
국적 일본 일본
생년월일 1963년 5월 5일(1963-05-05) (51세)
출신지 아이치 현 도요아케 시
신장 176 cm
체중 80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좌투좌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1981년
드래프트 순위 6순위
첫 출장 1982년 4월 10일
마지막 경기 2010년 8월 25일
경력


구도 기미야스
일본어식 한자 표기: 工藤 公康
가나 표기: くどう きみやす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 구도 기미야스
통용 표기: 쿠도우 키미야스
로마자: Kimiyasu Kudo

구도 기미야스(일본어: 工藤 公康 (くどう きみやす), 1963년 5월 5일 ~ )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야구 해설가·평론가이다.

현역 선수로 있을 당시에 통산 224승을 기록했으며, 2006년까지 활약한 3개 구단에서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을 동시에 경험한 선수로 알려지면서 일명 ‘우승 청부사’(優勝請負人)라고 불린다. 최고령 기록을 연달아 경신하는 것부터 ‘철완’(鉄腕)이라는 애칭이 유명하다.

등번호 21번을 붙인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시대의 1995년과 1996년 외에는 2009년까지 등번호 47번을 계속해서 떠맡아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말할 정도다(2010년은 등번호를 55번으로 정했다).

인물[편집]

프로 입단 전과 세이부 라이온스 시절[편집]

아이치 현 도요아케 시 출신으로 나고야 전기 고등학교(현재의 아이치 공업대학 메이덴 고등학교) 시절인 1981년에 제63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2차전인 나가사키니시 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는 등 팀을 4강에 진출하는 기여를 했다.

이후 구마가이구미의 취직을 한다는 발표를 하면서 프로팀 입단 거절의 자세를 명확히 하고 있었지만 세이부 라이온스네모토 리쿠오 관리부장(당시)이 드래프트 6위로 강행 지명을 했다. 그 후 설득에 의해 입단(당시의 언론에서는 6위 지명이면서 나이가 1살 위인 1위 지명을 받은 이토 쓰토무보다 고액의 계약금과 연봉을 추정하고 있었다)하면서 전년도에 대학 진학이 결정되어 있던 아키야마 고지의 드래프트 번외에서의 강행 지명되면서 이토 쓰토무를 사이타마 현립 도코로자와 고등학교 정시제에 진학시키는 등과 같이 흔히 ‘네모토 매직’(根本マジック)이라고 칭해지는 사건의 하나였다. 이후 네모토를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그리워하고 있었으며, 세이부 황금 시대의 중심투수가 되어 세로로 떨어지는 독특한 커브는 상대 타자를 야단법석하게 만들었다.

1982년, 히로오카 다쓰로 감독으로부터 ‘아가’라고 불리는 등 귀여움을 받아 입단 1년차부터 기용되었다. 그 해 퍼시픽 리그 전·후기제 시절인 플레이오프에 등판해 에나쓰 유타카와의 투수전을 펼치면서 승리 투수가 되었다. 또한 전·후기제 시대의 플레이오프는 그 해가 마지막이면서 퍼시픽 리그의 예전 플레이오프를 경험한 마지막 현역 선수였다. 그 후 약간 주춤했지만 전환기가 된 것은 입단 3년째인 1984년, 히로오카 감독의 명령을 받아 미국 교육 리그로 유학을 가면서 메이저 리그의 야구를 관전한 것을 계기로 이후 귀국해 미야타 유키노리 코치의 지도를 받아 팀내의 주력 투수가 되었다.

1985년에 프로 데뷔 후 첫 타이틀이 되는 최고 평균자책점을 석권했고 같은 해 일본 시리즈에서는 한신 타이거스와 상대하면서 특히 랜디 바스에게는 3점 홈런을 포함한 2개의 홈런을 허용, 고의사구 기색의 볼넷 2개와 1개의 아웃도 처리하지 못했다. 다만 가케후 마사유키에게는 3타수 무안타에 1개의 삼진으로 처리했다.

센트럴 리그 우승 팀인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1986년 일본 시리즈에서 팀은 1차전에서는 무승부로 끝났지만 이후 팀은 3연패를 기록하여 패색이 짙은 상황에 몰려있었다. 그러나 5차전에서는 연장 12회에 투수인 구도가 타석에 들어서며 끝내기 안타를 기록했다. 그 후 세이부는 4연승을 따내면서(최종적으로는 4승 1무 3패를 기록) 일본 시리즈 우승을 제패했고, 구도는 1승 2세이브라는 성적을 기록하여 일본 시리즈 MVP로 선정되었다.

이듬해인 1987년 일본 시리즈(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도 1완봉을 포함한 2승 1세이브라는 성적을 기록하면서 2년 연속 일본 시리즈 MVP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게 되었고 퍼시픽 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투수가 된다. 그 후에는 부상도 있으면서 일시적으로 성적이 부진했지만 1991년 시즌에는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2년 후인 1993년에는 15승 3패의 성적을 기록해 안정감이 있으면서도 뛰어난 성적을 기록한 공로로 퍼시픽 리그 MVP에 선정되었다.

FA선언과 다이에 호크스 시절[편집]

1994년 가을에 있은 재계약 협상 당시에 노후화가 되고 있던 연습 설비의 개선을 호소하고 있었지만 정작 구단에서는 호의적인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판단하여 FA를 선언했다. 네모토가 구단 사장, 오 사다하루가 감독으로 취임한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에 이적했다. 세이부의 황금 시대를 유지했던 아키야마 고지와 다시 팀메이트가 되면서 팀의 재건을 맡게 되었다.

다이에에서는 투수의 일각으로서 활약하는 것과 동시에 다케다 가즈히로와 함께 조지마 겐지를 일본을 대표하는 포수에게 키웠다. 1999년 9월 11일의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전에서는 노히트 노런의 기록이 걸린 8회에 1아웃 1-3 볼카운트 상황에서 볼을 요구한 조지마의 리드에 스트라이크를 던지면서 상대 타자인 스즈키 다카히사에게 홈런을 허용했다. 1999년에는 다케다가 FA로 팀을 퇴단했지만 구도는 에이스로서 시즌 11승을 기록하면서 최고 평균자책점, 최다 탈삼진 타이틀을 동시에 획득했다. 다이에가 후쿠오카로 연고지를 옮긴 이후 처음으로 리그 우승에 기여했고 동시에 리그 MVP에 선정되었다.

다케다가 이적한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일본 시리즈 맞대결에서는 1차전에 등판, ‘등번호 47번의 왼팔 에이스 대결’이라고 주목을 받은 노구치 시게키와의 투수전을 펼쳐 1경기 최다 타이인 13개의 탈삼진과 완봉을 거두는 압도적인 투구를 보여 주었다. 이 경기에서 이나오 가즈히사(니시테쓰 라이온스)가 갖고 있던 일본 시리즈 통산 탈삼진 갯수의 기록을 다시 바꾼 구도는 “위험한데, 신을 앞질렀어요”라고 말했다. 또 주니치의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적을 칭찬하는 것은 싫지만, 구도는 나를 0점에 억제한 셈이어서 대단한 것이다”라고 분노를 드러내는 발언을 했다. “주니치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라는 전망 속에 구도의 완봉으로 기세를 탄 다이에는 4승 1패의 성적으로 일본 시리즈 우승을 제패했고, 구도는 나가이 도모히로, 조지마 겐지와 함께 일본 시리즈 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편집]

1999년 시즌 종료 후, 오래간만의 우승을 선물한데다가 두 번째의 FA를 선언하여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이 이끄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이적했다. 이듬해인 2000년에는 시즌 12승을 기록하며 팀의 센트럴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일본 시리즈에서는 전년도까지 활약을 했던 친정팀인 다이에를 누르면서 일본 시리즈 우승을 제패했고, 구도 본인은 2년 연속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이끈 경험을 맛보게 되었다. 2001년은 5경기 등판에만 그쳤지만 2002년 이후에는 선발 로테이션의 일원으로서 팀의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을 동시에 이끌었다. 그러나 타자로서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84타석 연속 무안타라는 센트럴 리그 기록을 남기고 있다(일본 기록은 사가 겐시로가 기록한 90타석).

2004년 8월 17일,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 2실점 완투승을 기록, 개인 통산 200승을 달성했다.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에이스 투수였던 기타벳푸 마나부(전 히로시마 투수 코치)이래 12년 만의 일이었고 역대 23번째의 기록이다. 요미우리에 소속된 투수로서는 당시 감독인 호리우치 쓰네오 이래 24년 만의 일이자 5번째였으며, 41세 3개월에서의 200승 달성은 당시로서는 사상 최고령 기록이 되었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는 스스로 결승 홈런을 치면서 41세이자 23년째에서의 프로 데뷔 후 첫 홈런은 각각 역사상 가장 늦은 기록이었다. 이후 본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퍼시픽 리그에서는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센트럴 리그에 이적한)5년째의 첫 홈런이었다.

2005년 5월 19일의 교류전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센트럴 리그 최고령 완투승 기록을 경신했고, 2005년 8월 26일의 한신 타이거스전에서는 최고령 두 자릿수 승리 기록을 경신했다. 2009년 현재, 최고령 200승을 포함시키면서 모두 야마모토 마사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2006년에는 시즌 전반기에 3승을 올려 7월에는 오노 유타카의 기록을 웃돌아 프로 야구 사상 최초인 43세 2개월 이상의 현역 좌완 투수가 되었다. 그러나 6월~7월에는 2경기에 등판하면서 합계인 20실점을 기록하였고, 어깨 통증과 같은 부상이 겹치면서 시즌 도중 1군 등록이 말소되었다. 최종적으로 3승 2패, 4.50의 평균자책점으로 시즌을 마쳤다. 12월에 있은 재계약과 관련해서는 한도 폭을 넘는 연봉 삭감의 제시를 받아 보류되었다.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시절[편집]

2007년 1월 7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에서 요미우리로 이적한 가도쿠라 겐의 인적 보상으로 인해 1월 9일에는 요코하마의 FA 이적이 정식으로 결정되었다. 자신이 FA로 이적을 하면서 FA의 인적 보상이 된 것은 2006년의 에토 아키라(세이부)에 이은 두 번째였으며, 2000년에는 에토가 구도의 소속팀인 요미우리로 FA 이적을 했다. 요코하마에 이적한 이후에도 등번호가 47번으로 결정되면서 종전까지 47번이었던 쓰쓰미우치 다케시의 등번호는 36번로 변경되었고, 요미우리에서 같이 활약하면서 트레이드로 요코하마에 이적한 니시 도시히사와 함께 뛸 수 있었다. 연봉은 전년도인 2억 9,000만 엔에서 2억 엔이 삭감된 9,000만 엔(그 밖에 최고 5,000만 엔의 성과급 지급)으로 프로 야구 사상 최대의 감봉 액수가 되었다(추정 연봉).

2007년 4월 1일, 요미우리전에서 등판한 것에 의해 1군에서의 프로 선수 생활이 통산 26년이 되었다. 이것은 노무라 가쓰야(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감독)에 뒤를 이은 프로 야구 최장 기록이다. 5월 23일 세이부전에 등판하면서 승리 투수가 되어 요네다 데쓰야가 기록했던 22년 연속 승리 기록을 경신하여 단독 1위로 올라섰다. 또 44세 이상에서의 승리 투수는 프로 야구 역대 2번째의 기록이다.

2007년 7월 12일의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 6회말에 나카타 겐이치로부터 중전 안타를 기록하면서 44세 2개월이라는 센트럴 리그 최고령 안타 기록을 수립했고, 9월 26일의 한신 타이거스전에서는 5회말에 하시모토 겐타로로부터 좌전 안타를 기록하는 등 44세 4개월이라는 자신의 기록을 경신했다. 프로 야구 기록은 1950년 9월 28일 한큐 브레이브스하마사키 신지가 기록한 48세 9개월이었다. 2007년 7월 24일의 요미우리전에 선발로 등판해 승리 투수가 되면서 프로 야구 사상 처음으로 ‘긴테쓰를 포함한 13개의 전 구단에서 승리 수를 올린 투수’가 되었다. 개막 초에는 2군으로 강등되기는 했지만 1군으로 승격한 이후에는 안정된 투구를 계속했다. 같은 해 계약 갱신과 관련해서는 2,000만 엔이 상승한 연봉 1억 1,000만 엔으로 재개약을 맺었다.

이듬해인 2008년 4월 1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에서는 선발 투수로 등판해 프로 통산 27년째가 되면서 노무라 가쓰야(당시 세이부 선수, 전 라쿠텐 감독)의 현역 프로 통산 26년을 경신하는 등 프로 야구 사상 역대 1위를 기록했지만 이후 팔꿈치에 부상을 당하면서 1경기만으로 2군에 떨어졌다. 같은 해 9월 9일의 홋카이도 닛폰햄쇼난 시렉스(요코하마의 2군팀)와의 경기(16차전)에서 선발로 등판해 무려 5이닝을 던지는 등 이스턴 리그 최고령 승리 투수가 되었다. 그러나 1군에서는 단 1승을 거둘 수 없어 1984년 이후 24년 만에 1군에서의 승리 기록을 따내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 종료 후에 가진 재계약과 관련해서는 야구 협약으로 정해져 있는 감액 제한을 넘는 약 55%가 줄어들면서 연봉 5,000만 엔의 성과급 지급으로 개정되었다.

2009년에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등번호 47번을 부착한 지 26년이 되면서 프로 야구 신기록을 수립했다. 4월 8일에는 옛 친정팀인 요미우리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본인이 가지고 있던 28년의 프로 통산 기록을 경신했다. 이 경기에서는 8실점을 기록하여 후에 2군으로의 조정을 거치고 팀의 방침에 의해 중간 계투로 전향했다. 구도가 본격적인 중간 계투로 활약을 하게 된 것은 1989년 이후 20년 만의 일이었다. 5월 5일의 요미우리전에서는 자신의 첫 홀드를 기록했고, 5월 25일의 라쿠텐전에서는 4번째로 9회초에 등판해 무실점 호투를 하는 등 팀은 접전 끝에 역전 끝내기 승리를 거둔 것에 의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44세 4개월이라는 센트럴 리그 최고령 승리 기록을 경신했다(46세 20일). 이 승리로 통산 223승을 기록하면서 무라야마 미노루를 누르고 단독 13위가 되었고, 40세 이후 37승째를 거두면서 36승을 기록했던 다이마이 오리온스와카바야시 다다시가 기록한 성적을 깨고 단독 1위가 되었다. 9월 15일, 팀의 미래를 위해 젊은 선수들을 많이 기용하겠다는 구단의 방침에 따라 방출과 함께 자유 계약 선수가 되는 취지의 통보를 받았다. 자신은 현역 생활을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내면서 신인 시절에 활약을 했던 세이부가 영입할 의향을 내비치기도 했다.

세이부로 복귀[편집]

2009년 11월 14일, 구도는 “가족 회의를 한 결과 세이부에 신세를 지는 일로 결정했다”라고 말을 하면서 16년 만에 옛 친정팀인 세이부로 복귀하게 되었다. 데뷔 이래 거의 매년간 계속 붙여 온 등번호 47번은 현재 구도를 존경하는 호아시 가즈유키가 붙이고 있어 호아시는 “원래는 구도 선수의 등번호이니까 만약 구도 선수와 구단이 기대하는 것이라면 기꺼이 반환하겠다”라는 발언을 했지만 구도 본인은 “젊은 선수에게 신경을 쓰게 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해 47번을 사양했다. 11월 16일, 등번호는 55번으로 결정되었다.

이듬해 2010년 7월 18일, 전반기 종료 직전에 복귀 후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되었다. 7월 20일의 소프트뱅크(후쿠오카 돔)전에서는 7회말에 선발 노가미 료마의 뒤를 이은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해 자신이 갖고 있는 현역 생활 기록을 29년으로 경신했다. 그러나 이후에는 10경기에 등판하여 0승 2패와 10.5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8월 25일의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서는 동점인 상황에서 등판했지만 점수를 허용하면서 28일에 등록 말소되었다. 9월 27일에는 구단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다(정식 발표는 10월 1일).

세이부에서의 방출·은퇴 표명[편집]

세이부에서 방출한 이후에도 현역 생활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2011년 시즌은 영입할 의사가 있는 구단이 나타나지 않아 트레이닝을 계속하면서도 메이저 리그에의 도전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1년간 무소속 상태로 지냈다. 현역 속행을 향한 트레이닝을 하는 것 외에도 분카 방송의 게스트로 출연해 해설가로도 활동했다. 7월, 가을에 열리는 메이저 리그의 입단 테스트를 응시하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지만 거듭된 어깨의 부상이 치유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 후 자신의 친정팀이었던 요코하마 베이스타스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라는 팀 이름이 바뀌면서 구단측으로부터 감독직 제안을 받았지만 12월 5일에 구단과의 뚜렷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협상이 결렬되었다. 12월 9일, 자신의 블로그에서 어깨 부상이 치유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현역을 은퇴하겠다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이로써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최장 기록이 되는 29년간의 프로 야구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듬해 2012년 4월 7일, 최종 소속 구단인 세이부에서 경기[1] 시작 전에 은퇴식이 열렸다.

그 후[편집]

2012년부터 닛칸 스포츠분카 방송의 해설위원으로 발탁되었고 TV 아사히보도 스테이션에서는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의 감독으로 부임한 구리야마 히데키의 후임으로 야구 캐스터로 발탁돼 정기적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상세 정보[편집]

출신 학교[편집]

  • 나고야 전기 고등학교

선수 경력[편집]

수상·타이틀 경력[편집]

타이틀[편집]

  • 최고 평균자책점 : 4회(1985년, 1987년, 1993년, 1999년)
  • 최고 승률 : 4회(1987년, 1991년, 1993년, 2000년)[2] ※센트럴 리그에서는 1972년까지 타이틀로 제정됨.
  • 최다 탈삼진 : 2회(1996년, 1999년)

수상[편집]

주요 기록[편집]

정규 시즌[편집]

  • 현역 통산 29년(역대 1위)
  • 연령별 최다승(42세에 11승, 44세에 7승)
  • 40세 이후 두 자릿수 탈삼진 경기수

일본 시리즈[편집]

  • 출장 횟수 : 14회(시리즈 타이 기록)
  • 통산 탈삼진 : 102(시리즈 기록)
  • 1경기 탈삼진 : 13(1999년 제1차전) ※일본 시리즈 기록.
  • 이닝 3자 3구 삼진(1994년 제2차전 3회) ※일본 시리즈 사상 최초.
  • 양대 리그 승리 투수(역대 3번째)
    • 퍼시픽 리그(8승) : 세이부에서 7승, 다이에에서 1승,
    • 센트럴 리그(1승) : 요미우리에서 1승

첫 기록[편집]

투수 기록
타격 기록

기록 달성 경력[편집]

  • 통산 100승 : 1993년 9월 4일, 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21차전(세이부 라이온스 구장) ※역대 109번째.
  • 통산 150승 : 1998년 9월 9일, 대 지바 롯데 마린스 23차전(지바 마린 스타디움) ※역대 43번째.
  • 통산 200승 : 2004년 8월 17일,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 20차전(도쿄 돔) ※역대 23번째.
  • 통산 1000투구회 : 1991년 6월 1일, 대 지바 롯데 마린스 8차전(미야기 구장) ※역대 241번째.
  • 통산 1500투구회 : 1994년 7월 17일, 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16차전(후쿠오카 돔) ※역대 138번째.
  • 통산 2000투구회 : 1997년 6월 10일, 대 지바 롯데 마린스 10차전(후쿠이 현영 구장) ※역대 75번째.
  • 통산 2500투구회 : 2000년 8월 17일, 대 한신 타이거스 22차전(도쿄 돔) ※역대 41번째.
  • 통산 3000투구회 : 2005년 5월 12일, 대 오릭스 버펄로스 3차전(도쿄 돔) ※역대 25번째.
  • 통산 1000탈삼진 : 1992년 8월 6일, 대 긴테쓰 버펄로스 17차전(후지이데라 구장), ※역대 85번째.
  • 통산 1500탈삼진 : 1996년 6월 29일, 대 긴테쓰 버펄로스 14차전(후쿠오카 돔) ※역대 39번째.
  • 통산 2000탈삼진 : 1999년 9월 23일, 대 오릭스 블루웨이브 25차전(그린 스타디움 고베) ※역대 16번째.
  • 통산 2500탈삼진 : 2004년 6월 4일,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 9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역대 8번째.
  • 통산 600경기 : 2009년 7월 9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12차전(도쿄 돔) ※역대 34번째.[6]

기타[편집]

  • 올스타전 출장 : 10회(1986년 ~ 1987년, 1991년, 1993년, 1995년, 1997년, 1999년 ~ 2000년, 2004년 ~ 2005년)

등번호[편집]

  • 47(1982년 ~ 1994년, 1997년 ~ 2009년)
  • 21(1995년 ~ 1996년)
  • 55(2010년)

연도별 투수 성적[편집]

연도 소속











상대
타자
투구
이닝





고의
사구
몸에
맞는 볼







평균
자책점
WHIP
1982년 세이부 27 0 0 0 0 1 1 0 -- .500 122 28.2 22 0 21 2 1 29 1 0 11 11 3.41 1.50
1983년 23 2 0 0 0 2 0 0 -- 1.000 138 33.1 30 6 13 0 0 24 0 0 13 12 3.24 1.29
1984년 9 0 0 0 0 0 1 0 -- .000 53 12.1 10 1 10 0 1 8 0 0 4 4 2.92 1.62
1985년 34 14 8 0 1 8 3 0 -- .727 554 137.0 84 13 73 2 2 104 1 1 44 42 2.76 1.15
1986년 22 20 10 2 1 11 5 0 -- .688 586 145.1 111 22 56 3 1 138 1 0 53 52 3.22 1.15
1987년 27 26 23 2 2 15 4 0 -- .789 899 223.2 181 18 64 4 2 175 2 0 65 60 2.41 1.10
1988년 24 20 11 2 0 10 10 1 -- .500 694 159.0 164 18 70 6 1 94 4 0 77 67 3.79 1.47
1989년 33 17 4 0 0 4 8 2 -- .333 540 118.0 126 12 76 4 2 94 9 0 70 65 4.96 1.71
1990년 13 13 4 1 0 9 2 0 -- .818 359 85.2 58 11 46 1 2 89 4 0 33 32 3.36 1.21
1991년 25 23 10 4 1 16 3 0 -- .842 705 175.1 124 17 75 1 0 151 4 0 55 55 2.82 1.13
1992년 25 24 6 3 0 11 5 0 -- .688 645 150.2 140 17 69 3 3 133 4 0 60 59 3.52 1.39
1993년 24 23 4 0 0 15 3 0 -- .833 697 170.0 129 10 65 4 2 130 5 0 46 39 2.06 1.14
1994년 24 22 4 1 1 11 7 0 -- .611 554 130.2 120 12 44 0 3 124 2 1 54 50 3.44 1.26
1995년 다이에 22 22 6 1 1 12 5 0 -- .706 652 163.0 137 15 48 0 0 138 4 0 69 66 3.64 1.13
1996년 29 29 9 1 0 8 15 0 -- .348 867 202.2 207 17 70 2 1 178 6 0 94 79 3.51 1.37
1997년 27 27 0 0 0 11 6 0 -- .647 670 161.1 153 14 48 2 3 146 2 0 61 60 3.35 1.25
1998년 15 14 1 0 1 7 4 0 -- .636 386 93.2 90 8 28 1 2 65 0 1 35 32 3.07 1.26
1999년 26 26 7 3 2 11 7 0 -- .611 754 196.1 143 12 34 1 1 196 6 1 56 52 2.38 0.90
2000년 요미우리 21 21 1 1 1 12 5 0 -- .706 545 136.0 127 14 16 0 1 148 5 0 53 47 3.11 1.05
2001년 5 5 0 0 0 1 3 0 -- .250 103 21.1 35 3 7 1 0 8 2 0 21 20 8.44 1.97
2002년 24 24 1 1 0 9 8 0 -- .529 681 170.1 157 21 26 3 2 151 5 0 61 55 2.91 1.07
2003년 18 18 4 2 1 7 6 0 -- .538 483 117.0 117 15 22 2 3 115 1 0 56 55 4.23 1.19
2004년 23 23 2 0 0 10 7 0 -- .588 596 138.2 160 27 33 1 1 128 3 0 78 72 4.67 1.39
2005년 24 24 1 0 0 11 9 0 0 .550 595 136.0 159 26 44 3 1 130 4 0 73 71 4.70 1.49
2006년 13 13 0 0 0 3 2 0 0 .600 295 70.0 69 12 19 0 3 52 0 0 41 35 4.50 1.26
2007년 요코하마 19 18 0 0 0 7 6 0 0 .538 442 103.2 118 6 28 1 4 73 2 0 46 45 3.91 1.41
2008년 3 3 0 0 0 0 2 0 0 .000 70 13.2 21 3 5 0 1 7 2 0 13 8 5.27 1.90
2009년 46 1 0 0 0 2 3 0 10 .400 172 37.1 53 11 14 1 0 24 2 1 30 27 6.51 1.79
2010년 세이부 10 0 0 0 0 0 2 0 0 .000 33 6.0 11 1 4 0 0 7 0 0 7 7 10.50 2.50
통산 : 29년 635 472 116 24 12 224 142 3 10 .612 13890 3336.2 3056 362 1128 48 67 2859 81 5 1379 1279 3.45 1.25
  •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붉은색 글씨는 일본 프로 야구 역대 최고 성적.
  • 통산 2,852탈삼진은 역대 탈삼진수 7위, 통산 224승은 역대 13위 타이 기록 수립.

주석[편집]

  1. 예전에 소속해 있던 소프트뱅크(당시는 다이에)와의 대전이었다.
  2. 2000년은 연맹 표창 없음.
  3. 투수로서는 유일하게 양대 리그에서 수상.
  4. 2년 연속 수상은 나가시마 시게오, 호리우치 쓰네오에 이은 사상 3번째.
  5. 1991년에는 포수였던 이토 쓰토무, 1999년에는 조지마 겐지와 같이 선정됨.
  6. 8회말에 구원 등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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