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 히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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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다 히로키
黒田 博樹

Hiroki Kuroda
뉴욕 양키스 No.18
Hiroki Kuroda on May 22, 2013.jpg

투구 중인 구로다 히로키(2013년)

기본 정보
국적 일본 일본
생년월일 1975년 2월 10일(1975-02-10) (39세)
출신지 오사카 부 오사카 시
신장 185.4 cm
체중 93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1996년
드래프트 순위 2순위(역지명)
첫 출장 NPB / 1997년 4월 25일
MLB / 2008년 4월 4일
연봉 $15,000,000(2013년)
경력
일본 국가대표팀
올림픽 2004년
구로다 히로키
일본어식 한자 표기: 黒田 博樹
가나 표기: くろだ ひろき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 구로다 히로키
통용 표기: 쿠로다 히로키
로마자: Hiroki Kuroda
메달 기록
일본 일본의 선수
남자 야구
올림픽
2004 아테네 야구

구로다 히로키(일본어: 黒田 博樹 (くろだ ひろき), 1975년 2월 10일 ~ )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이며, 현재 메이저 리그뉴욕 양키스의 소속 선수(투수)이다.

부친은 전 프로 야구 선수였던 구로다 가즈히로이다.

인물[편집]

프로 입단 전[편집]

부친인 구로다 가즈히로가 감독을 맡았던 보이스 리그 팀인 올스미노에에서 활약했다. 우에노미야 고등학교를 거쳐 도토 대학 야구 연맹에 소속된 센슈 대학에 진학했는데 고등학교 시절에는 불펜 투수였지만 대학에서는 힘을 키워 에이스로 군림했다. 팀은 4학년 봄부터 도토 대학 1부 리그에 승격하였고 그 해부터 대학 야구에서의 스피드건 장내 표시가 시작된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대학생으로서는 처음으로 시속 150km/h를 측정했다. 1부 리그 통산 6승 4패.

히로시마 도요 카프 시절[편집]

1997년 ~ 2005년[편집]

1996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역지명 2순위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입단해 이듬해인 1997년 4월 25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프로 데뷔 첫 등판과 동시에 첫 선발 투수로 나섰으며 이 경기에서 데뷔 첫 승리와 처음으로 완투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 후에도 같은 신인이던 사와자키 도시카즈와 함께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가면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규정 투구 이닝을 채웠다. 그 다음해인 1998년에는 프로 2년차의 징크스에 빠질 정도로 극도의 부진에 시달리는 등 1승(4패)에만 그쳤다.

1999년 시드니에서 열린 인터컨티넨탈 컵에 일본 대표팀 선수로 출전하여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승리, 대만과의 경기에서도 완봉승을 거뒀다. 그 해에는 히로시마의 선발 로테이션에 이름을 올려 팀의 중심 투수로 활약했다. 젊은 시절에는 스피드가 있지만 제구가 안 좋아서 호투를 했다하고 생각하면 다음 등판에서 첫회 5실점을 하는 등 컨디션의 변화로 극도의 부진을 겪는 등 성적도 나빴지만 이듬해 2000년 9월 20일 요미우리와의 경기에서부터 시즌 종료 때까지 4연속 완투승을 거둬 독립을 이뤘다.

2001년에는 올스타전에 처음으로 출전했고 그 해엔 데뷔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인 12승을 기록하는 등 팀 승리에 기여했다. 2002년에는 시즌 도중 선발 로테이션에서 제외됐지만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2003년에 그 당시까지 에이스로 활약했던 사사오카 신지를 대신해서 처음으로 개막전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전반기에는 극도의 부진과 컨디션 난조로 승리 투수가 되지 못하는 시기가 계속됐지만 후반부터 본래의 컨디션을 되찾아 최종적으로 13승을 기록하여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 아테네 올림픽 야구 아시아 지역 예선에도 출전했다. 이듬해 2004년 6월 20일에 개인 최고 속도인 157km/h를 측정했고 시즌 중에 열린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의 중간 계투로서 2승을 기록, 팀의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2005년 4월 15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에서 미우라 다이스케와 서로 완봉 릴레이를 펼쳤지만 양팀 모두 점수를 얻지 못하는 등 결국 0대 0으로 무승부가 됐다. 올스타전에서는 팬 투표로 선정돼 4년 만에 출전하였고 그 해 시즌 15승이라는 리그 최다승을 올려 생애 첫 타이틀을 획득했다. 타이틀료를 포함하여 연봉 2억 엔에 달한다.

2006년[편집]

히로시마 시절의 구로다(2004년)

국가별 대항전인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팀 선수로 발탁됐지만 2월 24일 12개 구단 선발과의 연습 경기에서 타구를 오른손에 맞아 부상당해 결국 출전을 포기해야만 했다.

5월 31일에 FA권을 취득했는데 구로다 본인은 “이것을 계기로 타 구단의 평가도 받아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6월까지 5승 6패, 평균 자책점, WHIP 1.11로 안정된 투구를 이어가서 올스타전 출장 직전인 7월 2일의 주니치 드래곤스와의 경기에서는 패전 없이 8연승을 기록했다. 7월에는 4승 무패, 평균 자책점 0.84, WHIP 0.78의 활약으로 월간 MVP를 팀 동료인 구리하라 겐타와 함께 공동 수상했다. 게다가 8월에도 계속돼 4승 무패, 평균 자책점 1.11, WHIP 0.86의 활약으로 월간 MVP를 연속으로 수상해 히로시마 구단 역사상 최초로 2개월 연속 월간 MVP 수상자가 됐다. 이 때 “히로시마 카프의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어 기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9월에는 오른쪽 팔꿈치 통증으로 장기 이탈됐고 10월 16일 주니치와의 경기에서 구원으로 복귀 등판해 프로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그 해에는 13승 6패 1세이브, WHIP 1.00, 평균 자책점 1.85 등을 기록하여 최우수 평균 자책점 타이틀을 석권했는데 1점 대의 타이틀 획득은 1992년 아카호리 모토유키 이래였고 센트럴 리그에서는 1989년 사이토 마사키 이래의 쾌거였다. 또, 템포가 좋은 투구를 보여줬다는 평가받아 스피드업상을 수상했다.

시즌 종반, FA 이적 정보가 각 스포츠 신문을 달구고 있는 가운데 히로시마 팬들이 움직여서 완성시킨 것이 히로시마 시민 구장 외야석에 갑자기 등장한 대형 플래카드이다. 여기에는 많은 팬들로부터의 메시지, 그리고 큰 글씨로 ‘우리들은 함께 싸워온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미래에 빛나는 그 날까지 당신이 눈물을 흘린다면 당신의 눈물이 돼주는 Carp의 에이스 구로다 히로키’(我々は共に闘って来た 今までもこれからも… 未来へ輝くその日まで 君が涙を流すなら 君の涙になってやる Carpのエース 黒田博樹)라고 쓰여져 있었다. 더욱이 시즌 최종 등판 경기에는 만원으로 몰린 팬들이 구로다의 등번호 ‘15’번을 빨간 플래카드를 내걸어 구장 전체를 빨간색으로 물들이고 이후에 “그 팬들의 기분은 대단했다”라고 말했다. 이 일련의 에피소드는 이듬해 2007년 7월 《누군가를 위해서 - 구로다 히로키 이야기》(만화 : 요시하라 모토키, 원안 협력·취재 : 도쓰카 게이)로서 만화로 만들어져 영 애니멀(하쿠센샤)에 게재됐다. 시즌 종료 후 마티 브라운 감독의 추천으로 미국에 건너가 오른쪽 팔꿈치 관절의 클리닝 수술(몇 개월만에 투구가 가능한 가벼운 수술)을 받았다.

FA권 취득에 따라 10월 15일에 구단에서 ‘4년 10억 엔+평생 보장, 지도자 수형’이라는 조건이 제시됐다. 그리고 11월 6일에 4년 12억 엔(기본 연봉 2억 5,000만 엔+단년 최대 5,000만 엔의 성과급에 포함돼 당초 조건에 성과급을 가산하고 있다)에서 FA권을 행사하지 않고 잔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으로도 국내외 구단의 이적은 없다’라고 명시해 국내라면 ‘평생 히로시마’를 선언했다. 또한 이 계약은 4년의 계약 기간 내에 자유롭게 메이저 리그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FA권을 행사하지 않고 잔류 결정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내가 타 구단의 유니폼을 입고, 히로시마 시민 구장에서 카프 팬, 카프의 선수를 상대로 공을 던지는 것이 자신 가운데서 상상할 수 없었다”, “나를 여기까지 투수로 키워준 것은 카프였고 그 팀을 상대로 내가 힘껏 공을 던지는 나 자신이 정직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또, 그 해의 선수회가 주어지는 ‘베스트 에피소드상’의 수상자로 선정돼 구로다의 야구 장비를 담당하는 에스에스케이는 회사 차원에서 구로다를 프로모션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히로시마 시민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평가한 히로시마 시는 ‘히로시마 시민 시상’을 구로다에게 수여한다고 발표했다(구단으로서는 네 번째).

2007년[편집]

그 해에는 개막전 선발 투수로 발탁돼 하세가와 료헤이 이래 히로시마 구단에서 두 번째가 되는 5년 연속 개막전 선발 투수가 됐다. 또한 주간 경기에는 크게 자신을 가졌고, 6월 3일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경기에서는 2003년 7월 6일부터의 주간 경기 13연승을 기록했다. 7월 14일 도쿄 돔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참고로 프로 데뷔 첫 승리도 도쿄 돔에서 가진 요미우리와의 경기였다). 올스타전에서 자신으로서는 두 번째인 팬투표에 의해 선정되면서 통산 네 번째의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예년 여름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그 해 8월부터는 퀄리티 스타트조차 지킬 수 없는 경기가 계속되는 등 8월과 9월에는 2승 3패, 평균 자책점 4.58, WHIP 1.48 등의 부진을 겪었다.

10월 18일에 FA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메이저 리그 구단은 이전부터 구로다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으며 특히 텍사스 레인저스의 총감독인 존 다니엘스가 관심을 표하는 발언을 했다. 조 아르본과 대리인 계약을 맺은 뒤 12월 1일에 스즈키 기요아키 구단 본부장에게 메이저 리그 구단으로 이적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1] 그런 한편으로 기자회견에서는 “제가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모두 카프 덕분이다. 다시 일본에 돌아와 플레이하게 된다면 이 팀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12월 15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3년간 3,530만 달러로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AP 통신이 보도했다.[2][3] 이에 따라 히로시마 도요 카프 출신으로서는 최초의 일본인 메이저 리거가 탄생하게 됐다. 등번호는 18번이었지만 기자회견장에서는 08번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유니폼이 제 시간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으로 그 해에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은 로버트 부스가 먼저 착용했던 등번호였다. 당초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측이 제안한 조건은 4년 계약이었으나 계약년수 단축을 스스로 신청했다. 이에 대해 구로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설레는 기분은 거의 들지 않았다. 전쟁터에 나가는 심정으로 미국으로 간다. 4년씩이나 이런 괴로운 행동은 못 하겠다. ‘힘든 시간’이 짧을 때 자신은 더 열심히 할 수 있다. 3년간 제대로 된 성적을 남길 수 있다면 4년째에는 기존과 동일하거나 더 나은 조건으로 계약할 수 있을 것이다.[4]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편집]

2008년[편집]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의 구로다(2011년)

메이저 리그에 데뷔 무대인 4월 4일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등판해 첫 승리 투수가 됐고[5] 5월 21일의 신시내티 레즈와의 경기에서는 8이닝을 5피안타 2실점으로 막아낸 데 이어 9회에는 사이토 다카시가 무안타 무실점의 호투를 벌여 승리하면서 일본인 사상 최초로 같은 시합에서 선발 승리와 세이브 달성을 기록했다.[6] 27일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는 후쿠도메 고스케와 메이저 리그에서 처음으로 맞붙었다.[7] 6월 6일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는 9이닝 동안 4피안타 무실점 11탈삼진 무볼넷의 호투로 메이저 리그 첫 완봉승을 거두었다.[8] 그러나 19일에 오른쪽 어깨 건염으로 부상자 명단에 오르기도 했지만[9] 7월 2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경기에서 복귀했고[10] 7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는 7회 종료 시점까지 퍼펙트 게임을 펼치다가 9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완봉 승리를 거두어 최종적으로도 주자는 8회에 1명만 허용했다.[11] 신인 투수가 8회 도중까지 퍼펙트 게임을 이어간 것은 1984년의 오렐 허샤이저 이래 처음이며[12] 만약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다면 샌디 쿠팩스 다음으로 다저스 구단 역사상 두 번째이자 일본인 메이저 리거로서는 첫 쾌거가 됐을 터였다.[13]

전반기는 17경기에 선발로 나서 5승 6패, 평균 자책점 3.43, WHIP 1.20의 성적을 올렸고, 후반기 첫 경기였던 18일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했지만 2이닝 6실점을 내주며 강판됐다.[14] 그 후에도 조 토리 감독이 “어느 쪽이 진짜인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로 컨디션의 기복이 심한 등판을 되풀이했으나[15] 8월부터는 11경기에 선발로 나서 4승 2패, 평균 자책점 2.56, WHIP 1.03의 호투를 보였다. 시즌 성적에서는 평균 자책점과 WHIP, 퀄리티 스타트로 리그 20걸에 들었고, FIP에서는 리그 9위인 3.59를 기록했다.

포스트 시즌에서는 시카고 컵스와의 디비전 시리즈 3차전에 선발로 나서 6과 1/3이닝을 6피안타 무실점의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되면서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했다.[16]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3차전에 선발로 나서 6과 0/3이닝을 5피안타 2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는데[17] 이 경기에서 셰인 빅토리노의 머리 부분 가까이로 던진 공 때문에 소동이 일어나면서 벌금이 부과됐고[18] 팀은 5차전에서 패했다.[19] 시즌 종료 후에는 다음해에 개최될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의 1차 후보로 지명됐지만 고사했다.[20]

2009년[편집]

노모 히데오, 마쓰자카 다이스케에 이어 일본인 선수로서는 역대 세 번째 개막전 투수로서 4월 6일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5와 2/3이닝을 4피안타 1실점으로 막아내 승리 투수가 됐다.[21] 그러나 그 직후 왼쪽 옆구리 통증을 호소하여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22] 6월 1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에서 복귀한 데 이어[23] 23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경기에서 복귀 후 첫 승리를 거두었다.[24] 28일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에서는 이치로와 메이저 리그에서의 첫 맞대결을 펼쳤다.[25] 7월 12일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경기에서 등판 간격 때문에 메이저 리그 진출 이후 처음으로 구원 등판했는데 1과 1/3이닝을 던져 2피안타 3실점을 내줬다.[26] 전반기는 WHIP 1.14로 안정된 투구를 보였음에도 3승 5패, 평균 자책점 4.67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남겼다. 8월 16일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에서는 러스티 라이얼이 때린 타구를 머리에 맞아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가[27][28] 9월 6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서 복귀,[29] 최종적으로 규정 투구 이닝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후반기는 5승 2패, 평균 자책점 2.98, WHIP 1.13의 호투를 이어갔고 팀은 2년 연속으로 지구 우승을 달성했다.[30]

포스트 시즌에서는 목의 통증으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디비전 시리즈 등판에서 제외됐고[31]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3차전에 선발로 나섰지만 1과 1/3이닝 동안 6실점을 내주며 강판됐다.[32] 팀은 작년에 이어 5차전에서 패했다.[33]

2010년[편집]

마운드에서 투구 중인 구로다 히로키(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 2008년)

4월 9일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경기에 첫 등판해서 8이닝 동안 5피안타 1실점의 호투를 펼쳐 3년 연속으로 첫 등판 승리를 기록했다.[34] 5월 2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경기에서는 이와무라 아키노리와 메이저 리그에서 첫 맞대결을 벌였는데 8이닝 동안 5피안타 1실점의 성적으로 메이저 리그 통산 20승이 되는 3승째를 올렸고[35] 전반기는 17경기에 선발로 나서 7승 7패, 평균 자책점 3.87, WHIP 1.37의 성적을 남겼다. 7월 22일의 뉴욕 메츠와의 경기에서는 다카하시 히사노리와 투수전을 펼쳐 8이닝 5피안타 무실점의 호투로 시즌 8승째를 거두었다.[36] 그 이후 본인은 호투한 경기에서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아[37][38][39] 8월 25일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경기에서 6경기만에 승리 투수가 됐다.[40] 30일의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경기에서는 8회 1사 상황까지 노히트 노런의 호투를 보여 메이저 리그 이적 후 처음으로 10승째를 올렸다.[41] 후반기는 14경기에 선발로 나서 평균 자책점 2.87, WHIP 0.93의 호조를 보였지만 “승패는 (자기 스스로는)어쩔 수 없는 일임을 올해 들어 절실히 느끼고 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42] 호투를 펼치는데도 불구하고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한 경기가 많아[43] 4승 6패에 그쳤다. 시즌 통산에서는 11승, 평균 자책점 3.39, 투구 이닝 196과 1/3이닝, 탈삼진수 159를 기록해 투수 부문에서 메이저 리그 이적 후 개인 최고의 성적을 남겼다.

시즌 종료 후에는 다저스와의 계약이 종료되면서 FA가 됐는데 ESPN이 작성한 FA 선수 랭킹 명단에 데릭 지터를 웃도는 베스트 30에 들어 “타선의 지원이 적어 승수가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높은 평가를 받아 여러 구단이 획득을 목표로 구로다의 거취를 주목했다. 일부 언론에서 친정팀인 히로시마에 복귀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돼 일본의 구단들도 구로다를 영입하기 위해 움직였지만 11월 15일에 1년 1,200만 달러로 다저스와 재계약을 맺었다.[44][45] 그 후 기자 회견에서는 “다저스가 필요로 해준다면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싶었다”라고 말했고[46] 자신의 블로그에서는 히로시마 복귀와 관련된 보도에 대해 사죄하고 “일본에 복귀한다면 히로시마밖에 고려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47]

2011년[편집]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동일본 대지진의 모금 활동에 참가해[48] 자신도 5만 달러를 기부하였다.[49] 4월 3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첫 등판하여 7이닝을 6피안타 3실점의 투구로 4년 연속의 최초 등판 승리를 이뤘고[50] 같은 달 9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서는 9회 2사까지 무실점의 호투로 메이저 리그 통산 30승이 되는 시즌 2승째를 올렸다.[51] 그러나 그 후 6월까지 9패중 6경기에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는 등의 호투를 펼쳤지만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기가 계속돼 7월 1일 LA 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 메이저 리그 통산 100선발 기록을 달성하여 8경기 만에 승리를 거두었다.[52]

전반기에는 18경기에 등판하여 6승 10패, 평균 자책점 3.06, WHIP 1.22로 과거 최고의 성적을 남겼고 7월까지 포스트 시즌 진출을 위해 여러 구단이 구로다의 트레이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라는 내용의 언론 보도가 여러 차례 나왔지만 구로다는 트레이드 기한 전인 7월 30일에 트레이드 거부권을 행사해 팀에 잔류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구로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플레이오프의 매력도 있었고 갈등도 있었습니다. 작년에 계약할 때 다저스에서 뛰기로 정했었고 그 원점으로 돌아간 것입니다.[53]

8월 26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경기에서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가 되는 10승째를 올렸고,[54] 8월에는 5승을 올렸다.[55] 9월 11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4와 2/3이닝을 던졌지만 3실점을 허용, 일본인 선수 최악의 기록이 되는 16패째를 당했다.[56] 16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경기에서는 메이저 리그 통산 40승째이자 개인 최다인 12승째를 올렸고[57] 27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에서 메이저 리그 이적 후 처음으로 200이닝에 도달했다.[58] 후반기에도 14경기에 등판하여 7승 6패, 평균 자책점 3.09, WHIP 1.20으로 안정된 투구를 계속하여 작년에 이어 득점 원호율이 리그 최하위인 2위를 기록하는 등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시즌 통산 성적은 16패를 당하긴 했으나 13승과 리그 9위의 평균 자책점 3.07, 161개의 탈삼진으로 주요 3개 부문에서 2년 연속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뉴욕 양키스 시절[편집]

2012년[편집]

마운드에서 포수 오스틴 로민(오른쪽)과 상의하고 있는 구로다 히로키

이듬해 1월 13일 뉴욕 양키스와 계약에 합의했고[59] 26일에 1년간 1,500만 달러로 계약을 맺었다. 4월 13일 LA 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 이적 후 첫 승리를 올렸고[60] 24일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는 다르빗슈 유와 투수전을 펼쳐 6과 2/3이닝 동안 5피안타 2실점으로 막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 3패째를 당했다. 6월 13일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는 미일 통산 150승을 달성했고 17경기에 등판하여 8승 7패, 평균 자책점 3.50, WHIP 1.26의 성적으로 전반기를 마쳤다. 7월 18일의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경기에서는 노모 히데오, 오카 도모카즈에 이어 일본인 선수로서는 역대 세 번째로 메이저 리그 통산 50승을 달성했다.[61] 경기는 7회 우천으로 인한 콜드 게임으로 경기가 종료됐기 때문에 기록상으로는 완봉승이었다. 23일의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에서는 이 날 트레이드로 양키스에 입단한 이치로와 함께 선발 출전하여 7이닝 동안 3피안타 1실점 탈삼진 9개의 호투를 펼쳐 노모 히데오 이후 일본인 선수로서는 역대 두 번째로 3년 연속 10승째를 올렸다.[62]

8월 14일의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일본인 선수로는 단독 2위인 메이저 리그 통산 52승째를 달성함과 동시에 시즌 두 번째의 완봉승을 거두어 조 지라디 감독은 “이번 시즌 투수진 가운데 최고의 투구 내용을 보여줬다”라고 극찬했다.[63] 9월 16일의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경기에서는 메이저 리그 이적 후 자기 최다인 14승째를 올려 2년 연속으로 200투구 이닝에 도달했다.[64]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가 된 10월 4일의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서는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투수전을 펼쳐 7이닝 동안 7피안타 2실점의 투구로 프로 입단 후 자신의 최고 기록이 되는 16승째를 올렸고 동시에 팀도 지구 우승을 결정지었다.[65][66] 또한 평균 자책점 3.32는 양키스 선발진 가운데 1위였고 투구 이닝 219와 2/3는 리그 4위, 승률 5할 9푼 3리는 본인의 메이저 리그 최고 기록이었다.

포스트 시즌에서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디비전 시리즈 3차전에 선발로 나서 포스트 시즌에 출전한 일본인 선수로서는 최장 기록인 8과 1/3이닝 동안 5피안타 2실점의 투구로 팀 승리에 기여했다.[67][68]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3일 간격으로 선발 등판해 5회까지 주자를 내보내지 않았고 7과 2/3이닝 동안 5피안타 3실점을 기록하여 포스트 시즌에서 일본인 선수로서는 최다 기록인 11개의 탈삼진을 잡는 등의 호투를 보였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구로다의 호투에도 불구하고 팀은 패했고[69] 4차전에서도 팀은 패했다.[70] 11월 20일에 1년간 1,500만 달러를 받기로 하고 재계약에 합의했다.[71]

2013년[편집]

6월 7일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에서 미일 통산 2000탈삼진을 달성했고[72] 19일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경기에서는 6과 2/3이닝을 던져 8피안타 2실점의 투구로 7승째를 올리는 등 내셔널 리그 모든 구단으로부터의 승리를 달성했다.[73] 전반기를 19경기에 선발로 나서 8승 6패, 리그 2위의 평균 자책점 2.65, WHIP 1.05의 성적으로 마무리하고 올스타전 대체 출장 선수의 최종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지만 실패했다.[74] 7월 25일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는 7이닝 6피안타 무실점의 호투로 10승째를 올리면서 일본인 선수로서 최다 기록이 되는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75] 8월 11일 LA 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는 시즌 11승째를 올렸고,[76] 17일의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서는 메이저 리그 이적 후 최악의 성적인 11개의 피안타를 기록하며 8패째를 당했지만 그래도 평균 자책점은 리그 1위가 됐다.[77] 그러나 이후에는 제구가 무너지면서[78] 후반기는 13경기에 선발로 나서면서 평균 자책점 4.25, WHIP 1.32 등의 부진한 성적을 남겼고 더욱이 승리 투수의 요건을 충족시키고 강판됐을 때도 3차례의 세이브 달성에 실패하는 등[79] 후반기의 승패는 3승 7패로 끝나 팀도 포스트 시즌 진출에는 실패했다.

10월 31일에 FA가 됐고 12월 6일에 연봉 1,600만 달러+성과급 지급의 1년 계약으로 재계약에 합의했다는 사실이 보도돼[80][81] 12월 7일에 정식 발표됐다.[82]

2014년[편집]

4월 25일, LA 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 최악의 성적인 8실점을 기록하는 등[83] 5월까지의 성적은 평균 자책점 4.56, WHIP 1.32의 성적을 남겼다. 7월 초순에는 CC 사바시아다나카 마사히로가 부상자 명단에 들어간 것에 의해 개막 이후부터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는 유일한 투수가 됐고 전반기에는 19경기에 선발로 나서 6승 6패, 평균 자책점 4.10, WHIP 1.21의 성적을 남겼다. 7월 25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경기에서 일본인 역대 두 번째인 메이저 리그 통산 200번째 선발로 나섰다.[84] 같은 달 30일의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는 구로다의 뒤를 이어 히로시마에서 활약했던 콜비 루이스와 맞대결을 펼쳤지만 패전 투수가 됐고[85] 퀄리티 스타트를 달성하면서도 패전 수가 현역 선수로서는 최다인 30패가 됐다.[86] 8월 25일에는 히로시마 현에서 발생했던 산사태 피해를 입은 이재민에게 성금을 보내기도 했다.[87] 같은 달 28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 일본인 선수로서는 노모 히데오 이래 5년 연속 규정 투구 이닝에 도달했다.[88]

9월 3일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서는 전년도에 이어 스스로 기록을 경신하는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에 도달했고[89] 같은 달 14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에서 미일 통산 3000투구 이닝에 도달했다.[90] 시즌 마지막 등판이 된 25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에서는 8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지만 9회에 데이비드 로버트슨이 동점타를 허용하는 바람에 승리 투수가 되지 못했다.[91] 이 경기에서는 조 지라디 감독으로부터 9회에도 계속 던지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데릭 지터의 현역 마지막 홈 경기였다는 이유로 ‘오늘은 나의 날이 아니다’라며 고사했다.[92] 팀은 2년 연속으로 포스트 시즌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후반기에는 13경기에 선발로 나와 5승 3패, 평균 자책점 3.16, WHIP 1.03의 성적을 남겼고 팀의 선발 투수로서는 유일하게 개막 이후부터 선발 로테이션을 지켰다.[93] 일본인 최초의 메이저 리그 전체 30개 구단을 상대로 한 승리는 다음 시즌으로 미루게 됐다.[94]

플레이 스타일[편집]

구로다의 투구폼(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 2010년)

통산 500이닝 이상의 양대 리그 현역 선발 투수 가운데 8위가 되는 통산 볼넷율 2.06으로 안정된 제구력을 자랑해 스리쿼터로부터 평균 구속 92.0mph(약 148.1km/h), 최고 속도 157km/h를 측정된 빠른 공(고속 싱커, 포심)과 평균 구속 87mph(약 140km/h)의 고속 포크, 평균 구속 약 84mph(약 135km/h)의 고속 슬라이더를 무기로 삼는 본격파 우완 투수로, 드물게 커브컷 패스트볼도 섞어 던진다.[95][96] 그 중에서도 슬라이더와 포크는 메이저 리그에서도 높은 평가를 얻었으며[97] 특히 포크는 대니 하렌의 스플리터와 더불어 ‘현역 최고의 스플리터’라는 평가를 받았다.[98]

메이저 리그 이적을 전후로 투구 스타일을 바꾸었는데 히로시마 시절에는 포심을 주축으로 했던 반면 있었지만 다저스로 이적하기 몇 년 전부터 “투심 계열을 안으로, 슬라이더 계열을 밖으로, 포크로 높낮이를 더한다. 타자가 노리는 볼을 던져서 치게 한 다음 그것을 잡아내는 게 이상적”이라는 구상을 세웠고 이적 후에는 포심을 거의 던지지 않고 투심이 주축이 되는 투구를 취했다.[99] 그 때문에 히로시마 시절에 던졌던 최고 속도 150km/h를 넘기도 하는 슈트를 오른쪽 타자의 무릎으로 떨어지는 고속 싱커로 진화시켰다.[4] 그 외 슬라이더에 관해서도 2008년 시즌 초반에 결정적인 안타를 얻어맞은 적이 많았기 때문에 슬라이더를 쥐는 법도 바꿨다고 한다.[100]

히로시마 시절에는 완투수가 리그 1위를 차지했던 시즌이 여섯 번이나 있어 강인한 인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미스터 완투’(ミスター完投)라는 별명을 얻었으나 완봉 수는 1년에 한 번 꼴이었다.[101] 11년 동안 74차례 완투를 기록했으나 완봉은 14차례에 불과했다. 구로다 자신도 완투에 집착하는 면이 있었으나 메이저 리그에서 플레이하게 된 이후로는 “아무리 한 경기를 완봉해도 다음 등판에서 녹아웃을 되어버리면 팀의 입장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보다는 7회, 7회를 연속해서 빈틈없이 던져 주는 것이 팀에의 공헌도가 높다. 이 상황에서 완투에 집착하는 것은 자기 만족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4]

OB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에가와 스구루는 자신의 저서에서 “컨디션이 좋은 날의 그의 스트레이트는 한가운데에 들어와도 칠 수가 없다”라고 말했고 주니치 드래곤스 감독이었던 오치아이 히로미쓰는 “오늘(2006년 7월 2일, 3피안타 완봉)의 구로다는 내가 현역이었더라도 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선수가 칠 수 있을 리가 없다”라고 극찬했다.[102]

타구 처리의 대한 평가도 높았고 2008년에는 35차례의 보살을 기록했다.[95] 1999년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는 만루 상황에 결승 세이프티 번트를 성공시킨 적이 있으나 타격은 그다지 좋지 않아 연속 무안타를 기록한 적도 있어 2010년에 개막 이후부터 39타석 무안타를 이어갔던 시기에는 현지 지역 신문으로부터 “아무리 투수라지만 너무하다”라는 혹평이 내려진 적도 있다.[103]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높은 평가를 얻은 한편 호투한 경기에서도 타선의 지원을 얻지 못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104] 앞에서 말한 대로 다저스 시절에는 거의 매년 호투를 했는데도 타선이 받쳐주질 않아 조 토리 감독도 그 점에 대해서 안타깝게 여겼고 ESPN으로부터도 “타선의 지원이 적어 승수가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 탓에 과소평가되고 있다”라고 지적하여 2006년 히로시마 시절에는 최우수 평균 자책점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원호율은 최하위였다. 양키스에 이적한 후에도 다른 로테이션 투수들에 비해 호투한 경기에서의 타선 지원이 현저하게 떨어져서 언론에서도 “구로다는 변호사를 고용해서 힘을 보태주지 않는 팀 동료들을 고소해야 한다”라는 기사가 나오기까지 했다.[105]

에피소드[편집]

  • 부모를 으로 잃은 탓에 암의 연구나 계몽 활동에 고액의 기부를 해왔는데 이 사실이 로스앤젤레스의 언론에 소개된 적도 있다. 부친이 폐암에 걸렸을 때는 입원 병원이 있는 히로시마에 자주 드나들었고 메이저 리그 도전을 1년 후로 미룬 것에는 부친의 투병에 힘을 실어드리고 싶다는 기분이 강했다고 한다.[97][4]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거의 매일같이 함께 캐치볼을 했던 클레이턴 커쇼와는 사이가 좋다.[106] 커쇼와는 나이차가 10살 이상이나 되는 데다가 국적이나 사고방식, 생활 습관 등도 달랐지만 서로를 존중하면서 성장했다고 한다.[4] 투구와 관련해서 가끔씩 이야기를 나눴을 뿐만 아니라 사적인 자리에서도 자주 식사를 함께 하거나 선물을 주고 받았다.[4] 2011년에 트레이드를 통한 이적으로 마음이 기울었을 때에도 커쇼에게만 심경을 털어놓는 등[107] 그 해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마지막 등판이 된 경기를 앞두고 커쇼와 캐치볼을 했을 때에도 커쇼는 그 해에 233이닝을 던지고 이미 시즌 마지막 등판을 끝낸 상태라 코치진에서 캐치볼을 하지 말라는 금지령이 내렸지만 커쇼는 “괜찮다. 구로다가 선발이니까 내가 캐치볼 상대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라면서 캐치볼을 계속했다고 한다.[4] 커쇼는 그 해 마지막 미팅에서도 “구로다에게 말해두고 싶다. 내년에도 다저스에 남아줬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하여 미팅이 끝난 뒤 락커룸으로 돌아온 구로다는 감격에 벅찬 나머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4] 그 해 시즌 종료 후 FA가 되면서 이적할 구단을 선택할 때가 되자 “커쇼와 상대 투수로 맞붙고 싶지는 않다”라는 마음에서 내셔널 리그의 구단으로 이적하는 것은 피했다고 한다.[4] 2013년 7월 31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커쇼와의 대전이 성사됐을 때 경기는 뉴욕 양키스가 승리했지만 구로다가 7이닝 5피안타 무실점, 커쇼가 8이닝 5피안타 무실점으로 각각 호투하여 서로 승패는 연결짓지 못하고[108] 구로다는 “커쇼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버렸었고, 이런 전개라면 좀처럼 이길 찬스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항상 0점으로 막아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109]라고 말했고 커쇼도 “그는 아메리칸 리그에서 가장 좋은 투수 중의 한사람이므로 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라고 밝혔다.[110]
  • 일본과는 방식이 다른 미국의 트레이닝에 대해 구로다는 다음과 같이 말했는데 적극적으로 미국식 트레이닝을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에 왔으니 미국식 야구를 받아들여야 나 자신도 저쪽에서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온 이상 이쪽의 방식도 스스로 시도해 봐야겠다. 이런 자세가 다른 사람들한테도 전해질 거라고 믿는다. 미국 야구를 하러 왔으니 조정법이든 트레이닝이건 간에 일단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 결과도 매년 그리 좋지 않았으니 미국의 방식을 믿고 시도해 보는 것도 나한테는 좋은 일이었다.[111]

또 일본에서 활약했던 시절에는 “연습이나 경기에만 있는 날도 있겠고 느긋하게 보내는 날도 있을 것이다”라는 식의 메이저 리그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밖에는 없었지만 거의 매일같이 유니폼을 입고 구장에 가야 하는 현실을 경험하고 연습시간이 길다는 소리를 듣는 일본 야구가 오히려 ‘힘들지 않다’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4] 그 때문에 “일본에서와 같은 조정으로는 절대로 신체가 배겨나지 못하겠다”라는 생각에 조정법을 바꾸기에 이르렀다고 한다.[4]
  • 고교 시절 사이고 다카모리가 자신의 조카 이치키 마사나오에게 직접 보낸 ‘눈을 견디면서 피어나는 매화가 곱기도 하여라’(雪に耐えて梅花麗し)라는 싯구절에 깊은 감명을 받아 그 이후로 그것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었고 2012년 스프링 캠프 미팅에서 각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말을 소개했을 때 구로다가 이 싯구절을 읊었다. 이 싯구절에 주장 데릭 지터조 지라디 감독도 공감을 표했다고 한다.[112]

상세 정보[편집]

출신 학교[편집]

선수 경력[편집]

NPB
MLB
국가 대표 경력

수상·타이틀 경력[편집]

타이틀[편집]

수상[편집]

국제 대회[편집]

  •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동메달

개인 기록[편집]

투수 기록(NPB)[편집]

타격 기록(NPB)[편집]

기록 달성 경력[편집]

기타(NPB)[편집]

MLB[편집]

미일 기록 달성 경력[편집]

등번호[편집]

  • 15(1997년 ~ 2007년)
  • 18(2008년 ~ )

연도별 투수 성적[편집]

연도 소속











상대
타자
투구
이닝





고의
사구
몸에
맞는 볼







평균
자책점
WHIP
1997년 히로시마 23 23 4 1 0 6 9 0 -- .400 601 135.0 147 17 63 0 4 64 8 1 72 66 4.40 1.56
1998년 18 6 0 0 0 1 4 0 -- .200 199 45.0 53 5 24 0 1 25 1 0 34 33 6.60 1.71
1999년 21 16 2 1 0 5 8 0 -- .385 406 87.2 106 20 39 1 3 55 4 0 70 66 6.78 1.65
2000년 29 21 7 1 0 9 6 0 -- .600 623 144.0 147 21 61 2 1 116 3 0 73 69 4.31 1.44
2001년 27 27 13 3 3 12 8 0 -- .600 786 190.0 175 19 45 1 8 146 7 0 72 64 3.03 1.16
2002년 23 23 8 2 1 10 10 0 -- .500 671 164.1 166 16 34 3 1 144 1 0 69 67 3.67 1.22
2003년 28 28 8 1 4 13 9 0 -- .591 827 205.2 197 18 45 2 3 137 5 1 77 71 3.11 1.18
2004년 21 21 7 1 1 7 9 0 -- .438 639 147.0 187 17 29 1 2 138 1 0 81 76 4.65 1.47
2005년 29 28 11 1 3 15 12 0 0 .556 852 212.2 183 17 42 2 7 165 7 0 76 75 3.17 1.06
2006년 26 25 7 2 3 13 6 1 0 .684 744 189.1 169 12 21 4 7 144 5 0 49 39 1.85 1.00
2007년 26 26 7 1 2 12 8 0 0 .600 738 179.2 176 20 42 3 5 123 1 0 78 71 3.56 1.21
2008년 LAD 31 31 2 2 2 9 10 0 0 .474 776 183.1 181 13 42 8 7 116 5 0 85 76 3.73 1.22
2009년 21 20 0 0 0 8 7 0 0 .533 485 117.1 110 12 24 1 1 87 5 0 59 49 3.76 1.14
2010년 31 31 0 0 0 11 13 0 0 .458 810 196.1 180 15 48 13 5 159 12 0 87 74 3.39 1.16
2011년 32 32 0 0 0 13 16 0 0 .448 838 202.0 196 24 49 6 5 161 12 1 77 69 3.07 1.21
2012년 NYY 33 33 3 2 1 16 11 0 0 .593 891 219.2 205 25 51 2 8 167 13 0 86 81 3.32 1.17
2013년 32 32 1 1 1 11 13 0 0 .458 824 201.1 191 20 43 2 5 150 6 0 79 74 3.31 1.16
2014년 32 32 0 0 0 11 9 0 0 .550 820 199.0 191 20 35 0 7 146 13 0 91 82 3.71 1.14
NPB : 11년 271 244 74 14 17 103 89 1 0 .536 7086 1700.1 1706 182 445 19 42 1257 43 2 751 697 3.69 1.27
MLB : 7년 212 211 6 5 4 79 79 0 0 .500 5444 1319.0 1254 129 292 32 38 986 66 1 564 505 3.45 1.17
  • 2014년 기준,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저서[편집]

주해·주석[편집]

주해[편집]

  1. 히로시마의 신인으로서 첫 등판과 동시에 첫 승리 투수가 된 사례는 역대 5번째였는데 2014년 현재까지도 9명의 투수가 달성했다. 그 외에 달성한 선수는 스기우라 류타로(개막전 완투승), 오타가키 요시오(개막전 완투승), 사사오카 신지(완투승), 야마우치 야스유키, 구로다 히로키(완투승), 고바야시 간에이(구원승), 사이토 유키, 후쿠이 유야, 구리 아렌 등이다.

주석[편집]

  1. 黒田がメジャー挑戦表明 - 닛칸 스포츠, 2007년 11월 30일
  2. ドジャース黒田入団発表、背番号18希望 - 닛칸 스포츠, 2007년 12월 17일
  3. 黒田心意気の出来高払いなし - 닛칸 스포츠, 2007년 12월 18일
  4. 구로다 히로키 저 《결심하고 끊는다》(KK 베스트셀러스), 2012년, ISBN 978-4-584-13382-8
  5. 黒田完璧7回3安打1失点、初登板初勝利 - 닛칸 스포츠
  6. 日本人初!黒田→斎藤「先発勝利&S」 - 닛칸 스포츠, 2008년 4월 6일
  7. カブス福留、初対決ドジャース黒田に快勝 - 닛칸 스포츠, 2008년 5월 29일
  8. 黒田「壊れてもいい」志願の続投で初完封 - 닛칸 스포츠, 2008년 6월 8일
  9. 黒田がDL入り、復帰は最短で28日 - 닛칸 스포츠, 2008년 6월 20일
  10. 黒田復活最速155キロ20日ぶり登板4勝 - 닛칸 스포츠, 2008년 7월 4일
  11. 黒田「悔しい」1安打無四球で完全逃す - 닛칸 스포츠, 2008년 7월 9일
  12. July 29, 1984 Cincinnati Reds at Los Angeles Dodgers Box Score and Play by Play - Baseball-reference.com. Sports Reference, Inc., 1984년 7월 29일
  13. 完全試合に迫った黒田、「素晴らしいサポート受けている」 - MAJOR.JP, 2008년 7월 8일
  14. 黒田球宴休み生かせず2回8安打KO - 닛칸 스포츠, 2008년 7월 20일
  15. ‘빛을 발했던 루키들’, 《월간 슬러거》(2008년 12월호), 일본 스포츠 기획 출판사, 잡지 15509-12, p.29
  16. 黒田で突破ドジャース3連勝/プレーオフ - 닛칸 스포츠, 2008년 10월 6일
  17. 黒田内角攻めでド軍1勝/プレーオフ - 닛칸 스포츠, 2008년 10월 14일
  18. 黒田に75万円、選手とコーチ7人に罰金 - 닛칸 스포츠, 2008년 10월 15일
  19. 黒田「悔しいが充実の1年」/プレーオフ - 닛칸 스포츠, 2008년 10월 17일
  20. ドジャース黒田WBC辞退調整間に合わず - 닛칸 스포츠, 2008년 12월 21일
  21. 黒田、ピービ倒して野茂以来の開幕白星 - 닛칸 스포츠, 2009년 4월 8일
  22. 黒田脇腹違和感でDL入り「不本意です」 - 닛칸 스포츠, 2009년 4월 12일
  23. 黒田戦列復帰、トーリ監督「よく投げた」 - 닛칸 스포츠, 2009년 6월 3일
  24. 黒田「長かった」4・6開幕戦以来の2勝 - 닛칸 스포츠, 2009년 6월 25일
  25. イチロー内野安打で黒田攻略3点突破口 - 닛칸 스포츠, 2009년 6월 30일
  26. 黒田がメジャー移籍後初救援で3失点 - 닛칸 스포츠, 2009년 7월 14일
  27. 黒田の頭に打球直撃し退場…検査異常なし - 닛칸 스포츠, 2009년 8월 17일
  28. 黒田、今季2度目の故障者リスト入り - 닛칸 스포츠, 2009년 8월 20일
  29. 黒田22日ぶり復帰も5回4失点で6敗目 - 닛칸 스포츠, 2009년 9월 7일
  30. 黒田ドジャースが2年連続の地区優勝 - 닛칸 스포츠, 2009년 10월 5일
  31. 黒田はベンチで観戦/プレーオフ - 닛칸 스포츠, 2009년 10월 9일
  32. 黒田撃沈、39球6失点KO/プレーオフ - 닛칸 스포츠, 2009년 10월 20일
  33. 黒田悔しいブルペン終戦/プレーオフ - 닛칸 스포츠, 2009년 10월 23일
  34. 黒田3年連続初登板飾った 8回自責ゼロ - 닛칸 스포츠, 2010년 4월 11일
  35. 黒田8回1失点3勝目!96マイルに96球 - 닛칸 스포츠, 2010년 5월 4일
  36. 尚成と投げ合うと黒田が勝つ8回0封8勝 - 닛칸 스포츠, 2010년 7월 24일
  37. 黒田8敗…気温40度超6回1失点も - 닛칸 스포츠, 2010년 7월 19일
  38. 4試合連続勝ち星なしの黒田が練習で汗 - 닛칸 스포츠, 2010년 8월 18일
  39. 黒田7回2失点も援護なく5戦白星なし - 닛칸 스포츠
  40. 黒田気合入れメジャー最多タイ9勝 - 닛칸 스포츠, 2010년 8월 27일
  41. 黒田惜しい!8回1死までノーヒッター - 닛칸 스포츠, 2010년 9월 1일
  42. 黒田6回1失点も「今年はつくづく…」 - 닛칸 스포츠, 2010년 9월 12일
  43. 黒田援護なし…6度目無得点12敗目 - 닛칸 스포츠, 2010년 9월 7일
  44. 黒田ド軍と正式に再契約「うれしい」 - 닛칸 스포츠, 2010년 11월 17일
  45. 黒田「2ケタ勝利最低ライン」/一問一答 - 닛칸 스포츠, 2010년 11월 24일
  46. ド軍残留黒田「世界一を目指したい」 - 닛칸 스포츠, 2010년 11월 24일
  47. ドジャース残留黒田がブログで騒動を謝罪 - 닛칸 스포츠, 2010년 11월 19일
  48. ドジャースが義援金集め、黒田も感謝 - 닛칸 스포츠, 2011년 3월 20일
  49. 黒田「自分も協力」義援金5万ドル - 닛칸 스포츠, 2011년 3월 16일
  50. 黒田が4年連続初登板勝利「強いので」 - 닛칸 스포츠, 2011년 4월 5일
  51. 黒田9回2死まで0封「最後ヘロヘロ」 - 닛칸 스포츠, 2011년 4월 11일
  52. 黒田1カ月半ぶり白星、去就注目度アップ - 닛칸 스포츠, 2011년 7월 3일
  53. 黒田は悩んでド軍残留「眠れなかった」 - 닛칸 스포츠, 2011년 8월 1일
  54. 黒田10勝 2年連続2ケタ勝利 - 닛칸 스포츠, 2011년 8월 26일
  55. 黒田11勝目 8月で5勝「たまには…」 - 닛칸 스포츠, 2011년 9월 1일
  56. 黒田日本人ワースト16敗「疲れがある」 - 닛칸 스포츠, 2011년 9월 13일
  57. 黒田12勝 メジャー自己新で通算40勝 - 닛칸 스포츠, 2011년 9월 18일
  58. 黒田200イニング登板 FA結論はまだ先 - 닛칸 스포츠, 2011년 9월 29일
  59. ヤンキース黒田誕生 - 닛칸 스포츠, 2012년 1월 15일
  60. 重圧に打ち勝ったヤンキース・黒田、最高のNYデビュー - sportsnavi 칼럼, 2012년 4월 14일
  61. 黒田「浸っている余裕はない」/一問一答 - 닛칸 스포츠, 2012년 7월 19일
  62. 黒田7回1失点で10勝 3年連続2ケタ - 닛칸 스포츠, 2012년 7월 24일
  63. 日本人投手単独2位の勝利数!ヤンキース黒田投手 - About.com, 2012년 8월 19일
  64. コツコツ黒田2年連続200投球回 - 닛칸 스포츠, 2012년 9월 18일
  65. イチ2点二塁打、黒田7回2失点16勝 - 닛칸 스포츠, 2012년 10월 4일
  66. 黒田16勝「いつもと同じ気持ちだった」 - 닛칸 스포츠, 2012년 10월 4일
  67. 黒田2発被弾も好投「神懸かり的」 - 닛칸 스포츠, 2012년 10월 11일
  68. 黒田が導いた「漫画の世界」も瞬間見れず - 닛칸 스포츠, 2012년 10월 12일
  69. 黒田5回まで完全の快投も - 닛칸 스포츠, 2012년 10월 16일
  70. 黒田「まだ負けたという実感がない」 - 닛칸 스포츠, 2012년 10월 19일
  71. Yankees re-sign Kuroda - FOX SPORTS, 2012년 11월 20일
  72. 黒田2000K到達も8安打4失点5敗目 - 닛칸 스포츠, 2013년 6월 8일
  73. 黒田 古巣ド軍斬り ナ・リーグ制覇 - 닛칸 스포츠, 2013년 6월 21일
  74. 黒田、球宴最終候補リストに名前あった - 닛칸 스포츠, 2013년 7월 16일
  75. 黒田10勝 野茂超え日本人初4年連続2桁 - 닛칸 스포츠, 2013年7月25日
  76. ダル15K見て、黒田9度目の0封11勝 - 닛칸 스포츠, 2013년 8월 14일
  77. 黒田8敗 味方守備、判定に怒り抑え… - 닛칸 스포츠, 2013년 8월 19일
  78. 終盤苦しんだ黒田 チーム背負い活躍、疲労が心身に - 니혼케이자이 신문, 2013년 9월 30일
  79. 黒田、勝ち投手権利をリベラに消される - 닛칸 스포츠, 2013년 9월 10일
  80. 黒田が1年16億円でヤ軍残留合意 - 닛칸 스포츠, 2013년 12월 7일
  81. Yankees, Hiroki Kuroda finalize one-year deal - CBS Sports
  82. Yankees sign RHP Hiroki Kuroda - MLB.com
  83. ヤ軍黒田8失点「紙一重の部分が野球」 - 닛칸 스포츠, 2014년 4월 27일
  84. 黒田7勝目 野茂に次ぐ200戦先発達成 - 닛칸 스포츠, 2014년 7월 26일
  85. 黒田7敗目 元広島エース対決に敗れる - 닛칸 스포츠, 2014년 7월 31일
  86. 不運な黒田、QSクリアも現役最多30敗 - 닛칸 스포츠, 2014년 8월 1일
  87. ヤンキース黒田が広島市に義援金 - 닛칸 스포츠, 2014년 8월 25일
  88. 黒田7回2失点も「30球団制覇」逃す - 닛칸 스포츠, 2014년 8월 30일
  89. 黒田が“黒田超え”5年連続10勝 - 닛칸 스포츠, 2014년 9월 5일
  90. 黒田 3000投球回到達に「まさか…」 - 닛칸 스포츠, 2014년 9월 15일
  91. 黒田「ジーターは持っているものが違う」 - 닛칸 스포츠, 2014년 9월 26일
  92. 黒田 ジーターと2度のハグ「言葉じゃなくてね…」 - Sponichi Annex, 2014년 9월 27일
  93. 唯一ローテ守り抜いた 黒田「最低限の目標だが一番難しい」 - Sponichi Annex, 2014년 9월 29일
  94. 黒田7回2失点も2つの記録は持ち越し - 닛칸 스포츠, 2014년 8월 29일
  95. 도모나리 나치, 무라카미 마사노리 《메이저 리그·완전 데이터 선수 명감 2009》, 고사이도 출판, 2009년, p.404. ISBN 978-4-331-51370-5
  96. FanGraphs Hiroki Kuroda
  97. 도모나리 나치, 무라카미 마사노리 《메이저 리그·완전 데이터 선수 명감 2010》, 고사이도 출판, 2010년, p.404. ISBN 978-4-331-51439-9
  98. ‘2010-11 MLB 투수 백서 구종별 해설 & 데이터 파일 스플리터 - 스카우트 부장의 해설’, 《월간 슬러거》2011년 2월호, 일본 스포츠 기획 출판사, 잡지 15509-2, p.19
  99. ‘일본인 메이저 리거 신기축 구로다 히로키’, 《슈칸 베이스볼》2010년 3호, 베이스볼 매거진사, 잡지 20441-1/25, p.3 ~ 7
  100. NHK MLB 2008 일본인 메이저 리거의 군상
  101. 고세키 준지, 니시오 노리후미, 이즈미 나오키 《프로 야구 스카우팅 레포트 2007》, 어스펙트, 2007년, p.374 ~ 375. ISBN 978-4-7572-1338-8
  102. メジャー斎藤、黒田 ベテラン2人の優しさと気迫 - 산케이 신문, 2012년 3월 6일
  103. 도모나리 나치, 무라카미 마사노리 《메이저 리그·완전 데이터 선수 명감 2011》, 고사이도 출판, 2011년, p.450. ISBN 978-4-331-51518-1
  104. 好きな言葉は「気迫」。NYが認めた黒田博樹の志。〜常勝軍団でつかんだエースの座〜 - Number SCORE CARD, 2012년 9월 10일
  105. Kuroda should sue for lack of support - ESPN, 2012년 8월 26일
  106. 好調ドジャースが浮上 最下位からの巻き返し’ - sportsnavi 칼럼, 2010년 5월 25일
  107. 黒田 ドジャース残留決断は名誉よりチームへの愛着 - 스포츠 닛폰, 2011년 8월 1일
  108. 黒田、雄叫び7回0封「抑えるしかない」 - 닛칸 스포츠, 2013년 8월 1일
  109. 黒田7回無失点も勝敗つかず「仕方ない」 - 닛칸 스포츠, 2013년 8월 1일
  110. Dodgers derailed despite Kershaw's gem - MLB.com Recap, 2013년 7월 31일
  111. 黒田が苦しみを乗り越えて得たもの-2011シーズンを終えて’ - sportsnavi 칼럼, 2011년 10월 11일
  112. 黒田、完封11勝目!座右の銘「耐雪梅花麗」チームに浸透 - 스포츠 닛폰, 2012년 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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