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프로 야구 최우수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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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9차례의 센트럴 리그 MVP를 최다 석권한 오 사다하루

일본 프로 야구 최우수 선수(일본어: 日本プロ野球最優秀選手, 영어: Nippon Professional Baseball Most Valuable Player Award)는 1937년 춘계 대회 때부터 수상을 실시하여 현재 센트럴 리그, 퍼시픽 리그의 각각 1명씩의 수상자를 선정하는 일본 프로 야구 타이틀 중의 하나이다.

목차

정규 시즌 MVP [편집]

개요 [편집]

1937년 춘계 대회부터 최고 수훈 선수(最高殊勲選手 (さいこうしゅくんせんしゅ))라는 명칭을 사용하였지만 1963년부터 최우수 선수(最優秀選手)라는 타이틀 이름을 개칭하여 현재 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로부터 각각 1명씩 선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수상자 선정은 프로 야구를 취재하는 기자단 투표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투표 자격을 가지는 기자는 전국의 신문과 통신사, 각 방송사에 소속되고 있으면서 5년 이상 프로 야구 관련 취재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자격이 주어진다. 투표 용지에는 3명의 선수 이름을 기입하여 1위는 5점, 2위는 3점, 3위는 1점의 포인트가 배분되어 그 합계치가 가장 높은 선수가 선출된다. 또 공정한 수상자를 선정하기 위해 기준이 엄격해지면서 오·탈자를 포함한 오류가 발생하면 다음 연도의 투표 자격이 없어진다.

제정 당초에는 선정 위원(리그 관계자와 기자)에 의해서 하고 있었다. 1949년에는 기자 투표제를 도입했는데 첫 해에는 5명 연기제였지만 다음 연도부터 단기제가 되었고 1963년부터는 3명 연기제로 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발표 시기 [편집]

양대 리그 분열 이후의 발표 시기는 몇 차례의 과정과 변천을 거치기도 했다. 분열 직후인 1950년과 1951년에 일본 시리즈가 종료되는 며칠 후에 발표를 했고[1] 1952년에 센트럴 리그는 일본 시리즈가 시작하기 전인 이틀 전에, 퍼시픽 리그는 일본 시리즈가 끝나는 이틀 후로 나뉘었다. 1953년은 일본 시리즈 경기 도중에 발표, 1954년부터 1962년까지는 시즌 도중에 투표 마감이 이뤄지면서 발표도 일본 시리즈 시작하기 전에 리그 우승이 결정된 직후였기 때문에 대개 정규 시즌이 종료되기 전이었다.[2] 1956년과 1957년에는 양대 리그의 사무국으로부터 발표가 있었기 때문에 각 리그에서 다른 날에 발표되고 있었다. 1963년부터 2004년까지는 일본 시리즈 종료 이후 다음날에 행해지고 있었지만 2005년 이후에는 일본 야구 기구가 주최하는 시상식인 ‘프로 야구 컨벤션’ 당일에 발표하게 된다.

선출 경향 [편집]

‘최고 수훈 선수’로 제정된 당초부터 “소속 팀의 성적에는 관련이 없으면서도 가장 가치 있는 선수”, “우승에 가장 기여한 선수”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초기에는 벅키 해리스가리타 히사노리가 전자의 입장에서는 선택되고 있었지만 점차 후자의 경향이 강해졌다. 한신 타이거스의 구단 역사를 다룬 책인 《한신 타이거스 - 쇼와의 걸음》(1991년)에서는 1946년에 우승한 긴키 그레이트 링야마모토 가즈토(타점왕)가 선정 위원들의 만장 일치로 선정된 것이 “우승 팀에 한정된 선출”의 발단이라는 견해가 나온 적이 있다. 이 책에는 “MVP를 방역한 ‘최고 수훈’을 고집하면 아무래도 ‘우승’에 결부되어 왔다”라고 밝혔다. 1949년에 팀 성적이 6위를 기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최고 수훈 선수로 선정된 후지무라 후미오에 대해서는 “그 해에 도입된 5명의 연기제가 유리하게 작용했다”라고 기록되었다.

다음 시즌부터의 투표는 단기제가 되면서 “우승 팀으로부터의 선정”은 불문율이 되어 가고 있다는 신문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3] 그 후 “원칙적으로 우승한 팀으로부터 선정한다”라는 조항이 설정되면서 우승 팀으로부터의 선정을 하는 것이 계속 되었다.[4] 참고로 퍼시픽 리그에서는 ‘최우수 투수’ 라는 타이틀이 제정된 이후 1953년부터 1955년까지는 “최고 수훈 선수의 대상에는 투수를 포함하지 않는다” 라고 되어 있었다.

1963년에 ‘최우수 선수’라는 타이틀 이름이 변경되었을 때 상기의 조항은 삭제되었지만 그 후에도 승률이 높은 1위 팀에게 선정되는 경우가 가장 많다. 2위 이하의 팀에 소속된 선수가 가장 드문 성적이나 기록을 남겼을 경우에 선정되는 경우가 있지만 1986년 정규 시즌 당시 센트럴 리그에서는 랜디 바스(한신 타이거스)와 퍼시픽 리그에서의 오치아이 히로미쓰(당시 롯데 오리온스)가 소속팀의 정규 시즌 성적이 리그 최고 승률을 기록할 수 없었기 때문에 모두 타격 부문 3관왕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MVP로 선정되지 못했다.[5] 그 때문에 “가장 활약한 선수”의 개념에 대해서는 아래 두 가지의 경우 선정 결과에 의문이 제기되는 경우가 있다.

  1. 정규 시즌 최고 승률 팀에 소속하여 소속팀의 최고 승률에 가장 기여한 선수.
  2. 리그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둔 선수(트리플 크라운이나 시즌 신기록을 달성한 선수가 있었을 경우).

정규 시즌 우승팀 외에도 MVP로 선정된 예는 양대 리그제 도입 이후 센트럴 리그는 2회, 퍼시픽 리그는 10회를 기록했다. 또, 정규 시즌 최고 승률이 아닌 팀에게서 MVP로 선정된 사례는 양대 리그제 출범 이후 센트럴 리그는 2회, 퍼시픽 리그는 8회였는데 B클래스의 팀으로부터의 MVP는 한층 드물었다. 1982년에 타격 부문 3관왕을 달성한 오치아이 히로미쓰(롯데 오리온스), 1988년에는 40세 나이에 시즌 44개의 홈런을 기록하여 홈런왕과 타점왕을 연거푸 차지한 가도타 히로미쓰(당시 난카이 호크스), 2008년에는 23년 만에 21승을 기록한 투수가 되면서 투수 부문 3관왕(다승왕, 평균자책점, 최고 승률)을 획득한 이와쿠마 히사시(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등 3명뿐이다(모두 퍼시픽 리그에서 정규 시즌 5위를 기록한 구단이었지만 센트럴 리그에서는 B클래스를 기록한 구단에서의 MVP로 선정된 사례는 전무했고 양대 리그 모두 최하위 구단에서의 선정되는 경우도 없었다).

한편, 퍼시픽 리그에서 전·후기 제도가 시행되고 있던 1973년 ~ 1982년은 전기·후기 어느 쪽에 최고 승률을 기록하면서 플레이오프에서는 패배해 ‘우승 = 일본 시리즈 출장’을 놓친 구단으로부터 선정된 사례는 전무하다.

2004년 ~ 2006년의 “정규 시즌 최고 승률 구단과 ‘우승 팀 = 일본 시리즈 출장 구단’이 다를 가능성이 있다” 라는 플레이오프가 실시되고 있었던 시기 및 2007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도에 대해서는 정규 시즌 2위 이하의 팀이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우승하면서 일본 시리즈 출전에 성공한 경우로 해당 팀에서 MVP로 선정된 사례는 거의 없었다.[6]

메이저 리그와 비교해 투수가 선출되는 빈도가 높다(메이저 리그에서는 최고의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이 영 상이 있기 때문에 투수가 MVP로 선정되는 일은 거의 없다).

타자의 경우 홈런과 타점이 가장 많은 타자에게 선정되기가 쉽다. 투수는 선발 완투형의 투수가 선정되는 경우가 많지만 베스트 나인보다 구원 투수의 선출 횟수가 많다(베스트 나인은 1978년에 니우라 히사오와 1998년에 사사키 가즈히로의 2회, MVP는 1979년과 1981년에 에나쓰 유타카, 1988년 가쿠 겐지, 1998년에는 사사키 가즈히로, 2011년 아사오 다쿠야의 5회).

단일 리그 시대 [편집]

연도 수상 선수 소속팀
1937년 춘계 사와무라 에이지 도쿄 교진군
1937년 추계 벅키 해리스 고라쿠엔 이글스
1938년 춘계 가리타 히사노리 도쿄 세네터스
1938년 추계 나카지마 하루야스 도쿄 교진군
1939년 빅토르 스타루힌 도쿄 교진군
1940년 스다 히로시 도쿄 교진군
1941년 가와카미 데쓰하루 도쿄 교진군
1942년 미즈하라 시게루 도쿄 교진군
1943년 고 쇼세이 도쿄 교진군
1944년 와카바야시 다다시 한신군
1946년 야마모토 가즈토 긴키 그레이트 링
1947년 와카바야시 다다시 오사카 타이거스
1948년 야마모토 가즈토 난카이 호크스
1949년 후지무라 후미오 오사카 타이거스
  • 붉은 음영으로 된 부분은 2위 이하의 팀으로부터 선정.

양대 리그 시대 [편집]

연도 센트럴 리그 퍼시픽 리그
수상 선수 소속팀 수상 선수 소속팀
1950년 고즈루 마코토 쇼치쿠 로빈스 벳토 가오루 마이니치 오리온스
1951년 가와카미 데쓰하루 요미우리 자이언츠 야마모토 가즈토 난카이 호크스
1952년 벳쇼 다케히코 요미우리 자이언츠 유키 스스무 난카이 호크스
1953년 오토모 다쿠미 요미우리 자이언츠 오카모토 이사미 난카이 호크스
1954년 스기시타 시게루 주니치 드래건스 오시타 히로시 니시테쓰 라이온스
1955년 가와카미 데쓰하루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이다 도쿠지 난카이 호크스
1956년 벳쇼 다케히코 요미우리 자이언츠 나카니시 후토시 니시테쓰 라이온스
1957년 요나미네 가나메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나오 가즈히사 니시테쓰 라이온스
1958년 후지타 모토시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나오 가즈히사 니시테쓰 라이온스
1959년 후지타 모토시 요미우리 자이언츠 스기우라 다다시 난카이 호크스
1960년 아키야마 노보루 다이요 웨일스 야마우치 가즈히로 다이마이 오리온스
1961년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자이언츠 노무라 가쓰야 난카이 호크스
1962년 무라야마 미노루 한신 타이거스 하리모토 이사오 도에이 플라이어스
1963년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자이언츠 노무라 가쓰야 난카이 호크스
1964년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자이언츠 조 스탠카 난카이 호크스
1965년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자이언츠 노무라 가쓰야 난카이 호크스
1966년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자이언츠 노무라 가쓰야 난카이 호크스
1967년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자이언츠 아다치 미쓰히로 한큐 브레이브스
1968년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자이언츠 요네다 데쓰야 한큐 브레이브스
1969년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자이언츠 나가이케 도쿠지 한큐 브레이브스
1970년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자이언츠 기타루 마사아키 롯데 오리온스
1971년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자이언츠 나가이케 도쿠지 한큐 브레이브스
1972년 호리우치 쓰네오 요미우리 자이언츠 후쿠모토 유타카 한큐 브레이브스
1973년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자이언츠 노무라 가쓰야 난카이 호크스[7]
1974년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자이언츠 가네다 도메히로 롯데 오리온스
1975년 야마모토 고지 히로시마 도요 카프 가토 히데지 한큐 브레이브스[7]
1976년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자이언츠 야마다 히사시 한큐 브레이브스
1977년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자이언츠 야마다 히사시 한큐 브레이브스
1978년 와카마쓰 쓰토무 야쿠르트 스왈로스 야마다 히사시 한큐 브레이브스
1979년 에나쓰 유타카 히로시마 도요 카프 찰리 매뉴엘 긴테쓰 버펄로스
1980년 야마모토 고지 히로시마 도요 카프 기다 이사무 닛폰햄 파이터스
1981년 에가와 스구루 요미우리 자이언츠 에나쓰 유타카 닛폰햄 파이터스
1982년 나카오 다카요시 주니치 드래건스 오치아이 히로미쓰 롯데 오리온스
1983년 하라 다쓰노리 요미우리 자이언츠 히가시오 오사무 세이부 라이온스
1984년 기누가사 사치오 히로시마 도요 카프 부머 웰스 한큐 브레이브스
1985년 랜디 바스 한신 타이거스 오치아이 히로미쓰 롯데 오리온스
1986년 기타벳푸 마나부 히로시마 도요 카프 이시게 히로미치 세이부 라이온스
1987년 야마쿠라 가즈히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히가시오 오사무 세이부 라이온스
1988년 가쿠 겐지 주니치 드래건스 가도타 히로미쓰 난카이 호크스
1989년 워렌 크로마티 요미우리 자이언츠 랄프 브라이언트 긴테쓰 버펄로스
1990년 사이토 마사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노모 히데오 긴테쓰 버펄로스
1991년 사사오카 신지 히로시마 도요 카프 궈타이위엔 세이부 라이온스
1992년 잭 하웰 야쿠르트 스왈로스 이시이 다케히로 세이부 라이온스
1993년 후루타 아쓰야 야쿠르트 스왈로스 구도 기미야스 세이부 라이온스
1994년 구와타 마스미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치로 오릭스 블루웨이브
1995년 토머스 오말리 야쿠르트 스왈로스 이치로 오릭스 블루웨이브
1996년 마쓰이 히데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치로 오릭스 블루웨이브
1997년 후루타 아쓰야 야쿠르트 스왈로스 니시구치 후미야 세이부 라이온스
1998년 사사키 가즈히로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마쓰이 가즈오 세이부 라이온스
1999년 노구치 시게키 주니치 드래건스 구도 기미야스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2000년 마쓰이 히데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마쓰나카 노부히코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2001년 로베르토 페타지니 야쿠르트 스왈로스 터피 로즈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
2002년 마쓰이 히데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알렉스 카브레라 세이부 라이온스
2003년 이가와 게이 한신 타이거스 조지마 겐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2004년 가와카미 겐신 주니치 드래건스 마쓰나카 노부히코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8]
2005년 가네모토 도모아키 한신 타이거스 스기우치 도시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8]
2006년 후쿠도메 고스케 주니치 드래건스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2007년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다르빗슈 유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2008년 알렉스 라미레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와쿠마 히사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09년 알렉스 라미레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다르빗슈 유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2010년 와다 가즈히로 주니치 드래건스 와다 쓰요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1년 아사오 다쿠야 주니치 드래건스 우치카와 세이이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2년 아베 신노스케 요미우리 자이언츠 요시카와 미쓰오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 붉은 음영으로 된 부분은 정규 시즌 최고 승률 구단 이외의 팀으로부터 선정.
  • 노란 음영으로 된 부분은 시즌 최고 승률이 아닌 우승 팀으로부터의 선정.
  • 푸른 음영으로 된 부분은 시즌 최고 승률을 기록했지만 우승이 아닌 팀으로부터의 선정.
  • 보라색 음영으로 된 부분은 일본 시리즈 출전 팀이 아닌 리그 우승 팀으로부터의 선정.

주요 기록 [편집]

3년 연속 퍼시픽 리그 MVP를 석권하여 일본 야구계의 간판 타자로 군림한 이치로

일본 시리즈 MVP [편집]

1950년 제1회 대회 때부터 시상을 실시했으며 정식 명칭은 최고 수훈 선수였다. 일본 시리즈 우승팀 선수 중에서 팀 우승에 기여한 선수에게 주어지며 일본 시리즈가 종료된 직후에 발표된다. 1954년 제5회 대회부터 2006년 제57회 대회까지는 수상자에게 토요타 자동차(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우승했을 경우에는 마쓰다)가 제공하는 자동차 한 대를 부상으로 주어지고 있었다. 원칙적으로는 1명이지만 1962년에는 우승 상품이 많았던 것이나 특히 우승에 기여한 선수가 많았던 것부터 유일하게도 2명에게 선정되어 도에이 플라이어스도바시 마사유키가 자동차, 다네모 마사유키는 그 외의 상품을 서로 나누기도 했다.

월간 MVP [편집]

당초에는 양대 리그에서 각각 가장 활약했던 선수를 전체 포지션 중 1명을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었다. 원래는 투수와 야수를 포함해 양대 리그에서 매달 한 사람씩 선정했지만 1989년부터 투수 부문, 타자 부문(투수 이외)으로 확대해 양대 리그에서 매달 한 사람씩 선정하고 있다. 또한 현재 상의 정식 명칭은 ‘닛폰 생명 월간 MVP’(日本生命月間MVP)이며 닛폰 생명 보험이 스폰서를 맡고 있다.

주석 [편집]

  1. 고니시 도쿠로스즈키 류지의 회고록을 비롯해 1950년의 MVP가 일본 시리즈 개막하기 전(혹은 시리즈 도중)에 발표되었다라고 하는 내용이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다.
  2. 리그에 의해 시즌 종료 후가 된 시즌에도 일부 있었다.
  3. 1954년 10월 6일자 요미우리 신문 기사에서는 “우승 팀으로부터 선정한다고 하는 불문율도 있다”라고 보도했다.
  4. 조항의 설정 시기는 불명확하지만 1955년 9월 27일자 요미우리 신문 기사에는 “원칙적으로 우승 팀으로부터 선정된다”라는 내용이 있다.
  5. 그 이전에 타격 3관왕에서는 1974년의 오 사다하루, 1982년과 1985년의 오치아이 히로미쓰는 모두 소속 팀이 리그 우승을 놓치면서도 MVP로 선정되었고 1986년 정규 시즌에서는 바스와 오치아이의 소속팀이 각각 한신(센트럴 리그)은 3위, 롯데(퍼시픽 리그)가 4위를 차지했다.
  6. 퍼시픽 리그에서는 2004년에 마쓰나카 노부히코, 2005년에는 스기우치 도시야의 소속팀인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2005년부터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변경)가 2년 연속으로 시즌 최고 승률을 달성하면서도 당시 플레이오프 제도에 의해 ‘우승 및 일본 시리즈 출전을 놓친’ 팀에게 선정되었다. 2007년 이후 현행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도에서는 ‘정규 시즌 최고 승률 구단 = 우승 팀’이라는 일본 시리즈 출전 팀이 다를 가능성이 생기지만 그것이 다른 경우에서는 ‘정규 시즌 최고 승률 = 리그 우승 팀’이면서도 ‘클라이맥스 시리즈 패전 = 일본 시리즈 출전을 놓친’ 팀에게 2007년 오가사와라 미치히로(요미우리 자이언츠), 2010년 와다 쓰요시(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등이 선정되었다.
  7. 당시 퍼시픽 리그에서는 전·후기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연간 승률에서 1위는 아니었지만 플레이오프에 승리하여 우승했다.
  8. 당시 퍼시픽 리그는 정규 시즌과 플레이오프를 합쳐서 리그 우승을 결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규 시즌 1위이면서도 우승을 놓쳤다.

같이 보기 [편집]

바깥 고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