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카 마사히로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찾기
다나카 마사히로
田中 将大

Masahiro Tanaka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No.18
Masahiro Tanaka.JPG

다나카 마사히로(2007년 6월 26일)

기본 정보
국적 일본 일본
출신지 효고 현 이타미 시
생년월일 1988년 11월 1일(1988-11-01) (24세)
신장 188 cm
체중 93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2006년
드래프트 순위 고교생 드래프트 1순위
첫 출장 2007년 3월 29일
연봉 4억 엔(2013년)
경력
일본 국가대표팀
올림픽 2008년
WBC 2009년, 2013년
다나카 마사히로
일본어식 한자 표기: 田中 将大
가나 표기: たなか まさひろ
외래어 표기법 표기: 다나카 마사히로
통용 표기: 타나카 마사히로
로마자: Masahiro Tanaka
메달 기록
일본 일본의 선수
남자 야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9 로스앤젤레스 2009 WBC

다나카 마사히로(일본어: 田中 将大 (たなか まさひろ), 1988년 11월 1일 ~ )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이며, 현재 퍼시픽 리그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소속 선수(투수)이다.

별명은 ‘다나카 마 군’(田中マー君), 마 군(マー君), 마 상(マーさん)이고, 팀내에서의 호칭은 (マー) 또는 마사오(まさお) 라고 부른다.

목차

인물 [편집]

프로 입단 전 [편집]

효고 현 이타미 시 출신으로 초등학교 1학년 때 연식 소년 야구팀에서 야구를 시작해 4번·포수로서 사카모토 하야토와 배터리를 짜기도 했다. 타격 연습에서는 좌익 방향으로 홈런을 연발하기도 했고, 초등학교 시절의 최고 성적은 6학년 때 효고 현 대회에서 준우승을 이끌었다. 이타미 시립 마쓰자키 중학교 시절에 경식 야구팀에서 활동하여 강한 어깨를 살리는 등 투수라는 포지션을 겸하게 되어[1] 3학년 때에는 간사이 지역 선발팀에 발탁되었다.

고마자와 대학 부속 도마코마이 고등학교에 진학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투수에만 전념하게 되어 2학년 때인 제87회 하계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등번호가 11번이면서 팀내 주전 투수로 활약해 140km/h전후의 속구고속 슬라이더, 포크볼을 무기로 대회 2연패 달성에 기여했다. 결승전에서 우승을 결정한 마지막 1구는 2학년 선수로서는 사상 최초의 150km/h를 측정했고,[2] 대회 종료 후 AAA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팀에서는 2학년인 다나카와 도노우에 나오미치 등 2명만 선발로 발탁되어 우승을 이끌었다.[3]

2학년 가을부터는 고다 요시후미 감독이 취임한 직후 처음으로 에이스 겸 주장이 되어[1] 추계 홋카이도 대회에서는 도노우에를 참고로 해 폼을 개조했다고 말한다.[3] 타격에서도 결승을 포함한 5경기 중 4경기에서 홈런을 날리는 등 맹활약을 하여 결승전에서는 과거 최다인 13점차로 우승했고 그 후에 열린 메이지 진구 야구 대회에서도 홋카이도 지역의 팀으로서는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하여 우승에 기여했다.[4] 그러나 제78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서는 한때 우승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지만 같은 팀 선수에 의한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나 출전 포기로 이어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3학년 때인 제88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대회 직전부터 컨디션이 떨어지는 등 슬럼프를 겪었지만 팀은 결승에 진출했다. 와세다 실업고등학교와의 결승전에서는 3회 경기 도중부터 중간 계투로 등판해 연장 15회까지 1실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와세다 실업고등학교의 사이토 유키도 1실점을 해서 완투를 하는 등 1대 1의 무승부로 끝나 37년 만의 결승 재경기로 결정되었다. 재경기에서도 1회 도중에 중간 계투로 투입했지만 3대 4로 패했다. 다나카는 마지막 타자가 되어 사이토에게 삼진을 당하면서 경기가 종료되었다.

대회 종료 직후에는 전일본 선발로서 미국 원정에 참가했고, 가을에 있은 국민 체육 대회의 결승전에서 또다시 와세다 실업고와 상대해 사이토와의 재대결에서는 0대 1로 패해 준우승을 했다. 이 대결은 2006년의 일본의 스포츠를 상징하는 명장면이 되었다.

최고 속도인 150 km/h의 속구와 슬라이더를 무기로 고교 통산 458 탈삼진을 기록해[5] 고교 통산 탈삼진수, 탈삼진률과도 요코하마 고등학교의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웃돌면서[5] 주위에서는 ‘괴물’(怪物), ‘세대 최강 에이스’(世代最強エース)라는 호평을 받았다. 타자로서도 고교 통산 13홈런을 기록하고 있다.

당시 그 연령대의 선수 중에서 영입 1순위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고시엔 대회에서 맞붙었던 사이토가 와세다 대학의 진학을 발표하면서 더욱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다나카 본인도 센트럴 리그퍼시픽 리그를 불문하고 12개 구단 어디에서라도 지명되면 입단 의사를 보였기 때문에 12개 구단의 지명 후보가 되고 있어 복수 구단의 경합이 확실시되고 있었다.

결승 재경기 당시의 전광판(한신 고시엔 구장)
고교 시절의 다나카 마사히로(2006년 8월 17일, 한신 고시엔 구장)

2006년 9월 25일의 고교생 드래프트에 있어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오릭스 버펄로스,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등 4개 구단에서 1순시 우선 지명을 받으면서 추첨 결과 라쿠텐이 지명 교섭권을 획득했다. 11월 2일에 계약금 1억 엔+인센티브, 연봉 1,500만 엔(모두 추정)으로 고졸 신인으로는 이례적으로 대학·사회인 야구 출신 희망범위와 동등의 조건으로 가계약을 맺으면서 등번호는 18번으로 결정했다.

프로 입단 후 [편집]

2007년 [편집]

춘계 캠프에서의 프리 타격, 홍백전, 시범 경기에서의 첫 등판이 모두 우천으로 인한 중지 또는 연기되는 등 팀내에서 ‘비를 몰고 다니는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3월 29일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선발로 첫 등판해 1과 2/3이닝을 던져 타자 12명을 상대로 6안타 3탈삼진 1볼넷의 6실점을 기록했다. 팀은 4회에 동점을 만들면서 패전 투수는 되지 않았지만 강판 후 벤치에서 눈물을 보였다. 4경기째 등판이 된 4월 18일의 소프트뱅크전에서 9이닝을 2실점과 13탈삼진을 기록하여 데뷔 첫 승리와 첫 완투승을 동시에 달성했다.

6월 13일의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 고졸 신인으로서는 2005년의 다르빗슈 유 이후의 완봉승을 기록했고, 같은 해 올스타전에서는 고졸 신인으로서 1999년의 마쓰자카 다이스케 이래 팬 투표에 의해 선정되면서 출전, 7월 22일의 제2차전에 선발로 등판해 개인 최고 속도의 153km/h를 기록했다(2이닝 6실점). 7월 10일에 고졸 신인으로서는 마쓰자카 이래 역대 6번째이자 에나쓰 유타카와 대등해 최고 속도 타이가 되는 96이닝 2/3로 시즌 100탈삼진을 기록했다. 8월 31일의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에서 마쓰자카 이래 구단 사상 최초가 되는 고졸 신인으로서의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었다. 리그 4위인 186이닝 1/3을 던져 11승을 기록했고 고졸 신인으로서는 역대 4위가 되는 196탈삼진을 기록(리그 2위)하는 등 마쓰자카 이래 8년 만이자 고졸 1년차에 신인왕을 수상했다. 소프트뱅크와의 대결에서 궁합이 맞을 정도로 6경기에 등판하여 무려 5경기에서 승리 투수가 되었다.

2008년 [편집]

시즌 직전에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2년차의 징크스에 관한 질문에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지금 해야 할 일을 할 뿐 그것에 대해 두 번 다시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대답했다. 5월 4일의 삿포로 돔에서의 닛폰햄전에서 승리 투수가 되어 고교 시절을 보낸 홋카이도에서의 첫 승리를 거두었다. 정규 시즌의 경기에서는 원정팀의 히어로 인터뷰는 방송되지 않지만 이 날은 닛폰햄 구단측의 배려로 특별히 인터뷰가 장내에 방송되어 닛폰햄 팬들로부터도 큰 박수가 보내졌다.

6월 22일의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중간 계투로 등판해 첫 세이브를 기록, 이 경기에서는 타순의 관계로 인해 4번 타자로 타석에 들어서 ‘4번, 투수 다나카’가 되었고 만루로 돌아온 타석에서는 볼카운트 2-3까지 따라왔지만 결국에는 삼진으로 무너졌다. 베이징 올림픽 야구 일본 국가대표팀에서는 최연소로 발탁되면서 베이징 올림픽 본선에 출전했다. 등번호는 15번으로 배정을 받았고, 올림픽을 통해 무실점에서 평균자책점이 제로(0.00)를 기록한 투수로서 주목을 받아 팀내 최고의 탈삼진률을 기록했다. 같은 해에는 호투를 해도 팀의 타선이 좋지 않은 경우도 많아 본인의 10승째와 팀의 최하위 탈출을 건 소프트뱅크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 선발로 등판했지만 팀은 연장 12회에서 끝내기 승리를 했지만 자신은 9이닝 무실점에서 강판을 당했기 때문에 승부는 연결되지 않았고 두 자릿수 승리는 기록되지 않았다.

2009년 [편집]

정규 시즌 개막 직전인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어 팀의 대회 2연패 달성에 기여했다. 정규 시즌 개막 이후에는 소프트뱅크와의 홈경기 개막전에 선발로 등판해 완봉승을 거두는 등 시즌 첫 승리 투수가 되었고 4월 14일의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서 1실점 완투, 4월 22일의 지바 롯데전에서 완봉승, 4월 29일의 닛폰햄전에서 노무라 가쓰야 감독의 감독 통산 1500승째가 되는 1실점 완투와 1993년의 고미야마 사토루, 하세가와 시게토시에 뒤를 이은 개막 이후부터 4경기 연속 완투 승리를 기록한 공로로 자신의 첫 월간 MVP에 선정되었다. 5월 13일의 닛폰햄전에서 완투는 중단되었지만 6월 3일의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패배할 때까지 개막 이후 7연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6월 11일의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 시즌 8승째를 올린 이래 승리 수가 좀처럼 오르지 않아 성적이 침체되고 있는 팀 내에서 슬럼프를 겪게 되었다. 그 기간에도 다나카 본인은 평균자책점을 1점대에 계속 머무르며 호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빈타에 허덕이고 있는 타선과 경기 종반(특히 8회)에 일발 공세로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마의 8회’ 라고 불리게 되었다. 7월 20일의 소프트뱅크전에서 자기 최고 속도를 경신하는 155km/h를 측정하면서 회복의 조짐을 보였다. 올스타전 직후에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남기지 못하고 있었지만 8월 7일의 닛폰햄 파이터스전에서 상대 팀의 에이스인 다르빗슈 유와의 투수전을 펼쳐 약 2개월 만이 되는 승수를 올리는 등 9승째를 기록했다. 그 다음에는 안정된 투구와 기대 이상의 결과를 남기면서 8월 27일의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에서 개인 최다가 되는 12승째를 기록했다. 8월에는 4경기에 등판하여 4승 무패와 탈삼진 30개, 평균자책점 1.44의 좋은 성적으로 통산 2번째의 월간 MVP에 선정되었다. 최종적으로 리그 2위 타이 기록이자 팀내 톱이 되는 15승, 리그 3위가 되는 평균자책점 2.33이라는 좋은 성적을 올렸다.

10월 17일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1 스테이지이자 2차전인 소프트뱅크전에서 자신의 첫 무볼넷 완투 승리를 거두어 팀의 제2 스테이지 진출에 기여했다. 시즌 종료 후인 12월 25일에는 1억 500만 엔이 증가된 1억 8,000만 엔(추정)으로 계약이 갱신되는 등 이것은 프로 입단 4년차의 선수로서는 다르빗슈 유의 연봉인 2억 엔에 뒤를 잇는 역대 2번째의 고액 계약이 되었다.

2010년 [편집]

시즌 개막 직후부터 팀 성적이 저조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팀내에서도 고군분투하여 5월에는 통산 세 번째의 월간 MVP를 수상, 6월까지 팀내 1위인 8승을 올렸다. 그러나 7월에는 대퇴부의 근육 파열로 인한 부상을 당해 약 1개월간 전력에서 이탈되었다. 8월에는 1군에 복귀를 했지만 8월 29일의 세이부전에서 투구하는 도중 통증을 호소해 강판되었다. 병원에서의 진단 결과 오른쪽 가슴 부분의 근육이 파열된 것이 판명되어 이후의 경기는 결장했다. 시즌 11승과 평균자책점 2.50은 팀내 1위였지만 탈삼진과 투구 이닝은 모두 프로 데뷔 후 저조한 기록을 세웠다.

2011년 [편집]

시즌 개막 이후부터 호조를 이루면서 6월과 7월에는 2개월 연속으로 월간 MVP를 수상했고, 8월 7일의 닛폰햄전(K스타 미야기)을 맞이할 때까지의 개막 이후부터 16경기 연속으로 6이닝 이상을 던져 3실점 이내를 막아내는 안정감을 보여주었다. 8월 27일의 소프트뱅크전에서 노다 고지에 뒤를 이은 역대 2위의 1경기 18탈삼진을 기록했다. 9월 10일의 닛폰햄전에서는 2006년 하계 고시엔 대회의 결승전 이후가 되는 사이토 유키와 함께 투수전을 펼쳐 표가 매진될 정도의 큰 관심을 나타냈고 결과는 1실점 완투 승리를 거둔 다나카가 승리했다. 이 경기는 ‘조지아혼’상의 연간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시즌 전반기는 10이닝 무실점이면서도 승리가 연결되지 않는 등 타선의 지원을 받지 않았지만 후반기에는 승수를 늘렸고, 최종적으로 19승 5패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투구 이닝은 첫 200이닝을 추월한 226과 1/3이닝, 해마다 줄어들고 있던 탈삼진은 241개로 이닝 수를 넘는 갯수를 기록했다. 그 중에서도 평균자책점이 1.27을 기록했는데 이것은 퍼시픽 리그의 시즌 기록에서는 이나오 가즈히사가 1956년에 기록한 1.06에 뒤를 이은 역대 2위이며, 양대 리그제가 출범한 이후에는 역대 5위의 기록이 되었다. 그 해에는 최다 승리(D.J. 홀튼과 동률), 최고 평균자책점, 최우수 투수, 최다 완봉(6경기, 다르빗슈 유와 동률) 등 투수 부문 4관왕을 차지했다. 그 외에도 양대 리그 최고 성적인 최다 완투(14경기), 최다 무볼넷 경기(5경기)도 연달아 기록했고 볼넷의 갯수가 27개이면서 퍼시픽 리그에서의 규정 투구 횟수를 채운 투수 중에서는 세 번째로 적은 갯수이며 BB/9[6]는 1.07, K/BB는 최다 탈삼진을 기록한 다르빗슈 유의 7.67을 웃도는 8.93을 기록했다. 이러한 활약을 인정받아 최고의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와무라 에이지상을 처음으로 수상했고 그 밖에 베스트 나인, 골든 글러브상, 최우수 배터리상도 수상하는 등 투수 부문 타이틀을 연거푸 차지했다.

12월 14일, 센다이 시내에서 자신의 차로 운전하던 도중 마주오던 자전거와 접촉 사고를 내면서 자전거에 타고 있던 여성이 중상을 입힌 사고가 발생했다.

2012년 [편집]

1월 26일에 가수이자 탤런트인 사토다 마이와의 약혼을 발표했고 2월 7일에 센다이히가시 경찰서는 작년 12월에 발생한 접촉 사고와 관련해 다나카를 자동차 운전 과실 상해 혐의로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 시즌 개막을 앞둔 3월 20일에 사토다 마이와의 혼인 신고를 했고 3월 30일의 개막전에서 자신으로서는 처음으로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지만 6이닝 5실점을 기록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4월 22일에는 허리 통증으로 2년 만에 전력에서 이탈했다.

1군에 복귀한 5월 30일의 요미우리전에서는 소프트뱅크 시절에 투수전을 함께 펼쳤던 좌완 스기우치 도시야와 서로 8이닝까지 던지는 등 두 자릿수 탈삼진을 기록하는 승부를 펼쳤지만 팀은 노히트 노런에서 패하여 자신도 패전 투수가 되었다. 7월 6일 세이부전에서는 선발 등판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투구 연습 중에 오른쪽 옆구리 통증을 호소하면서 선발 등판을 피했고 다나카를 대신해서 시오미 다카히로가 등판하게 되었다. 7월 18일의 지바 롯데전부터 8월 19일 세이부전까지의 5경기에서는 기대 이하의 부진으로 자신이나 팀을 승리로 이끌지는 못했고 8월 26일의 닛폰햄전에서는 처음으로 연장 10회를 무볼넷 완봉 승리를 거둔다. 그 후 26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는 등 회복의 조짐도 보였다. 시즌 최종전에서는 10승째를 올려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했다.

최종적으로는 10승 4패로 작년보다 성적이 크게 떨어졌지만 평균자책점은 2년 연속의 1점대가 되는 1.87을 남겼고 완투와 완봉은 퍼시픽 리그에서 1위를 기록했다.

플레이 스타일 [편집]

  • 각도가 있는 오버드로우로부터 최고 속도 155km/h, 평균 140km/h대 후반의 속구와 최고 속도 141km/h, 평균 130km/h대 후반에 크게 변화하는 고속으로 슬라이더를 축으로 포크볼, 커브, 체인지업, 옆으로하는 슬라이더, 슈트 변화를 하는 투심 패스트볼을 던진다.
  • 2007년까지는 세로 슬라이더를 축으로 한 탈삼진률이 높은 투구 스타일이었지만 2008년부터는 변화가 작은 구종을 사용한 치게 해서 잡는 투구도 하게 되었다. 결정구에 던지는 슬라이더나 포크의 피타율은 낮지만 속구는 구속 정도의 효과를 올리고 있지 않아 노무라 가쓰야 감독도 속구의 질의 향상을 과제로 들고 있다. 사사구는 많은 편이지만 득점권에 주자가 있을 때 외각에의 제구는 뛰어나서 핀치에 강하다고 말해지고 있다. 2009년은 자신의 최고 성적을 올렸는데 그 요인의 하나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의 팀메이트였던 다르빗슈 유로부터 스트레이트의 쥠과 던지는 방법을 전수 받아 과제였던 스트레이트의 질도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이것에 의해 슬라이더 뿐만 아니라 스트레이트에서도 강타자에게 헛손질을 잡히게 되어 투구의 폭도 넓어진 것이 큰 요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 퀵 모션에도 과제를 안고 있어 2007년 등판할 시의 도루 허용 횟수인 28회는 12개 구단 중 최하위였다.
  • 견제구의 동작이 독특하고 일단 글러브로부터 볼을 꺼내 한 박자를 두고 나서 던진다.
  • 소프트뱅크와의 궁합이 잘 맞은 편이라 2011년까지의 통산 성적은 12승 3패를 기록했고 타 구단과 비교하면 실점이 가장 적은 편이다. 특히 2009년부터 2011년에 있어서는 통산 90과 2/3이닝을 던지면서 0.69의 평균자책점을 남겼고 1경기 18개의 탈삼진을 기록한 경기에서의 상대도 소프트뱅크였다. 반대로 세이부를 부담스런 상대로 여겨지고 있어 등판할 기회도 적었는데 입단 이후부터 2011년까지의 통산 성적은 4승 11패, 평균자책점이 4.28이며 라쿠텐을 제외한 퍼시픽 리그 5개 구단 중 유일하게 승리한 시즌은 없다.

상세 정보 [편집]

출신 학교 [편집]

  • 고마자와 대학 부속 도마코마이 고등학교

선수 경력 [편집]

프로팀 경력
국가 대표 경력

수상·타이틀 경력 [편집]

타이틀 [편집]

수상 [편집]

  • 신인왕(2007년)
  • 사와무라 에이지상 : 1회(2011년)
  • 최우수 투수 : 1회(2011년)
  • 월간 MVP : 7회(2009년 4월, 2009년 8월, 2010년 5월, 2011년 6월, 2011년 7월, 2011년 10월, 2012년 6월)
  • 최우수 배터리상 : 1회(2011년) [7]
  • 베스트 나인 : 1회(2011년)
  • 골든 글러브상 : 2회(2011년, 2012년)
  • ‘조지아혼’상 : 1회(2011년도 제11회)
  • ‘조지아혼’상 연간 대상 : 1회(2011년)

개인 기록 [편집]

투수 기록 [편집]

타격 기록 [편집]

기록 달성 경력 [편집]

기타 [편집]

  • 1경기 18탈삼진 : 2011년 8월 27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차전(클리넥스 스타디움 미야기) ※역대 2위
  • 연장 10회 무볼넷 완봉 승리 : 2012년 8월 26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21차전(일본 제지 클리넥스 스타디움 미야기) ※사상 최초
  • 올스타전 출장 : 5회(2007년 ~ 2009년, 2011년, 2012년)

등번호 [편집]

  • 18(2007년 ~ )
  • 15(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09년 WBC 등번호)

연도별 투수 성적 [편집]

연도 소속











상대
타자
투구
이닝





고의
사구
몸에
맞는 볼







평균
자책점
WHIP
2007년 라쿠텐 28 28 4 1 0 11 7 0 0 .611 800 186.1 183 17 68 2 7 196 10 1 83 79 3.82 1.35
2008년 25 24 5 2 1 9 7 1 0 .563 726 172.2 171 9 54 3 2 159 6 0 71 67 3.49 1.30
2009년 25 24 6 3 0 15 6 1 0 .714 771 189.2 170 13 43 0 7 171 3 0 51 49 2.33 1.12
2010년 20 20 8 1 2 11 6 0 0 .647 643 155.0 159 9 32 1 5 119 1 0 47 43 2.50 1.23
2011년 27 27 14 6 5 19 5 0 0 .792 866 226.1 171 8 27 0 5 241 7 0 35 32 1.27 0.87
2012년 22 22 8 3 4 10 4 0 0 .714 696 173.0 160 4 19 0 2 169 4 0 45 36 1.87 1.03
통산 : 6년 147 145 45 16 11 75 35 2 0 .682 4502 1103.0 1014 60 243 6 28 1055 31 1 332 306 2.50 1.14
  • 2012년 기준,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주석 [편집]

  1. 주간 베이스볼 《별책 춘계호》 - ‘제78회 선발 고교 야구 대회 완전 가이드’에서 참조.
  2. 駒苫・田中、最後に150キロ!/高校野球 닛칸 스포츠, 2005년 8월 20일자.
  3. スポーツナビ|プロ野球|ドラフト会議2006 トピックス プロの必須条件を兼ね備えた田中と堂上 高校生ドラフト直前リポート
  4. 일본 학생 야구 협회
  5. 닛칸 스포츠 web판 기사에서 전재.[1]
  6. 1경기 9이닝 던졌을 때의 볼넷의 평균 갯수를 뜻한다.
  7. 포수인 시마 모토히로와 함께 수상했다.

바깥 고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