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다 겐타
| 마에다 겐타 前田 健太 Kenta Maeda 히로시마 도요 카프 No.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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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정보 | |
|---|---|
| 국적 | |
| 출신지 | 오사카 부 센보쿠 군 다다오카 정 |
| 생년월일 | 1988년 4월 11일 (25세) |
| 신장 | 182 cm |
| 체중 | 73 kg |
| 선수 정보 | |
| 투구·타석 | 우투우타 |
| 수비 위치 | 투수 |
| 프로 입단 연도 | 2006년 |
| 드래프트 순위 | 고교생 드래프트 1순위 |
| 첫 출장 | 2008년 4월 5일 |
| 연봉 | 2억 1,000만 엔+인센티브(2013년) |
|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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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국가대표팀 | |
| WBC | 2013년 |
| 마에다 겐타 | |
|---|---|
| 일본어식 한자 표기: | 前田 健太 |
| 가나 표기: | まえだ けんた |
| 외래어 표기법 표기: | 마에다 겐타 |
| 통용 표기: | 마에다 켄타 |
| 로마자: | Kenta Maeda |
마에다 겐타(일본어:
별명은 마에켄(マエケン).
목차 |
인물 [편집]
프로 입단 전 [편집]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강요당했던 적은 없었고 오히려 바깥에 자주 놀러갈 정도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집 근처에 있는 소꿉 친구의 영향으로 현지 야구팀에서 야구를 시작하였고 야구 외에도 축구나 수영 등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다방면에서 활동하였는데 특히 2세 때부터 지도를 받은 적이 있는 수영에서는 전국 대회에 출전하여 우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중학교 시절에는 소년 야구팀에 소속되어 지역 대회에서의 우승을 이끌었고[1] 일본 선발팀에서는 세계 대회에 출전하여 우승에 기여하는 등 대회 MVP에도 선정되었다.
고교 명문으로 알려진 PL가쿠엔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1학년 여름 때부터 벤치에 들어가 오사카 부 대회인 오사카도인 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는 대회 사상 최초로 결승 재경기에 선발 등판하면서 완투승을 기록했다. 여름에 열린 제86회 고시엔 대회에서 첫 경기인 니혼 대학 제3 부설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선발 등판했지만 2회 도중 타구에 맞아 부상당하는 등 5이닝을 던져 피안타 8개와 3실점으로 경기 도중 강판당해 팀은 5대 8로 패했다.
1학년 여름 때와 같이 2학년 여름에도 지구 예선인 오사카도인 고등학교와 대결하면서 히라타 료스케, 쓰지우치 다카노부, 1학년 아래인 나카타 쇼 등과 서로 대전했다. 2학년 가을에 코치와 상담하는 등 혼자서 묵묵하게 노력해온 결과 겨울을 넘어 구속은 10km/h로 올라가면서 이후에는 140km/h 종반을 기록하게 되었다.
3학년 봄에는 긴키 지역 대표로 출전해 제78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 출전했다. 1차전 상대인 도치기 현립 모카 공업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17개의 탈삼진과 완투승리를 기록한 것 외에도 2차전인 아이치 게이세이 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는 완봉승을 따냈다. 준결승전인 나가사키 현립 세이호 고등학교와의 맞대결에 6실점을 기록하는 등 중도에 강판 당해 패전 투수가 되었다. 그러나 타격에도 정평이 나있어 3학년 여름에는 PL가쿠엔 고등학교의 4번 에이스를 맡았고 MAX 148km/h, 고교 통산 27홈런을 기록했다.
9월 25일에 있은 프로 야구 고교생 드래프트 회의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로부터 단독 1위 지명을 받았고 10월 13일에 계약금 8,000만 엔, 연봉 800만 엔(금액은 추정)으로 계약을 맺었다.[1]
프로 입단 후 [편집]
2007년 [편집]
당초에는 구단 방침에 의해 2군 캠프에서 시작하게 되었지만 거의 완성된 폼으로부터의 스트레이트나 세로로 갈라지는 커브를 던졌다는 평가를 받아 2월 20일에는 1군 스프링 캠프로 합류했다. 결국 1군으로의 등판하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같은 시즌에 개막 이후부터 2군에서의 선발 로테이션을 맡았다. 봄에는 새로운 변화구의 습득을 겸하고 있던 일도 있어 뚜렷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서서히 안정된 투구를 늘렸다. 그런 안정감이 평가를 받아 2군 올스타전인 프레시 올스타전에도 출전해 후반기가 시작되기 전에 1군에서의 연습에도 참가했다. 최종적으로는 모두 웨스턴 리그 최다인 118개의 피안타, 8패(5승 0S)를 기록하면서 결국 1군으로의 등판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투구 횟수 103과 2/3이닝은 팀내 최다 기록이었다. 또 타격에서는 3할 6푼 4리의 높은 타율을 기록했다.
2008년 [편집]
작년에 은퇴한 사사오카 신지가 착용했던 등번호 18번을 물려받았다. 4월 5일의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에서 1군 경기에서의 데뷔 후 처음으로 선발 등판했지만 5이닝을 던져 3실점이라는 기대 이하의 결과를 남겼다. 6월 18일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에서 8이닝을 2안타 무실점, 탈삼진 4개를 기록하는 호투(7이닝까지는 무안타)로 데뷔 후 첫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후 9월 20일의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는 첫 완봉승(무볼넷)도 기록했다.
9월 28일의 히로시마 시민 구장의 마지막 정규 경기(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21차전)에서는 가와시마 료로부터 데뷔 후 처음으로 홈런을 기록해 이 경기에서는 승리 투수로도 되면서 구 히로시마 시민 구장에서의 마지막 승리 투수가 되었다. 올스타전 이후에는 팀내 선발 로테이션으로 완전히 차지하면서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을 놓고 경쟁한 9월과 10월에 4승을 기록, 콜비 루이스에 뒤를 이어 팀내 2위인 9승(2패)을 올려 개막전에 본인이 목표로 한 시즌 5승을 큰 폭으로 올렸다. 시즌 종료 후의 계약 갱신에서는 약 3배로 증가된 2,500만 엔에 재계약을 맺었다.
2009년 [편집]
정규 시즌 개막 다음날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시즌 첫 승리 투수가 되었다. 21세의 생일이었던 4월 11일의 주니치전에서는 그 해에 새로 개장한 홈구장인 마쓰다 스타디움에서 자신의 두 번째인 무볼넷 완봉승을 기록했고, 팀도 신 구장에서의 첫 승리에 인도했다. 그러나 이후의 등판에서는 제구력 난조로 인해 5연패와 7연패를 한 차례씩 기록하는 등 패전 수가 크게 앞서 나가는 등 최종적으로 8승 14패라는 저조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 해 마에다의 득점지원률은 3.28이며 이것은 센트럴 리그의 규정 투구 횟수를 채운 선수들 중에서 가장 적었다. 거의 같은 평균자책점인데도 WHIP에서는 마에다에게 뒤지는 다테야마 쇼헤이(16승 6패), 세스 그레이싱어(13승 6패)와 비교해서 승수가 늘어나지 않은 이유의 하나로 호투를 해도 타선의 지원을 받지 않는 경기가 극단적으로 많았던 것이 예를 들 수가 있다.
29차례의 선발 등판으로 퀄리티 스타트(QS, 6이닝 3실점 이내)를 22번이나 기록해 퀄리티 스타트는 리그 4위였지만 그 22경기 중 15경기로 승리가 연결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요미우리, 주니치, 야쿠르트 등 상위 3팀과의 대결에서 평균자책점이 모두 2점대(선발에서는 마에다)로 호투하면서도 그 3팀에는 4승 9패로 패전 수가 앞섰다. 그러나 1년을 통하여 로테이션을 끝까지 지키는 등 팀내 선두이자 리그 3위인 193투구 이닝을 기록했다. 5이닝을 가지지 않고 강판된 경기는 불과 1경기 뿐이었다. 피홈런은 배로 증가되었지만 리그 4위의 147탈삼진, 볼넷은 불과 29개, WHIP는 작년부터 오르면서 항상 안정된 투구를 보여주었다. 구단에서도 마에다의 투구 내용을 높게 평가하고 있어 시즌 종료 후에 있은 계약 갱신에서는 4,800만 엔으로 갱신되었다.
2010년 [편집]
개막전에서의 선발을 맡게 될 오타케 간의 부상으로 의한 출발이 늦어졌기 때문에 자신의 첫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아 주니치전에서 8이닝을 1실점으로 호투해 승리 투수가 되었다. 작년에 이어 타선의 지원을 받지 않아 고민했지만 슬라이더의 구부러짐, 스트레이트의 구속도 모두 향상해 피칭의 안정성이 현격하게 향상되었다. 개막 직후부터 평균자책점이 1점 대를 유지하여 순조롭게 성적을 올리면서 교류전에서는 팀이 극심한 성적 부진을 겪고 있는 와중에 12개 구단에서의 평균자책점 1.05를 기록했다. 전반기에서는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해 올스타전에서는 양대 리그의 최다 득표를 얻어 첫 출전했다. 후반기에는 피로가 겹쳐 약간의 컨디션이 떨어졌지만 최종 성적은 15승 8패와 평균자책점 2.21, 탈삼진 174개로 센트럴 리그 11년 만의 시즌 최다 기록이자 최연소이면서 구단 역사상 최초로 투수 부문에서 3관왕 타이틀을 차지함과 동시에 센트럴 리그의 투수로서는 6년 만에 최고의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와무라 에이지상을 수상했다.[2] 투구 이닝 215와 2/3이닝은 12개 구단 중 최다 기록이 되었다.
2011년 [편집]
시즌 전반기에는 극도의 피로감으로 인해 불안정한 투구가 있었지만 이후에는 차츰 안정을 되찾아 투구 이닝은 개인 최다 기록을 수립해 2년 연속으로 최다 탈삼진 타이틀을 차지했다. 마지막 등판이 된 10월 25일의 야쿠르트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는 9회 1사까지 노히트 노런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1아웃 상황에서 후지모토 아쓰시에게 첫 안타를 허용한 것을 시작으로 다음 타자인 하타케야마 가즈히로에게 동점타를 허용, 계속되는 후쿠치 가즈키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는 등 결국에는 패전 투수가 되었다.
2012년 [편집]
4월 6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선발 등판해 9이닝 동안 볼넷 2개만 내주며 6개의 탈삼진과 무실점으로 호투하여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일본 프로 야구에서의 노히트 노런은 2006년에 야마모토 마사 이후 6년 만에 74번째(85번째)이자 센트럴 리그에서는 35번째(38번째)의 쾌거였다. 또, 히로시마의 투수로서는 1999년 사사오카 신지 이래 13년 만에 달성했다.
올스타전에서는 팬 투표로 선정되었고 제2차전(마쓰야마 주오 공원 야구장)에서 선발 등판해 3이닝 동안 1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는 등의 활약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고 데뷔 후 처음으로 올스타전 MVP를 수상했다. 투수로서의 MVP 수상은 2004년 제1차전의 마쓰자카 다이스케 이래 8년 만의 일이자 히로시마의 투수로서는 1980년 제3차전의 에나쓰 유타카가 차지한 이후 32년 만의 일이다.
플레이 스타일 [편집]
스리쿼터로부터 평균 구속 약 143km/h,[3] 최고 속도 152km/h의 스트레이트와 낙차가 있는 100 km/h대의 드롭, 슬라이더, 서클 체인지업, 투심 속구를 무기로 한다. 포크도 던질 수 있지만 고교 졸업 후에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 플레이 스타일은 고등학교 선배인 구와타 마스미와 닮아 있어 ‘구와타 2세’라고 불린다. 프로 입단 후 당초에 슬라이더는 직구와 구속 차이가 있어 변화도 컸지만 프로 1년차의 오프에는 사사오카 신지로부터 쥐는 곳을 전수받아 작은 변화로 130km/h 전후를 기록하게 되었다.
리듬이 좋은 투구로 인해 포수에게서 송구가 오면 바로 투구 모션에 들어간다. 폴로스루가 독특하고 한 차례의 볼을 끝까지 던진 뒤 이미 한 차례 정도 작게 팔을 흔드는 동작을 취한다. 가는 체격을 갖고 있어 공의 갯수가 100개를 넘어도 140km/h 중반의 직구를 연발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을 가지는 등 투구를 할 때는 마치 귀신과 같은 형상으로 타자를 향해 간다. 투수 부문 3관왕을 석권한 2010년에 탈삼진률(7.26, 리그 6위)은 뛰어날 정도의 수치는 아니지만 풍부한 지구력으로 2006년의 미우라 다이스케와 가와카미 겐신 이래가 되는 투구 이닝이 215이닝을 넘기면서 탈삼진을 양산했다. 또 타격이나 수비면에도 우수하다.
상세 정보 [편집]
출신 학교 [편집]
- PL가쿠엔 고등학교
선수 경력 [편집]
- 프로팀 경력
- 히로시마 도요 카프(2007년 ~ )
- 국가 대표 경력
-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국가대표팀
수상·타이틀 경력 [편집]
타이틀 [편집]
- 다승왕 : 1회(2010년)
- 최우수 평균 자책점 : 2회(2010년, 2012년)
- 최다 탈삼진 : 2회(2010년, 2011년)
수상 [편집]
- 최우수 투수 : 1회(2010년)
- 사와무라 에이지상 : 1회(2010년)
- 최우수 배터리상 : 1회(2010년)[4]
- 월간 MVP : 2회(2010년 5월, 2012년 6월)
- 베스트 나인 : 1회(2010년)
- 골든 글러브상 : 2회(2010년, 2012년)
- JA전농 Go·Go상 : 1회(최다 탈삼진상 : 2011년 6월)
- ‘조지아혼’상 : 1회(2012년도 제1회)
- 올스타전 MVP : 1회(2012년 제2차전)
- 올스타전 베스트 피처상 : 1회(2010년 제1차전)
개인 기록 [편집]
투수 기록 [편집]
- 첫 등판·첫 선발 : 2008년 4월 5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2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5이닝 3실점
- 첫 탈삼진 : 상동, 4회초에 요시무라 유키로부터
- 첫 승리·첫 선발 승리 : 2008년 6월 18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4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8이닝 2안타 무실점
- 첫 완투 승리·첫 완봉 승리 : 2008년 9월 20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23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타격 기록 [편집]
- 첫 타점 : 2008년 7월 5일,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7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3회말에 다테야마 쇼헤이로부터 우익수 희생플라이
- 첫 안타 : 2008년 7월 11일, 대 한신 타이거스 9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7회초에 와타나베 료로부터 좌전 안타
- 첫 홈런 : 2008년 9월 28일,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21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4회말에 가와시마 료로부터 좌월 솔로 홈런
기타 [편집]
- 올스타전 출장 : 2회(2010년, 2012년)
- 노히트 노런 : 2012년 4월 6일, 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1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일본 프로 야구 역대 74번째.
등번호 [편집]
- 34(2007년)
- 18(2008년 ~ )
연도별 투수 성적 [편집]
| 연도 | 소속 | 등 판 |
선 발 |
완 투 |
완 봉 |
무 볼 넷 |
승 리 |
패 전 |
세 이 브 |
홀 드 |
승 률 |
상대 타자 |
투구 이닝 |
피 안 타 |
피 홈 런 |
볼 넷 |
고의 사구 |
몸에 맞는 볼 |
탈 삼 진 |
폭 투 |
보 크 |
실 점 |
자 책 점 |
평균 자책점 |
WHIP |
|---|---|---|---|---|---|---|---|---|---|---|---|---|---|---|---|---|---|---|---|---|---|---|---|---|---|
| 2008년 | 히로시마 | 19 | 18 | 1 | 1 | 1 | 9 | 2 | 0 | 0 | .818 | 462 | 109.2 | 103 | 10 | 35 | 1 | 3 | 55 | 0 | 1 | 43 | 39 | 3.20 | 1.26 |
| 2009년 | 29 | 29 | 3 | 1 | 1 | 8 | 14 | 0 | 0 | .364 | 795 | 193.0 | 194 | 22 | 29 | 1 | 3 | 147 | 2 | 0 | 82 | 72 | 3.36 | 1.16 | |
| 2010년 | 28 | 28 | 6 | 2 | 1 | 15 | 8 | 0 | 0 | .652 | 848 | 215.2 | 166 | 15 | 46 | 3 | 7 | 174 | 2 | 0 | 55 | 53 | 2.21 | 0.98 | |
| 2011년 | 31 | 31 | 4 | 2 | 0 | 10 | 12 | 0 | 0 | .455 | 864 | 216.0 | 178 | 14 | 43 | 0 | 6 | 192 | 4 | 0 | 61 | 59 | 2.46 | 1.02 | |
| 2012년 | 29 | 29 | 5 | 2 | 0 | 14 | 7 | 0 | 0 | .667 | 820 | 206.1 | 161 | 6 | 44 | 1 | 9 | 171 | 2 | 0 | 46 | 35 | 1.53 | 0.99 | |
| 통산 : 5년 | 136 | 135 | 19 | 8 | 3 | 56 | 43 | 0 | 0 | .566 | 3789 | 940.2 | 802 | 67 | 197 | 6 | 28 | 739 | 8 | 1 | 287 | 258 | 2.47 | 1.06 | |
- 2012년 기준,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주석 [편집]
- ↑ 가 나 “2008年度広島東洋カープ年鑑”, 《Sponich Annex》, 2009년 7월 20일 작성.
- ↑ マエケンが沢村賞、球団6人目
- ↑ 《2011プロ野球オール写真選手名鑑》. 일본 스포츠 기획 출판사, 183쪽. ISBN 978-4-930942-98-2
- ↑ 포수인 이시하라 요시유키와 함께 공동 수상했다.
바깥 고리 [편집]
- (일본어) 공식 블로그
- (영어) 일본 프로 야구 경력 통계 - Japanesebaseba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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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와무라 에이지상 수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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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0년대 | |
| 1950년대 | |
| 1960년대 | |
| 1970년대 | |
| 1980년대 | |
| 1990년대 | |
| 2000년대 | |
| 2010년대 | |
|
※상기 이외의 연도는 수상자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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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 리그 베스트 나인 (투수 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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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년대 | |
| 1960년대 | |
| 1970년대 | |
| 1980년대 | |
| 1990년대 | |
| 2000년대 | |
| 2010년대 | |
|
센트럴 리그 골든 글러브상 (투수 부문) |
|
|---|---|
| 1970년대 | |
| 1980년대 | |
| 1990년대 | |
| 2000년대 | |
| 2010년대 |
2010: 마에다 겐타 | 2011: 아사오 다쿠야 | 2012: 마에다 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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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부터 1985년까지는 다이아몬드 글러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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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3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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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독 |
88 야마모토 고지
|
| 코치 | |
| 투수 | |
| 포수 | |
| 내야수 | |
| 외야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