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다 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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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다 겐타
前田 健太

Kenta Maeda
히로시마 도요 카프 No.18
20110419 Kenta Maeda, pitcher of the Hiroshima Toyo Carp, at Yokohama Stadium.JPG

투구 중인 마에다 겐타
(2011년 4월 19일, 요코하마 스타디움)

기본 정보
국적 일본 일본
생년월일 1988년 4월 11일(1988-04-11) (26세)
출신지 오사카 부 센보쿠 군 다다오카 정
신장 182 cm
체중 81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2006년
드래프트 순위 고교생 드래프트 1순위
첫 출장 2008년 4월 5일
연봉 2억 8,000만 엔+인센티브(2014년)
경력
일본 국가대표팀
WBC 2013년
마에다 겐타
일본어식 한자 표기: 前田 健太
가나 표기: まえだ けんた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 마에다 겐타
통용 표기: 마에다 켄타
로마자: Kenta Maeda

마에다 겐타(일본어: 前田 健太 (まえだ けんた), 1988년 4월 11일 ~ )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이며, 현재 센트럴 리그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소속 선수(투수)이다.

별명은 마에켄(マエケン).

인물[편집]

프로 입단 전[편집]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강요당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바깥에 자주 놀러갈 정도였다.[1] 초등학교 3학년 때 자신의 집 근처에 있는 소꿉 친구의 영향으로 현지 야구팀인 ‘기시와다 이글렛’에서 야구를 시작했고 6학년 때는 서일본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실로 31의 타이틀을 획득했다. 초등학생 때의 마에다는 그 외에도 축구수영 등도 하여[2] 특히 2살 때부터 배웠던 수영에서는 서일본 대회에서 우승한 경력도 갖고 있다.[3] 중학교 시절에는 소년 야구팀 ‘다다오카 보이즈’에 소속돼 서일본 대회에서 우승을 이끌었다.[4] 일본 선발에서는 세계 대회에 출전하여 팀의 우승에 기여하는 등 MVP에 선정되었고 또한 다다오카 보이즈 시절에는 다카라즈카 보이즈와 자주 상대하여 포수를 맡았던 다나카 마사히로를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1]

프로 선수가 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PL가쿠엔 고등학교에 진학, 1학년 여름부터 벤치에 들어갔다. 오사카 부 대회(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오사카 대회)에서는 오사카도인 고등학교와의 대회 사상 최초로 결승 재경기에서 선발로 나와 완투승을 거두었다. 제86회 하계 고시엔 대회(제86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첫 상대인 니혼 대학 제3 부설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선발 등판했는데 2회 도중 오른쪽 발목 부근에 타구에 맞아 부상당하는 등 5이닝을 던져 8개의 피안타와 3실점으로 경기 도중 강판돼 팀도 5대 8로 패했다.

1학년 여름 때와 마찬가지로 2학년 여름에도 오사카도인 고등학교와 지구 예선에서 맞대결했는데 한 학년 위인 히라타 료스케, 쓰지우치 다카노부, 한 학년 아래인 나카타 쇼 등과 직접 상대했다. 이 해에 마에다는 타석에서 쓰지우치의 속구를 오른쪽 팔꿈치에 맞았고 직후의 투구에는 히라타에게 역전 2점 홈런을 허용했다. 최종 이닝에 쓰지우치로부터 홈런을 날렸지만 미치지 못한 채 2대 4로 패했다. 2학년 가을엔 코치와 상담하여 혼자서 묵묵히 달리기를 한 결과 겨울을 넘기고서는 구속이 10km/h로 상승하면서 이후에는 140km/h 후반을 기록하게 됐다.[5]

3학년 봄에는 긴키 지역 대표로 제78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 출전했는데 1차전 상대인 도치기 현립 모카 공업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17개의 탈삼진과 완투승리를 거둔 것 외에 2차전 경기인 아이치 게이세이 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는 완봉승을 따냈다. 준준결승전인 아키타 상업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는 홈스틸도 보여줬다. 그러나 준결승전 상대인 나가사키 현립 세이호 고등학교에게 6실점을 기록하는 등 중도에 강판돼 무념의 패배를 당했다. 3학년 여름에는 4번 에이스를 맡아 MAX 148km/h를 기록,[6] 고교 통산 27개의 홈런을 쳤지만[7] 오사카 부 대회의 준준결승에서 패했다. 이로 인해 춘계 고시엔에서의 기억은 사라져 버렸지만 한편으론 프로에 들어가 되돌아보는 기분으로 바꿀 수 있었다고 한다.[1]

9월 25일에 있은 프로 야구 고교생 드래프트 회의에서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로부터 단독 1순위 지명을 받았고 10월 13일에 계약금 8,000만 엔, 연봉 800만 엔(금액은 추정치)으로 계약을 맺었다.[4] 담당 스카우트는 미야모토 요지로.

프로 입단 후[편집]

2007년[편집]

당초에는 구단 방침에 의해 2군 캠프에서 시작했지만 거의 완성된 폼에서의 떠오르는 직구나 아래로 떨어지는 커브를 던졌다는 평가를 받아 2월 20일에 1군 스프링 캠프로 합류했다. 1군에서의 등판은 거의 없었지만 그 시즌에 개막 이후부터 2군의 선발 로테이션을 맡았다. 봄에는 새로운 변화구 습득을 겸하고 있던 일도 있어 뚜렷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서서히 안정감을 늘렸다. 그런 안정감이 평가를 받아 2군 올스타전인 프레시 올스타전에도 출전했고 후반기가 시작되기 전에 올스타전 휴무 때는 1군의 연습에도 참가했다. 최종적으로는 모두 웨스턴 리그 최다인 118개의 피안타, 8패(5승 0세이브)를 기록하면서 결국 1군 등판은 없었지만 투구 이닝 103과 2/3이닝은 팀내 최다 기록이었다. 또 타격에서는 3할 6푼 4리의 높은 타율을 남겼다.

2008년[편집]

작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사사오카 신지로부터 에이스 넘버인 등번호 18번을 물려받았다. 당시엔 한 번도 1군에 출전한 적이 없이 프로로서 실적이 전무했던 마에다가 에이스 넘버를 이어받은 것에는 팬들도 마에다 자신도 놀랄 뿐이었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구단으로부터의 터무니없는 기대의 표시이기도 했다. 4월 5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에서 첫 등판과 동시에 첫 선발 출전을 해서 5이닝 동안 3실점이라는 결과를 남겼다. 6월 18일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에서 8이닝을 2피안타 무실점, 탈삼진 4개를 기록하는 호투(7이닝까지는 무안타)로 프로 데뷔 후 첫 승리 투수가 되었다. 9월 20일의 주니치 드래곤스전에서는 첫 완봉승(무볼넷)도 기록했다.

9월 28일의 히로시마 시민 구장에서의 마지막 정규 경기(vs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21차전)에서는 가와시마 료로부터 첫 홈런을 기록해 이 경기에서는 승리 투수로도 되면서 구 히로시마 시민 구장에서의 마지막 승리 투수가 되었다. 올스타전 이후에는 팀내 로테이션에 완전히 차지하면서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을 놓고 경쟁을 전개한 9월과 10월에 4승을 기록, 콜비 루이스에 이어 팀내 2위이자 타이 기록인 9승(2패)을 올려 개막전에 자신이 목표로 했던 시즌 5승을 큰 폭으로 끌어올렸다. 시즌 종료 후의 계약 갱신에서는 약 3배로 늘어난 2,500만 엔으로 갱신했다.[8]

2009년[편집]

마에다 겐타(2009년)

개막 2경기째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 선발로 나와 시즌 첫 등판에 첫 승리 투수가 되었다. 21세의 생일이었던 4월 11일 주니치전에서는 그 해에 새로 개장한 히로시마의 홈구장 마쓰다 스타디움에서 자신의 두 번째인 무볼넷 완봉승을 기록했고, 팀도 신 구장에서의 첫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이후의 등판에서는 5연패와 7연패를 한 차례씩 기록하는 등 패전 수가 크게 앞서 나가는 등 최종적으로 8승 14패라는 저조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29경기에 등판하여 그중 22경기에서 퀄리티 스타트(선발에서 6이닝 이상을 던져 3실점 이내)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22경기 중에서 승리 투수가 된 것은 고작 7경기였다. 이 사실로도 히로시마가 마에다의 등판 경기에서 점수를 따지 못한 것은 명확했다. 마에다의 14패는 거의 접전에 의한 것으로, 그 원인을 ‘이기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과 ‘상대에게 던진 것에서 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경기 전체가 아닌 승부처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그 후의 투구에 활용했다. 더욱이 긍정적인 성격이 결과가 나오지 않는 와중에도 심리적인 압박감에 지지않는 기분을 유지할 수 있었던 요인이라고 말한다.[1] 이 해의 요미우리·주니치·야쿠르트의 상위 3팀과의 대결에서는 평균 자책점이 모두 2점대(선발에서는 마에다뿐이다)이면서도 4승 9패로 패전 수가 더 많았다.

그러나 2009년 시즌을 통해서 로테이션을 끝까지 지켜내 팀내 1위이자 리그 3위인 193 투구 이닝을 기록했고 5회를 채우지 못하고 강판됐던 경기는 1경기에 불과했다. 피홈런은 배로 늘었지만 리그 4위인 탈삼진 147개, 볼넷은 29개에 불과했고 WHIP도 작년보다 향상돼 항상 안정된 투구를 보였다. 구단도 투구 내용을 높이 평가하고 있어서 오프의 계약 갱신에서는 배에 가까운 4,800만 엔으로 갱신했다.

2010년[편집]

개막전 선발을 맡을 것으로 보였던 오타케 간이 부상당한 것으로 인해 나오는 것이 늦어지면서 자신의 첫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아 주니치와의 경기에서 등판했는데 8이닝을 1실점에 막아내 승리 투수가 되었다. 작년에 이어 득점 지원율이 리그 하위 2위에 해당되는 3.38을 나타내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부담을 겪었지만 슬라이더의 꺾임과 직구 구속이 모두 향상돼 투구의 안정성이 현격히 향상됐다. 개막 이후부터 평균 자책점 1점 대를 유지하여 순조롭게 승리를 쌓았고 교류전에서는 12개 구단 중 1위인 1.05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했다. 전반기에서는 자신의 첫 두 자릿수 승리 기록을 달성하였고 올스타전에서도 팬 투표부문 양대 리그 최다 득표 및 선수간 투표 선출로 첫 출전을 이뤘던 1차전(후쿠오카 Yahoo! JAPAN 돔)에서 올스타전의 첫 선발 승리를 거두었다. 5월 15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의 경기(마쓰다 스타디움)에서는 다르빗슈 유와 치열한 투수전을 펼쳐 다르빗슈는 8이닝 무실점, 마에다는 9이닝 무실점의 완봉승을 따냈다. 9회말에 아카마쓰 마사토의 끝내기 안타로 히로시마가 1대 0으로 승리하여 일본 야구계의 에이스와의 격렬한 투구를 압도한 마에다가 승리 투수가 되었다. 경기 종료 후에 다르빗슈가 자신의 블로그에서 마에다의 이름을 언급하며 칭찬하는 내용을 쓴 사실이 화제가 되었다.

최종 성적은 15승 8패, 평균 자책점 2.21, 탈삼진 174개를 남겨 센트럴 리그에서는 11년 만에 사상 최연소이자 히로시마 구단 사상 최초의 투수 부문 3관왕 타이틀과 센트럴 리그의 투수로서는 6년 만이 되는 사와무라 에이지상을 처음으로 수상했다.[9] 0.98로 단지 한 명을 자른 1.00의 WHIP과 투구 이닝 215와 2/3이닝은 12개 구단 가운데 1위가 되었다. 마에다 자신은 비약에의 분기점으로서 4월 8일 야쿠르트와의 경기에서 3회말에 다나카 히로야스를 스탠딩 삼진으로 잡은 1구를 들고 있다.[10]

2011년[편집]

타 구단으로부터의 연구가 진행된 것과 몇 년 사이에 근속 피로가 생겨난 탓인지 전반기에는 불안정한 투구가 눈에 띠었으나 그 이후에는 서서히 컨디션을 회복하고 투구 이닝은 자신의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등 2년 연속으로 최다 탈삼진 타이틀을 획득했다. 시즌 최종 등판이 된 10월 25일 야쿠르트와의 경기(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9회 1사까지 노히트 노런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1사에서 후지모토 아쓰시에게 첫 안타를 허용하는 바람에 하타케야마 가즈히로의 2루 땅볼로 1대 1 동점이 되었고 이어지는 후쿠치 가즈키에게 끝내기 안타를 허용해 패전 투수가 되었다.[11][12]

2012년[편집]

4월 6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선발 등판해 볼넷 2개만 내주며 호투한 끝에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13] 일본 프로 야구에서의 노히트 노런은 2006년의 야마모토 마사 이래 6년 만에 74번째(85번째)이며 센트럴 리그 35번째(38번째)의 쾌거였다. 또한 히로시마의 투수로서는 1999년 사사오카 신지 이래 13년 만의 쾌거를 달성했다. 올스타전에 팬 투표로 선출돼 2차전(마쓰야마 주오 공원 야구장)에서 선발 등판해 3이닝을 1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아내 승리 투수가 되어 첫 MVP를 수상했다. 투수의 MVP 수상은 2004년 1차전의 마쓰자카 다이스케 이래 8년 만이며 히로시마의 투수로서는 1980년 3차전의 에나쓰 유타카 이래 32년 만이다. 9월 8일 요코하마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완봉승을 따냈고 시즌 최종전이 된 요코하마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는 9이닝을 1실점으로 완투해서 시즌 14승째를 올렸다.

최종적으로 이 해에는 자신의 최고 평균 자책점 1.53을 기록하여 1955년의 하세가와 료헤이를 제치고 구단 역사상 최고의 평균 자책점 기록을 수립했다. 이로써 자신의 두 번째인 최우수 평균 자책점 타이틀을 획득했다.

2013년[편집]

제3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일본 국가대표팀 선수로 발탁돼 등번호는 ‘20’번이 되었다. 다나카 마사히로와 함께 ‘더블 에이스’로서 기대를 모았지만 예년의 시즌 종료 후부터도 빨리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대회 전에는 오른쪽 어깨 부상 등으로 부진에 시달리면서 우려를 샀지만 대회가 시작되자 중화인민공화국, 네덜란드, 푸에르토리코를 상대로 3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총 15이닝을 던지고 2승 1패, 평균 자책점 0.80, 탈삼진 18개의 성적으로 대회 우수 선수로 선정됐다.[14] 도쿄 스포츠에 의하면 그 제구력의 높이가 미국 언론에서는 그레그 매덕스의 이름에서 따온 ‘마에덕스’(マエダックス)라고도 불렸다.[15]

정규 페넌트레이스에서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영향으로 개막전 선발 투수는 브라이언 벌링턴에게 양보했다. 개막 이후부터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여 한때는 평균 자책점 0.30이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기록했지만 선발 예정이었던 4월 20일 요미우리전의 경기 개시전에 오른쪽 팔꿈치 삼두근 근막염으로 등판을 피하면서 이튿날인 21일에 등록이 말소됐다. 그 후 교류전까지의 기간 중 오른쪽 옆구리의 위화감 등도 더해지면서 등록 말소와 복귀를 반복해 5이닝을 던지지 못하고 부상 강판되는 일도 겹쳐져 평균 자책점도 2점대 후반까지 떨어졌다. 교류전이 끝나고 리그가 재개돼 스스로 안타를 때린 6월 23일의 야쿠르트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도바야시 쇼타의 역전 끝내기 2점 홈런으로 패전은 면했고 6월 30일 한신전(한신 고시엔 구장)에서는 생애 첫 노와인드업으로 투구해 9이닝 무볼넷 무실점, 그리고 탈삼진 9개의 호투로 통산 9번째의 완봉 승리(무볼넷에서의 완봉은 4년 만의 3번째)를 따냈는데 자신으로서는 35일 만의 승리 투수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고 나서 맞이한 68번째의 평화 기념일인 8월 6일, 홈구장에서 열린 한신과의 경기에 에이스로서 5일 쉬고 선발 등판해 111개의 공을 던져 7이닝 무실점과 6개의 탈삼진을 막아냈다. 히로시마에 있어서 특별한 날에 히로시마에서 열린 경기에서 9회말의 마루 요시히로의 희생 플라이에 의한 1대 0의 극적인 끝내기 승리를 연출했다. 히로시마가 8월 6일에 팀 연고지 히로시마에서 승리하는 것은 55년 만이었다.

후반기에는 ‘팀의 16년 만에 A클래스 진입을 목표로 엔진 전개’라는 선언대로 대활약을 보였는데 8월에는 4경기에 등판해 불과 1실점으로 월간 평균 자책점이 0.30이라는 좋은 성적을 남겼다. 팀의 첫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퍼스트 스테이지 1차전인 한신전에 등판하여 7이닝 1실점의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되었지만 파이널 스테이지 2차전인 요미우리전에서는 통한의 3점 홈런을 맞아 3실점을 기록하여 패전 투수가 되었다.

시즌 종료 후의 계약 갱신에서는 연봉 2억 8,000만 엔의 단년 계약으로 서명해 장래에 메이저 리그에 도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16]

플레이 스타일[편집]

투구를 하는 마에다 겐타의 모습(동영상)
투구 연습 중인 마에다

스리쿼터로부터 평균 구속 약 146km/h,[17] 최고 속도 153km/h[18]속구와 낙차가 큰 110km/h대의 드롭, 여러 종류의 슬라이더,[19] 서클 체인지업, 투심(슈토라고 표기하는 언론도 있지만 본인은 투심으로 의식하고 있다고 한다[19])을 무기로 한다. 포크볼도 던질 수는 있지만 고교 졸업 후에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19] 그런 플레이 스타일은 고등학교 선배인 구와타 마스미와 닮았다는 이유로 ‘구와타 2세’(桑田二世)라고 불린다.[20] 프로에 입문한 초창기의 슬라이더는 직구와 구속차이가 있어서 변화도 컸지만 1년째의 오프 시즌엔 사사오카 신지로부터 공 잡는 법을 전수받고[21] 작은 변화로 130km/h전후를 기록하게돼 변화의 대소나 완급, 종횡의 궤도를 구별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19]

리듬이 좋은 투구로, 포수로부터 공을 받으면 곧바로 투구모션에 들어간다. 팔로스루가 독특해서 한번 공을 던진 후 한번 더 작게 팔을 흔드는 동작을 한다. 호리호리한 체격이면서 투구수 100개를 넘어도 140km/h 중반의 공을 연속으로 던질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을 갖춰 2010년부터 3년 연속 투구 이닝이 200이닝을 넘기는 체력을 자랑한다. 4, 5일을 쉬며 등판할 수 있는 터프함도 갖추고 선발 로테이션에 정착한 이후에는 매년 30경기 전후의 선발 등판을 기록하고 있다. 야마다 히사시요다 쓰요시는 “지금 센트럴 리그에서 에이스라고 부를 수 있는 선수는 마에다밖에 없다”라고 평가했다. 타격이나 수비에도 뛰어나며 특히 번트 처리에는 정평이 나있다.[22]

연습 투구는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 편인데 이에 대해서 마에다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혔다.

연습 투구를 하고싶다는 사람도 있고, 각각의 의견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 경우는 던지지 않는 편이 시즌을 편하게 들어갈 수 있다. 특히 연습 투구를 하지 않아도 어깨의 체력에는 자신이 있고 오프 시즌에서 1, 2개월 쉬는 정도로 폼을 잊어버린다든가, 몇 백개의 공을 던지지 않으면 떠올릴 수 없는 듯한 어설픈 투구 폼을 하지 않는다. 조정하는 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던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23]

상대하기 어려운 타자로 사카모토 하야토를 꼽았는데 1988년 동갑내기이자 간사이 지방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친분이 있는 편이다.

마에켄 체조[편집]

경기 중간이나 워밍업에서 하고 있는 일명 ‘마에켄 체조’(マエケン体操)[24](또는 ‘마에켄 댄스’라고도 불린다)는 PL가쿠엔 고등학교에 한카이 병원에서 트레이닝을 담당하고 있던 아라키 가즈키(지바 롯데 마린스 이학 요법사, 2009년 ~ 2010년)로부터 배운 것으로, 견갑골을 풀어 공을 던지기 위한 신호를 보내기 위해 하는 준비 운동이라고 한다. 마에다는 지금도 아라키와 친분이 있어 오프가 끝나는 정월에는 아라키와 같이 짜서 메뉴를 준비해 한카이 병원에서 1년의 트레이닝을 시작하기도 한다. 이 체조는 데즈카 가즈시가 1995년에 고안한 ‘서클 스크래치’[25]라는 체조와 아주 비슷하다. ‘서클 스크래치’는 《스포츠 트레이닝이 바뀌는 책》(1996년 다카라지마샤 발행)에서 발표되었다.

에피소드[편집]

  • 매우 오기가 있는 성격으로, 히로시마의 트레이너에게서는 “마에켄보다 ‘마케헨’쪽이 맞다”라고 평가받았다.[26] 또한 뉴욕 양키스다나카 마사히로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소속했을 때에 먼저 1군에서 활약하고 있었던 것을 분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론 자극이 되었다고 한다.[1]
  • 중학교 시절에는 지각이나 수업 도중에 조는 일이 많았고 고등학교에서는 교사에게 존댓말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꾸중들은 적도 있었다고 하지만 프로에 입단하면서 인간적으로 성장했다. 2009년 8월 6일, 그때까지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날이 있는지조차 몰랐지만 그 날 처음으로 원폭돔에 찾아가서 묵념했다는 것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프로 야구 선수로서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기쁘다고 말했다.[1]
  • 2012년 1월 1일에 도카이 TV 출신의 프리 아나운서 나루시마 사호와 교제를 시작했고 같은 해 12월 9일에 결혼 피로연을 가졌다. 이듬해 2013년 9월에 딸이 탄생했다.
  • 존경하는 선수는 텍사스 레인저스다르빗슈 유라고 공언했다. 2011년 시즌이 본인 또는 주변의 기대에 반하는 좋지 않은 성적으로 끝낸 것에 대해 ‘에이스’로서의 자부심과 양쪽 다리의 부상을 안고 그것을 팀 동료 외엔 주변에 숨기면서 등판했다는 사실을 2012년 2월 21일에 방송된 《스포루토》에서 밝혔다. 그 사실을 오로지 한 명이던 다르빗슈에게서 들켰던(‘부상입었지?’라는 이야기를 들었음) 일로 존경을 표하게 되었다. 싫어했던 웨이트 트레이닝도 다르빗슈의 영향으로 2012년 스프링 캠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임하게 됐다고 한다. 2010년 5월에 있은 센트럴·퍼시픽 교류전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의 경기에서 맞붙었을 때 다르빗슈는 마에다의 타석에 들어섰을 때 거의 변화구를 던져 그 궤도를 체감시키는 배려를 보였다.
  • 소치 동계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부문 남자 금메달리스트 하뉴 유즈루(전일본공수)는 동경하는 선수로서 마에다의 이름을 언급했다.

상세 정보[편집]

출신 학교[편집]

  • PL가쿠엔 고등학교

선수 경력[편집]

프로팀 경력
국가 대표 경력

수상·타이틀 경력[편집]

타이틀[편집]

수상[편집]

개인 기록[편집]

투수 기록[편집]

타격 기록[편집]

기록 달성 경력[편집]

기타[편집]

등번호[편집]

  • 34(2007년)
  • 18(2008년 ~ )

연도별 투수 성적[편집]

연도 소속











상대
타자
투구
이닝





고의
사구
몸에
맞는 볼







평균
자책점
WHIP
2008년 히로시마 19 18 1 1 1 9 2 0 0 .818 462 109.2 103 10 35 1 3 55 0 1 43 39 3.20 1.26
2009년 29 29 3 1 1 8 14 0 0 .364 795 193.0 194 22 29 1 3 147 2 0 82 72 3.36 1.16
2010년 28 28 6 2 1 15 8 0 0 .652 848 215.2 166 15 46 3 7 174 2 0 55 53 2.21 0.98
2011년 31 31 4 2 0 10 12 0 0 .455 864 216.0 178 14 43 0 6 192 4 0 61 59 2.46 1.02
2012년 29 29 5 2 0 14 7 0 0 .667 820 206.1 161 6 44 1 9 171 2 0 46 35 1.53 0.99
2013년 26 26 3 1 1 15 7 0 0 .682 690 175.2 129 13 40 1 2 158 1 0 46 41 2.10 0.99
2014년 27 26 1 1 0 11 9 0 0 .550 746 187.0 164 12 41 1 2 161 4 1 61 54 2.60 1.10
통산 : 7년 189 187 23 10 4 82 59 0 0 .582 5225 1303.1 1095 92 278 8 32 1058 15 2 394 353 2.44 1.05
  • 2014년 기준,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주석[편집]

  1. 《최강 세대 1988 : 다나카 마사히로, 사이토 유키, 사카모토 하야토, 마에다 겐타·········· 11명의 고백》
  2. 고탄다 야스히코(2010년 10월 16일), ‘マエケン エースへの道<上>スポーツ万能少年’ - 주고쿠 신문
  3. 다구치 신이치로(2006년 4월 2일), ‘前田が本盗!PL7年ぶり4強/センバツ’ - 닛칸 스포츠 오사카판
  4. 2008年度広島東洋カープ年鑑 - Sponich Annex
  5. 고탄다 야스히코(2010년 10월 17일), ‘マエケン エースへの道<中>走り込み’, 주고쿠 신문
  6. ‘‘구와타를 넘는다’를 맹세하는 젊은 잉어의 별 고교생 드래프트 리포트 - PL학원고·마에다 겐타’(2006년 7월 30일). ‘마에다 만루탄도 PL학원 패퇴 / 고교 야구’ - 닛칸 스포츠 오사카판
  7. 다구치 신이치로(2006년 7월 30일), ‘마에다 만루탄도 PL학원 패퇴 / 고교 야구’ - 닛칸 스포츠 오사카판
  8. 広島・前田健が笑顔で一発更改 大幅増に大満足 - Sponichi Annex, 2008년 11월 27일
  9. 야마모토 오사무(2010년 11월 2일), ‘マエケンが沢村賞、球団6人目’ - 주고쿠 신문
  10. 구로다 후미오(2011년 3월 18일), ‘マエケンを飛躍させた“運命の一球”’ - RONSPO
  11. 이 경기에 대해서는 이시다 아쓰코가 《구장 러버스》에서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12. 《구장 러버스: 내가 야구하러 가는 이유(5권)》(쇼넨가호샤, 2012년) ISBN 978-4-7859-3850-5
  13. マエケン 史上74人目6年ぶりノーヒットノーラン達成 - 스포츠 닛폰, 2012년 4월 6일
  14. 前田健、井端がベストナイン=ドミニカ共和国からは5人’ - 지지 통신, 2013년 3월 21일
  15. まるで精密機械“マエダックス”を米メディア絶賛 - 도쿄 스포츠 Web, 2013년 3월 19일
  16. マエケンがメジャー挑戦へ 広島理解示す - 닛칸 스포츠, 2013년 12월 11일
  17. 《2014 프로야구 올 사진 선수 명감》, 일본 스포츠 기획 출판사, 2014년, p.140 ISBN 978-4-905411-17-8
  18. マエケン 納得の自己最速153キロ7回零封!8月わずか1失点 - 스포츠 닛폰, 2013년 8월 28일
  19. ‘우선은 직구를 닦을 것!’, 《야큐코조》, 2010년 8월호, 뱌쿠야쇼보, 잡지 18801-8, p.44 ~ 51
  20. 다구치 신이치로(2006년 1월 9일), ‘PLの桑田2世、150キロ出して本家超え宣言’, 나니와WEB
  21. 広島・前田健“佐々岡スライダー”で開幕ローテへ - 스포츠 닛폰, 2008년 1월 26일
  22. 고세키 준지, 니시오 노리후미, 이즈미 나오키 저 《프로 야구 스카우팅 리포트 2010》, 어스펙트 무크, 2010년, p.172 ~ 173. ISBN 978-4-7572-1744-7
  23. 多くの球数が本当に必要なのか? 前田健太に見る「投げ込み」の意味 - 우지하라 히데아키 《野球善哉》, Number Web, 2011년 1월 22일
  24. マエケン体操、来季も見られます - 닛칸 스포츠, 2013년 12월 13일
  25. サークル・スクラッチ - YouTube
  26. 고탄다 야스히코(2010년 10월 18일), ‘マエケン エースへの道<下>負けず嫌い’ - 주고쿠 신문
  27. 모두 포수인 이시하라 요시유키와 함께 공동 수상했다.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