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노 히사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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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노 히사요시
長野 久義

Hisayoshi Chono
요미우리 자이언츠 No.7
Yomiuri Giants h-chono.jpg

조노 히사요시(2010년)

기본 정보
국적 일본 일본
출신지 사가 현 미야키 군 기야마 정
생년월일 1984년 12월 6일(1984-12-06) (28세)
신장 180 cm
체중 83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외야수
프로 입단 연도 2009년
드래프트 순위 1순위
첫 출장 2010년 3월 26일
연봉 1억 6,000만 엔(2013년)
경력
일본 국가대표팀
WBC 2013년
조노 히사요시
일본어식 한자 표기: 長野 久義
가나 표기: ちょうの ひさよし
외래어 표기법 표기: 조노 히사요시
통용 표기: 쵸우노 히사요시
로마자: Hisayoshi Chono

조노 히사요시(일본어: 長野 久義 (ちょうの ひさよし), 1984년 12월 6일 ~ )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이며, 현재 센트럴 리그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소속 선수(외야수)이다.

목차

인물[편집]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편집]

사가 현 미야키 군 기야마 정 출신으로 초등학교 1학년 때 소년 야구 팀에 입단하여 6학년 때는 주장을 맡았고, 기야마 중학교 시절에는 규슈 경식 소년 야구 협회 플래시 리그 소속팀인 ‘지쿠시노 드림즈’ 에 활동했다. 지쿠요가쿠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2002년에 있은 춘계 대회인 규슈 지구 고교 야구 대회에서 팀을 4위 안에 진출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프로팀 입단의 권유는 있었지만 도토 지역인 니혼 대학에 진학하여 이후 야구부에 입단했다.

대학 시절[편집]

대학 2학년까지는 3루수 였지만 타격을 살리기 위해 3학년 때인 2005년에는 도토 대학 야구 춘계 1부 리그전에서부터 중견수로 전향했다. 4학년이 된 2006년에 급성장을 하는 등 춘계 대회에서 12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4할 8푼 9리(47타수 23 안타), 주장을 맡은 추계 대회에서는 13경기의 출전해 타율 4할 4리(52타수 21 안타)로 두 계절 연속 수위타자[1]가 되어 베스트 나인에도 두 계절 연속으로 선정되었다. 어깨의 힘과 발의 빠름도 겸비하고 있어 일약 주목을 받기도 했다. 같은 해 가을에는 미일 대학야구 선수권, IBAF 인터컨티넨탈 컵, 아시안 게임 등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어 출전하기도 했다. 대학 리그 통산 87경기 출장, 290타수 85 안타, 타율 2할 9푼 3리, 10 홈런, 40 타점을 기록했다.

같은 해 가을에 있은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로부터 4순위로 지명을 받았지만 조노는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아니면 가지 않겠다’라고 입단을 거부해 사회인 야구팀인 혼다 경식 야구부에 입단했다.

사회인 야구팀 시절[편집]

데뷔 경기인 2007년 3월의 제62회 JABA 도쿄 스포니치 대회에서 출전하여 주로 우익수로서 팀을 4위 안에 진출시키는 역할을 하는 등 대회에서도 신인상을 차지했다. 또 4월에 있은 제55회 JABA 시즈오카 대회에서는 준결승전에서 선제 홈런을 때려내는 맹활약한 공로로 대회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이듬해 2008년 10월 30일에 있은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지바 롯데 마린스로부터 2순위로 지명을 받았지만 당일에 방문한 바비 밸런타인 감독과의 면담을 거부했고 11월 25일의 입단 교섭 직후인 12월 3일에 입단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날인 12월 4일 지바 롯데 구단 측에 직접적으로 입단 거부를 신청해 구단 측도 이를 받아들이는 등 혼다의 잔류가 결정되면서 2009년의 드래프트에서 요미우리의 지명을 기다리게 되었다(요미우리는 2월 5일의 시점에서 조노에게 드래프트 1위 지명을 확약했다).

이듬해 2009년의 제80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서 타율 5할 7푼 9리(19타수 11안타)라는 성적을 기록하여 수위타자상을 획득하는 등 팀을 13년 만에 우승을 이끌었다. 10월 29일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미우리는 조노를 단독 1순위로 지명해 교섭권을 차지했다. 드래프트 지명을 두 차례나 거부해 세 번째 지명을 받은 사례는 요미우리의 선배에 해당되는 오카모토 고(1982년에 세 번째 지명)에 뒤를 이었다. 이후 하라 다쓰노리 감독과 대면하면서 니오카 도모히로가 달았던 등번호 7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건네 받았고 이후 11월 23일에는 계약금 1억 엔과 성과급 5,000만 엔, 연봉 1,500만 엔(금액은 추정)으로 계약에 합의,[2] 같은 날 도쿄 돔에서 열린 ‘자이언츠 팬 축제’ 에서 공식으로 입단 발표를 했다.

프로 입단 후[편집]

2010년[편집]

신인 합동 트레이닝에서는 유연성과 지구력에 많은 과제를 안게 되면서 머신 타격으로 날카로운 타구와 외야 수비 연습으로 빠른 걸음을 보여 주는 등 구단 수뇌진으로부터 신뢰를 얻기도 했다. 시범 경기에서도 기대 이상의 결과를 남기면서 팀의 동기이자 신인인 쓰치모토 교헤이, 이치카와 도모야와 함께 1군 엔트리에 합류했다.

9월 17일에는 갑작스런 부진으로 인해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2군에 강등되었지만 시즌 종반에는 사카모토 하야토의 타격 부진으로 1번 타자로 선발 출전하는 등 4번과 5번을 제외한 전 타순에서의 선발 출전을 경험했다. 최종적으로 데뷔 첫 해에 규정 타석을 채웠고 타율 2할 8푼 8리, 19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특히 19홈런은 다카하시 요시노부와 대등한 성적이며 요미우리의 신인으로서는 3위의 기록이다. 이것에 의해 센트럴 리그 신인왕을 석권했고 요미우리 구단에서는 2008년의 야마구치 데쓰야, 2009년 마쓰모토 데쓰야에 이어 3년 연속 신인왕을 배출시키는 업적을 남겼다.

2011년[편집]

4월 12일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개막전(우베 시 야구장)에서는 처음으로 개막전 선발(6번·중견수)로 출전해 오시모토 다케히코로부터 3점 홈런을 포함한 5타수 3안타 5타점을 기록하는 등의 맹활약을 보였다. 그 후에도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남기면서 7월 14일의 한신 타이거스전에서는 전날 타석에서 사구를 받은 영향으로 선발 명단에서 제외된 알렉스 라미레스를 대신해 요미우리의 제75대 4번 타자로 낙점되어 선발 출전했다. 그 경기에서는 안타를 기록하여 4번 타자의 자리에 들어가고 나서도 타격 호조를 유지하는 등 라미레스가 복귀한 이후에도 4번 타자로 출전하는 경기도 있었다. 그리고 시즌 종반에 있어서는 한신의 맷 머튼과 치열한 수위타자 경쟁을 펼치면서 최종전인 10월 22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에서 대타로 출전해 1점차로 지고 있는 9회말 무사 만루 상황에서 야마구치 슌으로부터 프로 야구 역대 8번째가 되는 역전 끝내기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3]

그 해에는 많은 선수들이 낮은 타율로 인해서 부진에 허덕이고 있는 가운데 자신은 한 번도 3할 아래로 떨어진 적은 없었고 최종적으로는 타율 3할 1푼 6리, 17개의 홈런과 시즌을 통해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수위타자 타이틀을 차지했다. 요미우리 입단 2년차의 수위타자 획득은 1959년의 나가시마 시게오가 차지한 이후 52년 만의 세 번째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베스트 나인골든 글러브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2012년[편집]

개막전은 3번 타자로 출전했지만 시즌 초반에 사카모토와 타순이 바뀌면서 1번 타자로 발탁되었다. 개막 이후부터 안정된 활약을 보이면서 7월에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8월에는 다시 회복의 기미를 보여 최종적으로 2년 연속에 해당되는 3할 대의 타율을 기록했다. 또, 20개의 도루(리그 2위), 출루율 3할 8푼 2리(리그 2위), 그리고 동료인 사카모토 하야토와 동일한 센트럴 리그 최다 안타가 되는 173개의 안타를 기록하는 등 1번 타자로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였다. 이 최다 안타에 의해서 입단 이후 3년 연속으로 타이틀을 석권했다.

일본 시리즈에서는 1차전에서 5타수 2안타, 2차전에서는 1회말에 다케다 마사루로부터 홈런을 때려냈고 6차전에서는 2회말에 또다시 다케다 마사루로부터 홈런을 때려내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 달성에 기여했다. 이러한 활약에 의해서 일본 시리즈 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가 시작된 이후부터 12경기 연속으로 안타를 기록하고 있어 여기에서도 1번 타자로서의 역할을 다한 것과 동시에 큰 무대에서의 힘을 과시했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 타석에서는 홈베이스로부터 벗어나[4] 몸쪽 공은 날카롭게 발을 디뎌 왼쪽 방향에, 바깥 쪽은 오른쪽 방향으로 처리할 정도의 광각 타법을 특색으로 하고 있다.[5]
  • 50m 달리기에서는 5초 8의 빠른 발과 멀리 던지기 120m를 기록할 정도의 강한 어깨를 가지면서 주루, 공격, 수비 모두 갖춘 외야수이다.

에피소드[편집]

  • 태어날 때부터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기야마 정에 거주하고 있어서 ‘사가 현 출신’으로 표기하는 것이 올바르지만 일부 관련 서적과 문헌에는 출신지를 후쿠오카 현으로 되어 있다.[6] 기야마 정은 후쿠오카 현에 접하고 있으며, 조노의 출신 학교가 있는 다자이후 시와 가까운 편이다.
  • 대학 시절까지는 내야수였지만 그 후 외야수로 전향되었는데 그 이유를 “(내야수로)뛰어 들면 손이 곧 더러워지기 때문에 그것이 싫었다”라고 말했다.

상세 정보[편집]

출신 학교[편집]

선수 경력[편집]

사회인 시대
프로팀 경력
국가 대표 경력

수상·타이틀 경력[편집]

타이틀[편집]

수상[편집]

개인 기록[편집]

첫 기록[편집]

기타[편집]

  • 대타 역전 끝내기 만루 홈런 : 2011년 10월 22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최종전(도쿄 돔), 9회말에 야마구치 슌으로부터 ※역대 8번째
  • 올스타전 출장 : 2회(2011년, 2012년)

등번호[편집]

  • 7(2010년 ~ )

연도별 타격 성적[편집]

연도 소속




2

3





도루
실패
희생
번트
희생
플라이

고의
사구
몸에
맞는 볼








O
P
S
2010년 요미우리 128 459 430 66 124 24 3 19 211 52 12 4 2 0 25 4 2 72 10 .288 .330 .491 .821
2011년 140 578 519 58 164 20 4 17 243 69 19 8 3 2 48 5 6 85 11 .316 .379 .468 .847
2012년 144 653 574 84 173 29 2 14 248 60 20 7 2 1 75 5 1 100 5 .301 .382 .432 .815
통산 : 3년 412 1690 1523 208 461 73 9 50 702 181 51 19 7 3 148 14 9 257 26 .303 .367 .460 .827
  • 2012년 기준,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연도별 수비 성적[편집]

연도 외야
경기 척살 보살 실책 병살 수비율
2010 121 211 3 5 0 .977
2011 139 262 6 3 1 .989
2012 143 221 9 2 2 .991
통산 403 694 18 10 3 .986
  • 2012년 기준.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주석[편집]

  1. 당시 1995년 가을, 1996년 봄에 수위타자로 선정된 다카스 요스케(아오야마가쿠인 대학) 이래 선정되었음.
  2. 【巨人】長野がファンに「7」お披露目 - nikkansports.com
  3. 2001년 9월 30일에 후지이 야스오가 기록한 이후 10년 만의 일이며 센트럴 리그 통산 1000개째의 만루 홈런이 되었다.
  4. 長野久義は「前」に出られるのか? ~清原も陥った内角の罠~ Number Web, 2010년 3월 25일.
  5. 巨人・長野、中日・伊藤……、各球団の新人王候補を斬る! Number Web, 2011년 3월 13일.
  6. 드래프트 회의 2006·닛폰햄 파이터스 - nikkansports.com, 2009년 드래프트 지명 선수·요미우리 자이언츠 - sanspo.com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