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무라 노리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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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무라 노리히로
中村 紀洋

Norihiro Nakamura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No.99
20120503 Norihiro Nakamura, infielder of the Yokohama DeNA BayStars, at Yokohama Stadium.JPG

나카무라 노리히로
(2012년 5월 3일, 요코하마 스타디움)

기본 정보
국적 일본 일본
생년월일 1973년 7월 24일(1973-07-24) (41세)
출신지 오사카 부 오사카 시
신장 180 cm
체중 92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3루수, 1루수
프로 입단 연도 1991년
드래프트 순위 4순위
첫 출장 NPB / 1992년 6월 12일
MLB / 2005년 4월 10일
마지막 경기 MLB / 2005년 5월 6일
연봉 5,000만 엔 + 기성금액(2014년)
경력
일본 국가대표팀
올림픽 2000년·2004년
나카무라 노리히로
일본어식 한자 표기: 中村 紀洋
가나 표기: なかむら のりひろ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 나카무라 노리히로
통용 표기: 나카무라 노리히로
로마자: Norihiro Nakamura
메달 기록
일본 일본의 선수
남자 야구
올림픽
2004 아테네 야구

나카무라 노리히로(일본어: 中村 紀洋 (なかむら のりひろ), 1973년 7월 24일 ~ )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이며, 현재 센트럴 리그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의 소속 선수(내야수)이다.

애칭은 노리(ノリ).

인물[편집]

프로 입단 전[편집]

1985년 4월 17일,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리는 한신 타이거스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경기를 관전하러 가면서 일명 ‘백 스크린 3연발’을 관중석에서 직접 보기도 했다. 오사카 부립 시부타니 고등학교 시절인 1990년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오사카 대회에서는 2학년이면서 4번 타자로서도 활약해 4개의 홈런을 때려냈고 수비에서도 3루수투수로서 활약하는 등 팀을 고시엔 대회 진출에 기여하기도 했다. 고시엔 대회에서는 첫 경기(2차전)에서 패했지만 오사카 부립 고등학교의 출전이 8년 만의 일이라고 말해질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고교 시절 통산 35홈런을 기록했고 고교 시절의 동급생인 오토리 레이(전 다카라즈카 가극단 단원)가 있다. 1991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는 긴테쓰 버펄로스로부터 4순위 지명을 받아 투수로서 입단해 등번호는 66번으로 배정되었다.

긴테쓰 시절[편집]

1992년 ~ 1995년[편집]

입단 첫 해인 1992년, 고졸 신인으로서 정규 경기에 출전하여 시즌 2개의 홈런을 기록했고(퍼시픽 리그 고졸 신인으로서의 2개 이상 홈런을 기록한 것은 기요하라 가즈히로다나카 유키오 이래 6년 만의 일이다) 1994년에는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가네무라 요시아키의 대역으로서 등장했다. 9월 18일의 닛폰햄 파이터스전(후지이데라 야구장)에서 사이클링 안타를 기록했다.

1996년 ~ 1998년[편집]

1996년부터 왼쪽 손목의 부상으로 슬럼프에 빠졌고(지금까지 왼쪽 손목 수술을 3회 받고 있다) 1997년에는 등번호를 이시이 히로오가 달았던 등번호를 3번으로 변경했다. 이듬해 1998년에는 리그 2위인 32개의 홈런을 기록하면서 처음으로 시즌 30홈런을 달성했고 왼쪽 손목의 부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1999년 ~ 2000년[편집]

1999년은 처음으로 시즌 전 경기 출전을 달성했고 같은 해에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2000년에는 시드니 올림픽의 일본 국가 대표로 발탁되어 팀은 4위에 끝났다. 정규 시즌에서는 타격 2관왕(홈런왕, 타점왕)을 획득하였지만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는 2년 연속으로 퍼시픽 리그 최하위에 머물렀다. 시즌 종료 후 추정 연봉 3억엔(1억 6,000만엔 증가)의 플러스 실적에 따른 지급 5,000만엔으로 계약이 갱신되었고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한 이치로를 대신해 퍼시픽 리그의 일본인 최고 연봉 선수가 된다.

2001년[편집]

시즌 개막을 앞두고 등번호를 세이부 라이온스로 이적한 무라카미 다카유키가 달았던 5번으로 변경했고 그 해 긴테쓰가 퍼시픽 리그 우승을 석권하면서 나카무라는 팀의 4번 타자로서 공헌하는 등 타점왕을 획득했다.[1] 3번과 4번 타자 합계 101홈런(터피 로즈 55개, 나카무라 46개)은 1985년 한신(랜디 바스 54개, 가케후 마사유키 40개)을 웃도는 최다 기록이며 일본 시리즈에서는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상대하며 일본 시리즈 통산 18타수 2안타의 성적으로 부진했고 긴테쓰도 1승 4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끝나 구단 역사상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하는데는 실패했다.

다음 시즌에 FA권의 취득이 예상되는 와중에 긴테쓰로부터 2년 이상 계약(추정 6년 계약 35억엔)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12월 26일에 “1개월에 판단하는 것은 어려웠다”라고 2년 이상 계약을 거부해 추정 연봉 5억 엔 플러스 실적에 따른 지급으로 1억 엔의 단년 계약을 맺었다. 오사카 교육대학 부속 이케다 초등학교에서 자원 봉사 활동 등의 높은 평가를 받아 제3회 골든 스피릿상을 수상했다.

2002년[편집]

7월 14일에 FA권을 취득했고 오른쪽 발목 통증과 허리 통증을 참아내며 52타석 만에 홈런을 때려냈다. 11월 5일에는 FA 선언하여 시즌 종료 후부터 “나카무라 노리히로라고 하는 브랜드를 우선 생각하고 긴테쓰에서 끝나도 좋은 것인가”라고 고민한 끝에 FA선언할 것을 결정했다고 한다. 12월 19일에는 700만 달러의 2년 계약 플러스 3년째의 옵션 600만 달러로 뉴욕 메츠와 입단 계약에 합의했다는 일부 언론에서 보도되었지만 12월 20일에 뉴욕 메츠 공식 홈페이지에 실렸던 것에 대해서는 “그런 구단은 신뢰할 수 없다”라고 격노해 교섭은 없던 일로 되돌렸다. 그 때문에 긴테쓰와의 재교섭을 실시하면서 나시다 마사타카 감독 등에게서의 만류로 번복했고(이 문제는 주니치의 입단이 확정되었던 케빈 밀라에게도 언급되었다) 12월 21일에는 긴테쓰에 잔류하겠다고 표명했다(추정 4년 계약의 20억 엔 플러스 실적에 따른 지급).

이 일에 대해 나카무라는 “확실히 뉴욕 메츠와 계약 직전까지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매스컴 관계자로부터 합의의 증거가 날아 왔는데 룰을 위반하는 구단과는 계약할 수 없다”라고 발언하면서 대리인을 맡은 음악 프로듀서인 모다 마사미도 당초에는 “비밀을 지킬 의무를 어긴 메츠의 실수였다”라고 메츠의 행동을 비판했지만 후에 MLB 기구와 메츠로부터 “나카무라 측이 위약의 근거로 하고 있는 공식 홈페이지의 문서는 MLB 기구나 구단의 인가를 받은 것은 아닌 데다가 문제의 기사는 메츠와 무관한 인물의 정보에 근거하고 있다. 이번 교섭에 관해서는 메츠의 룰을 깨는 것은 일절없다. 또 나카무라와 그의 어드바이저인 모다는 각 구단이 선수와의 계약에 앞서 계약 내용을 MLB에 보고할 필요가 있는 것을 모른다고 생각된다. 건강 진단에 패스한 시점에서 구속력이 있는 합의가 성립한다”라는 성명이 나오자 모다는 이것을 받아 “메츠가 말하듯이 합의하고 있었다는 것에 관해서는 이론은 없다”라고 인정했고 나카무라의 ‘메츠의 룰 위반’이라고 하는 발언에 대해 “저것은 그의 말이 충분하지 않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2003년[편집]

5월 중순에는 오른쪽 무릎에 부상당하면서 6월 10일에 오른쪽 무릎 반월상연골 파열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자신이 결장할 수는 없기 때문에 경기하러 나오면서 고친다”라고 말해 출전을 강행했다. 그러나 부상의 영향으로 타격 성적이 저조했고 긴테쓰도 리그 3위에 그쳤다. 아테네 올림픽 예선을 겸한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의 참가를 포기하면서 10월 17일에 오른쪽 무릎 수술을 받았다. 이후 성적에 직결되는 부진이 많아지고 있다.

2004년[편집]

오른쪽 무릎 재활 훈련을 겸해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스프링 트레이닝에 초대 선수로서 참가했고 아테네 올림픽 일본 국가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어 본선 경기에 출전하면서 팀의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그러나 경기 후에 가진 연회에서 오른쪽 발바닥에 부상을 당해 9월 10일까지 결장했다.

결장 중에 단 노무라를 대리인으로 선임해 포스팅 시스템(입찰 이적 제도)에 의한 메이저 리그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가 나왔고 11월 3일에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긴테쓰와 2년 전에 묶은 계약에 포스팅 시스템에 의한 메이저 리그 이적을 용인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설명한다. 11월 8일의 선수 분배 드래프트 결과, 합병 구단인 오릭스 버펄로스에게 배분되었다. 12월 1일에 합병 구단이 발족되면서 4년 계약의 2년째를 마친 시점에서 구단이 소멸했기 때문에 나머지 계약 기간의 연봉(2년분 10억엔)에 상당하는 보증금을 긴테쓰에 요구했지만 인정받지 못했다. 2005년 1월 25일에 포스팅을 신청해 긴테쓰와 업무 제휴를 하고 있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낙찰되었다. 2월 3일에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추정 1년 계약 50만 달러)을 맺었고 등번호는 긴테쓰에 입단했을 당시와 같은 66번으로 정해졌다.

그 해에 발생한 나라 초등학교 1학년 여아 살해 사건에서 피해 여학생이 긴테쓰의 팬으로 알려지자 자신의 딸과 같은 연배라고 하여 싸인이 새겨진 야구 용품을 영전에 갖다 바쳤다.

미국 프로 야구 시절[편집]

4월 2일에 트리플 A 마이너 리그인 퍼시픽 코스트 리그의 라스베가스 피프티원스에 합류하라는 통보를 받았지만 4월 10일에는 부상자 명단에 들어간 안토니오 페레스를 대신해 염원이던 메이저 리그에 승격되었다. 그러나 5월 8일의 경기 이후 멕시칸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던 오스카 모브레스가 40명 범위에 들어간 것에 따라 40명 범위에서 제외되었다. 웨이버 공시에 채울 수 있었지만 영입을 희망하는 구단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트리플 A에서의 격하를 승낙, 다시 라스베가스에서 활약했다.[2]

트리플 A굴지의 타자 천국으로 알려진 라스베가스에서는 홈런이야말로 리그 17위인 22개를 기록하였지만 타율 2할 4푼 9리는 규정 타석을 채운 선수 90명 가운데 85위에 머물렀고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에 자신을 보이고 있던 수비에서도 팀 최다인 20개의 실책을 기록했다. 이 때 “성적을 보면 일목요연, 최고 성적인데 왜 마이너로 떨어졌는지 납득할 수 없다”, “이치로도 마이너 계약이라면 메이저 리그에는 오를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9월 5일에 트리플 A의 시즌이 종료되었고 단 노무라와의 대리인 계약을 해제하면서 일본 야구계의 복귀를 목표로 했다.

12월 21일에는 일시 소속된 오릭스로 복귀하겠다고 공식 표명했고[3] 추정 연봉 2억 엔의 플러스 실적에 따른 지급 5,000만 엔의 단년 계약을 맺고 등번호는 8번으로 결정했다.[4]

오릭스 시절[편집]

2006년에 ‘돌아왔다’라는 표어의 포스터가 제작되어 드래프트에 의한 세이부 입단으로부터 20년 만에 출신지인 간사이 지방에 돌아온 기요하라 가즈히로와 함께 출연한 것이 화제가 되었지만 시즌 개막 직전 오른쪽 다리에 근육 파열을 일으키는 부상을 당했고 4월 28일에 왼손 엄지손가락에 부상을 당했다. 5월 13일의 야쿠르트전에서는 기다 마사오로부터 왼쪽 손목에 사구를 받아 부상당하는 등 부상에 의한 극도의 슬럼프에 빠지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8월 11일에는 왼쪽 팔꿈치에 사구를 받아 경기 도중에 교체되면서 그 이후의 경기 출전은 없었고 일본 야구계에 복귀한 2006년 시즌 성적은 85경기에 출전해 328타수 76안타, 타율 2할 3푼 8리로 시즌을 마쳤다. 2루타는 22개, 홈런 12개는 극심한 빈타에 시달리고 있던 오릭스에 있어서는 팀내 2위이지만 중심 타자로서 팀에 기여하고 순위를 좌우했다고는 말하기 힘든 시즌이 되었다. 9월에는 왼쪽 손목에 수술을 받았다.

계약 교섭에서는 나카무라가 왼쪽 손목의 부상을 ‘공상’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구단 측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60%가 삭감된 8,000만 엔(추정)의 단년 계약을 제시했다.

2007년 1월 12일까지 여섯 차례의 재계약 교섭을 실시하였지만 의견차로 인해 합의에는 실패했고 구단 측은 재계약을 포기하면서 나카무라의 퇴단을 결정했다. 그 후 트레이드를 시도하는 영입 구단은 없었고 1월 17일에 정식으로 자유계약선수가 되었다. 나카무라는 오릭스를 제외한 11개 구단으로부터의 연락을 기다리면서 각 구단의 춘계 스프링 캠프가 실시된 2월 1일 이후에도 ‘가공의 캠프 인’이라고 칭하고 자주 트레이닝을 계속하였다.

2월 12일, 주니치 드래건스로부터 연습생으로서의 스프링 캠프에 참가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2월 15일부터 주니치의 스프링 캠프에 참가,[5] 그 곳에서 입단 테스트를 실시했고 2월 25일 육성 선수로 계약하였다(연봉 400만 엔). 등번호는 205번.[6]

주니치 시절[편집]

2007년[편집]

주니치 시절의 나카무라 노리히로(2008년 6월 1일, 세이부 돔)

육성범위로 주니치에 입단한 이후 시범 경기에서 기대 이상의 결과를 남기는 등 정규 시즌 개막 직전인 3월 22일, 연봉 600만 엔으로[7] 지배하 선수 계약을 맺어 등번호도 99[8][9]으로 변경되었다.

개막전부터 정규 경기에 출전하여 초반에는 5번이나 7번을, 시즌 후반기에는 부상으로 이탈한 후쿠도메 고스케를 대신해 3번을 맡았다. 광범위한 각도에서 치는 배팅으로 타율 2할 9푼 3리(팀내 3위), 2년 만에 20홈런(공동 2위), 79타점(공동 3위)으로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9월 10일에는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예선 결승 리그 일본 대표팀 후보로 발탁되었다. 일본 시리즈에서는 허리 통증이 악화되고 있었기 때문에 진통제를 맞은 상태에서 출전을 강행했고 타율 4할 4푼 4리(18타수 8안타), 4타점을 기록하여 활약했다. 11월 1일의 5차전에서는 일본 시리즈 우승이 확정되어 일본 시리즈 MVP를 차지했고[10] 일본 시리즈 우승이 결정된 후에 가진 히어로 인터뷰 도중 북받쳐오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아시아 시리즈에서는 타이론 우즈를 대신해서 4번 타자로 출전했다.

11월 30일, 구단과의 계약 갱신에서는 3월에 신규 계약할 당시보다 733%가 인상된[11] 연봉 5,000만 엔의 제시를 받아 이를 승낙하면서 계약이 갱신되었다.

2008년[편집]

6월 15일, 아버지날에 ‘2008년도 베스트 파더 옐로 리본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오릭스와의 경기를 앞둔 시상식에서는 “연예인이 받는 상이라고 생각했다.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쁘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히는 등 긴테쓰와 오릭스 시절의 동료였던 기타가와 히로토시와 함께 수상했다. 경기 직전에는 가족과 함께 기념 촬영을 가졌다.

4월 14일, 자신으로서는 두 번째의 FA권을 취득했고 6월 17일에 이시카와 현립 야구장에서 열린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에서 오누마 고지로부터 2점 홈런을 때려내 통산 100회의 맹타상을 달성했다. 또 다음 타석에서 예전 동료였던 오카모토 신야로부터 끝내기 홈런을 때려내는 등 통산 끝내기 홈런 기록이 9개가 되면서 오 사다하루, 와카마쓰 쓰토무를 제치고 역대 3위가 되었다. 11월에는 주니치 잔류도 시야에 넣으면서 “타 구단에서의 평가도 들어보고 싶다”라고 두 번째의 FA권을 행사했고 11월 25일에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 입단 교섭을 실시, 11월 29일에 라쿠텐의 이적을 정식으로 결정했다. 라쿠텐 구단으로서는 처음으로 FA로 입단한 선수가 되었다.

12월 5일에 센다이 시내에서 입단 기자회견을 가졌고 등번호는 자신의 희망도 있어 주니치 시절과 똑같은 99번으로 배정되었다.

라쿠텐 시절[편집]

2009년[편집]

4월 5일, 삿포로 돔에서 열린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에서 브라이언 스위니 로부터 이적 후 첫 홈런을 때려냈고 이 날은 4안타 5타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에는 홈런도 전혀 나오지 않고 타율도 저조했고 고질적인 허리 통증도 악화되는 등 6월 9일부터 6월 25일까지 등록이 말소되었다. 1군 복귀 후 7월 11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사토 마코토로부터 71경기 만에 홈런을 때려냈다. 그 후에도 컨디션은 오르지 않았고 8월 3일에 1군 등록이 말소되면서 1군에 복귀하는 일도 없이 그대로 시즌을 마쳤다. 결국 라쿠텐 이적 1년째의 성적은 타율 2할 2푼 1리, 홈런 2개, 26타점이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남겼다.

2010년[편집]

시즌 초반에는 컨디션이 좋지는 않았고 전반기에는 팀 타선이 부진에 시달려 교류전 등에서는 4번을 맡았다. 한 때는 3할 대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후반기 이후에는 타율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시즌 종반에는 주루 플레이 도중에 근육 통증을 일으켜 1군 등록이 말소되었고 10월 1일에 구단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아 라쿠텐을 퇴단했다. 12개 구단 합동 입단 테스트에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현지 오사카에서 연습을 자주하면서 타 구단으로부터의 오퍼를 기다리는 형태가 되었다.

이듬해 2011년 2월에는 도쿠시마 인디고 삭스의 합동 개인훈련에 참가했고 본인은 “육성 범위라도 좋으니까(일본 프로 야구계에서) 현역 생활을 계속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요코하마·DeNA 시절[편집]

나카무라 노리히로(2011년)

2011년[편집]

5월 23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의 입단이 확정되면서 다음날 24일에 구단 사무소에서 입단 기자회견을 가졌다. 요코하마의 입단이 확정된 것은 전날 22일 가지 다카오 구단 사장으로부터 전화를 통해 입단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등번호는 주니치, 라쿠텐 시절과 마찬가지로 99번이 되었다. 6월 8일에 1군 등록된 같은 날 라쿠텐전(K스타 미야기)에 7번·1루수로 선발 출전했다.

6월 18일,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대타로 출전해 스기우치 도시야로부터 이적 후 첫 홈런을 때려냈다. 이 홈런을 계기로 동점을 만드는 등 승부를 원점으로 만들었고 터멜 슬레지가 8회에 결승 홈런을 때려내며 팀은 승리했다. 그 해 당초에는 대타 요원으로 자주 투입되었지만 주전 1루수인 브렛 하퍼가 좌완 투수와 상대할 때 약한 모습을 드러냈고 수비에서도 불안이 있었기 때문에 좌완 투수가 등판할 시에는 선발이나 수비를 굳히기 위한 기용도 많았다. 10월 13일의 한신 타이거스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는 주전 유격수 이시카와 다케히로와 2루수와 유격수 양쪽 모두를 지킬 수 있는 후지타 가즈야가 부상을 당해 주전 2루수인 와타나베 나오토가 유격수로 도는 상황속에서 그 대역으로 2루수로서 기용된 야마자키 노리하루가 실책을 연발했기 때문에 급거 프로에 입문한 이후 처음으로 2루수로 선발 출전을 했다. 시즌 종료 때까지 1군 등록이 말소되는 일은 한 번도 없었고 62경기에 출전했지만 타율 2할 9리, 1홈런, 14타점 등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남겼다.

2012년[편집]

개막 초에는 주로 3루수로 출전했고 5월에 쓰쓰고 요시토모가 부상에서 복귀한 이후에는 1루수로서 선발 출전을 계속하고 있다. 4월 15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연장 11회에 구단명이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로 변경된 이후 처음이 되는 끝내기 홈런을 때려냈고(동시에 팀의 첫 끝내기 승리) 이것이 자신으로서는 통산 380호 홈런이 되었다. 5월 4일에 친정팀인 주니치전에서는 이와세 히토키로부터 동점 홈런을 기록하면서 일본 프로 야구 역대 22번째의 전 구단으로부터 홈런 기록을 달성했다. 또한 교류전이 도입된 2005년 이후 센트럴·퍼시픽 양대 리그에 2개 구단씩 소속되어[12] 달성한 것은 나카무라가 유일하다.[13]

상세 정보[편집]

출신 학교[편집]

  • 오사카 부립 시부타니 고등학교

선수 경력[편집]

NPB
MLB
국가 대표 경력

수상·타이틀 경력[편집]

타이틀[편집]

  • 홈런왕 : 1회(2000년)
  • 타점왕 : 2회(2000년, 2001년)
  • 최고 출루율 : 1회(2001년)

수상[편집]

  • 베스트 나인 : 5회(1996년, 1999년 ~ 2002년)
  • 골든 글러브상 : 7회(1999년 ~ 2002년, 2004년, 2007년, 2008년)[15]
  • 일본 시리즈 MVP : 1회(2007년)
  • 올스타전 MVP : 2회(2001년 제3차전, 2012년 제1차전)[16]
  • 월간 MVP : 5회(1999년 8월, 2000년 5월·9월, 2001년 5월, 2002년 5월)
  • JA전농 Go·Go상 : 1회(매직 글러브상 : 2000년 6월)
  • 골든 스피릿상(2001년)
  • 베스트 파더 옐로 리본상(2008년)

국제 대회[편집]

  • 아테네 올림픽 동메달(2004년)

주요 기록[편집]

첫 기록[편집]

기록 달성 경력[편집]

기타[편집]

  • 통산 만루 홈런 : 14개(역대 2위 타이)
  • 통산 끝내기 홈런 : 9개(역대 단독 3위)[18]
  • 사이클링 안타 : 1회(1994년 9월 18일, 대 닛폰햄 파이터스 25차전, 후지이데라 구장)
  • 대타 만루 홈런 : 1회(2007년 10월 6일,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24차전, 메이지 진구 야구장), 6회초에 하나다 마사토로부터
  • 시즌 만루 홈런 : 2회(2000년, 2001년)
  • 17경기 연속 안타(2010년 5월 4일 ~ 5월 29일)
  • 5경기 연속 홈런(2000년 6월 3일 ~ 6월 9일)[19]
  • 1경기 9타점 : 2001년 5월 29일, 대 닛폰햄 파이터스 10차전(도쿄 돔)
  • 올스타전 출장 : 8회(1995년, 1996년, 1999년 ~ 2002년, 2004년, 2012년)[20]
  • 1경기 5볼넷 : 2003년 5월 3일, 대 닛폰햄 파이터스 7차전(오사카 돔) ※리그 타이 기록.
  • 1경기 3개 홈런 : 4회(1997년 9월 20일, 2000년 9월 7일, 2001년 5월 29일, 2008년 7월 29일)
  • 3타석 연속 홈런 : 4회(1997년 9월 20일, 2000년 9월 7일, 2001년 9월 8일 ~ 9월 9일, 2008년 7월 29일 ~ 8월 3일)[21]
  • 동일 구단 40홈런 콤비[22]
  • 전 구단으로부터 홈런 : 2012년 5월 4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6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역대 22번째.
  날짜 상대 팀 구장 이닝 상대 투수 통산 홈런 갯수
1 1992년 6월 18일 닛폰햄 15차전 후지이데라 구장 5회말 고노 히로후미 1
2 7월 4일 지바 롯데 14차전 가와사키 구장 4회초 소노카와 가즈미 2
3 1994년 6월 14일 오릭스 8차전 후지이데라 구장 9회말 하세가와 시게토시 3
4 8월 6일 세이부 19차전 후지이데라 구장 7회말 와타나베 히사노부 4
5 8월 19일 다이에 21차전 기타큐슈 시민 구장 8회초 기무라 게이지 7
6 2006년 4월 16일 라쿠텐 5차전 스카이마크 스타디움 5회말 아오야마 고지 309
7 5월 12일 야쿠르트 1차전 오사카 돔 5회말 다테야마 쇼헤이 313
8 5월 20일 한신 1차전 한신 고시엔 구장 7회초 후쿠하라 시노부 314
9 6월 15일 요미우리 5차전 도쿄 돔 6회초 다카하시 히사노리 315
10 2007년 4월 25일 히로시마 4차전 나고야 돔 5회말 아오키 다카히로 323
11 5월 6일 요코하마 9차전 나고야 돔 4회말 도이 요시히로 324
12 2012년 5월 4일 주니치 6차전 요코하마 스타디움 9회말 이와세 히토키 382

등번호[편집]

  • 66(1992년 ~ 1995년, 2005년)
  • 3(1997년 ~ 2000년)
  • 5(2001년 ~ 2004년)
  • 8(2006년)
  • 205(2007년 ~ 같은 해 시즌 도중) ※육성 선수 시절의 등번호.
  • 99(2007년 시즌 도중 ~ 2010년, 2011년 시즌 도중 ~ )

연도별 타격 성적[편집]

연도 소속




2

3





도루
실패
희생
번트
희생
플라이

고의
사구
몸에
맞는 볼








O
P
S
1992년 긴테쓰 11 27 27 4 6 1 0 2 13 5 0 0 0 0 0 0 0 8 0 .222 .222 .481 .704
1993년 8 12 9 1 1 0 0 0 1 1 0 0 0 1 2 1 0 4 0 .111 .250 .111 .361
1994년 101 215 192 23 54 13 1 8 93 36 0 0 2 2 19 1 0 49 2 .281 .343 .484 .827
1995년 129 528 470 62 107 19 1 20 188 64 0 1 3 1 51 1 3 92 12 .228 .307 .400 .707
1996년 110 454 411 60 112 15 1 26 207 67 4 1 0 0 39 3 4 89 7 .273 .341 .504 .845
1997년 128 519 455 54 109 22 3 19 194 68 3 2 2 3 54 5 5 105 13 .240 .325 .426 .751
1998년 132 564 481 74 125 14 1 32 237 90 1 1 2 2 74 3 5 114 12 .260 .363 .493 .856
1999년 135 601 514 83 134 23 0 31 250 95 3 0 1 3 79 0 4 116 21 .261 .362 .486 .848
2000년 127 564 476 82 132 26 0 39 275 110 1 1 0 5 80 5 3 112 17 .277 .381 .578 .959
2001년 140 637 525 109 168 25 0 46 331 132 3 2 0 3 104 8 4 106 26 .320 .434 .630 1.064
2002년 140 602 511 87 150 27 1 42 305 115 2 1 0 0 86 10 5 136 10 .294 .400 .597 .997
2003년 117 456 381 54 90 14 1 23 175 67 1 1 0 2 72 4 1 96 18 .236 .357 .459 .817
2004년 105 462 387 59 106 16 1 19 181 66 0 0 0 1 73 8 1 88 13 .274 .390 .468 .857
2005년 LAD 17 41 39 1 5 2 0 0 7 3 0 0 0 0 2 0 0 7 3 .128 .171 .179 .350
2006년 오릭스 85 359 328 39 76 22 0 12 134 45 0 1 0 2 26 2 3 70 10 .232 .292 .409 .701
2007년 주니치 130 521 457 64 134 24 0 20 218 79 2 1 4 8 51 3 0 87 18 .293 .359 .477 .836
2008년 140 557 493 56 135 20 0 24 227 72 0 1 10 3 50 4 1 119 11 .274 .340 .460 .800
2009년 라쿠텐 77 294 263 16 58 11 0 2 75 26 0 1 1 1 29 2 0 41 11 .221 .297 .285 .582
2010년 129 521 473 51 126 23 0 13 188 64 0 1 1 2 44 2 1 84 18 .266 .329 .397 .726
2011년 요코하마·
DeNA
62 126 115 6 24 3 1 1 32 14 0 1 0 2 9 0 0 27 1 .209 .262 .278 .540
2012년 126 500 442 50 121 24 1 11 180 61 1 1 0 6 50 1 2 72 14 .274 .346 .407 .753
NPB : 20년 2132 8519 7410 1034 1968 342 12 390 3504 1277 21 17 26 47 992 63 42 1615 234 .266 .354 .473 .827
MLB : 1년 17 41 39 1 5 2 0 0 7 3 0 0 0 0 2 0 0 7 3 .128 .171 .179 .350
  • 2012년 기준.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 요코하마(요코하마 베이스타스)는, 2012년에 DeNA(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로 구단명을 변경.

연도별 수비 성적[편집]

주석[편집]

  1. 팀의 우승이 결정되기 며칠 전에 우승 경쟁을 하고 있던 세이부전(오사카 돔)에서 마쓰자카 다이스케로부터 우중간을 향해 때려낸 홈런은 지금도 대표적인 명승부로 기록되고 있다.
  2. 나카무라는 마이너 리그에서의 플레이를 언론에서는 ‘벌칙 게임’이라고 보도되었다. 본인의 발언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것이 나카무라의 이미지를 크게 저하시킨 것으로 해석된다.
  3. 나카무라는 다저스와 2006년 1월 말까지 계약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2005년의 오프에 일본에 복귀하기 위해서는 다저스와의 업무 제휴에 의해 나카무라와의 우선 교섭권을 얻고 있던 오릭스에 입단하는 것 외에 선택 사항은 없었다고 여겨지고 있다.
  4. 다저스로 이적하기 전에 사용하고 있던 등번호 5번은 기요하라가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3+5=8’로 했다.
  5. 그 전에는 메이저 리그의 미네소타 트윈스가 나카무라의 입단 테스트를 요청했지만 나카무라는 국내 구단을 강하게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거절했다.
  6. 주니치가 육성 선수의 관례로서 200번대의 등번호가 주어져 긴테쓰 시절에 등번호 5번을 달고 있던 나카무라에게 감독인 오치아이 히로미쓰가 배려한 것이다.
  7. 다만, 일본 프로패셔널 야구 협약 제89조 2의 규정에 의해 1년간 출장 선수 등록을 한 것으로부터 1,500만 엔이 되었다.
  8. 나카무라 자신이 이전부터 착용하고 있던 등번호는 당시 주니치에서는 모두 주력 선수였던 오치아이 히로미쓰가 사용중인 것이나 구단과 오치아이의 방침으로 처음부터 다시 하기 위해서 99번을 착용하게 했다.
  9. 나카무라 본인은 “프로 들어갔을 때에 처음으로 댄 번호(66)를 뒤집은 것”이라고 말했다.
  10. 주니치의 야수로서는 역대 최초의 MVP 수상이며 긴테쓰에 입단 및 소속 경험자의 MVP 획득은 처음이다.
  11. 일본 야구계에서는 역대 세 번째이자 센트럴 리그에서 역대 1위가 되는 연봉 상승률이다.
  12. 교류전 도입 이전에는 ‘전 구단으로부터 홈런’을 달성하려면 센트럴·퍼시픽 양대 리그에 2개 구단씩 소속될 필요가 있었지만 현재는 임의로 2개 구단에 소속하면 달성이 가능하다.
  13. 나카무라가 리그전에서는 현행 12개 구단 모두로부터 홈런을 기록하고 있지만 교류전에서는 주니치전에서만 홈런을 때려내지 않았다. 주니치에 소속된 2007년 시즌 종료 시점으로 주니치를 제외한 11개 구단으로부터 홈런을 기록하고 있다.
  14. 육성 선수로 계약했다가 정식 계약.
  15. 3루수 부문에서는 역대 최다 수상, 양대 리그에서의 연간 연속 수상은 신조 쓰요시, 히라노 겐에 다음으로 역대 세 번째이다.
  16. 2001년에는 퍼시픽 리그 선수로서, 2012년에는 센트럴 리그 선수로서 양대 리그에서의 올스타전 MVP 수상은 역대 5번째.
  17. 오른쪽 발목 통증과 고질적인 허리 통증을 참아내며 52타석 만에 홈런을 때려냈다.
  18. 10개째는 2012년 4월 15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2차전(니가타 현립 야구장), 11회말에 니시무라 겐타로로부터 기록했다.
  19. 모두 외야 양쪽 100m 이상 구장에서의 달성은 사상 최초의 기록이다.
  20. 양대 리그에서 홈런 : 역대 5번째
    • 센트럴 리그 선수로 출전한 2012년 제1차전(교세라 돔 오사카), 2회초에 사이토 유키로부터 홈런을 때려내며 달성함.
    • 퍼시픽 리그 선수로서는 2001년 제1차전·제2차전·제3차전, 2004년 제1차전까지 모두 4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21. 이 중 1997년 9월 20일, 2000년 9월 7일의 기록은 모두 좌익, 중견, 우익으로 각각 나눈 3타석 연속 홈런인데 이 기록은 사상 최초이며, 광각에 칠 수 있는 증명이라고 할 수 있다.
  22. 2001년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에서 활약할 당시 터피 로즈가 55홈런, 나카무라는 46홈런을 기록했고, 이듬해 2002년에도 터피 로즈가 46홈런, 나카무라는 42홈런을 기록하는 등 팀내에서 40개의 홈런을 기록한 두 선수에 대해 콤비라는 애칭이 붙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