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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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섭
Choi Hee-Seop
KIA 타이거즈 No.23
HeeSeopChoi 20050515.jpg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의 최희섭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생년월일 1979년 3월 16일(1979-03-16) (35세)
출신지 전라남도 영암군
신장 196 cm
체중 123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좌투좌타
수비 위치 1루수
프로 입단 연도 1999년 (MLB)
2007년 (KBO)
드래프트 순위 1998년 1차 지명 (해태 타이거즈)
해외파 특별 지명 (KIA 타이거즈)
첫 출장 KBO / 2007년 5월 19일
잠실두산
MLB / 2002년 9월 3일
리글리 필드 대 밀워키
마지막 경기 MLB / 2005년 10월 1일
획득 타이틀
계약금 8억 원
경력

선수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WBC 2006
월드컵 1998 이탈리아
메달 기록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야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6 샌디에이고 야구

최희섭(崔希涉, 1979년 3월 16일 전라남도 영암군 ~ )은 한국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의 내야수이다. 대한민국 국적 선수로서는 최초의 메이저 리그 타자이다. 미국 활동 시절에 '빅 초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출신학교[편집]

메이저 리그 경력[편집]

연고 팀 해태 타이거즈의 1차 지명을 받았으나 고려대학교에 입학했다. 1999년고려대학교를 중퇴하고 미국 메이저 리그시카고 컵스에 입단하였다. 그로 인해 대한야구협회에서는 협회의 사전 동의 없이 대학 재학 중 계약한 김병현과 최희섭에게 무기한 자격 정지를 내려 대한민국 무대에서 뛸 수 없게 되었다.[1] 3년 동안 마이너 리그 생활을 거친 뒤, 2002년 9월 3일 시카고 컵스 선수로서 처음 메이저 리그 경기에 출장했다. 그 전에 최경환이 타자로 미국에 처음 진출했지만 메이저 리그에는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인 타자로 메이저 리그 무대에 선 것은 그가 최초였다.
2003년 시즌 후 플로리다 말린스로 트레이드되었다가 시즌 중인 2004년 7월 30일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다시 트레이드되었다. 그러나 주전 자리를 확보할 만한 성적을 내지 못한 채 2006년 스프링캠프 도중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되었고, 25인 로스터에서 제외되어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 트리플 A 팀인 포터킷 레드삭스에서 시즌 개막을 맞았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참가하여 병역을 해결하였지만, 2006년 시즌 도중 메이저 리그의 40인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2007년 웨이버 공시로 풀린 후 그는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스플릿 계약을 맺었으나, 결국 메이저 리그에 복귀하지 못하였다. 2007년 5월, 해외진출선수 특별지명회의에서 자신을 지명한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기 위해 그는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구단 측에 방출을 요구하였고 탬파베이 측에서 승인했다. 그를 다시 지명한 연고 팀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여 대한민국에서 프로 생활을 재개하였다.

미국 통산 기록[편집]

연도 소속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TB 볼넷 삼진 도루 도루실패 출루율 장타율 타율
2002 CHC 24 50 6 9 1 0 2 4 16 7 15 0 0 .28 .320 .180
2003 80 202 31 44 17 0 8 28 85 37 71 1 1 .350 .421 .218
2004 FLA 95 281 48 96 16 1 15 50 139 52 78 1 0 .388 .505 .276
2004 LAD 31 62 5 10 5 0 0 6 15 11 18 0 0 .289 .242 .161
2005 133 320 40 81 15 2 15 42 145 34 80 3 3 .336 .453 .253
통산 4시즌 363 915 130 220 54 3 40 120 400 141 262 2 4 .359 .457 .250

한국프로야구[편집]

2007년 4월 2일 해외진출선수 특별지명회의를 통하여 다시 고향 팀에 지명되어 대한민국 활동의 봉인이 완전히 해제되었다. 2007년 5월 10일 계약금 8억, 연봉 3억 5000만, 옵션 4억 총 15억 5000만원에 고향 팀 KIA 타이거즈와 입단 계약을 맺었다.

5월 19일 잠실 두산 전에서 첫 경기를 치르며 한국프로야구에 데뷔했다. 그러나 2군 강등 직전에 치른 4경기 동안 8타수 무안타를 기록하고 2008년 시즌 동안 188타수 43안타로 0.229의 시즌 타율을 보이는 등의 극심한 부진으로 2008년 9월 10일 2군으로 강등당했다. 대한민국 무대 복귀 후 리그에 적응하지 못해 메이저 리그 시절만큼 보여 주지 못하자 2009년 시즌 전 체중 감량 등 하드 트레이닝으로 재기를 다짐하였고[2], 때마침 2009년에 친정 팀으로 돌아온 김상현과의 콤비를 이루어 해태 타이거즈 전설의 "KKK포"(김성한, 김봉연, 김준환)를 본뜬 "CK포"로 막강 화력을 자랑하며 고향 팀을 12년 만에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김상현에 이어 3할 30홈런 100타점을 이루었으며 정근우와 함께 공동 득점왕에 올랐고 한국시리즈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대한민국 통산 기록[편집]

년도 타율 경기수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도실 4사구 삼진 병살 장타율 출루율 OPS 비고
2007년 KIA 0.337 52 199 67 17 0 7 20 46 3 1 18 37 9 0.528 0.386 0.914
2008년 0.229 55 188 43 2 1 6 17 22 4 3 18 41 4 0.346 0.295 0.641
2009년 0.308 131 435 134 23 0 33 98 100 2 4 103 108 14 0.589 0.435 1.023 1루수 골든글러브
2010년 0.286 126 444 127 22 1 21 78 84 4 3 85 109 17 0.482 0.398 0.880
2011년 0.281 70 242 68 14 1 9 36 37 1 1 39 61 7 0.459 0.379 0.838
2012년 0.252 80 246 62 17 0 7 31 42 1 1 52 53 9 0.407 0.379 0.786
2013년 0.258 78 252 65 17 1 11 29 42 1 1 53 72 5 0.464 0.380 0.844
통산 7시즌 0.282 592 2006 566 112 4 94 309 373 16 14 366 481 65 0.483 0.390 0.873

수상[편집]

논란[편집]

파혼[편집]

2007년 12월 기초 군사훈련을 마치고 결혼할 예정이었던 일본인 약혼녀 야스다 아야와 결혼을 앞두고 11월 26일에 파혼하였다. 파혼의 이유는 성격 차이와 결혼 이후 사회 활동에 대한 의견 차이로 알려졌다.[3] 특히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팀으로 오게 된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대한민국 복귀 첫 해에 부진하였던 그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최희섭은 이후 2010년 12월 6일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미스코리아 출신 김유미와 결혼하였다.[4]

형저메[편집]

형저메 사건은 아래와 같은 기사가 잡지 스포츠 2.0을 통해 게재되면서 발생된 사건이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최희섭을 직접 본 국가대표팀 코칭스태프는 '기대보다는 별로'라는 반응을 보였고 이는 최희섭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즈음 이승엽이 최희섭에게 타격과 관련한 조언을 했다. 그러나 이승엽의 조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담담히 듣고 있던 최희섭이 "형 저 메이저 리거예요." 라고 말했다고 한다.

기사가 실린 후 한동안 최희섭은 '형저메'라 불렸다. 이후 그가 사건과 관련해 입장을 표명했고[5], 이와 같은 내용이 불거지면서 직접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작성한 게시물에서 저러한 일이 없었다면 내 기자 생명을 걸겠다는 말을 함으로써 기정사실화되었다. 그러나 실상 박동희 기자는 현장에 없었다.

2009년 최희섭은 당시 "형저메" 발언은 김태균을 격려하기 위한 농담이었는데 심각한 말로 전해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6]

이 별명은 이후 광주무등경기장 야구장 바깥쪽 최희섭 포스터에다가 '형 저 매일 홈런쳐요'라는 문구로 패러디되어 붙여지기도 했다.[7] 그리고 그의 타격이 살아나고 출루율도 좋아지자 또 다르게는“형, 저 매일 걸어나가요”라는 의미로도 패러디되었다.[8]

이승엽과는 나가사키에서 열린 2009년 한·일 클럽 챔피언십에서 다시 만나 산행 훈련을 같이 하자고 할 정도로 관계가 돈독해졌다.[9]

2009년 6월 8일자 고려대학교 스포츠 매거진 SPORTS KU와의 인터뷰에서 최희섭 스스로 "형저메" 발언이 사실이었음을 인정한 바가 있다.[10]

구단과의 마찰[편집]

마찰의 시작과 격화[편집]

최희섭은 2012년, 신년의 시작과 함께 KIA 타이거즈 구단의 지정 병원에 감기를 이유로 입원한 뒤부터 모든 신년 일정에 불참하여 팬들의 비난을 샀다. 또한 KIA 타이거즈 선동열 감독까지 인터뷰 등의 자리에서 2012년의 팀 전력 구상에서 최희섭을 제외할 뜻을 간접적으로 내비쳐 이상한 기류가 흘렀다.[11]

사태는 더욱 악화되어 전지훈련 명단에서 제외되는 구단과의 심각한 마찰을 빚었으며[12], 최희섭은 구단에 트레이드를 요청했으나 KIA 측에서는 최희섭의 잔류로 포커스를 맞췄다.[13]

트레이드 논란[편집]

그러나 구단의 입장 표명과는 상반되게 1월 14일에 접어들자 최희섭의 트레이드 논란이 불거졌고, 그 상대는 넥센 히어로즈이며 최희섭의 트레이드 상대는 넥센의 좌완 불펜과 우완 선발. 즉 1대2 트레이드라는 구체적인 내용까지 나왔다. 이 논란을 더 깊숙히 들어가보면, 두산 베어스도 뒤늦게 최희섭의 트레이드에 뛰어들었다는 얘기다. 이에 더해 스포츠동아에 실린 2012년 1월 14일 기사에 최희섭의 트레이드와 관련된 기사의 캡처 사진이 인터넷 상에 나돌면서 트레이드 논란은 계속 확산되고 있다.[14] 하지만 이후 최희섭이 완전히 복귀하면서 트레이드는 없던 일로 되었고 김상현이 부상을 당하자 다시 출전 기회를 잡았다.

주석[편집]

  1. 대한야구협, 김병현·최희섭 무기한 자격 정지 - 연합뉴스
  2. ´절치부심´ 최희섭, 한국시리즈 2차전 영웅! - 데일리안
  3. 최희섭 충격 파혼…日야스다 씨와 합의 하에 헤어져 - 스포츠서울
  4. 최희섭 장가 가던 날 ‘홈런 스윙 세리머니’ - 동아일보
  5. 최희섭이 밝힌 '형저메' 소문의 진상 - OSEN
  6. ‘형저메’최희섭 “빅 리거란 생각 버렸다” - 일간스포츠
  7. 최희섭 "홈런왕? 마음 접었습니다" - 스포츠조선
  8. 최희섭 '형저메'서 '형저매' 새 별명 - 한국일보
  9. ‘산 사나이’ 최희섭, 이승엽과 의기투합 - 스포츠칸
  10. MLB Park 게시판에 게재된 SPORTS KU 인터뷰, '형.저.메 스토리' - SPORTS KU
  11. 최희섭의 위기, 출발은 1년 전 주장 파동 - 스포츠조선
  12. 최희섭 전훈 불참…트레이드 여부는? - 일간스포츠
  13. 최희섭 마음고생 1년 - 중앙일보
  14. 네이버의 어느 한 블로그에 올라온 최희섭의 트레이드와 관련된 내용 및 스포츠동아의 최희섭 트레이드 기사의 캡처 사진이 올라온 글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