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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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종
Yang Hyeong-Jong
KIA 타이거즈 No.54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생년월일 1988년 3월 1일(1988-03-01) (26세)
출신지 대한민국 대한민국 광주광역시
신장 183 cm
체중 85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좌투좌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2007년
드래프트 순위 2007년 2차 1순위 (KIA 타이거즈)
첫 출장 KBO / 2007년 4월 7일
잠실LG전 구원
계약금 2억 원
연봉 1억 2천만원 (2014년)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아시안게임 2010년 광저우
2014년 인천
메달 기록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야구
아시안 게임
2010 광저우 야구
2014 인천 야구

양현종(梁玹種, 1988년 3월 1일 ~ )은 한국 프로 야구KIA 타이거즈에 소속되어 있는 투수이다.

고등학교 시절[편집]

학강초등학교와 광주동성중학교를 거쳐 광주동성고등학교에 입학한다. 2005년 제 39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선발 투수였던 한기주에 이어서 구원등판하여 승리 투수가 되었다.[1]동성고등학교 시절부터 150km의 빠른 공을 던지는 좌완 투수로 프로 팀 스카우트의 주목을 받았고, 2007년 신인 지명에서 KIA 타이거즈의 2차 1위 지명을 받고 입단하였다. 당시 KIA의 1차 지명자였던 정영일은 미국진출로 인해 한국프로야구의 입단을 거부하였다.

KIA 타이거즈 시절[편집]

2007년 KIA 타이거즈에 입단한 후 시즌 초 5선발로 활약하였으나 왼손 중간 계투 요원이 부족한 팀 내 사정상 곧 중간계투진으로 보직을 변경했다.

2008년에는 시즌 중반에 평균 자책점이 8.50으로 치솟기도 하는 등 부진하였으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 조범현 감독이 2군으로 강등시키지 않아 1군 경기에 계속하여 출장하였고, 후반기에 중간계투진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2008년 KIA 타이거즈에 영입된 호세 리마에게 여러가지 어드바이스를 받으며 기량을 향상시켰다. 둘은 친한 사이로 알려졌는데 2010년에 리마가 사망한 후 며칠후 양현종은 데뷔 첫 완봉승을 거두면서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2009년윤석민 - 구톰슨 - 로페즈 - 양현종 - 곽정철 - 이대진으로 이루어진 6선발 체제에서 선발진으로 진입하였다. 첫 경기에서 5이닝 2실점으로 무난한 투구를 한 후 5월 26일시점에서는 1점대 방어율을 달리며 호투하였다. 7월에 5경기에 출장하여 14 1/3이닝 동안 10자책 (평균자책 6.28) 으로 부진하기도 하였으나, 이내 페이스를 회복하여 8월 평균 자책점 2.54로 4승을 거뒀고, 9월에도 평균 자책점 2.91으로 2승을 거두는 호투를 보여 주었다. 2009년 최종 성적은 12승 5패 3.15로, 해태와 KIA 타이거즈 역사상 1993년의 김정수 이후 최초로 나온 좌완 10승 투수가 되며 KIA의 우승에 공헌했다. 11월 14일 나가사키에서 열린 한·일 클럽 챔피언십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는 5와 2/3이닝을 1실점으로 막아내 좋은 투구 내용을 보여 주었다.[2]

2010년 개막전에서는 패전투수가 되었지만 이후 경기에서는 타선의 지원과 호투를 앞세워 파죽의 10연승을 내달린다. 이후 팀이 16연패에 빠지는 기간 동안 부진했으나 2010년 7월 9일 한화전에서 5이닝2실점으로 팀을 연패해서 구해 내며 시즌 11승째를 기록. 8월 3일시점에서는 14승 3패로 호투하였다. 이후 8월 부진(4연패)으로 인해 16승 8패로 다승 2위, 시즌 방어율은 4.25(10위)로 시즌을 마쳤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선수에도 발탁되어 중국전에 등판해 호투하였으며 금메달로 병역도 면제되었다.

2011년 10시즌의 혹사, 부상이 겹치면서 부진에 빠졌으나 꾸준히 5선발로 기용되었고 KIA 타선의 지원을 받으며 시즌 7승을 거둔다. 하지만 투구내용은 좋지 않아서 평균자책점 6점대로 시즌을 마치게 된다.

2012년 부상으로 1승을 올리는데 그쳤

2013년 초반에 쾌조의 컨디션을 보이며 전반기에만 9승을 올리지만 옆구리 부상으로 이탈하게 된다. 후반기에 복귀하지만 부상의 여파로 전반기에 비해서는 부진하였고 결국 9승 3패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2014년에도 초반에는 압도적인 구위를 보이며 승승장구 했지만 후반기에 난조를 보이며 성적이 악화되었다. 하지만 선발 로테이션을 꾸준히 지켜내었으며 국내선수중 다승 1위, 탈삼진 1위, FIP 1위, FWAR 1위의 호성적을 남겨 초대 최동원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시즌후 포스팅 시스템을 실시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했지만 KIA의 기대치를 밑도는 150만 달러의 입찰금이 나오며 KIA에 잔류하게 되었다.

특징[편집]

  • 데뷔이후 거듭되는 제구불안으로 팬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해가 갈수록 조금씩 제구력이 향상되었다. 좌우코너웍을 폭넓게 활용하고 있으며 타자에게 몸쪽직구를 능숙하게 던진다.

대표팀 성적[편집]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편집]

중국전 선발등판 - 6이닝, 3피안타, 3사사구, 5탈삼진, 1실점, 승리투수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편집]

대만전 B조 조별예선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뽑힌 양현종은 9월 24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인천아시안게임 야구 예선 B조 두 번째 경기 대만전에 선발 등판, 4이닝 무실점 역투를 하고 차우찬에게 마운드를 넘겨줬다. 양현종은 이날 경기 4이닝 동안 총 60개의 공을 던지며 2안타 7탈삼진 무실점으로 완벽한 투구를 선보였다. 스트라이크 40개, 볼 20개를 던졌다. 양현종은 최고구속 150km가 넘는 직구와 날카로운 슬라이더로 대만 타자들을 꼼짝못하게 했다. 대만전 선발로 활약한 양현종은 결승전 대만전 7회말에도 다시 구원으로 등판하였으나 2안타를 연속으로 허용하고 안지만과 교체되었다.

프로통산성적[편집]

연도 팀명 경기 평균자책점 완투 완봉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2007 KIA 31 4.17 0 0 1 2 0 0 0.333 217 49 2/3 39 7 31 2 48 24 23
2008 48 5.83 0 0 0 5 0 5 0.000 340 75 2/3 77 4 48 1 56 49 49
2009 29 3.15 0 0 12 5 0 1 0.706 627 148 2/3 133 14 58 2 139 55 52
2010 30 4.25 1 1 16 8 0 0 0.667 748 169 1/3 169 9 98 6 145 84 80
2011 28 6.18 1 0 7 9 0 0 0.438 492 106 1/3 116 9 69 4 74 74 73
2012 28 5.05 0 0 1 2 0 2 0.333 201 41 51 3 31 4 26 25 23
2013 19 3.10 1 0 9 3 0 0 0.750 443 104 2/3 99 10 43 6 95 38 36
2014 29 4.25 0 0 16 8 0 0 0.667 732 171 1/3 162 12 77 4 165 85 81
통산 8시즌 242 4.33 3 1 62 42 0 8 0.596 3800 866 2/3 846 68 455 29 748 434 417
  • 시즌 기록 중 굵은 숫자는 해당년도 리그 1위 기록

커리어[편집]

KBO[편집]

국제대회[편집]

주석[편집]

  1. -고교야구- 동성고, 17년 만에 대통령배 우승(종합) 《연합뉴스》, 2005년 5월 4일 작성
  2. 양현종 '요미우리전 완패 속에서 빛난 호투' - 이데일리
  3. 양현종, 첫 실전투구 합격점…‘일본킬러’ 되나 - 일간스포츠

바깥 고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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