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권 (야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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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권
Kim il-Kwon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56년 9월 20일(1956-09-20)(67세)
출신지 전라북도 군산시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외야수
프로 입단 연도 1982년
드래프트 순위 프로 원년 멤버
획득 타이틀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김일권(金一權, 1956년 9월 20일 ~ )은 전 KBO 리그 해태 타이거즈태평양 돌핀스의 선수이다.

한국 프로 야구 원년인 1982년 시즌 도루왕을 포함 프로 통산 5번의 도루왕을 차지했으며, 1989년에는 외야수 부문 골든 글러브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순철, 이종범 이전 타이거즈의 초대 도루왕 겸 부동의 1번타자로 80년대 스타였으나 소위 '불고기 화형식' 뿐 아니라 조창수 전 코치와 충돌사고를 빚는 등[1] 개인주의적인 것 외에도 팀 내부의 단합을 저해하는 스타일이라[2] 해태 측으로부터 애물단지가 되어 1987년 11월 19일 태평양 돌핀스로 현금 트레이드됐고[3] 이 팀에서 이적 첫 해 본인의 처음이자 마지막 3할타율, 2년 연속(89~90년) 도루왕을 기록하여 제 2의 전성기를 누렸지만 1990년 12월 16일 태평양에서 자유계약선수로 풀려 한동안 소속팀을 찾지 못했다가 1991년 1월 9일 LG 트윈스에서 둥지를 틀었으나[4] 이렇다할 활약을 펼치지 못한 채 결국 그 해를 끝으로 은퇴했다.

어린 시절[편집]

김일권은 전북 군산시 둔율동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직업은 교육 행정직 공무원. 겨우 가난은 면할 수 있었다.[5] 군산 남초등학교 4학년 때 특별 활동을 통해 야구를 시작해서 투수와 3루수를 겸했는데, 그때부터 영호남 대회 2연패를 하는 등 운동장을 누볐다.[5]

남초등학교 야구부는 군산 시내 4개 초등학교 중 가장 강팀으로 성장했다. 김일권, 송상복, 양종수, 조양연, 김기철 등 선수 11명의 연습을 눈여겨본 당시 전북 야구협회 이용일 회장과 군산 남중·상고 김병문 교장은 그들을 모두 1968년 창단한 군산남중학교에 특기생으로 입학시킨다. 그중 김일권, 송상복, 양종수, 조양연 등은 3년 후 나란히 군산상고에 입학했다.[5]

현역 은퇴 후[편집]

1991년을 끝으로 은퇴한 뒤 한동안 현장을 떠났다가 한동화 감독이 1993년 시즌 후 2년 계약 형식으로[6]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에 부임하자 고향 팀인 쌍방울 주루코치를 맡아 현장에 돌아왔는데[7] 김충 전 MBC 코치가 감독으로 승격한 한동화 수석코치 후임 물망에 올랐으나 구단 측의 반대로 무산됐고 이 과정에서 한동화 감독의 전임 신용균 감독의 부임과 함께 영입된[8] 성기영 2군감독과 김용남 2군 투수코치, 계형철 1군 투수코치가 각각 수석코치,1군 투수코치, 2군 감독대행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김우열 전 OB 코치가 1994년 6월 13일 쌍방울 1군 타격코치로 부임하면서 생긴 보직 변경에 따라[9] 성기영 김용남 계형철 코치가 김우열 코치 부임 전까지의 보직으로 되돌아갔는데 1991년 10월 22일부터 3년 계약 형식으로 태평양 감독에 취임한[10] 정동진 감독이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여 1993년 시즌 뒤 김인식 감독이 정동진 감독 후임설에 거론될 당시 주루코치 물망에 올랐음에도[11] 역대 인천 팀 감독 중 계약기간을 채운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던 점 뿐 아니라 주전들의 잇따른 부상으로 전력 공백이 컸던 점을 고려하여 김의광 사장이 정동진 감독에게 마지막 기회를 줘 정동진 감독이 태평양에 그대로 잔류하는 바람에 좌절됐다. 한편, 1993년 시즌 후 2년 계약 형식으로[12] 쌍방울 감독에 부임한 한동화 감독은 매년 유망주들을 쌍방울과 1992년 11월 3일부터 자매결연을 맺은[13] 일본프로야구 팀인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가을 캠프에 보내던 관례를 거부하는 등[14] 김인식 창단감독과 마찬가지로 미국야구 신봉자라 소위 '일본통'이었던 이용일 당시 구단주 대행과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결국 1995년 시즌 연패를 반복하면서 하위권으로 추락하자 같은 해 5월 19일 감독에서 해임됐고 이 과정에서 사장 단장이 동시에 해임되었으며 김우열 타격코치가 감독대행으로[15] 승격했다. 그 뒤, 1995년 시즌 후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면서[16] 김우열 감독대행, 성기영 2군감독, 김용남 2군 투수코치, 정영기 1군 수비코치와 함께 팀을 떠났고 프로 첫 팀인 해태 타이거즈 주루코치로 이적했으며 프로 마지막 팀이었던 LG 트윈스 시절 팀 동료인 김재박 감독의 부름을 받아 1997년 시즌 뒤 현대 유니콘스 주루코치로[17] 자리를 옮겼으나 김재박 감독과 사이가 안 좋아졌는지 결국 1년 만에 물러나 또다시 현장을 떠나기도 했다. 이후, 2002년 시즌 뒤 주루플레이와 기동력 강화를 위해 삼성 라이온즈 2군 주루코치로 영입되어[18] 현장에 돌아왔으나 당뇨병 탓인지 2004년 9월 자진 사퇴한 후[19] 프로야구계와 인연을 끊었는데 개인주의적인 것 외에도 팀 내부의 단합을 저해하는 스타일이라[20] 2004년 9월 삼성 2군 주루코치직에서 자진 사퇴한 뒤[21] 프로야구계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신용균 감독 부임과 더불어 쌍방울에서 젊은 선수들과 코치를 야쿠르트 가을캠프에 보내는 관례는 신용균 감독의 후임이자 신 감독과 달리 소위 '미국통'이었던 한동화 감독이 부임하면서 1993년을 끝으로 중단됐다가 1997년부터 재개되어[22] 1998년까지[23] 지속됐다.

김일권을 연기한 배우[편집]

주요 기록[편집]

  • 진한 바탕은 한국 프로 야구 최초 기록임
기록 날짜 소속 구장 상대팀 상대 투수 경기수 달성 당시 나이 기타 각주
100도루 1983. 9. 26 해태 인천 삼미 [24]
200도루 1986. 8. 21 해태 광주 삼성 406 29세 11개월 1일 [25]
300도루 1989. 9. 7 태평양 인천 해태 667 32세 11개월 17일 은퇴시 통산 363개 [25]

통산 기록[편집]

















2

3



















O
P
S












4
1982 해태 26 75 330 282 48 76 12 1 11 36 53 17 42 18 .270 .370 .436 .806 123 4 3 1 2 2
1983 27 96 419 374 45 103 13 1 6 26 48 22 35 34 .275 .347 .364 .711 136 7 6 2 2 3
1984 28 62 274 245 29 59 9 0 2 17 41 12 22 20 .241 .309 .302 .611 74 7 2 5 0 0
1985 29 92 361 316 38 88 11 4 4 38 39 19 33 23 .278 .352 .377 .729 119 4 3 6 3 0
1986 30 96 297 258 32 48 6 1 1 20 22 5 24 20 .186 .259 .229 .487 59 4 2 11 2 0
1987 31 63 204 175 20 40 6 0 0 10 16 8 17 15 .229 .294 .263 .557 46 3 0 10 2 1
1988 태평양 32 89 343 309 35 93 11 5 3 34 26 14 16 8 .301 .337 .398 .735 123 9 3 11 4 1
1989 33 113 437 383 48 100 23 1 1 28 62 22 36 19 .261 .324 .334 .658 128 8 1 14 3 3
1990 34 98 376 336 48 85 9 1 0 27 48 20 32 21 .253 .319 .286 .605 96 7 1 6 1 1
1991 LG 35 58 155 139 21 21 1 2 0 7 8 7 10 9 .151 .212 .187 .399 26 3 1 4 1 0
KBO 통산 : 10년 842 3196 2817 364 713 101 16 28 243 363 146 267 187 .253 .321 .330 .651 930 56 22 70 20 11
  • 시즌 기록 중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최고 기록

각주[편집]

  1. “金一權(김일권) 또 설땅을 잃었다”. 경향신문. 1984년 4월 16일. 2020년 8월 13일에 확인함. 
  2. 조종안 (2014년 5월 6일). "해태 구단의 '불고기 화형식', 내가 주동자 아냐". 오마이뉴스. 2020년 8월 13일에 확인함. 
  3. “金一權(김일권) 태평양 이적”. 동아일보. 1987년 11월 20일. 2020년 8월 13일에 확인함. 
  4. “大盗(대도) 金(김)일권"LG상경"연봉 3,700萬(만)원”. 경향신문. 1991년 1월 10일. 2020년 8월 13일에 확인함. 
  5. '대도 김일권'이 걸어온 영욕의 야구인생 50년 ①', 조종안, 오마이 뉴스
  6. ““쌍방울 10연패 부진 책임져라””. 중도일보. 1995년 5월 17일. 2020년 8월 12일에 확인함. 
  7. “프로야구 코치 새진용마무리”. 문화일보. 1993년 11월 12일. 2020년 8월 12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8. “元年 노장스타 대거 코치진출”. 경인일보. 1992년 11월 2일. 2020년 8월 12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9. “쌍방울,김우열코치 영입”. 문화일보. 1994년 6월 15일. 2020년 8월 12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0. “丁동진씨 태평양과 계약”. 충청투데이. 1991년 10월 24일. 2020년 8월 13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1. “태평양 丁동진감독 교체”. 문화일보. 1993년 9월 8일. 2020년 8월 13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2. ““쌍방울 10연패 부진 책임져라””. 중도일보. 1995년 5월 17일. 2020년 8월 12일에 확인함. 
  13. “프로야구 단신”. 연합뉴스. 1992년 11월 2일. 2020년 8월 12일에 확인함. 
  14. “<감독해부>8.끝 쌍방울 한동화”. 중앙일보. 1994년 11월 15일. 2020년 8월 12일에 확인함. 
  15. 연합 (1995년 9월 2일). “<프로야구 화제>감독,대폭 교체될 듯”. 연합뉴스. 2020년 8월 12일에 확인함. 
  16. 연합 (1995년 10월 19일). “<프로야구 인터뷰> 쌍방울 신임 金星根감독”. 연합뉴스. 2020년 8월 12일에 확인함. 
  17. 정영일 (1997년 12월 19일). “현대 유니콘스 소식”. 경인일보. 2020년 8월 12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8. “삼성, 김일권과 코치 계약”. 일간스포츠. 2002년 11월 21일. 2020년 8월 12일에 확인함. 
  19. 스포츠취재팀 (2004년 10월 3일). “삼성 '권력 지각 변동' 시작되나”. 스포츠한국. 2020년 8월 12일에 확인함. 
  20. 조종안 (2014년 5월 6일). "해태 구단의 '불고기 화형식', 내가 주동자 아냐". 오마이뉴스. 2020년 8월 12일에 확인함. 
  21. 스포츠취재팀 (2004년 10월 3일). “삼성 '권력 지각 변동' 시작되나”. 스포츠한국. 2020년 8월 12일에 확인함. 
  22. 연합 (1997년 11월 7일). “<프로야구소식> 쌍방울,7일부터 야쿠르트와 훈련”. 연합뉴스. 2020년 8월 12일에 확인함. 
  23. 연합 (1998년 11월 2일). “<프로야구소식> 이동수 등 야쿠르트 캠프 참가”. 연합뉴스. 2020년 8월 12일에 확인함. 
  24. '해태 김성한 200안타, 김일권은 도루 1백 개'[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경향신문》1983,9,27
  25. 《2010 Korean Baseball Record Book》,(사)한국야구위원회, 2010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