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 신격호 시게미쓰 타케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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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생 | 1922년 10월 4일 일제 강점기 조선 경상남도 울산군 삼남면 둔기리 |
| 거주지 | |
| 국적 | |
| 학력 | 와세다 대학 |
| 직업 | 기업인 |
| 배우자 | 노순화, 시게미쓰 하츠코, 서미경 |
| 자녀 | 신영자, 신동빈, 신동주, 신유미 |
| 부모 | 아버지 신진수 |
| 친척 | 동생 신춘호, 동생 신준호, 동생 신선호, 동생 신정희 |
신격호(辛格浩, 일본명 시게미쓰 다케오(일본어:
목차 |
생애 [편집]
출생과 생애 초기 [편집]
대한민국 울산광역시 출신으로 일본에서 성공해 일본에 본사를 두고 있는 롯데그룹의 총괄회장이자 명예회장이다. 신격호는 1922년 경상남도 울산군(현재의 울산광역시) 삼남면 둔기리의 아버지 영산신씨 신진수와 어머니 김필순의 아들로, 부유한 가정에서 5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동생 중 신춘호는 후일 농심그룹을 창업하였다.
그러나 아버지 신진수는 재력이 있었으나 자랑을 하지 않았는데, 친척에 의하면 "신회장의 선친은 절대 돈자랑 하지 않았다[1]"고 한다. 그가 태어난 울산군 삼동면은 영산신씨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유학과 일본 출국 [편집]
일찍 일본으로 유학, 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에 입학하여 1944년 와세다 대학 화공학과를 졸업했다. 그 뒤 귀국했다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국내에서 말을 돌보는 일을 하다가, 돈을 벌 작정으로 도일을 결심하고 밀항선에 몸을 싣는다.[2] 그는 이때만 해도 온갖 일로 생활을 꾸려가며 작가 지망생이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그 꿈을 접고 생활전선으로 뛰어들게 된다.[2]
이때부터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이때 처음 일본에서 시작한 것이 껌이었다. 사업을 시작하는 이때만 해도 배고픔이 먼저였던 전쟁 직후라 주전부리에 불과했던 ‘껌 사업’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들이 많았다. 하지만 주변의 예상과는 달리 일본 내에서 '풍선껌'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성공하게 되었다.[2]
일본에서의 기업 활동 [편집]
1948년부터 사업을 시작하였다. 1949년 일본에서 주식회사 롯데를 설립하였으며 1959년 롯데상사, 1961년 롯데부동산, 1967년 롯데아도, 1968년 롯데물산, 주식회사 훼밀리 등 상업, 유통업 으로 일본의 10대 재벌이 되었으며, 일본에서는 해방전 창씨개명으로 인해 바꾼 이름인 시게미쓰 다케오라는 일본식 이름을 쓰게 되었다.
한편 그의 고향에서는 아버지 신진수는 지난 68년경 고향을 떠나 73년 작고할때까지 서울에서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1] 1968년-1969년 사이 울산국가산업단지에 공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대암댐(69년 12월 준공)을 건설하면서 마을이 수몰, 신씨일가 40여 가구가 이주하면서 대부분 흩어졌고 이때 신격호 역시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1] 마을이 수몰되자 그의 친ㆍ인척과 고향 사람들이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3] 이를 아쉬워한 신 총괄회장이 1971년부터 `둔기회`를 만들어 매년 5월 첫째 주말에 마을잔치를 열고 있다.[3] 이후 그는 매년 고향인 울산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에서 마을 잔치를 열었다.[4]
그 뒤 일본에서 계속 기업활동을 하며 유통업 외에도 다른 분야로도 사업을 확장, 1970년 롯데회관을 세우고, 그 뒤 1971년에는 롯데오리온즈구단을 창단하고 초대 구단주가 됐다. 1972년 롯데리아, 1978년 롯데리스 등을 세웠다. 또한 전자 쪽으로도 진출하여 1971년 롯데전자를 세우고 1985년 롯데데이타센타, 1987년 롯데엔지니어링 등을 설립하는 등 사업을 확장했으며 일본의 10대 재벌의 한사람으로 성장하였다.
한국 진출 [편집]
1966년 이후에는 사업을 한국으로 확장, 1966년 롯데알미늄,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하였다. 그 뒤 한국에서도 사업을 다른 분야로도 확장하여 1973년 호텔롯데·롯데전자·롯데기공, 1974년 롯데산업·롯데상사·롯데칠성음료 등을 설립했고, 1978년 롯데삼강, 롯데건설, 롯데햄,롯데우유, 1979년 롯데쇼핑, 1980년 한국후지필름, 1982년 롯데자이언츠·롯데캐논·대홍기획 등을 설립했다.또한 1978년에는 롯데크리스탈호텔을 건설하였다.
홀수달에는 한국에서, 짝수달에는 일본에 머물며 그룹을 경영해 ‘대한해협의 경영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와세다 실업학교(早稻田實業學校, 일본어: 早稲田実業学校)를 졸업했다. 국내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동탑산업훈장과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수상하였다. 2006년 포브스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신격호 회장 일가의 재산은 약 45억달러로 세계 136위이다. 현재 부인은 시게미쓰 하츠코(重光 初子, 또는 타케모리 하츠코)이다.
상훈 경력 [편집]
가족 관계 [편집]
- 아버지 : 신진수(辛鎭洙, 1902년 ~ 1973년)
- 어머니 : 김필순
- 첫째 부인 : 노순화(? ~ 1960년 사망)
- 장녀 : 신영자(辛英子) - 롯데쇼핑 사장
- 둘째 부인 : 시게미쓰 하츠코(일본어:
重光 初子 , 일본어:竹森 初子 타케모리 하츠코 (결혼전)[*]) - 셋째 부인 : 서미경, 탤런트
- 차녀 : 신유미 - 롯데호텔 고문
- 동생 : 신춘호(辛春浩) - 농심 회장
- 동생 : 신준호 - (주)푸르밀 회장
- 조카 : 신동학
- 동생 : 신선호 - 일본 산사스(주) 사장
- 여동생 : 신정희 - 동화면세점 사장
- 5촌 조카 : 신동인(辛東仁) - 한국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대행
일화 [편집]
둔기회 [편집]
영산 신씨 집성촌인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는 1969년 울산공단 공업용수를 위한 댐 건설로 일부 지역이 수몰되자 신 총괄회장의 친·인척과 고향 사람들이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 이를 안타까워한 신 총괄회장은 1971년부터 ‘둔기회’를 만들어 매년 5월 첫째 주말에 마을잔치를 열고 있다. 첫해 수십 명에 불과했던 둔기회 회원 수도 자손들이 늘면서 지금은 1100여 세대가 됐다.
형제간 다툼 [편집]
롯데가는 유난히 형제간 다툼이 심해 신 총괄회장은 '비운의 빅 브라더'로 불리기도 했다. 1966년에는 롯데주식회사 대표이사를 지내고 있던 둘째 동생 신철호씨가 롯데 화학공사를 설립하기 위해 형 신격호씨와 세째 동생 신춘호씨의 도장을 위조해 회사공금 4억 2천여 만원을 가로챘다고 고소했으며,[5] 1973년에는 신춘호씨와 법정 소송을, 1996년에는 막내 신준호씨와 땅문제로 법정 소송을 벌였다.[6]
신진수 유골 도난 사건 [편집]
1999년 3월초 울산군에 있던 아버지 신진수의 묘소 유골이 절도범에 의해 도난당했다. 3월 4일 오전 8시35분께 40대 남자가 서울 소공동 롯데빌딩 26층 신회장 비서실로 전화를 걸어 "회장 부친의 묘소를 확인해보라"고 해 그룹 관계자들이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면 대암리 선산으로 급히 내려가 확인한 결과 아버지 신진수의 묘소가 도굴되고 유골이 없어졌다는 것이다.[7] 이어 범인은 같은날 오후 4시35분과 4시40분께 신회장 비서실로 다시 전화를 걸어 "묘소를 확인해봤느냐"고 묻고 "경찰과 언론에 알리지 말라"고 협박한 뒤 전화를 끊었다.[7]
범인은 또 3월 5일 오전 11시께 2차례 전화를 걸어 "유골을 돌려줄테니 회사 직원 2명이 승용차 트렁크에 8억원을 넣어 5일 밤 8시까지 부산에 내려와 돈을 넘겨줄 것"을 요구했다.[7] 경찰은 훼손된 묘지 주변에서 곡괭이 1개와 관 뚜껑을 열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장도리 2개를 발견했으며 서울경찰청 감식반 요원들이 현장에 파견돼 지문채취등 정밀감식 작업을 벌이고 있다.[7] 경찰은 4일과 5일 신회장 비서실에 5차례 협박전화를 걸어 "유골을 보관하고 있다"며 8억원을 요구한 40대 남자를 추적하였다.[7]
범인들은 1999년 3월 7일에 정금용(鄭金溶·38·무직), 임종순 등이 모두 경찰에 검거되었다. 경찰에 붙잡힌 용의자 가운데 한 사람인 임종순(任鐘淳·34)은 “롯데와는 관련이 없고 원한도 없다. 쉽게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아 일을 저질렀다”라고 말했다.[8] 롯데그룹 관계자들은 그동안 이 사건이 롯데그룹이나 그룹 총수에 대한 원한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밝혀질 경우, 그룹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주지 않을까 걱정[8]하기도 했다. 그러나 원한관계는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고 수사는 종결되었다.
기타 [편집]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대암댐 근처, 그가 살았던 마을과 가장 가까운 곳에 그의 별장이 있으며, 신격호는 매년 한 두차례 이곳에 와서 쉬며 선친묘소를 참배하고 있다[1]고 한다.
친척이며 신격호 회장과 8촌인 신정호는 그에 대해 "서울로 간 후에도 이곳에 있는 가까운 친척들에게 논을 사주는 등 친인척들을 많이 보살폈다"고 한다. 또한 그는 또 "신회장의 선친은 절대 돈자랑 하지 않았다"면서 "가난한 친인척들에게는 먹을 양식까지 보내주었다"고 회고했다.[1]
같이 보기 [편집]
주석 [편집]
- ↑ 가 나 다 라 마 <신격호 롯데회장 선친 유골도난 이모저모> 연합뉴스 1999.03.05
- ↑ 가 나 다 식품재벌 롯데, 왜 라면은 만들지 않을까
- ↑ 가 나 42년째 마을잔치 연 신격호 총괄회장 "요즘 사람들 힘든 일 안해" 매일경제 2012.05.06
- ↑ 신격호 회장, 42년 이어진 고향 사랑 문화일보 2012년 05월 07일자
- ↑ 兄弟끼리 財産獨占 싸움 동아일보 1966.12.17
- ↑ 롯데「형제간 땅싸움」내일 공판 매일경제 1996.10.9
- ↑ 가 나 다 라 마 신격호 롯데회장 선친유골 도난… 8억요구 문화일보 1999.03.05
- ↑ 가 나 신격호 회장 선친 유골 도난 사건
참고 자료 [편집]
- <신격호 롯데회장 선친 유골도난 이모저모> 연합뉴스 1999.03.05
- 42년째 마을잔치 연 신격호 총괄회장 "요즘 사람들 힘든 일 안해" 매일경제 2012.05.06
- 42년째 이어진 신격호 회장 고향 사랑 한국일보 2012.05.06
- 미스롯데 출신 신격호 회장 셋째부인과 딸, 롯데쇼핑 주주로 아시아경제 2008.10.27
- '신격호 회장의 샤롯데' 서미경씨는 누구 아시아경제 2008.10.28
- 롯데 신격호 회장, 말로는 '상생협력' 그러나 현실은… 노컷뉴스 2012.07.18
- 신회장 선친 묘터 옮길까 한국일보
바깥 고리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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