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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대한민국의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대한축구협회에 의해 구성된다.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강팀으로,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처음 국제 무대에 발을 내디뎠고 월드컵 진출은 1954년 FIFA 월드컵 스위스 대회가 처음이다.
이후 1986년 FIFA 월드컵 멕시코 대회부터 2010년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회까지 7회 연속 본선에 진출했으며, 일본과 공동개최한 2002년 FIFA 월드컵에서는 4위를 기록하였다. 이는 아시아 축구 연맹에 포함된 국가 중에서 최고의 성적이다.
[편집] 월드컵 역사
[편집] 1954년 스위스 월드컵
한국은 예선에서 일본을 꺾고 1954년 FIFA 월드컵에 첫 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뒤늦게 나온 여권으로 인하여 헝가리전이 예정된 시각보다 고작 2시간 정도 일찍 경기장에 도착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현지적응은 커녕 여행 중 쌓인 피로조차 풀지 못하고,우리나라는 이때 월드컵 경험이 없어서 등번호를 안차고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겨우겨우 통과함) 그래서 헝가리에게 0:9, 터키에게 0:7이라는 큰 점수차로 패하여 이 대회의 최하위를 기록하여 세계의 높은 장벽만을 실감했다. 이후, 계속된 노력에도 불구하고 32년 만인 1986년 FIFA 월드컵에서야 월드컵 본선 무대를 다시 밟게 되었다. 1958년 FIFA 월드컵에서는 참가신청서를 분실하여 참가하지 못하였고, 1966년 FIFA 월드컵에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참가로 인해 스스로 기권하였다.
[편집] 1986년 멕시코 월드컵
1986년 FIFA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조별 예선 첫 번째 경기에서 마라도나의 활약을 막지 못하고 3골을 내줬다. 하지만 대한민국도 막판 분전을 하여 후반 28분 박창선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최초의 월드컵 경기에서의 득점을 성공시켰지만, 1:3으로 패한다. 두 번째 경기인, 불가리아와의 경기에서는 김종부의 득점에 힘입어 1:1로 비기며, 월드컵 사상 첫 승점을 따낸다. 그러나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이탈리아전에서 편파판정에 시달린 끝에 2:3으로 패하며 1무 2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이탈리아전에서 이탈리아 측에서 패널티킥을 얻었지만 골포스트를 맞춰서 실패하였다. 비록 16강 진출에는 좌절했지만 월드컵에 진출한 역사상 처음으로 골을 넣고 첫 승점을 따낸 대회였다.
[편집]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2회 연속으로 진출한 1990년 FIFA 월드컵에서 한국은 벨기에에게 0 : 2 패, 스페인에게 1 : 3 패, 우루과이에게 0:1 패로 월드컵 조별 예선 최악의 성적인 3패를 기록하였다. 스페인전의 황보관의 프리킥 골이 유일한 득점이였다.
[편집] 1994년 미국 월드컵
1994년 FIFA 월드컵에서는 도하의 기적에 힘입어 3회 연속으로 본선에 진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1차전인 스페인와의 경기에서 후반 45분에 터진 서정원의 골로 2:2 무승부를 기록함으로써, 지난 1990년 FIFA 월드컵에 이어 스페인에게 2번 연속 패배를 간신히 면했다. 볼리비아와의 2차전에서는 0 : 0으로 무승부를 거두어, 대한민국 월드컵 사상 최초로 승점 2점을 땄다. 그러나 3차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2 : 3으로 패함으로써 조 3위를 기록한 팀들 중에서 최하위 순위에 머물러 16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조 3위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전까지는 최고의 성적이었다.
[편집] 1998년 프랑스 월드컵
4회 연속으로 진출한 1998년 FIFA 월드컵에서는 1차전 멕시코전에서 한국은 하석주의 선제골로 앞서 나갔지만, 하석주가 득점을 기록한 이후 퇴장을 당하였고, 이후 연이어 실점을 거듭하여 1:3으로 패배했다. 2차전은 조별 예선 상대 중 가장 강한 네덜란드였다. 선수들은 기량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0:5로 대패했다.
당시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은 이후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감독을 맡게 되는 거스 히딩크였다. 대표팀은 네덜란드전의 대패 여파로 인해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차범근 감독이 대회 도중에 경질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겪게 되었다.
마지막 경기였던 벨기에전에서 한국은 유상철의 동점골로 1:1로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1무 2패로 다시 한 번 16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편집] 2002년 한국-일본 월드컵
대한민국과 일본에서 개최된 2002년 한국-일본 월드컵은 한국 축구 역사는 물론 세계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대회였다. 네덜란드 출신의 거스 히딩크 감독의 지휘 아래 맞이한 폴란드와의 예선 첫 경기에서 황선홍, 유상철의 득점으로 1954년 FIFA 월드컵에 출전한 이후 월드컵 사상 첫 승을 거두었다.
예선 두 번째 시합이었던 미국과의 경기에서, 전반전에는 미국이 한국을 제압했다. 전반전에 미국은 클린트 매시스의 선제골로 앞서가고, 한국은 이을용이 페널티킥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후반전에는 안정환의 동점골이 터지면서 1:1무승부를 기록하며 사상 첫 16강 진출에 대한 희망을 이어나갔다.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포르투갈의 두 선수 (주앙 핀투, 베투)가 퇴장당한 가운데, 박지성의 득점으로 1:0승리. D조 1위로 16강에 최초로 진출하였다. 이 때 포르투갈에는 아홉 명의 선수만 남아 있었다.
16강전의 상대는 이탈리아였다. 한국은 전반 3분 안정환이 페널티킥 기회를 놓치면서 미국전에 이어 2번째로 실축하였다. 게다가, 이탈리아의 크리스티안 비에리에게 선취점을 내주면서 리드를 허용했으나, 후반 43분에 설기현이 동점골을 넣고, 연장 후반전에 안정환이 역전골을 넣으며 2-1로 승리하여 8강에 진출하였다. 당시, 이탈리아 대표팀 선수였던 프란체스코 토티는 연장전에서 시뮬레이션 액션을 이유로 두 번째 경고를 받고 퇴장당했는데, 이 판정에 관한 논란이 뜨거웠다.[2] 하지만 당시 이탈리아 선수들의 팔꿈치가격으로 인해 김태영, 김남일 같은 선수들이 줄부상을 입기도 했다.[3]
8강전의 상대는 스페인이었다. 이 경기에서 양팀은 정규 시간과 연장을 모두 거친 후에도 0:0 무승부를 기록하였고, 경기는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결국 스페인의 4번째 키커인 호아킨 산체스의 슛을 골키퍼 이운재가 막아내고, 한국의 마지막 키커였던 홍명보가 승부차기를 성공시키며 한국은 사상 최초로 월드컵 4강에 진출하였다.
4강전에서 한국은 독일의 미하엘 발라크에게 득점을 허용하며 0:1로 패배하였다. 결국 한국은 브라질에게 패한 터키와 3·4위전을 치르게 되었다. 3·4위전에서는 이을용이 골을 기록했지만 터키의 하칸 쉬퀴르의 최단 시간 골과 일한 만시즈의 추가골로 인해 패배했다. 그리고, 90분이 지나고 추가시간에 송종국이 추가골을 넣었지만 2:3으로 패하여 4위를 기록했다.
또한 대표팀 서포터즈인 붉은악마를 중심으로 한 길거리 응원은 월드컵의 또다른 볼거리로 꼽혔다. 2002년 월드컵 개인별 수상으로 주장이자 수비의 핵이었던 홍명보가 브론즈볼을 수상하였다.
[편집] 2006년 독일 월드컵
2002년 한일 월드컵 직후 명예롭게 떠난 거스 히딩크의 후임으로 움베르투 코엘류를 기용하고 얼마 안가 경질하더니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당시 나이지리아를 이끌고 에르난 크레스포의 아르헨티나를 이기고 금메달을 획득했던 경험이 있는 조 본프레레를 감독으로 앉혔다가 또 다시 얼마 못가 경질했다. 그렇게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선임되어 2006년 월드컵을 준비하게 되었고 뒤늦게 부임한 아드보카트는 시간부족에 허덕여야 했다.
2006년 FIFA 월드컵 조별 예선 1차전에서 토고에게 전반 선제골을 내주었으나 이천수, 안정환의 연속골로 2:1 역전승을 거두며 월드컵 원정 사상 첫 승을 기록했다. 2차전 프랑스와의 경기에서는 박지성의 동점골로 1:1무승부를 기록했다.
마지막 상대인 스위스와의 3차전에서는 0 : 2로 패하여 1승 1무 1패를 기록하여 2승 1무를 기록한 스위스에게 밀렸는데 프랑스가 후반전에서 2골을 넣어 2:0으로 프랑스가 승리하여 1승 2무가 된 프랑스에게도 밀려 16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3차전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알렉산더 프라이에게 허용했던 두 번째 실점에 대해서는 오프사이드 논란이 뜨거웠고, 한국 내에서는 당시 주심이었던 오라시오 엘리손도에 대한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FIFA의 정밀 분석 결과 오프사이드가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다.[4] 또한, 경기 후 24시간 안에 국제축구연맹에 500만명의 국민이 항의시 재경기가 가능하다는 헛소문이 퍼지기도 하였다.[5]
[편집]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3차 예선에서 3승 3무(3조 1위), 최종 예선 4승 4무(B조 1위)로 1954년, 1990년 대회에 이어 다시 한번 무패로 예선을 통과하였다.
한편 3차 예선과 최종 예선에서 모두 대한민국과 같은 조에 편성되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B조 2위로 본선 직행을 결정지어, 역사상 1974년 FIFA 월드컵에서 참가한 동독과 서독에 이어 두 번째로 분단국가가 월드컵에 동시에 참가하게 되었다.
조 추첨 결과,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그리스와 한 조인 B조에 속했다. 첫 경기 상대인 그리스를 만나 이정수와 박지성의 득점으로 2 : 0으로 승리하여 원정 경기에서 유럽 팀을 상대로 첫 승을 거두었다.
다음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는 박주영의 자책골과 곤살로 이과인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였다. 이청용의 만회골로 한 점을 만회했으나 결국 1 : 4로 패하고 말았다. 특히 이과인의 두번째 골(한국의 3번째 실점)은 오프사이드라는 결론이 나와 논란이 일었다. 같은 날에 열린 그리스와 나이지리아의 경기에서 그리스가 2 : 1로 역전승을 거둠으로써, 대한민국이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자력으로 16강에 진출하는 길은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길 밖에 없었으며 패배할 경우 무조건 탈락, 무승부를 거둘 경우 아르헨티나가 그리스를 상대로 승리해야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으며 아르헨티나와 그리스가 무승부를 기록할 경우 골득실으로 진출팀이 결정되게 되었다.
예선 마지막 경기인 나이지리아와의 게임에서는 우체의 선제골이 있었지만 이정수의 동점골로 만회하였고 이어 박주영이 프리킥으로 역전골을 터뜨려 2 : 1로 앞서던 도중 김남일의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얻은 나이지리아의 야쿠부가 동점골을 넣어 경기는 2 : 2동점으로 끝났다. 하지만 같은 시각에 열린 아르헨티나가 그리스를 상대로 데미첼리스와 팔레르모의 골로 2 : 0승리하여서 대한민국은 조 2위의 자리로 16강에 진출하였다. 결국, 대한민국이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같은 승점인 1승 1무 1패, 골득실차도 -1를 기록했지만 아르헨티나가 3승으로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함으로써, 사상 처음으로 원정 16강에 진출하는데 성공하였다. 한편, 대한민국과 월드컵 본선에 동반 진출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3패에 골득실 -11로 조 최하위뿐만 아니라 32개 참가팀 중에서도 최하위로 탈락하였다.
16강전에서 대한민국은 A조 1위인 우루과이와 경기를 치루게 되었다. 경기 초반 우루과이의 수아레즈에게 역습을 통한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후반 이후 경기 흐름을 다시 주도를 만들게 되면서 후반 23분 이청용의 득점으로 동점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수아레즈에게 후반 35분 역전 결승골을 내줘 1 : 2로 패배하여 8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또한 대한민국은 스페인에 이어 페어플레이상 2위에 오르기도 했었다. 대한민국은 이 대회에서 미국, 이탈리아와 더불어 전 경기 득점을 기록하였다. 대한민국이 전 경기에서 득점을 올린 일은 1986년 대회 이후 24년만이다.
|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경기 결과 |
|
[편집] 코칭 스태프
[편집] 선수단
[편집] 현재 선수 명단
2012년 2월 10일 쿠웨이트와 2014년 월드컵 예선 경기에 소집된 선수 명단. (출장 수와 골 수 기준: 2012년 2월 29일)
| # |
이름 |
생일 (나이) |
클럽 |
출장 |
골 |
데뷔 |
| 골키퍼 |
|
정성룡 |
1985년 1월 4일(1985-01-04) (27세)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41
|
-32
|
v. 칠레, 2008년 1월 30일 |
|
김영광 |
1983년 6월 28일(1983-06-28) (28세) |
울산 현대 |
15
|
-12
|
v. 오만, 2004년 2월 14일 |
|
권순태 |
1984년 9월 1일(1984-09-01) (27세) |
상주 상무 피닉스 |
0
|
0
|
N/A |
| 수비수 |
|
김창수 |
1985년 9월 12일(1985-09-12) (26세) |
부산 아이파크 |
2
|
0
|
v. 시리아, 2009년 2월 1일 |
|
홍정호 |
1989년 8월 12일(1989-08-12) (22세) |
제주 유나이티드 |
14
|
0
|
v. 나이지리아, 2010년 8월 11일 |
|
곽태휘 |
1981년 7월 8일(1981-07-08) (30세) |
울산 현대 |
23
|
4
|
v. 칠레, 2008년 1월 30일 |
|
최효진 |
1983년 8월 18일(1983-08-18) (28세) |
상주 상무 피닉스 |
16
|
1
|
v. 투르크메니스탄, 2008년 6월 14일 |
|
박원재 |
1984년 5월 28일(1984-05-28) (27세) |
전북 현대 모터스 |
9
|
0
|
v. 칠레, 2008년 1월 30일 |
|
이정수 |
1980년 1월 8일(1980-01-08) (32세) |
알 사드 |
49
|
5
|
v.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2008년 3월 26일 |
|
김형일 |
1984년 4월 27일(1984-04-27) (27세) |
상주 상무 피닉스 |
2
|
0
|
v. 사우디아라비아, 2009년 6월 10일 |
|
오범석 |
1984년 7월 29일(1984-07-29) (27세) |
수원 삼성 |
39
|
2
|
v. 콜롬비아, 2005년 1월 16일 |
|
조성환 |
1982년 4월 9일(1982-04-09) (29세) |
전북 현대 모터스 |
4
|
0
|
v. 베트남, 2003년 10월 19일 |
| 미드필더 |
|
신형민 |
1986년 7월 18일(1986-07-18) (25세) |
포항 스틸러스 |
8
|
0
|
v. 핀란드, 2010년 1월 18일 |
|
김정우 |
1982년 5월 9일(1982-05-09) (29세) |
전북 현대 |
66
|
6
|
v. 베트남, 2003년 10월 19일 |
|
한상운 |
1986년 5월 3일(1986-05-03) (25세) |
성남 일화 천마 |
2
|
0
|
v. 우즈베키스탄, 2012년 2월 25일 |
|
김상식 |
1976년 12월 17일(1976-12-17) (35세) |
전북 현대 모터스 |
60
|
2
|
v. 유고슬라비아, 2000년 5월 29일 |
|
이근호 |
1985년 4월 11일(1985-04-11) (26세) |
울산 현대 |
41
|
11
|
v. 이라크, 2007년 6월 29일 |
|
최태욱 |
1981년 3월 13일(1981-03-13) (30세) |
FC서울 |
30
|
4
|
v. 몽골, 2000년 4월 7일 |
|
하대성 |
1985년 3월 2일(1985-03-02) (27세) |
FC서울 |
3
|
0
|
v. 카타르, 2008년 11월 15일 |
|
김치우 |
1983년 11월 11일(1983-11-11) (28세) |
상주 상무 피닉스 |
25
|
4
|
v. 가나, 2006년 10월 8일 |
|
김두현 |
1982년 7월 14일(1982-07-14) (29세) |
경찰청 |
61
|
11
|
v. 일본, 2003년 4월 16일 |
|
기성용 |
1989년 1월 24일(1989-01-24) (23세) |
셀틱 |
45
|
5
|
v. 요르단, 2008년 9월 5일 |
|
김재성 |
1983년 10월 3일(1983-10-03) (28세) |
상주 상무 피닉스 |
15
|
2
|
v. 잠비아, 2010년 1월 9일 |
| 공격수 |
|
김신욱 |
1988년 4월 14일(1988-04-14) (23세) |
울산 현대 |
8
|
0
|
v. 일본, 2011년 8월 10일 |
|
이동국 |
1979년 4월 29일(1979-04-29) (32세) |
전북 현대 모터스 |
88
|
28
|
v. 자메이카, 1998년 5월 6일 |
|
박주영 |
1985년 7월 10일(1985-07-10) (26세) |
아스날 |
58
|
24
|
v. 우즈베키스탄, 2005년 6월 3일 |
[편집] 최근 차출된 선수 명단
최근 12달 이내에 국가대표팀에 소집된 선수 명단. 은퇴한 선수는 명단에 없다.
| # |
이름 |
생일 (나이) |
클럽 |
출장 |
골 |
최근 소집 |
| 골키퍼 |
|
김용대 |
1979년 10월 11일(1979-10-11) (32세) |
FC 서울 |
21
|
0
|
v. 우즈베키스탄, 2011년 1월 28일 |
|
김진현 |
1987년 7월 6일(1987-07-06) (24세) |
세레소 오사카 |
0
|
0
|
N/A |
| 수비수 |
|
조용형 |
1983년 11월 3일(1983-11-03) (28세) |
알라얀 |
41
|
0
|
v. 우즈베키스탄, 2011년 1월 28일 |
|
김영권 |
1990년 2월 27일(1990-02-27) (22세) |
오미야 아르디자 |
7
|
1
|
v. 나이지리아, 2010년 8월 11일 |
|
조병국 |
1981년 7월 1일(1981-07-01) (30세) |
주빌로 이와타 |
11
|
1
|
v. 콜롬비아, 2003년 3월 29일 |
|
황재원 |
1981년 4월 13일(1981-04-13) (30세) |
성남 일화 천마 |
11
|
1
|
v. 가나, 2011년 6월 7일 |
|
박주호 |
1987년 1월 16일(1987-01-16) (25세) |
바젤 |
7
|
0
|
v. 일본, 2011년 8월 10일 |
|
이재성 |
1988년 7월 5일(1988-07-05) (23세) |
울산 현대 |
1
|
0
|
v. 일본, 2011년 8월 10일 |
|
차두리 |
1980년 7월 25일(1980-07-25) (31세) |
셀틱 |
65
|
4
|
v. 세네갈, 2001년 11월 8일 |
| 미드필더 |
|
조찬호 |
1986년 4월 10일(1986-04-10) (25세) |
포항 스틸러스 |
1
|
0
|
v. 온두라스, 2011년 3월 25일 |
|
이용래 |
1986년 4월 17일(1986-04-17) (25세)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17
|
0
|
v. 시리아, 2010년 12월 30일 |
|
서정진 |
1989년 9월 6일(1989-09-06) (22세) |
전북 현대 모터스 |
3
|
0
|
v. 아랍에미리트, 2011년 10월 11일 |
|
윤빛가람 |
1990년 5월 7일(1990-05-07) (21세) |
성남 일화 천마 |
13
|
2
|
v. 나이지리아, 2010년 8월 11일 |
|
구자철 |
1989년 2월 27일(1989-02-27) (23세) |
FC 아우크스부르크 |
25
|
9
|
v. 중국, 2008년 2월 17일 |
|
고창현 |
1983년 9월 15일(1983-09-15) (28세) |
울산 현대 |
0
|
0
|
v. 온두라스, 2011년 3월 25일 |
|
고명진 |
1988년 1월 9일(1988-01-09) (24세) |
FC 서울 |
0
|
0
|
v. 가나, 2011년 6월 7일 |
|
이청용 |
1988년 7월 2일(1988-07-02) (23세) |
볼튼 원더러스 |
40
|
5
|
v. 가나, 2011년 6월 7일 |
|
남태희 |
1991년 7월 3일(1991-07-03) (20세) |
레크위야 |
7
|
0
|
v. 터키, 2011년 2월 9일 |
|
이승현 |
1985년 7월 25일(1985-07-25) (26세) |
전북 현대 모터스 |
4
|
0
|
v. 가나, 2011년 6월 7일 |
|
염기훈 |
1983년 3월 30일(1983-03-30) (28세) |
경찰청 |
43
|
3
|
v. 쿠웨이트, 2011 9월 6일 |
|
김보경 |
1989년 10월 6일(1989-10-06) (22세) |
세레소 오사카 |
11
|
0
|
v. 쿠웨이트, 2011 9월 6일 |
|
조영철 |
1989년 5월 31일(1989-05-31) (22세) |
오미야 아르디자 |
3
|
0
|
v. 쿠웨이트, 2011 9월 6일 |
|
박현범 |
1987년 5월 7일(1987-05-07) (24세)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1
|
0
|
v. 쿠웨이트, 2011 9월 6일 |
|
이현승 |
1988년 12월 14일(1988-12-14) (23세) |
전남 드래곤즈 |
0
|
0
|
v. 아랍에미리트, 2011년 10월 11일 |
| 공격수 |
|
박기동 |
1988년 11월 1일(1988-11-01) (23세) |
광주 FC |
1
|
0
|
v. 온두라스, 2011년 3월 25일 |
|
지동원 |
1991년 5월 28일(1991-05-28) (20세) |
선덜랜드 |
15
|
8
|
v. 시리아, 2010녀 12월 30일 |
|
정조국 |
1984년 4월 23일(1984-04-23) (27세) |
낭시 |
13
|
4
|
v. 쿠웨이트, 2011 9월 6일 |
|
손흥민 |
1992년 7월 8일(1992-07-08) (19세) |
함부르크 SV |
8
|
1
|
v. 시리아, 2010년 12월 30일 |
[편집] 기록
[편집] 월드컵 기록
| 본선 |
|
예선 |
| 연도 |
결과 |
순위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1930년 |
참가 자격 없음 |
- |
- |
- |
- |
- |
- |
1934년 |
- |
- |
- |
- |
- |
- |
1938년 |
- |
- |
- |
- |
- |
- |
1950년 |
참가 미신청 |
- |
- |
- |
- |
- |
- |
1954년 |
1라운드 |
16 |
2 |
0 |
0 |
2 |
0 |
16 |
2 |
1 |
1 |
0 |
7 |
3 |
1958년 |
FIFA 참가 신청서 분실로 불참 |
- |
- |
- |
- |
- |
- |
1962년 |
본선 진출 실패 |
4 |
2 |
0 |
2 |
6 |
9 |
1966년 |
북한이 진출해 기권 |
- |
- |
- |
- |
- |
- |
1970년 |
본선 진출 실패 |
4 |
1 |
2 |
1 |
6 |
5 |
1974년 |
8 |
3 |
4 |
1 |
10 |
4 |
1978년 |
12 |
5 |
6 |
1 |
16 |
9 |
1982년 |
3 |
2 |
0 |
1 |
7 |
4 |
1986년 |
1라운드 |
20 |
3 |
0 |
1 |
2 |
4 |
7 |
8 |
7 |
0 |
1 |
17 |
3 |
1990년 |
1라운드 |
22 |
3 |
0 |
0 |
3 |
1 |
6 |
11 |
9 |
2 |
0 |
30 |
1 |
1994년 |
1라운드 |
20 |
3 |
0 |
2 |
1 |
4 |
5 |
13 |
9 |
3 |
1 |
32 |
5 |
1998년 |
1라운드 |
30 |
3 |
0 |
1 |
2 |
2 |
9 |
12 |
9 |
2 |
1 |
28 |
8 |
 2002년 |
4위 |
4 |
7 |
3 |
2 |
2 |
8 |
6 |
- |
- |
- |
- |
- |
- |
2006년 |
1라운드 |
17 |
3 |
1 |
1 |
1 |
3 |
4 |
12 |
7 |
3 |
2 |
18 |
7 |
2010년 |
16강 |
15 |
4 |
1 |
1 |
2 |
6 |
8 |
14 |
7 |
7 |
0 |
22 |
7 |
2014년 |
? |
? |
? |
? |
? |
? |
? |
? |
6 |
4 |
1 |
1 |
14 |
4 |
2018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2022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합계 |
|
|
28 |
5 |
8 |
15 |
28 |
61 |
109 |
66 |
31 |
12 |
214 |
69 |
[편집] 컨페더레이션스컵 기록
[편집] 하계 올림픽 기록
- 1980년 하계 올림픽은 대다수 서방 세계 국가들이 보이콧하였다. 대한민국 역시 이에 동참하였기 때문에 예선 참가조차 하지 않았다.
[편집] 아시안컵 기록
[편집] 아시안 게임 기록
[편집] 다이너스티컵 / 동아시아컵 기록
| 연도 |
결과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1990년 |
우승 |
4 |
3 |
1 |
0 |
5 |
1 |
1992년 |
준우승 |
4 |
1 |
4 |
0 |
5 |
3 |
1995년 |
준우승 |
4 |
1 |
3 |
0 |
6 |
5 |
1998년 |
3위 |
3 |
2 |
0 |
1 |
4 |
3 |
2003년 |
우승 |
3 |
2 |
1 |
0 |
4 |
1 |
2005년 |
4위 |
3 |
0 |
2 |
1 |
1 |
2 |
2008년 |
우승 |
3 |
1 |
2 |
0 |
5 |
4 |
2010년 |
준우승 |
3 |
2 |
0 |
1 |
8 |
4 |
| 합계 |
8/8 |
27 |
12 |
13 |
3 |
38 |
23 |
[편집] 골드컵 기록
| 연도 |
결과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2000년 |
조별 리그 |
2 |
0 |
2 |
0 |
2 |
2 |
2002년 |
4위 |
5 |
0 |
2 |
3 |
3 |
7 |
| 합계 |
|
7 |
0 |
4 |
3 |
5 |
9 |
[편집] 개인 기록
아래 기록은 2012년 2월 29일을 기준으로 한다.
[편집] 최다 출장 선수
현역 선수는 굵은 글씨로 나타냄.
| # |
이름 |
활동 기간 |
경기 |
골 |
| 1 |
홍명보 |
1990–2002 |
135 |
9 |
| 2 |
이운재 |
1994–2010 |
132 |
-114 |
| 3 |
이영표 |
1999–2011 |
127 |
5 |
| 4 |
유상철 |
1994–2006 |
122 |
18 |
| 5 |
차범근 |
1972–1986 |
121 |
55 |
| 6 |
김태영 |
1992–2004 |
105 |
3 |
| 7 |
황선홍 |
1988–2002 |
103 |
50 |
| 8 |
박지성 |
2000–2011 |
100 |
13 |
| 9 |
김남일 |
2000–현재 |
96 |
2 |
| 10 |
최순호 |
1980–1991 |
95 |
30 |
| 11 |
하석주 |
1991–2001 |
94 |
22 |
| 12 |
조영증 |
1975–1986 |
92 |
2 |
| 12 |
박성화 |
1974–1984 |
92 |
24 |
| 14 |
최종덕 |
1975–1986 |
89 |
12 |
| 15 |
박경훈 |
1981–1990 |
88 |
1 |
| 16 |
이동국 |
1998–현재 |
88 |
28 |
| 17 |
서정원 |
1990–2001 |
87 |
16 |
| 18 |
허정무 |
1974–1986 |
84 |
29 |
| 19 |
설기현 |
2000–현재 |
83 |
19 |
| 20 |
조광래 |
1975–1986 |
80 |
10 |
[편집] 최다 득점 선수
현역 선수는 굵은 글씨로 나타냄.
| # |
이름 |
활동 기간 |
경기 |
골 |
경기당 평균 골 |
| 1 |
차범근 |
1972–1986 |
121 |
55 |
0.45 |
| 2 |
황선홍 |
1988–2002 |
103 |
50 |
0.49 |
| 3 |
박이천 |
1969–1974 |
? |
36 |
? |
| 4 |
김재한 |
1972–1979 |
? |
33 |
? |
| 5 |
김도훈 |
1994–2003 |
72 |
30 |
0.41 |
| 5 |
최순호 |
1980–1991 |
95 |
30 |
0.32 |
| 7 |
허정무 |
1974–1986 |
84 |
29 |
0.35 |
| 8 |
이동국 |
1998– |
88 |
28 |
0.31 |
| 9 |
최용수 |
1995–2003 |
67 |
27 |
0.40 |
| 10 |
박주영 |
2005- |
58 |
24 |
0.42 |
[편집] 최연소 데뷔 선수
*명단은 10대에 데뷔한 선수들 전체를 데뷔 나이 기준으로 정렬한 것이다
[편집] 최연소 데뷔 골
[편집] 역대 월드컵 대표팀 주장
[편집] 역대 감독과 수석코치
| 감독 |
수석코치 |
경기수 |
승 |
무 |
패 |
승률 (%) |
취임 |
사임 |
최강희 |
최덕주 |
2 |
2 |
0 |
0 |
100.0 |
2011년 12월 21일 |
|
조광래 |
박태하 |
21 |
12 |
6 |
3 |
57.1 |
2010년 7월 21일 |
2011년 12월 7일 |
허정무 |
정해성 |
33 |
21 |
15 |
7 |
48.8 |
2007년 12월 7일 |
2010년 7월 2일 |
핌 페르베이크 |
홍명보 |
17 |
6 |
6 |
5 |
35.3 |
2006년 7월 1일 |
2007년 7월 25일 |
딕 아드보카트 |
핌 페르베이크 |
20 |
10 |
5 |
5 |
50.0 |
2005년 10월 1일 |
2006년 6월 30일 |
요하네스 본프레레 |
허정무 |
25 |
11 |
8 |
6 |
44.0 |
2004년 6월 24일 |
2005년 8월 23일 |
박성화 (임시) |
|
4 |
2 |
1 |
1 |
50.0 |
2004년 4월 20일 |
2004년 6월 15일 |
움베르투 코엘류 |
박성화 |
18 |
8 |
3 |
7 |
44.4 |
2003년 2월 3일 |
2004년 4월 19일 |
김호곤 (임시) |
|
1 |
0 |
0 |
1 |
0 |
2002년 11월 18일 |
2002년 11월 20일 |
거스 히딩크 |
핌 페르베이크 |
38 |
16 |
11 |
11 |
42.1 |
2001년 1월 1일 |
2002년 6월 30일 |
허정무 |
정해성 |
34 |
18 |
5 |
11 |
42.9 |
1998년 10월 14일 |
2000년 11월 13일 |
김평석 (임시) |
|
1 |
0 |
1 |
0 |
0 |
1998년 6월 22일 |
1998년 6월 25일 |
차범근 |
김평석 |
41 |
22 |
8 |
11 |
53.7 |
1997년 1월 8일 |
1998년 6월 21일 |
박종환 |
최만희 |
10 |
7 |
1 |
2 |
70.0 |
1996년 7월 8일 |
1997년 1월 7일 |
박종환 |
정해성 |
6 |
1 |
2 |
3 |
16.7 |
1996년 2월 15일 |
1996년 7월 7일 |
고재욱 |
박경훈 |
1 |
0 |
0 |
1 |
0 |
1995년 10월 20일 |
1995년 10월 30일 |
정병탁 |
조윤환 |
0 |
0 |
0 |
0 |
- |
1995년 9월 16일 |
1995년 9월 30일 |
허정무 |
이장수 |
1 |
0 |
1 |
0 |
0 |
1995년 8월 1일 |
1995년 8월 12일 |
박종환 |
최만희 |
2 |
1 |
1 |
0 |
50.0 |
1995년 4월 26일 |
1995년 7월 31일 |
아나톨리 비쇼베츠 |
김성남 |
16 |
8 |
4 |
4 |
50.0 |
1994년 7월 24일 |
1995년 2월 26일 |
김호 |
허정무 |
' |
|
|
|
|
1993년 11월 30일 |
1994년 7월 23일 |
유기흥 |
' |
|
|
|
|
1992년 11월 10일 |
1993년 10월 29일 |
조광래 |
' |
|
|
|
|
1992년 7월 8일 |
1992년 11월 9일 |
고재욱 |
허정무 |
6 |
3 |
0 |
3 |
50.0 |
1991년 5월 22일 |
1991년 7월 27일 |
박종환 |
김희태 |
10 |
8 |
2 |
0 |
80.0 |
1990년 8월 9일 |
1991년 10월 23일 |
이차만 |
김희태 |
4 |
3 |
0 |
1 |
75.0 |
1990년 7월 3일 |
1990년 8월 8일 |
이회택 |
이차만 |
30 |
19 |
5 |
6 |
63.3 |
1988년 10월 6일 |
1990년 7월 2일 |
김정남 |
김호곤 |
2 |
2 |
0 |
0 |
100.0 |
1988년 7월 6일 |
1988년 10월 5일 |
박종환 |
원흥재 |
9 |
4 |
1 |
4 |
44.4 |
1986년 11월 20일 |
1988년 7월 5일 |
김정남 |
김호곤 |
26 |
15 |
7 |
4 |
57.7 |
1985년 3월 19일 |
1986년 11월 19일 |
문정식 |
김정남 |
2 |
1 |
0 |
1 |
50.0 |
1985년 1월 12일 |
1985년 3월 18일 |
|
8 |
3 |
3 |
2 |
37.5 |
1984년 7월 3일 |
1985년 1월 11일 |
박종환 |
이이우 |
2 |
1 |
1 |
0 |
50.0 |
1983년 8월 23일 |
1984년 7월 2일 |
조윤옥 |
이세연 |
6 |
4 |
0 |
2 |
66.7 |
1983년 1월 29일 |
1983년 8월 22일 |
김정남 |
김호곤 |
3 |
1 |
2 |
0 |
33.3 |
1982년 10월 31일 |
1983년 1월 28일 |
최은택 |
김정남 |
0 |
0 |
0 |
0 |
- |
1982년 6월 19일 |
1982년 10월 30일 |
김정남 (임시) |
|
35 |
23 |
4 |
8 |
67.6 |
1980년 5월 4일 |
1982년 6월 18일 |
장경환 |
최은택 |
8 |
7 |
1 |
0 |
87.5 |
1979년 3월 29일 |
1980년 5월 3일 |
함흥철 |
김정남 |
21 |
18 |
1 |
2 |
85.7 |
1978년 3월 2일 |
1979년 3월 28일 |
김정남 (임시) |
|
5 |
2 |
0 |
3 |
40.0 |
1977년 9월 17일 |
1977년 12월 18일 |
최정민 |
김정남 |
21 |
14 |
1 |
6 |
66.7 |
1977년 1월 1일 |
1977년 9월 16일 |
문정식 |
박경화 |
14 |
8 |
2 |
4 |
57.1 |
1976년 5월 14일 |
1976년 12월 31일 |
함흥철 |
김정남 |
29 |
22 |
5 |
2 |
81.5 |
1974년 11월 17일 |
1976년 5월 13일 |
최영근 |
최은택 |
9 |
3 |
5 |
1 |
33.3 |
1974년 1월 |
1974년 11월 17일 |
민병대 |
문정식 |
17 |
10 |
2 |
5 |
58.8 |
1972년 12월 21일 |
1973년 11월 20일 |
함흥철 |
박경화 |
19 |
11 |
3 |
5 |
57.9 |
1972년 6월 16일 |
1972년 12월 20일 |
박병석 |
박경화 |
5 |
1 |
2 |
2 |
20.0 |
1971년 12월 7일 |
1972년 6월 15일 |
홍덕영 |
|
4 |
1 |
0 |
3 |
25.0 |
1971년 11월 |
한홍기 |
우상권 |
27 |
17 |
2 |
8 |
63.0 |
1970년 2월 13일 |
1971년 10월 6일 |
강준영 |
|
5 |
4 |
0 |
1 |
80.0 |
1969년 11월 |
1969년 12월 |
김용식 |
강준영 |
4 |
1 |
1 |
2 |
25.0 |
1969년 1월 |
1969년 10월 |
박일갑 |
|
6 |
4 |
2 |
0 |
66.7 |
1968년 8월 |
1968년 12월 |
장경환 |
박일갑 |
15 |
10 |
3 |
2 |
66.7 |
1967년 7월 |
1967년 11월 |
민병대 [ref 1] |
한창화 |
8 |
5 |
3 |
0 |
62.5 |
1966년 7월 |
1966년 12월 |
홍건표 [ref 2] |
정남식 |
6 |
3 |
1 |
2 |
50.0 |
1965년 8월 |
정국진 |
김규환 |
0 |
0 |
0 |
0 |
0 |
1964년 9월 |
민병대 [ref 3] |
김규환 |
' |
|
|
|
|
1962년 3월 |
이종갑 [ref 4] |
김규환 |
' |
|
|
|
|
1961년 10월 |
이유형 [ref 5] |
김용식 |
' |
|
|
|
|
1961년 3월 |
위혜덕 [ref 6] |
김용식 |
' |
|
|
|
|
1960년 10월 |
김용식 |
민병대 |
' |
|
|
|
|
1960년 3월 |
정국진 |
정남식 |
' |
|
|
|
|
1959년 7월 |
김근찬 |
민병대 |
' |
|
|
|
|
1958년 4월 |
이유형 |
김성간 |
' |
|
|
|
|
1956년 8월 |
박정휘 |
주영광 |
' |
|
|
|
|
1955년 12월 |
김용식 |
|
' |
|
|
|
|
1954년 6월 |
이유형 |
배종호 |
' |
|
|
|
|
1954년 3월 |
김화집 |
이용일 |
' |
|
|
|
|
1952년 4월 |
1954년 2월 |
박정휘 |
이유형 |
' |
|
|
|
|
1948년 12월 |
1950년 4월 |
이영민 |
|
' |
|
|
|
|
1948년 6월 |
박정휘 |
|
' |
|
|
|
|
1948년 5월 |
- ↑ 실제 감독 역할은 한창화
- ↑ 실제 감독 역할은 정남식
- ↑ 실제 감독 역할은 김규환
- ↑ 실제 감독 역할은 김규환
- ↑ 실제 감독 역할은 김용식
- ↑ 실제 감독 역할은 김용식
[편집] 용품 스폰서
| 기간 |
스폰서 |
비고 |
| 1977-1984 |
아디다스 프로스펙스
위크엔드외 다수[10][11] |
최초 용품 스폰서는 아디다스이나 1987년 지금과 같은 용품 스폰서 계약이
있기까지 아식스, 코오롱 액티브, 삼성물산 위크엔드 등 국내외 브랜드의
여러 유니폼을 그때그때 마다 선정해서 착용하였다. |
| 1984-1988 |
위크엔드[12] |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출전시 삼성물산 SS패션 스포츠 브랜드 위크엔드 유니폼 착용
1987년 대한축구협회와 지금과 같은 공식 용품 스폰서 계약한 최초의 스포츠 브랜드이다. |
| 1988-1995 |
라피도[13] |
1988년 위크엔드에서 라피도로 브랜드명 변경 |
| 1995-현재 |
나이키[14] |
|
[편집] 유니폼 변천사
위크엔드 (1986년-1988년)
|
라피도 (1988년-1995년10월)
|
나이키 (1995년10월-현재)
|
1. 1995년 나이키가 처음 공급한 유니폼은 라피도에서 디자인한 기존의 유니폼이었다.
[편집] 관련 항목
[편집] 주석
- ↑ 첫A매치 골은 故정남식·정국진씨, 《문화일보》, 2007년 8월 6일 작성.
- ↑ 8강 태극전사들 “헛구역질 날 정도로 뛰었다”, 《동아닷컴》, 2002년 6월 19일 작성.
- ↑ -월드컵- 대표팀, 김남일.김태영 부상 변수, 《연합뉴스》, 2002년 6월 19일 작성.
- ↑ 이석무. “FIFA, 한-스위스전 비디오 분석 '심판판정 옳았다'”, 《마이데일리》, 2006년 6월 27일 작성. 2010년 1월 18일 확인.
- ↑ 홍제성. “네티즌들 스위스전 재경기 주장”, 《스포츠한국》, 2006년 6월 24일 작성. 2008년 1월 2일 확인.
- ↑ Referee designations for matches 1-16 (영어) (PDF).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2010년 6월 5일).
- ↑ Referee designations for matches 17-24 (영어) (PDF).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2010년 6월 14일).
- ↑ 이 문서에서는 1992년 하계 올림픽 축구 예선 이전의 내용만 다룬다. 이 이후의 기록은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을 참고하시오.
- ↑ 이 문서에서는 1998년 아시안 게임까지의 내용만 다룬다. 이 이후의 기록은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을 참고하시오.
- ↑ 송기룡. “한국 대표팀 유니폼 역사”, 《월간 축구가족》.
- ↑ “대표선수도 국제경기서 버젓이 서독 아디다스, 일본 미즈노등 외제 스포츠용품 국내시장 석권”, 《경향신문》.
- ↑ “필승!위크엔드스포츠-멕시코월드컵에서 대표팀과 함께 뜁니다”, 《경향신문》.
- ↑ “월드컵 상혼 장외서 뜨거운 "광고전쟁"”, 《경향신문》.
- ↑ “축구협회 월드컵유니폼 교체 '후원금 최소 100억'”, 《경향신문》.
[편집] 바깥 고리
|
AFC 소속 축구 국가대표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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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년부터 초청국으로 활동하고 있음.2: AFC의 준회원국이며, FIFA 비회원국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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