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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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한민국
별칭 아시아호랑이, 태극전사, 붉은 악마
연맹 대한축구협회
대륙 아시아 축구 연맹
감독 공석
주장 공석
최다 출전자 홍명보 (136)
최다 득점자 차범근 (55)
최연소 출전자 김판근 (17세 242일)
홈 구장 서울월드컵경기장
FIFA 코드 KOR
FIFA 랭킹 확인
최고 순위: 17위 (1998년 12월)
최저 순위: 62위 (1996년 2월)
첫 국제
경기 출전
대한민국 대한민국 5 - 1 홍콩 홍콩
(영국홍콩; 1948년 7월 6일) [1]
최다 점수차
승리
대한민국 대한민국 16 - 0 네팔 네팔
(대한민국 인천; 2003년 9월 29일)
최다 점수차
패배
대한민국 대한민국 0 - 12 스웨덴 스웨덴
(영국 런던; 1948년 8월 5일)
유니폼
홈경기
원정경기
FIFA 월드컵
출전 횟수 9회 (1954년에 처음 출전)
최고 성적 4위 (2002년)
AFC 아시안컵
출전 횟수 13회 (1956년에 처음 출전)
최고 성적 우승 (1956년, 1960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출전 횟수 1회 (2001년에 처음 출전)
최고 성적 1라운드 (2001년)
메달 기록
남자 축구
아시안 게임
1954 마닐라 축구
1958 도쿄 축구
1962 자카르타 축구
1970 방콕 축구
1978 방콕 축구
1986 서울 축구
1990 베이징 축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축구 국가대표팀으로, 대한축구협회에 의해 구성된다.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강팀으로, 1948년 하계 올림픽에서 처음 국제 무대에 발을 내디뎠고 월드컵 진출은 1954년 FIFA 월드컵이 처음이다.

이후 1986년 FIFA 월드컵부터 2014년 FIFA 월드컵까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8회 연속 본선에 진출했으며, 일본과 공동개최한 2002년 FIFA 월드컵에서는 아시아 최초로 4위를 기록하였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아시아 축구 연맹에 포함된 국가중에서 월드컵 최다 출전 국가로 기록되어 있다.

월드컵 역사[편집]

1954년 스위스 월드컵[편집]

대한민국이 월드컵 본선에 처음 나선 것은 6.25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던 1954년 FIFA 월드컵이다. 김용식 코치 등 22명의 선수단이 방콕을 거쳐 50여 시간의 비행 끝에 대회 개막 바로 전날 밤에 스위스 베른에 도착하였고, 미숙한 준비 속에서 경기에 임한다. 결국 헝가리에게 0:9, 터키에게 0:7이라는 큰 점수차로 패하였고, 대회 최하위를 기록하며 세계의 높은 장벽을 실감하며 귀국한다. 이후, 계속된 노력에도 불구하고 32년 만인 1986년 FIFA 월드컵에서야 월드컵 본선 무대를 다시 밟게 되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편집]

1986년 FIFA 월드컵에서는 우승후보라고 불리는 국가하고 같은 조가 되는 바람에 그야말로 어렵고 무기력한 경기를 하였다.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한 조별 예선 첫 번째 경기에서 마라도나의 활약을 막지 못하고 3골을 내줬다. 하지만 대한민국도 막판 분전을 하여 후반 28분 박창선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최초의 월드컵 경기에서의 득점을 성공시켰으나, 1:3으로 패했다. 두 번째 경기인 불가리아와의 경기에서는 김종부의 득점에 힘입어 1:1로 비기며, 월드컵 사상 첫 승점을 따낸다. 그러나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이탈리아전에서 편파판정에 시달려 페널티킥을 허용했지만 이것이 골포스트를 맞춰서 실패하는 바람에 편파판정에 관한 의미는 사라졌으나 결과는 2:3으로 패하며 1무 2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비록 16강 진출에는 좌절했지만 월드컵에 진출한 역사상 처음으로 골을 넣고 첫 승점을 따낸 대회였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편집]

역대 지역예선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내며 16강의 부푼꿈을 안고 2회 연속으로 진출한 1990년 FIFA 월드컵에서 한국은 벨기에에게 0 : 2 패, 스페인에게 1 : 3 패, 우루과이에게 0:1 패로 월드컵 조별 예선 최악의 성적인 3패를 기록하였다. 스페인전의 황보관의 프리킥 골이 유일한 득점이였다.

1994년 미국 월드컵[편집]

1994년 FIFA 월드컵에서는 도하의 기적에 힘입어 3회 연속으로 본선에 진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1차전인 스페인와의 경기에서 후반 45분에 터진 서정원의 골로 2:2 무승부를 기록함으로써, 지난 1990년 FIFA 월드컵에 이어 스페인에게 2번 연속 패배를 간신히 면할 뿐 아니라 월드컵 출전 첫 경기부터 사상 처음으로 승점을 얻었으며 볼리비아와의 2차전에서는 0 : 0으로 무승부를 거두어 승점 2점을 땄다. 그러나 3차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독일에게 2 : 3으로 패했는데 당시 대한민국이 한 골을 더 넣어 3 : 3으로 최종결과가 3무승부(승점 3점과 골득실차 0점)를 기록한 상황에서도 16강 진출이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유는 각 조 3위의 마지막으로 16강에 진출한 국가는 승점 4점이었던 이탈리아이었을 뿐 아니라 이탈리아와 같은 조였던 노르웨이의 경우에는 승점과 골득실차까지 모두 이탈리아와 같았으나 다득점에서만 높으면 조 3위를 최소한 가져서 3무를 기록한 대한민국에 앞서 16강에 나갈 수 있는데도 다득점원칙에서 조 4위로 밀려 조 3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탈락했기 때문에 확실하게 미국 월드컵 때에 3무는 100% 탈락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편집]

4회 연속으로 진출한 1998년 FIFA 월드컵에서는 1차전 멕시코전에서 한국은 하석주의 선제골로 앞서 나갔지만, 하석주가 득점을 기록한 이후 퇴장을 당하였고, 이후 연이어 실점을 거듭하여 1:3으로 패배했다. 2차전은 조별 예선 상대 중 가장 강한 네덜란드였다. 선수들은 기량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0:5로 대패했다.

당시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은 이후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감독을 맡게 되는 거스 히딩크였다. 대표팀은 네덜란드전의 대패 여파로 인해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차범근 감독이 대회 도중에 경질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겪게 되었다.

마지막 경기였던 벨기에전에서 한국은 유상철의 동점골로 1:1로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1무 2패로 다시 한 번 16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편집]

대한민국과 일본에서 개최된 2002년 한국-일본 월드컵은 한국 축구 역사는 물론 세계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대회였다. 네덜란드 출신의 거스 히딩크 감독의 지휘 아래 맞이한 폴란드와의 예선 첫 경기에서 황선홍, 유상철의 득점으로 1954년 FIFA 월드컵에 출전한 이후 월드컵 사상 첫 승을 거두었다.

예선 두 번째 시합이었던 미국과의 경기에서, 전반전에는 미국이 한국을 제압했다. 전반전에 미국은 클린트 매시스의 선제골로 앞서가고, 한국은 이을용이 페널티킥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후반전에는 안정환의 동점골이 터지면서 1:1무승부를 기록하며 사상 첫 16강 진출에 대한 희망을 이어나갔다.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포르투갈의 두 선수 (주앙 핀투, 베투)가 퇴장당한 가운데, 박지성의 득점으로 1:0승리. D조 1위로 16강에 최초로 진출하였다.

16강전의 상대는 이탈리아였다. 한국은 전반 3분 안정환페널티킥 기회를 놓쳤다. 게다가, 이탈리아의 크리스티안 비에리에게 선취점을 내주면서 리드를 허용했으나, 후반 43분에 설기현이 동점골을 넣고, 연장 후반전에 안정환이 역전골을 넣으며 2-1로 승리하여 8강에 진출하였다. 당시, 이탈리아 대표팀 선수였던 프란체스코 토티는 연장전에서 시뮬레이션 액션을 이유로 두 번째 경고를 받고 퇴장당했는데, 이 판정에 관한 논란이 뜨거웠다.[2] 하지만 당시 이탈리아 선수들의 팔꿈치가격으로 인해 김태영, 김남일 같은 선수들이 줄부상을 입기도 했다.[3]

8강전의 상대는 스페인이었다. 이 경기에서 양팀은 정규 시간과 연장을 모두 거친 후에도 0:0 무승부를 기록하였고, 경기는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결국 스페인의 4번째 키커인 호아킨 산체스의 슛을 골키퍼 이운재가 막아내고, 한국의 마지막 키커였던 홍명보가 승부차기를 성공시키며 한국은 사상 최초로 월드컵 4강에 진출하였다.

4강전에서 한국은 독일미하엘 발라크에게 득점을 허용하며 0:1로 패배하였다. 결국 한국은 브라질에게 패한 터키와 3•4위전을 치르게 되었다. 3•4위전에서는 이을용이 골을 기록했지만 터키의 하칸 쉬퀴르의 최단 시간 골과 일한 만시즈의 추가골로 인해 패배했다. 그리고, 90분이 지나고 추가시간에 송종국이 추가골을 넣었지만 2:3으로 패하여 4위를 기록했다.

또한 대표팀 서포터즈인 붉은악마를 중심으로 한 길거리 응원은 월드컵의 또다른 볼거리로 꼽혔다. 2002년 월드컵 개인별 수상으로 주장이자 수비의 핵이었던 홍명보가 브론즈볼을 수상하였다.

2006년 독일 월드컵[편집]

2002년 한일 월드컵 직후 명예롭게 떠난 거스 히딩크의 후임으로 움베르투 코엘류를 기용하고 얼마 안가 경질하더니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당시 나이지리아를 이끌고 에르난 크레스포아르헨티나를 이기고 금메달을 획득했던 경험이 있는 조 본프레레를 감독으로 앉혔다가 또 다시 얼마 못가 경질했다. 그렇게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선임되어 2006년 월드컵을 준비하게 되었고 뒤늦게 부임한 아드보카트는 시간부족에 허덕여야 했다.

2006년 FIFA 월드컵 조별 예선 1차전에서 토고에게 전반 선제골을 내주었으나 이천수, 안정환의 연속골로 2:1 역전승을 거두며 월드컵 원정 사상 첫 승을 기록했다. 2차전 프랑스와의 경기에서는 박지성의 동점골로 1:1무승부를 기록했다.

마지막 상대인 스위스와의 3차전에서는 0 : 2로 패하여 1승 1무 1패를 기록하여 2승 1무를 기록한 스위스에게 밀렸는데 프랑스가 토고전에서 후반전에 2골을 넣어 2:0으로 프랑스가 승리하여 1승 2무가 된 프랑스에게도 밀려 16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3차전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알렉산더 프라이에게 허용했던 두 번째 실점에 대해서는 오프사이드 논란이 뜨거웠고, 한국 내에서는 당시 주심이었던 오라시오 엘리손도에 대한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FIFA의 정밀 분석 결과 오프사이드가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다.[4] 또한, 경기 후 24시간 안에 국제축구연맹에 500만명의 국민이 항의시 재경기가 가능하다는 헛소문이 퍼지기도 하였다.[5]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편집]

3차 예선에서 3승 3무(3조 1위), 최종 예선 4승 4무(B조 1위)로 1954년, 1990년 대회에 이어 다시 한번 무패로 예선을 통과하였다.

한편 3차 예선과 최종 예선에서 모두 대한민국과 같은 조에 편성되었던 북한이 B조 2위로 본선 직행을 결정지어, 역사상 1974년 FIFA 월드컵에서 참가한 동독과 서독에 이어 두 번째로 분단국가가 월드컵에 동시에 참가하게 되었다.

조 추첨 결과,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그리스와 한 조인 B조에 속했다. 첫 경기 상대인 그리스를 만나 이정수박지성의 득점으로 2 : 0으로 승리하여 원정 경기에서 유럽 팀을 상대로 첫 승을 거두었다.

다음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는 박주영의 자책골과 곤살로 이과인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였다. 이청용의 만회골로 한 점을 만회했으나 결국 1 : 4로 패하고 말았다. 특히 이과인의 두 번째 골(한국의 3번째 실점)은 오프사이드라는 결론이 나와 논란이 일었다. 같은 날에 열린 그리스나이지리아의 경기에서 그리스가 2 : 1로 역전승을 거둠으로써, 대한민국이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자력으로 16강에 진출하는 길은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길 밖에 없었으며 패배할 경우 무조건 탈락, 무승부를 거둘 경우 아르헨티나가 그리스를 상대로 승리해야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으며 아르헨티나와 그리스가 무승부를 기록할 경우 골득실으로 진출팀이 결정되게 되었다.

예선 마지막 경기인 나이지리아와의 게임에서는 우체의 선제골이 있었지만 이정수의 동점골로 만회하였고 이어 박주영이 프리킥으로 역전골을 터뜨려 2 : 1로 앞서던 도중 김남일의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얻은 나이지리아의 야쿠부가 동점골을 넣어 경기는 2 : 2동점으로 끝났다. 하지만 같은 시각에 열린 아르헨티나가 그리스를 상대로 데미첼리스팔레르모의 골로 2 : 0승리하여서 대한민국은 조 2위의 자리로 16강에 진출하였다. 결국, 대한민국이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같은 승점인 1승 1무 1패, 골득실차도 -1를 기록했지만 아르헨티나가 3승으로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함으로써, 사상 처음으로 원정 16강에 진출하는데 성공하였다. 한편, 대한민국과 월드컵 본선에 동반 진출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3패에 골득실 -11로 조 최하위뿐만 아니라 32개 참가팀 중에서도 최하위로 탈락하였다.

16강전에서 대한민국은 A조 1위인 우루과이와 경기를 치루게 되었다. 경기 초반 우루과이수아레즈에게 역습을 통한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후반 이후 경기 흐름을 다시 주도를 만들게 되면서 후반 23분 이청용의 득점으로 동점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수아레즈에게 후반 35분 결승골을 내줘 1 : 2로 패배하여 8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또한 대한민국은 스페인에 이어 페어플레이상 2위에 오르기도 했었다. 대한민국은 이 대회에서 미국, 이탈리아와 더불어 전 경기 득점을 기록하였다. 대한민국이 전 경기에서 득점을 올린 일은 1986년 대회 이후 24년만이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편집]

2014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대한민국은 사상 첫 원정 8강 진출을 목표로 세웠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예선전에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201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에서 대한민국은 첫 경기에서 레바논을 6:0으로 대파하며 좋은 출발을 했다. 그러나 2차전 쿠웨이트와의 경기에선 졸전 끝에 1:1로 비기며 빈축을 샀다. 3차전과 4차전에서 아랍에미리트를 각각 2:1, 2:0으로 제압하며 어렵게 조 1위 자리를 유지해 나갔다. 그러나 2011년 11월 15일 베이루트에서 열린 5차전 레바논과의 경기에서 졸전 끝에 1:2로 패하며 최종 예선 진출도 장담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급기야 당시 사령탑이었던 조광래 감독을 경질하였고 전북 현대 감독이었던 최강희를 급히 호출하였다. 최강희는 자신의 임기를 201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까지라고 선을 그으며 사실상 시한부 감독 역할을 자처하였다. 201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최종전 쿠웨이트와의 홈 경기에서 이동국이근호의 골로 2:0으로 승리하며 간신히 최종 예선 진출에 성공하였다. 이후 201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 대한민국은 1차전에서 카타르를 4:1로 대파하고 2차전에서 레바논을 3:0으로 격파하며 좋은 출발을 했다. 그러나 3차전에서 우즈베키스탄과 졸전 끝에 2:2 무승부를 기록했으며 테헤란에서 열린 4차전 이란과의 경기에서는 마수드 쇼자에이의 퇴장으로 수적 우위를 점했음에도 불구하고 0:1로 패하며 가시밭길을 걷기 시작했다. 5차전에서 다시 카타르손흥민의 극적인 버저비터 골로 2:1로 승리하며 한숨을 돌렸지만 6차전 레바논과의 경기에서는 또 졸전 끝에 1:1로 비겨 간신히 베이루트 참사 2탄을 막을 수 있었다. 7차전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도 상대의 자책골 덕에 1:0으로 간신히 승리하였다. 8차전 이란과의 경기에서도 김신욱의 머리에만 의존하는 '뻥축구'를 구사하며 0:1로 패했으나 우즈베키스탄에 골 득실이 1골 앞서 겨우 본선 진출에 성공하였다. 이후 최강희 감독이 물러나고 홍명보 감독이 새로 부임했지만 지난 2006 FIFA 월드컵딕 아드보카트와 같이 그 역시 시간 부족에 허덕여야 했다. 그 결과 이른바 '홍명보의 아이들'이라는 선수들이 대거 발탁되었다. 당초 홍명보 감독은 '소속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는 선수들을 선발하겠다.'고 원칙을 내세웠지만 소속팀에서 부진하고 있던 박주영, 윤석영 등이 발탁되어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았다 2014년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벨기에, 알제리, 러시아와 함께 H조에 속했다. 불안한 수비를 보였던 대한민국은 1차전 상대 러시아를 맞아 보강된 수비를 보이며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 후반 23분 이근호의 중거리 슛을 러시아의 골키퍼 이고르 아킨페예프가 제대로 잡지 못하고 뒤로 흘리며 선제골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6분 후 문전 혼전 상황에서 알렉산드르 케르자코프를 제대로 마크하지 못하며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러나 평가전에서 불안했던 모습을 씻어내리며 다시 한 번 기대치를 높이기엔 충분했다. 2차전 상대 알제리는 대회 전에 대한민국의 1승 제물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러시아전 때와 같은 전술을 들고 나온 반면 1패를 안고 있던 알제리는 주전 선수 5명을 교체하며 공격적인 전술로 경기에 임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다시 수비 불안 문제를 노출하며 전반전에만 3골을 내주고 무기력하게 끌려갔다. 3골을 내주는 동안 슈팅은 한 차례도 날리지 못했다. 후반전에 손흥민구자철이 만회골을 넣으며 분전했지만 끝내 2:4로 패배하여 16강 진출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3차전 상대 벨기에를 맞아 홍명보 감독은 부진했던 원 톱 박주영과 골키퍼 정성룡을 과감히 선발 명단에서 제외하고 대신 김신욱김승규를 선발 출전시켰다. 그렇게 쇄신을 단행한 결과 수비는 2차전에 비해 더 나아진 모습을 보였으나 고질적인 골 결정력 부족 문제를 이기지 못하였고 오히려 상대의 빠른 역습에 허를 찔렸는데다가 벨기에에서 한 명이 퇴장당하여 수적이 우세하면서도 후반 33분 얀 페르통언에게 골을 허용하며 0:1로 아쉽게 패배하여 결국 1998년 FIFA 월드컵 이후 16년 만에 1승도 거두지 못하고 1무 2패로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선수단[편집]

현재 선수 명단[편집]

2014년 5월 8일, 대한축구협회에서 발표한 브라질 월드컵 최종 선수 명단.

# 이름 생일 (나이) 클럽 출장 데뷔
GK
1
정성룡 1985년 1월 4일(1985-01-04) (29세)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
59
-54
v. 칠레 칠레, 2008년 1월 30일
21
김승규 1990년 9월 30일(1990-09-30) (23세) 대한민국 울산 현대
5
-6
v. 페루 페루, 2013년 8월 14일
23
이범영 1987년 7월 6일(1987-07-06) (27세) 대한민국 부산 아이파크
0
0
-
DF
2
김창수 1985년 9월 12일(1985-09-12) (28세) 일본 가시와 레이솔
8
0
v. 말리 말리, 2013년 10월 15일
3
윤석영 1990년 2월 13일(1990-02-13) (24세) 잉글랜드 퀸즈 파크 레인저스
2
0
v. 말리 말리, 2013년 10월 15일
4
곽태휘 1981년 7월 8일(1981-07-08) (33세) 사우디아라비아 알힐랄
33
5
v. 칠레 칠레, 2008년 1월 30일
5
김영권 1990년 2월 27일(1990-02-27) (24세) 중국 광저우 헝다
19
1
v.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 2010년 8월 11일
6
황석호 1989년 6월 27일(1989-06-27) (25세) 일본 산프레체 히로시마
3
0
v.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 2012년 11월 14일
12
이용 1986년 12월 24일(1986-12-24) (27세) 대한민국 울산 현대
10
0
v. 중화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2013년 7월 24일
20
홍정호 1989년 8월 12일(1989-08-12) (25세) 독일 FC 아우크스부르크
23
1
v.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 2010년 8월 11일
22
박주호 1987년 1월 16일(1987-01-16) (27세) 독일 FSV 마인츠 05
13
0
v. 핀란드 핀란드, 2013년 1월 18일
MF
7
김보경 1989년 10월 6일(1989-10-06) (24세) 웨일스 카디프 시티
26
3
v. 잠비아 잠비아, 2010년 1월 9일
8
하대성 1985년 3월 2일(1985-03-02) (29세)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 궈안
12
0
v. 카타르 카타르, 2008년 11월 15일
9
손흥민 1992년 7월 8일(1992-07-08) (22세) 독일 바이어 04 레버쿠젠
23
5
v. 시리아 시리아, 2010년 12월 30일
14
한국영 1990년 4월 19일(1990-04-19) (24세) 일본 가시와 레이솔
8
0
v. 레바논 레바논, 2013년 6월 5일
15
박종우 1989년 3월 10일(1989-03-10) (25세) 중화인민공화국 광저우 푸리
10
0
v. 이란 이란, 2012년 10월 16일
16
기성용 1989년 1월 24일(1989-01-24) (25세) 웨일스 스완지 시티
56
5
v. 요르단 요르단, 2008년 9월 5일
17
이청용 1988년 7월 2일(1988-07-02) (26세) 잉글랜드 볼턴 원더러스
53
6
v. 요르단 요르단, 2008년 5월 31일
19
지동원 1991년 5월 28일(1991-05-28) (23세) 독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6
8
v. 시리아 시리아, 2010년 12월 30일
FW
10
박주영 1985년 7월 10일(1985-07-10) (29세) 무소속
62
24
v.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키스탄, 2005년 6월 3일
11
이근호 1985년 4월 11일(1985-04-11) (29세) 대한민국 상주 상무
62
18
v. 이라크 이라크, 2007년 6월 29일
13
구자철 1989년 2월 27일(1989-02-27) (25세) 독일 FSV 마인츠 05
35
12
v. 중화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2008년 2월 17일
18
김신욱 1988년 4월 14일(1988-04-14) (26세) 대한민국 울산 현대
26
3
v. 잠비아 잠비아, 2010년 1월 9일

최근 차출된 선수 명단[편집]

최근 12개월 이내에 국가대표팀에 소집된 선수 명단. 은퇴한 선수는 명단에 없다.

# 이름 생일 (나이) 클럽 출장 최근 소집
골키퍼
김진현 1987년 7월 6일(1987-07-06) (27세) 일본 세레소 오사카
1
-4
v. 그리스 그리스, 2014년 3월 6일
김영광 1983년 6월 28일(1983-06-28) (31세) 대한민국 경남 FC
17
-15
v. 이란 이란, 2013년 6월 18일
수비수
김진수 1992년 6월 13일(1992-06-13) (22세) 독일 TSG 1899 호펜하임
9
0
v. 튀니지 튀니지, 2014년 5월 28일
박진포 1987년 8월 13일(1987-08-13) (27세) 대한민국 성남 FC
1
0
v. 그리스 그리스, 2014년 3월 6일
김주영 1988년 7월 3일(1988-07-03) (26세) 대한민국 FC 서울
1
0
v. 그리스 그리스, 2014년 3월 6일
강민수 1986년 2월 14일(1986-02-14) (28세) 대한민국 상주 상무
33
0
v. 미국 미국, 2014년 2월 2일
김기희 1989년 7월 13일(1989-07-13) (25세) 대한민국 전북 현대 모터스
7
0
v. 미국 미국, 2014년 2월 2일
김대호 1988년 5월 15일(1988-05-15) (26세) 대한민국 포항 스틸러스
1
0
v. 미국 미국, 2014년 2월 2일
김민우 1990년 2월 25일(1990-02-25) (24세) 일본 사간 도스
5
0
v. 미국 미국, 2014년 2월 2일
이지남 1984년 11월 21일(1984-11-21) (29세) 중국 허난 젠예
0
0
v. 미국 미국, 2014년 2월 2일
장현수 1991년 9월 28일(1991-09-28) (22세) 중화인민공화국 광저우 푸리
3
0
v. 러시아 러시아, 2013년 11월 19일
신광훈 1987년 3월 18일(1987-03-18) (27세) 대한민국 포항 스틸러스
5
0
v. 러시아 러시아, 2013년 11월 19일
정인환 1986년 12월 15일(1986-12-15) (27세) 대한민국 전북 현대 모터스
5
0
v. 이란 이란, 2013년 6월 18일
미드필더
남태희 1991년 7월 3일(1991-07-03) (23세) 카타르 레크위야 SC
11
0
v. 그리스 그리스, 2014년 3월 6일
고요한 1988년 3월 10일(1988-03-10) (26세) 대한민국 FC 서울
11
0
v. 미국 미국, 2014년 2월 2일
김태환 1989년 7월 24일(1989-07-24) (25세) 대한민국 성남 FC
3
0
v. 미국 미국, 2014년 2월 2일
송진형 1987년 8월 13일(1987-08-13) (27세) 대한민국 제주 유나이티드
3
0
v. 미국 미국, 2014년 2월 2일
이명주 1990년 4월 24일(1990-04-24) (24세) 아랍에미리트 알아인
9
0
v. 미국 미국, 2014년 2월 2일
이호 1984년 10월 22일(1984-10-22) (29세) 대한민국 상주 상무
26
0
v. 미국 미국, 2014년 2월 2일
윤일록 1992년 3월 7일(1992-03-07) (22세) 대한민국 FC 서울
7
1
v. 러시아 러시아, 2013년 11월 19일
고명진 1988년 1월 9일(1988-01-09) (26세) 대한민국 FC 서울
2
0
v. 러시아 러시아, 2013년 11월 19일
백성동 1991년 8월 13일(1991-08-13) (23세) 일본 주빌로 이와타
1
0
v. 페루 페루, 2013년 8월 14일
임상협 1988년 7월 8일(1988-07-08) (26세) 대한민국 부산 아이파크
1
0
v. 페루 페루, 2013년 8월 14일
조찬호 1986년 4월 10일(1986-04-10) (28세) 대한민국 포항 스틸러스
2
0
v. 페루 페루, 2013년 8월 14일
고무열 1990년 9월 5일(1990-09-05) (23세) 대한민국 포항 스틸러스
2
0
v. 일본 일본, 2013년 7월 28일
조영철 1989년 5월 31일(1989-05-31) (25세) 카타르 카타르 SC
6
0
v. 일본 일본, 2013년 7월 28일
황지수 1981년 3월 27일(1981-03-27) (33세) 대한민국 포항 스틸러스
2
0
v. 이란 이란, 2013년 6월 18일
김치우 1983년 11월 11일(1983-11-11) (30세) 대한민국 FC 서울
28
5
v. 이란 이란, 2013년 6월 18일
김남일 1977년 5월 1일(1977-05-01) (37세) 대한민국 전북 현대 모터스
98
2
v. 이란 이란, 2013년 6월 18일
공격수
염기훈 1983년 3월 30일(1983-03-30) (31세) 대한민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
49
8
v. 미국 미국, 2014년 2월 2일
이승기 1988년 6월 2일(1988-06-02) (26세) 대한민국 전북 현대 모터스
12
0
v. 미국 미국, 2014년 2월 2일
조동건 1986년 4월 16일(1986-04-16) (28세) 대한민국 상주 상무
2
0
v.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2013년 9월 10일
김동섭 1989년 3월 29일(1989-03-29) (25세) 대한민국 성남 FC
3
0
v. 페루 페루, 2013년 8월 14일
서동현 1985년 6월 5일(1985-06-05) (29세) 대한민국 안산 경찰청
5
0
v. 일본 일본, 2013년 7월 28일
이동국 1979년 4월 29일(1979-04-29) (35세) 대한민국 전북 현대 모터스
99
30
v. 이란 이란, 2013년 6월 18일

주장[편집]

역대 대표팀 주장[편집]

이름 활동 기간 임명날짜 비고
최영일 1997년~1998년
홍명보 1998년-2002년
유상철 2003년-2005년
이운재 2004년-2005년
김남일 2006년-2008년 2006년 8월 14일 베어백호 1기 주장
박지성 2008년-2011년 2008년 10월 9일 당시 역대 최연소 대표팀 주장
박주영 2011년-2012년 2011년 2월 8일 역대 최연소 대표팀 주장
곽태휘 2012년-2013년 2012년 2월 19일 최강희호 1기 주장
하대성 2013년 2013년 7월 17일 홍명보호 1-3기 주장
구자철 2013년-2014년 2013년 9월 30일 홍명보호 4기 주장
이청용 2013년 2013년 11월 14일 홍명보호 5기 주장
이근호 2014년 2014년 1월 26일 홍명보호 6기 주장

역대 대표팀 월드컵 본선 대회 주장[편집]

# 이름 선수가 주장을 맡은 대회 출전 비고
1 주영광 1954년 FIFA 월드컵 ? 경기 비출전 본선 조별리그 2차전은
박규정이 임시 주장직 수행
2 박창선 1986년 FIFA 월드컵 32
3 정용환 1990년 FIFA 월드컵 77 경기 비출전 본선 조별리그 2차전, 3차전은
최순호가 임시 주장직 수행
4 최인영 1994년 FIFA 월드컵 48 경기 도중 교체된 본선 조별리그 3차전은
홍명보가 임시 주장직 수행
5 최영일 1998년 FIFA 월드컵 55 경기 비출전 본선 조별리그 1차전, 3차전은
유상철이 임시 주장직 수행
6 홍명보 2002년 FIFA 월드컵 136 경기 도중 교체된 본선 토너먼트 16강전, 3,4위전은
유상철이 임시 주장직 수행
7 이운재 2006년 FIFA 월드컵 132
8 박지성 2010년 FIFA 월드컵 100
9 구자철 2014년 FIFA 월드컵 35

코칭 스태프[편집]

직위 이름 비고
감독 미정
수석 코치 미정
코치 미정
코치 미정
골키퍼 코치 미정
피지컬 코치 미정

역대 감독과 수석코치[편집]

감독 수석코치 경기수 승률 (%) 취임 사임
대한민국 홍명보 대한민국 김태영 19 5 4 10 26.3 2013년 6월 24일 2014년 7월 10일
대한민국 최강희 대한민국 최덕주 12 6 2 4 50 2011년 12월 21일 2013년 6월 19일
대한민국 조광래 대한민국 박태하 21 12 6 3 57.1 2010년 7월 21일 2011년 12월 8일
대한민국 허정무 대한민국 정해성 43 21 15 7 48.8 2007년 12월 7일 2010년 7월 2일
네덜란드 핌 베어벡 대한민국 홍명보 17 6 6 5 35.3 2006년 7월 1일 2007년 7월 25일
네덜란드 딕 아드보카트 네덜란드 핌 베어벡 20 10 5 5 50.0 2005년 10월 1일 2006년 6월 30일
네덜란드 요하네스 본프레레 대한민국 허정무 25 11 8 6 44.0 2004년 6월 24일 2005년 8월 23일
대한민국 박성화 (대행) 4 2 1 1 50.0 2004년 4월 20일 2004년 6월 15일
포르투갈 움베르투 코엘류 대한민국 박성화 18 8 3 7 44.4 2003년 2월 3일 2004년 4월 19일
대한민국 김호곤 (대행) 1 0 0 1 0 2002년 11월 18일 2002년 11월 20일
네덜란드 거스 히딩크 대한민국 박항서 38 16 11 11 42.1 2001년 1월 1일 2002년 6월 30일
대한민국 박항서 (대행)[ref 1] 1 0 1 0 0 2000년 12월 20일 2000년 12월 20일
대한민국 허정무 대한민국 정해성 34 18 5 11 52.9 1998년 10월 14일 2000년 11월 13일
대한민국 김평석 (대행) 1 0 1 0 0 1998년 6월 22일 1998년 6월 25일
대한민국 차범근 대한민국 김평석 41 22 8 11 53.7 1997년 1월 8일 1998년 6월 21일
대한민국 박종환 대한민국 최만희
(1996년 7월 8일 ~ 1997년 1월 7일)
16 8 3 5 50.0 1996년 2월 15일 1997년 1월 7일
대한민국 정해성 (트레이너)
(1996년 2월 15일 ~ 1996년 6월)
대한민국 고재욱 대한민국 박경훈 1 0 0 1 0 1995년 10월 20일 1995년 10월 30일
대한민국 정병탁 대한민국 조윤환 0 0 0 0 - 1995년 9월 16일 1995년 9월 30일
대한민국 허정무 대한민국 이장수 1 0 1 0 0 1995년 8월 1일 1995년 8월 12일
대한민국 박종환 대한민국 최만희 2 1 1 0 50.0 1995년 4월 26일 1995년 7월 31일
러시아 아나톨리 비쇼베츠 대한민국 김성남 16 8 4 4 50.0 1994년 7월 24일 1995년 2월 26일
대한민국 김호 대한민국 허정무
(1993년 12월 6일 ~ 1994년 7월 23일)
37 14 15 8 37.8 1992년 7월 8일 1994년 7월 23일
대한민국 유기흥
(1992년 12월 29일 ~ 1993년 11월 24일)
대한민국 조광래
(1992년 7월 8일 ~ 1992년 11월 9일)
대한민국 고재욱 대한민국 허정무 6 3 0 3 50.0 1991년 5월 22일 1991년 7월 27일
대한민국 박종환 대한민국 김희태 10 8 2 0 80.0 1990년 8월 9일 1991년 10월 23일
대한민국 이차만 대한민국 김희태 4 3 0 1 75.0 1990년 7월 3일 1990년 8월 8일
대한민국 이회택 대한민국 이차만 30 19 5 6 63.3 1988년 10월 6일 1990년 7월 2일
대한민국 김정남 대한민국 김호곤 2 2 0 0 100.0 1988년 7월 6일 1988년 10월 5일
대한민국 박종환 대한민국 원흥재 9 4 1 4 44.4 1986년 11월 20일 1988년 7월 5일
대한민국 김정남 대한민국 김호곤 26 15 7 4 57.7 1985년 3월 19일 1986년 11월 19일
대한민국 문정식 대한민국 김정남
(1984년 12월 17일 ~ 1985년 3월 18일)
10 4 3 3 40.0 1984년 7월 3일 1985년 3월 18일
공석
(1984년 7월 3일 ~ 1984년 12월 16일)
대한민국 박종환 대한민국 이이우 2 1 1 0 50.0 1983년 8월 23일 1984년 7월 2일
대한민국 조윤옥 대한민국 이세연 6 4 0 2 66.7 1983년 1월 29일 1983년 8월 22일
대한민국 최은택 대한민국 김정남 3 1 2 0 33.3 1982년 6월 21일 1983년 1월 28일
대한민국 김정남 (대행) 대한민국 김호곤 (트레이너) 35 23 4 8 67.6 1980년 5월 4일 1982년 6월 18일
대한민국 장경환 대한민국 최은택 8 7 1 0 87.5 1979년 3월 29일 1980년 5월 3일
대한민국 함흥철 대한민국 김정남 21 18 1 2 85.7 1978년 3월 2일 1979년 3월 28일
대한민국 김정남 (대행) 5 2 0 3 40.0 1977년 9월 17일 1977년 12월 18일
대한민국 최정민 대한민국 김정남 21 14 1 6 66.7 1977년 1월 1일 1977년 9월 16일
대한민국 문정식 대한민국 박경화 14 8 2 4 57.1 1976년 5월 14일 1976년 12월 31일
대한민국 함흥철 대한민국 김정남 29 22 5 2 81.5 1974년 11월 17일 1976년 5월 13일
대한민국 최영근 대한민국 최은택 9 3 5 1 33.3 1974년 1월 1974년 11월 17일
대한민국 민병대 대한민국 문정식 17 10 2 5 58.8 1972년 12월 21일 1973년 11월 20일
대한민국 함흥철 대한민국 박경화 19 11 3 5 57.9 1972년 6월 16일 1972년 12월 20일
대한민국 박병석 대한민국 박경화
(1972년 4월 6일 ~ 1972년 6월 15일)
5 1 2 2 20.0 1971년 12월 7일 1972년 6월 15일
대한민국 박상훈
(1971년 12월 5일 ~ 1972년 4월 5일)
대한민국 홍덕영 4 1 0 3 25.0 1971년 11월
대한민국 한홍기 잉글랜드 그레이엄 아담스
(1971년 3월 ~ 1971년 10월 6일)
27 17 2 8 63.0 1970년 2월 13일 1971년 10월 6일
대한민국 우상권
(1970년 2월 13일 ~ 1970년 10월)
대한민국 강준영 5 4 0 1 80.0 1969년 11월 1969년 12월
대한민국 김용식 대한민국 강준영 4 1 1 2 25.0 1969년 1월 1969년 10월
대한민국 박일갑 6 4 2 0 66.7 1968년 8월 1968년 12월
대한민국 장경환 대한민국 박일갑 15 10 3 2 66.7 1967년 7월 1967년 11월
대한민국 민병대 [ref 2] 대한민국 한창화 8 5 3 0 62.5 1966년 7월 1966년 12월
대한민국 홍건표 [ref 3] 대한민국 정남식 6 3 1 2 50.0 1965년 8월
대한민국 정국진 대한민국 김규환 0 0 0 0 0 1964년 9월
대한민국 민병대 [ref 4] 대한민국 김규환 ' 1962년 3월
대한민국 이종갑 [ref 5] 대한민국 김규환 ' 1961년 10월
대한민국 이유형 [ref 6] 대한민국 김용식 ' 1961년 3월
대한민국 위혜덕 [ref 7] 대한민국 김용식 ' 1960년 10월
대한민국 김용식 대한민국 민병대 ' 1960년 3월
대한민국 정국진 대한민국 정남식 ' 1959년 7월
대한민국 김근찬 대한민국 민병대 ' 1958년 4월
대한민국 이유형 대한민국 김성간 ' 1956년 8월
대한민국 박정휘 대한민국 주영광 ' 1955년 12월
대한민국 김용식 ' 1954년 6월
대한민국 이유형 대한민국 배종호 ' 1954년 3월
대한민국 김화집 대한민국 이용일 ' 1952년 4월 1954년 2월
대한민국 박정휘 대한민국 이유형 ' 1948년 12월 1950년 4월
대한민국 이영민 ' 1948년 6월
대한민국 박정휘 ' 1948년 5월
  1. 거스 히딩크 감독이 내정된 상태로 2001년 1월 1일 공식 취임을 앞두고 한일전 감독대행직 수행
  2. 실제 감독 역할은 한창화
  3. 실제 감독 역할은 정남식
  4. 실제 감독 역할은 김규환
  5. 실제 감독 역할은 김규환
  6. 실제 감독 역할은 김용식
  7. 실제 감독 역할은 김용식

주요 대회 기록[편집]

월드컵 기록 (본선)[편집]

연도 라운드 순위 경기 무* 득점 실점 승점
우루과이 1930년 일제 강점기
이탈리아 왕국 1934년
프랑스 1938년
브라질 1950년 불참(한국 전쟁)
스위스 1954년 1라운드 16 2 0 0 2 0 16 0
스웨덴 1958년 참가 신청서 분실로 인한 기권
칠레 1962년 예선 탈락
잉글랜드 1966년 기권
멕시코 1970년 예선 탈락
서독 1974년
아르헨티나 1978년
스페인 1982년
멕시코 1986년 1라운드 20 3 0 1 2 4 7 1
이탈리아 1990년 1라운드 22 3 0 0 3 1 6 0
미국 1994년 1라운드 20 3 0 2 1 4 5 2
프랑스 1998년 1라운드 30 3 0 1 2 2 9 1
대한민국일본 2002년 4강 4 7 3 2 2 8 6 11
독일 2006년 1라운드 17 3 1 1 1 3 4 4
남아프리카 공화국 2010년 16강 15 4 1 1 2 6 8 4
브라질 2014년 1라운드 27 3 0 1 2 3 6 1
러시아 2018년 ? ? ? ? ? ? ? ? ?
카타르 2022년 ? ? ? ? ? ? ? ? ?
합계 9회 진출 4강(1회-4위) 31 5 9 17 31 67 24

월드컵 기록 (예선)[편집]

연도 경기 무* 득점 실점 승점
우루과이 1930년 독립 이전(일제 강점기)
이탈리아 왕국 1934년
프랑스 1938년
브라질 1950년 불참(한국 전쟁)
스위스 1954년[8] 2 1 1 0 7 3 4
스웨덴 1958년 FIFA 참가 신청서 분실로 기권
칠레 1962년[9] 4 2 0 2 6 9 6
잉글랜드 1966년 기권[10]
멕시코 1970년[11] 4 1 2 1 6 5 5
서독 1974년[12] 8 3 4 1 10 4 13
아르헨티나 1978년[13] 12 5 6 1 16 9 21
스페인 1982년[14] 3 2 0 1 7 4 6
멕시코 1986년[15] 8 7 0 1 17 3 21
이탈리아 1990년[16] 11 9 2 0 30 1 29
미국 1994년[17] [18] 13 9 3 1 32 5 30
프랑스 1998년[19] 12 9 2 1 28 8 29
대한민국일본 2002년 자동참가(개최국)
독일 2006년[20] 12 7 3 2 18 7 24
남아프리카 공화국 2010년[21] 14 7 7 0 22 7 28
브라질 2014년[22] 14 8 3 3 27 11 27
러시아 2018년 ? ? ? ? ? ? ?
카타르 2022년 ? ? ? ? ? ? ?
합계 117 70 33 14 226 76 243

아시안컵 기록 (본선)[편집]

AFC 아시안컵 기록
연도 결과 순위 경기 득점 실점 승점
홍콩 1956년 우승 1 3 2 1 0 9 6 7
대한민국 1960년 우승 1 3 3 0 0 9 1 9
이스라엘 1964년 4강 3위 3 1 0 2 2 4 3
이란 1968년 예선 탈락
타이 1972년 준우승 2위 5 1 2 2 7 6 5
이란 1976년 예선 탈락
쿠웨이트 1980년 준우승 2위 6 4 1 1 12 6 13
싱가포르 1984년 1라운드 9위 4 0 2 2 1 3 2
카타르 1988년 준우승 2위 6 5 1 0 11 3 16
일본 1992년 예선 탈락
아랍에미리트 1996년 8강 7위 4 1 1 2 7 11 4
레바논 2000년 4강 3위 6 3 1 2 9 6 10
중국 2004년 8강 6위 4 2 1 1 9 4 7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타이베트남 2007년 4강 3위 6 1 4 1 3 3 7
카타르 2011년 4강 3위 6 4 2 0 13 7 14
오스트레일리아 2015년 진출 확정 ? ? ? ? ? ? ? ?
? 2019년 ? ? ? ? ? ? ? ? ?
합계 12회 진출 우승(2회) 56 27 16 13 92 60 97

컨페더레이션스컵 기록[편집]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기록
연도 결과 경기 득점 실점 승점
사우디아라비아1992년 불참
사우디아라비아1995년
사우디아라비아1997년
멕시코1999년
대한민국일본2001년 1라운드 3 2 0 1 3 6 6
프랑스2003년 불참
독일2005년
남아프리카 공화국2009년
브라질2013년
러시아2017년 ? ? ? ? ? ? ? ?
카타르2021년 ? ? ? ? ? ? ? ?
합계 1회 진출 3 2 0 1 3 6 6

하계 올림픽 기록[편집]

연도 결과 경기 득점 실점
프랑스 1900년 불참 (대한 제국)
미국 1904년
그리스 1906년
영국 1908년
스웨덴 1912년 불참 (일제 강점기)
벨기에 1920년
프랑스 1924년
네덜란드 1928년
나치 독일 1936년
영국 1948년 8강 2 1 0 1 5 15
핀란드 1952년 불참 (한국 전쟁)
오스트레일리아 1956년 예선 탈락
이탈리아 1960년
일본 1964년 조별 리그 3 0 0 3 1 20
멕시코 1968년 예선 탈락
서독 1972년
캐나다 1976년
소련 1980년 참가 거부 1
미국 1984년 예선 탈락
대한민국 1988년 조별 리그 3 0 2 1 1 2
모든 연령의 선수 참가에서 23세 이하로 변경[23]
합계 3/20 8 1 2 5 7 37
  1. 1980년 하계 올림픽은 대다수 서방 세계 국가들이 보이콧하였다. 대한민국 역시 이에 동참하였기 때문에 예선 참가조차 하지 않았다.

아시안 게임 기록[편집]

연도 결과 경기 득점 실점
인도 1951년 불참 (한국 전쟁)
필리핀 1954년 2위 4 1 2 1 15 12
일본 1958년 2위 5 4 0 1 15 6
인도네시아 1962년 2위 5 4 0 1 9 5
타이 1966년 예선 탈락
타이 1970년 우승 6 3 2 1 5 3
Iran flag with emblem 1964-1979.png 1974년 예선 탈락
타이 1978년 우승* 7 6 1 0 15 3
인도 1982년 예선 탈락
대한민국 1986년 우승 6 4 2 0 14 3
중국 1990년 3위 6 5 0 1 18 1
일본 1994년 4위 6 3 0 3 17 7
타이 1998년 8강 6 4 0 2 12 6
모든 연령의 선수 참가에서 23세 이하로 변경[24]
합계 9/13 45 30 7 7 120 46
  • *: 공동 우승을 나타낸다.

다이너스티컵 / 동아시안컵 기록[편집]

연도 결과 경기 득점 실점
중화인민공화국 1990년 우승 4 3 1 0 5 1
중화인민공화국 1992년 준우승 4 1 4 0 5 3
홍콩 1995년 준우승 4 1 3 0 6 5
일본 1998년 3위 3 2 0 1 4 3
일본 2003년 우승 3 2 1 0 4 1
대한민국 2005년 4위 3 0 2 1 1 2
중화인민공화국 2008년 우승 3 1 2 0 5 4
일본 2010년 준우승 3 2 0 1 8 4
대한민국 2013년 3위 3 0 2 1 1 2
합계 8/8 30 12 15 4 39 25

골드컵 기록[편집]

연도 결과 경기 득점 실점
미국 2000년 조별 리그 2 0 2 0 2 2
미국 2002년 4위 5 0 2 3 3 7
합계 7 0 4 3 5 9

개인 기록[편집]

  • 아래 기록은 2014년 6월 12일을 기준으로 한다.
  • 현역 선수는 굵은 글씨로 나타냄.

최다 출장 선수[편집]

# 이름 활동 기간 경기
1 홍명보 1990–2002 136 10
2 이운재 1994–2010 132 -114
3 이영표 1999–2011 127 5
4 유상철 1994–2006 122 18
5 차범근 1972–1986 121 55
6 김태영 1992–2004 106 3
7 황선홍 1988–2002 103 50
8 박지성 2000–2011 100 13
9 이동국 1998–현재 99 30
10 김남일 2000–현재 98 2
11 최순호 1980–1991 95 30
11 하석주 1991–2001 95 23
13 조영증 1975–1986 92 2
13 박성화 1974–1984 92 24
15 최종덕 1975–1986 89 12
16 박경훈 1981–1990 88 1
17 서정원 1990–2001 87 16
18 허정무 1974–1986 84 29
19 설기현 2000–현재 83 19
20 조광래 1975–1986 80 10

최다 득점 선수[편집]

# 이름 활동 기간 경기 경기당 평균 골
1 차범근 1972–1986 121 55 0.45
2 황선홍 1988–2002 103 50 0.49
3 박이천 1969–1974 88 36 0.41
4 김재한 1972–1979 57 33 0.58
5 김도훈 1994–2003 72 30 0.41
5 최순호 1980–1991 95 30 0.32
5 이동국 1998–현재 99 30 0.30
8 허정무 1974–1986 84 29 0.35
9 최용수 1995–2003 69 27 0.39
10 박주영 2005–현재 64 23 0.38

최연소 데뷔 선수[편집]

  • 명단은 10대에 데뷔한 선수들 전체를 데뷔 나이 기준으로 정렬한 것이다.
  • 현역 선수는 굵은 글씨로 나타냄.
# 이름 생년월일 데뷔일 데뷔 나이 상대국
1
김판근 1966년 3월 5일 1983년 11월 1일 17세 242일 타이 타이
2
김봉수 1970년 12월 4일 1988년 12월 11일 18세 7일 이란 이란
3
고종수 1978년 10월 30일 1997년 1월 18일 18세 80일 노르웨이 노르웨이
4
손흥민 1992년 7월 8일 2010년 12월 30일 18세 171일 시리아 시리아
5
최순호 1962년 1월 10일 1980년 9월 16일 18세 249일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
6
이천수 1981년 7월 9일 2000년 4월 5일 18세 270일 라오스 라오스
7
박병철 1954년 11월 25일 1973년 9월 22일 18세 301일 캄보디아 크메르 공화국
8
차범근 1953년 5월 22일 1972년 5월 10일 18세 353일 캄보디아 크메르 공화국
9
구자철 1989년 2월 27일 2008년 2월 17일 18세 355일 중화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10
이동국 1979년 4월 29일 1998년 5월 16일 19세 17일 자메이카 자메이카
11
최태욱 1981년 3월 13일 2000년 4월 7일 19세 25일 몽골 몽골
12
박지성 1981년 2월 25일 2000년 4월 5일 19세 39일 라오스 라오스
13
석현준 1991년 6월 29일 2010년 9월 7일 19세 71일 이란 이란
14
노정윤 1971년 3월 28일 1990년 7월 31일 19세 125일 중화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15
김진규 1985년 2월 16일 2004년 7월 14일 19세 148일 트리니다드 토바고 트리니다드 토바고
16
지동원 1991년 5월 28일 2010년 12월 30일 19세 216일 시리아 시리아
17
서정원 1970년 12월 17일 1990년 7월 27일 19세 222일 일본 일본
18
기성용 1989년 1월 24일 2008년 9월 5일 19세 225일 요르단 요르단
19
박주영 1985년 7월 10일 2005년 6월 3일 19세 328일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키스탄
20
이청용 1988년 7월 2일 2008년 5월 31일 19세 333일 요르단 요르단

최연소 데뷔 골[편집]

# 이름 기록 나이 기록일 상대국
1
고종수 18세 87일 1997년 1월 25일 뉴질랜드 뉴질랜드
2
손흥민 18세 194일 2011년 1월 18일 인도 인도
3
이천수 18세 270일 2000년 4월 5일 라오스 라오스
4
차범근 18세 350일 1972년 5월 7일 이라크 이라크
5
최태욱 19세 23일 2000년 4월 5일 라오스 라오스
6
박지성 19세 69일 2000년 6월 7일 마케도니아 공화국 마케도니아 공화국
7
지동원 19세 216일 2010년 12월 30일 시리아 시리아
8
기성용 19세 229일 200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9
박주영 19세 328일 2005년 6월 3일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용품 스폰서[편집]

기간 스폰서 비고
1977–1984 독일 아디다스
일본 아식스
대한민국 코오롱액티브
대한민국 프로스펙스
대한민국 위크엔드외 다수
[25][26][27]
최초 용품 스폰서는 아디다스이나 1987년 지금과 같은 용품 스폰서십 계약이
있기까지 아식스, 코오롱액티브, 삼성물산 위크엔드 등 국내외 브랜드의
여러 유니폼을 그때그때 마다 선정해서 착용하였으며 현재와 같은 용품 스폰서십 개념은 아니었다.
1984–1987[28] 대한민국 위크엔드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출전시 삼성물산 SS패션 스포츠 브랜드 위크엔드 유니폼 착용[29]
1987년 대한축구협회와 현재와 같은 공식 용품 스폰서십 계약을 한 최초의 스포츠 브랜드이다.
1988–1995 대한민국 라피도 1988년 1월 라피도 브랜드 출시로 변경[30][31]
1996–현재 미국 나이키[32] 대한축구협회는 1995년 말에 나이키와 1996년 1월 1일부터 1997년 12월 31일까지
2년간 용품 스폰서십 계약 체결을 시작으로 2019년까지 12월 31일까지 24년간 장기 계약을 유지중이다.[33]

유니폼 변천사[편집]

1948–54 홈
0
1954 홈
(1954 WC)
1955–68 홈
0
1960 홈
(1960 AC)
1971–73 홈
0
1974–76 홈
0
1977–78 홈
0
대한민국 위크엔드 (1984년–1987년)
1984–88 홈
(1986 WC)
1984–88 원정
(1986 WC)
대한민국 라피도 (1988년–1995년)
1988-89 홈
(1988 OG)
1988-89 원정
(1990 WCQ)
1990 홈
(1990 WC)
1990 원정
(1990 WC)
1990 원정
(1990 DC)
1992–93 홈
(1992 OG)
1992–93 원정
(1992 OG)
1993 홈
(1994 WCQ)
(1)
1993–94 원정
(1994 WC)
(1)
1994 홈
(1994 WC)0
(2)
1994 써드
(1994 WC)
(3)
1994–95 홈
(1994 AG)
1994–95 원정
(1994 AG)
1995 홈
0
1995 원정
0
미국 나이키 (1996년-현재)
1995–96 홈
(1996 OGQ)
(4)
1995–96 원정
(1996 OGQ)
(4)
1996–98 홈
(1996 OG)
(5)
1996–98 원정
(1996 OG)
(5)
1998–02 홈
(1998 WC &
(6)
1998–02 원정
2000 OG)
(6)
2002–04 홈
(2002 WC)
2002–04 원정
(2002 WC)
2004–06 홈
(2004 OG)
2004–06 원정
(2004 OG)
2006–08 홈
(2006 WC)
2006–08 원정
(2006 WC)
Football kit
2008–10 홈
(2008 OG)
2008–10 원정
(2008 OG)
Football kit
2010–12 홈
(2010 WC)
Football kit
2010–12 원정
(2010 WC)
Football kit
2012–14 홈
(2012 OG)
Football kit
2012–14 원정
(2012 OG)
Football kit
2014– 홈
(2014 WC)
2014– 원정
(2014 WC)

1. 1993년 9월 미국 월드컵 최종 예선을 앞두고 당시 세계적인 유니폼 트렌드에 맞게 화려한 무늬 추가해서 변경하였다.[34]
2. 붉은색 유니폼이 상대팀에게 적개심을 불러 일으켜 경기력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하얀색 유니폼으로 교체하였다.
3. 미국 월드컵 조별 예선 2차전 볼리비아전에서는 홈 유니폼 상의와 원정 유니폼 하의를 조합하여 임시 써드 유니폼을 만들어 착용하였다.
4. 1995년 말 용품 스폰서십 계약 후 1996년 나이키가 최초로 공급한 유니폼은 라피도에서 디자인하여 1995년 10월 31일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00 공개된 유니폼과 똑같은 디자인에 브랜드 로고만 나이키로 변경한 유니폼이었다.

5. 나이키가 디자인한 최초의 유니폼으로 디자인을 한 토모코 반도씨는 "한국에 대해 가장 강렬하게 기억되는 이미지인 태극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하였으며
00 1996년 7월 8일 올림픽 대표팀의 콜롬비아 대표팀과의 평가전때 처음 착용되었다.

6. 4년 동안 기본적인 디자인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넘버 프린팅과 골피커 유니폼 등에 있어서 약간의 변경이 있었다.

관련 항목[편집]

주석[편집]

  1. 첫A매치 골은 故정남식•정국진씨, 《문화일보》, 2007년 8월 6일 작성.
  2. 8강 태극전사들 “헛구역질 날 정도로 뛰었다”, 《동아닷컴》, 2002년 6월 19일 작성.
  3. -월드컵- 대표팀, 김남일.김태영 부상 변수, 《연합뉴스》, 2002년 6월 19일 작성.
  4. 이석무. "FIFA, 한-스위스전 비디오 분석 '심판판정 옳았다'", 《마이데일리》, 2006년 6월 27일 작성. 2010년 1월 18일 확인.
  5. 홍제성. "네티즌들 스위스전 재경기 주장", 《스포츠한국》, 2006년 6월 24일 작성. 2008년 1월 2일 확인.
  6. Referee designations for matches 1-16 (영어) (PDF).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2010년 6월 5일).
  7. Referee designations for matches 17-24 (영어) (PDF).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2010년 6월 14일).
  8. 아시아 지역예선에 처음으로 참여했다. 남베트남과 인도는 자격 미달로 FIFA로부터 참가를 거절당했고, 대만은 최종 기권해서 일본과 예선을 치뤘는데, 당시 대통령이 일본 선수를 한국으로 들일 수 없다 하여 두 경기 모두 일본에서 진행되었다. 각각 5:1, 2:2로 1승 1무를 거두고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였다.
  9. 당시엔 아시아, 북중미, 아프리카 대륙 티켓이 0.5장이었다. 아시아 예선을 뚫어도 유럽과 플레이오프를 겨뤄야 했는데, 일단 인도네시아가 기권하고 일본에게 2승(홈 2:1, 원정 2:0)을 거두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해대회 4강팀 유고슬라비아와 만났다. 예상대로 2패(홈 1:3, 원정 1:5)하면서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10. 북한이 처음으로 참가신청을 했는데 당시 북한은 A매치 17연승을 달리던 아시아 최강이었다. 예선을 앞두고 기권했는데 표면적인 이유는 개최지가 일본에서 캄보디아로 변경된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북한에게 질 경우 후폭풍이 두려워서였다.
  11. 1차예선 1조에서 호주, 일본과 붙었다. 개최지는 대한민국으로 6경기 모두 서울에서 경기가 열렸는데, 일본에게 1승 1무(2:2, 2:0)로 앞섰지만 호주에게 1무 1패(1:2, 1:1)로 밀리며 조 2위로 2차예선 진출에 실패했다.
  12. 1차예선 2조에서 이스라엘, 말레이시아, 태국과 붙었다. 개최지는 대한민국으로 A지역 예선 모두 서울에서 경기했으며, 1승 2무 조 2위(태국 4:0, 말레이시아 0:0, 이스라엘 0:0)로 준결승에 진출, 1조 1위 홍콩을 3:1로 이기고 결승전에선 이스라엘과 다시 만나 1:0으로 승리하며 A지역(동아시아) 최종 1위가 되었다. B지역 1위 호주와 한 장의 티켓을 놓고 최종 플레이오프를 했는데 호주 원정 0:0, 대한민국 홈 2:2로 재경기 끝에 0:1로 패배, 아쉽게 본선티켓을 놓쳤다. 1986년 출전 이전까지 본선에 가장 근접한 대회였다.
  13. 1차예선 2조에서 이스라엘, 일본과 붙었다. 북한도 같은 조였으나 기권했고, 이스라엘에 1승 1무(원정 0:0, 홈 3:1), 일본에 1승 1무(원정 0:0, 홈 1:0)를 기록하며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이란, 쿠웨이트, 호주, 홍콩과 붙었는데 3승 4무 1패 최종 2위로 1장의 티켓을 또다시 내주었다. 상대전적은 1위 이란(2무), 3위 쿠웨이트(1승 1무), 4위 호주(1무 1패), 5위 홍콩(2승)이었다.
  14. 1차예선 3조에서 쿠웨이트, 말레이시아, 태국과 붙었다. 개최지는 쿠웨이트로 6경기 모두 쿠웨이트에서 경기가 열렸으며, 2승 1패 조 2위(말레이시아 2:1, 태국 5:1, 쿠웨이트 0:2)로 최종예선 진출에 실패했다. 대한민국의 1차예선 탈락은 뉴질랜드에 밀려 탈락한 호주와 더불어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예선 최고의 이변이었다.
  15. 이 대회에서는 1,2그룹은 중동, 3,4그룹은 동아시아+남아시아로 지역을 나눠 각각 1장씩 티켓을 부여했다. 1차예선 3그룹 A조에서 말레이시아, 네팔과 붙었다. 말레이시아에게 0:2로 패하면서 출발이 불안했으나 나머지 3경기를 모두 이기고 2차예선에 진출, 3그룹 B조 1위 인도네시아에 2승(홈 2:0, 원정 4:1)하며 최종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일본과 만나 2승(원정 2:1, 홈 1:0)으로 이기며 32년만의 본선에 진출했다.
  16. 1차예선 4조에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네팔과 붙었다. 인도는 최종 기권했다. 6전 전승(말레이시아 3:0-3:0, 싱가포르 3:0-3:0, 네팔 9:0-4:0 : 전반기 - 대한민국, 후반기 - 싱가포르)에 무실점으로 최종예선에 진출, 3승 2무(카타르 0:0, 북한 1:0, 중국 1:0, 사우디 2:0, UAE 1:1 : 개최지 - 싱가포르) 최종 1위로 본선에 진출했다. 총합 9승 2무 30득점 1실점이라는 압도적인 기록으로 본선에 올랐다. 정작 본선에서는 3전 3패를 세계와의 높은 벽을 실감한 대회였다.
  17. 1차예선 4조에서 바레인, 레바논, 홍콩, 인도를 상대로 7승 1무(바레인 0:0-3:0, 레바논 1:0-2:0, 홍콩 3:0-4:1, 인도 3:0-7:0 : 전반기 - 레바논, 후반기 - 대한민국)를 기록하면서 최종예선에 진출, 2승 2무 1패(이란 3:0, 이라크 2:2, 사우디 1:1, 일본 0:1, 북한 3:0 : 개최지 - 카타르) 최종 2위로 본선에 진출했다.
  18. 4라운드에서 일본에 0:1로 지면서 3위로 주저앉았는데,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일본 1위(2승 1무 1패), 사우디 2위(1승 3무), 대한민국 3위(1승 2무 1패)였다. 월드컵 티켓이 2장이라 이대로면 탈락이 확정되는 상황이었고, 무조건 북한을 2점차 이상 이기고 일본이 이라크에, 사우디가 이란에 무승부로 잡히길 바라는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북한을 3:0으로 잡았지만 사우디가 이란에 4:3으로 앞서며 경기가 끝났고, 일본도 경기종료를 앞두고 이라크에 2:1로 앞서고 있었다. 대한민국 선수들은 울면서 경기장을 나갔지만 종료 30초 전 이라크가 극적으로 동점골을 넣으면서 상황이 뒤집혔고 대한민국이 2위로 올라서며 극적으로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도하의 기적 참고.
  19. 1차예선 6조에서 태국, 홍콩을 상대로 3승 1무(태국 3:1-0:0, 홍콩 2:0-4:0)를 기록하면서 최종예선에 진출, 6승 1무 1패(일본 2:1-0:2, 아랍에미리트 3:0-3:1, 우즈베키스탄 2:1-5:1, 카자흐스탄 3:0-1:1) 최종 1위로 본선에 진출했다. 특히 일본 원정에서 2:1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도쿄 대첩을 이루었고, 우즈베키스탄 원정에서 5:1로 승리하는 등 일찍 분위기를 잡았고, 유일한 패배인 일본전 홈 0:2 패배도 이미 진출이 확정되고 나서 열린 경기였다.
  20. 1차예선 없이 2차부터 참여했다. 2차예선 7조에서 4승 2무(레바논 2:0-1:1, 베트남 2:0-2:1, 몰디브 2:0-0:0)를 기록하면서 최종예선에 진출했으나 3골 이상 넣은 경기가 없었고, 특히 2차전 몰디브 원정에서 0:0으로 졸전하면서 코엘류 감독이 경질되기도 했다. 최종예선 A조에서 3승 1무 2패(사우디 0:1-0:2, 우즈베키스탄 2:1-1:1, 쿠웨이트 2:0-4:0) 최종 2위로 본선에 진출했다. 쿠웨이트 원정에서 4:0으로 대승하며 지긋지긋한 쿠웨이트 징크스는 날렸지만, 우즈벡 원정에서 1:1로 비기고 사우디에게 2연패하는 등 결과가 좋지 않았다. 결국 코엘류 후임으로 들어온 본프레레 감독마저 경질되며 예선 도중 두 명의 감독이 경질되는 기록을 남겼다.
  21. 1,2차예선 없이 3차부터 참여했다. 3차예선 3조에서 3승 3무(북한 0:0-0:0, 요르단 2:2-1:0, 투르크메니스탄 4:0-3:1)를 기록하며 1위로 최종예선에 진출, B조에서 4승 4무(북한 1:1-1:0, 사우디 2:0-0:0, 이란 1:1-1:1, 아랍에미리트 4:1-2:0) 최종 1위로 본선에 진출했다. 처음 조편성이 될 때만 해도 중동의 투 톱인 사우디 이란과 수비벽에 막혀 고전하는 북한까지 같은 조에 있어 어려운 승부가 예상되었으나 의외로 사우디 징크스마저 깨면서 무패로 본선에 올라갔고, 북한이 2위를 차지함으로서 남북이 동시에 진출한 첫 월드컵이 되었다.
  22. 1,2차예선 없이 3차부터 참여했다. 3차예선 B조에서 4승 1무 1패(레바논 6:0-1:2, 쿠웨이트 1:1-2:0, 아랍에미리트 2:1-2:0)를 기록하며 1위로 최종예선에 진출했으나 레바논전 충격패로 조광래 감독이 경질되기도 했다. 최종예선 A조에서 4승 2무 2패(이란 0:1-0:1, 우즈베키스탄 2:2-1:0, 카타르 4:1-2:1, 레바논 3:0-1:1) 최종 2위로 본선에 진출했다. 초반 두 경기에서 4:1, 3:0으로 대승하면서 분위기를 잡았지만 이후 경기에서 계속 고전하면서 미끄러졌다. 특히 이란에 2연패하고 마지막 경기에선 홈에서 0:1로 지면서 비기기만 해도 사실상 탈락이었던 이란에게 조 1위까지 내주며 퀘이로스 감독한테 주먹감자를 먹는 수치를 당했다. 우즈베키스탄은 한국이 이란과 비겨주고 자신들이 카타르에 대승하면 본선 진출이 가능했지만 5:1로 이기고도 한국이 지는 바람에 플레이오프로 미끄러져야 했다. 2위 한국과 승점이 같았으며 골득실도 겨우 1점차였다..
  23. 이 문서에서는 1992년 하계 올림픽 축구 예선 이전의 내용만 다룬다. 이 이후의 기록은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을 참고하시오.
  24. 이 문서에서는 1998년 아시안 게임까지의 내용만 다룬다. 이 이후의 기록은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을 참고하시오.
  25. 송기룡. "한국 대표팀 유니폼 역사", 《월간 축구가족》.
  26. "대표선수도 국제경기서 버젓이 서독 아디다스, 일본 미즈노등 외제 스포츠용품 국내시장 석권", 《경향신문》.
  27. 축구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에 대해서 알아보자
  28. "월드컵 상혼 장외서 뜨거운 "광고전쟁"", 《경향신문》.
  29. "필승!위크엔드스포츠-멕시코월드컵에서 대표팀과 함께 뜁니다", 《경향신문》.
  30. "외국스포츠상표 국내진출러시의류", 《매일경제신문》, 1988년 1월 30일 작성.
  31. "3개상표 개발 삼성물산", 《매일경제신문》, 1988년 2월 16일 작성.
  32. "축구협회 월드컵유니폼 교체 '후원금 최소 100억'", 《경향신문》.
  33. "축구협회, 나이키와 1200억원 후원 계약", 《스포츠경향》.
  34. "축구대표 선수복 노랑, 흰색 가미", 《한겨레》, 1993년 9월 28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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