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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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피나스 공화국
Republika ng Pilipinas
Republic of the Philippines
Flag of the Philippines.svg Coat of arms of the Philippines.svg
국기 국장
표어 Maka-Diyos, Makatao, Makakalikasan, at Makabansa
(마카-디요스, 마카타오, 마카칼리카산, 아트 마카반사)
하느님, 사람들, 자연들, 그리고 우리 조국
국가 루팡 히니랑
Philippines on the globe (Southeast Asia centered).svg
수도 마닐라 북위 14° 35′ 00″ 동경 120° 58′ 00″ / 북위 14.583333° 동경 120.966667° / 14.583333; 120.966667
최대도시 케손시티 북위 14° 38′ 00″ 동경 121° 02′ 00″ / 북위 14.633333° 동경 121.033333° / 14.633333; 121.033333
정치
공용어 필리핀어, 영어
정부 형태 공화국
대통령
부통령
노이노이 아키노
제조마르 비나이
역사
독립  
 • 독립 미국으로부터 독립
1946년 7월 4일
지리
면적 300,000km² (72 위)
내수면 비율 0.6%
시간대 PST (UTC+8)
DST 없음
인구
2008년 어림 90,500,000명
2007년 조사 88,574,614명 (12위)
인구 밀도 295명/km² (32위)
경제
GDP(PPP) 2012년 어림값
 • 전체 $4,172억 (32위)
 • 일인당 $4,300 (134위)
HDI 0.654 (114위, 2012년 조사)
통화 페소 (PHP)
기타
ISO 3166-1 608, PH, PHL
도메인 .ph
국제 전화 +63

필리핀 공화국(필리핀어: Republika ng Pilipinas 레푸블리카 낭 필리피나스, 영어: Republic of the Philippines 리퍼블릭 오브 더 필러핀즈[*]), 약칭 필리핀(필리핀어: Pilipinas 필리피나스, 영어: Philippines 필러핀즈[*])은 서태평양에 있는 동남아시아의 섬나라이다. 북쪽의 루손 해협 건너편에는 타이완, 서쪽의 남중국해 건너편에는 베트남이 있다. 남서쪽에 위치한 보르네오 섬 사이에는 술루 해가 있으며, 남쪽의 술라웨시 해의 건너편에는 인도네시아의 섬들이 있다. 동쪽에는 필리핀 해가 있다.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이유로서 필리핀은 지진과 태풍이 많이 일어나는 지역이다. 7,107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 필리핀은, 크게 루손 섬, 비사야 제도, 민다나오 섬의 세 지역으로 나뉜다.

인구는 1억 명으로,[1] 세계에서 12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또한, 약 1,100만 명의 필리핀인들이 해외에 살고 있다. 필리핀에는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존재한다. 선사시대에 필리핀에 거주했던 사람들 중에는 네그리토가 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오스트로네시아어족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정착했고, 말레이인의 문화와 힌두교, 이슬람교 등이 전래되었다. 또한, 무역으로 중국 대륙의 문화가 필리핀에 영향을 끼쳤다.

1521년,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필리핀에 도착한 이후, 스페인이 필리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결국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식민 지배 동안에 마닐라아카풀코와의 무역 연결점이 되었으며, 필리핀에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었다. 19세기 말에 필리핀 혁명이 일어나고, 짧은 기간동안 유지된 필리핀 제1 공화국이 세워졌다. 그리고 뒤를 이어 미국-스페인 전쟁필리핀-미국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 이후, 미국의 지배가 시작되었고,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필리핀이 독립을 할 때까지, 일본군이 점령했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미국이 필리핀의 주권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지배를 계기로 영어와 서양 문화가 필리핀에 전해졌다.

필리핀은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는 일본 다음으로 매우 부강하고 잘 사는 나라였으나, 마르코스 정권 말기의 타락, 몰락과 함께 빠르게 쇠퇴해 갔다.

수도는 마닐라이며, 공용어는 필리핀어영어이다.

역사[편집]

1870년대, 필리핀 원주민-중국계 혼혈 여성

부족국가 시대[편집]

여러 섬에 각기 다른 부족들이 나뉘어 있어 통일 국가는 형성되지 않았다.

스페인의 식민통치[편집]

스페인의 식민통치와 민중항쟁[편집]

1521년포르투갈마젤란이 세계 일주 항해 도중 세부 섬에 상륙하면서 유럽세계에 알려지게 되고 이후 에스파냐의 필리핀 식민통치가 시작되었다. 19세기 말까지 200년 이상 계속된 에스파냐의 통치는 필리핀을 동남아시아 유일의 로마 가톨릭교회 국가로 만들어서, 필리핀은 수도사의 천국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러나 에스파냐에서 온 식민통치 권력과 결탁하여, 종교권력을 휘두르는 교회의 압제에 항거하여 필리핀 독립을 쟁취하려는 움직임이 19세기 말 시작되어 각지에서 민중항쟁이 일어났다.

미국-스페인 전쟁[편집]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패한 스페인파리 강화 조약에 따라 미국에게 2,000만 달러를 받고 필리핀,괌 등 지배권을 양도했다.

미국의 식민통치와 독립투쟁[편집]

반미항쟁[편집]

그 후에도 로마 가톨릭 사제수녀들이 주동하는 필리핀 민중들의 독립투쟁은 계속되고[2] 혁명 정부도 수립되었으나 미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1934년 미국 의회에서 피딩스·막다피 법이 통과되어 10년 후에 필리핀 독립이 승인되기에 이르렀다.

일본군의 점령[편집]

1935년에는 필리핀 연방이 조직되었고 마누엘 케손이 초대 대통령에 올랐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필리핀은 일본군의 점령하에 있었다. 일본은 1943년에 필리핀 독립을 승인했고 대통령에는 호세 파치아노 라우렐이 선출되었다.

독립이후[편집]

전쟁이 끝난 1946년미국은 필리핀의 완전 독립을 승인, 공화제를 채택한 필리핀은 마누엘 로하스를 초대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 뒤 필리핀은 아시아권에서 빠른 경제발전을 이룩하였지만, 국민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정치적/경제적 문제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다. 필리핀은 미국에게 경제적 원조를 받는 대신, 공군/해군기지를 빌려주기로 한다.

1965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Ferdinand Marcos)가 대통령이 되었다. 집권 초 마르코스는 '민주 공화국'을 내세우고, 효율적 세제운영과 대외차관 유치 등으로 국가를 안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인기가 절정해 달했음에도, 반정부세력들과 이슬람세력들의 반발 아래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러다가 마르코스의 지지율은 급속도로 하락하기 시작했고, 부패에 연루되어 비난을 받기 시작했다. 거기다 1983년 베니그노 아키노 2세(Benigno Aquino)의 암살을 계기로 그의 인기는 점점 떨어지고, 1986년 베니그노의 미망인인 코라손 아키노(Corazon Aquino)가 야당 단독후보로 대선에 출마하지만 숱한 부정을 통해 재선에 성공한다. 결국에는 반정부 시위로 번지게 되었고, 자진 사퇴하게 된다.

1986년 코라손 아키노가 필리핀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임기 초반부터 테러가 일어나, 정치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1992년에는 아키노의 지명을 받은 피델라모스(Fidel Ramos)가 대통령이 되었고, 1998년에는 영화배우 출신의 조셉 에스트라다(Joseph Estrada)가 대통령이 되지만, 부패로 국민들의 반감을 사 2001년 중도사임했다.

에스트라다의 사임으로 디오스다도 마카파갈(Diosdado Macapagal)의 딸인 글로리아 마카파갈아로요(Gloria Macapagal-Arroyo)가 대통령이 되었다. 2004년 재선에 성공하지만, 부패에 연루되고 만다.

2010년 코라손대통령의 아들인 노이노이 아키노(Noynoy Aquino)가 대통령이 되었다. 한편 아로요는 선거조작 혐의로 기소되었다([1]).

지리[편집]

지도[편집]

아시아의 주요 지리
필리핀 제도
v  d  e  h아시아의 주요 지리

자연[편집]

바나우에 계단식 논

섬나라[편집]

필리핀은 동남아시아의 동북단에 있으며 아시아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사이에 자리 잡은 7,107개의 크고 작은 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 무인도에 불과해 사람이 사는 은 약 880개뿐이며 이름이 붙여진 섬도 약 2,700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필리핀 군도들은 환태평양화산대(환태평양화산대란 태평양 주변의, 지진과 화산 활동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태평양을 둘러싸고 있는 고리 모양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에 속하기 때문에 지진이 자주 발생하고 화산 활동도 활발하다. 들의 지형은 대체로 이 많으며, 평야는 해안에 접한 저지대를 흐르는 하천 유역에 한정되어 있어서 농경지는 별로 없다. 가끔 농경지가 발견되어도 거의 계단식의 형태를 띠고 있을것이다.

산과 호수[편집]

필리핀은 화산 덕택으로 아름다운 호수가 많다. 특히 이 나라 최대의 루손 섬마욘 산은 원뿔형의 활화산으로 무척 아름답다. 루손 섬민다나오 섬의 면적이 전 국토의 70%를 차지한다.

기후[편집]

열대성이며 몬순태풍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1년 내내 기온이 높은 마닐라의 연평균 기온은 27도이다. 몬순은 6월부터 10월까지는 남서에서, 11월부터 3월 말까지는 북동에서 불어온다. 계절은 우기와 건기로 나뉘며 군도의 동쪽과 서쪽에서는 건기와 우기가 서로 엇갈린다. 태풍은 7월에서 10월까지의 시기에 내습하는데 특히 루손 섬은 매년 태풍의 통로가 되고 있다.

  • 12~2월
이 시기는 필리핀의 겨울이며, 여름보다 비교적 기온이 낮고 도 적다. 이런 경향은 마닐라를 포함한 루손 섬 북서부에서 나타난다. 하지만, 건기라 해도 태평양 동해안에서는 큰 가 내리기도 한다.
  • 3~5월
이 시기는 다른 나라의 에 해당하며, 필리핀에서는 아주 빨리 여름이 찾아온다. 그중에서도 5월 무더위의 낮 온도는 35~40도까지 오르기도 한다. 에도 기온은 아직 남아있어서 대개 25도 정도이다. 하지만, 아직 건기이기 때문에 더워지진 않다. 하지만, 바기오 지방은 이 시기가 되어도 시원하다.
  • 6~12월
대개 5월여름이 끝나고 6월부터 우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최근엔 기상이변으로 우기의 시작이 늦어지고 있다. 1983년에는 7월 중순까지 건기가 계속되기도 했다. 우기는 11월까지 계속되어서 이로 말미암아 비사야 제도 지방, 민다나오 섬 북동부, 루손 섬 동해안에서는 매년 태풍에 의해 큰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주민[편집]

다양한 인종[편집]

필리핀의 민족 구성은 대체로 네그리토족·인도네시아인·말레이인이 중심이었으나 현재의 필리핀인은 90% 이상이 말레이인에 속한다. 이들 민족 외에 10%는 화교메스티소라고 불리는 혼혈족이 차지한다. 화교가 경제생활에 공헌하고 있다면 메스티소경제적으로 윤택하며 고등 교육을 받아 사회적으로도 상류 계급을 형성하고 있다. 종교는 85%가 로마 가톨릭 교회를 신봉한다. 이 밖에 군도의 남쪽에 거주하는 모로족이슬람교를 믿으며 도이프가오족 등의 민족은 정령을 숭배한다. 복잡한 민족만큼이나 언어 또한 많아 70종 이상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공용어영어, 필리핀어이다. 필리핀 국민은 말레이족을 근간으로 하여 중국인, 미국인, 스페인인 및 아랍 혈통의 후손들로 구성되어 있다. 2000년 5월 기준으로 필리핀 인구는 7천6백5십만명이며 각 인종의 구별은 거의 없다. 서구 국가의 오랜 식민 통치 역사와 무역 상인들의 혈통이 섞여 외모와 문화 모두에서 동양과 서양이 독특하게 혼합된 국민이 나타났다.

친족 정신[편집]

필리핀 국민의 특성은 실제로 모든 문화가 조금씩 섞여 있다. 필리핀인들의 유명한 친족 정신은 말레이족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며, 긴밀한 가족 관계는 중국인으로부터 전해진 것이다. 경건한 신앙심은 16세기 기독교를 전파한 스페인 사람들로부터 물려받았다. 필리핀어가 공식 국가언어라면 영어는 비공식 언어로 간주된다.

지역에 따른 문화[편집]

필리핀 민족은 지리적 문화적으로 지역에 따라 구별되며 각 지역적 집단은 상이한 풍습과 방언을 통해 구별할 수 있다. 북부 지역의 일로카노 지역 주민은 강건하고 검소하며. 중부 평야지대의 타갈로그 주민은 근면하다. 중부지역 섬으로부터 비자야의 주민들은 낙천적이며 민다나오 지역에는 각색의 원주민과 경건한 회교도들이 거주하고 있다.

원주민[편집]

원주민 부족 공동체는 군도 전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역적 문화적으로 다양하게 세분되는 필리핀에는 111 종 이상의 방언이 존재한다.

종교에 따른 구분[편집]

인구의 약 80%가 로마 가톨릭 신자인데 이는 스페인 통치의 유산이다. 약 15%의 회교도는 기본적으로 민다나오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인구의 나머지는 개신교,성공회,불교이다.

문화혼합지역[편집]

필리핀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만나는 문화 혼합 지역이다. 전통 문화와 스페인 문화가 공존한다. 민족의 배경에는 인도네시아계 민족과 말레이계 민족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중국과 스페인계 혈통의 영향도 받았다. 미국 통치 및 무역 상인들과의 접촉 역사를 통해 동양과 서양이 독특하게 혼합되어 있으며 이러한 영향은 필리핀 국민의 외모와 문화에 나타난다.

기독교 의식[편집]

스페인 정복자들은 기독교 (로마 가톨릭 신앙)를 전파하고 필리핀 국민 대부분을 개종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적어도 전 인구의 80 퍼센트 이상이 로마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다.

영어[편집]

미국의 지배 하에서 필리핀 국민은 영어를 받아들였다. 현재 필리핀은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영어 사용 국가이다.

행정 구역[편집]

필리핀 전국의 행정조직은 17개 지방(Region), 80개 (Province), 117개의 시(City), 1,501개 지방 자치체(Municipality), 41,982개 마을(Barangay, 바랑가이)이 운영 중이다.

수도는 마닐라이며 이는 메트로 마닐라를 구성하는 하나의 시를 의미한다. 메트로 마닐라는 14개 시와 3개 읍으로 구성되어 있다. 메트로 마닐라를 통괄하는 행정기관은 Metro Manila Developement Authority(MMDA)로 광역행정 업무를 협의, 조정하고 있다.

필리핀의 행정 구역
지방 칭호 (타갈로그어) 중심도시
일로코스 지방 Rehiyon I 산페르난도
카가얀 계곡 지방 Rehiyon II 투게가라오
중부 루손 지방 Rehiyon III 산페르난도
칼라바르손 지방 Rehiyon IV-A 칼람바
미마로파 지방 Rehiyon IV-B 칼라판
비콜 지방 Rehiyon V 레가스피
서부 비사야 지방 Rehiyon VI 일로일로
중부 비사야 지방 Rehiyon VII 세부
동부 비사야 지방 Rehiyon VIII 타클로반
삼보앙가 반도 지방 Rehiyon IX 파가디안
북부 민다나오 지방 Rehiyon X 카가얀데오로
다바오 지방 Rehiyon XI 다바오
소크사르젠 지방 Rehiyon XII 코로나달
카라가 지방 Rehiyon XIII 부투안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구 ARMM 코타바토
코르딜레라 행정구 CAR 바기오
메트로 마닐라 NCR 마닐라

정치[편집]

아로요 대통령

마르코스 독재와 민중항쟁[편집]

1965년 대통령에 취임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1973년 국민 투표를 통해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다. 20년 장기독재 끝에 1986년 2월 민중들과 필리핀의 전통 교회인 로마 가톨릭 교회마르코스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민중항쟁으로 마르코스가 축출되고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의 신정부가 출범했다.

아키노 정부[편집]

1987년 2월 필리핀 신헌법에 대한 국민 투표에서 아키노 정부는 76.3%의 압도적 지지를 얻고, 3권분립의 대통령 중심제대통령의 임기 6년, 중임 불가를 규정한 새 헌법을 발표했다. 하지만 공산당과의 소모적인 분쟁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인 공산당 합법화 등의 공산주의에 대한 유화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군부 쿠데타가 반발하고 우파 세력의 반발이 거세지자 아키노 대통령은 강경 정책으로 선회하였다. 좌파·공산세력도 이에 강경으로 대처했다. 외교정책은 독립 후 친미 정책으로 일관했다. 1966년아시아태평양이사회(ASPAC)에 가맹하고, 1967년에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에 가입했다. 1970년대부터 독립 외교를 표방하고 중국·소련과의 광범위한 관계 수립, 동남아 제국 및 일본과의 관계 유지, 미국과의 균형관계 모색 등을 골자로 하는 신외교정책을 1973년 선언했다.

아키노 이후 정치변화[편집]

1992년 대선에서는 코라손 아키노의 지명을 받은 라모스가 당선됐으며 1998년 5월에는 조지프 에스트라다가 당선되었다. 2001년 1월 아로요 부통령대통령직을 승계했다.

대외 관계[편집]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은 사바 주 일부 지역에 관한 분쟁을 외교문제화하지 않기로 합의하였다.[3]

대한관계[편집]

치안[편집]

필리핀의 치안은 불안 요소가 존재 한다. 총기소지가 자유로운 반면에 경찰력은 상당히 약하다. 경찰은 마을의 게이트를 지키거나 경찰서와 순찰자를 이용하여 거리 치안과 범죄를 예방하나, 작은 범죄(소매치기, 사소한 다툼) 등은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가게에는 안전요원이 배치돼있다. 안전요원은 가게주와 계약을 맺고 손님과 가게를 보호한다. 가끔씩 범죄가 일어날 경우 가지고 있는 총기를 이용해 관광객이나 행인을 보호하기도 한다. 컨테이너 박스나 가게 앞에 서서 문을 열어주거나 화장실을 안내해주는 도시 안내원 역할도 하고 있다. 그들의 셔츠 주머니에는 Fisher, Security 등 안전 요원을 뜻하는 단어가 쓰여있다. 그러나 이들이 지키는 도시에도 관광객이나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범죄가 꾸준히 발발하는 등 치안상태는 불안하다고 할 수있다.

군대[편집]

원칙적으로는 징병제이다. 2009년 1월 31일부터 육군, 해군, 공군 모두 모병제(지원제)이나, 대학 졸업자는 예비군에 소속되기 때문이다. 18~25세를 대상으로 징병하였다. 장교로는 21~29세까지 모집한다. 미혼 필리핀 시민권자 (기혼 시민권자나 외국인 입대 금지)이면 남녀 모두 입대 가능하다. 이후 예비역으로는 56세까지 소속된다. 1946년 7월 4일 미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이후, 근래에는 거의 예비역으로만 소집된다. 2010년 이후 헌법 상 완전히 폐지할 계획이다.

미흡한 총기정책[편집]

이 나라는 미국처럼 총기를 소지할 수 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총기 소지에 대한 마땅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어린이들도 일반 총포점에서 탄약을 살 수 있다. 총포점은 큰 상가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많고, 가격도 비싸지 않아서 더욱 위험하다. 택시 탑승이나, 밤늦게 거리에서 산책하는 일은 위험하며, 위협하는 일이 있어도 실랑이를 해서 상대방의 감정을 나쁘게 해서는 안 된다.

도시 치안[편집]

잘 알려진 도시는 경찰들이 순찰을 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교육 수준 등이 높아 범죄율이 낮으며, 마을 형태로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입구나 출구 쪽에는 언제나 검문소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일일이 검색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병원, 은행, 백화점이나 가게 등에서는 사설 경비원들이 보초를 서고 있으며, 이들은 을 소지하고 있다. 출입구에선 언제나 총기 소지 여부를 확인하며, 어느 곳에서나 을 소지하고 있는 사설경비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경제[편집]

농업[편집]

가장 중요한 산업은 농업이다. 전(全) 노동 인구의 55%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는 국민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동시에 수출용 작물을 재배한다. , 옥수수는 주식이며 아바카, 설탕, 담배, 코코넛은 중요한 수출품이다. 국민 생활의 기반이라고 둘 수 있는 농업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낮은 생산성이다. 낮은 생산성의 원인 중 하나는 지주와 소작인의 관계에 있다. 수많은 소작인들이 소작으로 생산한 곡물의 반을 지주에게 바쳐야 하는 착취를 당하고 있으며, 특히 곡창지대인 중부 루손에서 소작인들의 수가 압도적인데 이들의 빈곤은 사회 불안의 큰 요인이 되고 있다.

공업[편집]

수출형·고용 증진형의 공업화가 1960년대 이후의 과제로 대두하었으며 계속되는 개발 계획에서는 경제 기반 정비, 투자 장려법, 중간 자본재 산업·노동 집약 산업·중소 기업·지방 산업의 육성이 중점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나 아직 경공업 단계이다.

무역[편집]

무역에서도 경제식민지적인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농산물·광산물 등 1차 산품만이 수출되고 공업 제품은 수입된다. 주요 수출품은 코프라, 설탕, 목재, 아바카, 철광석 등인데 이 중에서도 코프라, 설탕, 목재의 비중은 커 이 세 가지 품목이 총 수출량의 3분의 2나 된다. 주요 무역 대상국은 미국일본으로, 이들 나라는 필리핀 총 수출분의 67%, 총 수입분의 50%를 차지한다.

사회[편집]

로마 가톨릭 전통[편집]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유일한 로마 가톨릭 국가로서 플라자의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의 생활 관습은 로마 가톨릭전통이 짙게 풍긴다. 주요 도시마다 대부분 화려한 바로크양식의 로마 가톨릭 교회가 있는데 특히 필리핀의 로마 가톨릭 교회행사는 열광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예수의 수난을 기념하는 성 금요일에는 많은 참회자가 실제로 자기 몸을 십자가에 묶고 까지 박아 예수의 고난을 연출하기조차 한다. 한편, 사도신조에 근거하여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성도간의 통공(communion)을 믿는 기독교 교의에 따라 각 바랑가이(최소 행정단위)의 수호성인을 공경하는 축제도 신앙생활의 중요한 단면이다.

교육의 발전과 빈부의 격차[편집]

미국의 영향은 무엇보다 영어의 사용이나 교육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 국민의 3/4이 영어를 할 줄 알며 학교, 정계, 재계에서도 영어가 많이 쓰인다. 교육 수준은 높은 편으로 초등 교육과 중학교 과정이 의무 교육제이며 문맹률은 10% 정도이다. 미국의 대학, 대학원으로 유학하는 사람들도 많으며 미국과의 교수, 연구원의 교류도 활발한 편이다. 필리핀 사회는 빈부 격차가 다른 동남아 나라들보다 심각하여 일부 부유한 상류층은 거액의 재산을 축적했지만 빈민가 촌에는 상수도 시설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누추한 판잣집이 가득하며 매춘범죄가 횡행하고 있다. 수도 마닐라 중심부에는 옛 에스파냐 요새와 기독교 공동묘지 등 과거의 유물이 많이 남아 있으며 사람이 많고 교통 혼잡이 극심한 편이다. 과거 미군이 철수하고 남긴지프를 개조하여 요란한 장식물을 부착한 지프니가 눈에 띄는 명물이다. 돈 있는 사람들을 위한 환락가에는 동양에서도 손꼽히는 요리로 유명한 레스토랑과 최고의 나이트클럽 등이 있다.

언어[편집]

국어타갈로그어, 공용어는 타갈로그어와 영어이지만, 모국어로 사용되는 언어는 합계 172개에 이른다. 이것들은 모두 오스트로네시아어족으로 분류되지만 거의 의사소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있다. 그 밖에 사용되는 언어에는 중국어(베이징어푸젠어), 스페인어 식민지 시절의 스페인어차바카노어(스페인어 크리올), 이슬람교도 사이에 사용되는 아랍어, 말레이어가 있다. 특히 스페인어는 2008년 1월부터 공용어로 지정되었으며, 학교에서도 필수과목으로 가르친다.

교육[편집]

필리핀은 대한민국처럼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높다. 그래서 학부모들이 고생이 되더라도 자녀들을 가르치는 나라이다. 아시아 최초의 대학교인 산 칼로스 대학교 등의 명성 있는 대학교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가난한 집에서는 교육은커녕, 어린이들이 거리에서 구걸하는 경우도 많다.

종교[편집]

필리핀은 에스파냐의 영향으로 로마 가톨릭이 우세한 기독교 국가이며, 헌법으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다. 로마 가톨릭은 유럽의 것과는 차이가 있으며 토테미즘과 융합된 형태로 많이 나타나곤 한다. 예를 들면 필리핀 가톨릭에서는 십자가나 묵주 같은 상징물을 경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필리핀 기독교[편집]

필리핀은 에스파냐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기독교인로마 가톨릭 신자(83%)이며, 그 외 필리핀 성공회(영어: The Episcopal Church in the Philippines), 개신교(9%)가 있다. 필리핀 성공회는 미국 성공회(영어: The Episcopal Church of USA)선교사들의 선교활동으로 전래되었으며,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전래되지 않은 산간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필리핀 이슬람[편집]

필리핀 이슬람은 민다나오 섬에 많이 살고 있다. 이는 에스파냐 식민지 시절 로마 가톨릭 신자를 이주시키는 종교적인 이주정책으로 이슬람교도들이 살 곳이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1960년대말부터 모로민족해방전선, 모로이슬람해방전선 등의 독립 요구로 이어졌다. 그 외 에스파냐식민지가 되기 전에는 정령신앙 등의 토착 종교가 있었으나 식민지가 된 이후에는 거의 없어졌다고 전해진다.

문화[편집]

필리핀은 동양 문화서양 문화가 혼재되어 있다. 히스패닉(Hispanic, 로마인이 이베리아 반도를 일컫는 명칭 라틴어: Hispānia의 형용사형 Hispānus에서 유래함. 오늘날 히스패닉이란 용어는 주로 미국에 거주하는 라틴 아메리카 출신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의 영향은 스페인과 멕시코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이 영향은 문학, 민속 음악, 민속 무용, 언어, 음식, 미술, 종교에서 뚜렷하다.[4] 스페인에서 온 이민자들은 이 곳에 스페인과 멕시코의 관습, 전통, 요리 등을 도입하였다. 필리핀 요리는 아시아와 유럽 요리가 혼합된 것이다. 필리핀 전통에서 그들의 성인을 기념하는 바리오 피에스타스(Barrio fiestas)라 불리는 축제가 열린다. 가장 눈에 띄는 스페인의 유산으로서, 필리핀사람들에게는 스페인어로 된 성과 이름이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색은 아시아 인들 중에서 유일한 것으로서, 식민지 시대의 칙령인 "클라베리아 칙령"(Clavería edict: 이 칙령은 필리핀 사람들에 대한 성(姓)의 체계적인 배열, 스페인식 명명 체계의 실행을 담고 있다.)에서 비롯된 것이다. 스페인의 영향으로 로마 가톨릭문화가 필리핀을 지배하고 있고 남부의 큰 섬인 민다나오에는 이슬람 문화가 주류를 이룬다.

의복[편집]

필리핀에서 축제나 기념식, 결혼식 같은 경우에 바롱 따갈로그를 입은 남자를 쉽게 볼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필리핀 사람들은 서구화된 보편적인 평상복을 주로 입지만, 중요한 자리에는 항상 필리핀 전통 상의인 바롱 따갈로그를 즐겨 입는다. 바롱은 필리핀사람들의 정장인 바롱 따갈로그의 줄인말이다. 원래 이말은 Baro ng Tagalog에서 유래된 것으로 원래 단어의 의미는 "따갈로그지방의 옷"이다. 처음 2개의 단어가 변해서 Barong으로 변했는데, 글자뜻 그대로 이 말은" ~의 옷"이라고 번역하면 된다. 그래서 이것을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바롱따갈로그라고 표현해야 하지만, 오늘날 실제로는 그냥 줄여서 바롱이라고 말한다. 바롱은 거의 4세기에 걸쳐서 변천해 왔다. 그 과정에서 아직도 옛날의 특징이 살아 남아 있는데, 우선 얇고 투명한 천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입을 때는 바롱 안에 셔츠를 필히 입고 바깥에 바롱을 입는다. 또 바롱의 하단을 바지 안으로 넣는 것이 아니고 항상 바깥으로 내놓은 채 입는 것이 바롱을 입는 전통적인 특징이다. 바롱을 바깥으로 내놓고 입는 것은 아마 더운 필리핀의 기후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지만, 스페인 식민정책의 유산이라는 설도 아주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그것은 스페인 식민통치자들이 그들과 원주민이 입은 옷을 통해서 쉽게 구별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에 원주민들에겐 바롱을 입을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그리고 투명한 천을 사용하게 한 것은 옷속에 무기를 감추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고, 주머니를 못만들 게 한 것은 도둑질을 못하게 하기위한 것이란다. 필리핀 원주민 사이에서도 장사를 해서 돈을 벌거나 농사를 크게 짓는등 성공한 중산층이 차츰 생겨 났지만 원주민이라는 이유로 항상 바롱을 입어야 했다. 이러한 식민통치에 대한 반발로 이들은 원래의 바롱에는 없었던 전면의 다양한 장식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긴소매에 앞부분 상단에 단추를 달고 입고 벗을 때 단추를 끌를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주로 흰색의 천을 사용했으나 요즘은 색상이 조금씩 다양해지는 추세에 있다.

음식[편집]

필리핀 음식은 필리핀 사람의 피만큼이나 다양한 종류를 자랑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심지어 필리핀에 오면 먹을 게 없다는 불평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것은 다른 동남아 국가처럼 자기만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갖고 있기보다는 다른 여러 나라의 음식이 섞여 있다 보니 개성이 좀 모자라는 편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나 필리핀의 음식은 열을 많이 가하지 않고 천연향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음식의 맛이 단순해 보인다. 필리핀사람들의 주식은 우리와 같이 쌀이다. 보편적으로 차지지 않다. 그렇다고 차진 쌀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일종의 찹쌀인데 이름은 말락킷(Malagkit)이라고 한다. 그래서 차진 밥을 좋아 하는 한국인들은 디노라도(Dinorado)에다 말락킷을 섞어 먹는다. 디노라도 2kg에 말락킷 1kg이면 차진 밥이 된다. 가격은 상품 기준 디노라도가 상품 kg당 34페소 정도, 말락킷이 54페소 정도이다. 또한 서민들은 간식으로 '발룻' 이라는 음식을 즐겨 먹는데 이것은 부화가 되기 직전의 오리알을 삶은 음식이다.

주거[편집]

필리핀 사람들은 그들의 집의 청결상태와 우아함을 주위사람들에게 내어 보이기를 즐겨하고 과시하고 싶어한다. 집안에서 살림을 하는 아내들은 청결을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종류의 세제를 사용한다. 그들은 부드러운 풀로 만든 빗자루 같은 것을 쓰는데 작은 것은 벽의 장식이나 액자에 묻은 먼지를 터는데 사용되고 큰 것은 마루를 청소하는데 쓰인다. 그리고 거칠고 억센 빗자루는 물바닥 청소에 주로 이용된다. 닭털로 만들어진 먼지떨이는 작은 조각이나 장식들의 먼지를 터는 데 사용된다. 그 외에도 양동이 나무 손잡이가 달린 억센 솔, 버놋(코코넛 껍질), 쓰레받이, 빨래비누, 구고(옛날에 쓰여진 샴푸), 이스이스 잎사귀, 바나나 잎, 등유, 코코넛 기름 등이 집안에 사용되었다. 마루용 왁스는 집안 관리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초, 등유 등을 녹여서 만든다.

교통[편집]

필리핀의 교통에서는 해운이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박의 항행으로 국토가 이어지고 통일되기 때문이다. 육상 교통으로는 철도가 루손 섬, 파나이 섬에서 경영되고 있다. 자동차 도로도 루손 섬을 중심으로 해서 발달해 있다.[5] 대중교통으로는 지프니, 버스, UV 익스프레스, 택시, 트라이시클(삼륜차) 등이 있는데, 버스는 노선은 정해져 있지만 정류장은 없어 사실상 어디서나 타고 내릴 수 있으며, 종류도 단일화 되어있지 않다. 트라이시클은 과거 할리데이비슨 경찰 패트롤처럼, 오토바이 측면에 사람이 탈 수 있도록 따로 칸을 달아놓은것으로, 택시처럼 가고싶은 곳으로 갈 수 있으나, EDSA같은 큰 길은 다닐 수 없으며, 운항 가능 거리도 짧다. 운임은 싸지만, 거리를 생각해 보면 싸지만은 않은 편.

관련 논문[편집]

  1. 한국과 필리핀 시민사회의 경제 환경 비교 : A Comparative Study on the Economic Environment of Philippine Civil Society and Korean Society (저자명:신종화, 고영희)
  2. 필리핀의 정치적 현대성 : The Political Modernity of the Philippines -Focused on the Historical Experiences of the Subjects of Civil Society- (저자명:신종화)
  3. 민주화 이후 필리핀 사회운동의 변화 : Social Movements in the Post-democratization Philippines (저자명:박승우)
  4. 필리핀의 평화교육과 평화과정 : A Study of Peace Education and Peace Process in the Philippines_ Centering on Mindanao (저자명:강순원)
  5. 필리핀의 선거와 권력구조의 변화 : Philippine Elections and Changing Political Power Structure : Cases of the Presidential Elections after Democratization (저자명:김동엽)

주석[편집]

  1. 필리핀, 인구 1억명 공식 돌파..세계 12번째 연합뉴스, 2014.7.27
  2.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한겨레 아시아 네트워크/한겨레신문사에 의하면 1900년대 민중들이 미군을 상대로 항쟁을 벌인 적이 있는데,항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는 교회의 종 소리였고,주동자들도 로마 가톨릭 수녀와 사제들이었다. 미국은 군을 동원하여 필리핀 민중들의 도전을 진압하고 교회의 종을 가져갔는데,필리핀 정부의 끈질긴 요청으로 되돌려받았다.
  3. 문정인 외,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연세대학교출판부(2006) 505쪽
  4. Steinberg, David Joel. (2007). “Philippines”. 엔카르타.
  5.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필리핀의 교통·도시

같이 보기[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