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서양 조약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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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서양 조약 기구
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기
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기
결성일 1949년 4월 4일
유형 군사 동맹
본부 벨기에 브뤼셀
회원 28개국
공식 언어 영어, 프랑스어
사무총장 옌스 스톨텐베르그
웹사이트 nato.int

북대서양 조약 기구(北大西洋條約機構, 영어: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노스애틀랜틱 트리티 오거니제이션[*][1]; 프랑스어: Organisation du Traité de l’Atlantique Nord 오르가니자시옹 뒤 트레테 드 라틀랑티크노르[*]) 또는 나토(NATO 네이토[*]; 프랑스어: OTAN 오탕[*])는 1949년 4월 4일유럽의 여러 국가와 미국캐나다 사이에 체결된 북대서양조약에 의거하여 설립된 북아메리카와 서유럽을 연결하는 집단안전보장기구이다. 나토는 1989년까지 소련 및 중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의 방위 체제인 바르샤바 조약 기구와 군사, 정치적 균형을 이루는 데 공헌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역사[편집]

NATO는 이후 동서냉전 체제하에서 서방국가들의 집단적 안전보장체제 구축의 모델로서,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에 대항하는 대표적 상징으로서의 위상을 지녀왔는데 그 본질은 군사동맹이었다.

북대서양조약 체약국으로 구성되는 NATO는 회원국간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파동을 겪기도 했는데, 프랑스는 1966년 3월 핵무기개발을 둘러싸고 미국과 대립하다가 통합군사조직에서 탈퇴하였고, 그리스터키의 키프로스 침공사태와 관련된 NATO의 태도에 불만을 갖고 1974년 4월 역시 통합군사조직에서 탈퇴하였다가 1980년 10월 다시 복귀했다.

초기 NATO의 조직은 상설기관으로 최고기관인 각료이사회와 사무국, 그리고 그 아래의 전문·보좌 기관과 통합군사기구로 구성되었다. 각료이사회는 회원국 외무·재무·국방 장관 및 관계장관으로 구성되는 최고기관으로 연 2회 이상의 정례회합을 가지며, 각국의 대통령·총리·수상이 개인자격으로 참가하기도 하였다.

산하에 핵방위문제위원회·방위계획위원회·핵기획 그룹 등의 전문기관이 설치되어 그 보좌를 받으며, 보조기관으로 대사급 상설이사회가 설치되었는데, 사무총장이 의장을 겸임하고, 회의방식은 만장일치제를 채택하였다. 전문기관 중 핵방위문제위원회는 프랑스·룩셈부르크·아이슬란드를 제외한 회원국 국방장관으로 구성되어 NATO의 핵전략을 결정하였고, 방위계획위원회는 회원국 국방장관으로 구성되는 최고군령기관으로 통합군사조직을 통할하며, 핵기획 그룹은 1966년 12월 방위계획위원회와 동시에 설치되었는데 프랑스 아이슬란드를 제외한 회원국방장관으로 구성되었다. 방위계획위원회는 통합군사조직의 최고통수기관이며 그 아래 군사위원회가 설치되어 '유럽 연합군 최고사령부(SHAPE), 대서양해군사령부(ACLANT), 해협연합군사령부, 3기구를 관할하였다. SHAPE는 북대서양 최고사령부라고도 칭하는데, 각료이사회의 결정에 의해 1951년 4월 발족하였다. 방위 범위는 영국·프랑스·포르투갈을 제외한 서유럽 전역과 영국영공이며, 전시에는 최고사령관이 유럽 지역의 육·해·공 3군이 작전권을 행사하였다. 산하에 북유럽군·중부유럽군·남부유럽군·영국반공군·기동부대·조기경계기동대 등 6개 사령부를 두었다. ACLANT는 상비병력은 없지만 훈련시·전시에는 회원국 해군이 전속되었다. 방위범위는 영국·프랑스 해협과 잉글랜드 연안을 제외한 미국 연합수역에서 유럽·아프리카 연안수역까지, 즉 위도상으로는 북극에서 적도까지였다. 해협연합사령부는 해협연합군 사령관과 해협연합군 항공대 사령관의 지휘 아래 영국·프랑스 해협과 북해남부의 방위를 담당하였다. 설립 당시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었으나 프랑스가 통합군사조직에서 탈퇴하자 브뤼셀로 이전하였다.

NATO는 1990년대에 들어서 딜레마에 봉착하기도 했는데, 1991년에는 나토 회원국에 대해 즉각적으로 어떠한 군사적 위협도 없을 정도로 상황이 개선되어, 미래의 나토 역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예를 들면, 그 해에 바르샤바조약국들은 동맹관계를 청산하는 데에 합의했고, 소련의 공산당은 정부에 대한 지배력을 잃었으며, 1991년 후반에 소련은 해체되었다. 바르샤바조약이 붕괴된 후, 나토는 나토 회원국뿐만 아니라 이전에 바르샤바조약을 체결한 나라들도 포함하는 북대서양협력회의를 결성했다. 이 기구는 두 개의 국가 집단 사이의 연대를 강화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1991년에 나토는 유럽에 대한 핵무기 공급을 80% 줄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나토는 1992년에 소속군이 유럽의 비회원국들에게 평화유지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군사적인 역할이 커지도록 했다.

나토는 1994년 2월 소속 항공기가 국제연합이 지정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비행금지구역을 침범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세르비아계 전투기 4대를 격추함으로써 처음으로 전투행위를 수행했다. 또한 1994년에는 대부분 과거에 공산국가였던 20개국이 평화를 위한 동반자라고 하는 나토와의 연대기구에 가입하였고, 군사적으로도 참여하였다.

조약 가입국[편집]

북대서양 조약 기구 가입국
유럽에서의 NATO 가입국 확장

냉전 중 가입한 나라[편집]

냉전 후 가입한 중앙유럽 나라[편집]

  1. 그리스와 터키는 1952년 2월에 가입했다.
  2. 독일은 1955년서독으로 가입했고, 1990년 독일 통일 후에 동독 지역까지 가입이 확대되었다. 스페인은 1982년 5월 30일에 가입했다.
  3. 바르샤바 조약 기구 회원국이던 체코, 폴란드, 헝가리 등은 1999년 3월 12일 가입했다.
  4. 프랑스는 회원국으로 남아있었으나 1966년 NATO 통합군에서는 탈퇴했다가 1992년 재가입했다.
  5. 아이슬란드는 군대가 없는 조건을 인정한 채 가입했다.
  6. 바르샤바 조약 기구 회원국이던 루마니아, 불가리아, 슬로바키아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구성국이던 슬로베니아와 소비에트 연방 구성국이던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는 2004년 3월 29일 NATO에 가입했다.
  7. 바르샤바 조약 기구 회원국이던 알바니아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구성국이던 크로아티아는 2009년 4월에 가입했다.

비(非) 대서양 국가들의 나토 편입[편집]

2006년 11월 28일 NATO 정상회담이 동유럽 라트비아 수도 리가에서 열렸다. 29일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대한민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를 나토에 편입하자고 제안하였으나, 프랑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2]

미국의 크리스토퍼 본드 상원의원(공화당, 미주리 주)은 한미군사협력개선법안을 발의, 통과를 주도했다. 이 법률안에 의해 대한민국은 "비나토 주요동맹국"에서 "나토+3국"의 지위로 미국 무기 수출 대상국으로서의 지위가 한 단계 올라가게 된다. 따라서 의회 검토 기간이 대폭 줄어들게 되어 미국 무기를 수입하기 수월해진다.[3]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북대서양 조약 기구에서는 영국식 철자법을 채용한다.[1]
  2. 韓·日·호주 NATO 참여 무산 문화일보 2006-11-30
  3. "韓 FMS 지위향상, 한미동맹 증진 기여"<美상원의원> 연합뉴스 2008-10-03

참고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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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