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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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ambig.svg 독일 국가사회주의노동당(나치당)이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을 통치하였던 나라에 관한 설명은 나치 독일에 있다.
Deutsches Kaiserreich
존속 기간 : 1871년 - 1918년
독일 제국의 국기 독일 제국의 국장
(국기) (국장)
표어: Gott mit uns
(하느님의 가호와 함께)
국가: Heil dir im Siegerkranz
독일 제국의 위치
수도 베를린
52°31′N, 13°24′E
공용어 독일어
정부 형태 입헌군주제
빌헬름 1세 (1871~1888)
프리드리히 3세 (1888)
빌헬름 2세 (1888~1918)
정부수립
 • 통일
해체

1871년 1월 18일
1918년 11월 9일
면적
 • 전체
 • 내수면 비율
 
540,857.54 km²
2.416%
인구
 • 1910년 어림
 • 인구 밀도
 
64,925,993명
120명/km²
통화 골드마르크 (1914년까지)
파피에르마르크(1914년 이후)
독일의 역사
The Reichstag building at the end of the nineteenth century
고대
게르만족
게르만족 대이동
프랑크 왕국
중세
동프랑크 왕국
게르만 왕국
Banner of the Holy Roman Emperor (after 1400).svg신성 로마 제국
게르만족의 동진
소국 분립 시대
통일 국가 성립
라인 동맹
독일 연방
독일 3월 혁명(1848년)
북독일 연방
독일의 통일
독일 제국
Flag of the German Empire.svg독일 제국
제1차 세계대전
Flag of Germany (3-2 aspect ratio).svg바이마르 공화국
Flag of Germany 1933.svg나치 독일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독일 (1945년 이후)
Flag of Germany (1946-1949).svg점령기 + 동독의 기존 영토
독일의 분단
Flag of Germany.svg서독 + Flag of East Germany.svg동독
독일의 재통일
현재의 독일
독일의 국기 독일
세부 항목
독일 전쟁사
독일사 연표
독일어의 역사

독일 제국(Deutsches Kaiserreich 도이체스 카이저라이히[*])은 1871년부터 1918년까지 있었던 제국으로 제2제국'이라고도 부른다. 도이체스 라이히(Deutsches Reich)라는 명칭은 바이마르 공화국나치 독일에서도 쓰였으나 대체로 독일 제국이라 함은 이 제2제국을 일컫는다.

4 왕국, 6 대공국, 5 공국, 7 후국, 3 자유시 및 "알자스-로트링겐 제국령"으로 이루어졌으나 프로이센 왕국이 제국 면적의 3/5를, 인구의 2/3을 차지하였다.

목차

[편집] 개요

[편집] 성립 이전

프로이센, 보오전쟁, 보불전쟁, 독일의 통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의 유럽 지도. 오늘날 독일지역 영토를 보면 얼마나 크게 분열했는지 짐작할수 있다.

독일은 1871년 통일 되기 이전까지 여러 각 제후국 형식으로 갈라졌었다. 특히, 독일내에 신·구파 종교갈등으로 전쟁이 시작된 1616년~1648년사이에 있던 30년 전쟁으로 전 독일 국토의 3분의1이 파괴되거나 사람들이 죽었다. 30년전쟁이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독일 지역 내부에는 더욱 여러 각국가로 쪼개어짐에따라 독일지역의 여러 각 제후국들은 세력이 크게 나뉘어 강대국인 옆나라 프랑스로부터 압력을 받아야만했다.

그러던중 17세기무렵에 독일 북부지역에 프로이센 왕국이 크게 성장하여 강성해졌지만, 19세기초 나폴레옹 전쟁으로 프로이센은 나폴레옹프랑스에 무력으로 압력을 받아 꼭두각시 신세로 지낼수밖에 없었다. 나폴레옹 전쟁 끝난이후, 독일 지역에서는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에 영향을 크게 자극받게된다.

19세기, 39개의 군소국가로 분리되어 있던 상황에 1834년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관세동맹이 결성됨으로써 경제통일의 기반을 시작으로 촉진되었다. 관세동맹으로 독일안의 국가들이 서로 무역할 때 부과되었던 번거로운 관세들이 폐지되었기에 독일경제는 이전과 비교도 안될정도로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이것을 통해 관세동맹은 독일의 민족 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셈이었다.

이어서 통일의 기운은 1848년 프랑스의 2월 혁명으로 다시한번 영향을 받았는데, 프랑스에서 2월 혁명이 일어나자 그 영향으로 독일에서는 '프랑크푸르트 국민 회의'가 열리고, 이곳에서 자유주의적 평화 통일 방안이 논의되었으나, 오스트리아 제국과 프로이센 제국내의 보수파(융커계층)에 의해 실패하였다. 자유주의적인 연방 통일을 주장했던 '프랑크푸르트 국민회의'가 끝내 실패되어 좌절된 이후, 독일의 정치적 통일은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제국 선포식.

1862년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프로이센 왕국의 재상이 되었다. 그는 의회의 반대를 무릎쓰고 강력한 군사력과 군비증강을 주장하여 이른바 "철혈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제국과 동맹을 체결하여 덴마크와 전쟁을 벌인 결과(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전쟁), 프로이센의 승리로 덴마크 북부지방의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을 점령하였다.

그 후 1866년, 산업과 군사력이 증강한 프로이센은 이를바탕으로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제국을 격파하고 북독일 연방을 결성, 오스트리아 제국을 독일 연방에서 배제, 추방했다. 1870년에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나폴레옹 3세가 인솔하는 프랑스를 크게 물리치고, 나폴레옹 3세를 포로를 잡는등 승승장구하여 파리에 입성,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 제후들에게 추대되는 형태로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가 독일제국 황제로 즉위함으로써 독일 제국이 성립했다. 또한, 이 때에 오랜 세월동안 프랑스와 영유권을 두고 다투었던 엘사스-로트링겐지방을 베르사유 궁전에서 조약을 맺었던것을 통해 획득했다.

[편집] 동맹의 완성

독일 제국의 영토

오토 폰 비스마르크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패전한 프랑스의 복수를 염려하여,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서구 열강과 복잡한 동맹 관계를 구축해 프랑스를 고립화시키는 외교 정책을 취했다. 이것을 "비스마르크 체제"라고 부른다.

1873년 독일 제국은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의 3제국간 동맹을 맺는다. 후에 러시아 제국은 이 동맹 체제에서 이탈하였다. 이어 1879년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러시아 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방위 동맹을 체결한다. 1882년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 왕국 간에 삼국동맹이 결성한다. 1887년에는 발칸 반도와 관련하여 러시아 제국의 재보장 조약을 체결한다.

당시 영국과는 별다른 대립이 없었고, 이미 홀로 충분히 국력이 강성했던 영국은 동맹에 참가하지는 않았다. 한편 프랑스는 독일제국의 비스마르크 체제 외교로 고립된다.

한편, 독일제국은 통일을 이룩한 이후 선진화된 공업화를 바탕으로 제국주의에 발을 들이게 되는데, 해외 식민지로서는 남아프리카서아프리카(나미비아), 동아프리카(탄자니아·르완다·부룬디), 카메룬, 토고, 남양 군도, 뉴기니 북동부 및 부근의 크고 작은 섬들(나사 마크 제도), 사모아, 중국산둥 반도 등을 획득했다.

[편집] 세계 정책

독일 제국의 영토.

1888년 빌헬름 1세가 사망하고, 황태자 프리드리히 3세가 즉위했지만, 재위 6개월만에 후두암으로 사망한다. 이어서 프리드리히 3세의 아들인 빌헬름 2세가 즉위하는데, 이를 "3황제의 해"라고 부른다. 즉위한 빌헬름 2세오토 폰 비스마르크와 대립하여 1890년에 그를 은퇴시킨다. 비스마르크가 실각하자마자 친정을 실시한 빌헬름 2세는 비스마르크가 추진했던 외교정책과는 달리 대외 팽창정책을 추진하여 오스만 제국과 '바그다드 철도 부설조약'을 맺어 베를린(Berlin)과 비잔티움(Byzantium), 바그다드(Baghdad)를 연결하는 "3B 정책"이라는 제국주의적인 식민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독일제국의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은 유럽 국가들을 긴장시켜 러시아제국과 프랑스가 손을 잡았으며, 영국과 프랑스가 협상을 맺어 러시아 제국-영국-프랑스를 주축으로 '삼국 협상'을 맺어 독일제국을 견제하고자 하였다. 특히 영국은 카이로(Cairo)와 케이프(Cape), 캘커타(Calcutta)를 연결하는 "3C 정책"을 내세웠는데, 서아시아에서 독일제국과 충돌하여 대립했던 상황이었다.

이렇게 됨으로써 유럽의 판도는 신흥 강국인 독일제국을 필두로 동맹국 세력과 기존의 열강이었던 영국과 프랑스,러시아제국을 중심으로하는 협상국세력으로 나뉘어 대립하게 된다. 이어서 1905년~1906년1911년모로코에서 프랑스가 지배권을 확보하여 영향권을 행사하려 하자, 독일제국은 모로코에 2차례 걸쳐서 개입하여 프랑스와 출동하기도 했었다.(모로코 사건) 또한, 범슬라브주의를 표방하여 영구 부동항을 확보하려는 제정 러시아의 남하 정책과의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범게르만 주의와의 대립 등으로 이러한 대립은 발칸반도 지역에서 문제가 확산되면서 더욱더 심화되어갔다.

이러한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에 의해 독일은 삼국 협상 구성 국가와의 외교적 마찰과 경제적인 부담을 앉게 되었고, 이러한 양상이 점점 심화됨에 따라 1914년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게 된다.

[편집] 제1차 세계대전과 제정의 종식 및 전후 사회

제1차 세계대전, 독일 11월 혁명, 바이마르 공화국, 베르사유 조약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편집] 제1차 세계대전

1914년 협상국과 동맹국 유럽 지도 판도.(노란색으로 칠해진 국가는 중립국이다.)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세르비아 사이에서 긴장이 높아가던중 세르비아의 한 민족주의자 청년이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라예보 사건) 이를 계기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그러자 발칸반도에 남하정책을 추진하던 러시아 제국은 세르비아에 지원할것을 선언한 뒤 총동원령을 내렸고, 곧 이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동맹국이었던 독일제국은 러시아 제국,프랑스,대영제국,벨기에에 선전포고, 공격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독일은 짧은 시간내에 전쟁이 끝날것이라는 예상을 했지만, 프랑스의 예상의외에 격렬한 저항과 마른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서부전선 전쟁의 양상은 참호전과 장기전 형식으로 되어갔다. 또한, 동부전선 역시 러시아 제국의 대규모 전선배치로 인해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 고착화가 되어가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동안 이탈리아 왕국, 불가리아, 루마니아, 오스만 제국 등 주변국가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동맹국 혹은 협상국에 참전하였다. 한편, 독일 제국은 영국에 제해권을 빼앗기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제한 잠수함 공격을 가했고, 전쟁의 양상은 점점 더 치열해져 갔다.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 제정 체제 및 자유주의적 정부 체제가 무너지고 소비에트 정권이 들어섰다. 1918년 3월, 독일 제국과 소비에트 정권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의 조건으로 소비에트 정권은 과거 러시아 제국때 상당부분 영토와 배상금을 독일 제국에 제공해야 했다. 신생 정권인 소비에트는 1차 대전 협상국인 영국과 프랑스등의 세력에 이탈함에 따라 동부전선에 배치되있던 독일제국 병력들은 대거 서부전선으로 배치되면서 전쟁의 양상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편집] 제정의 종식 및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에서 혁명을 일으킨 독일시민들.

1917년 중립 체제를 유지해오던 미국은 자국 상선이 독일 잠수함에 의해 격침당한 사건과 치머만 전보사건을 계기로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게된다. 이어서 미국은 대규모 군대를 파견하여 서부유럽 전선에 참전하게되면서 전쟁의 양상은 독일제국이 불리하게 되어간다.

이어서 1918년에 같은 동맹국이던 오스만 제국이 탈퇴했다. 특히 러시아 혁명으로 통해 동맹국 오스트리아와 독일 국민들 사이에서 크게 영향을 받아 반전 운동이 빈번하게 일어나게 된다.

1918년 11월 9일 독일 킬 군항에서 수병들이 반란을 일으킨것을 시작으로 시민들이 합세함에 따라 독일 11월 혁명으로 퍼져나아가자, 제국체제는 붕괴되고, 다음날 빌헬름 2세네덜란드로 망명하면서 혁명은 성공하였다. 이후에 프리드리히 에베르트를 정부수반으로 바이마르 공화국이라고 불리는 공화제 정부가 세워졌다.

1918년 11월, 독일 임시정부는 협상국(영국, 프랑스, 미국)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은 종전을 맞이하였다.

[편집] 전후 사회

베르사유 조약, 바이마르 공화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23년때 독일의 화폐.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된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하여 단치히폴란드에 할양되었고, 알자스로렌 지방은 프랑스에, 북슐레스비히덴마크에, 나머지는 벨기에리투아니아 등지에 영토를 내 주어야만 하였다.

거기에 식민지령이었던 남양 군도독일령 동아프리카 등 모든 식민지는 일본, 대영 제국, 프랑스, 미국 등에게 할양하였고 전쟁 도발 배상금인 1320억 마르크까지 지불해야 했다. 또한 예전에 보유하고 있었던 남극 기지도 보유할 수 없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이 자행한 것이 아니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자행했다. 또한 전쟁 기간 중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인과 유대인을 주로 학살했다. 이러한점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독일 제국보다 더 많은 배상을 내야 했었다'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국토 손실이 심했던 것과는 달리 독일 제국이나 불가리아 왕국은 본토가 큰 손실을 입지는 않았다.

한편, 당시 독일에서는 베르사유 조약으로 통해 패전국 독일에 대한 가혹한 조약으로 인해 뒷날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원인의 씨앗이 된다. 당시 패전국인 독일은 이 시기의 독일에서는 가는곳마다 실업자들이 넘쳐났을뿐 아니라 파업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베르사유 조약의 내용에 따라 승전국인 프랑스,영국등에 배상금 지불을 위해서 독일은 무제한으로 지폐를 발행했는데, 1914년에 감자 하나에 1마르크이면 살 수 있었던 것을, 1920년에는 수십억 마르크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현상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1923년 프랑스가 루르지방을 무력으로 점령함에 따라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는 더욱 악화된다. 이에 미국이 중재를 나서 독일에 대한 차관을 제공하고 배상금액을 낮춤으로 해결하고자 하였으나, 독일에 대한 막대한 전쟁 배상금 요구는 인플레이션 현상으로 계속 이어져 나아져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게되고, 이는 독일 국민들의 불만을 가져와 뒷날 나치스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 된다.

[편집] 정치

1890년대때 제국의회.

독일제국의 정치형태는 4왕국·6대공국(大公國)·5공국(公國)·7후국(侯國) 및 3자유시로 구성된 연방국가 형태였다. 프로이센왕이 황제가 되고, 프로이센 재상이 제국의 재상을 겸임하였다. 황제는 정치권·군사권·외교권등을 장악하였고, 의회는 상원의원인 연방참의원과 남성중심으로 보통선거에 의한 제국의회가 하원으로 구성되었으나, 하원의회의 권한은 예산심의권을 가지고 있는것 정도일뿐 권한은 적었다.

반면, 각 지방 정부를 대표하는 연방참의원이 상원의 경우는 제국의 중대한 사안에 대해 이곳에서 여러 문제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각 지방 정부들은 각각 종래의 정치제도와 법률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또 행정권도 거의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연방정부 형태를 띄었엇다.

독일 제국의 정부는 황제의 임명과 뜻대로 되었고, 의회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 연방국가 형태로 구성된 지방세력들 중 프로이센은 면적과 인구에서 전 독일의 3/5을 차지하였기 때문에 사실상 독일제국은 황제가 직접 지배하는 형태로 그 권한은 막강했다.

또 독일 제국에서는 황제 못지않게 재상의 권한이 컸기 때문에 비스마르크와 같은 유력한 인물이 재상인 때에는 사실상 그의 독재가 되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통일의 의지가 상실되었다.

이처럼 독일제국은 의회가 구성되어있으면서도 자유주의적인 성향도 아닌 융커계층, 즉 대지주 혹은 귀족이 군부와 관료의 중심세력을 독점하였기 때문에 근대적인 의식과 개혁은 크게 저해되었다.

[편집] 경제

1862년에 프로이센 재상으로 오른 비스마르크의 '철혈정책'을 바탕으로 중공업 육성과 군사력 증강 등 국력이 강해지면서 이후 1871년 통일된 독일제국은 1870년대부터 생산이 급격히 늘어난데 반해, 시장의 규모가 제한되었기때문에 경제불황을 맞기도 하였다. 독일제국은 이러한 극복을 하기위해 우수한 기술과 자국의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원료 공급지와 상품 시장뿐만 아닌 자본을 투자할 해외 식민지를 필요로 제국주의의길로 발을 내밀게 된다. 그러나, 대영 제국, 프랑스 식민 제국에 비해 늦게 식민지 정책을 시작하였기에 1890년대에 빌헬름 2세는 군사력을 동원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해외 식민지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20세기 초에는 중공업생산에서 세계 제2위의 급속한 경제발전을 배경으로 해외 팽창 정책을 추진하였다.

[편집] 소속 국가

[편집] 역대 황제

카이저(Kaiser)는 독일어황제라는 뜻이다.

[편집] 바깥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