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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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에 관한 설명은 나치 독일에 있다.
Deutsches Kaiserreich
존속 기간 : 1871년 - 1918년
독일 제국의 국기 독일 제국의 국장
(국기) (국장)
표어: Gott mit uns
(하느님의 가호와 함께)
국가: Heil dir im Siegerkranz
독일 제국의 위치
수도 베를린
52°31′N, 13°24′E
공용어 독일어
정부 형태 입헌군주제
빌헬름 1세 (1871~1888)
프리드리히 3세 (1888)
빌헬름 2세 (1888~1918)
정부수립
 • 통일
해체

1871년 1월 18일
1918년 11월 9일
면적
 • 전체
 • 내수면 비율
 
540,857.54 km²
2.416%
인구
 • 1910년 어림
 • 인구 밀도
 
64,925,993명
120명/km²
통화 골드마르크 (1914년까지)
페이피어마르크(1914년 이후)

독일 제국(독일어: Deutsches Kaiserreich 도이체스 카이저라이히[*])은 1871년부터 1918년까지 있었던 제국이며 제2제국이라고도 부른다. 도이체스 라이히(Deutsches Reich)라는 명칭은 바이마르 공화국나치 독일에서도 쓰였으나 대체로 도이치 제국이라 함은 제2 제국을 일컫는다.

4 왕국, 6 대공국, 5 공국, 7 후국, 3 자유시 및 알자스-로트링겐 제국령으로 이루어졌으나 프로이센 왕국이 제국 면적의 3/5를, 인구의 2/3을 차지하였다.

도이치 제국의 표어는 Gott mit uns(하느님의 도움과 함께)였다.

목차

[편집] 도이치 제국의 역사

[편집] 성립 이전

1862년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프로이센 왕국의 수상이 되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제국과 동맹을 체결하여 덴마크와 전쟁을 벌인 결과(슐레츠비히-홀슈타인 전쟁), 슐리츠비히와 홀슈타인을 점령하였다.

그 후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는 오스트리아를 물리쳐 북독일 연방을 결성, 오스트리아를 독일 연방에서 배제, 추방했다. 1870년에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으로 나폴레옹 3세가 인솔한 프랑스 제국을 물리쳐 파리에 입성해,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 제후들에게 추대되는 형태로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가 독일 황제가 되어, 제정 독일이 성립했다.

또, 이 때에 오랜 세월동안 프랑스와 영유권을 두고 다투었던 엘사스-로트링겐을 획득했다.

[편집] 복잡한 동맹 관계의 완성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진 프랑스의 복수를 염려하여,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서구 열강과 복잡한 동맹 관계를 구축해 프랑스를 고립화 시키는 외교 정책을 취했다. 이것을 비스마르크 체제라고 부른다.

  • 1873년 독일 제국은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의 3제국 동맹을 맺는다. 후에 러시아는 이탈한다.
  • 1879년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방위 동맹을 체결한다.
  • 1882년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 왕국 간에 삼국동맹이 결성한다.
  • 1887년 발칸 반도와 관련하여 러시아 제국의 재보장 조약을 체결한다.

당시 영국과는 별다른 대립이 없었고, 이미 홀로 충분히 국력이 강성했던 영국은 동맹에 참가하지는 않았다. 한편 프랑스는 고립된다.

독일 제국의 영토
독일 제국의 영토

해외 식민지로서는 남아프리카서아프리카(나미비아), 동아프리카(탄자니아·르완다·부룬디), 카메룬, 토고, 남양 군도, 뉴기니 북동부 및 부근의 크고 작은 섬들(나사 마크 제도), 사모아, 중국산둥 반도 등을 획득했다.

[편집] 세계 정책

1888년에 즉위한 빌헬름 2세는 비스마르크와 대립하여 1890년에 그를 은퇴시킨다. 비스마르크가 실각하자마자 친정을 실시한 빌헬름 2세는 적극적으로 3B 정책이라는 제국주의 정책을 추진하여, 그 이후로는 3C 정책을 내세워 영국 및 러시아 등과의 대립을 낳아, 최종적으로 비스마르크 체제가 파탄하여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게 된다.

[편집] 제정의 붕괴와 전후 처리 문제

1918년 11월 9일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과 함께 독일 11월 혁명이 일어나 제국은 붕괴되고, 다음날 빌헬름 2세가 망명한 후에 바이마르 공화국이라고 불리는 공화제가 세워졌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하여 단치히폴란드에 할양되었고, 알자스로렌프랑스에, 북슐레스비히덴마크에, 나머지는 벨기에리투아니아 등지에 영토를 내 주어야만 하였다.

거기에 남양 군도나 독일령 동아프리카 등 모든 식민지는 일본, 대영 제국, 프랑스, 미국 등에게 할양하였고 전쟁 도발 배상금인 1320억 마르크까지 지불해야 했다 예전에 보유하고 있었던 남극 기지도 보유할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서 의견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이 자행한 것이 아니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자행했다. 전쟁 기간 중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인과 유대인을 주로 학살했다(아니, 독일보다 더 심각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독일 제국보다 더 많은 배상을 내야 했다는 의견도 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와 오스만 제국의 국토 손실이 심했던 것과는 달리 독일 제국이나 불가리아 왕국은 본토가 큰 손실을 입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오스트리아-헝가리나 오스만 제국보다는 다행이었다고 보면 되겠다.

실례로 1914년 당시 감자 하나에 1마르크이면 살 수 있었던 것을, 1920년에 이르면 수십억 마르크로 살인적인 물가 폭등이 이어진다.

[편집] 독일 제국의 영방

[편집] 역대 황제

카이저(Kaiser)는 독일어로 황제라는 뜻이다.

[편집] 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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